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도웰 교수의 머리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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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12. 끝까지 부른 노래 

 

 

솜씨 좋고 유연하고 힘이 있는 새 몸통의 도움으로 담장을 뛰어넘어 거리로 나온 뒤 브리케는 택시를 잡아서 이상한 주소를 댔다.
“페르-라셰즈(Pére-Lachaise) 공원묘지로 가세요.”

 

그러나 공원묘지에 이르기 전에 택시를 바꿔 타고는 몽마르트로 향했다. 

탈출하기 전에 로랑의 지갑을 빼냈는데, 거기엔 몇 십 프랑이 들어 있었다. 
‘이 정도는 아주 큰 죄가 아닐 거야. 게다가 나한테는 불가피하잖아.’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저지른 범죄에 대한 참회는 오랜 기간 연기됐다. 

 

그녀는 다시 온전하고 살아 있고 건강한 사람임을 느꼈다. 게다가 이전보다 더 젊어지기까지 했다. 

수술하기 전에 그녀의 여성적 계산으로 그녀는 나이 서른쯤 됐다. 새 몸뚱이는 갓 스물을 넘긴 정도였다. 이 신체의 분비선들이 브리케의 머리를 젊어지게 했다. 즉, 얼굴 주름이 사라지고 얼굴색도 더 좋아졌다. 


‘이제 재미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지갑에 들어 있던 작은 손거울을 몽상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 세워 주세요.”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린 뒤에는 걸어서 갔다. 

 

새벽 세 시쯤이었다. 

늘 다니던 카바레 ‘샤누와(*Chat Noir, 검은 고양이)’를 찾아갔다. 

날아든 총탄이 그녀가 부르던 명랑한 샹송을 채 끝내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숙명의 밤에 그녀는 이 카바레 무대에 서 있었다. 카바레 창문들에서는 아직 선명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별달리 주저함도 없이 눈에 익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피곤에 빠진 문지기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가 측면에 난 문으로 재빨리 들어가서 복도를 지나쳐 무대에 붙어 있는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섰다. 

그녀와 먼저 마주친 사람은 빨강머리 마르타였다. 

마르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탈의실로 숨었다. 

브리케가 웃으면서 문을 두드렸지만, 빨강머리 마르타는 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 라스토츠카(*러시아어로 제비. 여성에 대한 애칭)!”  
그녀는 상표에 제비가 그려 있는 코냑을 하도 좋아하는 바람에 카바레에서 그런 애칭으로 널리 불렸다. 
“아직 살아 있는 거야? 우리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브리케가 몸을 돌리니 아주 잘 생기고 우아하게 차려입고 퍼런빛이 날 만큼 면도한 남자가 보였다. 

그렇게 창백한 얼굴은 햇빛을 잘 안 보는 사람들한테서 보이기 마련이다.

 그는 빨강머리 마르타의 남편인 장이었다. 그는 자기 직업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술 동료들은 그의 생활 수단에 대해 묻기를 꺼렸다. 임기응변에 능한 장에게 자주 돈이 들어오고 그가 ‘젊은이들의 리더’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와인이 강물처럼 흐르는 밤마다 장이 활수 좋게 다 계산했다. 

 

“어디서 날아온 거야, 라스토츠카?”
“병원에서.” 
브리케는 몸통 주인의 일가나 친구들이 새 몸뚱이를 빼앗아갈까 겁이 나서 그 기적 같은 수술에 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른 말을 꾸며댔다. 
“내 상태는 아주 심각했었어. 다들 내가 죽었다고 판정하고 시체 안치소로 보내기까지 한 거야. 그러나 거기서 시신을 검사하는 한 대학생이 내 손목을 잡고 희미한 맥박을 감지했지. 난 아직 숨이 붙어 있었던 거야. 총탄이 심장을 건드리지 않고 살짝 비껴 나갔어. 나는 즉각 병원으로 옮겨지고, 다행히 다 잘 됐지.”
“아주 좋아! 친구들이 다 놀라 자빠질 거야. 너의 부활을 축하해야지.”
장이 외쳤다. 

 

탈의실 문의 자물쇠가 딸각거렸다. 

빨강머리 마르타가 문 뒤에서 대화를 듣다가 브리케가 유령이 아님을 확신하고 문을 열었다. 두 친구가 포옹하고 힘차게 키스를 나눴다.
“제비야, 넌 더 마르고 키가 크고 우아해진 것 같아.” 
전혀 예기치 않게 나타난 친구의 자태를 호기심과 약간의 놀람을 가지고 살피면서 빨강머리 마르타가 말했다.

 

그 호기심 어린 눈길에 브리케가 약간 당황했다.
“살이 좀 빠진 게 당연하지. 멀건 수프만 먹이니 그렇지 않겠어? 키는 어떠냐고? 뒤축이 아주 높은 구두를 신었지. 원피스 모양은…”
“근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각에 온 거야?”
“아, 사연이 한참 길어… 넌 벌써 출연을 마쳤니?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할래?”
마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큰 거울이 달린 화장대 곁에 앉았다. 
장이 이집트 권련을 피우면서 곁에 앉았다. 

 

 


브리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도망 나온 거야, 공식적으로는.”  
“왜?”
“부용(bouillon)이 지긋지긋했어. 허구한 날 멀건 수프만 나오니... 너도 이해하겠지? 멀건 수프에 사래가 들릴까봐 겁이 날 정도였어. 근데 의사는 날 내보내려 하지 않는 거야. 나를 의대생들에게 보여야 한대나 어쨌대나. 경찰에서 나를 찾을까봐 무서워… 내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네 신세를 좀 져야 할까봐. 며칠이라도 파리에서 아주 떠나면 가장 좋고... 하지만 돈이 별로 없어.” 

 

빨강머리 마르타가 손뼉까지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만큼 흥미로웠던 것이다.
“물론 우리 집에 있어도 돼.” 

 

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생각에 잠겨 거들었다.
“나도 경찰이 수배할까봐 걱정된다. 나 역시 며칠 동안 지평선에서 사라져 있어야 돼.” 
라스토츠카는 친구였고, 장은 그녀한데 자기 직업을 숨기지 않았다. 라스토츠카는 장이 ‘큰 비행’을 하는 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전문은 금고털이였다. 

 

“제비야, 우리 함께 남쪽으로 날아가자. 너하고 나, 마르타 셋이서. 리비에라에서 바닷바람을 좀 들이키는 거야. 난 오래 웅크리고 있었어, 바람을 쐬어야 돼. 두 달 넘게 태양을 못 보니 이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물가물하다면, 믿겠어?”
“아이 좋아라.” 
빨강머리 마르타가 손뼉을 쳤다. 

 

장이 값비싼 팔찌 시계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어. 젠장, 넌 우리한테 노래를 마저 들려주어야 해… 그리고 날아가는 거지. 그 의사든 경찰이든 너를 찾으려면 찾아보라고 해.”
장의 제의를 브리케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의 등장은 그녀가 예기한 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장이 사회자로서 무대에 나가 몇 달 전 여기서 브리케에게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상기시키고는, 마드무아젤 브리케가 자기가, 장이 그녀 목구멍에 ‘제비’ 코냑을 한 잔 부은 뒤에 대중의 갈망을 좇아서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라스토츠카! 라스토츠카!” 
홀 안에 있던 술꾼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손짓을 하여 함성이 가라앉자 장이 말을 이었다. 

“라스토츠카가 뜻하지 않게 끊긴 대목부터 샹송을 다시 부를 겁니다. 악단, <검은 고양이>를 준비해 줘요!”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고,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브리케가 지난번에 끊긴 노래를 마지막까지 다 불렀다. 사실 함성이 어찌나 큰지 그녀가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했고, 자기를 사람들이 잊지 않고 따스하게 맞아주었다는 점에 감격했다. 사실 그 따스함이 술기운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그녀에겐 상관이 없었다. 

 

노래를 마치고 그녀가 뜻밖에도 오른손으로 우아한 제스처를 취했다. 예전에는 못 보던 것이었다. 홀에서 한층 더 큰 박수갈채가 터졌다.
‘저런 우아한 제스처가 어디서 났지? 정말 아름다운 자세야. 저 제스처를 배워야 돼…’
빨강머리 마르타가 생각에 잠겼다.

 

브리케가 무대에서 홀로 내려왔다. 여자 친구들이 입을 맞추고 잔들을 높이 들어 부딪쳤다. 브리케의 두 뺨이 발그레 물들고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성공과 와인이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그녀는 추적의 위험도 잊은 채 여기서 밤새 앉아 있을 태세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보다 덜 마신 장이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그가 짬짬이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브리케에게 다가가서 손을 건드렸다.

 

“때가 됐어!”
“하지만 난 싫어. 너희들끼리 가도 돼.” 
브리케가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장이 두 말 않고 그녀를 일으켜서 출구로 데려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과 아쉬움이 피어났다. 

 

“공연은 끝났어! 다음 부활 때까지 안녕!”
문가에서 잠시 발을 멈춘 장이 홀을 향해 소리쳤다.

 

그가 비틀거리는 브리케를 거리로 데려나와 자동차에 태웠다. 곧 마르타도 크지 않은 여행 가방을 들고 왔다.
“공화국 광장으로 갑시다.” 
장이 종착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중간 지점을 운전수에게 말했다. 

그는 자동차를 갈아타고 다니는 데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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