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루덩의 악마들 8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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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그랑디에에게서 악마의 흔적을 찾는 작업

 


 

  “이제 눈썹 차례로군” 하는 목소리가 문간에서 들렸다. 

  외과의가 놀라 돌아보니, 로바르데몽이었다. 푸르노가 마지못해 지시를 따랐다. 

한때 숱한 여인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던 그 얼굴이 이제 익살극에 등장하는 어릿광대의 기괴한 마스크로 바뀌었다. 

  “좋소.” 전권 대행이 입을 뗐다. “아주 좋아! 이제 손톱 차례요.” 

  푸르노가 곤혹스러운 표정만 짓자 로바르데몽이 재차 다그쳤다. 

  “손톱 말이오. 그 손톱들을 다 뽑으시오.” 

  하지만 그 지시는 외과의가 따르지 않았다. 남작이 외려 놀랐다. 

  “왜 그러오? 이 자는 마법사라고 판결까지 났단 말이오.” 

  “설령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사람한테 그렇게 대할 수는 없지요.” 푸르노가 반박했다. 

  전권대행이 화를 내며 여러 모로 을러댔지만 외과의가 꺾이지 않았다. 다른 작업자를 부를 시간이 없었다. 로바르데몽이 그 정도 외관 손상에 만족해야 했다. 

 

  기다란 잠옷용 셔츠 하나 씌우고 낡아빠진 슬리퍼를 신겨서 그랑디에를 거리로 끌고 나와 창살 두른 수레에 집어넣은 뒤 법원 청사로 압송했다. 주민들과 관광객 무리가 법정에 들어가려고 앞을 다투었다. 그러나 선별된 소수만이, 고위 관리들과 처자 거느린 귀현들, 부르주아 계층에서 추기경에게 충실한 십여 명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비단 옷자락들이 사각거리고, 금실 은실로 수놓은 비로드가 무지갯빛을 발하고, 보석 장신구들이 번쩍이고, 사향과 용연향 입자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법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랑탕 수사와 트랑킬 수사가 법정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손에 닿는 것마다 성수를 뿌리면서 엑소시즘 주문을 억양 넣어 읊조렸다. 

 

  이어서 문이 열리고 그랑디에가 나타났다. 기다란 셔츠와 슬리퍼 차림이지만 배코 친 머리에 비레타가 얹혀 있었다. 사방에서 끼얹는 성수를 흠뻑 뒤집어쓴 그를 정리들이 재판석 앞으로 데리고 나아가 무릎을 꿀렸다. 두 손이 등 뒤에 묶였기 때문에 모자를 벗기가 불가능했다. 

  법정 서기가 다가가 비레타를 벗기고는 멸시하는 투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허옇게 배코 친 두개골을 보고 몇몇 귀부인이 발작적으로 킥킥댔다. 법정 정리 하나가 정숙을 요청했다. 

 

법정에 선 그랑디에

 

  법정 서기가 안경을 걸치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선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법정에서 쓰는 의례적 서문이 반쪽 분량, 그리고 죄인이 수행해야 하는 참회 의식의 장황한 묘사, 이어서 화형에 처한다는 선고, 이어서 수녀원 채플에 붙일 기념 명판에 관해 불필요하게 상세한 설명, 그 명판 제작비 150 리브르는 죄인한테 압류한 재산에서 지불될 것, 그리고 끝으로 덧붙이는 말처럼, 화형에 앞서 죄인이 받을 ‘일반 심문과 특수 심문’에 대해 담담한 언급. 그리고 서기가 단호하게 낭독을 맺었다. 

 

  “1634년 8월 18일 루덩 시에서 공표된 상기 선고는 당일에 집행된다.”

 

  침묵이 오랫동안 흘렀다. 

  그 뒤 그랑디에가 판사들에게 최후 진술을 했다. 

 

  “존경하는 여러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또 내 유일한 수호자인 성처녀의 이름으로 단언합니다. 나는 마법사가 결코 아니며, 신성 모독을 범한 적도 결코 없으며, 내가 늘 신도들에게 전하던, 성서의 이적 이외에는 마법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오. 나는 내 구세주를 숭배하며 그분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기를 기도하오.” 

 

  그가 눈길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서 전권대행과 그가 고용한 판사 열셋을 응시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얘기하듯이 부드럽고 믿음 가는 말투로, 자신의 구원이 염려된다고, 육신에 가해질 소름 돋는 고문 때문에 영혼이 절망하여 죄의 무덤을 거쳐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귀하들께서 한 영혼을 죽이려는 것은 분명 아니지 않소이까? 또 만약 그렇다 해도, 자비를 베풀어서 이 형벌의 가혹함을 조금이라도 경감한다면 분명 마음이 흐뭇해지지 않겠소이까?" 

 

  그가 몇 초 동안 말을 멈추고는 물어보는 눈길로 돌처럼 굳어가는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여인들 앉은 자리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또 흘러나왔다. 주임신부는 희망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여기 계시고 나를 버리지 않는 하나님 외에는 희망이 없어. 지금 함께 하시고 내가 고초를 겪는 순간에도 내내 존재하실 그리스도 외에는 희망이 없어. 

 

  그가 다시 입을 열어 수난자들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거룩한 증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바쳤소이다. 혹자는 바퀴 위에서 죽고 혹자는 불길 속에서, 혹자는 칼 아래서, 혹자는 화살에 꿰여, 혹자는 맹수들 아가리에 물려 죽었지요. 나 자신을 감히 그분들과 비교할 생각은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나한테 적어도 이런 희망은 있으니, 곧, 한없이 자애로운 하나님이 내 허랑하고 무질서한 삶의 모든 죄를 내 육신의 고통으로 속죄하게끔 허용하시지 않겠소이까? 

 

13인의 어용 판관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랑디에

 

  주임신부의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고 그를 기다리는 운명이 얼마나 가혹했든지, 고질적인 적수들 이외에 홀에 있는 이들이 전부 연민을 느꼈다. 어릿광대처럼 볼품없는 모습에 킥킥대던 여인들 중 몇몇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안내인이 조용히 하라고 촉구했다. 헛수고. 사방에서 훌쩍이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로바르데몽이 위기감을 느꼈다. 이건 계획에 어긋나는 거야. 그랑디에가 고문 받고 화형당할 죄를 짓지 않았음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임신부는 법적으로 공인된 마법사였다. 시시껄렁한 증언 수천 쪽에 근거하여 고용된 판사 열세 명이 그렇게 판결하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확실히 거짓된 것이긴 해도, 어쨌든 참일 수밖에 없다. 게임 룰에 따라 이제 그랑디에는 저를 유혹한 악마와 저를 지옥으로 보낼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마지막 몇 시간을 좌절과 저항 속에서 보내야 했다. 

 

  한데 그렇게 하는 대신에 이게 뭐야, 이 무뢰한은 선한 가톨릭교도처럼 떠들고 기독교적인 온유함을 과시하면서 청중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걸 좌시하면 안 돼. 정성 들여 연출해온 세리모니가 그저 관객들로 하여금 주임신부는 결백하다고 확신케 함으로 끝났다는 것을 예하께서 알게 되면, 도대체 뭐라 하시겠나? 

 

  할 수 있는 방편은 하나뿐이고, 그걸 로바르데몽이 결정권자로서 신속하게 취했다. 

  “방청객들을 다 퇴장시켜라.” 

  지시가 떨어지자 정리들과 궁수들이 급히 실행에 나섰다. 화를 내며 항의하는 시골 귀족들과 그 부인들이 복도와 대기실로 내몰렸다. 그리고 문이 죄다 닫혔다. 그랑디에와 호송인, 판사 열셋, 탁발수사 둘, 한 줌 관리들만 남고 넓은 법정이 텅 비었다. 

 

  로바르데몽이 이제 죄인을 향해 입을 뗐다. 죄를 인정하고 공모자를 밝히시오. 그리 해야만, 가혹한 판결을 경감해 달라는 호소를 판사들이 고려해 볼 것이니. 

  주임신부가 대답했다. 공모자를 댈 수가 없소,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으니. 죄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오, 왜냐면 완전히 결백하니… 

 

  로바르데몽이 죄를 시인하라고 다그쳤다. 사실 그에겐 자백이 아주 필요했다. 악마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 입을 다물게 하고, 그가 주도한 재판 과정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정말 요긴했다

 

  엄혹하게 굴던 그가 돌연 부드럽게 나왔다. 그랑디에의 결박을 풀어주라 지시한 뒤, 주머니에서 종잇장을 꺼내더니 잉크에 담근 펜을 죄인에게 내밀었다. 서명만 하면 되는 거요, 그러면 반드시 고문당할 일도 없을 테니.  

 

죄를 시인하라고 다그치는 로바르데몽

 

  모든 관례에 따르자면, 유죄 판결 받은 죄인은 작은 자비를 얻을 수 있는 이런 기회를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예를 들어, 마르세유에서 성직자이면서 마법사로 기소된 조프리디 신부는 요구하는 대로 다 고분고분 서명했다. 그러나 그랑디에는 그런 게임 자체를 다시금 거부했다. 

  “미안하오만, 그렇게는 못하겠소이다.” 

  “그냥 펜 한 번 굴리기만 하면 되오!” 로바르데몽이 발끈했다. 

 

  상대가 양심상 거짓말은 못하겠다며 굽히지 않자 전권대행이 잘 생각해 보라면서 달변을 토했다. 

  당신을 위해서요, 가엾은 육신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게 해야지, 위기에 처한 영혼을 구해야지, 악마를 멋지게 골탕 먹이는 거요, 또 당신이 섭섭케 한 하나님과 화해도 하고… 

 

  트랑킬 수사의 증언에 따르면 로바르데몽은 죄를 인정하라고 부탁하면서 막판에는 정말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탁발수사의 말을 우리가 의심할 필요는 없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심복은 ‘눈물 재능’이 뛰어났으니까. 

  나중에, 1642년 리슐리외 추기경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다 적발돼 처형된 생마르 후작과 투 후작의 최후 시간에 참여한 사람들이 얘기하길, 로바르데몽은 자신이 막 사형선고를 내린 그 젊은이들한테도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눈물도 협박과 마찬가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랑디에가 거짓 자백에 서명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이 완고함을 랑탕과 트랑킬은 죄인이 유죄라는 최종 증거로 삼았다. 죄인의 입을 틀어막고 참회하지 못하도록 가슴을 강퍅하게 만든 자는 바로 루시퍼요! 

 

  로바르데몽이 눈물을 그쳤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주임신부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푼다고 말했다. 서명하겠소? 그랑디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간수장을 불러 죄인을 위층 고문실로 끌고 가라고 명했다. 

 

  고문실에서 그랑디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암브로시오 수사를 불러 고난의 시간 동안 배석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오 수사는 도울 형편이 못 됐다. 허가받지 않고 감옥으로 면회 간 뒤 노인은 도시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것. 그러자 그랑디에가 그리에 수사를 불러 달라고 했다. 코르들리에 수도원 감독관. 

 

  그러나 코르들리에 수사들을 로바르데몽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카푸친회의 새 교리를 인정하거나 수녀들의 마귀 들림에 일조하라는 것을 다 거부했으니까. 어떻든, 그리에 수사가 그랑디에며 그의 가족과 친분 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기에 로바르데몽이 이 요청을 거부했다. 만약 죄인이 영적 위안을 바란다면, 랑탕과 트랑킬 수사를 찾으라. 한데, 그 둘은 그랑디에한테 가장 가혹한 적대자들이었다. 

 

  “알 만하오.” 그랑디에가 씁쓸하게 말했다. “당신은 내 육신의 파괴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내 영혼마저 절망의 나락에 빠뜨려 짓밟기 원하는구려. 언젠가 이 일로 인해 당신은 내 구세주 앞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게요.” 

 

  (로바르데몽의 시대 이후 악이 발전도상에서 제법 전진했다. 코뮤니스트 독재자들 치하에서, 인민재판에 나온 사람들은 기소된 죄를, 심지어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것조차도, 반드시 시인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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