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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3.21 데모스테네스
  2. 2019.03.20 조음기관
  3. 2019.03.20 (4) 감정이란?
  4. 2019.03.20 (3) 깨달음이란?
  5. 2019.03.20 (2) 마음의 포로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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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aker들의 귀감, 데모스테네스  

 

 

 

고대 그리스의 중견 정치가로서 조국 위해 평생을 바치고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한테는 무엇보다도 위대한 웅변가로 다가옵니다. 

그의 스피치를 들을 수는 없지만, 문헌의 기록으로 보자면 허풍은 아닌 듯싶고, 외려 감동을 안기는 뭔가가 있어요. 

 

데모스테네스 흉상


기원 전 384년 아테네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무기 생산 공장을 운영한 재산가였어요. 한데 데모스테네스가 일곱 살 때 부친이 죽으면서, 아들과 5세 딸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교육을 모친과 후견인들이 맡았는데, 후견을 맡은 외삼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가정교사들에게 보수를 주지 않고 두 조카의 양육과 교육에 무심했습니다. 사내애는 신체 발달이 더뎌 허약하게 자랐어요.

 

데모스테네스가 성인이 되자 후견인들은 그에게 노예들 딸린 저택만 내주고 재산 대부분을 빼돌려 차지했어요. 청년이 처음엔 유산을 돌려 달라고 후견인들 양심에 호소하고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자 강탈 당한 유산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당대 관습대로) 법정에서 직접 성공적으로 싸우려면 아테네의 관습과 법률을 기본적으로 알 필요가 있는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력 있게 잘 말하는 재주였습니다.


젊은 그가 후견인들과 법정에서 다툼을 시작했어요. 재판은 5년이나 걸렸습니다. 후견인들은 갖은 수를 다 쓰면서 책임을 피하려 들었어요. 심지어 데모스테네스 부친의 유언장과 다른 중요한 서류들마저 파기했어요. 그럼에도 결국 데모스테네스가 이기긴 했지만, 유산을 다 돌려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해에 걸쳐 치른, 이 고된 싸움 덕분에 장차 위대한 웅변가로서 바탕과 의지가 단련됐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중 앞에 서기를 꿈꿨어요

어린 시절에 당대 유명한 웅변가의 변론을 듣기 위해 법정에 데려가 달라고 가정교사한테 부탁할 정도였어요. 소년은 법정에 모인 군중이 웅변가에게 박수 보내는 것을 보았고, 군중을 사로잡은 달변의 힘에 놀랐습니다. 그 뒤 다른 학업이며 동무들과 어울리기를 다 그만두고 웅변술 연마에 매진하게 됐습니다. 웅변가가 되기로 굳게 결심한 겁니다. 

 

그러나 군중 앞에 나서기 전에 다른 소송인들을 위해 법정 연설문 (변론) 쓰기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 작업에 아테네에서는 후하게 대가를 지불했는데, 청년은 모친과 누이를 부양할 뿐 아니라 돈을 좀 모을 정도로 열심히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변론문 작성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지요. 그는 바탕이 열렬한 애국자였으며 사회활동에 적극 나서기를 꿈꾸었거든요.

 

바닷가에서 목청 틔우는 데모스테네스

 

웅변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처음에 데모스테네스한테는 결함이 많았습니다. 

빈약한 목소리와 짧은 호흡 때문에 웅변술을 연마하다가 도중에 자주 포기했고, 그때마다 방황하다가 또 새로이 시작하곤 했어요. 어려서부터 그의 말에는… 

혀짤배기소리 같은 게 있어서 <르> 소리가 제대로 나지 못했고,
diction이 깔끔하지 않으며 단어 강세도 잘못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신체에 좀 불균형한 면이 있는 탓에 한쪽 어깨를 자주 흔들었어요. 

 

그런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니… 

혀를 기민하고 유연하게 굴리기 위해 입안에 잔돌을 몇 개씩 넣은 채 명료하고 우렁차게 말하는 연습을 수없이 시도했고, 
목소리와 호흡을 강화하기 위해 언덕을 빨리 걷거나 뛰어오르며 시구를 읊곤 했으며, 
목소리 힘을 키우기 위해 바닷가 거닐면서 파도소리 능가하는 목청을 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집에 지하실을 만들어 며칠씩, 때론 몇 달이나 혼자 스피치 훈련에 전념하면서 바깥에 나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려고 머리 절반을 삭발하기도 했어요. 
한쪽 어깨를 쓸데없이 떨고 흔드는 버릇을 고치려고 찔릴 위험마저 감수하며 지하실 천장에 날카로운 칼을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필사적인 노력 끝에 갈망하던 꿈을 이뤘습니다. 아테네 최고의 웅변가가 된 겁니다. 하지만 원고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는 스피치에 절대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작성한 원고를 거의 다 외우곤 했어요. 원고 읽는 스피치에 능한 것이지요.) 

밤마다 등불 곁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궁리해 원고를 작성하며 스피치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 위대한 웅변가의 적수들이 나중에 그에게는 영감과 천부적 자질이 없다고 비난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한 적대자는 이런 질책까지 퍼부었어요. 

“당신 웅변에서는 기름 냄새가 나오.” 

즉, “넌 밤마다 원고 다듬느라고 기름 램프 곁에 앉아 있구나” 하는 뜻이었어요. 그러나 결국에는 적대자들도 그의 달변의 힘과 솜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웅변가가 가장 본질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늘 

“무엇보다 발음이고, 둘째는 또 발음이고, 셋째도 역시 발음”이라 대답하곤 했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딕션이겠지요?)

 

광장에서 연설하는 데모스테네스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 노예제민주주의의 수호자였습니다. 아테네의 주요 적인 마케도니아 왕 필립에 반대해 저항하고 분노하여 30년 동안 줄기차게 연설하면서, 시민들 간에 반목을 다 거두고 마케도니아에 맞서 결속하자고 촉구하곤 했습니다. 그의 연설에 청중은 감동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화답하곤 했어요. 

일설에 의하면, 필립 왕이 데모스테네스의 연설문을 입수해 읽어보고는, “이 연설을 직접 들었다면, 나한테 맞서 싸우자는 호소에 나도 지지를 보냈겠군”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스피치뿐 아니라 일반 대화에서도 목소리 억양은 각별히 중요한 요소인데, 플루타르크는 데모스테네스 전기에서 특징적인 일화를 소개합니다. 

한번은 누군가가 데모스테네스를 찾아와 부당하게 고소당했다고 하소하면서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아니야, 당신한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소.” 
데모스테네스가 무뚝뚝하게 응대하자, 상대가 발끈하여 목청을 돋우었어요.
“뭐, 나한테 그런 일이 없었다니, 도대체 뭔 소리요?” 
그러자 데모스테네스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아, 그래, 이제야 억울하게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리는군.”

 

그는 정치적 열기가 달아오르고 분위기가 한껏 긴장될 때도 자제력을 잃지 않고 태연자약했어요. 자신이 행하는 스피치에 사회가 더 많이 주목케 하고 청자들을 창의적인 생각으로 이끌기 위해 수사적 질문을 자주 던졌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이런 말을 왜 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구요? 그건 바로…” 


청중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는 듯한 경우마저 있을 만큼 수사적 질문을 즐겨 이용했습니다. 청중이 답변할 필요는 없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더 나아가서는 사실상 대화 형식을 동원하고 기술하는 사건들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스피치를 극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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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음기관 이모저모  

 

조음과 발음

엄밀히 말해, 조음이란 용어는 나가면서 진동하는 공기가 (날숨이)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멈추면서 자음을 생성하는 조음기구의 움직임을 가리켜야 하겠다. 

발음은 모음에, 조음은 자음 소리와 관련된다.

 

조음기관과 그 근육  

조음기관

입 - CH(볼 근육), O(구륜근). 

혀와 그 근육. 

 

후두와 3가지 수축근 - SC, MC, 10, Superior, Middle, and Inferior. 

코와 3가지 비개골 - 1TB, 2TB, 3TB. 

 

UJ(위턱), LJ(아래턱), P(구개), NR(코 지붕), F(눈 위 두개골 강) 0(코 뒤 뼈 강) H(설골); E(후두개); VC(성대) C(윤상) W(숨통) G(식도) 

 

공명실 (공명강)

조음기관은 인두, 입, 코로 이뤄져. 이것들이 가슴과 함께 공명실이라 불리는 음성기관의 일부를 구성. 공명실은 배음(overtone)과 부분음을 제공하고, 이것들이 성대 진동으로 생긴 기본음에 추가되면서 목소리에 독특한 음색을 부여한다.

이런 특별한 진동을 얻으려면, 진동하는 공기 기둥이 경구개나 코의 골질 지붕 위에, 혹은 그 두 가지 위에 있어야 한다. 근육은 진동하는 공기에 응대하여 진동을 만들 수 없으니까. (이건 말하거나 노래할 때 목소리를 커튼으로 보내는 것과 비슷해. 커튼은 진동을 흡수한다. 키우기보다는).

 

39. 혀

혀는 구강 모양과 공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앞뒤로, 위아래로, 양옆으로, 모든 방향으로 전체나 부분이 움직일 수 있는 근육. 위아래로 혹은 옆으로 접히고, 진동할 수 있다.

혀는 NO, KO 같은 소리를 낼 때 뒤쪽에서 연구개와 맞닿기 위해 올라감으로써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막을 수 있거나, 입안 더 앞쪽에서는 혀끝이 상부 앞니 뒤에서 경구개와 닿음으로써 공기를 차단할 수 있다. [N, T, D] 같은 소리를 낼 때, 혹은 조금 더 뒤에서 [스], [즈] 같은 소리 낼 때. 혀의 움직임으로 모음 소리는 변조되면서 무한히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40. 혀의 움직임

혀의 앞과 양옆은 아래턱과 치아, 볼, 입술에 의해 형태가 잡혀. (비교. 그림 : CH(볼 근육) O(입술 근육)). 아래턱과 입술의 움직임에 의해 입 모양이 여러 모로 바뀔 수 있다. 그러면서 소리 형태를 바꾼다. 턱은 혀며 입술과 별개로 자체 근육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만약, (모음) 발성 중에 혀와 입술이 차분한 상태에 있고 아래턱이 자체 무게로 천천히 내려가게 된다면, 소리가 계속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턱과 혀가 가만있는 동안 입술이 안팎으로 움직이고 둥글게 모이거나 납작해진다면, 소리의 변화가 더 많이 나온다. 입은 가장 중요한 조음기관, 여러 부위를 움직임으로써 상이한 소리를 무수히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42. 공명강

코는 그 자체로 좋은 공명실이면서 공명에 뛰어난 많은 강들과 연결된다. 

속이 빈 굴들이 위턱에, 눈 바로 위 이마에 있고 (그림), 코 뒤의 뼈들에도 (그림) 있어서, 이 빈 굴들이 다 코와 연결돼 있다. 

코와 그 부속 굴들은 훌륭한 공명실로 간주할 수 있다. 

 

44. 입술 연습

1. 특히 발달된 근육은 구륜근. 미소 지을 때처럼 입을 늘이거나 [우:] 소리처럼 둥근 모양으로 입술 빨리 움직일 때.

2. 다른 근육들도 윗입술 올리고 내리는 역할, 윗입술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토끼 입 흉내 내면서, 연습할 수 있어.

3. 모음들 발음 때 입술 움직임은 거울 앞에서 매일 연습해야.

4. 순음 [프, 브]에도 입술이 움직일 필요.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 - 구열(口裂). 
구열의 양쪽 끝 바깥쪽 - 구각(口角). 
윗입술은 빰, 아랫입술은 아래턱과 경계. 입술 붉게 보이는 부분 - 홍순부(紅脣部). 
홍순부는 표피층이 두껍게 발달하고 角化現象이 적으며, 유두가 발달, 그 속에 모세혈관이 풍부하므로 붉은 색을 띤다. 
구륜근 - 입을 둘러싸고 있어서 입을 닫을 때와 입술을 내밀거나 오므릴 때, 휘파람 불 때 등에 작용. 
구열을 여는 것은 입술 주위 확장근. 입술에는 3차신경이 분포하고 지각성종말(知覺性終末)이 많이 퍼져 있어서 매우 민감하다.

 

45. 혀 연습

1. 거울 앞에 서, 입 크게 벌려, 입안에서 마음대로 아주 납작하게 누울 때까지 혀를 작업, 혀끝과 양옆은 아랫니에 닿아, 어떤 부위도 아랫니 꼭대기보다 더 높으면 안 돼.

2. 앞의 1의 납작한 위치에서, 혀끝을 앞니 잇몸 뒤로 천천히 올리고 원위치.

3. 납작한 위치에서, 혀 양옆을 올려, 오목하게 되도록, 원위치

4. 주요 모음 소리들 연습, 혀가 경직되지 않고 올바른 위치를 취하는지 주의, 각 모음을 3번씩 소리 내면서.

5. 주로 혀에 소리가 의존하는 자음들을 다음 순서로 연습, 각각 3번씩 소리 내면서: N, D, T, L, R, Z, S, ZH, SH, NG, K, G.

6. 혀를 최대한 입 밖으로 똑바로 내밀었다가 부드럽게 끌어들여.

 

* 점막, 내분비샘과 지방 사이 공간에 있는 가로무늬근 덩어리. 앞쪽 끝과 가장자리는 치아와 닿아 있어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활동과 음성 생성 돕는다. 

혀등에는 혀유두라는 수많은 점막 돌기. 

혀유두에는 음식 맛에 민감한 미뢰와 타액에 액체를 분비하는 장액샘이 있다. 

아랫면 점막은 매끄럽고 혈관이 분포돼 있어 자주색. 

구강 바닥에 있는 혀뿌리는 혀의 다른 부위로 가지를 뻗고 있는 신경과 동맥, 근육 다발을 포함. 인간의 혀는 음성보조기관. 

 

46. 아래턱 실습

1. 아래턱이 자체 무게로 내려가게 하면서 연속으로 몇 번 입을 열고 닫는다. 가슴 상부 쪽으로 움직임을 잡으라. 혀끝이 아랫니 뒤에 닿고, 혀 몸체를 입안에서 아주 납작하게 유지하라.

2. 다음 순서로 주요 모음들을 소리 내라:  <우:> <오오> <아와> <아아> <아우> <에에>.

<아아> 소리에서 치아가 손가락 두 개 너비로 벌어질 때까지 아래턱을 같은 간격으로 내리라, <아우>와 <에에> 소리 위해 부드럽게 닫으라, 동시에 혀 몸체 앞부분이  꼭대기에서 앞니 앞까지 올라가게 하면서, 혀끝이 아랫니 앞에 닿게 하면서. 이 변화 중에 입술이 적절한 모양을 유지하도록 주의,  또 처음 4개에서는 구각이 안으로 당기고, 뒤 2개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데 주의.

3. 아래턱을 곧장 앞으로 내밀고, 다시 부드럽게 당기라, 뒷덜미 근육 발달.

 

47. 연구개 실습

1. 입 크게 벌린 채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라. 이는 연구개와 혀에 아주 좋아. 코로 들이쉴 때, 혀는 뒤에서 올라가고 연구개는 그것과 만나려고 내려간다. 입으로 내쉴 때 혀가 납작해지고 연구개가 올라간다.

2. [AH] 소리에 이어 <NG]을 연달아 6회 소리 내면서, 매번 혀와 연구개를 편한 상태로 유지하려 애쓰라. 코로 들이쉴 때처럼 그것들이 같은 움직임을 하는 동안.

 

*연구개의 기능 - 가동성, 점막으로 덮인 근섬유로 구성돼. 삼킬 때 비관을 닫고 기도를 닫는 역할. 재채기할 때, 연구개는 노폐물을 입 쪽으로 돌림으로써 비관을 보호. 목젖이 연구개 끝에 달려. 연구, 목젖은 코골이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목젖이나 연구개 끝을 건드리면 많은 사람은 심하게 목이 막힘을 겪는다. 연구개음.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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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은 마인드 움직임에 대한 신체의 반응  

 

- 그렇다면 감정은 어떤가? 난 마인드보다도 감정에 더 자주 사로잡히는데.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마인드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생각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여기엔 모든 무의식적인 정신적 감정적 반응 패턴뿐 아니라 감정도 들어간다. 감정은 마인드와 몸이 만나는 곳에서 생긴다. 감정은 마인드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야. 혹은 달리 말하자면, 마인드 상태가 몸에 반영된 것이야. 

 

감정은 마인드에 대한 신체 반응. 불안감&#44; 사랑&#44; 우울&#44; 혐오&#44; 자부심&#44; 수치심.


예를 들어, 공격이나 적대적인 생각을 하면 우리가 분노라 부르는 에너지가 몸에 축적된다. 몸은 싸울 준비에 돌입한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몸이 움츠러들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두려움이라 부르는 것의 물리적인 측면이다. 

 

연구 결과를 보면, 강한 감정은 몸에서 생화학적 변화마저 일으킨다. 

이런 생화학적 변화는 감정의 물리적 측면이나 물질적 측면을 나타낸다. 

물론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 패턴을 다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관찰함으로써만 여러 감정을 인식할 수 있다.

 

호불호나 판단, 해석 같은 자신의 생각과 더 많이 동일시될수록… 달리 말해, 지켜보는 의식으로서 덜 현존할수록… 감정 에너지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더 강해질 것이다. 만약 자기감정을 느낄 수 없고 거기서 단절돼 있다면, 결국엔 순전히 신체적인 문제나 증세로 그 감정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근년에 이에 관한 글들이 아주 많이 나온 만큼, 여기서 더 깊이 다룰 필요는 없겠다. 

 

강한 무자각적 감정 패턴은 우발적인 듯 보이는 사건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직접 관찰한 것인데, 속에 분노를 갖고 있으면서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여 뚜렷한 이유도 없이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에게서 적대감과 분노가 저절로 강하게 발산되며, 이걸 다른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포착하고, 이것이 그들의 잠재된 적대감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여러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면… 먼저 자기 몸의 내면 에너지장에 주의를 집중하하라. 몸을 내면에서부터 느끼라. 그러면 자신의 여러 감정과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더 자세히 탐구한다. 

 

 

- 마인드 상태가 신체에 반영된 것이 감정이라고 당신은 말한다. 하지만 때론 마인드와 감정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마인드는 “노”라고 하는데 감정은 “예스”라 말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말이다.

 

자신의 마인드를 정말 알고 싶다면, 몸이 늘 진실하게 알려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그 감정을 몸에서 느끼라. 만약 생각과 감정 사이에 분명한 갈등이 있다면, 생각이 거짓이고 감정이 진짜일 것이다. 이 감정이 비록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최종 진실은 아닐지라도, 그 당시 당신의 마인드 상태에 관한 상대적인 진실은 알려준다.

 

‘피상적인 생각’과 ‘무의식적인 정신적 과정’ 간의 갈등은 흔한 현상이다. 마인드의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생각으로(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언제나 감정 형태로 몸에 반영될 테니까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지켜보는 것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생각을 듣거나 지켜보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다. 유일한 차이라면… 생각이 머릿속에 있는 반면에 감정은 강한 물리적 요소를 지니는 까닭에 주로 몸에서 느껴진다는 점이다. 감정이 몸에 있도록 놔둘 수 있지만, 이때 감정에 지배당하면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이 아니야, 우리는 이제 감정의 관찰자요 지켜보는 존재이다. 

이것을 연습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무의식적인 것이 (혹은, 자각하지 못한 것이) 죄다 의식의 빛을 쏘이게 될 것이다. 

 

감정 관찰

 

- 그러니까 감정 관찰이 생각 관찰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렇게 자문하는 습관을 들이라.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이 질문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단, 분석하지 말고 그냥 관찰만 하라. 
내면에 주의를 집중하라. 
감정 에너지를 느끼라. 
아무 감정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몸의 에너지장 안으로 더 깊이 주의를 기울이라.
이것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감정은 대개 증폭되고 힘이 넘치는 생각 패턴이며 또 아주 종종 극도의 에너지를 띠기 때문에, 처음엔 그걸 지켜볼 수 있을 만큼 현재 순간에 푹 빠져 있기가 쉽지 않다. 감정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지배하려 드는데, 우리한테 현존이 충분치 않다면 대개 그렇게 된다. 

 

흔히 그렇듯이, 현존 상태가 부족하여 감정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게 된다면, 그 감정이 한동안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우리네 생각과 감정이 서로 먹이를 주는 악순환이 종종 형성된다. 생각 패턴이 감정 형태에서 자체의 과장된 반영을 만들어 내고, 감정의 진동 빈도가 본래 생각 패턴에 계속 먹이를 주는 것이다. 어떤 감정 유발의 원인이라고 인식하는 상황이나 사건이나 사람을 마음에 담아둠으로써 생각이 감정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감정은 또 생각 패턴에 활력을 불어넣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감정은 이름과 형태 너머에서 자의식 상실에 뿌리를 두는, 하나의 원초적이고 미분화된 감정이 여러 가지로 변형된 것이다. 이 미분화된 성격 때문에 이 감정을 정확히 묘사할 만한 이름을 찾기가 어렵다. 

‘두려움’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미분화된 감정에는 지속적인 위협감 이외에 포기나 버림받음, 불완전의 느낌이 깊이 담겨 있다. 어쩌면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기본 감정만큼 분화되지 않고 단순한 명칭을 지닐 수 있는 용어인 아픔이 (혹은, 고통이) 아닐까 싶다. 

 

마인드의 주된 과제 하나는… 이 감정적인 아픔과 싸우거나 그걸 제거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마인드가 끊임없이 움직이기도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야 그 아픔을 한동안 덮는 데 불과하다. 

아픔을 없애려고 마인드가 더 버둥거릴수록 정작 아픔은 더 커진다. 

마인드는 해결책을 스스로 찾을 수 없으며 우리한테 찾게 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마인드 자체가 이 ‘문제’의 본질적인 일부니까. 자기가 방화범이면서 방화범을 찾아내려고 하는 수사 책임자를 상상해 보라. 

 

마인드와 동일시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달리 말해 에고에서 자아감 끌어내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우리는 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마인드와 동일시하기를 멈출 때, 마인드가 제 권좌에서 밀려나고 우리네 진정한 본성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 당신이 뭘 묻고 싶어 하는지 난 알아.

 

- 그렇다면 사랑이나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되는지 물으려 했다. 

 

그 감정들은 내면에서 <존재>와 자연스레 연결된 상태와 불가분하다. 생각 흐름에 틈새와 간격이 생길 때마다 사랑과 기쁨이 번뜩이거나 한순간 깊은 평온을 맛볼 수 있다. 그런 간격들이 대다수 사람들한테는 마인드가 ‘입 다무는’ 순간에 우연히 드물게 나타나는데, 때로는 형용키 어려운 아름다움이나 극단적인 신체 활동, 심지어 큰 위험으로 촉발될 때도 더러 있다. 

 

그때 내면의 고요가 갑자기 찾아든다. 이 고요 속에 포착하기 어려우면서도 강렬한 기쁨이 있고 사랑이 있고 평온이 있다. 그런 순간은 대개 아주 짧다. 마인드가 다시 재빨리 소음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마인드의 이 움직임을 우리는 ‘생각하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인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사랑과 기쁨과 평온이 무성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난 감정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사랑과 기쁨과 평온은 감정 영역 너머 더 깊은 차원에 있다. 

따라서 감정 영역 너머에 있는 이 세 가지를 느낄 수 있으려면 먼저 여러 감정을 충분히 의식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하겠다. 감정(Emotion)이란 문자 그대로 ‘불안, 동요, 교란’ 등을 뜻한다. 이 단어는 ‘어지럽히고 파괴한다’는 뜻의 라틴어 emovere에서 유래한다. 

 

사랑과 기쁨과 평온은 <존재>의 깊은 상태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면에서 <존재>와 연결된 상태의 세 가지 측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에는 대척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셋은 마인드 너머에서 솟아나는 것이니까. 

 

이와 달리, 여타 감정들은 이원론적인 마인드의 일부로서 정반대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나쁜 것 없이는 좋은 것도 가질 수 없다는 뜻이야. 그렇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여 마인드를 자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때로 기쁨이라고 (잘못) 부르는 것은, 계속 번갈아 나타나는 ‘아픔과 즐거움의 사이클’에서 즐거운 측면이 잠시 나타난 경우가 태반이다. 

 

즐거움이 늘 바깥에 있는 뭔가에서 비롯되는 반면에, 기쁨은 우리 내면에서 나온다. 

오늘 우리를 즐겁게 한 것이 내일 아픔을 주며, 혹은 우리를 떠남으로써 그 부재가 또 우리에게 아픔을 안길 것이다. 

 

또 종종 사랑이라 불리는 것은 한동안 즐겁고 가슴 설렐 수 있지만, 그건 사실 중독성 집착이며 눈 깜빡할 새에 정반대의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극도의 결핍 상태이다. 이른바 ‘사랑’이라는 많은 관계가 초기 행복감이 지나간 뒤에는 사실상 ‘사랑’과 증오, 매력과 비난 사이를 넘나들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법이 없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진정한 사랑은 갑자기 증오로 변하지 않으며, 진정한 기쁨은 아픔으로 변하지 않는다. 

 

이미 말한 것처럼, 깨달음을 얻기 전이라도, 달리 말해 자기 마인드에서 벗어나기 전이라도, 진정한 기쁨이나 진정한 사랑, 깊은 내적 평온을 고요하지만 생생하게 얼핏 접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네 참 본성의 한 측면이다. 단지, 그걸 대개는 마인드가 가리고 있을 뿐이지. 

 

이른바 ‘정상적으로 보이는’ 중독성 관계에서도 더 진실하고 더 상하지 않는 뭔가가 체감되는 순간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마인드가 끼어들어 다시 뒤덮는 바람에 한순간 번뜩임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때 ‘아, 나에게 뭔가 소중한 게 있었는데 잃고 말았네’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인드가 ‘됐네, 이 사람아, 그건 다 환상이었어’ 하고 납득시키려 들지도 모른다. 

 

사실, 그건 환상이 아니었으며 우리가 그냥 잃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우리네 자연스러운 상태의 일부로서, 마인드가 가릴 수는 있다 해도 결코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해도 태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태양은 구름 저편에 여전히 남아 있다. 

 

- 붓다가 이르기를, 아픔이나 고통은 욕망이나 욕구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에 아픔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의 끈을 끊어야 한다는데… 

 

우리네 욕망이란 죄다 <존재>의 기쁨을 대체하기 위해 외부의 사물과 미래에서 구원이나 자기 실현이나 충족을 얻으려는 마인드이다. 내 마인드가 곧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한, 나의 갈망이며 욕구며 탐심이며 집착이며 혐오 따위가 곧 나인 셈이다. 그런 것 이외에 다른 ‘나’는 더 이상 없다. (아,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으니… 단순한 가능성이나 충족되지 않은 잠재력, 아직 싹트지 않은 씨앗 같은 ‘나’도 있기는 한데, 이건 지금 우리가 다루는 마인드 전반으로 보자면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유나 깨달음을 얻으려는 나의 갈망조차… 미래에 이를 실현하고 완성하려는 또 다른 욕망일 뿐이다. 

 

그러니 욕망에서 자유로워지거나 깨달음을 ‘성취하려’ 애쓰지 말라. 

현재에 실재하도록 하라. 

마인드의 관찰자로서 현재에 있으라. 

붓다의 가르침을 입에 올리는 대신, 붓다가 되고 ‘깨어난 자’가 되라. 붓다라는 단어 자체가 마인드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는 ‘깨어난 자’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은총 받는 상태에서 떨려 나고 시간과 마인드의 영역에 들어서서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 이후 오랜 세월 아픔의 손아귀에 쥐여 왔다. 그 이래로 사람들은 자신을 <근원>뿐 아니라 서로 간에도 분리된, 낯선 우주의 무의미한 파편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하는 한… 영적으로 말해서, 깨닫지 못하는 한… 아픔은 피할 수 없다. 지금 난 주로 감정적인 아픔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이것이 육체적 아픔과 질병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원한이나 증오, 자기연민, 죄책감, 분노, 우울증, 질투 등이, 심지어 아주 가벼운 짜증이나 초조함까지도… 이것이 다 여러 형태의 아픔이다. 

 

모든 즐거움이나 신바람 같은 감정적 고양에는 아픔의 싹이 내포돼 있다. 즉, 그 자체에 그것과 필히 붙어 다니는 정반대의 것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나타나게 된다. 

감각적인 고양을 얻기 위해 마약을 복용해 본 사람은 상승 뒤엔 반드시 하강이 따르며 쾌감이 어떤 형태의 아픔으로 바뀐다는 점을 누구나 다 안다. 아주 무간한 사이가 즐거움의 원천에서 아픔의 원인으로 얼마나 쉽고 빠르게 바뀔 수 있는지, 많은 이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더 높은 곳에서 본다면,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라는 양극단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며, 둘 다 내재된 아픔의 (근본적인 고통의) 일부로서 마인드와 동일시된 에고의 의식 상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네 아픔에는 두 가지 수준이 있으니… 
하나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내는 아픔이요, 
두 번째는 우리 마인드와 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에서 비롯된 아픔이다. 


현재에서 아픔(고통)을 만들지 않는 방법과 과거의 아픔(고통)을 녹여 없애는 방법, 바로 이것이 이제 내가 하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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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이란 

 자신의 생각 위로 올라서는 것  

 

 

-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래도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네 마인드는 활동의 도구요 수단이다. 그것은 특정 작업에 이용할 수 있고, 그 작업이 끝나면 내려놓게 돼 있다. 그게 마인드의 소명이다. 그런 만큼,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즉,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의 8할에서 9할쯤은 쓸데없이 반복되는 것일 뿐 아니라, 또 이 반복적인 생각의 대부분은 그 기능 장애와 종종 부정적인 성격 때문에 해롭기도 하다는 것. 이게 사실이라는 점은 자신의 마인드를 잘 관찰해 보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무익하고 해로운 과정이… 생명 에너지가 심각하게 유출되는 원인이다.

 

깨달음이란, 에크하르트 톨레


이렇게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 중독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중독 형태의 특징이 무엇인가? 아주 간단히 말해… 그걸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야. 대안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중독 상태가 우리 자신보다도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또 우리한테 거짓된 쾌감을 안기는데, 이 거짓된 쾌감이 나중엔 반드시 고통으로 바뀐다. 


- 우리는 왜 강박적인 생각에 중독되나?

 

왜냐하면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하기 때문인데… 이건 우리가 자아감을 마인드의 내용과 움직임에서 끌어낸다는 뜻이다. 또 왜냐하면, ‘만약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게 될 텐데’ 하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에 입각하여 자신에 대한 심상을 형성한다. 이 허깨비 같은 자신을 <에고>라 부를 수 있다. 에고는 마인드의 움직임으로 이뤄지며,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에고>라는 용어를 여러 사람이 제각각으로 이해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에고란… 자신을 무의식중에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생겨난 <거짓된 나>를 의미한다.

 

에고한테는 현재 순간이란 게 거의 없다. 그건 과거와 미래만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진실에 완전히 거꾸로 가는 까닭은… 에고 모드에서 작동하는 마인드의 기능에 문제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마인드는 과거를 생생하게 유지하는 데 늘 신경 쓴다. 왜냐하면, 마인드가 보기엔… “아, 과거가 없다면, 넌 도대체 누구야? 네가 있을 수 있겠어?” 

마인드는 계속 살아남고 미래에서 해방이나 충족 같은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미래에 투영한다. 흔히 이런 식으로 말한다. “언젠가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 난 행복하고 만족할 거야, 편안해질 거야.” 

 

에고가 현재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일 때조차도 에고가 보는 건 사실상 현재가 아니다. 즉, 에고는 과거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현재를 완전히 잘못 지각한다. 혹은, 마인드가 투사된 미래의 목표로 나아가는 수단 정도로 현재를 축소하기 일쑤이다. 자신의 마인드를 관찰해 보면, 이것이 <에고>의 작동 방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해방에 이르는 열쇠는 현재 순간에 있다. 

그러나 마인드가 곧 자신이라 여기는 한, 그 현재 순간을 찾을 수 없다. 

 

- 난 분석하고 판별하는 능력을 잃고 싶지 않아. 더 명료하고 더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괜찮지만, 내 마인드를 잃고 싶지는 않아. 사유하는 재능은 우리한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야. 그게 없다면 우리는 그저 또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지 않겠나? 

 

마인드가 우세한 상태는… 의식 진화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긴급히 넘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계속 괴물로 커지는 마인드에 의해 우리가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생각과 의식은 동의어가 아니다. 

생각은 의식의 작은 측면에 불과하다. 

생각은 의식 밖에서 실재할 수 없지만, 의식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생각 위로 올라선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거나 동식물 수준으로 회귀한다는 뜻이 아니야.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사고력을 여전히 이용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효율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또 생각하는 마인드를 주로 실용적인 목적에 이용하면서도, 무의식적인 내면 대화에서는 벗어나 내적인 고요와 평온을 맛본다. 

 

마인드를 이용할 때, 특히 창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때, 생각과 고요 사이를, 마인드와 무념 사이를, 몇 분마다 오가면 좋다. (no-mind 상태인) 무념이란… 생각이 제거된 의식이다. 그렇게 해야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생각에 진정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훨씬 더 광대한 의식 영역과 연결되지 못한 생각은 금방 빈약하고 무분별하고 파괴적인 것이 되고 만다.

 

마인드는 본질상 생존을 위한 장치이다. 다른 마인드들을 공격하고 방어하기,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분석하기 등은 마인드가 곧잘 해내지만, 그런 건 다 창의적인 것이 전혀 못 된다. 진정한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마인드가 없는’ 상태에서, 내면의 고요에 머물러서, 뭔가를 만들어 낸다. 그때 마인드가 창의적 임펄스와 직관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위대한 과학자들조차 그들의 창의성이 심적으로 고요한 시기에 번뜩였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미국의 가장 저명한 수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작업 방법을 알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사한 결과 아주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생각은 ‘부차적인 역할만 할 뿐인데, 그마저도 창의적 과정의 짧고 결정적인 마지막 단계에서만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아주 많은 학자들이 창의적이지 못한 까닭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을 멈추는지 모르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지구상의 생명이나 우리 몸이 만들어져 지속되는 기적은 마인드나 사고 활동의 결과가 아니다. 마인드보다 훨씬 더 큰 지능이 (혹은, 지혜가) 작동하는 게 분명하다. 크기가 1천 분의 1 인치밖에 안 되는 사람 세포 하나가 어떻게 6백 쪽짜리 책 1천 권에 해당하는 DNA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인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안에서 일하는 지혜가 얼마나 광대한지, 또 우리네 지식이 얼마나 초라한지 더 깨닫게 된다. 마인드가 이 내면의 지혜와 다시 연결될 때, 그건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러면 그 자체보다 더 큰 뭔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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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 ‘생각꾼’을 지켜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하고 말한다면, 정신과의사한테 가보라는 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늘 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목소리를 듣는다. 

이건 자신도 모르게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 끝없는 머릿속 독백이나 대화를 멈출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마인드에서 벗어나려면, 생각꾼을 지켜보기

늘 뭔가를 쉴 새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이른바 '맛이 간' 사람들을 거리에서 간혹 본다. 한데, 그 미친 사람들이 하는 짓과 우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짓의 차이란 기껏해야 우리는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는다는 점일 뿐이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늘… 누군가나 뭔가를 촌평하고, 주장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이 머릿속 목소리는… 어떤 순간에 우리가 처한 상황과 별반 관련 없는 것이 많다. 이건 대체로 최근이나 먼 과거를 떠올리거나 가능한 미래 상황을 미리 짚어보거나 상상한다.  그러면서 일이 잘못 되거나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우리는 근심 걱정이라 부른다. 
때로는 이 사운드트랙에 시각적 형상이나 '정신적 필름‘이 수반되기도 한다. 

 

머릿속 목소리가 혹시 당면한 상황과 관련된다 하더라도, 그 상황조차 머릿속 목소리는 과거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머릿속 목소리가 조건에 얽매인 마인드에서 나오는데, 또 이 제한된 마인드는 우리네 인생 내력뿐 아니라 우리가 물려받은 사회적, 문화적 사고방식의 반영이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과거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그 결과 현재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 

 

머릿속 목소리가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징벌하고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갉아먹는 고문자를 자기 머릿속에 둔 채 살고 있다. 이것이 질병뿐 아니라 크나큰 비참함과 불행의 원인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자기 마인드의 전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이 진정한 해방이다. 이 길을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중중대는 목소리에 최대한 자주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라. 

반복되는 생각 패턴에, 아마도 몇 년씩이나 양쪽 귀 사이에서 뱅뱅 돌았을 낡은 레코드판 소리에, 특히 주목하라.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각꾼 지켜보기’이다. 

 

달리 말해, 머릿속 목소리를 들으면서 목격자로 머릿속에 실재하라. 

그 목소리를 들을 때 편견을 갖지 말라. 즉, 판단하지 말라. 

듣는 것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한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가 뒷문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뜻일 테니까. 

 

저기에 목소리가 있고 여기에 그것을 듣고 지켜보는 ‘나’가 있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있다’는 실감이나 나의 실재감은 생각이 아니다. 이건 마인드 너머에서 생기는 것이다. 

 

∫ 

 

 

그렇게 생각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그 생각뿐 아니라 그 생각의 목격자로서 자기 자신도 분명히 알게 된다.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 들어선 것이다. 생각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는 그 생각의 이면이나 기저에 있는 의식적인 실재를 느낀다. 

이것이 우리의 더 깊은 자아이다. 

그러면 생각은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금방 잠잠해진다. 왜냐하면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함으로써 마인드에 에너지 공급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생각하기를 끝내는 작업의 첫걸음이다. 

 

생각이 잠잠해질 때 머릿속 흐름이 중간 중간 끊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인드가 없는 틈새이다. 혹은 무념(無念)의 간격이다. 이 틈새들이 처음엔 짧아서 몇 초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이 틈새들이 생길 때, 우리는 내면에서 고요와 평온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존재>와 하나 됐다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나아간다. 

물론 그 이전에 이 상태는 대개 마인드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 연습을 계속 할수록 고요와 평온의 느낌이 더 깊어질 것이다. 사실, 이 느낌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 또한 내면 깊은 곳에서 신비하게 솟아나는 기쁨도 느끼게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존재>의 기쁨이다. 

 

건 트랜스 (꿈결, 비몽사몽) 같은 상태가 아니다. 전혀 아니야. 여기서는 의식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아. 외려 그 반대이다. 평온을 얻느라고 의식 수준을 낮춰야 하며 고요를 얻느라고 활력과 기민함을 잃는다면, 그런 것은 얻으려 애쓸 가치가 없으리라. 

이 내면의 연결 상태에서는 마인드와 동일시할 때보다 훨씬 더 경계하고 깨어 있게 된다. 

우리는 완전히 현존한다. 게다가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장의 진동수가 이 상태에서 높아지기도 한다. 

 

이 무념(無念)의 영역에 더 깊이 들어서면서 우리는 순수 의식 상태를 실감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 자신의 현존이 어찌나 강렬하고 기쁘게 느껴지는지, 이에 비하면 생각이며 감정이며 육체며 바깥세상 모든 것이 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건 이기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심 없는 상태이다. 자신의 실재를 실감함으로써 우리는 이전에 ‘나 자신’이라 여기던 것을 훨씬 더 넘어서게 된다. 이 실재는 본질적으로 ‘나’이면서 동시에 이 ‘나’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 크다. 여기서 내가 전하려는 것이 역설적이거나 모순된 듯이 들릴지 모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꾼 지켜보기’ 이외에도 <지금> 순간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머릿속 흐름에서 틈새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순간을 그냥 강렬하게 의식하기만 하라. 그렇게 하는 자체가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마인드의 움직임에서 의식을 끌어내 무심의 틈새를 만드는데, 이 틈새 안에서 우리는 높은 경계심과 인식 상태에 있으면서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이걸 우리는 일상에서도 연습하고 실행할 수 있다. 우리네 일상 움직임은 목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을 행할 때 거기에 온통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자체가 적어도 그 순간에는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이나 직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 하나하나에, 동작 하나하나에, 심지어 호흡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 거기에 전적으로 현존하라. 몰입하라. 

또는 손을 씻을 때, 그 행동과 관련된 모든 감각적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라. 즉, 흐르는 물소리며 손놀림이며 비누 냄새 등에 집중하라. 

혹은 차에 탈 때, 차 문을 닫고 나서 아주 잠깐 휴지를 취하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라.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절절이 느껴 보라. 

 

‘이런 실습을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내면에서 체감하는 평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자신을 자기 마인드와 분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마인드의 흐름에 틈새를 만들 때마다 (no-mind, 무념의 찰나에 접할 때마다) 의식의 빛이 더 선명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린애들 장난에 미소 짓듯이 머릿속 목소리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자신을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건 자기 마인드의 내용을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아감이 더 이상 거기에 좌우되지 않으니까.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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