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말 한스 (Hans)
1.
"넷 더하기 둘은 얼마지?"
사람이 던지는 질문에 말이 "여섯이에요" 하고 대답합니다.
물론 말이 말로 답하는 것은 아니고, 오른쪽 앞발굽을 '한 번, 두 번, 세 번... 여섯 번' 두드린 겁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를 만해요.
"우와, 짐승이 덧셈을 하다니! 문제를 또 내봐요! 다른 것도 물어봐요!"
그래서 몇 가지 셈을 더 물어봐도 말은 어김없이 발굽을 정확히 두드렸습니다.
"거 참, 신기하네. 웬만한 사람보다 더 영리한 거 아니야?"
시간이 흐르면서, 말은 덧셈뿐 아니라 뺄셈, 곱셈, 나눗셈 문제를 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답을 딱 내놓게 됐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구구단까지 꿰게 됩니다.
1900년대 초반 독일 베를린에 살던 이 말의 이름은 한스. 말 주인은 수학 교사를 지낸 오스텐이라는 사람. 말은 문제를 입말로 내도 글말로 내도, 주인이 내도 구경꾼 중에 누군가가 내도 다 알아맞혔습니다.
<영리한 말 한스>는 금방 유럽 전역에서 유명 인사(?)로 등장했어요. 신문 주요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사랑방 좌담의 중심 토픽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이 진귀한 현상에 연구자며 심리학자, 수의사, 기병대 장교, 말 애호가들이 특히 주목했습니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슈툼프가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섰어요. 먼저, 말 주인이 무슨 속임수을 쓰는 건 아닌지, 말에게 어떤 힌트를 주는 방법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 열 세 명으로 구성된 검증 위원회가 테스트 날짜를 잡았습니다. <영리한 한스>도 결국은 주인의 교묘한 트릭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다들 확신했어요. 심리학자, 물리학자, 수의사, 애마가, 기자들을 비롯해 구경꾼이 잔뜩 모여 들어, 어떤 결론이 날지 흥미진진하게 기다렸어요. 검증 위원들은, 바로 오늘 한스의 트릭을 밝혀낼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공표했습니다. 테스트가 시작되기 직전 위원회는 주인에게 말을 홀에 혼자 놔두고 나가 있도록 했지요.
위원장이 한스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어요. 말이 발굽을 두드려서 정답을 알렸습니다. 두 번째 문제를 냈는데, 또 제대로 답했습니다. 세 번째 문제에도 역시 정답을 내놓았습니다. 예상과 다른 결과에 검증위원들이 혼란에 빠지고 속임수라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테스트를 다시 하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얼마 뒤 슈툼프의 제자 풍스트가 위원회를 새롭게 꾸려 다시 검증에 나섰습니다. 같은 홀에 연구자, 교수, 수의사, 기병대 장교, 기자들이 전 세계에서 다시 모여 들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비로소 위원회는 <영리한 한스>에게 훈련시킨 비밀을 풀게 됩니다.
이번에도 한스가 어렵지 않게 응답하리라 다들 기대했어요. 하지만 한스는 발굽을 움직이지 않았어요! 오호라! 연구자들이 드디어 진실을 알아내게 됐습니다. 그게 뭘까요?
숫자 둘을 더하는, 간단한 산술 문제로 시작했는데... 하지만 이번엔... 사람들이 다들 듣게끔 문제를 내는 대신, 위원 한 사람이 한스 귀에 첫 번째 숫자를 속삭이고 다른 위원이 두 번째 숫자를 속삭인 겁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이 정답을 당연히 알지 못하겠지요? 여기에 비밀의 열쇠가 있습니다.)
힌트: 질문자나 검증하는 사람이나 구경꾼들이 정답이 뭔지 알게 됐을 때만, 한스도 그것을 아는 것 - 감이 잡히나요?
2.
심리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풍스트는 <영리한 한스>라는 기이한 현상에 더 근본적으로 다가들었습니다. 한스가 ‘산술 재능’을 내보인 여건을 다각도로 살핀 것이죠.
먼저, 1차 검증 때처럼 한스와 말 주인을 떼어 놓았어요. ‘산술 재능’이 여전했습니다. 다음엔 말 주인이 건네는 문제와 전혀 다른 질문을 몇 가지 들이댔어요. ‘산술 재능’이 여전했습니다. 이번엔 한스의 눈을 가려 문제 내는 사람을 못 보게 해 봤어요. 그러자 ‘산술 재능’이 금방 사라졌습니다. 다음에 풍스트는 말 주인에게 자신도 정답을 모르는 문제를 한스에게 질문하게 했어요. 한스의 '산술 재능'이 또 사라졌습니다.
여러 테스트 결과를 종합하여 풍스트가 내린 결론.
한스에겐 산술 능력이 없다. 그 대신 문제를 내는 사람의 행동(움직임, 표정, 몸짓)에 드러나는 아주 희미한 변화를 포착하고 이용할 줄 안다. 한스는 질문 받고 발굽을 두드리면서 문제 낸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 질문자 입장에서는 말이 발굽을 몇 번 두드리는지 세는데, 두드리는 횟수가 정답에 가까워질 때 질문자의 긴장도 커진다.
한스는 이 긴장감을 포착하고 두드리기를 멈출 순간이 됐음을 아는 것. 발굽으로 필요한 숫자를 두드린 순간 문제 낸 사람이 안도하고, 그 순간 한스는 두드리기를 멈추는 것. 만약 질문자의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한스는 안도하는 표정이나 숨소리를 보고 들을 때까지 발굽을 계속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결론은 지극히 옳았습니다.
3.
다시 말하자면, 한스가 정답에 해당하는 횟수만큼 발굽을 두드리기 시작한 순간, 둘러선 사람들이 아주 미미한 시그널을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발산하게 됩니다. '시작됐어! 과연 맞출까, 어떨까?' '야아, 이거 손에 땀을 쥐게 하네.' 주변에 긴장이 감돌고, 그에 걸맞은 시그널과 징표들이 나왔다는 것이죠.
한스가 정답에 해당하는 숫자에 이르를 때, 구경꾼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긴장을 풀게 됩니다. 말 주인 오스텐은 바로 그 순간 발굽 두드리기를 멈추게끔 말을 훈련시킨 것이었습니다.
<영리한 한스의 비밀 해결자>로 알려진 풍스트의 다른 실험이 또 흥미로워요. 그는 자신이 내린 결론을 다시 검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무엇이든 숫자를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하고, (한스가 했듯이)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면서 그 숫자를 알아맞히려 해 본 겁니다. 그리고 (한스 못지않게) 성공했어요! 누구든 조금만 훈련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팟캐스트 <불탕불탕 말 달리자~>에서 오디오 편집을 맡고 있는 고도 님은, "오디오 편집하면서 숨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반응이며 표정이며 감정 상태가 어떤지를 볼 수 있어요!" 하고 말합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얘깁니다.
4.
<영리한 한스>는 질문자나 구경꾼들의 반응을 잘 포착하고, 그에 맞게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말도 하는데, 사람이 못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대화할 때도 (강연, 연설 때도; 변호사, 의사, 세일즈 일에서도) 상대방의 (청중의,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포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중요해요.
미소 짓나? 고개 끄덕이나? 손바닥을 보이나? (듣는 것에 만족한다고 여겨도 틀리지 않을 것).
얼굴 찌푸리나? 딴 데를 보나? 팔짱 끼고 있나? 주먹을 쥐고 있나? (당신 얘기가 못마땅한 것일지도).
목덜미를 만지나? 상체를 젖히나? 발이 문 쪽을 향하나? (대화 끝내고 자리 뜨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신체언어를 일상에서 이미 잘 활용합니다.
상대가 뒷걸음치거나 상체를 뒤로 젖히거나 딴 데를 보면, '아, 얘깃거리에 흥미를 못 느끼는군' 하고 감지하지요.
당신이 뭔가 불편하게 만들었다 싶으면, 상대는 목덜미를 문지르기도 해요.
당신에게 우월감 같은 느낌을 품고 있는 상대방은 손가락들 끝을 맞대고 첨탑처럼 손 모으는 제스처를 쓰기도 합니다.
비언어적 소통, 제스처와 신체언어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아니, 중요해요. 자세한 것은 천천히 소개합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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