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단계
수용하고 승복하는 연습
특별한 케이스: 극심한 고통을 수용하고 전환하는 방법
현재의 여러 상황 가운데 심한 고통이 따르고 힘겨운 것에 관해 따로 얘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견디기 힘든 병고, 혹은 갖가지 형태의 속박, 혹은 (배곯고 추위에 떠는 등) 순전히 육체적인 결핍 같은 상황 말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승복이며 양보를 어떻게 실행하나요?
이야말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기야 그렇더라도 실제로는 승복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고통을 완화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통이 더 커지기만 합니다.
<지금> 순간에 연결하는 자체가… 이미 고통을 변환하고 승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질병을 예로 들어 볼까요.
만약 아프다면, 마인드는 우리 내면에서 ‘질병’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난 이러 이런 병에 걸렸어’ 하는 개념이 우리 의식을 점령하고 마인드와 감정을 다 차지하면서 우리를 온통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치 못한 증상을 구체적으로 감지하여 다루는 게 아니라 마인드에 있는 ‘질병’이라는 개념만 상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차리지도 못해요. 그러고는 ‘아, 이 병은 감당하기 힘들겠어’ 하고 지레짐작하기 일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대하는 게 아니라 마인드가 비현실적으로 과장한 관념에 끌려가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 순간으로 옮겨가면, 마인드에 있는 개념이 사라집니다.
이제는 ‘질병’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관념이 아니라, 이 순간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느낌을 다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통증이나 열, 쇠약, 경직 같은 증상만 상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픈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더 쉬워져요.
이젠 ‘질병 극복’이라는, 상당히 거창하고 포괄적이며 어쩌면 힘에 부칠지도 모를 목표를 잡지 않습니다. 그 대신 더 한정되고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과제를 대하는 것이니… 질병 전반이 아니라 특정 순간에 나타나는 증세와 징후를 다루게 되기 때문에 더 쉬워집니다.
특정 순간에 나타나는 징후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질병 자체를 어떻게든 완화할 수 있어요. 물론, 단계적으로 진행해야겠지요. 질병을 단번에 근절하려 들 것이 아니라, ‘지금 구체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서 서서히 퇴치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질병을 한 방에 물리치려 드는 것보다 더 쉽지 않겠어요?
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이나 병고 자체도 줄이면서 말이죠.
큰 목표를 이루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인 결과로 훌쩍 건너뛰려 들기보다는 지금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더 효과적이고 더 확실한 길입니다. 그리고 목표에 한 걸음씩 나아가려면…
당연히 현재 순간에 있어야겠지요.
그런 식으로 하면서 현재 순간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이미 이 수용 단계에서 두려움과 고통과 아픔이 녹아서 잔잔한 평온과 평화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면 언제나 그런 효과가 생깁니다.
혹시 뭔가를 해 볼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해도, 혹시 무기력하고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다 해도, 혹시 뭔가를 바꾸거나 고통을 덜어낼 방법이 없다 해도…
그래도 (그럴수록 더!) 그 고통에 마음을 열고 그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거기에 깊이 잠겨서 더 큰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고통에 마음을 열고… 그 다음에 그것이 우리 자신을 거쳐서 사라지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만 아픔이나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저항한다면, 고통이 커지기만 할 겁니다.
만약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라면, 고통을 통해서 깨달음이 올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십시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길’과 개념이 비슷해요.) 그래요, 이건 힘겨운 길이에요. 하지만 이건 강인한 이들의 길입니다.
만약 이 길이 당신한테 주어졌다면, 이건 곧 당신이 해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 길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따라야겠지요.
만약 고통을 완전히 이겨낼 수 없다면… 평정과 평화, 특별한 내면의 빛으로 바꾸기만 해도 됩니다. 이 빛은… 삶과 자기 운명이 아무리 힘겹다 하더라도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한테만 있는 것입니다.
실습 41
몸이든 마음이든 아픔을 겪을 때… 내면에서 아픔이 느껴지는 쪽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이건 그냥 있는 것일 뿐이야.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그다음에 몇 번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길게 내쉬면서 현재 순간으로 들어서서,
‘이제 나는 고통에 마음의 문을 연다’고 상상하십시오.
당신은 아픔과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저항하지도 않습니다.
그 반대로, 아픔이 당신 안으로 들어와서 당신을 점령하게 놔뒀다가, 그리고…
그리고 당신을 거쳐 지나가 버리게 합니다.
이 아픔을 <내면의 목격자>로서 바라보세요.
그건 더 약해지거나, 아니면 이전보다 훨씬 가볍게 지각될 겁니다.
아픔을 매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심신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확실히 감지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일이 금방 일어날 수는 없기에 처음엔 확연하게 눈에 띄지도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느리면서도 점차 더 나아지는 단계들이 이어질 겁니다.
서둘지 마세요.
이 과정을 재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삶의 흐름에 그냥 맡기세요.
아무리 힘겹다 해도… 숨거나 달아나거나 저항하고 싸우려 들지 말아요.
지금 이 얘기는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면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임을 잊지 마세요.
필요하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하십시오.
하지만 내면에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그 바닥에는 기쁨이 있음을 느낄 것이다.
고통을 겪으면서 당신은 거기서 진짜 보물을 발견할 거예요.
<거짓된 나>는 이걸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에고의 성향이 큰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고통에 맞서 싸우고, 그럼으로써 고통을 더 키우지요.
승복하면, 고통이 햇빛 아래 안개처럼 흩어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승복하고 물러서면 고통이 왜 사라지나요?
왜냐하면, <존재>한테 고통이란 안개요 환상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존재>가 있는 곳에…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존재>입니다.
당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당신한테 고통이 찾아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심연과 연결할지 여부는…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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