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과. 아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유
어른들의 자동적인 반응과 그 12가지 타입
부모들의 어려움
세발자전거와 이륜자전거
우리의 듣기를 훈련하자
가정에서 수행할 과제
부모들의 질문
<적극적 듣기> 방법을 배우려는 부모들이 가장 크게 호소하는 어려움은...
정말 필요한 응답이 아니라 썩 적절하지 못한, 지금까지 익숙하게 쓰던, 대답들만 머릿속에서 뱅뱅 맴돈다는 것.
한 수업에서, 딸의 이런 불평에 어떻게 응답할지 적어 보라고 했다.
영희는 나랑 더 이상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오늘 그 애가 다른 여자애하고 정답게 웃고 놀면서 나한테는 눈길 한 번 안 주었어요.
이런 대답들이 나왔다.
– 네가 먼저 그 애들한테 다가가 보렴. 너를 받아줄지도 모르잖아.
– 어쩌면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
– 물론 기분이 많이 나쁘겠구나. 그러나 그 애하고 노는 게 영희는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지. 그 애한테 네 우정을 강요하지 않는 게 좋겠다. 다른 친구를 찾으렴.
– 그러면 영희한테 네 새 인형을 갖고 놀자고 해보렴.
– 글쎄,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둘에게 뭔가를 선물하렴.
–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
– 너희 둘이 다투진 않았어?
– 걱정 마. 나랑 같이 놀면 되잖아.
그리고... 이런 응답이 죄다 그리 적절치 못하다는 점을 알고 부모들이 깜짝 놀랐다.
최근 20년 동안 심리학자들이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해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주로 입에 올리는 말을 유형별로 구분한 것인데, 이런 어구가 아이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듣는 데 큰 장애가 된다. 그런 게 전부 12가지 타입이나 되더라!
부모들이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내놓는 이 응답 유형을 하나하나 알아보자. 또 아이는 부모의 그런 말에서 무엇을 듣는지도 살펴본다.
1. 명령, 지시
“당장 그만해!”
“저리 치워라!”
“휴지통을 비워라!”
“얼른 침대로 들어간다!”
“그런 얘긴 내가 더 이상 안 듣게 해라!”
“입 다물어라!”
이런 극단적인 말을 들을 때 아이는 부모가 자기 문제를 이해하려 들지 않으며 아이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런 말은 다 아이에게 (부모가 일방적이기에)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나아가서 (아이의 문제를 그 누구한테도 호소할 수 없기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아이들은 대개 서운함이나 모멸감을 느끼고, 그래서 엇나가거나 대들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혼잣말로 꿍얼대고, (어른들 표현으로) 아망을 떤다.
엄마: 진영아, 얼른 옷 입어라 (명령), 유치원에 늦겠다!
진영: 혼자 못 입겠어, 도와줘.
엄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라! (지시) 벌써 몇 번이나 혼자 입었는데!
진영: 셔츠가 맘에 안 들어, 입기 싫어.
엄마: 또 새로운 핑계를 대는구나! 자, 얼른 입어라! (다시 명령)
진영: 지퍼가 안 올라가요.
엄마: 지퍼 올리지 말고 그냥 가 봐라, 그러면 다른 애들이 다 네가 칠칠맞지 못하다고 흉볼 거야.
진영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나빠…
저 대화를 이런 식으로 아주 다르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진영아, 얼른 옷 입어야겠다. 안 그러면 유치원에 늦을 거야.
진영: 혼자 못 입겠어, 도와줘.
엄마 (잠깐 휴지): 혼자서 입을 수가 없구나.
진영: 셔츠가 맘에 안 들어, 입기 싫어.
엄마: 셔츠가 맘에 안 드는구나.
진영: 응, 애들이 어제 계집애 같다면서 웃었어. (뜻하지 않은 정보)
엄마: 기분이 아주 안 좋았겠네. 알겠다. 그럼, 이걸 입으렴!
진영 (기분이 좋아져서): 줘요! (얼른 입는다.)
이 두 번째 대화에서 ("혼자서 입을 수가 없구나. 셔츠가 맘에 안 드는구나" 같은) 엄마의 응답이 나오려면, 자신의 할 말(지시)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아이가 하는 얘기에 귀기울이고 아이가 내보이는 반응에 진심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어린 아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기꺼이 끄집어내며, 그걸 엄마는 뜻밖의 정보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대화가 첫 번째처럼 오간다면... 다음 유형의 말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2. 경고, 주의, 위협
"울음 그치지 않으면, 널 두고 갈 거야."
"한 번만 더 그러면, 회초리를 들겠다!"
"약속 시간에 집에 안 들어오면, 어떻게 될지 두고봐라!"
아이가 지금 (화나 있거나 속상하거나 두렵거나 슬프거나 토라지거나... 등등) 불쾌한 심적 상태를 겪고 있다면, 그런 아이에게 경고를 날리고 주의를 주고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외려 아이를 한층 더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일 뿐이다.
첫 번째 대화 끝에서 엄마가 “그러면 다른 애들이 다 네가 칠칠맞지 못하다고 흉볼 거야” 하고 은근히 위협을 가한다. 그러자 아이가 눈물 모드로 전환되어 엄마를 공격한다.
이런 장면들이 익숙한가? 그 결과 당신은 한층 더 닦달하면서 또 다른 위협을 가하고 소리침으로써 반응하는 경우가 있나?
위협과 경고는 그게 자주 반복되면 아이들이 거기에 익숙해져 별로 반응하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더 안 좋다. 그때 어떤 부모들은 말에서 행동으로 넘어가고, 벌도 가벼운 것에서 더 강하거나 가혹한 것으로 강도가 세진다. 그 결과 떼쓰는 어린애를 거리에 혼자 ‘남겨두거나’ 방문을 잠그거나 어른 손이 회초리나 허리띠로 간다.
3. 훈계, 설교
"넌 올바르게 행동해야 돼."
"사람은 다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법이다."
"넌 어른들한테 공손하게 대해야 돼."
이런 식의 훈계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뭔가를 받아들일 일은 거의 없다. 저런 말을 골백번 들어도 아이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외적 권위의 압력을, 때론 자책감을, 때론 따분함을 느낀다. 이런 걸 다 동시에 느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사실, 도덕적 지침이나 올바른 행동은 어른의 말보다는 집안 분위기로써 아이들에게 심어진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면서 그렇게 된다. 만약 가족 구성원들이 다 성실하고 거친 말을 삼가고 거짓말하지 않고 집안일을 나눠 한다면... 아이는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알지 못할 수가 없다.
아이가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1) 가족 중 누군가가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게 아니라면 필경 다른 원인이 작동할 것인데, 2) 아이가 자신의 고민이나 내적인 혼란, 정서적 고통 때문에 ‘행동 규범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에서 올바른 행동과 도덕을 들먹이며 훈계나 설교처럼 말로 하는 가르침은은 외려 반발심을 키울 우려가 크다.
실제 스토리
아홉 살 영희와 열세 살 철수, 두 아이의 부모가 2주일 동안 출장을 떠난다. 이때 엄마 여동생이, 그러니까 아이들 이모가, 열한 살 된 자기 딸 순이를 데리고 이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본다. '예민한' 나이의 아이 셋이 한데 있다 보니 언제든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철수와 영희가 출장 간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당에, 사촌이 자기 엄마와 함께 나타난 것이 아이들 관계를 더 힘들게 만들게 된다. '지금 저 애한테는 엄마가 있는데 우리한텐 없어' 하는 생각에 두 아이가 사촌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품고, 그래서 그 아이를 괜히 놀리고 집적거리고 싶어진다.
셋이 자주 함께 놀면서도 툭하면 말다툼을 벌이고, 그럴 때 두 오누이가 한편이 되기에 사촌 순이가 자주 눈물을 흘린다. 순이의 엄마이자 두 아이의 이모는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서 아이들한테 공정하게 대하려 애쓴다.
이모의 이런 태도도 조카들에겐 (그래도 엄마는 없기에) 그리 도움 되지 못하고, 순이가 보기엔 자기 엄마가 늘 다른 두 아이 편만 드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티브이 채널 선택을 두고 세 아이가 또 한바탕 충돌한다. 이번에 철수가 사촌 여동생 얼굴을 세게 밀면서 순이가 넘어져 울음을 터뜨린다. 순이 엄마가 옆방에서 달려와 보니, 철수와 영희 오누이가 놀란 얼굴이지만 ‘싸울 태세를 갖춘 채’ 바라보고 있고, 순이가 바닥에 엎어져서 큰 소리로 울고 있다.
이모: 왜들 그러니? 무슨 일이야?
순이: 철수 오빠가 내 얼굴을 때렸어어엉!
이모: (철수에게 화난 눈길을 돌린다) !!!
영희: 순이가 티브이를 켰는데 오빠가 다른 채널로 넘기니까 순이가 또 넘기고, 그러자 오빠가 순이를 밀었어요… 이렇게… (장면을 재연한다.)
이모 (화가 나서 철수에게): 얼굴을 세게 밀쳤다고?!
철수: 네.
이모: 사람 얼굴을 어떤 경우에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건 알아?!
철수: 알아요!
이모: 얼굴을 때리는 건 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이란 걸 알아?!
철수: 알아요!
이모: 알면서도 그렇게 했구나. 일부러 그런 거야.
철수: (도전적인 말투로) 네, 일부러 그랬어요! (그러고는 달아난다.)
15분쯤 지나 순이의 울음소리가 또 새롭게 들린다.
"오빠가 나를 방에 못 들어오게 하고는 내 인형들로 뭔가를 하고 있어.“
이모가 방에 들어가 보니, 철수가 이미 없어졌다. 인형들 옷이 찢겨져 나뒹굴고 순이가 가장 아끼는 인형이 사라졌다. 순이가 울면서 ”내 인형 어디 있어? 돌려줘!“ 하고 요구하자 철수는 ”몰라, 난 건드리지 않았어“ 하고 대꾸한다.
이모는 철수의 지나친 행동을 알리기 위해 애들 부모가 얼른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모는 철수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다들 있는 자리에서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철수와 따로 얘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화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철수가 사실대로 솔직하게 얘기했다. (인형은 순이 침대 밑에서 금방 발견됐다.) 한데 얘기를 들어 보니, 철수는 자기가 버림받은 것 같아 불행하며 ‘다들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낀 것이었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도 그맘때 불쾌한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철수가 뜻밖에 이모한테 사과하면서 덧붙였다. "나를 못된 애라고 여기지 말아 주세요. 그냥 최근에 내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을 뿐이에요." 이모와 순이는 일주일을 더 묵었는데, 아이들 관계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평온해졌다.
이 스토리는 규칙, 허용 한계, 처벌 등에 관한 물음을 많이 제기한다.
하지만 이것을 지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주제는 구두 권고와 훈계의 영향이니까. 비록 이모가 십대 아이에게 다른 사람 얼굴 건드리면 안 된다는 지적을 옳게 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 아이를 ‘바로잡거나’ ‘가르치지’ 못했고, 이어지는 적대감과 보복 행위만 야기했을 뿐이다.
이와 반대로, 아들의 얘기를 제대로 들을 줄 알았던 엄마의 노련한 대화는 신기하게도 아들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행동 규범이나 도덕에 관해 아이들하고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까? 그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이걸 아이들이 흥분한 상황이 아니라 차분한 상태에 있을 때만 해야 한다.
다음 경우에서 어른들의 전형적인 표현은 불에 기름만 붓는 격이다.
4. 조언, 해결책 제시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관련 포스트:
'Books > 자녀와 소통하는 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를 칭찬하지 말라(?) (20) (0) | 2019.08.13 |
---|---|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자동적 반응 12가지 (19) (1) | 2019.08.12 |
'적극적 듣기' 특성과 대화 규칙 (15) (0) | 2019.08.07 |
5과. 아이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 방법 (14) (0) | 2019.08.07 |
부정적 경험 맛보게 하기 (13) (0) | 2019.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