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화자에게 로고스가 빈약할 때 생기는 현상이며, 이런 경우 핵심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 어렵고 화자의 행동 촉구에 청중이 호응할 리 만무합니다.
로고스를,말하기에서는 ‘논리적 추론’이나 ‘추론에 기초한 논거’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리라는 단어가 나오면 흔히 메마르고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또 당신은 동적이고 재미난 화자가 되기를 원하고, 그래서 논리적 추론은 썩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한데 로고스는 청중이 이해하고 납득하도록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필요하고, 청중이 당신 스피치에 연역적 추리와 귀납적 추론을 무의식적으로(!) 늘 적용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을 청중에게 알리려 한다고 가정하지요.
* 새 다이어트 방법은 배고픔을 잘 못 느낀다고 주장한다. (전제 A) * 배고픔을 잘 못 느끼니 칼로리 섭취가 줄 것이라고 주장. (전제 B) * 칼로리 섭취가 줄어드니 체중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 (전제 C) * 따라서 새 다이어트 방법은 체중 감소에 좋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는 전제들이 옳다면 옳을 수밖에 없는 건전한 연역적 결론)
한데 이 얘기를 듣는 청중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 지금까지 내가 시도한 다이어트는 다 참담하게 실패했어. (전제 D) * 이 새 다이어트는 실패한 다이어트들과 비슷해. (전제 E) * 따라서 이 새로운 다이어트도 아주 신통치 못할 거야. (이것은 두 가지 전제에서 나온 합리적인 연역적 결론)
청자들은 자기네 (실패했다는) 감정적 경험을 기반으로 내린 결론에 워낙 크게 사로잡혀 있어서, 당신 결론이 잘 먹혀들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두 가지 상충하는 결론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청중은 당신 주장에서 결점을 찾으려고 들겠지요. 당신의 연역적 결론이 견실하다 해도, 청중은 당신의 전제들을 의심할 거예요.
* “다이어트 할 때마다 난 늘 배고픔에 시달리는 걸!” (전제 A의 역)
* “칼로리 섭취가 줄어도 운동량이 충분치 못해서 살이 찔 거야!” (전제 C의 역)
청자들이 내뿜는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 주장이 더 자연스럽고 강할수록 역풍이 순풍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요.
예를 들어, 당신 주장을 떠받치는 사실들과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과거에 실패한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이는 겁니다. 이것이 잘 되면, 전제 E라는 의심과 청중 대다수의 귀납적 추론을 확실하게 물리치게 됩니다.
흔히 간과하기 쉽지만 설득에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어요.
바로, 평범한 것들!
이는 널리 퍼져 누구나 자연스레 갖고 있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것이 가족의 결속을 강화한다고 A가 굳게 믿고 있다면, 그 평범한 것 때문에 당신이 A에게 저녁 클럽에 가입하라고 설득하기는 힘들 수 있어요.
이 평범한 것들을 스피치에서 활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평범한 일은 스피치에서 (언급되지 않은) 전제들처럼 이용할 수 있다. 2. 당신의 평범한 것들이 청중의 것과 다를 때, 그들의 것을 쓰라! 청중의 평범한 것을 당신의 전제처럼 이용할 때, 당신 주장은 훨씬 더 강해집니다. 아주 새로운 관점을 청중이 받아들이게끔 수고할 일이 없어요.
스피치에서 로고스를 키우는 원칙 세 가지를 들지요.
1. 이해할 수 있게 만들라. 어떤 주장을 펼치더라도, 쉽게 이해되어야 설득력도 커져요.
2. 논리적으로 만들라. 청중은 자기네 추론으로 당신 주장을 끊임없이 검증합니다. 당신의 전제들이 청중의 전제들과 상충되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해요. 바로 앞에서 살펴본 대로, 청중이 이미 믿는 전제들을 이용하도록 강구합니다.
3.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라. 구체적이고 특정한 사실과 사례에 기초한 전제들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에 기초한 전제들보다 더 빨리 수용되는 편이에요. 전제들이 더 쉽게 납득되면 결론과 주장도 더 쉽게 수용될 것.
선입견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아요. 당신의 전제가 약하다면 청중은 당신 주장을 쉽게 외면할 거예요. 반면에, 견고하고 논리적인 주장은 청중이 무시하기 힘들어요. 강한 로고스가 좋은 에토스며 파토스와 결합될 때, 아무리 완고한 청중이라도 당신의 생각과 주장을 숙고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실제에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어찌나 밥 먹듯이 하는지,이 러시아 극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이가 외려 독특한 사람일 것이라고 이렇게 일침을 놓는군요.
사기꾼과 비열한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이들에게도 자기네처럼 대하지만,
정직한 이들은 사기꾼한테도 정직하게 대할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협잡꾼들이 정직한 이들을 이기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이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승리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거짓, 거짓말, 속임수, 사기, 협잡… 비슷한 말을 더 이어 보세요.
당신은 거짓말을 자주 하나요? 자기기만이 가장 끔찍한 일이에요.
세상이 아무리 거짓과 협잡에 물들어 있다 해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니!” 하는 말과 마찬가지로,
오직 진실 안에서만 우리는 행복도 맛보고 삶의 의미도 깨치게 될 겁니다!
모든 생각의 표출이요 행동의 시발인, 우리네 말에서 진실을 제한다면 남는 건 무엇일까요?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어찌하여 뻔뻔한 거짓말을 그리도 태연하게 늘어놓는 것일까요?
스피치의 세 기둥이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맨 앞의 대화에서 알아봤습니다.
그 중에서 화자의 신뢰도와 진정성을 가리키는 에토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법>에서 에토스를 신뢰성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런 말도 했어요.
“우리는 성품이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믿는 것 같다.”
그이는 나중에 에토스의 정의를 좀 더 확대해서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누군가의 말에 더 솔깃하게 되는 듯하다”
하고 덧붙였습니다. 이를테면,
나이 차이가 크기보다 비슷한 연령대에 있는 사람의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이들하고는 ‘젊은 언어’로 말할 필요가 생겨요.
고대의 현자께서는 에토스의 정의에 (예를 들어, 정부 대표자 같은) 화자의 권위나 (예를 들어, 어떤 분야 전문가의) 평판 같은 개념은 넣지 않았어요. 그건 그이가 속한 시대에 스피치 역할이 현대에 비해서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아주 많은 형식의 스피치가 있고 화자에 대해서도 우리가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오늘날, 에토스 정의에 앞의 두 요소도 포함하는 것이 온당할 겁니다. 즉, 에토스란...
(청중이 인식하는) 신뢰성, (청중과) 유사성, (청중이 인정하는) 권위, (이야깃거리에 관한) 전문 지식 (평판) 같은 네 요소로 정의하면 무난하겠어요.
이제 각각의 특징을 살펴볼까요?
첫째, 에토스는 신뢰성
청중은 자기네가 믿는 사람의 말을 더 잘 받아들입니다.
이야기 주제와 크게 상관없이! 청중이 당신을 믿는다면, 그들은 당신이 하는 말이 거의 다 진실일 것이라고 기대해요. 당신의 도덕성이 훌륭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의 신뢰성은 당연히 커집니다. 이 도덕성은 정직, 윤리, 관용 같은 개념들로 측정이 가능해요.
덧붙여서, 만일 당신이 그런 개념이나 자질과 연계된 조직의 일원이라면 청중이 당신을 믿는 경향은 더 커집니다. 성직자나 소방관을 예로 들면 되겠지요.
둘째, 에토스는 청중과의 유사성
청중은 자기네와 동일시할 수 있거나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말을 더 쉽게 받아들여요.
앞의 신뢰성이 그렇듯이, 이런 요소 역시 이야기 주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따라서 청중의 어떤 특징을 당신이 공유하고 있다면, 아주 좋아요! 그렇지 않다 해도 청중에게 최대한 맞추면 됩니다. (이건 NLP에서 말하는 matching과 같아요.) 이런 문구를 기억해 두세요.
“당신이 청중과 유사하다면 청중은 당신 생각을 더 편하게 많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은 한밤중에 문밖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때 당신이 더 쉽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것과 똑같다.”
-아, 좋아, 알았어. 근데 청중과 뭘 공유해야 하는 건데?
좋은 궁금증이에요. 이런 면을 들어봅시다.
*나이, 젠더, 문화 -예, 중장년들로 구성된 청중은 젊은 화자보다 나이 지긋한 화자한테서 유사성을 보고 동질감을 더 크게 느낄 것.
*사회적, 경제적 위치 -빈부, 교육, 계층.
*출신 지역 -예를 들어, 도시야, 시골이야?
*커리어나 소속 -청중과 직업이 비슷해? 청중과 같은 조직원?
*개성 -화자는 분석적이야? 감정적? 차가워? 사교적이야?
셋째, 에토스는 권위
(선출된 공직자의) 공식적인 권위나 (달라이 라마의) 도덕적 권위처럼, 화자의 권위가 더 클수록 청중은 더 귀를 기울이고 설득되는 경향이 큽니다. 권위는 화자와 청중의 관계에서 나오며 대체로 인식하기가 상당히 쉬워요.
유형별로는,
--조직적 권위 (CEO, 매니저, 감독),
-정치적 권위 (대통령, 정당 지도자),
-종교적 권위 (신부, 목사, 승려),
-교육적 권위 (교장, 교사, 교수),
-연륜의 권위 (연장자) 같은 것을 봅니다.
한데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즉, 모든 화자에게는 (연설자, 발표자, 보고자, 강연자 등에게는) 화자라는 위상에서 나오는 권위가 부여된다는 점.스피치를 할 때, 당신은 종종 청중보다 더 높은 연단이나 무대에 나서고 마이크를 쓰거나 조명을 받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 한때를 통제하는 사람은 당신이고, 그래서 일시적인 권위를 지니게 됩니다.
넷째, 에토스는 평판 (전문 지식)
평판이란 당신이 스피치 주제에 정통하다는 점을 정충이 알고 있을 때 나옵니다.
평판이란 에토스의 네 가지 특징 중에서 얘깃거리와 직결된 것.
당신의 평판은 몇 가지 관련 요소들로 결정됩니다.
*실전 경험 -이 토픽을 몇 해나 연구하고 다루었나?
*토픽이나 개념에 근접성 -개념을 만든 사람이야? 관여했나? 아니면 3자에 더 가까운가?
*실제 성과 -저술, 논문. 블로그, 상품 등을 가지고 있어?
*사회적 인정 -무슨 상을 받았나? 기록을 세웠어?
그렇다면, 에토스의 이 네 가지 특징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에토스는 “당신에게 에토스가 있다, 없다”처럼 체크박스로 평가하기 곤란한 성질의 개념이에요. 그 범주나 습득하는 길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라리 미(美)라는 개념과 더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에토스의 네 가지 특징이 어떻게 결합하여 나타나는지, 몇 가지 예를 가지고 살펴봅시다.
*직원들에게 말하는 CEO
CEO에게는 조직 안에서 권위가 생기게 마련이고, 거기에는 흔히 회사에서 몇 년에 걸쳐 쌓아온 성공적 평판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다수 직원들과 썩 유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나이가 더 많고, 재산이 더 많고, 어쩌면 더 차갑고 분석적인 타입일지도 몰라요.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다른 직원들과 정직하고 성실하게 소통해 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CEO의 신뢰성은 대개 단단한 편입니다.
*국민에게 연설하는 대통령
그 어떤 직업보다도 대통령직에 있는 이의 권위는 더 큽니다. 그의 평판과 신뢰성은 일정 부분 당신의 정치 신념에 좌우될 거예요. 청중(국민)과의 유사성에서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서 높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설령 유사성이 높다 해도, 결국 그는 정치인이고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국민 다수와는 거리가 있는 계층에 속합니다.
*학생들에게 말하는 교사
어쩌면 신뢰도가 가장 높을지도 몰라요.
학습을 이끌고 평가를 주관하는 이를 믿지 못하면 어떡하겠어요?
그는 위치와 나이라는 측면에서 청소년들에게 권위도 있어요. 그가 학교에서 10년 넘게 가르쳐 왔다는 것은 전문성이 높다는 뜻이고, 많은 졸업생들한테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평판이 좋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그가 나이와 재산, 경력, 혹은 취향에서 학생들과 실제로 비슷하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에요.
우리가 살펴본 세 경우의 당사자들은 모두 여러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기 때문에 에토스가 상당히 큽니다. 특히 권위와 평판은 종종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애쓴 만큼 권위가 생겨요.)
반면에, 에토스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면 에토스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상충되는 것이 있으니까. 예를 들어, 어떤 청중에게 당신의 권위가 지극히 높은 경우, 청중은 당신과 동질감을 덜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요.
지금까지 에토스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에토스는 화자들에게 매우 중요해요.
에토스가 높은 화자에게는 청중이 첫마디부터 귀 기울이고 눈길을 집중하지 않습니까? 뭔가 귀중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여 열심히 들으려 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화자가 청중을 설득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그런 화자는 혹여 스피치 기법이 좀 숙련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가외의 이점을 많이 누리게 됩니다.
파토스나 로고스와 달리, 화자로서 당신의 에토스는 첫마디를 꺼내기 전에 이미 기본적으로 확립돼 있어요. 예를 들어, 스피치 주제에 정통한지 아닌지, 어떤 기업의 최고 경영자인지 아닌지 등. 하지만, 기본적인 것 외에 스피치에서 에토스를 확립하고 증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잠시 뒤에 알아보지요.
티브이 출연자들의 말하기를 통해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물리치면서 당신의 스피치 안목을 키우세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 * *
연초에 KBS 2채널에서 박승 선생의 경제 특강을 몇 차례에 걸쳐 방영했어요.
대학 때 부전공으로 경제학 서적들을 좀 들춰본 이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흥미가 돋았어요. 그런데 그 흥미라는 것이 잘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좀 채운다는 알량한 욕심에서만 발동한 것은 아니에요.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 웬만한 지식과 정보야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들만큼 어디에나 흔하게 널려 있지 않습니까? (단지, 허튼 것들을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해요!)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사람의 목소리를, 말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예요. 사람을 느끼고 알고 싶었던 겁니다. 더욱이 평소 막연하게나마 호감이 가고 공감이 들고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일면식도 없던 인물이 등장하는 마당에야!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 아니겠어요?
-그래서?!
하하, 그래서 좋았다는 얘깁니다. (좀 싱겁나요?)
-뭐가 좋았어?!
다 좋았어요. 말하기의 중요한 요소인 내용에 관해서야 내가 더 덧붙일 것은 없어요.
한미 FTA에 대한 언급 중 어떤 대목에서 나로서는 약간의 이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금방 접었어요.
‘흠, 내가 혹시 선생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지.’
이건 화자의 에토스가 높다는 뜻입니다. 에토스가 높을 때, 즉 정통한 권위와 좋은 평판을 지녀 신뢰도가 높을 때 설득력도 덩달아 커집니다. 파토스도 좋은 편이었어요. 열정이야 말할 것도 없고! 딱딱할 수도 있는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사용하는 어휘가 적절하고 발음에서도 딱히 꼬집을 게 없어요. 자세와 태도, 자신감, 침착성에서도 별 문제가 없어요. 목소리도 듣기 좋은 편이고, 연단에서 움직임과 제스처, 시선 처리도 괜찮고.
옥에 티라고 한다면…
열정이 큰 탓인지 어조가 전반적으로 약간 높은 편이었어요.
이건 고저, 강약, 완급의 조절 같은 목소리 운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화자의 호흡과 목에도 부담을 안깁니다. 그래서 간간이 숨을 고르고 목과 목소리를 다듬어야 하는 순간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면은 청자들의 주의를 흩트리는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열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높고 강한 톤으로 일관한다면 듣는 이들이 부담을 느끼기 쉽습니다.
목소리도 더 빨리 피로에 젖습니다.
길고 짧은 휴지를 적절하게 안배하면, 호흡 조절이며 주목 끌기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효과가 몇 배 더 커집니다. 이런 기술은 물론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습득됩니다.
주제가 아무리 진지하다 해도, 아니. 진지한 것일수록, 적절한 유머나 일화를 찾거나 궁리해서 섞을 필요가 있겠지요. 객석에서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눈시울을 적시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한 청자들과 더 많이 어울리는 게 좋습니다.
청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소극적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질문과 대답과 그에 대한 반응 같은 것에도 시간을 할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 * *
어조며 톤 얘기가 나온 이상 우리가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도올 선생에 관한 얘기인데, 그이가 실행한 많은 티브이 특강을 두고 스피치 비평 작업에 나서 봅시다. 그이의 견식과 내공과 혜안을 두고 우리가 이러니저러니 할 것은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소통과 스피치의 기술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그이는 스피치 내용 전개에서 초점을 잘 유지합니다.
개인적인 스토리나 조크 같은 것도 더러 동원해요.
청중과의 시선 접촉이 아주 훌륭해요.
제스처며 신체언어가 활발하고 스피치 내용을 보완해요.
철학이라는, 자칫 어렵게만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을 편한 어휘를 동원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요.
한마디로,
그이의 스피치에는 로고스와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한 만큼 다 담겨 있어요. 열정이야 하늘을 찌를 듯 하고! 이건 곧 전달 효과가 좋고, 설득력이 크고, call-to-action이 잘 된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개인 스토리와 조크 비슷한 것을 동원했다고 해서, 내가 아는 한, 청중이 편하게 웃음을 터뜨린 적은 많지 않은 듯싶습니다. 간혹 시선을 어떤 청자에게 너무 오래 고정하는 바람에 그 눈길을 받는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보입니다. 눈길을 잘 맞추는데도 청중과 밀접하게 연결됐다는 느낌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왜?
일방적이고 좀 고압적으로 보이는 태도와 분위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신체언어와 제스처, 표정 등이 활발한 상태를 넘어서 과하다 싶습니다.
셀프컨트롤이 필요합니다.
편하고 용이한 어휘는 바람직하지만, 속어나 비어는 역효과를 냅니다. 욕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화자의 스피치에서 요주의 대목은 바로 목소리 운용입니다.
(목소리의 4P에 대해서는 14단원을 보십시오.) 목소리 자체로야 아주 듣기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듣기 거북한 것도 아니에요. 듣기에 밋밋하고 단조롭지 않다는 것은 그이의 최대 강점이에요.
그런데 4P 중에서도 특히 피치(Pitch, 음성의 높이)에 주의가 쏠리지 않을 수 없어요. 열정과 의욕 때문이라 싶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소리가 너무 높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절정으로 치달을 때면, 뭐랄까요, 가성 같은 소리를 내면서 정상적인 목소리를 깨는 ‘초 절정 신공’마저 발휘합니다.
궁금증이 일어요. 왜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거지? 어떤 의도가 있는 걸까? 뭔가 노리는 효과가 있는 건가? 아니면, 한낱 악습관에 불과한 건가?
궁금증이 의아심으로 바뀝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하여 무슨 큰 득을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청자들한테서 거부감을 유발하기 십상이며, 그런 점을 지혜 많은 화자가 모를 리 만무할 텐데, 왜 그러는 건지 알지 못하겠다는 소리지요.
지금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께서 언젠가 ‘나꼼수’에 출연해 걸걸하고 걸쭉한 진행자들과 말씀 나누시는 것을 또 듣게 됐어요. 잠시 듣다가 요즘 젊은이들 표현처럼 ‘빵, 터지고’ 말았어요. 왜? 두세 평 됨직한 라디오 스튜디오 안에서 두세 명 상대와 대화를 하는데도 목소리의 높이와 크기며 어조는 이삼백 명 청중을 앞에 두고 말할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서 탄성이 절로 터졌어요. ‘야아, 정말 독보적인 존재로군…’ (물론, 늘 그렇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대화중에 제스처를 썼다면, 제스처 사용도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스처의 폭과 크기는 목소리의 세기며 높이와 대개 비례하니까.
청중 규모에 맞게 목소리와 제스처를 조절한다는 것은 굳이 스피치 기법을 들출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알고 수긍하는 상식이 아니겠어요?
<I have a dream>이라는 감동적 연설의 주인공인 마틴 루터 킹이
잠자리에 든 어린 아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도 같은 식으로 목소리를 연출했을까요?
사방 툭 트이고 온갖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오가고 뒤섞여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장터에서는, 손님들의 주목을 끌려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한껏 목청을 높일 필요가 있겠지요.
침을 튀기고 발을 구르며 요란한 신체언어를 동원할 필요도 있을 거예요.
히틀러에게서 신념과 열정을 빼면 남는 게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신념이 담긴 목소리와 그 열정이 깃든 표정과 제스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습니까?
그가 대중에게 어떻게 하여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지를 규명하려 시도한 끝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예닐곱 가지 요인을 듭니다. 개중 하나가 바로
“목소리와 감정적 뉘앙스를 완벽하게 조절하기.”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강연 같은 스피치는, 적지 않은 경우 대중 조작을 노리는 정치 스피치나 시장 장사꾼의 호객 행위와는 목표와 대상과 방식에서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게다가 우리에겐 이런 생각도 있어요.
즉, 일반적으로, 학식을 쌓는 것은 수양이며 일종의 수도 행위 같은 것이어서, 학식이 깊고 뛰어난 이들은 성품이 어질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생각이 깊어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행동과 말투에서 훈기가 돌아 사람들을 편안케 하며, 눈길과 목소리가 그윽하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게끔 만들기 마련이라는 생각도!! (모스크바에서 공부할 때 그런 학자들을 제법 보고 접했습니다.)
말하기의 3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에토스 키우기’에 비하면 훨씬 더 간단한 작업인 목소리 설비와 운용을 무시하거나 역행함으로써 청자들한테서 거부감이나 냉소를 유발한다면, 아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 * *
부처님 일생과 경전에 관한, 또 희망 세상 만들기라는 구호 아래 특히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법륜 스님의 동영상을 봅니다.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부드럽고 듣기 좋게 얘기하면서도 심심찮게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게 하는 화법에 관해서...
그 후보자들을 상대로 앞으로는 언어 검증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헌법기관인 대통령 직책을 수행중인 이의 스피치 전반에 관해...
토론을 비롯해 몇몇 티브이 프로그램 진행자들과 뉴스앵커들의 말하기 양태며 장단점에 관해...
또 몇몇 연극배우와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의 말하기에 관해서도 두루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까 염려하여 줄이렵니다. 나중에 어디서 어떻게든 적절하다 싶은 기회가 오겠지요.
티브이를 볼 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오르지는 않나요? 「“전국의 아나운서들이 내 아내를 잘 알아.” “무슨 소리야??” “아내가 티브이를 하도 자주 보니까!”」
사람이 아무리 풍모가 뛰어나고, 언변이 좋고, 글씨에 능하다 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 판단력(判斷力)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할 수 있는 능력.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 볼 때는 미모에 치중하고 남자 판단할 때는 ‘신언서판’을 기준으로 삼는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수사학(rhetoric)이 2500여 년 역사를 자랑한다면, 동양의 (중국의) 신언서판 개념이 본격 등장한 것은 그보다 1천여 년 늦은 당나라 때였다. 서양의 수사학은 중세 암흑 시대에 거의 연구되지 못하다가, 봉건제도가 붕괴하고 민주주의 개념이 싹트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근대에 들어 수사학에 가장 일찍 왕성하게 눈길 돌린 지역은 북아메리카 (미국). 이는 대중민주주의며 토론, 선거 유세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본새 가닥이 잡힌 달변가들 중에는 대체로 의로운 사람이 많다.
하지만 궤변(詭辯)을 잘 늘어놓는 사람을 가리켜 달변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사에 남은 위인들 가운데는 달변가가 많았는데, 오늘날 미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링컨이 상원의원 입후보 때 반대파의 더글러스와 유세전을 벌이던 중…
더글러스는 링컨의 약점을 잡아 비방하였다.
“링컨은 자신이 전에 경영하던 상점에서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팔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상원의원이 되겠습니까?”
이에 링컨이,
“더글러스 후보가 한 말은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의 최대 고객은 더글러스 후보였습니다. 저는 이미 그 가게를 떠났지만, 더글러스 후보는 지금도 그 가게의 단골로 남아 있습니다.”
당황한 더글러스가 덧붙이기를,
“링컨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의 이중 인격자입니다.”
이에 링컨은 천연스레 응수했다.
“더글러스의 말대로 제가 두 얼굴의 소유자라면 오늘 같이 중요한 날에 왜 이 못 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이 한마디로 유세전의 승패는 단번에 결정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링컨은 달변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글에 더 능했다. 단지, 생각의 정연함, 임기응변, 촌철살인, 적절한 조크 덕분에 그의 말하기가 돋보인 것.)
여럿이 무슨 계획을 잡는다거나 우리 행동을 규정하는 일도, 다 말로써 이뤄집니다.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과정은 현실을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런 인식도 바로 언어 덕분에 충족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이렇게 인식한 것을 사람은 말로써 각인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