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우리는 그 누구한테도 언성을 높이지 않아야합니다. 충돌이 심각하지 않은 것일 때는다른 사람이 자기 입장을 변명하고 해명할 기회를 주어야합니다. 동료들이나 부하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어떤 한 사람의 실수를 지적하고 나무라고 훈계하는 짓은 피해야합니다.
이런 표현은 자제합시다.
“당신 얘기를 들으면 역겨워.”
“당신은 정말 나를 짜증나게 하는군요.”
“입 닥치고 있어.”
“너 때문에 난 지쳤어.”
“당신과는 대화할 의미가 없어, 차라리 벽에 대고 말하는 게 더 낫지…”
“앞으로 당신하고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는 게 좋겠어.”
우리가 피해야 할 표현들을 더 많이 적어 보세요.
물론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겠지요.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세요.
앞의 목록 중에서 마지막 어구에 특히 주목합시다. 어떤 경우에도 저런 말은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신뢰할 수 없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과는 물론 접촉을 줄일 수 있다 해도, 그런 표현은 절대 입 밖에 내면 안 됩니다! 왜?
왜냐하면, 서로 간에 놓인 가교를 아예 불살라 버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생에는 아주 다양한 면이 있어서, 오늘 용인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내일은 우리 기준이 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과 소통을 끊기로 작정했다면, 그건 당신 권리에요. 그 사람을 거부하는 이유가 한둘, 두셋 떠올라요. 그러나 상대가 화나게 한다 해도 좀 더 재치 있게 전략적으로 처신하면 어떨까요? (이걸 영국 사람들이 특히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마음에 안 들고 불쾌한 것이 다 조금씩 누그러들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문을 쾅 닫거나, 고함치거나, 너하고는 더 이상 상종도 않겠다고 다짐하지 말아요.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런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상대가 (친구, 동료, 가족, 부하, 상사가) 아니라 당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관계를 복구하기가 더 쉬워질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그런 결렬의 목격자들이나 단절한 상대 등 다른 이들 눈에 우스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우리네 옛말을 꼭 기억합시다.
“침 뱉은 우물 다시 먹는다!”
이 주제로 4-5분 길이의 스피치 원고를 만드세요.
그걸 녹음하세요.
그리고 처음엔 친한 사람들 앞에서, 그 다음에는 동료들 앞에서, 또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당신 보기에 적절하게 처신하지 않고, 당신이 가볍게 한마디 얹고 싶을 때 발언해 보세요.
차분하고 명확하게, 서둘지 말고 말하세요.
그런 생각이 지금 막 당신한테 떠오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외워둔 말을 듣는 것보다는 즉석에서 떠오른 생각을 듣는 것이 늘 더 흥미로우니까요.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이 있어요. 효과적인 오프닝, 흥미로운 전환, 다른 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사례들, 예기치 않은 결어, 이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물음과 행동 촉구가 있으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리고 그이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질을 나열해 보세요. 예를 들면, 상대방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적절한 반응을 보일 줄 안다, 자신의 얘기도 깔끔하게 잘 표현한다, 등등.
다음에 소개하는 소통 원칙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 “따분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상대방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네, 이것도 유쾌한 대화 상대가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상대방 상태가 어떤지 충분히 알 필요가 있어요. 지금 내 독백을 들어줄 만한 컨디션인지 아닌지, 내가 혹시 상대를 방해하는 건 아닌지, 상대가 내 말을 듣기 원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이야기 중에도 우리는 간간이 ‘혹시 내 말이 언어 스팸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유쾌한 대화 상대는 듣는 이들에게 언어 스팸을 절대 퍼붓지 않습니다. 적절하거나 즐거운 관심을 일으키는 실질적 정보만 제공합니다.
“많은 내용을 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현명한 사람이다.” - 아리스토파네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풍자가
간결하고 명료하게 말하기, 이것은, 예를 들면, 취업 면접에서도 요구되고 구직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 “상대방의 말을 함부로 가로채지 않는다.”
정 필요하다면 완곡하게 청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혹은 “한 말씀 드려도…”
‘미안하지만’ 하고 운을 떼는 건, 상대의 말을 막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뜻이에요. 그럴 때, “아니, 안 돼!” 하면서 거부하고 자기 말을 계속하려고 드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자기 말이 잘렸다 해도 불쾌한 느낌을 거의 전혀 받지 않습니다. 사람 심리가 그렇습니다.
☞ “자기자랑을 하지 않는다.”
이건,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입니다. 이런 경구가 있어요.
“자기자랑이란 예의 따위는 다 내버리고, 상대에게 ‘내가 당신보다 더 낫다’고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자기자랑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깔본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을 듣는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면접에서 “자기 장점에 대해 말해 보세요” 하는 요구를 받을 때는 자랑이 좀 필요해요. 자기피아르, 자기마케팅, 자기세일.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스스로 자랑하지 말고 칭찬받을 일을 다른 이들이 말하게끔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당신 업적과 달성을 당신의 일이 잘 알리도록 하라.”
☞ “자신에 관해 적게 말하고, 상대방 관심사를 더 많이 얘기하도록 한다.”
유쾌한 대화 상대는 (좋은 발표자, 보고자, 연설자, 강연자, 설교자는) 맑은 공기처럼 거의 눈에 띠지 않아요. 무슨 말이냐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신상이나 신변에 관해 잡다하게 늘어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일이나 공동 과제에 관해 더 많이 언급합니다.
자신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데에는 흔히 어떤 목표가 있기 마련이에요. 즉,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것인데, 대개는 듣는 이들에게 잘난체한다는, 불쾌한 느낌을 주기 쉽습니다.
☞ “유쾌한 대화 상대는 늘 인간적인 얼굴을 지닌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됨됨이를 판단하는 방법이 여럿 있겠지만, 이런 점도 좋은 기준이 됩니다.
즉, 그에게 이득이나 불이익을 전혀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투를 보는 거예요.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들로는 식당 주인에게 손님들이 될 수 있고,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직장 상사를 들 수 있겠어요.
우리가 그런 사람들한테는 흔히 잘 하잖아요? 친절하고 상냥하고 성심으로 대하려고 들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대한테는…
글쎄요, 대하는 투를 좀 달리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싶어요.
자신의 이득이 걸린 사람들한테는 살갑게 대하면서, 때로는 눈웃음까지 치고 허리를 연신 굽실거리면서도, 그렇지 않다 싶은 사람들한테는 무뚝뚝하고 쌀쌀맞게 대한다면… 그런 걸 가리켜서 우리는 어쩌면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인간적인 얼굴을 지닌 사람은 대화 상대들을 구분해서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고객이나 직장 상사만이 아니라 모든 대화 상대와 인간적으로 소통한다면, 바로 유쾌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원칙들도 한 번 더 생각하기 바랍니다.
어떤 것은 설명이 필요 없고, 이미 앞에서 얘기 나눈 것들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훈계조나 설교조로 말하지 않는다.” “대화 주제에 관한 얘깃거리를 가능하면 넉넉하게 준비한다.” “사소한 논쟁을 피한다.” “얘기를 독차지하려 들지 않는다.” “이상하고 부정적인 얘깃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 “소통에 성의 있게 동참한다.”
대화에서 가능한 한 삼가거나 주의해야 할 표현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이건 사실 그 자체로는 소소한 것이며, 우리가 평소 말을 할 때 별 생각 없이 자주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표현들이 왜 나오며,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알고 나면, 우리 대화에서 많이 사라지게 될 겁니다.
첫째, ‘솔직히 말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일상 대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어? 어제도 그런 표현을 두어 번 썼는데, 그게 왜 안 좋다는 거야?
왜냐하면… 그런 표현은 언어 구조상 듣는 사람에게 이런 뜻을 전달하는 셈이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내가 어쩌면 솔직하게 말하는 걸지도 몰라. 그러나 평소에는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하지.’
상대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즉, 그런 말은 표현 당사자가 진실을 감추거나 대화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는 신호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예리한 이들은 그런 말을 무의식적으로 알아듣고, 상대에게 솔직하지 못한 측면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바로 이런 측면을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늘 진실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만일 누군가가 “난 절대 거짓말 같은 건 안 해” 하고 말한다면, 그게 이미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말해서” 같은 말을 자꾸 뇌까림으로써 자신의, 또 인간의 거짓된 본질을 내비칠 필요는 전혀 없잖아요?
비슷한 이치에서 이런 얘기도 나와요.
심리학자들과 언어 전문가들은 “정말 사랑해”, “진정 사랑해”보다 그냥 “사랑해” 하는 말이 더 믿을 만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정말 사랑한다면, 굳이 정말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고. 정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정말, 진정’을 강조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렇습니다. 즉, 상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솔직하고 정직한 제안을 하면서도 앞에 나온 표현들을 습관적으로 입에 올린다면, 괜한 의심을 사서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그런 표현들은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에서 사소하지만 피해야 할 표현에 이런 것도 있어요. “내가 말했잖아!” “내가 뭐라고 했어?” 하고 소리치고 싶은 유혹을 참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경고한 실수를 상대가 저질렀다고 해도, 가뜩이나 힘든 상대를 그런 말로 두 번 죽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언자가 아니고, 1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 어쩌다 뭔가 짐작한 것이 맞았다 해서 으스댈 일은 아니에요.
또 “쉽게 말해서” 같은 표현도 피하는 게 좋아요. 물론 어려운 말이야 쉽게 풀어줄 필요가 있어요. 한데, 지금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도 “쉽게 말해서, 쉽게 말하자면”을 상투적으로 내뱉는 경우입니다. 이삼 분 얘기하는 동안 그런 어구를 두세 번 쓰는 사람들이 정말 있더란 말이지요.
“인류의 모든 역사는 소통의 역사”라는 말이 있고, “위대한 사건은 다 소통에서 비롯된다”고 말들 합니다.
우리네 모든 말과 억양, 제스처, 얼굴 표정, 그 밖의 언어 요소들은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 영향과 작용을 소통 심리라고 부릅시다.
이 소통 심리를 근거로 하는 소통 법칙이 많이 있어요.
그런 소통 법칙들을 알고 지킨다면 우리는 누구한테든 유쾌한 대화 상대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기피 대상이 되기 쉬울 겁니다. 먼저, 이런 법칙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하기 편한 게 아니라 청자가 납득하기 편하게 말해야 한다.”
듣는 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려면?
이런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1) 그 말에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2) 그 발언이 정연하고 조리 있고, 3) 목소리는 잘 조율돼 듣기에 좋고, 4) 발음을 명료하게 하고, 5) 억양을 적절히 조절하고, 6) 신나고 기쁘고 슬픈, 어떤 감정을 잘 담고, 7) 이야기 내용을 떠받치는 제스처를 활용하고, 8) 또 자신감을 내보이고 자신을 조절하기.
만약 어떤 사람이...
빤하고 진부하고 영양가 없는 얘기를 늘어놓고, 많이 떠들기는 하는데 뭘 말하는 건지 종잡기 힘들고, 톱밥이 낀 듯한 목소리로 너무 크게 말하거나 우물거리고, 발음이 분명치 않거나 틀리고, 시종일관 단조로운 가락이어서 듣기에 싫증이 나고, 축사와 조사를 똑같은 감정으로 말하고, 말의 내용과 연관된 손짓이나 움직임 하나 없이 입만 놀리고, 그것도 주눅이 들어 주뼛거리며 얘기한다면…
듣는 사람들이 다 딴 데로 고개를 돌리거나, 혹여 실례 될까봐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도 표정이 굳어지고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말의 요소들에 충실한 이야기와 그렇지 못한 이야기를 비교할 때, 전자가 후자보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더 큽니다.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더 흥미롭고, 설득력이 더 크고,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더 울린다는 뜻 아니겠어요?
그래서, 세일즈맨이라면 잠재적 구매자를 실제 고객으로 만들기가 더 쉽고, 조직의 리더라면 구성원들의 이해와 존경을 얻을 가능성이 더 크고, 정치인이라면 유권자들의 지지와 애정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FTA 같은 협상에 나선 외교관이라면 더 유리한 쪽으로 담판을 짓고, 취업 면접을 치르는 구직자라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더 커지겠지요.
이런 경구를 기억합시다.
“명료한 생각은 명료한 형식을 통한 명료한 말에서 드러난다.”
소통 심리는 우리가 인식하든 않든 객관적으로 우리네 말에 들어 있습니다.
태양이 광선을 발하듯이 말에서는 소통 심리가 발산됩니다.
소통 법칙을 하나 더 살펴볼까요?
“아니”, “아니요”, “노”… 이런 말은 가급적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소중한 생각을 말하면서 듣는 이들이 좋게 평가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자기 말을 상대가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맞는 말이야!” 하고 화답하기를 속으로 바라지요. 그런데 그 대신에 “아니, 사실은…” “아니요, 그것보다는…” 같은 대꾸를 종종 들어요. 즉, 수긍하는 대신에 반박하는 건데, 반박을 당한 사람은 또 무시나 거부 같은 느낌을 희미하게나마 맛보면서 반박한 사람에게 은연중에 거리감을 갖게 됩니다. 소통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나타나는 겁니다.
물론, 집요한 강청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하는 경우에는 확실하게 “노!”, “아니요!” 하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연애하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이런 단호함이 피임약보다 더 필요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 대화를 잘 들어보면, 이 소통 법칙이 자주 깨지는 걸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겁니다.
“아니, 내 생각은…”
“아니, 내 말을 들어봐.”
반박하려는 심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제법 단단히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동의할 때조차 “아니”, “아니요”를 습관적으로 앞에 걸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예요.
“아니, 그래.”
“아니, 맞는 말이야.”
“아니요, 당신 말이 옳아요.”
하하, 좀 황당하지 않은가요? 만일 당신이 그런 편이라면, 의식적으로 고칠 필요가 있어요. 특히 협상 자리 같은 데서는 ‘노’라는 말을 적극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유명한 경구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외교관이 ‘yes’라고 말했다면 그건 ‘may be’라는 뜻이고, ‘may be’라고 말했다면 그건 ‘no’라는 뜻이며, ‘no’라고 말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외교관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외교관 같은 자세를 조금은 지닐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중요한 소통 법칙을 하나 더 생각해 봅시다. 바로,
사람들과의 접촉과 소통에서 ‘너-부정 (You-Negative)’ 구조를 피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혹은 때론 경솔하여, 사람들 간에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요.
그럴 때 우리는 상대에게 어떻게 말을 하지요?
“그건 오해야. 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가요? 네, 대개 그렇게들 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내가 내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했나 봐.”
의미는 똑같아요. 뉘앙스의 차이는 아주 커요!
그리고 바로 이 뉘앙스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도 크게 달라집니다!!
“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하고 말할 때는, 상대를 탓하는 꼴이에요. 이 때문에 ‘너-부정’ 구조는 좋은 대화 방법이 못 됩니다. 상대보다는 나한테 책임을 돌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 전혀 아니에요.
전형적인 you-negative 표현의 예를 들어볼까요? 엄마들이 자녀에게 자주 이런 식으로 말을 합니다.
“철수야, 넌 어쩜 그렇게 말을 안 듣니?”
이렇게, 답답함이나 짜증 같은 부정적 감정까지 곁들인 부정적 표현을 접한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듣게 되기는 힘들어요. 사람의 심리상 그렇습니다. 혹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해요.
“철수야,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이건, 형태상으로는 ‘너-부정’ 구조를 피하기는 한 건데, 그 속내를 파고들면 결국 상대방을 탓하는 셈이어서, 역시 아이가 반감을 가지게 만들기 쉽습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대신에 이런 표현이 더 나을 겁니다.
“내 말에 설득력이 부족한가?” 혹은
“내가 알아듣게 설명하지 못했나 보다.” 혹은
“내 말이 미덥지 않은가?” 아니면, 하다못해,
“내 말이 틀렸나?”
이런 식으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형태를 취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무의식적으로라도 미안한 마음을 품을 수 있어요.
‘너-부정’ 표현은 상대한테서 반감을 사기 쉬워요.
그러다 보면, 대화 목표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신경까지 건드려서, 뜻하지 않게 해로운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말싸움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부정적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이 결국 흔히 듣게 되고,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겁니다.
거기(무지)에다 탐욕까지 갖추었다면… 이는 또 완벽한(?) 저주를 받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에 관해서는 더 왈가왈부할게 없겠지요.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등등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은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무지는 신이 내린 저주이며, 지식은 우리가 하늘로 오르게 하는 날개'라는 금언까지 있겠습니까.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려 노력함은 당연지사인데, 차고 넘쳐서 지나침 또한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물질에서든 정신에서든 별반 차이가 없는 듯싶습니다. 즉, 사치, 화려함, 분수 없음, 허영심, 공명심 따위가 다 조심하고 경계할 대상이 아니던가요?
아는 것이 많다고 과연 하늘에 오를 수 있을지 의문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는 것이 많으면 분별력과 안목과 지혜 같은 덕목을 싹 틔우고 가꾸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데 세상사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아는 것이 너무 많을 때,
특히 어떤 분야에서 소위 전문가 소리를 들을 때, 자칫 잘못하면 외려 <소통에 장애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왜?'를 알아보기 전에 한 가지 실험 사례를 소개하지요.
<실험>
스탠퍼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한 졸업생이 1990년 아주 단순한 게임을 하나 했다고 합니다.
즉, 피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쪽은 <Happy birthday> 같이 누구나 잘 아는 여러 노래의 리듬을 두드리게 하고, 다른 쪽은 그 리듬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아맞히는 것.
결과가 어땠을까요?
이 실험에서 한 그룹의 tapper들이 두드린 리듬의 노래는 모두 120개인데, 청자들이 정확하게 알아맞힌 곡은 3개였다는군요. 성공률 2.5%.
그런데…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청자들이 리듬만 듣고 어떤 노래인지 정확하게 짐작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에 tapper들은
"50%는 될 거야"
하고 응답했고 합니다. 달리 말해,
리듬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자기네 메시지가 둘에 하나는 (50%는)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예상(기대)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 메시지는 40개 가운데 한 개 꼴에 (2.5%) 불과했던 겁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해요.
누구나 다 잘 아는 노래의 리듬을 두드리는 이들은 그렇게 두드리면서 그 노래의 멜로디며 노랫말까지 속으로 떠올립니다. 당연하지요? 그러면서 '에이, 이런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그 리듬이 청자들에겐 해괴한 모스 부호처럼 들릴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제가 설명을 잘 했는지 모르겠으나, 전문 용어를 남발하는 전문가들 대다수가 저 tapper들과 같은 심리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에이, 이 정도를 설마 모를까. 이런 용어야 다들 웬만큼은 알겠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과도 조금은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혹은, 역지사지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을 거예요.
혹은, 더 나아가자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도…
그래서 본래 메시지를 잘 전달하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소통에 장벽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현상에 <지식의 저주>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배음, 언어 호흡>
제 경우에도 '아, 내가 지식의 저주를 받은 모양이야' 하고 느낀 경우가 제법 됩니다.
이를테면, <소통과 보이스, 스피치 세미나>에서 멤버들과 함께 얘기 나눌 때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이완하고 진동과 공명을 통해 여러 배음(倍音)을 키워야 합니다" 혹은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먼저 언어 호흡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데, 나중에 어떤 회원들이 그럽니다.
"아, 난 배음이 배에서 나오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언어 호흡이란 말은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 봐, 그게 뭐야?"
물론,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면 "아아, 그거?" 하고 이해들 하지만, 처음엔 사실 저한테도 '이 정도는 누구나 웬만큼 아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서 가볍게 지나친 경우가 있다는 얘깁니다. ㅜ.ㅜ
<여러 분야에서>
'고객 만족!'이나 '효율성 100% 달성!' 같은 훌륭한 경영 전략도
실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두루 알리고 교육하지 않는 한,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비즈니스에서,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은, 홍보자들과 고객들은, 본부와 현장 직원들은, 다 나름의 정보에 의지하지만 정보 불균형이 심한 탓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 실험에서 tapper들과 청자들 경우처럼 말이죠.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예를 들어, 건축가나 회계사, 엔지니어, 의사, 학자, 법률가들이), 전문 용어를 좀 입에 올려야 신뢰를 더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중요한 개념들의 격이 살지 않을까, 내가 좀 더 '폼이 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지식이 저주가 되는 까닭은,
전문 분야에서 새로운 영감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더 잘 떠올릴수록, 그것을 명쾌하게 전달하기가 더 힘들다는 데 있어요.
하지만 힘들다는 것일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지식의 저주를 떨치는 방법>
1. 나에게 지식의 저주가, 그런 인간적인 취약함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인정하기.
2. (말하기에서) 다방면으로 질문을 적극 장려한다.
사람들이 쓰는 단어를 주의 깊게 듣는다. 명료하고 단순한 질문에 명료하고 단순하게 대답하는 방법을 궁리한다. 전문용어가 과다하게 나올 때, “그걸 다른 식으로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하고 물으라. 혹은 “그 단어를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말했겠어요?”
3. 스토리텔링을 적극 장려한다.
우리 뇌는 이야기에 접속이 잘 되기 때문에, 스토리가 사실과 숫자보다 기억하기 더 쉽다. 실제 인물에 관해 실제 스토리를 동원하여 (구체적인 단어들로) 설명한다. (혹은 가공의 인물이 있는 가설적 상황을 이용해도 좋다.)
4. 독창적인 은유와 비유를 찾는다.
비유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낯선 개념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결해 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아아, 이건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 비슷해, 이제 감을 잡겠어.'
5. 스피치 원고를 저런 식으로 작성한 뒤에 소리 내어 읽어 본다.
6. 원고를 목표하는 청중 가운데 누군가에게 주어 읽은 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보게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겪지요?
외지인에게 길을 알려줄 때도, 어쩌면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을 겁니다.
2. “아니”, “노”, “아니야” 같은 말은 상대방의 귀싸대기를 갈기는 것과 진배없어요.
이 어구를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시 실제 소통 심리 법칙 가운데 하나.
“그게 왜, 어때서? 뭐가 문젠데?!” 하고 반문하게 되나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다 자기 생각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걸 소리 내어 드러낼 때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견해 같은 것을 말하면서 그것이 제대로 평가 받기를 기대하지요. 상대방이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네 말을 듣다가 탁자를 탁 치며 “오, 거 참 멋진 생각이야!” 등등의 반응 보이기를 마음속 깊이 기대합니다. (안 그런가요?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한데 우리네 기대와 달리 실제로 우리가 종종 듣는 대꾸는… “아니, 안 그래…”, “아니야, 그게 아니라…” 같은 말이에요! 즉, 용인과 수긍 대신 부정과 반박을 접하고, 그에 대응해 우리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정적이든, 어깃장 놓는 심정에서든) 부정적인 반응을 띠게 되며, 그 결과 상대방을 동조자가 아니라 경쟁자나 적수로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할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이런 점을 명심합시다.
“아니”라는 단어로 대답을 시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금방 한 말을 마치 마음에 안 드는 글에 가위표 박박 치고 꼬깃꼬깃 구겨서 휴지통에 내던지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점!
그런 걸 그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럴 때 진정한 대화 상대는 이미 사라지고 맙니다. 자리를 박차지 않는다 해도 마음은 이미 식어서 멀리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게 분명해요.
그런데…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는) “아니요”에도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양면성이 있기는 해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유익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해롭습니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요청을 거부하거나 누군가의 끈덕진 들러붙음을 잘라야 할 경우, 우리는 단호하게 “아니야!”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런 경우에 내뱉는 “아니요”는 우리와 한편이에요.
그러나 상대방에게 뭔가를 얻기 원하며 그에게 반감 같은 것을 야기하지 않고 싶다면, “아니요”라는 단어는 잊는 게 좋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답을 ‘아니’로 시작하는 것은 “무슨 헛소리야?”하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어요. 여기서 “아니요”라는 말은 논쟁 촉발 인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논쟁이란 건강한 토론보다는 종종 거친 입씨름으로 이어지며, 따라서 논쟁을 일삼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점도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잘 듣다 보면 이 단순한 소통 심리 법칙이 깨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대화하면서 사람들은 “아니”라는 단어로 말문을 트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니, 알겠는데…”
“아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 그게 아니라…” 등등.
사람에게는 반발과 반박하는 마음이, 맞서려는 기운이 강하게 도사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심리가 어찌나 강한지, 심지어 동의와 긍정을 표하면서도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에 그런 게 깔려서?) “노”라는 단어로 입을 뗄 정도에요!
“아니, 그렇게 돼야지…”
“아니, 자네 말이 정말 맞아.”
“아니, 난 당신 말에 동의해요.”
(대화와 토론 등에서 들리는, 이런 표현은 부지기수. 심지어 절대적인 동의를 표할 때조차 “아니, 그래!” 하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조금만 관심 갖고 귀 기울여 보면, 어떤 사람들 경우에는 이런 말과 표현이 아예 입에 배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어요!
아니, 정말 놀라운 것이,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언급이나 말에 모욕적인 귀싸대기를 안기며 반응하고는 금방 그 관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덧붙이는 거예요. 나이브하게도. (*근데 지금 여기서 "아니"는 지금 우리가 다루는 '아니'와 성격이 다릅니다. 국어사전의 뜻풀이 1번이 아니라 2번에 해당되지요?)
협상에서 “No”라는 단어와 관련된 유명한 아포리즘이 하나 있습니다.
외교관이 만약 "Yes"라고 말한다면 그건 실제로는 "may be"란 뜻이고,
"may be"라 말한다면 그건 실제로는 "No"라는 뜻이며,
"No"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에게 외교관 자질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파생된 버전이 하나 있어요.
여성이 ‘노’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쩌면’이란 뜻이고, ‘어쩌면’이라 말한다면 그건 ‘예스’라는 뜻이며, 만약 ‘예스’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녀가 숙녀가 아니라는?)
자연의 법칙을 모르면 자연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법칙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를 해안으로 내던지는 파도 같은 자연력을 웬만큼 조절할 수 있겠지요. 법칙을 무시한다면 삼각파도에 휩쓸려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을 테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약 소통 심리를 실제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면 대화를 컨트롤하게 되며, 무시한다면 대화에 전적으로 묶여서 상황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소통의 실제 심리에는 수많은 법칙들이 있어서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우며 그 누구도 다 알 수 없을 정도에요. 소통 심리의 많은 법칙이 앞으로도 또 발견되고 누군가가 정리해낼 거예요. 그리고 그 숱한 법칙들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을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몇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소통 심리의 법칙 몇 가지
1. “우리가 말하기 편한 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듣는 이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야 한다.”
만약-
-당신 말에 내용이 풍부하고
-말이 분명하며 정연하다면,
-만약 당신 목소리가 잘 조율돼 있고
-(조음과 발음인) diction이 정확하고
-억양이 감칠맛 나며 감정이 적절히 들어 있고
-제스처가 절제돼 있다면,
-만약 자신감의 징표를 내보이고 조절한다면…
이는 곧 당신의 public speaking이 그렇지 못한 스피치보다 훨씬 더 영향력 크다는 뜻입니다.
일대 일 대화에서는 상대방에게 (NLP의 개념과 용어를 빌자면) matching을 하세요.
그러면 상대에게 미치는 당신 영향력이 더 묵직해질 겁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과 아주 흡사하다면, 외양과 생각과 말투가 그러하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는 점을 알아둡시다. 달리 말해 당신을 자기 자신처럼 믿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세요! (*'염두하자' 식의 표현은 잘못된 겁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든) 이질감을 품게 만든다면,
그는 당신을 동조자가 아니라 적수로 보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해요.
크게 믿음이 안 가고,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썩 들지 않는 라이벌로 보기 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소통에서는 상대방 말에 (말투며, 제스처며, 내용에) 당신 말을 비슷하게 매칭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가 큰 목소리로 빠르고 격하게 말한다면, 당신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지요.
그가 차분하게 말하면 당신도 차분하게, 그가 유머를 좋아한다면 당신도 농담을, 그가 철학적 담소를 즐긴다면 당신도 그렇게 시도해 보는 겁니다. (이런 것이 만에 하나 잘 안 된다 해도 겁먹을 일은 전혀 없어요. 그냥 긴장 풀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취하면 됩니다.)
주의:matching을 한다 해서 머카크원숭이처럼 상대방을 액면 그대로 흉내 내는 건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