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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코른이 브리케 머리의 몸통 결합 수술을 준비하다




17. 라위노의 사설 병원 


스물세 살에 장밋빛 얼굴의 블론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의 샤우브는 ‘음모자들’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일단은 일의 전모를 상세히 밝히지 않고 친구들에게 그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만 설명했다. 샤우브는 명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 자기가 도울 일이 혹시 비난받을 짓은 아닌지 아르망에게 묻지도 않았다. 그는 아르망과 그 친구의 정직성을 믿었다. 

샤우브가 탄성을 내질렀다.

“신나는 일이야! 당장 스코로 가겠어. 화구를 들고 가면, 작은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거야. 간호사들과 간병인들의 초상화를 죄다 그리겠어. 괜찮은 아가씨들이 있으면, 연애도 좀 하지, 뭐.”

“필요하다면, 손도 내밀고 마음도 주게.” 

아르망이 맞장구치자 젊은이가 수줍게 덧붙였다. 

“그러기에는 내가 썩 잘 생기지 못했어. 하지만 필요하다면 나의 이두박근을 기꺼이 발휘하겠어.” 

새로운 동맹자가 길을 떠났다. 

“기억하게나. 최대한 신속하고 극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네.”

도웰이 마지막 당부를 했다.

샤우브는 사흘 뒤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다음 날 저녁 아주 풀이 죽어서 아르망에게 왔다.

“불가능해. 그건 병원이 아니라 석조 담장으로 둘러싸인 감옥이야. 직원들 아무도 담장 밖으로 나오지 않아. 식료품 공급 업자들조차 마당에도 들여놓지 않아. 관리인이 정문까지 나와서 필요한 것을 받아 가는 거야… 나는 그 감옥을 양 우리 주변의 늑대처럼 빙 둘러봤지만, 잠입은커녕 담장 안을 한 번 들여다보지도 못했어.” 


석조 담장 둘러친 감옥 같은 정신병원


아르망이 실망하여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샤우브, 자네가 재치와 유연성을 발휘하리라 기대했는데.”

그 말에 샤우브도 역시 짜증 묻은 소리로 대꾸했다. 

“그런 솜씨를 직접 발휘해 보시는 게 어때? 나도 그렇게 빨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지역의 한 화가와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은 그 지역을 잘 알고 병원 습속도 꿰뚫고 있어. 그의 말로는 그게 아주 특수한 병원이라는 거야. 알고 보니, 그 담장 안에는 범죄와 비밀이 수두룩해. 죽을 생각 없이 너무 오래 사는 일가친척들을 상속인들이 광인으로 몰아 거기다 집어넣고 뒤에서 후견인 행세를 한다는 거야. 또 미성년자들의 후견인들도 거기로 피후견인이 성년이 되기 전에 보낸다지? 이른바 후견을 계속하면서 그들 재산을 마음 놓고 주무르는 거지. 

그건 부자들을 위한 감옥이야. 불쌍한 아내와 남편, 늙은 일가친척, 피후견인들을 산 채로 감금하는 감옥 말일세. 병원 소유주는, 주임 의사이기도 한데, 고객들한테서 어마어마한 수입을 받는다는군. 거기 직원들도 급료가 짭짤하다네. 거기는 무법지대야, 불법을 저질러도 석조 담장이 아니라 금덩이가 막아주지. 거기서는 매수가 횡행해. 그런 여건에서 내가 스코에 일 년을 죽치고 앉아 있어봤자 병원에 발끝도 디밀지 못할 게 빤하지 않나?” 

“죽치고 앉아 있을 게 아니라 행동을 했어야지.” 

아르망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샤우브가 자기 다리를 과시적으로 들어 올리고 찢어진 바지 끝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씁쓸한 빈정거림을 담아 말했다.

“자, 보다시피 행동도 했네. 간밤에 담장을 기어올라 넘으려고 했거든. 그런 거야 식은 죽 먹기지. 그러나 담장 저편으로 뛰어내리자마자 송아지만한 개들이 달려들더군. 그 결과가 이거야… 원숭이처럼 날쌔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갈기갈기 찢겼을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널따란 정원 사방에서 경비원들의 호각 소리가 들리고, 손전등 불빛이 여기저기서 번쩍였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내가 그만 돌아 나오려고 했을 때 경비원들이 개들을 정문 밖으로 풀었어. 그 짐승들이 어떻게 훈련받았느냐 하면, 예전에 아메리카 남부 농장들에서 도주한 흑인들을 수색하려고 훈련시킨 개들하고 똑같다고 보면 돼… 


사설 정신병원 침입이 경비견들 때문에 무산되다.


아르망, 자네가 알다시피, 내가 단거리 경기에서 상을 얼마나 많이 받았나. 만일 내가 간밤에 그 빌어먹을 개들을 피해서 죽을힘을 다해 뛴 것처럼 늘 달렸다면, 아마도 세계 챔피언이 됐을 거야. 마침 저만치서 자동차가 달려오는데, 속도가 시속 삼십 킬로미터쯤은 될 거야. 그렇게 지나치는 자동차 발판에 가볍게 뛰어 올랐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거야!

“정말 환장하겠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한담?” 

아르망이 머리털을 곤두세우며 소리쳤다. 그리고 전화기로 달려갔다. 

”아르투아를 불러야겠어.“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르투아가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샤우브의 실패담을 대강 듣고서 그가 말했다. 

“그건 예견된 일이었네. 코른이 자기의 제물들을 허술한 곳에 둘 리가 있겠나?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한담?” 

그가 아르망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면으로 돌파해서 코른이 한 것처럼 주임의사를 매수한다?..”

“내 재산을 다 쏟아 부어도 좋아!” 

아르망이 소리쳤다. 

“그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네. 라위노 의사의 영리 기관은 그가 고객들한테서 받아 챙기는 거금과 고객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중요해. 그렇기 때문에 라위노가 벌써부터 짭짤한 뇌물을 먹고 있다면, 다른 어떤 조건으로도 그는 고객들의 이익을 팔아넘기지 않을 거야. 라위노는 자신의 평판을 훼손하기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사업 근간이 흔들리는 것도 바라지 않아. 앞으로 이십 년 동안의 수입과 맞먹는 거금을 일시에 받을 수 있다면, 혹시 우리 쪽으로 돌아설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한데 우리 재산을 다 모아도 그 정도는 되지 못할 것이네. 라위노의 고객들은 백만장자라는 점을 잊지 말게나. 그의 직원들 중 누군가를 매수하는 게 차라리 훨씬 더 간단하고 싸게 먹히지. 그런데 라위노가 직원들도 감금된 사람들 못잖게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야. 

샤우브 말이 맞네. 나도 라위노의 병원에 관한 정보를 웬만큼 수집했어. 거기는 외부인이 강제수용소에 잠입했다가 탈주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 그는 직원을 뽑을 때도 뒷조사를 철저하게 해서 주로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쓰고 있다네. 라위노는 법을 어기고 경찰의 눈을 피해 다니는 자들도 기꺼이 받아들여. 급료를 후하게 주지만, 일하는 기간에는 병원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지, 근데 그 기간이 십 년도 되고, 이십 년도 넘어.” 


“그렇게 자유가 없이 죄수들처럼 사는 데도 동의할 사람들을 그자는 도대체 어떻게 구하는 거지?”

아르망이 물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노후 보장에 끌리기 마련이네. 그들 대다수는 또 지금도 사는 게 팍팍하고. 물론 누구나 다 거기 생활을 견디지는 못해. 라위노의 병원에서도 아주 드물긴 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직원들이 달아나는 경우가 생기네. 바로 얼마 전에도 자유로운 생활을 갈망한 직원 하나가 도망쳤지. 한데 그날로 그의 시체가 스코 외곽에서 발견되고 말았네. 

지역 경찰은 라위노에게 매수돼 있어. 경찰은 그 직원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했네. 라위노가 시체를 거두어 자기 병원으로 옮겼어. 그 뒤 어떻게 했을지는 짐작이 가는 거야. 필경 시체를 다른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계약을 어기는 자는 누구든지 이런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을러댔을 게 분명해. 그런 형편이네.”


아르망이 아연실색했다. 

“자넨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나?”

아르투아 도웰이 흐뭇한 미소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샤우브가 다소 기분이 나아져서 말했다.  

“보라구,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잖아.”

“그 끔찍한 곳에서 로랑이 어떻게 지낼지 상상이 가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아르투아? 폭약으로 담장을 부술까? 지하 갱도를 팔까?”

아르투아가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를 친구들이 말없이 응시했다.

“유레카(Eureka)!” (* “알았어, 됐어.”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의 금 순도 측정법을 발견하고서 내지른 탄성)

문득 아르투아 도웰이 탄성을 내뱉었다.



18. ‘미친 사람들’ 


크지 않은 방, 정원으로 창이 나 있다. 사방에 잿빛 벽. 잿빛 침대 위에 푹신한 연회색 이불. 작은 흰 탁자와 두 개의 흰 의자. 

로랑이 창가에 앉아서 멍한 눈길로 정원을 내다보았다. 아마 빛깔 머리가 햇빛을 받아 금색을 띠었다. 그녀는 몹시 여위고 창백했다. 창에서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환자들이 산보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검은 테를 두른 흰 가운 차림의 간호사들이 어른거렸다. 

어슬렁거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로랑이 중얼거렸다.

“미친 사람들... 그리고 나도 미쳤고…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야! 내가 한 일이 겨우…”

그녀가 손가락들에서 소리가 날 만큼 두 손을 꼭 쥐었다.


사설 정신병원에 갇힌 로랑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코른이 그녀를 서재로 불러 말했다. 

“얘기 좀 합시다, 마드무아젤 로랑. 일자리를 얻기 위해 처음 왔을 때 우리가 나눈 대화를 기억하시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밖에서 절대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요?”

“네.”

“이제 다시 한 번 서약하면 모친을 보러 가도록 해주겠소. 보시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코른이 상대의 심리를 제대로 찔렀다. 

로랑이 극도로 당황했다. 몇 분 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로랑은 약속을 지키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난 뒤로는… 그녀가 주저하는 것을 보면서 코른이 그 갈등상태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폈다. 

마침내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네, 함구하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러나 당신은 나를 기만했습니다. 나한테 많은 것을 감췄어요. 만일 처음부터 사실대로 알려주었다면,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예.”

“솔직히 말해 주어 고맙소. 당신이 적어도 교활하게 굴지는 않는 덕분에 당신과 일하기가 좋아요. 당신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있소.”


그런 말은 로랑을 추켜세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코른은 평소 정직을 어리석은 것이라 여겨 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용감한 성격과 도덕적 불굴이 정말 훌륭해 보였다

‘빌어먹을, 이 젊은 여자를 제거하고 나면 무척 아쉬울 텐데.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드무아젤 로랑, 당신은 할 수만 있다면 즉각 나를 경찰에 고발할 거요? 그게 나한테 어떤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잘 알잖소. 난 중벌을 받을 거요. 그뿐 아니라, 나의 명성도 진흙탕에 떨어지겠지.”

“그런 점을 진작 고려하셨어야지요.”  


그 말을 짐짓 못 들은 체하면서 코른이 입을 놀렸다.

“이봐요, 마드무아젤, 편협한 도덕적 관점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시오. 만일 내가 아니라 도웰 교수가 오래 전에 땅 속에서 썩거나 화장터에서 재가 됐다면, 그의 업적이 됐으리라는 점을 알아두시오. 머리통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죽은 뒤의 창의가 아니겠소? 그걸 내가 만들어냈단 말이오. 그런 여건에서 도웰의 머리의 ‘생산물’에 내가 일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겠소? 게다가 내가 없다면 도웰은, 그러니까, 그의 머리는 발명을 수행할 수 없었을 거요. 뇌를 수술해서 어디에 접합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나는 브리케의 머리를 몸통과 ‘결합시키는’ 수술을 훌륭하게 끝냈소. 경추들을 거치는 척수가 잘 유착됐단 말이오.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웰의 머리와 코른의 손이 힘을 쓴 거요. 바로 이 두 손도...” 

코른이 자기 손을 보면서 내밀었다. 

“쓸모가 있다는 말이오. 이 두 손은 지금가지 백여 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당신이 내 머리 위에 복수의 칼을 늘어뜨리지만 않는 한 앞으로도 수백의 생명을 구할 것이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오. 우리의 최근 연구는 의학계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생명이라는 측면에서도 혁명적인 것이오. 앞으로 의학은 사람의 꺼져가는 생명을 복원할 수 있소. 수많은 위인들을 죽은 뒤에 소생시키고 인류 지복을 위해 그들의 삶을 연장시킬 수 있게 될 거란 말이오! 나는 천재들의 생명을 연장할 것이고,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아내에게 남편을 돌려주게 될 거요. 앞으로는 이런 수술을 외과의라면 누구나 집도하게 될 거요. 인류의 슬픔이 크게 줄어들게 될…

다른 불행한 이들을 희생해서...”


“그렇다 한들 무엇이 나쁘단 말이오. 두 명이 통곡하는 대신 한 사람만 울게 되는 거요. 두 구의 시체 대신 한 구만 있게 되는 거요. 이게 과연 거대한 전망이 아니란 말이오? 그런 것과 비교할 때 내 개인적인 일들은, 아무리 범죄적인 것이라 해도,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외과의의 영혼에 죄업이 있다 해도 병자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오. 당신은 나만 죽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내가 구할 수 있는 수천의 생명도 죽이는 꼴이 되는 거요. 당신은, 내가 완성하기만 한다면, 그 완성보다 천 배는 더 큰 범죄를 짓는 꼴이 되는 거요. 재삼재사 숙고하고 최종 답변을 들려주시오. 재촉하지 않으리다.” 

“대답은 벌써 드렸습니다.” 

로랑이 서재를 나갔다. 


그녀가 도웰 교수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가서 코른과의 대화를 자세히 전했다. 도웰의 머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거나 최소한 막연하게 대답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난 거짓말을 못하는 체질이에요.” 

“그래서 떳떳할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운명의 굴레를 씌었구려. 당신은 파멸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그 희생이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지 못할 거요.”

“난…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로랑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한테서 멀어졌다. 


자기 방으로 돌아와 창가에 앉으면서 같은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주사위는 던져진 거야.” 

‘불쌍한 마마.’ 그런 생각이 뜻하지 않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마마도 나처럼 행동했을 거야.’ 로랑이 스스로에게 답했다. 어머니한테 편지를 보내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소상히 알리고 싶었다. 최후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걸 보낼 방법이 없었다. 로랑은 죽을 수밖에 없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죽음을 차분하게 맞을 준비는 돼 있었다. 단지, 어머니가 걱정되고 코른의 범죄를 폭로하지 못한다는 것이 비통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그가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가 예상한 일은 짐작보다 더 빨리 벌어졌다. 


로랑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신경이 날카로웠다. 벽에 놓인 서랍장 뒤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경악하기보다는 그저 깜짝 놀랐다. 방문은 잠겨 있었다. 기척도 없이 방안으로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가 바스락거리지? 쥐가 다니나?‘

코른 일당이 로랑을 마취시켜 납치하다.


그 다음 일은 삽시간에 벌어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이어 삐거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발길이 재빨리 침대로 접근했다. 로랑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의 힘센 손아귀가 그녀를 베개로 짓누르고 얼굴에 클로로포름을 적신 마스크를 씌웠다.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가 온몸을 흔들며 본능적으로 저항했다.

“얌전히 있어.” 

그건 코른의 목소리였다. 수술할 때마다 듣던 목소리. 그리고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신병원에 있었다.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지독히 힘겨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위협을 코른 교수가 실행한 것이다. 코른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사람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복수를 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은 아무런 징벌도 받지 않았다. 마리 로랑이 자신을 희생했지만, 그 희생에는 아무런 결실이 따르지 못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그녀의 정신적 균형이 한층 더 깨졌다


그녀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 여기서도 코른의 영향력을 느꼈다. 

처음 두 주 동안은 방안에만 갇혀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무성하고 ‘얌전한’ 환자들이 어슬렁거리는 정원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됐다.

얌전한 환자들이란, 감금 상태에 저항하지 않으며 자기네가 완전히 정상이라고 의사들에게 증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병원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하지 않으며 탈출을 시도하려 들지도 않는 이들이었다. 병원 전체로 보자면 진짜 정신 이상자들은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으며, 그들조차도 병원에 들어와서 그런 상태로 바뀐 것이었다. 그런 목적을 위해 라위노는 ‘심리적 중독’이라는 복잡한 수법을 고안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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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파리로 가다! 


점심을 후닥닥 먹고 아르망이 테니스 코트로 달려갔다. 

조금 늦게 온 브리케는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아주 좋아했다. 이 사람이 자기에게 심어준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브리케는 여전히 그를 아주 흥미로운 남자로 보았다.

빈손으로 온 아르망을 보고 실망하여 물었다. 

“라켓은 어디 있어요? 오늘은 가르쳐 주지 않을 건가요?”


아르망은 벌써 며칠 동안 브리케에게 테니스를 가르쳤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아주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르망은 이 재능의 비밀을 브리케 본인보다 더 많이 알았다. 즉, 브리케는 테니스에 능숙한 안젤리카의 훈련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녀가 직접 아르망에게 스트로크를 몇 가지 가르쳐 준 적도 있었다. 

이제 아르망은 이미 훈련된 안젤리카의 몸이 아직 훈련되지 않은 브리케의 뇌에 일치하도록 이끌기만 하면 됐다. 즉, 신체의 익숙한 움직임을 그녀의 뇌에 각인시키는 것. 브리케의 몸놀림은 가끔 자신 없고 딱딱했지만, 비범하게 노련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건 그녀 자신에게도 뜻밖이었다. 예를 들어, 배운 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슬라이스를 기막히게 쳐서 아르망을 몹시 놀라게 했다. 이 노련하고 어려운 기술은 안젤리카의 자부심 중 하나였었다


브리케의 움직임을 보면서 아르망은 이따금 안젤리카가 아닌 사람과 경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바로 테니스를 치면서 아르망은 가끔 자기가 부른 대로 ‘소생한 안젤리카’에 대한 부드러운 감정을 느꼈다. 사실 이 감정은 그가 안젤리카에게 품었던 흠모며 애틋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브리케가 석양을 라켓으로 가리고서 아르망 곁에 섰다. 그건 안젤리카의 제스처들 중 하나였다.

“오늘은 게임을 하지 않을 거요.”

“어머나, 섭섭해라! 비록 발이 여느 때보다 더 아프지만, 그래도 칠 수 있는데.”

“나랑 같이 갑시다. 우린 파리로 떠날 거요.”

“지금이요?”

“당장.”

“하지만 옷도 갈아입고 짐도 좀 챙겨야 하는데.” 

“좋아요. 딱 사십 분을 줄 테니 준비해요. 우리가 자동차로 당신을 데리러 가겠소. 얼른 가서 가방을 싸요.”

‘정말 다리를 저는군.’

멀어지는 브리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르망이 생각했다.


파리로 가는 길에 브리케의 발이 장난이 몹시 아팠다. 그녀가 좌석에 누워서 나직이 신음을 토했다. 아르망이 최대한 위로하고 달랬다. 이 여행을 통해 그들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사실 그는 브리케가 아니라 안젤리카를 대하듯이 아주 정성 들여 돌봤다. 그러나 브리케는 아르망의 배려를 그저 자기 자신에게만 돌렸다. 

그 배려에 크게 감동하여 그녀가 감상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요트에서는 나를 아주 무섭게 했는데, 이젠 당신이 무섭지 않아요.” 

그러고는 웃음을 짓는데 그게 어찌나 매력적이든지 아르망이 답례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답변의 웃음은 이미 전적으로 머리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처음 웃음을 브리케의 머리가 웃은 것이니까. 머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파리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건 브리케를 한층 더 기쁘게 하고 그 사건의 당사자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통증이 극도로 심해졌을 때 브리케가 손을 내뻗어 말했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신이 알아준다면…”

그 뻗은 손을 아르망이 자기도 모르게 쥐고 입을 맞추었다. 브리케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아르망이 당황했다. 

‘젠장, 그녀에게 입맞춤한 꼴이 아닌가. 그러나 이건 그저 손이야, 안젤리카의 손이란 말이야. 하지만 통증을 머리가 느끼지 않는가, 즉, 손에 입을 맞추면서 난 머리를 가엾게 여겼어. 그러나 머리는 안젤리카의 발이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느낀다, 그러나 안젤리카의 통증을 브리케의 머리가 느껴…’ 

아르망의 머릿속이 완전히 뒤엉켰고, 그래서 더 당황했다. 

어색한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아르망이 물었다. 

“갑작스러운 출발을 친구한테는 어떻게 설명했어요?”

“설명이랄 것도 없어요.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익숙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녀도 남편과 함께 곧 파리에 도착할 거예요… 난 그녀가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녀를 나 있는 곳으로 불러 주세요.”


브리케가 빨강머리 마르타의 주소를 건넸다.아르망과 아르투아 도웰이 브리케를 작은 건물에 묵도록 결정했다. 드멩 거리 끝에 위치한, 아르망 아버지의 건물이 마침 비어 있었다. 

“공동묘지 옆이군요!” 

자동차가 몽파르나스 공원묘지 곁을 지날 때, 미신을 신봉하는 브리케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당신이 오래 살게 된다는 뜻이지요.” 

아르망이 위로하자, 미신을 잘 믿는 브리케가 물었다. 

“그런 징크스가 있단 말이에요?”

“아주 믿을 만한 겁니다.”

그 대답에 브리케가 안도했다. 


제법 아늑한 방에 놓인 아주 크고 고풍스러운 침대의 천개(天蓋) 아래 환자를 눕혔다.

브리케가 쿠션 위로 몸을 던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와 간병인을 불러야겠어요.”

아르망이 말했지만 브리케가 한사코 거절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신고할까 겁을 낸 것이다.

아르망이 자기 친구인 젊은 의사에게 발을 보이고 수위장의 딸을 간병인으로 부르자고 어렵사리 브리케를 설득했다.

“이 수위장은 우리 집에서 이십 년을 일하고 있어요. 그와 그 사람 딸을 전적으로 믿어도 좋아요.”


부름을 받은 의사가 아주 벌겋게 부어 오른 발을 살핀 뒤, 찜질을 처방하고 브리케를 위로하고 아르망과 다른 방으로 나갔다. 

“그래, 어떤가?”

아르망이 걱정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일단 심각하지는 않지만 주시해야 하겠네. 이틀에 한 번씩 내가 와 보겠어. 환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네.”


아르망이 아침마다 브리케를 찾아봤다. 한번은 방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간병인이 자리를 비우고 브리케 혼자 졸고 있었다. 아니면 그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상하게도 그녀 얼굴이 갈수록 더 젊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스무 살도 안 돼 보였다. 어찌 된 셈인지 얼굴 윤곽이 곱상해지고 더 부드럽게 변했다. 

아르망이 까치발을 하고 침대로 다가가 허리를 꺾고 오랫동안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안젤리카의 ‘유해’에, 혹은 브리케의 머리나 브리케 전체에 입을 맞추는 것인지 굳이 분석하지 않았다. 


브리케가 천천히 눈꺼풀을 올리고 아르망을 보았다. 창백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기분이 어때요? 내가 깨운 건 아닌가요?”

“아니요, 잠을 자는 게 아니었어요. 고마워요, 기분이 좋아요. 이 통증만 없다면...”

“의사 말로는 심각한 게 전혀 없답니다. 편안히 누워 있어요, 곧 나아질 거예요...”


간병인이 들어왔다. 아르망이 고개를 까닥이고 밖으로 나갔다. 브리케가 다정한 눈길로 그를 배웅했다. 

그녀의 인생에 뭔가 새로운 것이 들어섰다. 그녀는 더 빨리 회복되기를 바랐다. 카바레와 댄스, 샹송, ‘샤누아르’의 흥겹게 취한 술꾼들 따위는 다 의미와 가치를 잃고 어디론가 멀리 사라졌다. 행복에 대한 새로운 꿈이 그녀 가슴에 생겨났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 자신도 아르망도 의심하지 않는, ‘부활’의 가장 큰 기적일지도 몰랐다! 안젤리카의 깨끗하고 순수한 몸이 브리케의 머리를 젊게 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생각 자체를 바꾸었다. 카바레의 선머슴 같던 여 가수가 수줍은 아가씨로 바뀐 것이다.




16. 코른의 제물 


아르망이 정성 다해 브리케를 돌보는 동안 아르투아 도웰은 코른의 자택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둘은 필요하다면 아무 때고 브리케와 상의했다. 그녀는 저택과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아르투아 도웰은 행동에 더 조심을 기하기로 했다. 브리케가 사라진 뒤 코른이 경계를 한층 더 강화할 것이 분명했다. 그를 기습적으로 공격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을 상대로 이미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코른이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하지 않게끔 일을 꾸며야 했다.

도웰이 아르망에게 말했다. 

“우리는 더 교묘하게 움직여야 하네. 마드무아젤 로랑의 거처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야. 그녀가 코른과 함께 있지 않다면 여러 모로 브리케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로랑의 주소를 크게 힘 들이지 않고 알아냈다. 그러나 아파트를 찾아가서는 도웰이 실망했다. 로랑은 없고 그녀의 어머니만 있었기 때문이다. 점잖게 보이는 노부인은 옷차림이 단정했지만, 눈물을 달고 사는 까닭에 눈이 퉁퉁 붓고 사람을 잘 믿지 못했으며 비탄에 잠겨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마드무아젤 로랑을 볼 수 있습니까?” 

도웰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노부인이 의아하다는 눈길을 꽂았다. 

“내 딸을? 당신이 그 아이를 아나요?.. 당신은 누구시며, 내 딸을 왜 찾는 거지요?” 


아르투아 도웰이 로랑 부인을 만나 얘기 듣다.


“괜찮으시다면...”

“들어오구려.”

로랑의 어머니가 방문객을 작은 객실로 들였다. 부드러운 소파에는 레이스 달린 흰색 커버가 덮이고, 벽에는 젊은 여인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흥미로운 아가씨로군.’ 하고 생각하면서 아르투아가 자기를 소개했다.  

“내 성씨는 라디에입니다. 시골 의사인데, 어제 툴롱에서 왔습니다. 언젠가 마드무아젤 로랑의 대학 동기들 중 한 아가씨와 알게 됐습니다. 한데 그녀를 여기 파리에서 우연히 만나 마드무아젤 로랑이 코른 교수 곁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내 딸의 대학 동기는 이름이 뭐랍니까?” 

“리시라고 하지요!”

“리시, 리시라고!.. 그런 이름은 들은 적이 없는데.” 로랑 부인이 생각을 더듬고는 믿기 어렵다는 눈빛을 띄면서 물었다. “댁은 혹시 코른이 보낸 사람 아니우?”

“아니에요. 코른이 보낸 사람이 아닙니다.” 아르투아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분과 알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요. 그분은 내가 아주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일련의 실험을, 그것도 가장 흥미로운 실험들을 그분이 자택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폐쇄적인 사람이어서 자신의 성소에 아무도 들이려고 하지 않아요.“


노부인이 아는 바로 그 말은 사실과 흡사했다. 코른 교수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살며 아무도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다는 말을 딸한테서 몇 차례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거냐?’”하고 물었으나 딸은 막연한 대답만 했었다. “갖가지 과학 실험을 해요.”


“그래서...” 도웰이 말을 이었다. “먼저 마드무아젤 로랑과 인사를 나눈 뒤 어떻게 하면 내 소망을 이룰 수 있겠는지 도움말을 듣기로 한 겁니다. 따님이 분위기를 잡고 코른 교수와 미리 애기를 나누고 나를 소개해 집안으로 들일 수 있을 거예요.”

젊은이의 외모에는 믿음이 갔지만, 코른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불안감과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로랑 부인은 대화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지 몰랐다. 노부인이 무거운 탄식을 내뱉고,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누르면서 말했다. 

“딸은 집에 없다우. 병원에 있지요.”

“병원이라구요? 어느 병원입니까?”


로랑 부인이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슬퍼해온 탓에, 이제는 조심성과 경계심을 내던지고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낯선 손님에게 다 털어놓았다. 어느 날 딸이 귀가하는 대신 난데없이 편지를 보내 중환자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 코른의 자택에 머물 것이라고 알렸다, 딸이 보고 싶어 코른의 집을 찾아갔지만 헛수고만 했을 뿐이다, 그 뒤로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조마조하여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코른의 전갈을 받았는데, 딸이 신경쇠약에 걸려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그 코른이란 작자를 난 증오해요.” 노부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바로 그자가 내 딸을 미치게 만든 게라오. 딸이 그 집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난 몰라요. 딸이 입도 뻥긋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마리가 그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안다우. 내 딸 같지가 않았다우.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집에 돌아오고 입맛도 잃고 잠도 이루지 못했어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우.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잠결에, 어떤 도웰 교수라는 사람의 머리와 코른이 자기를 쫓아온다고 하질 않나… 

코른이 딸의 급료라면서 상당히 많은 돈을 우편으로 보내왔고, 지금까지도 보내오고 있다우. 하지만 난 그 돈에 손도 안 댔지. 건강은 그 어떤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건데… 난 딸을 잃었다우...” 


노부인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을 보면서 아르투아 도웰이 판단했다.

‘그래, 이 집안에는 코른의 공모자가 있을 수 없어.’ 

그래서 진짜 방문 목적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부인,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나도 적잖은 근거를 가지고 코른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나에겐 부인의 딸이 필요합니다. 코른과 어떤 일을 정산하고… 그의 범죄를 파헤치기 위해서 말이지요.”

로랑 부인이 기겁하여 비명을 질렀다. 

“아, 걱정 마십시오. 따님이 이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니니까요.”

“내 딸은 범죄 따위를 저지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겁니다.” 

노부인이 당당하게 대꾸했다. 


“나는 마드무아젤 로랑의 도움을 좀 받고자 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따님은 미치지 않았으며, 코른 교수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됐을 겁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왜냐면, 부인 말씀대로, 따님은 범죄를 저지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필경 코른은 따님을 위험한 존재로 보았을 겁니다.”

“한데, 자꾸 범죄, 범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범죄란 것이우?”

아르투아가 로랑 부인을 아직 잘 모르고, 그래서 혹시라도 노인이 주책없이 입방정을 떨까 우려하여 자세한 언급은 삼가기로 했다.

“코른은 불법 수술을 해 왔습니다. 그자가 따님을 어느 병원에 보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인 가운데서도 로랑 부인은 조리 있게 말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간이 울음을 터뜨리면서 대답했다.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을 코른은 오랫동안 나한테 알리지 않았다우. 내가 찾아갔을 때 집으로 들이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 했다우. 그는 공손한 답신을 보내서, 딸이 머잖아 회복돼 집으로 돌아갈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하려고 들었어요.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다시 편지를 보내 딸이 어디 있는지 당장 알려주지 않으면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병원 주소를 알려왔어요. 병원은 파리 외곽 스코에 있어요. 라위노라는 의사의 사설 병원입디다. 

아아, 거기로 한걸음에 달려갔다우! 근데 마당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지 뭐유. 그건 병원이 아니라 돌담으로 둘러싸인 진짜 감옥이라우... 문지기가 그럽디다. ‘병원 규정상 가족을 일절 들이지 않아요. 친엄마라 해도 안 돼요.’ 그래서 당직 의사를 불렀는데, 그 사람도 같은 말만 합디다. ‘부인, 가족이 방문하면 환자들의 안정이 깨지고 정신 상태가 더 악화됩니다. 따님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것만 말씀 드리지요.’ 그러고는 문을 쾅 닫았다우.”

“그쪽에서 그런 식으로 나온다 해도 내가 따님을 한 번 만나겠어요. 그녀를 아예 데리고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아르투아가 주소를 꼼꼼하게 적은 뒤 작별을 고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겁니다. 마드무아젤 로랑을 친누이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믿어 주십시오.” 

그러고는 또 갖가지 조언과 감사의 말을 한바탕 듣고 나서 방을 나왔다. 


아르투아 도웰이 당장 아르망을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며칠 동안 내내 브리케와 보내고 있었다. 도웰이 뒤멩 거리로 향했다. 작은 건물 곁에 아르망의 자동차가 서 있었다. 

아르투아가 단숨에 이층으로 올라가 객실로 들어섰다. 

“오, 아르투아, 큰일 났어.”

아르망이 사색이 되어 방안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검은 곱슬머리를 쭈뼛 세웠다.

“무슨 일인데?”

“아!..” 친구가 신음했다. “그녀가 달아났어…”

“누가?”

“누구긴, 마드무아젤 브리케지!”

“달아났다고? 아니, 왜? 좀 알아듣게 얘기하게!”


그러나 아르망은 좀체 입을 떼지 못했다. 여전히 방안을 바장이며 탄식하고 신음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십 분을 넘기고서야 입을 떼기 시작했다. 

“어제 마드무아젤 브리케가 아침부터 발의 통증이 심해졌다고 호소했어. 발이 상당히 붓고 퍼렇게 됐네. 의사를 불렀지. 그가 발을 살피더니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하더군. 괴저가 시작되어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거야. 의사는 집에서 수술하기가 힘드니까 병자를 즉각 병원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네. 그러나 마드무아젤 브리케는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어. 병원에서 자기 목에 난 상처가 눈에 띌까봐 겁을 낸 거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코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더군. 코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자기 집에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아서 이제 가혹하게 벌을 받았다는 거야. 그녀는 코른을 외과의로서 신뢰하고 있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살려내고 새 몸통을 준 바에야, 내 발도 당연히 치료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에게 이건 식은 죽 먹기에요.’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네. 난 그녀를 코른에게 보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꾀를 쓰기로 했지. 내가 직접 코른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어. 그러면서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한 거야. 그러나 브리케의 ‘부활’ 비밀이 알려지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야 했네. 즉, 아르투아, 자네를 생각한 거지. 그래서 아는 의사들과 상의하려고 한 시간쯤 나가 있었어. 그런데 돌아와 보니 벌써 없어진 거야. 내가 속이려고 했는데, 그녀가 나와 간병인을 멋지게 따돌린 셈이지. 침대 옆 탁자에 쪽지 하나만 달랑 남기고 떠났네. 바로 이거야, 보게나." 

  아르망이 아르투아에게 건넨 종이쪽에는 연필로 서둘러 쓴 단어 몇 개가 적혀 있었다.


        「아르망, 용서해 줘요. 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어요. 

        코른에게 돌아가요. 나를 찾지 말아요. 코른이 이전에 한 것처럼 

        나한테 다리를 붙여줄 거예요. 곧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다시 

        본다는 생각에 그나마 마음이 놓여요.」


“흠, 서명이 없네.”

“잘 보게, 필체를.” 아르망이 말했다. “좀 달라지긴 했지만, 이건 안젤리카의 필체야. 땅거미가 내릴 때나 손이 아플 때 안젤리카는 이런 식으로 더 굵게 휘갈겨 쓰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달아날 수 있었단 말인가?”

“아아, 그녀가 코른한테서 도망해 나한테 왔지만, 결국은 코른에게 돌아간 거야. 여기로 돌아와서 새장이 텅 빈 걸 보고는 간병인을 죽이고 싶었어. 알고 보니 간병인도 헷갈리게 됐더군. 브리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전화기로 다가가서 나하고 통화를 했다는 거야. 한데 그건 속임수였지. 나한테 전화한 게 아니었어. 브리케가 통화를 끝내고 간병인에게 설명하기를, 마치 내가 모든 것을 다 마련했으며 브리케가 신속히 병원으로 오라고 부탁했다는 거지. 그리고 간병인에게 자동차를 부르게 한 뒤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여기서 멀지 않아요.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나를 내려 줄 거예요.’ 하면서 혼자 떠난 것이네. 간병인은 그런 일이 다 내 지시에 따른 것이고 내가 훤히 알고 있다고 믿은 거야, 아르투아!”

아르망이 다시 심하게 동요하면서 소리 질렀다. 

“당장 코른한테 가겠네. 그녀를 거기에 있게 할 수 없어. 벌써 전화로 자동차를 불렀네. 함께 가세, 아르투아!”


아르투아가 방안을 바장였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브리케가 코른의 저택에 관한 정보를 이미 다 알려주었다고 해도, 그녀 자체가 코른을 파멸시키는 확실한 증거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향후 행보에서 그녀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얼빠진 아르망은 이제 나쁜 조력자이다.

아르투아가 화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이보게, 친구. 지금은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결속을 다지고 경솔한 행위를 삼가야 하네. 브리케는 이미 코른의 집에 있어. 엎질러진 물이지. 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야수를 우리가 미리 경계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을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브리케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코른에게 속속들이 고할까? 그녀가 탈주한 뒤 우리와 친해지고, 우리가 코른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따위를...”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할 수 있네.” 아르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요트에서도 그렇고, 그 뒤에도 비밀을 지키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한 걸. 그녀는 이제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동기에 의해서도 그렇게 할 걸세.” 

그 동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르투아는 이해했다. 아르망이 브리케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을 그는 벌써 오래 전에 알아차렸다.

‘가엾은 낭만주의자. 비극적인 사랑만 하는군. 이번에는 안젤리카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사랑도 잃겠어. 하지만 아직 다 잃은 것은 아니지.‘


“인내심을 가지게, 아르망. 우리 목표는 같아. 힘을 모으고 주도면밀하게 게임을 하는 거야. 우리에겐 두 가지 길이 있네. 코른에게 신속한 타격을 가하든지, 아니면 먼저 우회적인 방법으로 내 부친의 머리와 브리케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아내는 거야. 

브리케가 달아난 뒤 코른은 경계를 한층 더 강화하고 있지 않겠나? 만약 그가 내 부친의 머리를 아직 없애지 않았다면, 단단히 숨겨 두고 있을 거야. 머리는 몇 분이면 처리할 수 있어. 경찰이 문을 두드린다 해도, 그는 문을 열어주기 전에 범죄 흔적을 말끔히 없앨 거야.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못 찾네. 브리케도 ‘범죄의 흔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게, 아르망. 

코른은 불법 수술을 자행해 왔어. 어디 그뿐인가? 안젤리카의 시신을 불법적으로 빼돌렸네. 코른은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작자야. 내 부친의 머리도 아무도 모르게 되살리는 짓을 저지르지 않았나. 부친이 사후에 시신을 해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은 알고 있네. 하지만 당신 머리를 소생시키는 실험에 동의했다는 얘긴 들을 적이 없어. 

코른은 머리의 존재를 왜 모든 이들한테, 심지어 나한테까지도 감추는 건가?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거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브리케가 그에게 필요한 거지? 그자가 사람들을 상대로 생체 해부를 하는 건 아닐까, 브리케를 실험용 토끼처럼 쓰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러니까, 그녀를 더 빨리 구해야 하잖아!” 

아르망이 뜨겁게 반박했다. 

“물론 구해야지, 하지만 그러다가 죽음을 재촉해서는 안 되네. 우리가 찾아가면 코른은 그런 조치를 취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더 느긋한 길로 가는 거야. 이 방법을 더 효과적인 것으로 만들도록 하세. 마리 로랑이 브리케보다도 훨씬 더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다네. 로랑은 저택 구조를 알고, 머리들을 돌보았네. 어쩌면 내 부친과... 그러니까, 머리와 얘기를 나눴을지도 몰라.”

“그러면 로랑을 빨리 만나세.” 

“오호, 그녀도 먼저 탈출시켜야 하네.”

“코른의 집에 있나?”

“병원에 있어. 우리 같은 정상인들을 필경 돈을 먹고 환자라고 가둬 두는 병원들 중 하나일 거야. 작업을 제법 많이 해야 할 걸세, 아르망.” 

도웰이 로랑 부인과 만났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저주받을 코른! 그자는 주변에 불행과 끔찍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어. 나한테 걸리기만 하면…”

“그가 걸려들도록 하자구. 그러려면 가장 먼저 로랑과 만나야 하네.”

“당장이라도 거기로 가겠어.”

“그건 경솔한 짓일 수 있네.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우리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도록 할 필요가 있네. 일단은 다른 이들의 도움을 이용하세나. 우리 자신은 적에게 드러내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내새워야 하네. 확실한 사람을 찾아서 그가 스코로 가서 간호사들이며 간병인, 요리사, 경비들과 안면을 트게 하는 거야. 그들 중 하나라도 구워삶게 된다면, 일은 절반 성공한 셈이지.”


아르망이 조급하게 굴었다. 본인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 싶어 했다. 그러나 더 이성적인 아르투아의 말을 받아들이고 결국 조심스러운 작전에 동의했다.


“근데 누구를 부르지? 아, 그래, 샤우브가 있어! 젊은 화가, 얼마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왔지. 나랑 잘 알아, 좋은 사람이고 뛰어난 스포츠맨이야. 그에게는 이 일이 스포츠 같을 거야. 젠장, 내가 직접 나설 수 있다면 원이 없을 텐데.”

“이 일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나?” 

아르투아 도웰이 웃음기를 띠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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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백사장으로 몰려들었다. 가벼운 해풍에 흰색 요트들과 어선들이 저마다 돛을 살짝살짝 흔들었다. 머리 위 짙푸른 창공에서는 니스와 망통을 오가며 흥겨운 레이스를 펼치는 수상비행기들이 보기 좋게 흔들렸다. (*망통/Menton - 니스에서 북동쪽으로 30킬로미터에 위치한 프랑스 휴양지이자 항구)

흰색 테니스 복 차림의 젊은이가 대나무로 엮은 안락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의자 곁에는 테니스 라켓과 영국의 과학 저널 몇 부가 든 가방이 놓였다. 그 젊은이 옆, 커다란 흰색 파라솔 밑에 놓인 캔버스 앞에서는 그의 친구인 아르망이 부지런히 붓을 놀렸다.


고인이 된 도웰 교수의 아들, 아르투아 도웰과 아르망은 막역지우였다. 이 우정은 극과 극은 통한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음을 그 무엇보다도 잘 입증했다.

아르투아 도웰은 말수가 적은 편에다 냉철한 타입이었다. 정돈을 좋아하고 끈기 있게 체계적으로 작업할 줄 알았다. 졸업을 한 해 남기고 벌써 대학에서 생물학부에 자리를 받았다. 아르망은 진짜 남부 프랑스인답게 늘 어수선하며 뭔가에 쉽게 몰두하는 기질이었다. 한두 주일은 붓과 물감을 내팽개치다가 또 다시 작업에 들어서면, 그때는 그 어떤 힘도 그를 화가(畵架)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한 가지 점에서만 두 친구는 서로 비슷했다. 즉, 둘 다 재능이 있고 한 번 설정한 목표를 비록 목표에 이르는 길은 다르지만 달성할 줄 알았다. 한 사람은 차근차근 밟아서 나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사이를 두었다가 성큼성큼 도약했다.  

아르투아 도웰의 생물학 연구는 중진 학자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에게는 학계에서 눈부신 성장이 보장돼 있었다. 아르망의 그림들은 여러 전시회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개중 몇 점은 벌써 몇몇 나라의 유명한 갤러리들에 팔렸다. 


아르투아 도웰이 신문을 모래바닥에 내던지고는 안락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기울인 채 눈을 감고 말했다.

“안젤리카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어.”

아르망이 한없는 비탄에 잠겨 고개를 흔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건가?” 

도웰 교수의 아들 아르투아와 친구 아르망이 지중해 연안 망통에서 휴양하다

그 물음에 아르망이 자기 쪽으로 팩 몸을 돌리는 걸 보고 아르투아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아르망은 이미 열렬한 화가가 아니라 왼손에 팔레트 방패와 팔 받침 창을 들고 오른손은 붓 칼로 무장한 기사였다. 자신에게 치명적인 모욕을 가한 자를 무찌를 준비가 된 기사처럼 보였다. 


그가 무기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안젤리카를 잊다니! 그런 여인을 어떻게 잊을 수가…”

스르르 소리를 내며 갑자기 몰려든 파도가 그의 무릎까지 덮었고, 그가 우수에 찬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안젤리카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노래들이 사라진 뒤로 세상은 더 따분해졌어…”


안젤리카의 죽음을,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아르망은 <런던 안개 심포니>를 그리기 위해 갔던 런던에서 처음 접했다. 그는 안젤리카라는 가수의 재능에 심취한 팬일 뿐 아니라 또한 그녀의 친구요 흑기사이기도 했다. 그가 남부 프로방스에서, 중세 성들의 잔해 속에서 태어난 것이 그의 기질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젤리카에게 생긴 불행을 알고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창작의 최고 절정에서 난생 처음 ‘그림의 폭음’을 그만두었다. 캠브리지에서 런던으로 온 아르투아가 친구의 기분을 돌리려고 함께 지중해 해안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르망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백사장에서 호텔로 돌아와 그는 옷을 갈아입은 뒤 기차에 몸을 싣고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으로, 몬테카를로 도박장으로 향했다. 머릿속을 다 비우고 싶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육중한 건물 주변에는 벌써 사람들이 들끓었다. 아르망이 첫 번째 홀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서 한 판 노시지요, 손님!”

돈을 긁어모으는 데 쓰는 작은 부삽을 흔들면서 지배인이 손님들을 불러들였다. 

아르망이 발길을 멈추지 않고 다음 홀로 갔다. 벽마다 수렵과 질주, 펜싱을 하는 반라의 여자들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건 다 한마디로 도박 심리를 충동하는 것이었다. 그 그림들에서는 치열한 싸움과 흥분과 탐욕이 긴장감 있게 배어 나왔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도박판 주변에 모인,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더 많이, 더 날카롭게 그려져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뚱뚱한 상인이 붉은 솜털로 덮이고 퉁퉁한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돈을 끌어당겼다. 천식 환자처럼 힘겹게 숨을 쉬었다. 그의 두 눈이 돌아가는 구슬을 긴장하여 지켜본다. 뚱보는 벌써 거액을 잃고 지금은 복구하려는 기대로 마지막 돈을 거는 것이리라. 아르망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만약 마지막 판돈마저 날린다면, 살이 쪄서 흐느적거리는 이 사람은 자살자들의 거리로 가서, 거기서 인생과 마지막 정산을 할지도 모르지…


뚱보 뒤에는 옷차림 꾀죄죄한 노인이 백발을 흩뜨린 채 핏줄 불거진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손에는 수첩과 연필을 들고 이기는 숫자들을 적으면서 뭔가 계산을 하는데… 그는 벌써 오래 전에 전 재산을 다 날리고 룰렛의 노예가 되었다. 카지노 측에서 그에게 매달 많지 않은 용돈을 쥐어주고 있을 것이다. 생활도 하고 도박도 하라고. 그건 일종의 광고였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확률 이론’을 세우고, 행운의 여신이 얼마나 변덕을 부리는지 연구하고 있다. 자신의 추측이 틀릴 때면 화가 나서 연필로 수첩을 콕콕 찍고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다시금 계산에 빠진다. 짐작이 맞아 떨어지면 얼굴이 환해져서 고개를 옆 사람들에게 돌린다, “봐요, 드디어 나는 확률 법칙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어.” 하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종업원 둘이서 검은 비단 드레스 차림의 노부인을 부축하여 안락의자에 앉힌다. 주름이 많은 목에 보석 목걸이가 걸려 있다. 노부인의 얼굴은 더 이상 창백해질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비탄과 환희를 갈라놓는 비밀스러운 구슬을 보자 노부인의 움푹 들어간 두 눈에서 탐욕의 불꽃이 타오르고 반지를 줄줄이 낀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떨기 시작한다.

젊고 예쁘고 몸매 좋은 여성이 우아한 암녹색 의상을 입고 테이블 곁을 지나치다가 천 프랑 티켓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는 잃은 것을 확인한 뒤 태평하게 냉소를 짓고 다음 방으로 간다.


아르망이 레드에 백 프랑을 걸어 이겼다. 

‘난 오늘 이겨야 돼.’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천 프랑을 걸었지만 잃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엔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도박 욕구에 사로잡혔다. 

룰렛 테이블로 세 명이 다가왔다. 남자는 키가 크고 몸매가 좋고 아주 얼굴이 창백하고, 두 여자 중 하나는 빨강머리, 다른 하나는 잿빛 원피스 차림… 아르망이 마지막 여자를 흘낏 쳐다봤다. 뭔가 불안감이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지 알지 못하면서 화가는 잿빛 옷차림의 여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그녀가 취한 오른손 제스처 하나에 깜짝 놀랐다. 

아르망이 카지노에서 브리케 일행을 우연히 보다

‘뭔가 눈에 익어! 아, 그래, 안젤리카가 저런 제스처를 취하곤 했어!’ 

그런 생각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는 더 이상 룰렛에 낄 수도 없었다. 미지의 세 인물이 웃으면서 테이블을 떠나자, 아르망이 딴 돈을 테이블에서 거두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들 뒤를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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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아르투아 도웰의 객실 문을 마구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도웰이 화를 내며 실내복을 걸치고는 문을 열었다. 

방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선 사람은 아르망이었다. 그가 피곤에 지쳐서 안락의자에 털썩 몸을 던지고는 말했다. 


“미칠 것만 같네.” 

“무슨 일이야, 친구?” 

도웰이 놀라서 물었다. 

“뭐냐면… 자네한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어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카지노에 있었네. 처음엔 따다가 돈이 나갔지. 그런데 문득 어떤 여인을 본 거야. 그녀의 제스처 하나에 얼마나 놀랐든지 게임을 그만두고 그 뒤를 따라 레스토랑으로 갔어. 탁자에 자리 잡고 진한 블랙커피를 한 잔 시켰지. 신경이 너무 예민해질 때 커피를 마시면 난 늘 좀 안정이 되거든… 

그 모르는 여인은 옆 탁자에 앉아 있었네. 그녀 일행으로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남자는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었지만 썩 신뢰가 가는 타입은 아니고, 여자는 빨강머리인데 아주 천박해 보여. 그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즐겁게 수다를 떨었지. 잿빛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샹송을 부르기 시작했어. 들어 보니 목소리가 아주 불쾌한 음색에다 빽빽거리는 거야. 그러나 문득 그녀가 다소 낮은 저음을 가슴에서 내자…” 

아르망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르투아! 그건 바로 안젤리카의 목소리였단 말이네. 수천 개의 목소리 중에서도 난 그걸 알아들을 수 있어.”

‘가엾은 친구! 이렇게까지 상하다니.’ 

도웰이 그런 생각 끝에 상대 어깨에 손을 부드럽게 얹고 말했다. 

“그건 자네한테 그렇게 들린 것이야, 아르망. 정신 차리게. 어쩌다가 비슷한 목소리를 들은 거야…”

“아니, 그렇지 않아! 정말이네.” 아르망이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노래하는 여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네. 프로필이 또렷하고 사랑스러운 두 눈 하며 상당히 예뻐. 그러나 몸매가, 몸이 말이야! 아르투아, 만약 그 여자의 몸매가 안젤리카와 물방울 두 개처럼 닮지 않았다면, 난 악마한테 물려가도 좋아.”

“그래, 그렇다 치고, 아르망, 브롬을 좀 마시게.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눕게나.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지, 자네가 눈을 뜰 때면…” 


아르망이 힐난하는 눈길로 도웰을 응시했다. 

“자네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아직 그렇게 단정 짓지 말게나.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 아직 다 말하지 않았네. 그 여자가 노래를 부를 때 바로 이런 제스처를 손으로 취했어. 이건 안젤리카가 즐겨 취하는 제스처야, 이건 그녀한테 독특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제스처란 말일세.”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 낯선 여자가 안젤리카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모르겠네… 이것 때문에 내가 정말 미칠지도 몰라…” 아르망이 이마를 훔쳤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보게. 그 여자의 목에 정교한 목걸이가 걸려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목걸이도 아니야, 작은 진주가 박히고 넓이가 사 센티미터쯤 되는 고정 칼라야. 한데 가슴은 깊이 파여서, 그 사이로 어깨의 작은 반점이 보이는데, 그건 바로 안젤리카의 반점이란 말이야. 

목걸이는 마치 붕대처럼 보인다네. 목걸이 위로는 내가 모르는 여인의 머리통이, 아래로는 나에게 친숙하고, 그 선이며 형태 하나하나 내가 연구한 안젤리카의 몸이 있다는 것일세. 내가 화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아르투아. 나는 인체의 독특한 선들과 개인적 특성을 잘 기억한다네… 안젤리카를 모델로 스케치와 습작을 내가 얼마나 많이 그렸나, 초상화를 얼마나 많이 그렸나. 그러니 실수란 있을 수 없네.” 


“아니야, 자네가 말하는 건 불가능해!” 도웰이 외쳤다. “안젤리카는 정말이지...”

“죽었다고? 정말 죽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네. 그녀는, 혹은 그녀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리고 이제…”

“자네가 안젤리카의 되살아난 시신을 만났다고?”

“오-오!..” 아르망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바로 그렇게 생각한 거네.”

도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바장였다. 이제 더 이상 잠을 청하기는 글렀다. 

“우리 냉철하게 판단해 보세. 자네 말로는, 그 여자가 마치 두 가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는 거지? 하나는 자기 목소리, 그저 평범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젤리카의 목소리라는 건가?”

“낮은 음역은 바로 안젤리카의 독특한 콘트랄토야.”

아르망이 단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네. 자네는 사람이 고음을 성대 위쪽 끝으로, 낮은 음을 성대 아랫부분을 움직여 목구멍에서 뽑아낸다고 가정하는 건 아닌가? 소리 높이는 성대의 크기나 작은 긴장에 좌우되네. 그건 현악기 줄과 비슷해서, 더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현은 더 많은 진동과 더 큰 고음을 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만약 그런 수술을 한다면, 성대는 더 짧아졌을 테고, 그러니까 목소리가 아주 높아질 거라는 얘기지. 

그런데 사람은 그런 수술을 받은 뒤에 노래를 거의 할 수 없을 거야. 절단면이 성대의 올바른 진동을 방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목소리는 아무리 좋게 나온다 해도 아주 쉰 소리일 테고… 아니야, 이건 확실히 불가능해. 끝으로, 안젤리카의 몸을 ‘되살리려면’ 머리가 있어야 하네, 누군가의 몸통 없는 머리가...”

도웰이 문득 말을 멈췄다. 아르망의 가정을 어느 정도 입증하는 뭔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르투아 도웰은 아버지의 몇몇 실험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다. 도웰 교수는 죽은 개의 맥관(脈管)에 섭씨 37도까지 데운 자양분 액체를 아드레날린을 섞어 주입했다. 아드레날린은 혈관을 자극하여 위축되지 않도록 해 주었다. 이 용액이 어떤 압력 하에서 심장에 들어가자, 심장이 다시 뛰면서 혈액을 혈관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액이 조금씩 순환하면서 동물이 살아났었다.

그때 아버지는 분명히 말했다.

기관이 죽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관들에 혈액과 혈액에 담긴 산소 공급이 끊기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사람도 이런 식으로 살릴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르투아의 물음에 아버지가 흔쾌히 답했다.  

그렇지. 나는 소생술을 완성하려고 해, 언젠가 이 ’기적‘을 만들어낼 거야. 그래서 많은 실험을 하고 있단다.


아버지 말대로라면 시신을 소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몸통은 이 사람 것이고 머리는 저 사람 것인 시체를 되살리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 수술이 과연 가능할까? 그 점에서 아르투아는 확신이 없었다. 사실 그는 아버지가 조직과 피부를 이식하는 아주 과감하고 성공적인 수술들을 한 것을 직접 보았다.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아버지가 척척 해낸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안젤리카의 몸에 다른 머리가 있을 수 있다는, 아르망의 가정이 틀리지 않을지도 몰라. 아버지만이 그런 복잡하고 비범한 수술을 해내실 수 있었지. 그 실험을 조수들이 계속한 건 아닌가?’ 


도웰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머리나 시신 전부를 되살리는 것과 한 사람의 머리를 다른 사람의 몸통에 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도웰이 생각을 멈추고 물었다. 

“잿빛 원피스의 여인을 찾아내서 안면을 튼 뒤 비밀을 파헤치고 싶네. 자네가 도와줄 텐가?”

“당연하네.”

아르망이 도웰의 손을 굳게 쥐었다. 

그들이 향후 행동 계획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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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흥겨운 뱃놀이 


며칠 지나 아르망이 브리케와 그녀의 여자 친구, 장 등과 이미 알게 되었다. 그가 그들에게 요트를 타고 바다 유람을 하자고 제의했고, 제의는 쾌히 수락됐다.


장과 빨강머리 마르타가 갑판에서 도웰과 얘기 나누는 동안, 아르망은 브리케에게 밑으로 내려가 선실을 구경하라고 권했다. 그리 넓지 않은 선실이 두 칸인데, 그 중 하나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오, 여기에도 악기가 있다니!” 

브리케가 반갑게 소리쳤다.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폭스트로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요트가 파도 위에서 율동적으로 흔들렸다. 아르망이 피아노 곁에 서서 브리케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어떻게 조사를 시작할지 궁리했다. 

“아무 거나 한 곡 불러 봐요.” 

브리케가 선선히 응했다. 아르망에게 교태 어린 눈길을 던지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당신 목소리는... 좀 이상하군요.” 

아르망이 그녀의 얼굴을 예리하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당신 목구멍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두 여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브리케가 일순 당황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어색한 웃음을 날렸다…

“아, 그래요!..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어떤 음악 선생은 내 목소리가 콘트랄토라 하고, 다른 선생은 메조소프라노라고 했지요. 누구나 목소리를 나름대로 평가했고, 그렇게… 근데 난 얼마 전에 감기에 걸렸어요…”

그런 말을 듣자 아르망의 궁금증이 더 커졌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지? 내 짐작이 맞는다. 여기엔 뭔가 비밀이 있어.’ 

선실에서 브리케가 아르망에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아르망이 우울하게 입을 뗐다. 

“당신이 저음으로 노래할 때는... 내가 잘 아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아요. 그녀는 유명한 가수였지요. 가엾게도 기차 전복 사고로 죽었어요. 놀랍게도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녀 몸매는 당신 몸매와 너무나도 똑 닮았어요. 두 개의 물방울처럼… 당신 몸이 그녀의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대를 쳐다보는 브리케의 눈빛에는 이미 두려움이 감춰지지 않았다. 이런 대화를 아르망이 괜히 꺼내는 것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응수했다. 

“서로 빼닮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요. 그렇지만 그렇게 닮은 사람들을 난 여태껏 못 봤어요. 그뿐 아니라… 당신 제스처… 바로 손을 쓰는 제스처가… 또 있어요… 지금 당신은 흐트러진 머릿결을 다듬으려는 것처럼 손으로 머리를 쥐었지요. 그런 머리채가 안젤리카에게도 있었고, 그녀도 관자놀이에 흘러내린 머리를 그런 식으로 쓸어 올리곤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기다란 머리대신 최신 유행으로 짧게 잘랐군요.”

“예전에는 나도 머리를 길렀어요.” 

브리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얼굴이 창백하고, 손가락 끝이 유난히 떨렸다. 

“여긴 갑갑해요... 위로 올라가지요...” 

아르망이 역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그녀를 세웠다.

“잠깐만이요. 당신하고 얘기를 꼭 나눠야 합니다.”

그가 두꺼운 유리창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그녀를 억지로 앉혔다. 

“속이 안 좋아요… 난 뱃놀이에 익숙하지 못해요!” 

브리케가 일어나려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짧은 옥신각신 중에 아르망의 손이 우연히 그녀의 목을 건드리면서 목걸이가 약간 벗겨졌다. 그러자 장밋빛 절단면이 훤히 드러났다. 


브리케가 비틀거렸다. 아르망이 그녀를 간신히 부축했다. 그녀가 기절한 것이다. 

화가가 어찌할 줄 몰라서 호리병에 있는 물을 그녀 얼굴에 끼얹었다. 그녀가 곧 정신을 차렸다. 두 눈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렸다. 제법 오랫동안 둘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다. 브리케는 자신에게 징벌의 시간이 닥친 것 같았다. 남의 몸을 자기 것처럼 걸치고 다닌 대가를 지불할 무서운 시간이 말이다.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겨우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나를 망가뜨리지 말아요!.. 가엾게 봐 주세요…”

“진정해요. 난 당신을 망칠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이 비밀은 꼭 알아야겠어요.”

아르망이 브리케의 축 늘어진 팔을 들어 올려서 세게 눌렀다.

“말해요, 이건 당신의 몸이 아니지요? 이걸 어디서 났지요? 사실대로 고해요!”

“장!” 

브리케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아르망이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을러댔다. 

“한 번만 더 소리를 지르면, 이 선실에서 영원히 못 나갈 거요.”

그러고는 브리케에게서 떨어져 선실 문을 재빨리 잠그고 유리창을 꼭꼭 닫았다. 

브리케가 어린애처럼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망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울어도 소용없어요! 내 인내심이 고갈되기 전에 얼른 말해요!”

브리케가 흐느끼면서 입을 떼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난 유탄을 맞고 죽었는데... 하지만 그 뒤 다시 살아났어요... 머리 하나만 유리판 위에 놓였지요… 그건 아주 무서웠어요!.. 톰의 머리도 거기 놓여 있었고… 그런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요… 코른 교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살려냈어요… 나에게 몸통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지요. 그가 약속을 했고… 그러더니 어디선가 바로 이 몸을 가져온 거예요…” 

그녀가 자신의 어깨와 두 팔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바라봤다.  

“그러나 죽은 몸을 보고서는 거부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게 싫어서 내 머리를 시체에 붙이지 말라고 애원했지요… 이런 사실은 로랑이 증명할 수 있어요. 그녀가 우리를 돌보았으니까. 그러나 코른은 나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나를 마취시켰고, 깨어 보니 이런 모습이었어요. 난 코른의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 파리로 달아났다가 여기로 오게 된 거지요… 코른이 나를 추적할 것임을 알았어요… 제발 나를 죽이지 말아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이제 나는 몸통 없이 남기를 원치 않아요, 이건 나의 일부가 되었어요... 이렇게 경쾌한 움직임을 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단지 발이 아픈데...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겠지요… 코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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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횡설수설을 들으면서 아르망이 생각했다. 

‘이 여인한테는 정말 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코른이란 자는… 어떻게 안젤리카의 시신을 빼내서 이런 끔찍한 실험에 쓸 수가 있었단 말인가? 코른! 그래, 그 이름을 아르투아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코른은 아르투아 아버지의 조수였던 것 같아. 이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고 말리라.’

아르망이 엄격한 투로 말했다. 

“울음을 멈추고 내 얘기를 잘 들어요. 내가 당신을 돕겠어요. 하지만 이 순간까지 당신에게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켜야 합니다. 이제 여기로 올 사람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이오. 여기로 올 사람은 바로 아르투아 도웰이오. 당신도 그를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은 모든 면에서 내 말을 따라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어깃장을 놓는다면, 그 즉시 지독한 형벌을 받게 될 거요. 

당신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어요. 당신의 머리와 당신이 입수한 남의 몸을 그 어디에도 숨기지 못할 것이오. 기요틴 집행자들이 당신을 찾아낼 거요. 내 말을 똑똑히 들어요. 첫째, 진정하시고, 둘째, 피아노 앞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요. 위에서도 들을 수 있게끔 최대한 크게 불러요. 당신은 아주 즐거워서 갑판으로 올라갈 마음이 없는 겁니다.”


브리케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앉고는 겨우 말을 듣는 손가락들을 놀려 반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더 크게, 더 명랑하게.” 

아르망이 유리창과 선실 문을 열면서 지시했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노래였다. 씩씩하고 유쾌한 장조 풍으로 옮겨진, 절망과 공포의 비명이었으니 말이다. 

“건반을 더 힘차게 두드려요! 그래, 그렇게! 연주하면서 기다려요. 당신은 우리와 함께 파리로 갈 거요. 달아날 생각일랑 접으시오. 파리에서 당신은 안전할 거요. 우리가 당신을 보호할 수 있어요.”


아르망이 명랑한 얼굴을 하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요트는 오른편으로 기운 채 작은 파도를 따라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축축한 바닷바람이 상큼했다. 아르망이 아르투아 도웰에게 다가가서 다른 두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한 옆으로 데리고 와 말했다.

“밑에 선실로 가 보게나. 그녀가 나한테 한 얘기를 다시 그대로 말하도록 시키게. 그 동안 손님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어때요, 요트가 마음에 들어요, 마담?”

아르망이 빨강머리 마르타에게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장은 장의자에 널브러져서 경찰과 수사관들을 피해 멀리 도망 온 기쁨을 만끽했다. 더 이상 조바심 떨고 싶지 않았으며, 늘 긴장하는 생활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작은 상자에서 고급 코냑을 느긋하게 꺼내 들면서 꿈만 같고 명상적인 상태에 한층 더 빠져들었다. 그건 다 아르망 덕분이었다. 

빨강머리 마르타도 아주 만족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선실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노래를 들으면서 경쾌한 가락들 사이사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섞었다.


한 판의 연주와 노래에 진정된 것인가, 아니면 아르투아가 덜 위험한 상대로 보였기 때문인가, 어쨌든 브리케가 이번에는 자신의 죽음과 소생에 관한 사연을 좀 더 조리 있고 알아듣게 읊었다.

“그게 전부예요. 내가 과연 죄를 저질렀나요?” 

그녀가 이젠 웃음기마저 띠면서 묻고는 <내가 잘못인가요?>라는 제목의 짧은 샹송을 부르기까지 했다. 그 노래를 갑판에 있는 마르타가 따라 불렀다. 

아르투아 도웰이 부친 사진을 꺼내 브리케에게 보여주다

아르투아 도웰이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코른 교수 집에서 본 세 번째 머리에 대해 자세히 말해 봐요.”

“톰이요?”

“아니요, 코른 교수가 어떤 머리에게 당신을 보여줬다면서! 그렇지만…” 


도웰이 바지 주머니에서 서둘러 지갑을 꺼내 뒤지더니 사진을 빼서 브리케에게 보였다.

“말해 봐요, 여기 이 남자분이 당신이 코른 집에서 본, 나의... 아는 머리와 닮았나요?”

“네, 아주 똑같아요!”

브리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건반을 두드리는 것조차 그만두었다. 

“정말 놀랍군요! 어깨가 있네요. 몸이 달린 머리로군요. 이 사람에게 벌써 몸을 달아주었단 말이에요? 아니, 왜 그러세요?” 

그녀가 놀라움과 정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투아가 비틀거렸다.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간신히 자신을 추슬러서 몇 발짝을 떼고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왜 그러세요?”

브리케가 재차 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쌍한 아버지.” 

그러나 브리케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아르투아 도웰이 아주 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은 거의 차분했다.

“미안해요. 당신을 놀라게 한 것 같군요. 이따금 가벼운 심장 발작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제 다 지나갔어요.”

“근데 그 사람은 누구지요? 당신과 닮은 듯한데... 형인가요?”

브리케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당신은 그 머리를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갑시다. 우리가 은신처를 만들어 주겠어요. 그 누구도 당신을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언제 떠날 수 있겠어요?”

“오늘이라도. 한데 당신은... 내 몸뚱이를 떼어내지는 않을 건가요?”

도웰이 언뜻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아니지요… 당신이 우리 얘기를 잘 듣고 협조만 한다면. 갑판으로 올라갑시다.”

“아, 뱃놀이가 어떤가요?”

갑판으로 올라와서 도웰이 명랑하게 물었다. 그리고 노련한 뱃사람처럼 수평선을 응시하고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저으면서 덧붙였다.

”바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저기 수평선 위에 어둑어둑한 띠가 보이지요?.. 제 시간에 돌아가지 않으면…“

“오, 얼른 돌아가요! 난 바다에 빠져 죽고 싶지 않아요.” 

브리케가 농 반 진 반으로 외쳤다. 

돌풍의 기미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빨리 해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웰이 바다에 생소한 손님들을 그저 놀라게 한 것일 뿐이었다.

아르망이 점심식사 뒤에 ‘돌풍이 불지 않으면’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기로 브리케와 약속했다. 


호텔로 돌아오자 도웰이 말했다. 

“이보게, 아르망, 우리가 커다란 비밀의 흔적을 우연히 접하게 됐어. 코른이 누구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지 아나? 바로 내 부친, 도웰 교수의 머리야!

벌써 의자에 앉았던 아르망이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났다. 

“머리라고? 자네 부친의 살아있는 머리라고?! 하지만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이게 다 코른의 짓이야! 그자는… 내가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겠어! 이제 한 시라도 빨리 자네 부친의 머리를 찾아야 하네.” 

아르투아가 비감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아있는 상태로 찾아내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야. 부친은 몸에서 떼어낸 머리들의 소생 가능성을 몸소 입증하셨지. 하지만 그 머리들은 두 시간도 채 못 살고 죽었다네. 왜냐하면 혈액이 엉겨 붙었고, 인공영양 액체로는 생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아르투아 도웰은 부친이 숨지기 얼마 전에 <도웰 217>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코른이 <코른 271>로 개명한 약제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약제는 혈관에 주입되어 혈액의 응고를 완벽하게 막아주고, 그래서 머리가 더 오래 생존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살아 있든 죽었든 아버지 머리를 찾아내야 해. 얼른 파리로 떠나세!”

아르망이 짐을 꾸리려고 자기 객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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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11. 달아난 전시품 

 

브리케의 삶에서 마침내 위대한 날이 도래했다.

마지막 깁스붕대를 제거한 뒤 코른 교수가 그녀에게 일어나 보라고 했다.

그녀가 일어나서 로랑의 손에 의지하여 방안에서 걸었다. 동작이 확실치 않고 다소 위태로웠다.

가끔 그녀는 손으로 이상한 제스처를 썼다. 즉, 손이 어느 범위까지는 고르게 움직였는데 그 다음에는 멈칫하는 것이었다. 마치 다시 고르게 움직이기 위해 강요된 동작처럼.

그걸 보면서 코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그는 브리케의 발바닥에 난 크지 않은 상처에 다소 안도했다.

상처는 서서히 아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브리케가 아픈 발로 짚을 때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물었다.

며칠 지나서 브리케는 벌써 춤을 추려고 들었다.

그러다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떤 움직임들은 마음대로 되는데, 또 어떤 것들은 어려워요. 아마도 새 몸뚱이를 내가 아직 잘 통제하지 못하나 봐… 그래도 이 몸통은 아주 훌륭해! 이 다리를 보세요, 마드무아젤 로랑. 키도 늘씬하잖아요. 단지 목에 이 수술 자국이… 가려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 대신 어깨에 있는 이 반점은 정말 매력적이지 않아요? 이 점이 보이도록 드레스를 해 입을래요… 아, 내 몸뚱이에 아주 만족해요.”

브리케의 수다를 들으면서 로랑이 생각했다.     

‘자기 몸이라니! 아아, 안젤리카가 가엾어라!’

 

브리케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내면에 묶어두었던 것이 모두 단번에 겉으로 터졌다. 그녀는 로랑에게 드레스와 외투, 구두, 모자, 패션잡지, 화장품 따위를 요구하고 주문하고 부탁했다. 

 

몸을 결합한 브리케가 원피스를 입어 보다

 

잿빛 비단 원피스를 새로 지어 입히고서 코른이 그녀를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소개했다.

남성의 머리가 눈앞에 나오자 브리케가 이전 습관대로 교태를 부렸다. 그리고 도웰의 머리가 쉰 소리로,

“아주 좋소! 당신은 과제를 탁월하게 수행했구려, 동료. 축하하오!”

하고 말하자 코른이 아주 좋아했다. 

코른이 브리케와 팔짱을 끼고 새 신랑처럼 얼굴이 환해져서 방을 나갔다.

 

서재에 들어서자 코른이 정중한 기사처럼 예의 갖추어 말했다.

“편히 앉아요, 마드무아젤.” 

“어떻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교수님.” 

그녀가 난처한 듯이 눈을 내리깔다가 코른을 애교 있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나한테 많은 것을 주셨어요… 한데 나는 보답할 게 없네요.”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난 더 많이 보답을 받았으니까.”

브리케가 코른에게 더 반짝이는 눈길을 던졌다.

“아주 기뻐요. 이제 내가 떠나도록... 그러니까 진료소에서 나가도록 해주세요.”

“나가다니? 어떤 진료소에서?” 

코른이 얼핏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집으로 가야지요. 내가 나타나면 친구들한테 엄청난 센세이션이 될 거예요!” 

 

그 말에 코른이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려고 한다!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가장 복잡한 과제를 완성했고 아예 불가능한 일을 해냈는데... 그건 브리케가 자기의 경박한 친구들한테 센세이션이나 주려고 한 게 아니야. 브리케를 학술대회에서 공개함으로써 나 자신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려 한 것이지. 나중에야 그녀에게 자유를 좀 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절대로!’

 

“안됐지만 당신을 내보낼 수 없소, 마드무아젤 브리케. 당신은 한동안 내 집에서 관찰을 받으며 지내야 해요.”

“도대체 왜 그래야지요? 난 상태가 아주 좋아요.” 

그녀가 손을 흔들면서 반박했다. 

“그래요, 하지만 악화될 수 있소.”

“그때 다시 오면 되잖아요.”

“당신이 언제 여기서 떠날 수 있는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소. 내가 없었다면 당신 꼴이 어떠했을지 잊지 마시오.”

코른의 말투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벌써 감사를 표한 걸요. 그리고 난 어린 계집애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에요.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란 말이에요!

‘이런, 한 성질 하는군.’ 

케른이 내심 놀라서 말을 잘랐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일단은 당신 방으로 돌아가요. 존이 벌써 수프를 대령했을 거요.”

브리케가 입술을 빼물고 일어나더니 코른을 쳐다보지도 않고 나갔다. 

 

브리케가 로랑의 방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녀가 들어설 때 로랑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브리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오른손으로 아무렇게나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게 아주 우아하게 보였다. 

그런 제스처를 로랑이 벌써 여러 번 보면서, 그 제스처가 누구한테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안젤리카일까 아니면 브리케의 몸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안젤리카의 몸에 굳어진 운동신경이 과연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단 말일까? 

그런 질문은 로랑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생리학자들이 연구할 거야.’ 하고 생각했다. 

 

“또 수프네! 이 진료소의 음식은 진저리가 나요. 신선한 굴을 먹고 샤블리(*Chablis, 프랑스의 전통 백포도주)를 마시면 좋겠는데.” 

브리케가 변덕스럽게 말했다.

접시에 있는 맑은 수프를 몇 모금 삼키고 또 입을 놀렸다. 

“코른 교수가 금방 한 말인데, 앞으로도 며칠 동안 나를 집으로 보내지 않을 거라네요. 그러면 안 되지요! 나는 새장에 갇힌 새도 아닌데. 여기는 따분해 죽겠어요. 이건 아니야, 난 환한 불빛과 음악과 꽃다발, 샴페인 같은 게 다 어우러져서 흥청대는 삶을 좋아해요.”

그렇게 쉴 새 없이 지껄이면서 후닥닥 배를 채우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다가가서 아래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말했다.

“잘 자요, 마드무아젤 로랑. 오늘은 일찍 누울래요. 내일 아침에 나를 깨우지 말아요. 이 집에서는 시간을 때우려면 잠자는 게 가장 좋지요.”  

그러고는 고개를 까닥이고 자기 방으로 갔다.

 

로랑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편지는 다 코른의 통제를 받았다. 그가 얼마나 심하게 감시하는지 로랑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몰래 편지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설령 코른 몰래 편지를 보낼 수 있다 해도 강제로 구금돼 있다는 사실은 쓰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날 밤 로랑이 유독 잠을 설쳤다.

앞날을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오랫동안 뒤척였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

그녀가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려고’ 코른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보아하니 브리케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창문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새 드레스를 입어 보나?’ 하고 로랑이 생각했다. 그러더니 잠잠해졌다.

잠결에 어디선가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들린 듯하여 잠을 깼다. 

‘하지만 내 신경은 끄떡없을 거야.’ 생각하고 다시 새벽잠에 깊이 빠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브리케의 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로랑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머리는 이전처럼 음울한 모습이었다.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에 ‘몸통을 이식한’ 뒤 톰은 한층 더 우울해졌다. 그는 자기한테도 새 몸통을 빨리 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하고 요구하다가 결국엔 거친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를 달래느라고 로랑이 꽤나 애를 먹었다.

머리의 아침 치장을 끝내고서 로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도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도웰은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삶이란 정말 이상한 물건이오! 불과 얼마 전에 난 죽기를 원했다오. 그러나 나의 뇌는 여전히 작동하고, 그저껜가는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 생각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의학계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텐데. 그걸 코른에게 알렸더니, 오오, 그의 두 눈이 어떻게 불타오르는지 아가씨가 봤어야 하는데. 그의 눈앞에서는 동시대인들이 감사하여 세운 자신의 동상이 어른거렸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아이디어를 위해, 곧 나를 위해 살아야 하오. 사실 이건 무슨 멍에 같은 게지요.” 

“어떤 아이디어인데요?”

“내 뇌에서 윤곽이 더 뚜렷하게 잡히면... 그때 들려주리다...” 

 

아홉 시에 로랑이 브리케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문을 열려고 했지만 꿈쩍도 안했다. 안에서 잠겨 있었다. 코른 교수에게 즉각 알리는 것 외에는 달리 두수가 없었다.

코른이 늘 그렇듯이 민첩하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문을 부숴라!”

지시를 받은 흑인이 어깨를 부딪쳤다. 묵직한 문이 바지직 소리를 내면서 경첩에서 툭 떨어졌다. 코른과 로랑, 존이 방으로 들어섰다. 

브리케의 구겨진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코른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틀 손잡이 밑으로 욧잇 조각들과 수건 두 장을 이은 노끈이 늘어져 있었다. 창 아래 화단에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코른이 로랑에게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대면서 고함을 쳤다.

“이건 당신 짓이야!”

“신에게 맹세하건대, 마드무아젤 브리케의 탈주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로랑이 똑 부러지게 대응했다.

“좋아, 당신하고는 따로 얘기하지.” 

로랑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브리케가 단독으로 탈주를 감행했다는 것을 금방 느꼈음에도 코른은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 도망자를 체포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니까.” 

 

브리케가 코른의 개인병원을 탈출하다

 

코른이 서재로 돌아와서 불안감을 억누르며 벽난로와 책상 사이를 바장였다.

먼저 경찰을 부를까 생각했다. 그러나 금방 지웠다.

이 일에 경찰을 개입시켜서는 절대 안 돼. 개인 탐정 사무소에 의뢰하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내 잘못이야… 감시를 붙여야 했는데! 그러나 어제까지만 해도 시체였던 것이 달아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 텐가!

코른이 고약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 여자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사방에 나발 불고 다닐 텐데... 자신의 등장이 일으키는 센세이션 어쩌고 떠들지 않았던가… 신문기자들이 사건을 냄새 맡으면… 그녀를 도웰의 머리통한테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 일을 꼬이게 만드는군.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코른이 전화로 탐정사무소 에이전트를 불러서 거금의 비용을 주며 수색을 의뢰했다. 찾아내는 경우에 더 많이 사례하겠다고 약속하고, 사라진 여인의 인상착의를 상세하게 알렸다. 

 

사설탐정이 탈주 장소에서 정원 철제 담장까지 이어진 흔적들을 둘러보았다. 담장은 키가 높고 꼭대기가 뾰족뾰족했다.

탐정이 고개를 저었다. ‘용케 빠져나갔군!’

뾰족한 철창 하나에 잿빛 비단 조각이 걸려 있었다. 그걸 떼어내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달아날 때 이 드레스를 입고 있었군요. 잿빛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찾을 겁니다.”

‘잿빛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늦어도 하루 밤낮 안에는 찾아내겠다고 코른에게 다짐하고서 탐정이 떠났다. 

 

탐정은 자기 일에서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브리케가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 주소와 그녀의 이전 여자 친구 몇몇의 주소를 알아내고 그들과 안면을 트고, 한 여자 친구에게서 브리케의 사진을 발견하고 브리케가 어떤 카바레들의 무대에 섰는지 알아냈다. 도망자를 찾기 위해 다른 탐정 몇 명이 여러 장소에 파견됐다.

“새가 멀리 날아가지는 못할 겁니다.” 

탐정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실수했다. 이틀이 흘렀지만 브리케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사흘째 되는 날 몽마르트에 있는 한 선술집 단골이 사흘 전 한밤중에 ‘소생한’ 브리케가 거기 왔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코른이 한층 더 걱정에 빠졌다.

이제는 브리케가 그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귀중한 ‘전시품’을 아주 잃어버릴까봐 겁이 났다.

사실 그는 톰의 머리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시간과 엄청난 수고가 따라야 했다. 

게다가 새 실험이 훌륭하게 끝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소생시킨 개를 공표하는 것은 당연히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야,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브리케를 반드시 찾아내야 해. 그는 ‘달아난 전시품’ 수색에 건 사례금을 두 배로, 세 배로 늘렸다.

 

탐정들이 날마다 수색 결과를 보고해 왔지만, 신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브리케가 땅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행방이 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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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Бедяев Голова профессора Доуэля Фантастика
벨랴예프 도웰 교수의 머리 판타지

 


 

 

 

10. 죽은 다이애나 

 

브리케의 머리가 보기에는 적당한 새 몸을 골라서 사람 머리에 접합하는 것이 새 원피스의 치수를 재고 바느질하는 것처럼 쉬운 일 같았다. 목둘레를 재고, 그 사이즈에 맞는 목을 가지고 있는 시신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 싶었다.

하지만 머리는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곧 확신하게 됐다. 

 

아침에 코른 교수와 로랑, 존이 흰 가운 차림으로 브리케의 머리에게 나타났다. 코른은 브리케의 머리를 유리판에서 조심스레 떼어내 목의 절단면이 자세히 보이게끔 얼굴을 위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했다. 산소를 가득 담고 있는 혈액이 여전히 머리에 공급됐다. 코른이 꼼꼼히 살피고는 목의 굵기를 쟀다.

 

“인간 구조가 기본적으로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몸은 다 나름대로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 예를 들어, 경동맥도 이게 외경동맥인지 내경동맥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가끔 있거든. 목둘레가 같은 사람들한테서도 동맥 굵기와 목구멍 넓이가 일정하지 않아. 신경들에도 적잖이 손을 대야 하고.”

로랑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수술하실 겁니까? 목의 절단면에 몸통 절단면을 붙인 뒤, 바로 다 봉합하는 건가요.”

“그게 가장 중요하오. 이 문제를 내가 도웰과 함께 자세히 검토했다오. 중심에서 바깥으로 종단으로 절개해야 돼. 아주 복잡한 작업이오. 아직 죽지 않고 활동하는 세포들을 얻으려면 목 부위가 죽지 않게끔 절단해야 하는 거요. 그러나 그게 가장 큰 난관은 아니오. 중요한 것은, 부패가 시작됐거나 세균에 감염된 부위들을 시체에서 어떻게 제거하느냐, 또 어떻게 혈관의 손상된 혈액을 씻어내고 신선한 피를 채워서 신체의 ‘모터’인 심장이 작동하게 만드느냐… 그러면 척수는? 그건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장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종종 수습하기 어려울 수가 있소.”

 

“그렇게 어려운 작업들을 어떻게 해내시려는 겁니까?”

“아, 그건 일단 내 비밀이오. 실험이 성공하면, 죽은 자들을 소생시키는 내막을 다 공개할 거요. 자,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 머리를 제 자리에 돌려놓고, 공기를 흘려 넣으시오.”

그러고는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에게 물었다. 

코른과 로랑이 브리케 머리를 두고 의논하다

 

“기분이 어때요, 마드무아젤?”

“감사합니다. 좋아요. 하지만 교수님, 난 아주 불안해요… 지금 여러 가지 알아듣기 힘든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한 가지는 이해했어요. 당신은 내 목을 종횡으로 마구 난도질하려는 거지요? 그건 정말 꼴불견일 거예요. 커틀릿 같이 보일 목을 달고 내가 어디에 나타날 수 있겠어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상처가 덜 보이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자국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할 거야. 실망하는 눈빛 짓지 말아요, 마드무아젤, 목에 비로드 리본이나 목걸이를 하면 될 거야. 그래, 당신 ‘생일’에 그런 목걸이를 하나 선사하지. 아, 그리고 하나 더. 지금 당신 머리는 다소 말랐어요. 당신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머리에 살이 좀 붙어야 돼. 당신의 정상적인 목둘레를 알기 위해 이제 당신을 ‘포동포동하게 살 찌워야’ 할 것 같아. 안 그러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먹을 수가 없는 걸요.” 

머리가 불평했다.

“우리가 관을 통해서 살을 찌우지. 내가 특별한 종합 영양식을 준비했어.” 

그러고는 로랑에게 말했다. 

“그것 말고도 혈액 공급을 더 늘려야겠소.”

“영양 용액에다 지방질을 넣으시려고요?”

코른이 모호하게 손을 저었다. 

 

“머리에 기름기가 좀 끼어서 포동포동하게 되지 않으면 ‘수분이라도 넣어서 부풀려야’ 하오. 그게 우리한테 필요해. 자아,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어. 하느님에게 기도해요, 마드무아젤 브리케. 당신에게 아름다운 몸을 선사할 어떤 미녀가 한시라도 빨리 죽게 해 달라고 말이오.”

“그런 말씀 마세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내가 몸을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니… 무서워요, 의사 선생님. 그건 죽은 사람 몸이잖아요. 갑자기 그녀가 와서 자기 몸을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누가?”

“죽은 사람이 말이에요.”

코른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하지만 당신에게 오고 싶어도 다리가 없는데. 만약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녀가 당신에게 몸을 준 게 아니라 당신이 그녀에게 머리를 준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면 그녀는 오히려 선물에 감사할 거야. 이제 난 시체 안치소에 가 봐야겠어. 내 성공을 빌어 주오!”

 

실험 성공 여부는 최대한 신선한 시신을 확보하는 데 크게 좌우됐다. 그래서 코른은 만사를 제치고 행운을 기다리며 시체 안치소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입에 시가를 문 채 그는 기다란 건물을 마치 가로수 길 산책하듯이 느긋하게 오고갔다. 길게 늘어선 대리석 탁자들 위로 희끄무레한 불빛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탁자마다 이미 물줄기로 세척된 시체들이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시가 연기를 내뿜으면서 코른이 기다란 탁자 대열을 따라 천천히 발을 옮겼다.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몸통을 보기 위해 틈틈이 가죽 덮개를 들추곤 했다. 

코른이 시체 안치소에서 갓 죽은 시신을 찾는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와 함께 오갔다. 코른은 그들을 마뜩잖은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적당한 시신을 찾았다 해도 그들이 도로 빼앗아 가면 말짱 헛일이었다. 적당한 시신을 확보하기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사흘이 지나기 전까지 시신에 대한 권리를 제기할 수 있고, 사흘이 넘어서 절반 부패한 시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주 신선하고, 가능하면 식지 않은 시신이 필요했다.

 

신선한 시신을 즉각 얻기 위해 코른은 돈도 아끼지 않았다. 시신의 번호를 바꿔치기하면 그만이고, 그 다음에 어떤 불행한 시신이 결국 ‘행방불명’으로 처리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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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리케의 입맛에 맞는 다이애나를 찾기란 쉽지 않아.’ 

시체들의 넓적한 발바닥과 군살 박힌 손들을 보면서 코른이 생각했다. 여기에 누워 있는 시신들 대다수는 자가용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코른이 저편 끝에서 이편 끝으로 지나왔다. 그 동안에 신원 확인된 시신 몇 구가 밖으로 들려나가고, 그들 자리를 벌써 새로운 시신들이 채웠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시신들 중에서도 수술에 적합한 재료를 코른은 구할 수 없었다. 

머리가 없는 시신들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체격이 맞지 않거나 몸에 상처가 났거나, 그도 아니면 이미 부패가 시작된 것들이었다. 하루가 또 저물어가고 있었다. 시장기를 느낀 코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접에 담긴 닭 커틀릿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도 글렀어.’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그러고는 여러 시신들 곁에서 절망과 경악과 오열에 가득 차서 움직이는 인파를 뚫고 출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저편에서 마주 오는 일꾼들이 머리가 없는 여인의 몸통을 옮기고 있었다. 말끔하게 씻긴 젊은 몸이 흰 대리석처럼 빛을 냈다. 

‘오, 저건 쓸 만해 보이는데.’

그가 잡역부들을 뒤따라갔다. 탁자 위에 놓인 시신을 대충 훑어보고서는 필요한 것을 찾았다는 확신이 더 커졌다. 코른이 일꾼들에게 그 시신을 내가자고 귀엣말을 하려는 순간, 수염이 텁수룩하고 입성 남루한 늙은이가 시신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야, 마르타가 맞아!” 

늙은이가 소리 지르면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빌어먹을, 어디서 나타난 거야!”

코른이 입속에서 욕설을 내뱉고는 늙은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시신을 확인하셨습니까? 머리가 없는데.”

늙은이가 왼쪽 어깨에 박힌 커다란 점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걸 보면 알 수 있지요.”

늙은이가 하도 태연하게 말하는 바람에 코른이 놀랐다. 

“그녀는 누구지요? 당신의 아내? 아니면 딸이었나요?”

늙은이는 수다스러웠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조카딸이지요, 그것도 친조카는 아니고. 사촌누이가 아이들 셋을 남기고 죽는 바람에 내가 키웠어요. 내 자식들만 해도 넷이나 되는 통에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 판인데. 하지만 어떡하겠수, 신사 양반? 울타리 아래 있는 고양이를 내쫓지는 않는 법이라우. 그렇게 살았지요. 한데 불행이 생겼지 뭡니까. 우리는 낡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데, 무너질 염려가 있다고 벌써부터 거기서 우리를 나가라고 했지요. 하지만 갈 데가 있어야지? 그냥 버티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다른 아이들은 부상한 채 빠져나왔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목이 잘리고 말았군요. 나하고 할미는 집에 없었어요, 군밤을 팔러 나갔었지.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마르타를 벌써 시체 안치소로 옮긴 뒤였다우. 왜 시체 안치소냐? 다른 아파트들에 살던 사람들도 함께 깔려 죽었는데, 개중에 어떤 이들은 혼자 살았어, 그래서 다 여기로 옮겼다는 거지요. 내가 도착해 보니, 집이 사라져 버렸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지진 난 것 같으니...“

 

‘음, 좋아, 딱 적당해.’

코른이 수다스러운 늙은이를 한 편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기왕 벌어진 일이야 어떡하겠소. 보다시피 난 의사이고, 시신이 필요하오. 까놓고 말하리다. 백 프랑을 받고 싶으면 집으로 그냥 돌아가요.”

“내장을 긁어내려고 그러우?”

늙은이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어차피 죽은 몸이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래도 남의 피가 아닌데…“

“이백 프랑.”

“정말 필요한 돈이우, 아이들이 배를 곯고 있으니… 하지만 그래도 가엾지… 좋은 처녀였는데, 아주 예쁘고 아주 착하고, 얼굴은 장미꽃 같고, 여기 잡동사니들하고는 다르지…”

늙은이가 탁자 위에 놓인 시신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손을 흔들었다. 

‘이 늙은이 좀 보게! 물건 값을 올리려고 하는 모양일세.’

그런 생각이 들자 코른이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무심한 투로 말했다. 

 

 “내키는 대로 하시오. 여기에는 시신들이 적지 않고, 몇 구는 당신 조카딸보다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늙은이한테서 몇 발짝 물러섰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좀 주셔야…” 

늙은이가 잽싸게 바투 다가서는데, 그 정도에서 흥정을 마치자는 투였다. 

코른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상황이 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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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가 먼저 온 게유?” 

노파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코른이 몸을 돌려 보니, 깨끗한 흰 두건을 쓰고 몸집이 퉁퉁한 노파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늙은이가 자기도 모르게 꽥꽥 소리를 냈다. 

“찾았수?”

노파가 거친 눈길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기도문을 중얼거리면서 물었다.

 

늙은이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시신을 가리켰다. 

“오오, 얘야, 마르타, 불쌍한 것!”

노파가 머리 없는 시신 쪽으로 다가서면서 슬프게 목을 놓았다. 

코른은 노파와 흥정하기가 어려울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한 번 찔러나 보자는 속셈으로 예의를 갖추어 말을 걸었다.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부인. 지금 부인 남편과 얘기를 나누고는 당신네가 아주 궁핍하게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궁핍하든 않든 남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아요.” 

노파가 제법 당당하게 말을 무질렀다. 

“그렇지요, 하지만… 나는 자선장례협회 회원입니다. 협회 경비로 내가 조카딸 장례를 치를 수 있고 필요한 일들을 다 처리할 겁니다. 원한다면 나에게 맡기고 부인은 아무 걱정 없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자녀들과 고아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파가 남편에게 호통을 쳤다. 

“당신, 여기서 무슨 소릴 지껄인 게유?”

그러고는 코른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말씀은 고맙수, 신사 양반. 그러나 남들처럼 나도 내 손으로 처리할 거유. 당신네 자선협회 도움 없이도 어떡하든 수습할 거라오. 아, 뭐 그렇게 눈알만 굴리고 있는 거유?”

노파가 남편과 얘기할 때는 평소의 어조로 돌아갔다. 

“얼른 시신을 거두어 떠나요. 내가 손수레를 가져왔어요.”

 

어찌나 단호하게 들리는지, 코른이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닥이고 떠나야 했다.

‘분하군! 에이,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이야.’

출구 쪽으로 가서 문지기를 한쪽으로 데리고 나와 나직하게 일렀다. 

“이보우, 적당하다 싶은 게 나오면, 즉각 전화해요.”

“아, 나리, 여부가 있겠습니까.”

코른이 쥐어준 지폐 뭉치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문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른이 레스토랑에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브리케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근래에 흔한 질문으로 맞이했다. 

“찾았어요?”

“찾긴 찾았는데 잘 안 됐어, 빌어먹을! 좀 더 참아요.“

그가 뚱하게 대꾸했지만 브리케가 물러서지 않았다. 

“적당한 것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요?” 

“오징어처럼 다리가 휜 여자들은 있었어. 원한다면 그거라도…”

“아이, 싫어요. 차라리 더 기다릴래요. 안짱다리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코른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다시 시체 안치소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침대 곁에 놓인 전화기가 부르르 떨었다. 코른이 투덜대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말하세요. 네, 코른 교숩니다. 뭐라구요? 역 부근에서 열차가 전복됐다고? 시체들이 널렸다고? 아, 물론, 당장 달려가지요. 고맙구려.”

서둘러 의복을 갖춰 입고는 존을 불러 소리쳤다. 

“자동차!”

십오 분 뒤 그가 벌써 한밤중의 거리를 소방차처럼 달렸다. 

한밤중에 철도 사고 현장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

 

시체 안치소 문지기의 말이 맞았다. 그날 밤 죽음은 많은 수확을 거둬들였다. 시체들이 쉴 새 없이 운반됐다. 탁자들이 다 차는 바람에 곧 시체들을 마룻바닥에 놓아야 했다. 코른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재앙이 낮에 일어나지 않은 것을 두고 운명에 감사했다. 사고 소식은 아직 시내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체 안치소에 외부인들은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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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른이 아직 옷을 벗기지 않고 씻기지도 않은 시체들을 살펴보았다. 그건 다 아주 신선했다.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단지 하나, 이 좋은 기회가 코른의 특별한 필요에 썩 걸맞지 않다는 점이 흠이었다. 시체 대부분이 으깨졌거나 여러 부위에 훼손이 심한 것이다. 그러나 시체들이 계속 도착했기 때문에 기대를 잃지 않았다. 

 

“이 시신을 보여 주오.” 

잿빛 원피스 차림의 처녀 시체를 옮기는 일꾼에게 말을 걸었다.

두개골이 뒤통수 쪽에서 으깨졌다. 머리털과 원피스가 피범벅이지만, 원피스가 엉망으로 구겨지지는 않았다. 

‘몸통이 심하게 상하지는 않은 것 같아… 괜찮아. 체격이 상당히 조잡하군, 필경 남의 하녀로 일했을 거야, 하지만 이런 몸뚱이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여기는 어떻소?”

코른이 다른 들것들을 가리켰다. 

“아, 이거야말로 정말 흔치 않아! 보물이야! 빌어먹을, 아무리 그래도 이런 여인이 죽다니, 아깝군!“

 

젊은 여인의 시신이 바닥에 놓였다. 흔치 않게 아름다운 얼굴에 심한 경악이 얼어붙어 있었다. 오른편 귀 위쪽으로 두개골이 함몰됐다. 필경 죽음이 순식간에 닥쳤을 것이다. 하얀 목에는 진주 목걸이가 걸렸다. 우아한 검은 비단 드레스가 아래쪽과 옷깃에서 어깨까지 조금 찢어졌을 뿐이다. 드러난 어깨 위에 반점이 보였다. 

‘아까 그것과 같군. 하지만 이건… 참으로 예뻐!’ 

코른이 잽싸게 목둘레를 쟀다. 

’안성맞춤이야.‘

코른이 굵은 진주들로 엮은 목걸이를 잡아채어 일꾼에게 주고는 말했다.

“이 시체를 가져가겠소. 여기서 시체들을 일일이 살펴볼 시간이 없으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이것도 가져가지.” - 그가 처음 본 처녀의 시신을 가리켰다. “자, 빨리 움직입시다. 아마포로 둘러서 내가시오. 알아들었소? 사람들이 떼로 몰려올 거요. 시체 안치소 문을 열고 몇 분 뒤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들끓겠지.”

 

두 구의 시신이 자동차에 실려서 코른의 자택으로 금방 옮겨졌다.

수술에 필요한 준비는 진작 다 끝낸 상태였다. 브리케의 부활의 날이, 아니 엄밀히 말해 부활의 밤이 다가왔다. 코른이 일 분도 늦추기를 바라지 않았다.

시신 두 구가 말끔하게 씻긴 뒤 흰 천에 둘둘 말려서 브리케의 방으로 옮겨져 수술대 위에 놓였다.

브리케의 머리가 자신의 새로운 몸통을 보고 싶어 안달했지만, 코른은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머리한테 시체들이 보이지 않게끔 수술대를 옮겨 놓았다.

코른이 시체들에서 머리를 재빨리 잘라냈다. 잘라낸 머리들을 아마포에 싸서 존이 밖으로 내갔다. 절단 부위와 수술대가 깨끗이 닦이고 몸통들이 정돈됐다. 

흑인 조수가 잘라낸 머리를 밖으로 내가다.

몸통들을 다시금 미덥지 못한 얼굴로 훑어보고서 코른이 우려하는 낯빛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깨에 반점이 있는 몸은 온전하게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한데다가, 하녀처럼 보인 몸과 비교하면 특히 더 뛰어났다. 굵직하고 단단한 골격에 어깨가 쳐지지 않았으며 기품이 엿보였다. 브리케야 두말 않고 이 예술적인 다이애나의 몸통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그가 다이애나라고 부른 시체에는 결함이 드러났다. 오른편 발바닥에 크지 않은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쇳조각에 베인 모양이었다.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코른이 상처 부위를 불로 지졌다. 혈액 감염을 염려할 근거가 아직은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하녀’의 몸을 접합하는 것이 더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었다. 

 

“브리케의 머리를 돌려놓으시오.” 

코른이 로랑에게 지시했다. 수술 준비하는 동안 브리케가 수다를 떨어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입이 닫혔다. 즉, 압축 공기가 든 용기의 밸브가 잠겼다. 

코른이 턱짓으로 밸브를 가리켰다.

“이제 공기를 불어넣어도 좋아요.”

시신들을 보자마자 브리케의 머리가 불 맞은 노루처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공포에 질린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시신들 중 하나가 그녀의 몸이 될 판이었다. 이 수술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통증이 날 만큼 아프게 느끼고는 주저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때요? 이 시체... 아니, 몸통이 마음에 드나?” 

“난… 겁이 나요…” - 머리가 쉭쉭 소리를 냈다. “아아,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은 몰랐어… 내키지 않아…”

“내키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 시체에 톰의 머리를 접합하지. 톰이 여자가 되는 거야. 톰, 지금 몸통을 얻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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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잠깐만이요.” 브리케의 머리가 놀랐다. “좋아, 하겠어요. 저 몸통... 어깨에 반점이 있는 걸 갖고 싶어요.”

“이쪽 것이 더 좋을 텐데. 썩 예쁘지는 않지만, 그 대신 상처가 하나도 없으니까.” 

“나는 세탁부가 아니라 가수에요.” 브리케의 머리가 뽐내듯이 지적했다. “아름다운 몸을 원해요. 어깨에 난 반점은… 그런 걸 남자들이 좋아해요.”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코른이 대답했다. “마드무아젤 로랑, 마드무아젤 브리케의 머리를 수술대로 옮기시오. 조심해야 하오. 머리의 인공 혈액 순환이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면 안 돼.”

 

로랑이 브리케의 머리를 만져서 마지막으로 준비했다. 브리케의 얼굴에 극도의 긴장과 동요가 서렸다. 머리가 수술대로 옮겨지자 브리케가 더 견디지 못하고 여태껏 비명을 질러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싫어! 안 하겠어! 그만둬요! 차라리 죽여 줘요! 무섭단 말이야! 아-아-아-아!..”

코른이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로랑에게 날카롭게 외쳤다. 

“얼른 공기 밸브를 닫으시오! 영양 용액에 모르핀을 넣으시오. 그러면 잠이 들 거야.”

“아니, 아니야! 싫어!!”

밸브가 닫히고 머리가 침묵했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을 달싹이고 두려움과 애원의 빛을 띤 채 응시했다.

 

“교수님, 그녀의 의지에 반해서 수술을 진행해도 될까요?” 

로랑의 물음에 코른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지금은 한가하게 윤리 문제를 논할 시간이 없소. 그녀는 나중에 우리한테 감사하게 될 거요. 맡은 일을 하든지 아니면 방해하지 말고 나가시오.”

그러나 로랑은 자기가 나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다면 수술 결과는 더욱 더 불안했다. 마음을 바꾸어 코른을 계속 도왔다. 브리케의 머리가 어찌나 벌벌 떠는지, 혈관들에 연결된 관들이 거의 빠져나올 뻔했다. 존이 도움에 나서서 머리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머리의 경련이 서서히 멈추고 두 눈이 감겼다. 모르핀이 작용한 것이다. 

 

코른 교수가 수술에 착수했다. 

이런저런 수술도구를 요구하는 코른의 짤막한 지시만이 간간이 적막을 깼다. 코른도 심하게 긴장한 탓에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는 기민함과 비상한 면밀함과 조심성을 동원하면서 눈부신 외과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코른에 대한 증오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로랑이 그 순간만큼은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신들린 아티스트처럼 손을 놀렸다. 그의 노련하고 예민한 손가락들이 기적을 이루었다. 

수술은 한 시간 오십오 분 동안 계속됐다. 

 

마침내 코른이 허리를 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브리케는 몸통에서 떨어진 머리가 아니야. 그녀에게 생기만 불어넣으면 되는 거요. 즉, 심장이 뛰고 피가 돌게 하는 거지. 하지만 이 작업은 나 혼자서 하겠어. 당신은 쉬어도 좋아요, 마드무아젤 로랑.”

“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심신이 몹시 피곤했지만, 이 비범한 수술의 마지막 단계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코른은 소생 비밀을 그녀에게 드러내기 원치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휴식을 취하라고 집요하게 권하는 바람에 로랑이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한 시간이 지나 코른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그는 훨씬 더 지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만족감이 깊이 배어 있었다.

“맥을 쥐어 봐요.” 

로랑이 속으로 은근히 전율하면서 세 시간 전만 해도 차가운 시신이었던 브리케의 손목을 잡았다. 손에 벌써 온기가 돌고 맥박이 잡혔다. 코른이 브리케의 얼굴에 거울을 들이댔다. 거울 표면에 김이 서렸다. 

“숨을 쉬는군. 이제 우의 신생아를 포대기로 잘 감싸면 돼. 며칠 동안은 꼼짝도 않고 누워 있게 될 거요.” 

브리케의 목에 감긴 붕대 위에 코른이 깁스를 둘렀다. 몸통이 다 천으로 싸이고 입이 꽁꽁 동였다. 코른이 설명했다.

“아예 말할 엄두도 못 내게 하는 거요. 며칠간 우리는 그녀를 수면 상태로 두는 거지, 심장이 용인한다면.” 

브리케를 로랑의 옆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눕히고 뇌수에 전류를 흘려 마취시켰다.

“봉합이 유착될 때까지 우리는 그녀를 인공영양으로 유지할 거요. 당신이 신경을 더 많이 써야겠지.”

 

사흘째가 되어서야 코른은 브리케의 ‘의식이 돌아오도록’ 허용했다. 

오후 네 시였다. 비스듬히 기운 태양 광선이 방안으로 들어와 브리케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그녀가 눈썹을 가볍게 꿈틀거리더니 눈을 떴다. 아직 판단력이 흐릿한 가운데, 햇살 가득한 창문을 보고는 눈길을 로랑에게 돌렸다가 결국 아래로 내려뜨렸다. 거기엔 이미 뭔가가 있었다. 붕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과 몸통이 보였다. 흰 천으로 덮인 몸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가냘픈 미소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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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말고 조용히 누워 있어요.” 로랑이 말했다. “수술이 아주 잘 됐고, 이제 모든 건 당신이 처신하기에 달렸어요. 안정을 충분히 취하면 더 빨리 두 다리로 일어설 거예요. 일단은 우리가 표정으로 소통을 하지요. 만약 눈꺼풀을 내려뜨리면 ‘예스’, 올리면 ‘노’로 알아듣겠어요. 혹시 통증을 느끼는 데가 있나요? 여기, 목과 발에? 금방 사라질 거예요. 물을 마시고 싶나요? 뭘 좀 먹고 싶어요?” 

브리케가 시장기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목이 말랐다. 

 

로랑이 코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서재에서 즉각 달려왔다.

“그래, 새로 태어난 기분이 어때요?” 

그녀를 살피고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 잘 됐군. 조금만 더 참으면 춤도 추게 될 거요, 마드무아젤.” 

그가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사라졌다. 

 

‘부활’의 나날이 브리케에게는 아주 길게 지나갔다. 그녀는 모범적인 환자였다. 성급함을 꾹 누르고 차분하게 누워서 지시대로 잘 따랐다. 마침내 온몸을 두르고 있던 천을 벗기는 날이 됐다. 아직 말은 하지 못하게 했다.

“몸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나?” 

코른이 약간 흥분된 기색으로 물었다. 

브리케가 눈꺼풀을 내려뜨렸다. 

“발가락들을 아주 조심해서 움직여 봐요.” 

얼굴빛으로 보아 브리케가 시도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발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중추의 기능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모양이군.” 

코른이 위엄을 지피며 말했다. 

“그러나 곧 복구될 거야, 그러면 움직임도 함께 살아날 게고.” 

그러고는 혼자 생각했다. 

‘브리케가 다리를 절게 되지는 않을까.’

로랑은 수술대 위에 있던 차가운 시신을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이런 단어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아마 복구될 거야.’

 

브리케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이제 몇 시간이고 발가락들을 움직이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 노력을 로랑이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다가 어느 날 로랑이 환성을 질렀다.

“움직여! 왼발 엄지발가락이 움직여요.”

 

그 뒤로 일은 더 빨리 진행됐다. 다른 발가락들과 손가락들도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곧 브리케는 손과 발을 조금 들어 올릴 수 있게 됐다.

로랑이 깜짝 놀랐다. 눈앞에서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범죄자라 해도 코른은 비범한 사람이야. 사실 도웰의 머리가 없었다면 코른이 죽은 사람의 이중 소생에 성공할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재능 있는 사람이야. 그 점을 이미 도웰의 머리가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아, 코른이 도웰 교수도 다시 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다시 며칠이 지나서 브리케는 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녀에게서 다소 음색이 상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나왔다.

코른이 단언했다.

“나아질 거야. 노래도 부르게 될 거야.”

 

브리케가 곧 노래를 불러 보았다. 그 노랫소리에 로랑이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브리케의 고음들은 상당히 삑삑거려서 듣기에 썩 좋지 않고, 중간 음역에서는 목소리가 쉰 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아주 둔탁하게 울렸는데, 그 대신 저음부의 목소리는 매혹적이었다. 그건 아주 뛰어난 가슴에서 울리는 콘트랄토였던 것이다.

로랑이 생각에 잠겼다.

성대는 절단 부위 위에 있고 브리케의 것이 아니던가. 한데 이 이중의 목소리며 위아래 음역의 서로 다른 음색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생물학적으로는 불가사의야. 새 몸통보다 더 나이가 많은 브리케의 머리가 젊어지기 때문인가? 아니면, 중추신경계의 기능이 깨진 것과 어떻게 연관되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이 젊고 우아한 몸통의 주인은 누굴까? 어떤 불행한 머리에 달려 있던 것일까…’ 

 

로랑이 브리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차 전복 사고로 죽은 이들의 명단이 실린 신문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곧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이탈리아 가수 안젤리카가 사고 열차에 타고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신문기자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로랑은 브리케의 머리에 접합한 몸통이 죽은 오페라가수의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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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9. 선과 악마 


코른이 서류에서 고개를 들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머리통들한테 문제라도 생겼소?”

“그건 아니고… 교수님과 할 얘기가 있어 왔습니다.”

코른이 안락의자 등받이로 상체를 젖혔다. 

“말해 봐요, 마드무아젤 로랑.” 

“브리케 머리에 몸을 붙여주시겠다는 게 진지한 생각인가요, 아니면 그저 그녀를 위로하려고 하시는 건지요?”

“아주 진지한 생각이오.”

“그 수술이 성공할 거라고 보십니까?”

“물론이지. 당신도 개를 봤잖소?”

“한데 톰에게는 제의하시지 않나요? 다리를 붙여준다고…” 

로랑이 에둘러서 말하기 시작했다.

“못할 게 뭐 있소? 그도 벌써 나한테 간청했지만, 차례를 기다려야지.”

로랑의 말이 갑자기 빨라지고 고르지 않게 나왔다. 


“그러면 도웰 교수님한테도… 물론 톰과 브리케를 비롯해 누구나 인간답게 정상적인 삶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물론 잘 이해하고 계시지요. 도웰 교수의 머리가 당신의 다른 머리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점을… 만일 톰과 브리케를 정상적인 존재로 되돌리려 하신다면, 도웰 교수님의 머리도 정상적인 삶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코른이 얼굴을 찌푸렸다. 경계심 때문에 안색이 굳어졌다.   

도웰 교수에게,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의 머리에게...” 그 단어에 비웃음이 섞였다. “당신 같은 훌륭한 변호인이 생겼군. 그러나 변호인 따위는 필요 없고, 당신도 쓸데없이 열을 올리고 흥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나도 도웰의 머리를 소생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왜 거기부터 시작하지 않는 겁니까?”

“왜냐하면 도웰의 머리가 다른 수천 개 머리들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오. 브리케의 머리에 몸통을 붙이기 전에 내가 개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소? 브리케의 머리가 개의 머리보다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도웰의 머리가 브리케의 머리보다 훨씬 더 소중하기 때문에...”

“사람과 개의 목숨은 비교가 안 되지요, 교수님…”

“도웰과 브리케의 머리도 마찬가지야. 할 말이 더 있는 거요?”

“아니, 없습니다, 교수님.” 


로랑이 대답하고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렇다면, 마드무아젤, 내가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 보겠소. 기다려요, 마드무아젤.”

로랑이 문가에서 발을 멈추고 코른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봤다. 

“여기, 테이블로 와서 자리에 앉으시오.”


로랑이 당혹스럽고 불안한 마음으로 안락의자 끝에 몸을 걸쳤다. 상대의 안색으로 보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코른이 안락의자 등받이로 상체를 던지고 탐색하는 눈초리로 로랑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집요한 눈길을 그녀가 피하자, 큰 키를 재빨리 일으켜서 책상에 주먹을 대고 로랑에게 고개를 숙여 최면을 걸듯이 은근하게 물었다. 


“말해 보시오, 도웰 머리에 있는 공기 밸브를 작동시키지는 않았소? 그하고 무슨 얘기를 나눈 건 아니오?”

로랑이 손가락 끝에서 한기를 느꼈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처럼 맴돌았다. 코른으로 인해 생긴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사실대로 말할까 말까?’ 

로랑이 망설였다. 

‘오오, 이 사람 낯짝에 ’살인자‘라는 말을 내뱉으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대들다가는 일을 그르치고 말 거야.’


로랑은 코른이 도웰에게 새 몸통을 주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렇게 믿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갈망하는 것은 단 하나, 도웰의 연구 성과를 가로챈 코른을 의학계에서 매장하고, 만천하에 그의 범죄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코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며, 그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코른의 범죄를 폭로하기도 전에 자신이 파멸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려면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과 양심으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이제 내면의 동요가 극도로 커졌다.


코른이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놀리듯이 말했다.

거짓말할 생각일랑 아예 거두시오. 그런 죄를 지어서 양심을 괴롭힐 필요는 없지. 머리통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소? 잡아떼지 마시오, 다 알고 있으니까. 나의 충실한 하인 존에게 귓구멍은 괜히 있나…”

로랑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통하고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소. 단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고 싶을 뿐이지.”

두 뺨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로랑이 고개를 쳐들고 코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자초지종을 다 들었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전부 다 들었다고!”

코른이 여전히 두 주먹으로 책상을 짚은 채 나직하게 으르렁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로랑이 다시 눈길을 떨어뜨린 채,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코른이 돌연 문으로 달려가더니 열쇠를 돌려 잠그고는, 뒷짐 진 채 부드러운 양탄자 위를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소리 없이 로랑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귀여운 아가씨? 피에 굶주린 괴물 코른을 법정에 넘기려고? 그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그의 범죄를 폭로하겠다고? 필경 도웰이 그런 짓을 부탁했겠지?”

마지막 말에 로랑이 두려움도 잊은 채 적극 항변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도웰 교수의 머리에 복수심이라는 건 전혀 없어요, 정말입니다. 오오, 그분은 고결한 영혼이에요! 그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만류했습니다. 그분은 당신하고는 전혀 달라요. 자신을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녀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도전적으로 말을 맺었다. 

코른이 쓴웃음을 짓고는 다시 집무실을 바장였다.


“그래, 그래, 좋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기어이 폭로할 생각이었는데, 도웰의 머리가 말렸다 이거지? 흠, 그렇지 않았다면 코른 교수는 벌써 감옥에 들어갔겠군. 설령 덕행이 이길 수 없다 해도 죄업은 어떻게든 징벌을 받는다! 당신이 읽은 소설들은 다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안 그렇소, 귀여운 아가씨?”

“악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녀가 이제 감정을 거의 억누르지 못하여 언성을 높였다. 

“아, 그래, 물론, 저기 하늘나라에서 그렇게 되겠지.” 

두터운 흑단을 바둑판무늬로 댄 천장으로 코른이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여기 지상에서는 죄업이 승리한다는 것을, 악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순진한 당신도 이제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선은… 착하게 사는 자들은 거리에서 손을 내밀고 구걸이나 하거나, 아니면 저기 있는 물건처럼 쭈그리고 있게 되는 거야.” 

코른이 도웰의 머리가 놓인 방 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까마귀들을 쫓는 허수아비처럼, 지상의 모든 것이 덧없다고 곱씹으면서 말이야.” 

그러고는 로랑에게 바짝 다가서서 목소리를 한껏 깔았다. 

“이런 거 아나?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신과 도웰의 머리를 문자 그대로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어. 귀신도 모르게.”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범죄적 행위라도? 잘 알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군.”  

코른이 다시 방안을 바장이면서 이젠 혼잣말처럼 평소의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근데 복수에 불타는 귀여운 당신을 어떻게 처리해야지? 유감스럽게도, 아가씨는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으며 진실을 위해서는 고통의 화관도 기꺼이 쓸 준비가 된 부류로군. 연약하고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어지간한 위협에도 끄떡하지 않는단 말이야. 당신을 죽여야 하나? 오늘, 아니 지금 당장? 난 살인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좀 법석을 떨기는 해야겠지. 한데 내 시간이 아까워. 매수를 한다? 이건 위협하기보다도 더 어렵고… 그래, 내가 아가씨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지금 이런 얘기를 없었던 걸로 해요… 아직까지 당신을 고발하지는 않았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건가?”

로랑이 한순간 망설이다가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고발할 겁니다.”

코른이 비밀을 지키라고 로랑을 위협

코른이 발을 굴렀다. 

“으음, 고집불통 아가씨로군!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이제 내 책상에 가서 앉고… 겁내지 마시오, 아직은 목을 조르지도 않고 독약을 먹일 생각도 없으니까. 자, 어서 앉아요.”

로랑이 영문을 몰라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잠시 생각하다가 책상 앞 안락의자로 옮겨 앉았다.

“어찌 됐든 당신은 나한테 필요해. 지금 당신을 없앤다면 남자든 여자든 다른 조수를 또 구해야겠지. 새로 들이는 자가 도웰 머리의 비밀을 알아낸 뒤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돈을 뜯어내는 악당이 아니란 보장이 없어. 그럴 바엔 차라리 아가씨 같은 사람과 상대하는 게 더 편해. 자, 받아 적으시오. 소중한 어머니, 혹은 집에서 부르는 대로 적어요, 내가 돌보는 환자들의 상태가 안 좋아서 당분간 코른 교수의 자택에 계속 있게 됐어요…”

“내 자유를 박탈하려는 겁니까? 여기, 이 집에 감금하려는 겁니까?”

로랑이 펜을 쥔 채 발끈하여 물었다. 

“바로 그거야, 나의 착한 조수여.”

“이런 편지는 쓰지 않겠습니다.” 

로랑이 단호하게 밝혔다. 그러자 코른이 벽시계 스프링이 울릴 만큼 고함을 내질렀다. 

“됐어, 이제 그만! 나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모르나?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게.”

“나는 당신 집에 남지도 않을 것이고, 이런 편지도 쓰지 않을 겁니다!”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아가씨가 무슨 짓을 해도 좋아. 그러나 여기서 나가기 전에 내가 어떻게 도웰의 머리에서 생명을 빼앗고 그 머리를 화학 용액에 담가 녹이는지를 보게 될 거야. 나가게, 나가서 사방팔방 다니며 ‘난 코른의 집에서 도웰의 머리를 봤어요!’ 하고 외쳐 봐. 그런 말을 과연 누가 믿을까? 다들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야. 그러나 조심하게! 그런 짓을 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자, 얼른 가게, 나가 보시라고!” 


코른이 로랑의 팔을 잡아 문으로 끌고 갔다. 그 거친 습격에 저항할 힘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코른이 문을 홱 열고 톰과 브리케의 방을 잽싸게 지나쳐서 도웰 교수의 머리가 놓인 방으로 들어갔다.

도웰의 머리가 난데없는 방문에 어리둥절했다. 코른이 머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기구들 쪽으로 성큼 다가가서 혈액을 공급하는 용기의 밸브를 사납게 돌려 잠갔다.

내막을 모르는 머리의 두 눈이 평온하게 밸브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위협적인 코른과 아연실색한 로랑을 바라봤다. 공기 밸브가 닫혀 있기 때문에 머리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머리와 비언어적 소통에 익숙한 로랑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건 “이제 끝장인가?” 하는, 소리 없는 물음이었다. 

코른이 위협적으로 머리의 밸브를 잠그다

머리의 두 눈이 로랑에게 쏠렸다가 흐려지는 듯했다. 동시에 눈꺼풀이 넓게 열리고 동공이 부풀어 올랐으며,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며 수축되기 시작했다. 머리는 호흡곤란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로랑이 히스테리 환자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면서 코른에게 다가가더니 팔에 매달려서 거의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날카롭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세요, 밸브를 얼른 열어요… 하라는 대로 다 하겠어요!!”


코른이 엷은 냉소를 지으면서 밸브를 열었다. 생기를 불어넣는 공기 흐름이 관을 타고 도웰의 머리로 흘러들었다. 얼굴의 발작적인 경련이 멈추고 두 눈이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으며 눈길이 밝아졌다. 꺼져가던 생명이 도웰의 머리로 되돌아왔다. 의식도 돌아온 게 틀림없었다. 왜냐면 도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니, 심지어는 낙담했다는 표정으로 로랑을 다시 바라보았으니까.

로랑이 동요하여 비틀거렸다. 

“내가 부축해 주겠소.” 

코른이 중세 기사처럼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기묘하게 보이는 남녀가 방을 나갔다.


서재로 돌아와 로랑이 책상 앞에 앉자 코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우리가 어디서 멈췄지? 그래… ‘환자들의 상태로 보아 내가 늘 여기 있어야 되겠어요.’ 아니, 그러지 말고, 이렇게 써요. ‘코른 교수의 자택을 잠시도 비울 수가 없게 됐어요. 코른 교수는 아주 좋은 분이어요. 나한테 정원으로 창문이 난 예쁜 방을 제공하고, 근무시간이 늘어났다고 급료를 세 배로 올렸어요.‘” 

로랑이 무슨 헛소리냐 하는 표정으로 코른을 쳐다봤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오. 어쩔 수 없이 아가씨를 묶어두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보상을 해줘야지. 실제로 급료를 올리겠소. 자, 그 다음에 이렇게 적으시오. ‘여기 생활은 나무랄 데가 없고, 일이 많긴 하지만 내 상태도 아주 좋아요. 나를 보러 오지는 말아요. 교수님은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아요. 하지만 궁금하게 여기지도 말아요, 또 편지를 할 테니까…’ 됐소. 이제 당신이 평소 편지에 담던 애정의 표현을 덧붙이시오. 그래야 편지가 수상쩍게 보이지 않겠지.”


그러고는 이미 로랑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이 소리 내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마냥 갈 수는 없어. 당신을 오래 잡아 두지도 않을 거야. 우리 연구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완성되기만 하면… 즉, 머리가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머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러면 어떻게 될지는 당신이 잘 알지. 간단히 말해서, 내가 도웰과 함께 연구를 다 끝내면, 도웰의 머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거요. 머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때 당신은 좋아하는 엄마한테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때엔 아가씨가 나한테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을 것이고. 

다시 말하는데, 어디 가서 입을 놀리겠다고 고집한다면 난 증인들을 내세울 것임을 염두에 두시오. 필요한 경우 그들은 해부가 끝난 뒤 도웰 교수의 머리와 팔다리를 포함해 시신 전부를 내가 화장터에서 소각했다고 성서에 손을 얹고 증언할 테니. 이런 경우에 화장터가 아주 편리한 곳이지.”


코른이 종을 울리자, 곧 존이 들어왔다.

“존, 마드무아젤 로랑을 정원으로 창이 난 하얀 방으로 안내해라. 앞으로 일이 많기 때문에 마드무아젤 로랑은 내 집에서 머물 거야.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마드무아젤에게 물어서 다 챙겨 줘라. 상점들에 전화해서 내 이름으로 주문해도 좋아. 내가 계산할 테니까. 마드무아젤을 위해 점심식사를 주문하는 것도 잊지 말고.”

코른이 자리를 뜬다는 표시로 고개를 까닥이고 나갔다. 


존이 로랑을 새 방으로 안내했다. 

코른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방은 실제로 아주 좋았다. 밝고 넓고 아늑하게 꾸며졌다. 커다란 창문이 정원 쪽으로 나 있었다. 그러나 이 아늑하고 단정한 방이 로랑에게는 가장 음울한 감옥보다 더 큰 우수를 안겼다. 로랑이 중환자처럼 힘겹게 발을 옮겨 창문으로 다가가서 정원을 내다봤다. 

‘이층이야… 높아… 여기서 달아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설령 달아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달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탈주가 곧 도웰 머리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을 테니까.

로랑이 기진맥진하여 쿠세트(couchette)에 몸을 던지고 고통스러운 상념에 잠겼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꿈결처럼 존의 목소리를 듣고 천근같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고마워요. 배가 고프지 않으니까 그냥 내가세요.”

엄하게 훈련된 하인이 군소리 없이 지시를 따랐다.

그녀가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길 건너편 건물 창들이 불빛으로 환해졌을 때, 그녀가 심한 고독감에 휘둘려서 당장 머리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도웰의 머리가 특히 보고 싶었다.


뜻하지 않은 시간에 로랑이 들르자 브리케의 머리가 반색하여 소리쳤다.

“아아, 드디어! 벌써 됐나요? 가져왔어요?”

“무슨 말이지요?”

“내 몸통 말이에요.”

브리케는 마치 새 원피스 애기라도 하는 것 같은 투로 말했다. 

로랑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 가져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곧 될 거예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아흐, 더 빨리 할 수는 없을까!..”


“나한테도 다른 몸을 붙일 건가요?” 

톰이 물었다. 

“네, 물론이지요.” 로랑이 그를 위로했다. “당신은 예전처럼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이 될 거예요. 돈을 벌어서 고향 마을로 내려가 당신의 마리를 아내로 맞겠지요.”

로랑은 머리의 은밀한 소망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톰이 기분이 좋아져서 입술로 쪽 소리를 냈다. 

“얼른 그런 날이 오기를.”


로랑이 서둘러 도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갔다.

공기 밸브를 열자마자 머리가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요?”

로랑이 코른과의 대화며 자신의 감금에 대해 자세히 얘기했다. 

로랑의 말이 끝나자 머리가 말했다.

“정말 괘씸한 작태로군!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가씨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텐데…”

머리의 두 눈에 분노와 결연함이 서렸다.

“아주 간단하오. 영양 공급하는 관을 닫아요, 그러면 내가 죽을 거요. 정말이지, 코른이 밸브를 다시 열어 나를 살려냈을 때 난 낙담하기까지 했다오. 이제 내가 죽으면, 코른이 아가씨를 집에 보내줄 거외다.”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겠습니다!” 

로랑이 언성을 높였다.

“아아, 내가 키케로만큼 말을 잘한다면, 아가씨를 설득할 수 있을 텐데.”

로랑이 그렇지 않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었다.

“키케로가 아니라 키케로 할아버지라도 나를 설득하지 못할 겁니다. 사람 생명을 끊는 짓을 난 결코 용납하지 못해요…”


“한데, 내가 과연 사람일까?‘ 

우울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가 물었다. 

로랑이 위로하고 달래는 투로 대답했다. 

“데카르트의 말을 교수님이 인용했던 것을 기억하세요. ‘나는 사유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그건 그래.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할 테요. 코른을 더 이상 지도하지 않겠소. 그 어떤 고문을 가한다 해도 더 이상 그를 돕지 않을 거요. 그러면 제 손으로 나를 끝장내겠지.”

그 말에 로랑이 안달이 나서 머리에게 바짝 다가섰다. 

“아니, 그러지 마세요, 제발. 내 말을 들어 보세요. 얼마 전까지 난 복수를 꿈꾸었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요. 만약 코른이 브리케의 머리에 몸통을 접합하는 데 성공하고, 그런 수술 기법이 자리 잡는다면, 교수님도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희망이 있다는 뜻이에요… 코른이 아니라 다른 외과의사의 손으로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그런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오. 코른도 그 실험을 성공하기 힘들게요. 그는 성정이 못되고 범죄적이며,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에서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지른) 헤로스트라투스를 수천 명 합해 놓은 것처럼 헛된 명성에 집착하는 사람이오. 하지만 외과의로서는 재능이 있고, 내 곁에 있던 조수들 중에서 능력이 가장 출중할 거요.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나의 조언과 지도를 받으면서도 이 실험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도 못할 거라는 뜻이오. 하지만 그가 이 전대미문의 수술을 성공하리라고 난 확신하지 못하오.”

“그러나 벌써 개들을…”


“개들은 다른 문제라오. 머리들을 이식 수술하기 전에 건강하게 살아 있는 개 두 마리가 같은 탁자 위에 누워 있었지. 수술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소. 그런데도 코른은 한 마리만 살릴 수 있었던 모양이오. 그렇지 않다면 자랑하려고 두 마리를 다 내게 데려왔을 테니까. 그런데 시신은 아무리 빨라도 죽은 뒤 몇 시간이 지나서야 가져올 수 있지 않겠소? 그때는 이미 부패가 시작됐을 수도 있는 게고. 수술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아가씨도 의사니까 판단할 수 있겠지. 그건 반쯤 잘린 손가락을 붙이는 것과 달라요. 정맥과 동맥, 그리고 중요한 건데, 신경과 척수를 다 면밀하게 연결하고 꿰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불구가 나올 테니, 그러고 나서 피가 돌도록 하고… 아아, 이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오. 지금의 외과의들에게는 버거운 과제지.” 

“교수님이 그런 수술을 다 해내시지 않았던가요?”

“나는 모든 걸 다 감안해서 개들을 대상으로 이미 몇 번 실험했다오. 지금 이런 꼴만 아니라면 아마도 성공했을…”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렸다. 문턱에 코른이 나타났다.

“음모자들의 밀담인가? 당신들을 방해하지 않겠어.” 

그러고는 문을 쾅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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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책 표지

 


 

8. 하늘과 땅 

 

톰의 논거는 브리케를 설득하지 못했다. 

브리케는 분방하다 못해 난잡할 정도로 생활하면서도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 상당히 요란하게 사는 바람에 무덤 저편의 존재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성당에 다닐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주입된 종교성이 그녀 안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종교성의 씨앗이 움을 틔우기에 가장 적당한 순간이 다가온 듯싶었다. 그녀의 지금 생활은 끔찍한 것이지만, 죽음은 (두 번째 죽을 가능성은) 그녀를 한층 더 놀라게 했다. 밤마다 저승의 악몽에 시달렸다.

지옥불의 넘실거리는 화염이 어른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죄 많은 육체가 거대한 불판 위에서 튀김 당하는 것을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이빨을 부닥치고 헐떡이면서 악몽에서 깨어났다. 호흡이 더 힘들어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곤 했다. 흥분된 뇌가 산소를 더 많이 요구했지만, 그녀에겐 심장이 없었다. 신체 모든 기관에 필요한 용량의 혈액 공급을 아주 이상적으로 조절하는 살아 있는 모터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네 방에서 당직하는 존을 깨우려고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잦은 호출에 싫증이 난 존은 다만 몇 시간이라도 숙면을 취하려는 욕심에서 코른 교수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머리들의 밸브를 잠가두곤 했다. 

브리케가 물에서 나온 물고기처럼 입을 벌리고 소리쳐 보았지만, 그 비명은 죽기 전 물고기의 하품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방안에는 키메라들의 검은 그림자가 여전히 돌아다니고, 지옥불이 그들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그것들은 그녀에게 바짝 다가들어 무시무시한 손톱 달린 앞발을 내뻗었다. 브리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그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치 자기 심장이 오그라들고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이미 심장이 없는데도!)

 

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거렸다. 

“하느님, 하느님, 당신의 종을 과연 용서하지 않는단 말인가요, 당신은 전능하시고, 당신의 자비는 끝이 없어요.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게 과연 내 잘못인가요? 그런 일들이 왜 벌어졌는지, 당신께서는 알고 계시지 않나요? 나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에게 선을 가르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난 배를 곯았어요. 도와 달라고 당신에게 얼마나 많이 빌었던가요. 신이여, 노여워 말아요, 당신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혹여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건 아닌지 겁을 내면서도 묵언의 기도를 계속했다. 

“내 잘못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자비를 베푸시어 나를 연옥으로 보낼 수도 있잖아요... 지옥에만 보내지 않으면 돼요! 난 무서워서 죽을 거예요… 아아, 근데, 이런 바보, 거기서는 아무도 죽지 않잖아!” 

그러고는 순진한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톰도 단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지옥의 악몽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그를 괴롭힌 것은 땅에 대한 회한이었다. 불과 몇 달 전 고향마을을 떠났다. 소중한 것을 다 뒤로 하고 구운 과자가 담긴 작은 보따리와 꿈 하나만을 챙겨 들고. 그의 꿈은 도시에서 열심히 벌어 땅뙈기 살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러면 볼이 예쁘고 건강한 마리하고 혼인할 거야… 아아, 그때는 그녀의 아버지도 둘의 혼인을 반대하지 않겠지.

한데 이제 모든 게 무너졌어… 예기치 않은 감옥의 흰 벽에서 그는 농장을 보고 명랑하고 건강한 여인을 보았다. 여인은 마리와 똑 닮았으며 암소 젖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톰 대신 다른 남자가 닭들이 부산을 떠는 마당으로 말고삐를 잡아끌고 있지 않은가. 아아, 그는, 톰은 죽고 파괴됐고, 그의 머리는 까마귀 쫒는 허수아비 같은 말뚝 위에 꽂혀 있지 않은가. 그의 강한 손과 건장한 몸통은 어디 있단 말인가? 

절망에 빠진 톰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더니 나직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물이 유리판 위로 뚝뚝 떨어졌다. 

 

“이게 뭐지? 어디서 이런 물이 생겼을까?”

아침 청소 때 로랑이 놀라서 물었다. 존이 공기 밸브를 진작 열어놓은 상태지만, 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로랑을 불쾌하고 사나운 눈길로 응시하다가, 그녀가 브리케의 머리 쪽으로 발을 옮기자 그 뒤에 대고 나직하게 쉰 소리로 으르렁댔다. 

“살인자!” 

그는 자신을 깔아뭉갠 운전수를 벌써 잊은 채 분노를 주변 사람들에게 퍼부었다. 

“뭐라고 했지요, 톰?” 

로랑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톰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분노를 감추지 않은 두 눈으로 쏘아볼 뿐이었다. 로랑이 놀라서 톰의 기분이 왜 저렇게 됐는지 존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브리케가 이미 그녀의 눈길을 낚아챘다. 

 

“내 코 오른쪽을 좀 긁어 줄래요? 내 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종기가 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가려울까? 거울을 건네줘요.”

로랑이 브리케의 머리에게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안 보이니까 오른쪽으로 돌리세요. 조금 더… 그래, 됐어요. 아직 미모가 남아 있어. 콜드크림을 바를까요?” 

로랑이 꾹 참고 크림을 발라 주었다.

“그래, 그렇게. 이제 파운데이션을 두드려 줘요. 고마워요… 로랑, 당신에게 뭐 하나...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러세요.”

“만약… 죄가 아주 많은 사람이 성직자에게 고백하고 참회한다면, 그런 사람도 속죄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지요.” 

 

로랑이 브리케의 머리를 다듬어 주다.

 

로랑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브리케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난 지옥의 고통이 너무 겁나요… 부탁인데, 큐레(*curé. 가톨릭 주임사제)를 나한테 모셔다 주세요… 난 기독교인으로 죽고 싶어…”

브리케의 머리가 죽어가는 수난자의 형상을 띠고 두 눈을 위로 홱 뒤집었다. 그러더니 금방 눈을 내리깔며 소리쳤다. 

“당신 원피스는 정말 흥미롭게 지었군요! 이게 최신 유행인가요? 패션잡지들을 가져다 달라고 한 지가 오래 됐는데.” 

브리케의 생각이 지상의 관심거리로 돌아왔다. 

“옷자락이 짧아… 미니스커트를 입을 때는 예쁜 다리가 아주 어울려요. 내 다리! 내 불쌍한 다리! 당신은 내 다리를 봤나요? 아아, 내가 춤을 출 때면 그 다리 때문에 남자들이 넋을 잃곤 했지요!”

 

코른 교수가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떻소?” 

상태를 묻는 말에 브리케가 호소하고 나섰다. 

“들어 보세요, 교수님. 난 이렇게는 살 수 없어요. 나한테 누구 몸이라도 달아 줘야 해요. 이전에도 간청했는데, 이제 또 하는 거예요. 정말 부탁이에요.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난 믿어요…”

‘빌어먹을, 안 될 게 뭐야?’ 

코른 교수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몸통에서 떼어낸 사람 머리를 소생시킨다는 명성을 그가 다 자신에게 돌리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이 성공적인 실험이 도웰 교수의 업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도웰보다 더 앞서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두 명의 죽은 사람들에서 하나의 산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거창할 거야!’

 

그게 성공만 한다면 모든 영광과 명성을 코른 한 사람이 떳떳하게 차지할 터였다. 그렇긴 해도 도웰의 머리가 베푸지도와 가르침을 아직은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 점을 확실하게 생각해야 돼.’ 

“당신은 아직도 춤추기를 갈망하오?” 

생각을 멈춘 코른이 웃으면서 시가 연기를 브리케 머리에 내뿜었다. 

 

“원하냐구요? 난 밤낮으로 춤을 출 거예요. 풍차처럼 손을 흔들고 나비처럼 날면서… 몸통을,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나한테 붙여 주세요!”

“하지만 꼭 여자 몸이라야 되오? 원하기만 한다면 남자 몸통이라도 줄 수 있지.”

코른이 놀리듯이 말하자, 브리케가 경악하여 쳐다봤다. 

“남자 몸통이라구요? 남자 몸통 위에 있는 여자 머리라니! 아니, 안 돼요, 너무 볼썽사나운 꼴이 될 거예요! 옷 입는 것조차 곤란하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미 여자가 아닐 거요. 남자로 바뀌는 게지. 당신한테서는 콧수염과 구레나룻이 자라고 목소리도 달라질 거야. 남자로 바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요? 많은 여성들이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데.”

“그런 여자들은 아마 남자들의 눈길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 여자들이야 남자로 바뀌면 좋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난 그럴 필요가 없어요.” 

브리케가 예쁜 눈썹을 보란 듯이 꿈틀거렸다.

“그래, 뜻대로 하시오. 당신은 여자로 남게 될 거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몸통을 찾도록 하리다.”

“오, 교수님, 난 한없이 감사할 겁니다. 오늘 할 수는 없나요? 상상만 해도 좋아요, 다시 ‘샤누아’로 돌아가면 인기가 절정에 오를 텐데…”

“그렇게 빨리 되는 일이 아니오.”

브리케가 계속 입을 놀려댔지만, 코른은 이미 톰의 머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떤가요, 친구?”

톰은 교수와 브리케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생각에 골똘한 그는 코른을 무뚝뚝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코른 교수가 새 몸통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브리케의 기분이 확 달라졌다. 더 이상 지옥의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다. 무덤 저편 존재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곧 맞이할 새로운 지상의 삶에 온통 빠져들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이 마르고 피부가 누런빛을 띠었다는 사실에 염려했다. 전발을 해 달라, 머리 모양을 만들어 달라, 얼굴에 크림을 발라 달라, 요구하면서 로랑을 지치게 만들었다.

 

“교수님, 내가 정말 이렇게 마르고 누렇게 뜬 상태로 있어야 하나요?” 

코른 교수를 보자마자 그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예전보다 더 예뻐질 거요.” 

그가 위로했다. 교수가 나가자 새로운 요구를 내놓았다.  

“아니야, 화장해 봤자 소용없어. 이건 자기기만일 뿐이야. 마드무아젤 로랑, 냉수로 샤워하고 마사지를 해요. 눈가와 코에서 입술 부위까지 뾰루지들이 새로 생겼네요. 마사지를 잘 받으면 없어지지 않겠어요? 내 여자 친구 하나는… 이런,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그래, 드레스 지을 잿빛 비단을 찾았나요? 나한테는 잿빛이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 아, 패션 잡지들을 가져왔어요? 아주 좋아요! 아직 치수를 잴 수 없다니, 정말 아쉽군요. 어떤 몸통이 내 것이 될지 난 몰라요. 키가 늘씬하고 허리가 잘록한 몸통을 준다면 좋을 텐데… 잡지를 펼치세요.”

그녀가 아름다운 여성 의상의 비밀에 푹 빠졌다. 

 

로랑은 도웰 교수의 머리를 잊지 않았다. 이전처럼 머리를 돌보고 아침마다 독서를 도왔지만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한데 아직도 도웰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로랑은 갈수록 더 지치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브리케의 머리가 그녀를 잠시도 편안히 놓아두지 않았다. 

어떤 때는 도웰의 독서를 돕다가도 비명을 듣고 달려가야 했는데, 하찮은 일로 브리케가 법석을 떨었다는 것을 알고는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다. 아래로 처진 머리채를 고쳐 달라, 로랑이 의상실에 가 봤는지 대답해 달라는 둥. 

“하지만 당신은 아직 몸통 사이즈를 모르잖아요.” 

로랑이 화를 참으며 대답하고는 머리채를 올려놓고 도웰의 머리로 서둘러 돌아왔다.

 

코른이 과감한 수술을 시도하기로 작정했다. 

복잡한 수술을 열심히 준비했다. 그는 도웰 교수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곤 했다. 도웰의 조언이 없이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도웰은 코른이 생각지도 못했지만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려움 몇 가지를 지적하며 짐승들을 대상으로 사전 실험을 몇 차례 해 보라고 조언하고 그 실험들을 직접 지도했다. 그리고 (도웰의 지력이 그러했다.) 그 자신도 예정된 실험에 강하게 호기심을 보였다. 도웰의 머리가 활기를 띄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사유가 지극히 선명하게 작동했다.

코른은 도웰의 지대한 도움에 만족하기도 하고 불만이기도 했다. 작업 진도가 더 나갈수록 도웰이 없이는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이 새로운 실험을 자신이 실행한다는 점 하나로 위안을 삼았다. 

 

한번은 도웰의 머리가 약간 빈정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죽은 도웰 교수의 좋은 후계자요. 아아, 내가 이 실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부탁도 암시도 아니었다. 도웰의 머리는 코른이 자기에게 새로운 몸통을 주기 원치 않으며 주지 않을 것임을 훤히 알고 있었다.

코른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그 탄식을 못 들은 체하면서 말을 돌렸다. 

“자, 짐승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나는 개 두 마리를 수술했지요. 머리통들을 절단한 뒤 한 머리통을 다른 몸통에 접합시켰지요. 둘 다 건강하고, 목 부위의 봉합도 아물어 갑니다.”

“영양 공급은?” 

머리가 물었다. 

“아직은 내 손으로 먹이지요. 요오드를 섞은 용액을 살균해서 입으로 넣어요. 하지만 곧 영양 공급이 정상적으로 될 겁니다.”

 

며칠 지나서 코른이 알렸다. 

“개들의 영양 공급이 정상화됐습니다. 붕대를 다 풀었고, 내 생각에 이틀쯤 지나면 뛰어 다닐 겁니다.” 

“일주일 정도는 기다리시오. 젊은 개들은 머리를 심하게 흔들기 때문에 봉합이 터질 수 있소. 서둘러 강행하지 말아요.”

‘당신이 월계관을 쓰게 될 거요.’ 하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머리가 꾹 참았다. 

“한 가지 더. 개들을 서로 다른 곳에 두시오. 한 군데 두면 싸우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마침내 그날이 왔다. 코른 교수가 의기양양한 낯빛으로 검은 머리통에 흰 몸통이 달린 개를 끌고 도웰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개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두 눈이 살아 있고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개가 도웰의 머리를 보더니 갑자기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대다가 야생의 소리로 짖어댔다. 보기 드문 장면에 놀라 겁을 먹은 모양이다. 

 

코른 교수가 개를 데리고 도웰의 머리가 있는 방에 오다.

 

“개를 데리고 한 바퀴 돌아 보시오.” 

머리의 지시에 따라 코른이 개를 끌고 방을 한 바퀴 돌았다. 도웰의 노련하고 예리한 눈이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한데 이건 왜 그렇소? 개가 왼쪽 뒷다리를 좀 절뚝이는구려. 짖는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코른이 당황하여 변명했다.

“이 개는 수술 전에도 다리를 절었지요. 부러졌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변형이 보이지 않는데, 애석하게도 내가 만져서 살필 수는 없구려. 건강한 개 한 쌍을 구할 수는 없었단 말이오?”

머리의 목소리에 의구심이 담겼다.

“나한테는 그 무엇도 숨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동료. 아마도 소생 수술을 오래 끄는 바람에 심장 활동과 호흡의 정지가 ‘죽은 상태’를 너무 길게 잡아두었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내 실험들을 통해 당신도 알다시피, 새로운 시스템의 기능이 훼손되는 경우가 더러 있소. 하지만 염려할 건 없지. 그런 현상은 사라질 수 있으니까. 단지, 브리케가 두 다리를 절뚝거리게 하지는 않도록 하시오.” 

 

코른이 발끈했지만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머리통 안에 이전의 도웰 교수가, 직설적이고 꼼꼼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생각으로 분풀이를 했다.

‘기분 상하게 만드는군! 펑크 난 타이어처럼 쉭쉭 거리는 이 머리통이 여전히 나를 가르치고 내 실수를 조롱하려 들다니. 그런데 난 그 가르침을 초등학생처럼 경청해야 하고… 밸브를 돌리기만 하면 이 썩은 호박덩어리에서 영혼이 달아날 것을…’

그러면서도 불쾌한 기분을 감춘 채 조언 몇 가지를 주의 깊게 듣고는 고개를 숙였다. 

“지적에 감사합니다.”

 

방에서 나오자 그가 다시 우쭐거리며 자신을 위로했다. 

‘아니야, 실험은 훌륭하게 됐어. 도웰의 비위를 맞추기가 그리 쉽지는 않지. 개가 다리를 절뚝거리고 짖는 소리가 다듬어지지 않은 것 따위야 다른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브리케의 머리가 놓인 방을 지나치다가 걸음을 멈추고 데리고 있던 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마드무아젤 브리케, 당신 소망이 곧 이뤄질 거요. 이 개가 보이지? 이놈은 당신처럼 몸통이 없는 머리였어. 근데, 봐요, 이렇게 살아 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뛰어 다니고 있잖소.”

“나는 개가 아니에요.” 

브리케의 머리가 뾰로통하여 대꾸했다. 

“하지만 이건 필수적인 실험이오. 개들이 새로운 몸뚱이에서 살아났다면, 당신도 살아날 것이야.”

“하필이면 왜 개를 들먹이는지 모르겠어요.” - 브리케가 고집스레 말을 잘랐다. “내가 개한테 볼 일은 전혀 없어요. 차라리 내가 언제 소생할지 말해 주세요. 나를 빨리 살려내는 대신에 개들만 만지작거리다니.”

 

코른이 말이 안 통한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면서도 여전히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제 금방 될 거야. 어울리는 시체를... 아니, 그러니까, 몸통을 찾기만 하면 돼. 그러면 당신은 흔히 말하듯이 완전한 형태가 되는 거요.”

개를 데려다 놓고 코른이 자를 들고 와서 브리케 머리의 목둘레를 꼼꼼히 쟀다. 

“삼십육 센티미터로군.” 

“맙소사, 내가 그렇게 말랐어요?” - 브리케가 놀라 소리쳤다. “삼십팔이었는데. 내가 신는 구두 사이즈는…”

 

그러나 코른은 그 말을 다 듣지 않은 채 자기 서재로 달려갔다. 책상 앞에 앉기도 전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로랑이 들어섰다. 평온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얼굴에는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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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실험실에 있는 도웰 교수의 머리

 


 

6. 실험실의 새로운 거주자들 

 

다음 날 아침 코른 교수의 해부대 위에는 갓 숨진 시체 두 구가 정말로 놓였다. 

공개 시연에 내보낼 새로운 머리 둘이 도웰 교수의 머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코른 교수가 전날 그 머리를 옆방으로 미리 옮긴 것이었다.

 

남자 시신은 서른 살쯤 된 노동자인데 교통사고의 제물이었다.

단단한 몸통이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채 감지 못한 두 눈에는 경악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코른 교수와 로랑, 존이 흰 가운 차림으로 시신들을 다루었다. 

코른이 설명하듯이 입을 놀렸다. 

“시신이 몇 구 더 있었지. 한 노동자는 목재 더미에서 떨어졌기에 제쳐놓았소. 뇌진탕으로 뇌가 상했을 수 있으니까. 독약을 먹고 자살한 자들도 몇몇 되는데, 다 불합격이야. 이 젊은이가 적당하다고 판단한 거야. 그리고 여기 이건… 밤의 미녀야.” 

 

코른이 고갯짓으로 가리킨 쪽에는 예쁘지만 다소 시든 얼굴의 여성 시신이 놓여 있었다.

얼굴에는 볼 터치와 아이라인 자국이 아직도 선연히 남았다. 얼굴은 대체로 평온해 보이는데, 살짝 치켜진 눈썹과 반쯤 열린 입만이 뭔가 어린애 같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카바레 가수야. 술 취한 무뢰한들이 싸우는 중에 날아든 총탄에 맞아 즉사했소. 심장에 바로 꽂힌 게 보이지? 일부러 하려고 해도 이렇게는 안 될 거요.” 

 

코른 교수는 일을 기민하고 자신 있게 처리했다.

머리들이 몸에서 잘리고, 머리가 떨어진 몸통은 밖으로 내갔다.

몇 분 뒤 머리 두 개가 높은 탁자 위에 놓이고, 목구멍과 정맥과 경동맥마다 관들이 꽂혔다. 

그는 기분이 좋아서 들뜬 상태였다. 승리의 순간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학술 대회에서 그가 행할 프레젠테이션과 발표에는 이미 학계의 거성들이 다 초대됐다. 노련한 손으로 관리되는 언론이 코른 교수의 과학적 재능을 한껏 띄우는 기사들을 벌써부터 싣기 시작했다. 저널들에는 그의 초상화가 실렸다. 죽은 사람의 머리를 소생시키는 놀라운 실험을 소개한다는 코른의 발표에 언론은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의 승리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휘파람을 불면서 손을 씻은 뒤 시가를 문 채 앞에 놓인 머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헤헤! 접시 위에 요한뿐 아니라 살로메(*신약성서, 헤롯의 딸로 추정되는 인물)의 머리통도 올라갔네. 그리 나쁘지 않은 만남이 될 거야. 밸브를 열기만 하면…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거야. 어떻소, 마드무아젤? 이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으시오. 밸브 세 개를 다 열어요. 이 커다란 실린더에는 독약이 아니라 응축된 공기가 담겨 있지, 헤헤…”

 

그 사실을 로랑이 이미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거의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는 마음에서 알고 있다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코른이 별안간 얼굴을 찌푸리고 심각해졌다. 로랑에게 바싹 다가서더니 단어들을 하나씩 잘라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러나 도웰 교수의 공기 밸브는 절대 열지 마시오. 그는… 성대가 손상됐고…”

로랑의 마뜩치 않은 눈길을 포착하고서 코른이 신경질적으로 덧붙였다.

“어떻든 간에… 절대 금지요. 내 지시를 잘 따르는 게 좋을 게요. 그렇지 않으면 단단히 봉변을 치르게 될 테니.”

그러고는 다시 흥을 내서 오페라 <팔리아치>의 모티브를 늘어지게 뺐다. (*Pagliacci, 이탈리아어로 '광대'라는 뜻. 레온카발로의 작품)

“자아, 시작합시다!”

 

로랑이 밸브 세 개를 다 열었다. 

노동자의 머리가 살아 있다는 표시를 먼저 내기 시작했다. 눈꺼풀을 아주 살짝 떨었다. 동공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순환이 되는군. 다 잘 될 거야…”

머리의 두 눈이 방향을 바꾸어서 창문 불빛 쪽으로 돌아갔다. 의식이 천천히 돌아왔다. 

코른이 신바람을 내면서 외쳤다.

“살아나는 거야! 공기를 더 세게 흘려 넣으시오.”

로랑이 밸브를 더 많이 열었다. 

공기가 목구멍 안에서 쉭쉭 소리를 냈다. 

 

그런 가운데 머리의 목구멍에서 단어 몇 개가 알아듣기 어렵게 흘러 나왔다.  

“이게 뭐야?.. 내가 어디 있는 거지?..”

“병원이야, 친구.” 

코른의 대답에 머리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병원이라구요?..” 

그러면서 눈을 내리깔고 자기 밑의 텅 빈 공간을 보았다.

“내 다리는 어디 있지요? 내 손은? 몸통은?”

“몸통은 없다네, 이보게. 그건 산산조각이 났지. 머리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몸통을 떼어내야 했지.”

“떼어내다니? 아니야, 난 동의하지 않아요. 이따위 수술이 어디 있어요? 이런 꼴로 뭐에 쓰겠어요? 머리통 하나로는 빵 한 조각도 못 벌어. 나한테는 손이 있어야 해요. 손과 발이 없으면 아무도 채용하지 않을 거야… 병원에서 나가면… 퉤! 병원비도 없는 걸. 이제 어떡하지? 난 먹고 마셔야 돼. 우리네 병원이 어떻다는 걸 난 알아. 잠시 붙잡아뒀다가 ‘치료됐어요.’ 하고 내쫓지. 아니, 난 동의하지 않아요.” 

머리가 단호하게 말을 매듭지었다. 

 

내뱉는 말이며 검게 그을리고 주근깨 많은 너부죽한 얼굴, 헤어스타일, 푸른 눈의 순진한 눈길 따위로 보아 그는 시골 출신임이 분명했다. 

궁핍을 면하려고 고향 들판을 떠났지만, 도시는 젊고 건강한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보상금이라도 좀 나오려나?.. 아, 그자는 어디 있어요?..” 

갑자기 머리가 누군가를 떠올렸다. 머리의 두 눈이 커졌다. 

“누구 말이오?”

“그자 말이에요… 나를 깔아뭉갠… 한 전차가 여기 있고 다른 전차는 저기 있고 자동차도 여기 있었는데, 그자는 곧장 나한테…”

“염려 말아요. 그자는 대가를 지불할 거야. 화물차 번호를 적어 두었지. 알고 싶다면, 4711번이야. 근데 자네 이름이 뭐지?” 

코른 교수의 물음에 머리가 즉각 대꾸했다. 

 

“내 이름이요? 톰입니다. 그래요, 톰 부시.”

“그렇군. 톰이라… 자네는 그 무엇도 부족한 줄 모르게 될 거야. 굶주림도 추위도 갈증도 괴롭히지 않을 거야. 거리로 내쫓지 않을 테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요.”

“흥, 거저 먹여줄 거요, 아니면 돈벌이 삼아 장터에서 구경거리로 만들 거요?”

“보이기는 보일 거야. 단지 저잣거리가 아니라 과학자들에게 보이는 거지. 자, 그만 쉬어요.” 

그러고는 여자 머리를 보면서 코른이 걱정스럽게 지적했다. 

“어째서 이 살로메는 아직 살아나지 않는 거지?”

그러자 톰의 머리가 물었다. 

“그건 뭐지요, 역시 몸뚱이 없는 머린가요?”  

“보다시피, 자네를 외롭지 않게 하려고 우리가 자네 짝으로 숙녀를 초대했지… 로랑, 톰의 공기 밸브를 닫으시오, 더 이상 지껄이지 못하게.”

 

코른이 여자 머리의 콧구멍에서 체온계를 꺼냈다. 

“시체의 온도보다는 높지만 정상 체온이 되려면 더 기다려야겠군. 천천히 살아날 거야…”

시간이 흘렀다. 여자의 머리가 살아나지 않았다. 코른 교수가 조바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험실을 바장이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대리석 바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넓은 방안에 발소리가 요란했다. 

톰의 머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소리 없이 입술을 꿈틀거렸다. 

기다리다 못해 코른이 여자 머리에 다가가서 경동맥들에 연결된 유리관들을 찬찬히 살폈다. 

“여기에 원인이 있었군. 이 관이 너무 느슨하게 연결돼 있어서 순환이 더딘 거야. 더 굵은 관을 꽂아야겠어.”

코른이 관을 바꾸고 몇 분 지나서 여자 머리가 살아났다. 

 

브리케라는 이름의 여자 머리는 자신의 소생에 톰보다 훨씬 더 요란하게 반응했다. 확실하게 정신이 들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자, 머리는 이런 몰골로 둘 바에야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아흐, 아흐, 아흐!.. 내 몸뚱이… 내 가엾은 몸뚱이!.. 당신들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나를 온전하게 살리든지 아니면 죽여요. 몸뚱이 없이는 살 수 없어!.. 내 몸을 잠깐이라도 보게 해 줘요… 아니,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머리가 없는 몸뚱인데… 얼마나 끔찍해!.. 아아, 무서워!..”

 

다소 진정된 뒤 머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를 살려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난 교육을 많이 못 받았지만, 몸통 없이는 머리가 살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아요. 한데 이건 뭔가요, 기적이에요 아니면 마술인가요?”

“이도 저도 아니오. 이건 과학의 힘이오.”

“우리 과학이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분명히 할 수 있을 거예요. 나한테 다른 몸통을 붙여 주세요. 당나귀 같은 조지의 총알이 내 몸에 구멍을 냈어… 그러나 적잖은 처녀들이 자기 이마에 총탄을 박잖아요. 그 몸을 절단해서 내 머리에 붙여 줘요. 단, 미리 보여 주세요. 잘 빠진 몸을 골라야 하니까. 몸통이 없는 여자라... 난 그렇게는 살 수 없어요. 이건 머리가 없는 남자보다 더 나쁜 거라구요.”

 

그러고는 로랑에게 눈길을 돌렸다. 

“부탁인데, 거울을 좀 주시겠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브리케가 자기 모습을 오랫동안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흉칙해라!.. 내 헤어스타일을 손 좀 봐 주겠어요? 내 손으로는 가르마를 탈 수가 없어요…”

“로랑, 당신의 일거리가 늘어났군. 거기에 맞게 급료도 늘어날 거요. 난 나가 봐야겠소.” 

냉소를 날린 코른이 시계를 보더니 로랑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머리들을 눈길로 가리키면서 귀엣말을 했다. 

“저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도웰 교수 머리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마시오!..”

 

코른이 실험실에서 나가자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를 보러 갔다. 

도웰의 두 눈이 그녀를 우울하게 쳐다봤다. 서글픈 미소 때문에 입술이 일그러졌다. 

로랑이 나직하게 말했다.

“가엾어라, 오, 가엾은 분… 그러나 곧 복수하게 될 거예요!”

머리가 신호를 보냈다. 로랑이 공기 밸브를 열자 머리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복수보다는 차라리 실험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들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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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책자

 


 

5. 대도시의 희생자들 

 

머리의 비밀을 알고 난 뒤 로랑이 코른을 증오하게 됐다. 그런 감정은 날이 갈수록 더 커졌다. 증오심을 품고 잠이 들었다가 증오심을 안고 눈을 뜨곤 했다. 끔찍한 악몽을 꾸면서 코른을 보곤 했다. 그녀는 증오감으로 앓았다. 근래 들어 코른과 마주칠 때마다 그 낯짝에 “살인자!”라는 말을 내뱉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그에 대한 태도가 딱딱하고 차가워졌다.

 

도웰 교수의 머리와 둘만 있을 때 마리 로랑이 언성을 높였다. 

“코른은 짐승 같은 범죄자예요! 그의 죄상을 당국에 고발하겠어요… 그의 범죄를 널리 알릴 겁니다. 도둑질로 이룬 명성이 무너지고 그의 악행이 다 폭로되기 전까지 나는 다리 뻗고 잠을 못 자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어요.”

도웰의 머리가 달래야 했다. 

“조용히!.. 진정해요. 나는 복수할 마음이 없다고 이미 말했다오. 그러나 아가씨의 도덕심이 분개하고 보복을 갈망한다면 더 이상 말리지는 않을 거요… 단, 서둘지는 말아요. 부탁하건대, 우리 실험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요. 코른이 나를 필요로 하듯이 나한테도 지금은 그가 필요하니까. 그는 나 없이 연구를 끝낼 수 없어,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요. 이게 나한테 남은 전부란 말이오. 이제 더 큰 것을 만들어낼 수 없지만, 시작한 연구는 매듭을 지어야 하오.”

 

서재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로랑이 재빨리 밸브를 닫은 뒤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 도웰의 머리가 잠에 빠진 사람처럼 눈꺼풀을 내려뜨렸다.

코른 교수가 들어왔다. 

그가 로랑을 의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소? 당신 기분이 안 좋은 것 같군. 괜찮아요?”

“아니요… 아무 일도… 괜찮아요…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맥박을 재 봐야겠어…”

로랑이 마지못해 손을 내뻗었다. 

“맥박이 빠르군… 신경이 곤두서 있어… 하기야 여기 일이 신경에는 힘들 거야. 하지만 난 당신에게 만족해요. 보너스를 두 배로 주겠소.”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 돈이 필요 없는 사람도 있나? 당신한텐 가족이 있잖소.”

로랑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뭔가 준비를 해야겠소. 도웰 교수의 머리를 실험실 뒤에 있는 방으로 옮길 거니까…”

그러고는 머리를 향해 말했다.

“잠깐 동안이오, 동료, 잠깐 동안. 잠을 자는 거요? 내일 여기로 두 구의 신선한 시신을 들여오면, 우리는 그 시신들에서 말하는 머리 한 쌍을 준비하여 학술대회에서 선보일 것이오. 우리 업적을 세상에 알릴 때가 됐소.”

코른이 뭔가 파헤치려는 눈길로 다시 로랑을 쳐다봤다.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로랑이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을 서둘러 던졌다. 

“어떤 사람들의 시신이 들어올 겁니까?”

“모르겠소. 아무도 모르지. 왜냐하면 아직 그건 시체들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보다도 더 건강한 사람들이오.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나한테는 아주 건강한 사람들의 머리가 필요해요. 그러나 내일 그들은 죽을 거야. 그리고 한 시간 이내에 여기 해부용 탁자에 놓이겠지. 내가 잘 다뤄줄 거요.”

코른 교수가 연구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을 사람임을 이미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랑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코른이 일순간 당황했지만 곧 짐짓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간단한 일이오. 시체 안치소에 신선한 시신 두 구를 주문해 두었지. 중요한 것은, 당신도 알다시피, 현대판 몰록(*페니키아의 신, 사람을 제물로 요구함의 상징)인 도시는 날마다 인명을 제물로 요구한다는 거요. 도시에서는 날마다 자연 법칙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교통사고로 몇 명씩 죽지 않소? 공장과 공사장 같은 데서 불행한 사고를 제하고서도. 

바로 그 파멸에 처할 운명이면서도 당장에는 ‘인생, 뭐 있어!’ 하고 부르짖으며 힘과 건강이 충만한 사람들이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오늘 조용히 잠드는 거요. 내일 아침 그들은 일어나서 자기네 생각대로 일터로 가려고 흥겹게 콧노래 부르며 옷을 갖춰 입을 거야. 근데 실제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만나러 가는 거지. 그 시간에 도시의 다른 끝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들의 형리가 될 운전수나 기관사가 역시 태연하게 노래 부르면서 옷을 갖춰 입을 거야. 

그렇게 희생자들은 자기네 아파트에서 나오고, 형리들은 도시 맞은편 끝에 있는 자기네 차고나 전차 데포에서 차를 몰고 나올 거요. 혼잡한 교통 흐름을 뚫고 그들은 서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사코 자기네 길의 운명적 접점까지 가까이 접근하지. 그 뒤 짧은 한순간에 개중 누군가가 멍하게 있다가 당하게 되는 거야. 교통사고 희생자 통계에 숫자 하나가 보태지지. 그들을 이 숙명적 접점으로 이끄는 경우는 수천 가지나 되오. 그럼에도 이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바늘 두 개가 순간적으로 겹치는 것처럼 정확하고 변함없이 일어날 거야.”

 

코른 교수가 로랑과 그렇게 말을 많이 나눈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는 갑자기 보너스를 두 배로 주겠다면서 너그러운 빛을 띠는 걸까? 

로랑의 머릿속에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농락하기 원해, 나를 매수하려고 드는 거야. 내가 많은 것을 짐작하거나 알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나를 매수할 수는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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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로랑이 실험실에서 머리를 보고 놀라다

 


 

4. 죽음인가, 아니면 살해인가? 

 

한번은 로랑이 잠들기 전에 의학 저널들을 훑어보다가 코른 교수의 새 논문을 읽었다. 이 논문에서 코른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했다. 그 발췌문들은 다 의학 저널과 서적들에서 따온 것인데, 로랑이 아침 작업 시간에 머리의 지시대로 밑줄을 그은 대목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다음 날 머리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자마자 로랑이 물었다.

“내가 없을 때 코른 교수는 실험실에서 무얼 하지요?”

머리가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와 나는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오.”

“그러니까 당신은 그를 위해서 중요한 대목들을 표시하는 건가요? 그런데 당신의 작업을 그가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짐작하고 있다오.”

“하지만 그건 묵과할 수 없어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내버려두지요?”

“내가 뭘 할 수 있겠소?”

“당신이 못하신다면, 내가 하겠어요!” 

로랑이 분개하여 외쳤다. 

 

“쉿, 조용히… 쓸 데 없는 일… 내 처지에서 저작권 운운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꼴일 게요. 돈? 그게 나한테 뭔가요? 명성? 그게 나한테 무엇을 줄 수 있겠소?.. 그리고… 그런 일이 폭로된다면 연구는 끝을 못 볼 거야. 한데 나는 연구가 완성되기를 바라오. 고백하자면, 내 연구 결과를 보고 싶은 거라오.”

로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코른 같은 사람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어요. 코른 교수는 처음 나를 면담할 때 당신이 불치병으로 숨졌고, 학술 연구를 위해 몸을 기증했다고 말하더군요. 그게 사실인가요?”

 

“글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 즉, 그건 사실인데... 전부 다 맞는 말은 아닐 수도 있다오. 우리 두 사람은 갓 죽은 시신에서 떼어낸 장기들을 되살리는 연구를 함께 했지. 코른은 나의 조수였다오. 당시 내 연구의 최종 목표는 몸에서 떼어낸 사람 머리를 되살리는 것이었소. 나는 준비 작업을 다 끝냈지. 

우리는 짐승들 머리는 이미 되살렸지만 사람 머리를 소생시키고 시연하게 될 때까지 연구 결과를 공표하지 않기로 했소. 이 마지막 실험을 앞두고, 그 성공을 난 확신했는데, 나는 내가 작성한 모든 연구 원고를 출간 준비하라고 코른에게 건네줬다오. 동시에 우리는 역시 해결책을 거의 다 찾은 다른 과학 문제도 함께 연구하고 있었지. 

그때 나한테 지독한 천식 발작이 일어났소. 그건 내가 의사로서 정복하려고 한 질병들 중의 하나였고, 나는 천식과 오랜 기간 싸우고 있었소. 우리 중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는 시간 문제였지. 내가 천식에게 패할 수 있음을 알았다오. 그리고 실제로 내 몸을 해부용으로 쓰라고 유언했어요, 비록 바로 내 머리가 살아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그런데… 이 마지막 발작 순간에 코른이 내 곁에서 의료 도움을 주었소. 나한테 아드레날린을 주사했는데, 어쩌면… 용량이 과다했던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천식이 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아스픽시아(*asphyxia, 호흡곤란, 질식) 뒤에 임종의 고통이 짤막하게 이어지고 죽음이 뒤따른 게요. 그 죽음이란 내게는 의식 상실일 뿐이었지만… 그 다음에 상당히 이상한 전이 상태를 체험했다오. 의식이 아주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목 부위의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의식이 깨어난 것 같았소.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오. 

당시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코른과 내가 개의 몸통에서 절단한 머리들을 되살리는 실험을 했을 때, 개들이 다시 깨어난 뒤에 극심한 통증을 겪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했었소. 개의 머리가 용기 안에서 얼마나 펄떡이든지, 어떤 때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들이 혈관들에서 툭툭 빠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절단 부위를 마취하자고 제의했다오. 그 부위가 마르지 않고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개의 목을 ‘린겐 록 도웰’이라는 특수 용액에 담갔지. 이 용액에는 영양분과 방부 물질, 마취 물질이 들어 있어요. 

 

내 목의 절단면도 그런 용액에 담기게 됐소. 그런 사전 조치가 없었다면 나는 깨어난 뒤에도 아주 빨리 다시 죽었을 게요. 우리 초기 실험 때 개의 머리들이 그렇게 죽었듯이.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 난 내 머리가 그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소. 모든 것이 흐릿했어, 마치 술을 억병으로 마신 뒤 누군가가 깨웠지만 아직 알코올 기운이 가시지 않을 때처럼. 그러나 내 뇌에서는 그래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오. ‘비록 흐릿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걸로 보면, 난 죽지 않았다는 뜻이야.’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채 나는 마지막 천식이 이상하게 발작했던 점을 곰곰이 생각했다오. 보통 나한테서 천식은 불현듯 발작했지. 그러다가 고통스러운 호흡곤란이 서서히 약화되곤 했는데, 하지만 발작을 일으킨 뒤에도 정신을 잃는 법은 결코 없었어. 그런데 마지막 발작은 뭔가 달랐소. 목 부위에서 느낀 강한 통증도 역시 새로운 것이었고. 이상한 점이 또 있었다오. 

 

난 전혀 숨을 쉬지 않으면서 호흡곤란을 겪지 않은 것 같았단 말이지. 호흡하려고 해 봤지만 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내 가슴을 느낄 수 없었어. 내 딴에는 가슴 근육들을 열심히 긴장시켰음에도 흉강을 넓히지 못하겠더군.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 ‘뭔가 이상해. 내가 잠을 자고 있거나 꿈을 꾸는 모양이야…’ 어렵사리 눈을 뜨게 됐어요. 사방이 캄캄해. 귓가에는 윙윙 소리만 들려. 다시 눈을 감았어… 

 

아가씨도 알고 있을 게요. 즉, 사람이 죽을 때 감각기관들이 일시에 스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미각을 잃고, 그 다음에 시력이 꺼지고, 그 다음에 청력이 사라진다오. 아마도 내 감각기관들의 복원은 거꾸로 된 모양이오. 시간이 얼마쯤 지난 뒤 나는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마치 아주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탁한 빛을 보았다오. 그 뒤 연녹색 안개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내 눈앞에서 코른의 얼굴을 희미하게 분간했고 동시에 그의 목소리를 이미 제법 명확하게 들었다오. ‘정신이 돌아왔습니까? 다시 살아난 모습을 보니 아주 기쁩니다.’ 

나는 의지를 다 모아서 더 빨리 정신을 차리게 됐소. 아래로 눈길을 돌리고는 바로 내 턱 밑에 놓인 탁자를 보았지. 그때는 이런 탁자가 없었고, 코른이 실험하느라고 서둘러 들여놓은, 주방용 같은, 평범한 탁자가 있었다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아. 

이 탁자 곁에, 조금 높은 곳에 다른 해부용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누군가의 머리 잘린 시신이 누워 있더군. 그걸 보면서 시신이 왠지 아주 친근한 것 같았어, 머리도 없고 흉곽이 열려 있음에도 말이오. 그리고 그 곁에 유리 상자 안에서 누군가의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있고… 

 

난 어리둥절하여 코른을 쳐다봤다오. 내 머리가 왜 탁자 위에 놓여 있고 내 몸이 왜 보이지 않는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 손을 뻗고 싶었지만 손을 느끼지 못했어. ‘무슨 일이오?’ 하고 코른에게 묻고 싶었지만 소리 없이 입만 달싹거릴 수 있었을 뿐이지. 한데 그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소. 그가 해부용 탁자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면서 ‘모르시겠어요?’ 하고 물었다오. ‘이게 당신 몸입니다. 이제 당신은 천식에서 영원히 벗어났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농담을 삼가지 않았어!.. 

비로소 난 모든 걸 깨달았다오. 솔직히 말해, 처음 한순간 난 비명을 지르고 탁자에서 굴러 떨어지고 나 자신과 코른을 함께 죽이고 싶었어… 아니, 그게 아니야, 꼭 그렇지는 않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길길이 날뛰어야 한다는 것을 뇌로는 알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나를 덮친 얼음장 같은 태연함에 스스로 놀랐다오. 어쩌면, 분개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세상을 국외에서 보면서 내 마음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난 얼굴만 찌푸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오. 내 심장이 유리 상자 안에서 뛰고 있고 인공심장을 달고 있는 마당에 내가 예전처럼 안달할 수 있었을까?

 

로랑이 깜짝 놀라서 머리를 쳐다봤다.

“그런데도... 그런 내막이 있었는데도 교수님은 그와 계속 일을 하는군요. 그가 아니었다면, 천식을 이겨내고 건강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날강도에다 살인자예요, 그리고 당신은 그가 명성의 절정에 오르도록 돕고 있어요. 당신은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기생충처럼 당신의 뇌 활동을 파먹고, 당신 머리에서 이를테면 창의적 발상의 탱크를 만들어, 그걸로 돈과 명성을 얻고 있어요. 한데 당신은!..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나요?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어요. 하나의 그루터기로 전락했어요. 한데 거기서는 당신의 고뇌와 더불어 갈망이 여전히 살고 있어요. 코른은 당신에게서 온 세상을 훔쳤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런 사람을 위해 어떻게 묵묵히 고분고분 일을 하실 수 있단 말인가요?”

 

머리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머리 주제에 폭동이라도 일으켜야 하나? 시도할 수 있겠지. 한데 이 꼴로 뭘 할 수 있었겠소? 인간의 마지막 가능성, 즉 자살할 수단마저도 잃은 마당에.”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연구하기를 거부할 수는 있었잖아요!”

 

“아가씨가 정 듣기 원한다면... 그런 짓도 벌써 해 보았다오. 그러나 내가 저항했던 것은 코른이 내 사유 기구를 이용하기 때문은 아니었소. 궁극적으로 저자나 발명자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창의가 세상에 나와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내가 저항한 까닭은 새로운 존재에, 존재 양식에 익숙해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라오. 난 생명이 꺼지기를 더 바랐어… 그즈음 나한테 벌어진 일화를 하나 얘기하리다. 

언젠가 혼자 실험실에 있을 때, 창문으로 커다란 딱정벌레가 불쑥 날아들었소. 대도시 한복판 어디서 그런 녀석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모르지요. 교외에 나갔던 자동차에 묻어서 왔을 수도 있겠지. 딱정벌레는 내 위에서 빙빙 맴돌다가 내 탁자의 유리판 위, 내 곁에 앉았다오. 쫓아낼 수도 없는 그 흉측한 벌레를 나는 눈동자만 빼뚜름하게 돌린 채 주시했지. 딱정벌레가 반들반들한 유리판 위에서 미끄러져 기우뚱대면서도 많은 관절들을 부지런히 사각거리며 천천히 내 머리 쪽으로 다가왔다오. 

모르겠어, 당신이 내 얘기를 이해할지… 난 그런 벌레들을 아주 싫어했다오. 혐오감이 커서 손가락으로 건드리지도 못했지. 그런데도 그 하찮은 적수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기만 했다오. 그 녀석은 내 머리를 비행에 적당한 도약대로 알았는지, 다리들을 사각거리면서 천천히 계속 다가왔다오. 얼마 동안 애를 쓰더니 턱수염에 들러붙었어. 수염 속에서 오랫동안 버둥거리며 헤매면서도 한사코 더 위로 올라왔어요. 굳게 닫힌 입술을 지나고 코 왼편으로 기어오르고 살짝 뜨고 있는 왼눈을 거쳐서 결국 이마까지 올라왔다가 유리판으로 떨어지고, 거기서 또 바닥으로 떨어졌다오. 하찮은 사건이지. 그러나 나는 거기서 충격적인 인상을 받은 게요… 

 

그리고 코른이 들어왔을 때, 학술 연구를 더 이상 공동으로 진행하지 못하겠다고 극력 거부했소. 그가 내 머리를 공개적으로 선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오. 필요가 없다면 그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머리를 굳이 곁에 둘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를 죽이겠지. 그게 내 속셈이었어. 

둘 사이에 냉전이 시작됐소. 그가 상당히 가혹한 조치를 취하더군. 한번은 밤늦은 시간에 전기 기구를 들고 와서 내 관자놀이에 양 전극을 부착하고는 아직 전류는 흘리지 않은 채 말을 거는 거요. 팔짱을 끼고 서서 진짜 종교재판관처럼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더군. 

 

코른이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협박과 회유를 가하다

     

‘친애하는 동료여. 지금 우리는 두꺼운 벽 안에서 서로 눈을 맞대고 둘만 있소이다. 벽이 더 얇다 해도 상관은 없어요, 왜냐면 당신은 소리를 지를 수 없으니까. 당신은 완전히 내 손아귀에 들어 있어요. 당신에게 가장 악랄한 고문을 가하고도 난 처벌을 피할 수 있소. 하지만 고문 따위가 왜 필요하겠소? 우리는 둘 다 과학자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난 알아요. 하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지요.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힘겨운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어요. 또 당신은 내가 없을 때조차 혼자 힘으로는 달아날 수도 없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가 평화롭게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당신은 우리 연구를 계속하게 될 거요…’

 

나는 거부한다는 표시로 눈썹을 움직였고, 내 입술이 ‘아니야!’ 하고 소리 없이 속삭였어. 그러나 그는 계속 입을 놀렸지. 

‘당신은 나를 아주 괴롭게 만드는군요. 권련을 피우고 싶지 않습니까? 니코틴이 혈관으로 흡수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폐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담배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는 걸 알지요. 그러나 그래도 익숙한 느낌은 있을 테니…’ 

그러고는 담배케이스에서 권련을 두 개비 꺼내 하나는 자기가 피우고 다른 하나는 내 입에 물렸지. 그 담배를 내뱉으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그걸 보고서 그가 여전히 정중하고 화나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더군. 

 

‘아, 좋아요, 동료. 당신은 나로 하여금 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만드는군요...’ 그러더니 전류를 흘려보내는 거요. 마치 불에 달군 송곳이 내 뇌를 후벼 파는 것만 같은데… ‘이제 기분이 어떠시오?’ 그가 의사가 환자에게 하듯이 나한테 배려하는 투로 물었다오. ‘머리가 지끈거려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나요? 그러려면 오로지...’ ‘아니야!’ 하고 내 입이 대꾸했소. ‘정말이지 아주 안 됐구려. 전압을 좀 더 올려야겠소. 당신은 꽤나 나를 힘들게 하는군요.’ 

그러고는 얼마나 강한 전류를 흘렸는지 내 머리가 타버리는 것만 같았다오. 그 통증을 견딜 수가 없었어. 나는 이를 부드득 갈았지. 의식이 희미해졌어. 아예 혼절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오. 그저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윽물기만 했지. 코른이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은근한 불로 내 머리를 계속 지졌어. 

 

하지만 그런 가혹한 수단을 동원해서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오. 눈을 떠 보니 내 완고함에 광분하는 모습이 보이더군. ‘빌어먹을! 당신 뇌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벌써 기름에 튀겨서 오늘이라도 개한테 먹였을 거야. 퉤, 고집불통 같으니!’ 그러고는 내 머리에서 전선들을 거칠게 떼어내고는 사라졌지. 

그러나 내가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어요. 그가 곧 돌아와서 내 머리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용액에 자극적인 물질을 집어넣기 시작한 거요. 그 물질은 가장 고통스러운 통증을 내게 일으켰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자 그가 묻더군. ‘어떤가요, 동료, 마음을 정했소? 그래도 여전히 아닌가?’ 난 굴하지 않았다오. 그가 숱한 저주를 퍼부으면서 더 화를 내며 나갔어. 내가 이긴 거지. 며칠 동안 코른은 실험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날마다 죽음이 나를 구해주기만을 기다렸다오. 

닷새째 되는 날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면서 들어오더군. 나한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혼자서 계속 작업하기 시작했어. 이틀인가 사흘 동안 나는 실험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그를 관찰하기만 했소. 하지만, 아아, 나 스스로가 그 연구에 바짝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소. 그가 실험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 있는 실수를 몇 가지 저질렀을 때,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신호를 보냈다오. 그가 흐뭇한 얼굴로 ‘진작 그랬어야지!’ 하고 말하고는 내 목구멍에 공기를 집어넣었다오. 나는 그에게 무엇이 오류인지를 설명했고, 그 뒤로도 연구를 계속 지도하게 된 것이라오… 그가 내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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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벨랴예프, 도웰 교수의 머리

 


 

3. 머리가 말하기 시작하다 

 

로랑이 금지된 밸브의 비밀을 알게 된 뒤로 일주일쯤 흘렀다. 

그 동안에 로랑과 머리 사이에는 한층 더 돈독한 관계가 맺어졌다. 코른 교수가 대학이나 병원으로 가는 시간에, 로랑은 밸브를 열고 머리가 웬만큼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공기를 목구멍으로 보냈다. 로랑도 나직이 말했다. 둘은 자기네 대화를 흑인이 듣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그들의 대화가 도웰 교수의 머리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두 눈에 생기가 더 돌게 되고, 양미간의 슬픈 주름들조차 매끈하게 펴졌다. 

머리는 강요된 침묵의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기꺼이 말을 많이 했다.

 

간밤에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를 꿈에서 보고는 눈을 떠서 생각했었다. ‘도웰의 머리도 꿈을 꿀까?’

그 얘기를 하자 머리가 나직이 속삭였다.

“꿈이라… 그래요, 나도 꿈을 꾸지요. 한데 꿈이 나한테 슬픔과 기쁨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주는지는 모르겠소. 꿈에서 나는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데 깨고 나면 두 배로 더 불행해진단 말이오. 신체와 정신, 양면에서 다 박탈된 사람이 되는 거라오. 사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것을 다 빼앗긴 게 아니겠소? 오로지 생각하는 능력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머리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데카르트의 인용으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요, 나는 존재하오...”

“무슨 꿈을 꾸시나요? 꿈에서 무엇을 보지요?”

“지금 같은 모습의 자신은 한 번도 못 봤다오. 예전... 내 모습을 본다오. 식구들과 친구들도 보고… 얼마 전에는 죽은 아내를 만나서 우리 사랑의 봄날을 함께 맛봤지. 베티는 언젠가 자동차에서 내리다가 다리를 다쳐서 나를 찾아왔어요. 우리는 내 진료실에서 처음 알게 됐다오. 우리 둘은 왠지 금방 가까워졌어요. 다섯 번째 방문 때 내가 그녀에게 책상 위에 놓인 내 약혼녀의 사진을 보라고 했다오. ‘그녀가 승낙한다면 난 그녀와 혼인할 겁니다’ 하고 말하니까, 그녀가 책상으로 다가와서 거기 놓인 작은 거울을 봤어요.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지. ‘내 생각에… 그녀는 거부하지 않을 거예요.’ 일주일 뒤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다오. 그 장면이 얼마 전 꿈에 나타난 게요… 

베티는 여기 파리에서 죽었다오. 나는 유럽 전쟁 때 외과의사로서 아메리카에서 여기로 오게 됐어요. 여기 대학에서 자리를 제의받고 나에게 소중한 묘지 곁에서 살기 위해 눌러앉았지. 아내는 정말 놀라운 여인이었어…”

머리의 얼굴이 회상에 잠겨 환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일 뿐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아아,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

머리가 생각에 잠겼다. 공기가 목구멍을 통과하면서 스스스 소리가 났다. 

 

“간밤에는 아들 꿈을 꾸었다오. 아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꼴을 보여줄 만한 용기가 안 나… 아들에게 난 죽은 사람이라오.”

“아드님은 다 컸나요? 지금 어디 있지요?”

“그래요, 어른이 됐지. 아가씨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을 게요.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잉글랜드 이모 집에 있을 거야. 아니, 꿈을 꾸지 않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머리가 계속 말했다. 

 

“꿈만이 아니오. 거짓된 감각도 나를 생생하게 괴롭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때로는 나에게 몸뚱이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오. 온 가슴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기지개를 켜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싶어지는 게요. 마치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처럼, 뜬금없이 그런 욕망이 들지. 또 어떤 때는 통풍 때문에 왼발에서 통증을 느끼지. 

당신도 의사니까 이해는 하겠지만, 그래도 우스꽝스럽지 않소? 통증이 얼마나 생생한지 나도 모르게 눈길이 아래로 돌아가요. 하지만 유리판 너머 내 밑으로는 텅 빈 공간과 대리석 바닥만 보일 뿐… 이따금씩 호흡곤란이 발작적으로 시작될 것만 같아, 그럴 때면 적어도 천식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 ‘죽은 존재’에 제법 만족하고... 그런 건 다 언젠가 육체의 생명과 연관됐던 뇌세포들이 순전히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끔찍해라!..” 

그 대목에서 로랑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끔찍하지… 이상하게도 생전에 난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 사실 연구에만 몰두해서 내 몸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오. 몸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잃은 것을 느끼다니. 지금은 숲정이 어딘가에 있는 꽃들과 향긋한 건초 냄새를, 오랜 산보와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 따위를 평생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해… 

후각과 촉각을 비롯해 다른 감각들도 아직 다 잃지는 않았지만 감각 세계의 많은 형상과는 단절됐다오. 숲의 향기, 아름다운 석양, 새들의 지저귐 따위 수많은 다른 느낌들과 연관될 때 들판의 건초 냄새가 좋지. 인공적인 향기가 내게는 자연적인 향기를 대신할 수 없을 거요. 꽃향기 대신 ‘장미’라는 상표의 향수 냄새? 그런 건 배고픈 사람에게 파이는 없는 파이 냄새처럼 나를 썩 만족시키지 못할 거요.

몸을 잃으니까 세상도 다 잃게 됐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물들의, 쥐고 만지고 동시에 자기의 몸과 자신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물들의 매혹적인 세계를 잃은 거요. 아아, 굴러다니는 조약돌의 무게를 내 손안에서 느끼는 기쁨 하나만 맛본다면 내 괴물 같은 존재를 기꺼이 다 내놓을 텐데! 아침마다 내 얼굴을 닦아줄 때, 스펀지의 접촉이 나에게 얼마나 만족을 주는지 아가씨가 알아준다면 좋겠소. 사실 촉감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실제 사물들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야, 내 혀끝으로 마른 입술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정도지.”

 

그날 저녁 로랑은 얼빠진 상태로 두려움에 떨며 귀가했다. 늙은 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간단한 먹을거리와 차를 내왔다. 그러나 로랑은 샌드위치에 손도 대지 않고 레몬차를 급하게 비운 뒤 자기 방으로 가려고 일어났다. 어머니의 주의 깊은 눈길이 그녀에게 쏠렸다. 

 

“기분이 안 좋으니, 마리?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아니, 괜찮아요, 마마, 그냥 피곤하고 두통이 좀 있어요…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래요. 나아지겠지.”

어머니가 딸을 보내고는 한숨을 내쉬며 혼자 골똘히 생각했다. 

 

새 일터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딸 마리는 많이 변했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폐쇄적이 되었다. 엄마와 딸은 늘 아주 친한 친구처럼 지내왔고, 둘 사이에 비밀이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비밀이 생긴 것이다. 노부인은 딸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장 일에 관해 묻기라도 하면 마리는 아주 짤막하고 막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코른 교수는 의학적 측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환자들을 위해 자택에 진료소를 열고 있어요. 그 환자들을 돌보는 게 일이에요.” 

“어떤 환자들인데?”

“여러 부류예요. 아주 위중한 경우도 더러 있고…”

마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노부인은 그런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알아보기도 했지만, 딸한테서 들은 것보다 더 많이 알 수가 없었다. 

‘딸이 코른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닐까, 무망하게?..’ 

그런 생각도 해 보다가 곧 지우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딸은 숨기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마리는 여자로서 정말 좋은 사람이잖아? 코른은 독신이야. 만약에 마리가 사랑하기만 한다면, 코른도 응당 버티지 못할 것이야. 세상 어디에 마리 같이 괜찮은 여자가 또 있겠어? 아니야, 여기엔 뭔가 다른 내막이 있어…

노부인이 두툼한 깃털 요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잠자는 것처럼 보이려고 불을 껐지만, 어둠 속에서 마리 로랑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침대 위에 앉았다. 머리가 한 말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그런 상태에 있는 자신을 그려 보려고 애썼다. 그래서 혀로 입술과 입천장, 치아를 가볍게 건드려 보고는 생각했다

‘머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야 이게 전부야. 입술과 혀끝을 깨물 수 있고, 눈썹을 꿈틀거리고, 눈알을 굴리고, 눈을 감았다 뜨고, 입과 두 눈을 움직이고. 그 외에는 움직일 수가 없어. 아니, 이맛살도 약간 접었다 펼 수 있지. 그게 전부야…’

마리가 두 눈을 감았다 뜨면서 표정을 일그러뜨리곤 했다. 아아, 그런 딸을 그 순간에 노부인이 보았다면! 어머니는 딸이 정신 나갔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신의 어깨와 무릎, 두 팔을 차례로 감싸 안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숱이 많은 머리털을 손으로 빗어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오, 맙소사!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런데도 여태 그런 걸 모르고 살아 왔다니!

 

젊은 몸이 피로를 느꼈다. 마리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러자 도웰의 머리가 보였다. 그 머리는 그녀를 슬픈 눈길로 뚫어져라 응시했다. 머리가 탁자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허공을 날았다. 마리가 머리 앞에서 내달렸다. 코른이 솔개처럼 머리통으로 달려들었다. 구불구불한 낭하들이 나오고… 육중한 문들이… 마리가 문들을 열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코른이 머리를 따라잡았으며, 머리가 무슨 비명 같은 소리를 냈고, 이미 귓가에서 스스스 소리가 들리고… 마리는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고, 그 빠른 고동에 온몸이 호응한다. 등에서 차가운 전율이 번쩍 스쳐 지나가고… 그녀가 나타나는 문들을 계속 열고… 아아, 참으로 무서웠다!..

 

“마리! 마리! 왜 그러니? 눈을 떠 보렴, 마리! 신음까지 하는구나…”

그건 이미 꿈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베개 곁에 서서 놀란 눈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악몽을 꾸었을 뿐이야.”

“요즘 들어 너무 자주 흉측한 꿈을 꾸는구나, 얘야…”

노부인이 탄식하며 나간 뒤에도 마리는 한동안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누워 있었다. 심장이 강하게 고동쳤다. 

“하지만 내 신경은 끄떡없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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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로랑이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다.

 


 

2. 금지된 밸브의 비밀 

 

마리 로랑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아버지가 남긴 작은 재산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 공부도 하고 가족 부양도 해야 했다. 몇 해 동안 신문사에서 야간 교정원으로 일했다. 의사 자격을 얻고 일자리를 찾기는 했는데, 헛수고만 한 셈이 됐다. 

황열병이 기승을 부리는 뉴기니의 재난 장소로 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병든 엄마와 함께 거기로 가는 것도, 엄마와 떨어지는 것도 다 원치 않았던 것이다. 코른 교수의 제의가 그녀에겐 탈출구였다. 

괴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의 주저하지 않고 동의했다. 코른 교수가 사전에 그녀에 관해 면밀하게 뒷조사했다는 사실을 로랑은 알지 못했다. 

 

코른의 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벌써 두 주가 됐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머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기구들을 낮 동안에 관리해야 했다. 밤에는 존이 교대했다. 

코른 교수가 용기들 곁에 있는 밸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설명했다. 머리의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굵은 관이 나오는 큰 실린더를 가리키면서, 코른은 그 실린더 밸브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아주 엄하게 당조짐했다. 

“밸브를 건드리면 머리는 즉사할 거요. 머리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체계와 이 실린더의 중요성을 조만간 설명해 주겠소. 일단 기구들을 다루는 법만 알아 두시오.”

하지만 코른은 설명하기를 서둘지 않았다. 

 

머리의 콧구멍에 작은 체온계가 깊숙이 꽂혀 있었다. 정해진 시각에 그걸 빼서 온도를 기록해야 했다. 용기들에도 온도계와 기압계가 많이 달렸다. 로랑이 액체 온도와 용기들의 압력을 검사하고 확인했다. 잘 조정된 기구들이 제 시각마다 정확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특별히 바쁠 일은 없었다. 머리의 관자놀이에 부착된 기구가 특히 예민하게 맥박을 표시했다. 하루 밤낮이 지나면 기록 용지를 갈았다. 용기들의 내용물은 로랑이 없을 때, 일터에 도착하기 전에 채워지곤 했다. 

 

로랑은 점차 머리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기까지 했다.

신선한 대기 속에서 걸어오느라고 아침에 두 볼이 발갛게 된 채 로랑이 들어서자, 그녀를 보고 머리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으며 인사하는 표시로 눈꺼풀을 가볍게 떨었다. 

 

마리 로랑의 출근

 

머리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머리와 로랑 사이에는 아주 제한적이긴 해도 일정한 언어가 곧 설정됐다. 눈꺼풀을 내려뜨리는 것은 ‘예스’, 치켜 올리는 것은 ‘노’라는 뜻이었다. 소리 없이 달싹이는 입도 조금 도움이 됐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로랑이 말을 걸자 머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눈꺼풀을 내려뜨렸다. ‘좋아요. 고마워요.’ 하는 뜻이었다.

“간밤엔 어떻게 보냈어요?”

역시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을 걸면서 로랑은 오전에 할 일들을 민첩하게 처리했다. 기구들과 온도, 맥박을 확인하고 일지를 꼬박꼬박 적었다. 그 다음에는 알코올 섞은 물을 부드러운 스펀지에 묻혀서 머리의 얼굴을 아주 조심스레 씻고 탈지면으로 귓바퀴를 닦아냈다. 속눈썹에 걸린 솜뭉치를 떼어냈다. 눈과 귀, 코, 입도 닦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입과 코에는 특별한 관들을 집어넣었다. 머리도 빗어 주었다. 

그녀의 손길이 민첩하고 능숙하게 머리를 건드렸다. 머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랑도 상쾌한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정말 날이 좋아요. 하늘이 그렇게 푸를 수가 없어요. 차가운 공기는 또 얼마나 상큼한지! 온 가슴으로 들이마시고 싶어지지요. 이제 봄기운을 물씬 머금은 태양이 얼마나 환하게 비치는지 보세요.”

도웰 교수의 입매가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두 눈이 우울하게 창밖을 내다보다가 로랑에게 돌아와 멈췄다.

 

그녀가 뺨을 붉게 물들이면서 속으로 자신을 가볍게 책망했다. 

감수성 예민한 여성의 본능으로 그녀는 머리에게 불가능한 것이나 신체적 존재의 괴이함을 연상시키는 말은 일체 피하려고 했다. 자연에 의해 모욕된, 고립무원의 아이를 대하듯이 로랑은 머리에게 엄마로서의 연민 같은 감정을 맛보았다.

자신의 부주의한 발언을 덮으려고 로랑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 이제 일을 시작하지요!”  

 

아침마다 코른 교수가 들어오기 전까지 머리는 독서에 몰두했다. 로랑이 최신 의학 잡지와 서적들을 산더미처럼 들고 와서 보여주면, 머리는 그것들을 다 읽었다. 필요한 논문에서는 두 눈썹을 꿈틀거렸다. 로랑이 저널을 퓨피트르(pupitre)에 올려놓으면 머리는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로랑은 머리의 눈길을 보면서 머리가 어떤 줄을 읽는지 알아차리고 적절한 순간에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페이지에 표시할 필요가 있을 때면 머리가 신호를 보내고 로랑이 머리의 눈길을 따라 손가락으로 줄을 짚어가며 종이 위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머리가 어떤 대목을 왜 표시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머리의 빈약한 표정 언어로는 마땅한 설명을 듣기 힘들다고 여겼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 코른 교수가 없을 때 그의 서재를 지나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저널들을 보았는데, 그건 머리의 지시에 따라 그녀가 밑줄을 그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종이에는 그 표시된 대목들을 코른 교수가 직접 옮겨 적은 것이 있었다. 그걸 보고서 로랑이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그때 일을 기억하고서 로랑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쩌면 머리가 어떤 식으로든 대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말 좀 해 보세요, 우리가 왜 학술 논문들의 어떤 대목을 표시하는 거지요?”

도웰 교수의 얼굴에 답답하여 불만스럽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머리가 뭔가를 말하는 눈빛으로 로랑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목구멍으로 굵은 관이 이어지는 밸브에 눈길을 돌리고는 눈썹을 두 번 추켜올렸다. 그건 부탁한다는 표시였다. 금지된 밸브를 열어 달라고 하는 것임을 로랑이 깨달았다. 

 

머리가 그런 부탁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로랑은 머리의 바람을 나름대로 해석하곤 했다. ‘머리가 사는 게 낙이 없어 스스로 명줄을 끊고 싶어 하나 봐.’ 그래서 금지된 밸브를 열지 않으려고 했다. 머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장본인이 되고 싶지 않았으며, 책임이 돌아오고 일자리를 잃을까 겁을 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질겁하여 대답했다. 

“아니, 안 돼요. 이 밸브를 열면 당신은 죽어요. 난 당신이 죽는 걸 원치 않아요. 죽게 할 수 없어요.” 

무기력감과 답답함 때문에 머리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머리가 눈꺼풀과 눈을 세 번이나 위로 치켜 올렸다. 

그건 ‘아니, 아니야, 난 죽지 않아요!’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로랑이 망설였다.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와 친해지다.

 

머리가 소리 없이 입을 달싹였다. 그건 마치 ‘열어요. 제발 열어 줘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랑의 호기심이 바짝 달아올랐다. 여기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머리의 두 눈에 끝없는 우수가 반짝였다. 두 눈은 부탁하고 간청하고 요구했다. 인간 사유의 모든 힘이, 긴장된 의지가 바로 그 눈길에 다 집중된 것만 같았다. 

로랑이 마음을 고쳐먹었다. 

밸브를 조심스레 열 때 심장이 강하게 고동치고 손이 떨렸다. 

그 즉시 머리의 목구멍에서 스스스 하는 소리가 새나왔다. 가녀리고 희미하고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망가진 축음기처럼 덜컥대며 쉭쉭 하는 소리였다.

 

“고-맙-구려... 아-가-씨...”

 

금지된 밸브가 열리면서 실린더 안에 응축돼 있던 공기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공기가 머리의 목구멍을 통과하며 성대를 움직이자 머리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데 목구멍과 성대의 근육들이 이미 정상으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머리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공기는 스스스 소리를 내면서 계속 목구멍에서 새나왔다. 목 부위의 신경 줄기들이 끊어져서 성대 근육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소리는 희미하고 덜그럭거리는 음색을 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의 얼굴에 모처럼 만족스러운 기색이 피어났다. 

 

그 순간 서재 쪽에서 발소리와 자물쇠 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실험실의 문은 늘 서재 쪽에서 잠겨 있었다.) 로랑이 황급히 밸브를 닫았다. 목구멍에서 스스스 하는 소리가 멈췄다. 

 

코른 교수가 들어섰다. 

(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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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상과학(SF)소설의 효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에게 저널 기사를 읽어 주다

 


 

1. 첫 만남 

 

“앉으시오.”   

마리 로랑이 가죽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실었다. 

코른 교수가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는 동안 그녀가 서재를 대충 둘러보았다.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방이야! 

그러나 여기서 어떤 작업을 하기는 딱 좋아 보였다. 주의를 어지럽히는 것이 하나 없으니 말이다. 썰렁한 갓이 달린 램프 불빛이 책들과 원고, 교정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 위로 쏟아졌다. 흑단으로 짜인 육중한 가구들이 겨우 눈에 잡혔다. 검은 벽지, 검은 커튼. 묵직한 책장들에 꽂혀 있는 금박 표지들만이 어둠침침한 방안에서 반짝거렸다. 오래 된 벽시계의 기다란 추가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로랑이 코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 교수 자신이 서재 스타일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참나무로 깎은 듯한 묵직하고 준엄한 모습이 가구들의 일부처럼 보였다. 대모테가 둘린 커다란 안경은 시계 숫자판을 연상시키는데, 렌즈 뒤편에서 잿빛 두 눈이 편지글의 줄과 줄을 오가면서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각이 진 코, 일직선으로 찢어진 눈과 입, 앞으로 내민 각진 턱 때문에 얼굴이 입체파 조각가가 빚은 주물 장식 마스크처럼 보였다. 

 

‘저런 마스크가 벽난로 장식에 잘 어울릴 텐데.’ 

로랑의 생각이 코른 교수의 굵직한 목소리 때문에 깨졌다.  

“내 동료 사바티한테서 벌써 당신 얘기를 들었소. 그래요, 나한테는 조수가 필요하오. 당신은 의사요? 아주 좋아. 일당은 40 프랑이고, 주급으로 정산하리다. 조반과 점심은 제공되고.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마른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리던 코른 교수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코른과 로랑의 면담

 

“당신은 입을 다물 줄 아시오? 여자들은 다 수다스럽지. 당신이 여자라는 점이 흠이오. 게다가 예쁘기 때문에 더 안 좋아요.”

“무슨 뜻인지…”

“빤한 거 아니겠소. 아름다운 여성은 두 몫을 하지. 즉, 여성적 결함도 두 배로 크다는 뜻이오. 당신에겐 이미 남편이나 친구, 아니면 약혼자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비밀 준수란 물 건너 간 거요.”

“하지만…”

“그런 말조차 불필요하단 말이오! 물고기처럼 말이 없어야 하오. 여기서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이라도 입 밖에 내면 안 된다는 뜻이오. 조건을 이해하겠소? 미리 경고하는데, 이 조건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는 큰 불상사가 따를 것이오. 지극히 불쾌한 일이.”

로랑이 당혹감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꼈다. 

 

“동의합니다. 만일 이 일이…”

“범죄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요? 그 점에서는 염려 놓으시오. 그리고 당신이 책임질 일도 없으니까… 당신의 신경은 정상이오?”

“네, 건강해요…”

코른 교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족력에 알코올 중독자나 신경쇠약 환자, 간질병자, 광인 같은 이들은 없었소?”

“없었습니다.”

코른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마르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탁자에 설치된 초인종 단추를 눌렀다. 

 

서재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사진 음화처럼 어둠침침한 방안에서 로랑이 본 것은 흰자위뿐이었다. 그러더니 흑인의 번들거리는 얼굴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검은 두발과 의복이 문에 걸린 검은 커튼과 하나로 합쳐졌다. 

“존! 마드무아젤 로랑에게 실험실을 보여 줘라.”

흑인이 고개를 숙인 뒤 로랑에게 따라오라고 신호하면서 맞은편에 난 문을 열었다. 

 

로랑이 들어선 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스위치를 올리자 네 개의 반투명 전구에서 선명한 불빛이 방안에 쏟아졌다. 로랑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두컴컴한 서재에 적응됐던 두 눈이 하얀 벽들 때문에 어지러웠다. 번쩍이는 수술도구가 들어 있는 장들의 유리도 빛을 반사했다. 로랑이 잘 모르는 철제 기구와 알루미늄 도구 등속이 차가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불빛이 따스하고 누런 반점처럼 구리로 덮인 부분들로 내려앉았다. 여러 개의 관이며 나선형 파이프, 플라스크, 유리 실린더… 유리, 탄성 고무, 금속…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해부용 탁자가 있고 탁자 곁에 유리 상자가 있는데, 그 안에서는 사람의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그 심장에서 나온 관들이 가스용기 같은 통들로 이어졌다. 

로랑이 무심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뭔가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사람의 머리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몸통이 없이 덩그러니 놓인 사람 머리가 말이다! 

 

머리는 장방형 유리판 위에 고정돼 있는데, 그 유리판을 네 개의 키 높고 눈부신 금속 다리가 받치고 있었다. 잘린 동맥과 정맥들에서 나온 관들이 쌍을 이루어 유리 구멍을 거쳐서 가스용기 같은 통으로 이어졌다. 더 굵은 관이 목구멍에서 나와 커다란 실린더에 연결됐다. 실린더와 용기들에는 밸브들과 압력계, 온도계, 또 로랑이 알지 못하는 기구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머리는 눈꺼풀을 끔뻑이면서 쓸쓸한 눈길로 로랑을 자세히 살펴보는 참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머리는 살아 있었다. 몸에서 떨어진 채 독자적으로 의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가운데서도 로랑은 이 머리가 얼마 전에 죽은 저명한 외과의사 도웰 교수와 똑 닮았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갓 숨진 시신에서 절개한 기관들을 소생시키는 실험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놀라운 공개 강연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넓은 이마와 특징적인 프로필, 숱이 많고 약간 서리가 앉은 아마 빛 머리털, 푸른 눈동자 따위를 로랑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래, 그건 바로 도웰 교수의 머리였다! 단지, 입술과 코가 더 가늘어지고 관자놀이와 양 볼이 늘어졌으며 두 눈이 더 움푹 패고 흰 피부가 미라처럼 암황색을 띠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두 눈에는 생기가 보이고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그 푸른 눈동자에서 로랑이 넋 나간 사람처럼 눈길을 떼지 못했다. 

머리가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아서 로랑이 거의 혼절할 뻔했다. 

흑인이 그녀를 부축하여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아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로랑이 중얼거리면서 안락의자에 앉자 코른 교수가 입을 꾹 다문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말해 주십시오. 이 머리는 그?..”

“도웰 교수의 것이냐고? 그렇소, 그의 머리요. 내가 존경하는 동료이며 죽은 뒤에 내 손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도웰의 머리지. 아쉽게도 머리만 살릴 수 있었소. 일거에 모든 게 다 되지는 않아요. 가엾은 도웰은 현대 의학으로서는 불치의 병으로 고생했소. 숨을 거두면서 그는 우리가 함께 진행한 과학 실험을 위해 자기 몸을 기증했소. 유언도 남겼지. ‘내 삶은 온통 과학에 바쳤네. 나의 죽음도 과학에 득이 되도록 하게나. 내 시신을 무덤의 벌레들보다는 친구이자 과학자인 자네가 파헤치기를 더 바란다네.’ 그래서 내가 그의 시신을 떠맡게 됐소. 

그리고 그의 심장만이 아니라 의식까지 되살리고, 이른바 ‘영혼’을 소생시킬 수도 있었지. 이 일에 끔찍한 것이 무에 있단 말이오? 사람들은 여태껏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간주해 왔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이 인류의 천년 꿈이 아니었던가?” 

“나라면 그런 소생보다는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그 말에 코른 교수가 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렇소, 그런 상태로는 소생한 사람에게 불편한 점이 있지. 그런... 불충분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나타나는 것이 가엾은 도웰에게는 편치 않았을 거요. 그래서 우리는 이 실험을 비밀로 하는 거요. ‘우리’라고 말하는 까닭은 도웰 자신도 그걸 바라기 때문이지. 그리고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오.”

 

“한데 도웰 교수가, 그러니까 그분의 머리가 그런 희망을 어떻게 피력했지요? 머리가 말을 할 수 있나요?”

코른 교수가 일순간 당황했다. 

“아니… 도웰 교수의 머리는 말을 하지 못하오. 그러나 듣고 이해하고 표정으로 대답할 수는 있지…”

그러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그치듯이 물었다. 

“자, 나의 제안을 수락하는 거요? 아주 좋아, 내일 오전 아홉 시에 오시오. 그러나 명심하시오. 함구, 함구, 또 함구!”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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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옮김

 

도웰 교수의 머리 표지

 


 

차례

 

1. 첫 만남 

2. 금지된 밸브의 비밀

3. 머리가 말하기 시작하다  

4. 죽음인가, 살해인가? 

5. 대도시의 희생자들 

6. 실험실의 새로운 거주자들 

7. 머리들이 기분을 전환하다 

8. 하늘과 땅 

9. 선과 악 

10. 죽은 다이애나 

11. 탈출한 전시품 

12. 끝까지 부른 노래 

13. 수수께끼 여인 

14. 흥겨운 뱃놀이 

15. 파리로 가자! 

16. 코른 교수의 제물 

17. 라위노 의사의 병원 

18. ‘미친 사람들’ 

19. ‘힘든 케이스’ 

20. 신입 환자 

21. 탈주 

22. 생사의 갈림길에서

23. 다시 몸통을 잃다 

24. 톰이 두 번째 죽다 

25. 음모자들 

26. 상처뿐인 승리 

27. 마지막 만남 

 


 

작가 소개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작가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1884-1942). 

러시아 공상과학 작가. 소련 공상과학소설 창시자들 중 한 사람. 

<도웰 교수의 머리>, <양서류 인간>, <아리엘> 등 70편이 넘는 공상과학소설을 남겼다. 

개중에 13편은 중편과 장편. 러시아의 ‘쥘 베른’이라 불린다.

 

스몰렌스크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뜻에 따라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졸업할 때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부친이 죽은 뒤 돈을 벌어야 했다. 가정교사, 극장 간판 그리기, 서커스 악단에서 바이올린 연주 등을 했다. 이후 23세에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꽤 인정받는 법률가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외국 여행에 나서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30세에 문학과 극장(연극)에 전념하기 위해 법률가 일을 그만두었다. 

 

35세에 결핵성 늑막염에 걸렸는데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해 척추결핵으로 번지면서 다리까지 마비됐다. 3년 깁스 상태를 포함해 모두 6년 동안 중병으로 침대 생활을 해야 했다. 젊은 아내는 병든 남편을 돌보기 위해 혼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을 떠났다. 전문적인 치료와 요양을 위해 모친과 함께 얄타로 옮겼으며, 거기 병원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기개발에 힘써서, 에스페란토를 비롯해 몇 개 외국어와 의학, 생물학, 역사, 공학을 독학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특히 ‘과학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쥘 베른, 영국의 과학소설가 허버트 웰스, 현대 러시아 항공우주공학과 로켓 기술의 창시자인 쫄꼽스끼(Tsiolkovsky)에 푹 빠졌다

 

3년 자리보전 끝에 병마를 이기고 38세에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일하기 시작. 이듬해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겨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 시작. 공상과학 단편과 중편들을 여러 저널에 잇달아 발표. ‘러시아의 쥘 베른’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1925년 중편 <도웰 교수의 머리>를 발표. 이 작품을 그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이라고 불렀는데, ‘몸통 없는 머리가 무엇을 겪을 수 있는지’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난파선들의 섬>, <아틀란티스에서 온 최후의 1인> 등을 쓰고 단편집을 출간했다. 1928년 레닌그라드로 이사하면서 전업 작가가 됐다. 그래서 나온 작품들이 <세상의 주권자>, <기적의 눈>, <물밑 경작지>와 단편 시리즈 <바그너 교수의 발명>을 썼다. 하지만 곧 병이 재발, 습한 레닌그라드에서 일조량 많은 키예프로 옮겨야 했다. 

 

1930년도는 그에게 아주 힘겨운 해였다. 여섯 살 난 딸이 뇌막염으로 죽고 둘째 딸이 구루병에 걸리고, 곧 그 자신에게도 척추염이 생겼다. 그러는 바람에 이듬해 가족이 레닌그라드로 돌아왔다. 

1934년 레닌그라드를 방문한 허버트 웰스와 만나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얼마 전 다시 수술을 연기했기 때문에 전쟁이 터졌지만 피난 가기를 거부했다. 그가 만년에 살던 푸슈킨 시는 거의 전부 전쟁을 피해 떠났다. 독일군에게 항복을 거부하며 900일 동안 봉쇄된 레닌그라드 한쪽 곁 푸슈킨 시 자기 아파트에서 1942년 1월 굶어죽었다. 그의 손에는 <도웰 교수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살아남은 아내와 딸은 독일군에 의해 폴란드로 강제 이주됐다.

 

그는 매력적인 기질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독학했다. 사진에도 관심이 컸다. 책을 아주 좋아해서 모험소설에 끌렸다. 특히 쥘 베른에 심취했다. 장난이 심하고 호기심이 무척 큰 아이였다. 지붕에서 우산을 펼치고 비행하기를 즐겼다. 결국 등을 크게 다쳤는데, 이 부상이 이후 생활에 악영향을 미쳤다

학교 때는 극장 마니아, 연극에 푹 빠졌다.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이끄는 극단이 수도에서 스몰렌스크로 왔을 때 벨랴예프는 병이 난 배우를 대신해 몇 편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인간 심리에 크나큰 관심을 보여서, 뇌 기능, 뇌와 몸의 관계, 뇌와 정신생활의 관계 따위를 집중 연구했다. 뇌가 몸과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 뇌 이식은 가능한가? 소생과 그 광범위한 적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까? 유전공학의 한계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한 시도가 바로 <도웰 교수의 머리>, < 세상의 주권자>, <얼굴을 잃은 사람> 등의 중편과 <잠자지 않는 사람> 같은 단편들로 나왔다. 

 

자신의 공상과학소설들에서 벨랴예프는 수많은 발명과 과학적 창의를 앞서 내다보았다. 중편 <KEC 별>에서는 현대 우주정거장의 원형이 묘사되며, <양서류 인간>과 <도웰 교수의 머리>에서는 신체기관 이식의 기적들이, <영원한 곡물>에서는 현대 생화학과 유전학의 성과가 제시된다. 

 

1990년 과학소설과 판타지를 대상으로 한 <벨랴예프 문학상>이 제정됐다. 

 


작품 소개

 

<도웰 교수의 머리>는 1925년 모스크바 ‘노동자 신문’에 처음 발표.

    

줄거리

 

배경은 파리. 

외과의이자 교수인 코른은 사람 머리 재생에 관한 성공적인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한다. 그의 사설 병원에 조수로 채용된 마리 로랑은 코른 교수가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성공적인 연구가 코른의 예전 지도교수이며 유명한 외과의로 일하다가 의심쩍은 상황에서 죽은 도웰 교수의 머리 덕분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도웰 교수의 머리의 지도하에 코른은 일련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즉, 죽은 사람들의 머리들을 살리고, 그 중 한 머리에 다른 몸을 봉합하는 등. 전직 카바레 가수인 브리케는 다른 여인의 몸통을 이식 받고는 새 인생을 살기 위해 코른의 자택에서 달아난다. 친구들과 함께 도착한 리비에라에서 브리케는 화가인 아르망과 조우하게 되는데, 아르망은 브리케의 몸이 이전에 자기가 흠모하던 여인의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게다가 브리케가 코른의 병원에서 도웰 교수의 살아 있는 머리를 보았다는 증언을 듣고 아르망과 그의 친구이자 도웰의 아들인 아르투아는 한층 더 놀란다.

 

이즈음 코른은 마리 로랑이 도웰 교수의 머리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알게 됐다는 것을 확인한다. 로랑의 폭로를 우려하여 코른은 그녀를 라위노 의사의 정신 치료소에 강제로 입원시킨다. 이 ‘치료소’는 라위노가 잔혹한 방법을 써서 광인으로 만든 불행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곳이었다.

 

아르투아 도웰과 친구들이 파리로 가서, 다른 화가 샤우브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을 급습하고 마리 로랑을 구해낸다. 그러는 사이 코른은 소생에 관한 연구를 서둘러 발표하기로 작정한다. 마리 로랑이 친구들과 함께 학술대회장에 잠입하여 코른의 범죄를 폭로한다. 상처뿐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코른은 그래도 교묘하게 빠져나온다. 경찰이 코른의 병원을 수색했지만 범죄 단서를 얻지 못한다. 

아르투아는 부친을 (머리를) 찾으려 애쓰면서 가택 수색을 재개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 얼굴이 변형된 머리가 바로 도웰 교수임을 로랑이 결국 알아본다. 하지만 머리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아들 보는 앞에서 죽어가지만 코른의 범죄를 폭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반인륜적인,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소생을 실현코자 하던 코른은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등장인물

 

코른 - 교수, 외과의

마리 로랑 - 의사, 코른의 조수.

존 - 코른의 하인, 흑인.

도웰 - 저명한 외과의, 코른의 지도교수, 의문사를 당하다.

톰 부시 - 교통사고로 죽은 노동자, 그 머리를 코른이 살려냈다.

브리케 - 유탄에 맞아 죽은 카바레 여 가수, 그 머리를 코른이 살려냈다.

안젤리카 - 열차 전복사고로 죽은 오페라 가수, 시신을 코른이 빼돌려 그 몸을 실험에 썼다.

빨강머리 마르타 - 브리케의 여자 친구.

장 - 마르타의 남편. 금고털이 전문가. 

아르망 라레 - 화가, 안젤리카의 연인

아르투아 도웰 - 도웰 교수의 아들, 생물학자. 

샤우브- 오스트리아 화가, 아르망의 지인

라위노 - 정신과 의사, 범죄자, 사설 정신병원 소유주.

 

1984년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 <도웰 교수의 유언>이 제작됐다. (*그의 다른 중편 <난파선들의 섬>도 1987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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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도웰 교수의 머리 27장 (최종)

도웰 교수의 머리 25, 26장

도웰 교수의 머리 23, 24장

도웰 교수의 머리 21, 22장

도웰 교수의 머리 19,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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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웰 교수의 머리 15,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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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웰 교수의 머리 6,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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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웰 교수의 머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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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글쓰기2019. 6. 20. 09:13

 

  픽션의 다이얼로그 쓰는 요령 10가지  

독자가 빠져들게끔 대화문을 쓰는 방법

 

1. 등장인물들 간에 의견 차이와 알력을 활기 넘치게 만들라.
2. 다이얼로그 태그를 적절히 이용하라. 남용 금물.
3. 등장인물 각자에게 독특하고 고유한 목소리를 부여하라.

4. 다이얼로그 구두점을 정확히 사용하여 독자가 헷갈리지 않게 하라.
5. 작성한 다이얼로그를 다 소리 내어 읽어 보라.이왕이면 친구와.
6. 다이얼로그가 독자 편의를 위함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정말 서로 주고받는 것인지 확인하라.

7. 중요한 다이얼로그가 무르익는 순간으로 독자를 이끌라.
8.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단어만큼이나 침묵도 이용하라.
9. 캐릭터의 흥미로운 식견을 대화에서 드러내라. 
10. 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의 균형을 맞추라.

 

fiction dialogue 쓰는 요령 10가지

 

1. 눈길 끄는 다이얼로그를 쓰는 방법: 의견 차이를 이용하여 마찰을 빚게 하라.

‘너 없인 못 살아’ 할 정도로 흠뻑 빠진 연인들이나 영원한 친구들조차 서로 말다툼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독자가 빠져드는 대화를 쓰려면, 견해 차이와 불화의 순간이 있는지 확인하라. 일부러 알력을 빚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의견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은, 그들이 어차피 독자성을 지닌 개별적 존재이며,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상반될 때가 더러 있다는 뜻. 

 

예를 들어, J.D. Salinger 중편 <Franny and Zooey>의 한 대목. 여기서 주이가 어머니 베시와 언쟁을 벌인다. 베시가 주이에게 왜 결혼하지 않는지 묻는다.

"왜 안 하는 거니?"
[…] "난 기차 여행을 아주 좋아해요. 혼인하고 나면 차창 곁에는 더 이상 앉지 못할 거예요."
"그건 이유가 못 된다!"
"이건 완벽한 이유라구요. 나가 주세요, 베시, 혼자 속 편하게 있고 싶어요."

캐릭터들 간에 아주 심각한 충돌은 없지만, 의견 차이에서 나오는 마찰이 있다. (주이의 냉소적인 생각과 베시의 통제하려는 성향). 

이 장면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 하나는 주제 넘는 다이얼로그 태그.   

 

2. 다이얼로그 태그를 아껴서 합리적으로 이용하라

행위로 얘기하게 하고... ‘그는 말했다’ 같은 대화 꼬리를 더 잘 이용하든, 아니면 ‘반박했다’, ‘캐물었다’ 같이 감정 깃든 단어를 더 많이 쓰든 간에, 대화 꼬리를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물들이 ‘어떻게’ 얘기하는지 가리키는 단어를 많이 쓰면, 독자는 인물이 하는 이야기에서 주의가 분산되고 스토리를 벗어나서 텍스트 자체에 끌릴 수 있다. 

앞에 인용한 대목을 보자면, 여기서 샐린저는 대화 꼬리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누가 얘기하는지 알기는 쉬운데, 그 이유는 이렇다. 

※ 각 인물마다 목소리가 서로 다르다. (베시는 단어들과 개별적 음절을 자주 강조한다.)
※ 샐린저는 대화 쓰기의 원칙을 지킨다. (다른 인물의 대사는 새로운 줄로 시작)
※ 이 장면에 두 사람만 있다.

 

앞의 원칙들 중 세 번째 경우, 장면에 화자가 둘 이상이라면 어떻게 하나? 예를 들어, 주이의 여동생 프래니가 들어왔다고 치자. 태그를 쓰지 않고도 누가 얘기하는지 가리키기 위해 형용구를 (명사를 묘사하는 두세 단어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문가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프래니가 끼어들었다.

"누가 결혼한다구요?"

대화 꼬리를 배경에 두면서 이용할 꼬리를 선별한다면, 독자들은 인물이 실제 말하고 행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했다’의 동의어를 정 쓰려 한다면, 이런 점들을 확인하라

※ 단어는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실제 낼 수 있는 소리이다. (예를 들어, ‘나팔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가 아니라)
인물의 언급에 담긴 감정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제스처나 행동이다. 대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한 방법은 인물들 각자가 독특한 목소리를 갖게 하는 것. 

 

3.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대화에 담으라

캐릭터들이 하는 얘기가 작자를 은근히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다소 따분해질 수 있다. 다이얼로그에 서로 다른 면을 채워 넣으면 서로 다른 캐릭터들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샐린저의 보기에서 (또 장면의 나머지에서), 주이는 과장되며 심각한 체 말하는 경향이 있다. 장면 전체에서 주이의 목소리는 신랄하고 빈정대고 심술궂다. 그와 반대로 어머니 목소리는 걱정스레 중중대며 안심할 방책을 찾는다.

인물들이 이용하는 언어의 차이뿐 아니라 전달 모드에도 주목하라. 다른 표현 형태보다 더 자주 쓰는 표현이 있나? (빈정거리기, 쏘아대기, 혹은 애정이나 불평의 표현 등이?) 

 

뛰어난 대화의 주요 요소는 매끄러운 구두점. 독자가 대화에 빠져들기를 원한다면, 눈길 산만하게 만드는 혼란스러운 구두점을 대화에 쓸 필요가 없다. 

 

 

4. 독자들이 대화에 집중하게끔 대화 구두점을 정확히 이용하라. 

명심해야 할 기본 핵심 몇 가지

※ 다른 캐릭터가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줄을 바꿔야 한다.
※ 같은 인물이 여러 단락의 말을 한다면, 새로 시작하는 단락은 인용부호로 (따옴표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의 끝에서만 닫는 따옴표를 쓴다. (안 그러면, 각 단락을 누가 말했는지 표시해야 할 것)

 

5. 대화를 다 소리 내어 읽으라, 가능하면 다른 이와 함께

대화가 일상에서 말하기를 본뜨는 것인 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만큼 확실하게 귀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를 큰 소리로 읽으라, 혼자서든 아니면 친구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러면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을 죄다 알아내기 쉽다.

이미 적은 것을 즉흥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당신들이 각 등장인물이라 가정하고 대화를 계속하라.

이것은 대화의 매끈한 흐름에 영감을 얻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6. 등장인물들이 정말 서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확인하라

나쁜 다이얼로그의 징후 하나는 인물들의 대화가 그들보다는 독자를 위한 것 같은 느낌이 더 큰 경우.

독자를 배경 이야기에 붙잡아두기 위해 대화를 이용할 때 특히 흔한 현상이다.

전술한 행위의 느낌을 전하는 다른 방법을 찾으라. 

한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은 다른 인물한테서 무엇을 갈구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인물들 간에 행동과 제스처를 이용할 수 있을 때는 다이얼로그를 이용하지 말라. 

 

7. 흥미 돋우는 대화를 중간부터 시작하라

펼치는 사건이나 다이얼로그를 중간에서 시작하면 독자의 눈길을 더 사로잡게 된다.

그 이유는 미스터리를 안기기 때문. 독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하고 묻는다.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중간에서 다이얼로그를 시작하는 또 다른 이점은 - 두 사람의 사적인 대화를 우연히 듣는 (혹은 엿듣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 즉, 배타적이고 사적인 대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는 대화에 긴박성과 호기심 같은 느낌을 보탠다. 어떤 말을 우연히 듣고 궁금증이 커져 더 가까이서 듣고 싶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대화를 중간에서 시작하면 그런 식으로 유혹하는 효과가 생긴다.

실제 대화에서는, 휴지와 침묵이 단어만큼이나 의미가 많은 경우가 왕왕 있다. 

 

8. 다양함과 미묘함을 위해 대화에서 침묵과 무응답을 이용하라

실생활에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대화가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말하지 않는다.

침묵이 얼마나 함축성 크며 흥미 돋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예, 앞에 제시한 샐린저의 인용 대목을 이런 식으로 다시 쓸 수 있겠다. 

 

‘왜 혼인을 안 하는 거냐?’

[…] ‘난 기차 여행을 아주 좋아해요. 결혼하면 더 이상 차창 곁에 앉을 수가 없을 걸요.’ 베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건 정말 그래요. 완벽한 이유에요. 그만 나가 주세요, 베시, 나 혼자 속 편히 있고 싶어요.’

 

표정이 모호하지만, 베시가 주이의 혼인 않는 이유를 알아듣거나 그럴 법하다고 여기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기대하는 대목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지 않는 데는, 충격, 화, 불신, 정신 산만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9. 인물의 성격을 잘 묘사하는 다이얼로그 쓰는 법: 캐릭터의 식견을 드러내라.

만약 등장인물들을 개개인의 배경 스토리와 욕구, 목적을 갖고 있는 개성으로 생각한다면, 인물의 견식을 이미 다이얼로그에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인물 스케치를 강조하는 다이얼로그 쓰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몇 가지 요령이 있다. 

 

‘등장인물들에게 분명한 말하기 패턴을 부여하라.’

등장인물이 말하는 방식을 보고 독자가 그 인물의 성장 과정, 경제적 상태, 나이, 문화적 성향 (예, 인물의 슬랭이 어떤 하위 문화권에 속하는지) 등에 관해 짐작할 수 있게 만들라. 이런 것들이 불변의 것이어선 안 된다. 픽션 전개 과정에서 인물이 말하는 투의 미묘한 변화들이 캐릭터의 달라짐을 강조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유형을 고려하고, 인물들의 다이얼로그를 그들 개성에 걸맞게 만들라.

어떤 상황에서 그들이 ‘캐릭터답지 않게’ 말하게 되는지 생각하라. 예를 들어, 흔히 부드러운 캐릭터가 강한 도발에 직면하면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불쾌함이 얼마나 큰지를 독자에게 강조하기 위해.

 

10. 인물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독자에게 알리는 단어들과 행동 간에 균형을 맞추라. 

감정과 함의를 전달하기 위해 침묵을 이용하면 된다.

단어를 아끼면서 다이얼로그 쓰는 법을 익히라. 수다스러움은 그저 인물 성격의 한 측면일 수 있을 뿐이다.

실생활에서 터치나 제스처를 통해 자신을 더 많이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애정이나 노여움 같은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확인하라. 

Marcy Kennedy의 <How to Write Dialogue. Busy Writer's Guides>에서 옮김.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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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글쓰기2019. 6. 19. 09:47

 

  "Show, don't tell!"  

 

“얘기하지 말고, 보여주라." 

글 쓰는 이들이 심심찮게 들었을 이 구호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Telling>은 당신의 해석과 결론을 독자들에게 건넨다는 뜻, 
반면에 <showing>은 독자들이 스스로 결론 내리게끔 세세한 상황과 행위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뜻. 

 

do show, don't tell

 

예를 들어본다. 

TELLING: 그녀는 수줍음이 심해서 많은 사람들 속에 있기를 꺼리는 여성이었다. 
SHOWING: 그녀는 한쪽 구석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십여 명이 뒤섞여 있는 장면에 숨이 막혔다. 

<보여주기>는 독자를 스토리에 끌어들여서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한다. 

<말하기>는 독자를 일방적인 전달의 (강연이나 설교의) 소극적인 수신인으로 만든다. 

 

보여주는 방법 (How to show) 

1. 감각을 적극 활용한다. 

독자가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라.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명사와 강한 동사들을 이용하라. 즉, “그녀는 발끝을 세우고 걸었다”가 ‘그녀는 걸었다’보다 더 많은 것을 독자에게 알려 준다. 

2. 독자에게 결론을 안기지 않는다. 

즉, "영희는 믿음직한 친구였다" 하고 말하는 대신, 그런 결론을 독자가 나름대로 내리게끔 영희가 행동하는 장면을 보여주라. 

 

<말하기>임을 가리키는 징조 몇 가지

 

1) 형용사 이용, 특히 연결 동사와 결합해서. 즉,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녀는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she was, looked, felt, appeared, seemed.) 이건 추상적인 형용사일 때 특히 그렇다. 즉, 아름다운, 흥미로운 등. 

(*연결 동사/copula: 주어와 주격 보어를 연결하는 be, seem, appear 등.)

<telling>: 영희는 감명 받은 듯 보이지 않았다. 
<showing>: 영희는 고개 떨구이고 제 코를 내려다보면서 꿈쩍도 안했다.

 

2) 동사 이용하기, 특히 dialogue tag에서.

<telling>: “넌 그렇게 멍청한 거야.” 그녀가 사납게 말했다.
<showing>: “넌 그렇게 우둔한 거야.” 그녀가 문을 쾅 닫았다.

 

3) 감정에 관련된 단어들 이용. 감정을 칭하는 대신, 인물이 무엇을 느끼는지 보여주기 위해, 행동과 본능적으로 우러나는 리액션과 신체언어를 이용하라. 

말하기: “이건 내가 판단할 게 못 돼,” 영희가 특유의 수줍음으로 말했다. 
보여주기: “이건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닌데.” 영희는 속눈썹을 내려뜨리고 검은 테가 둘린 손톱들을 응시했다. 

 

4) 대화 라인이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 말하기 위해, ‘...말했다’ 같은 dialogue tag를 이용하는 것.

그것보다는, 대화가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들라. 

말하기: “꺼져!” 그가 소리쳤다.
보여주기: “지금 당장 꺼져!”

 

5) filter 이용하기. 당신의 캐릭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등을 독자에게 말한다, 독자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대신. 

말하기: 영희는 순희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소리를 들었다. 
보여주기: 순희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럼, 얘기는 (to tell) 언제 해야 하나 

픽션에서 말하기 역시 필요하다. 소설에서 사소한 것들까지 다 보여주기로 한다면,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가 그렇다. 

 

1) 전환: 말하기는 사소한 것이 발생하는 시간이나 거리의 범위를 축약해 준다. 

예, “그녀는 조반을 챙겨 먹고 직장으로 차를 몰았다” 하고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더 좋겠다. - 숟가락 동작을 일일이 보여주기보다는.

 

2) 이미 보여준 것을 반복하지 않을 때도 말하기가 필요하다. 

예, “그녀는 증인이 이야기한 것을 보스에게 전달했다.” - 증인과 나눈 이야기를 전부 반복해야 하는 대신.

 

3) 아주 일상적 행위에는 말하기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예, 그녀는 컴퓨터를 닫았다. - "그녀는 마우스를 움직여서 나가기를 클릭했다"  대신.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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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도구 50가지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글쓰기 코치 로이 클락의 <글쓰기 도구 50가지>를 소개한다. 

 

참고할 점. 

1. 이것은 당연히 영어의 글쓰기를 대상으로 했다. 
2. 우리네 글쓰기와는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3. 하지만, 잘 정리된 틀을 참고하면서 필요한 부분은 우리네 글쓰기에도 적용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창의가 아니겠나?
4. 궁극적으로는 우리 <한국어 글쓰기 틀>을 새로이 정리하고 만들어 냄에 도움이 되겠다. 

5. 이 <글쓰기 도구>는 창작 글뿐 아니라 뉴스 기사며 리포트 작성도 염두에 두었다. 
6.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면, 글쓰기 기법 가운데 많은 것이 말하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 특히 구성이나 수사 장치 같은 것에서!

 

로이 클락 글쓰기 코치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글쓰기에 유용한 공구 박스>를 열어 본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전체 틀을 정리했다. 

이 <글쓰기 도구 목록>을 간편하게 이용하면 좋겠다. 이것을 복사해서 지갑에 넣거나 일지에 담아 두라. 혹은 책상이나 키보드 곁에 붙여 두라. 글 쓸 때 참고하고, 새로운 구상이 떠오를 때마다 보강하면 더 바람직하겠다. 

 

가. 기본 

 

글쓰기 기본 도구

 

도구 #1: 크고 작은 가지들은 오른쪽에 

문장을 주어와 동사로 시작하고, 부차적인 요소들은 오른쪽으로 몰아 둔다.

아무리 긴 문장이라도, 주어와 동사가 먼저 뜻을 드러내면, 명료하고 힘찰 수 있다. (*영어에 해당됨. 한국어의 경우 주어와 동사의 간격이 지나치게 멀어지지 않게 할 필요가 있겠다.)

 

도구 #2: 강력한 동사들을 이용하기 

동사를 현재나 과거형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로 쓴다.

강력한 동사는 행동을 만들고 단어들을 절약하며 주체를 드러낸다. 

 

도구 #3: 부사를 조심하여 다루기 

대체로 부사는 동사의 뜻을 약화하거나 반복하는 경향이 많다. 

 

도구 #4: 스톱 표시인 마침표 (온점) 

문장과 단락의 시작과 끝에 강한 단어들을 둔다.

마침표는 스톱 표시. 마침표 다음에 나오는 단어는 모두 “날 좀 봐요” 하고 외친다. 

관련 포스트: 구두점 총정리 (5-1)

 

도구 #5: 단어의 영역을 준수하기 

핵심 단어들이 최적의 공간을 차지하게 한다.

특별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명백한 단어를 별 생각 없이 반복하지 말라. 

 

도구 #6: 단어들을 가지고 놀기 

심지어 진지한 스토리에서도 단어들을 가지고 놀라.

즉, 어휘를 다양하게 구사해 본다. 특히, 독자에게 친근한 단어들을 쓰라.

평범한 필자가 피하지만 평범한 독자가 이해하는 단어들을 택한다.   

 

도구 #7: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파고들기 

달리 말해, 생생하게 묘사하기. 개를 그냥 개라 적지 말고, 그 이름을 부르라. 

“글자의 힘은 독자가 듣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보게끔 만드는 것이다.” - 조셉 콘래드

 

도구 #8: 독특하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찾아내기 

일상에서 기발하다 싶고 폭넓게 연상되는 단어 목록을 만들라.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이나 낡은 은유를 피한다. 

“인쇄물에서 흔히 보는 은유나 직유, 수사적 표현 따위를 절대 쓰지 말라.” - 조지 오웰

 

도구 #9: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이 더 좋아 

기교 섞어서 길게 늘어지는 문장은 피한다.

아주 복잡하다 싶은 항목일수록 더 짧은 단어와 문장으로 묘사한다.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말하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 아리스토파네스 

 

도구 #10: 스토리의 뿌리를 인식하기 

스토리에 담긴 신화적인 뿌리, 상징적 뿌리, 시적인 뿌리 등을 알아보라.

뉴스 (기사) 쓰기나 제목 달기의 뿌리에는 대체로 스토리텔링 기법이 있음을 감지하라. 또 조심하라.  

 

나. 특수 효과 

 

글쓰기의 특수 효과

 

도구 #11: 줌아웃 혹은 줌인 

뉴스나 얘깃거리가 아주 진지한 것이라면, 줄여서 (깎아서) 말하라.

토픽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좀 과장하라. 

 

도구 #12: 페이스 조절 

문장 길이를 다양하게 함으로써 스토리 흐름의 속도를 조절한다. 

 

   

도구 #13: 보여주고 얘기하기 

좋은 필자들은 추상화의 사다리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린다.

밑바닥에는 피 묻은 칼이나 로사리오, 혼인반지, 야구 기록 카드 따위가 있다.

꼭대기에는 ‘자유’나 ‘교양’ 같이 더 고도의 의미를 담는 단어들이 있다.

 

도구 #14: 흥미로운 이름들 

글 쓰는 이들은, 훈련이나 습성에 따라, 흥미로운 이름을 지닌 사람과 장소에 끌린다는 점을 기억하라. 

 

도구 #15: 캐릭터의 특성을 드러내기 

묘사하는 인물의 특성을

장면과 디테일,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밝히라. 

 

도구 #16: 기묘하고 흥미로운 것들 

기묘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서로 가까이 배치하라. 

 

도구 #17: 요소들의 수효 

문장이나 스토리에서 이용하는 사례의 수효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와 둘, 셋, 넷 이상일 때, 그 자체로 큰 차이를 띤다. (*<3의 법칙> 참조) 

 

도구 #18: 내재된 긴박감 

독자가 페이지를 넘기게 하려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도구 #19: 당신 목소리를 조율하기 

좋은 필자들은 글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으려 한다. 신뢰와 권위가 곁들인 목소리를.

하지만, 필자의 여러 효과 장치들 중에서,

‘목소리’라 불리는 특질이 가장 중요하거나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달리 '딕션'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구 #20: 이야기할 기회 

저널리스트들이 ‘스토리’라는 단어를 무절제하게 남용한다.

리포트에는 흐릿한 스토리는 물론이고 재미없는 스토리도 필요치 않다. 스토리와 리포트의 차이는 무엇이며, 필자는 그것들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나?

이야기풍의 이점을 활용하라. 

 

도구 #21: 인용과 다이얼로그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인용과 소설에 나오는 대화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차이는? 인용과 대화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두라. 

 

도구 #22: 항상 준비된 상태 

<햄릿>에서 요령을 취하여, 긴 스토리도 늘 얘기할 준비를 갖추라.

예기치 못한 것을 예견하라. 

 

도구 #23: 길목마다 금화를 깔아두기 

당신의 스토리를 따라 독자가 계속 움직이게 만들고 싶은가?

스토리 곳곳에 금화를 두어서 독자들이 그걸 주우며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방법을 익히라. 

 

도구 #24: 큰 대목마다 간판 달기 

주요 대목들을 식별할 수 있다면, 스토리 구조를 들여다보기가 더 쉽다.

제목과 소제목 달고 분류하기. 

 

(계속 - <다. 청사진>

글쓰기 도구 50가지 (2-2)

 

글쓰기 도구 50가지 (2-2)

계속 - 로이 클락의 글쓰기 도구 50 가지 (2-1) 를 소개한다. 참고할 점. 1. 이것은 당연히 영어의 글쓰기를 대상으로 했다. 2. 우리네 글쓰기와는 다" data-og-host="mirchimin.tistory.com" data-og-source-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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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장 폴 사르트르2019. 4. 10. 21:14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 NO EXIT>  

 

5장 계속 

 

     에스텔: (고갯짓으로 가르생을 가리키면서) 하지만 저이도 나를 봐 주면 좋았을 텐데.

     이네스: 오, 이런! 네가 원하는 건 결국 남자로군. (가르생에게) 당신이 이겼어요. (가르생이 대꾸지 않는다.) 그러지 말고 저 여자를 좀 봐요, 빌어먹을! (가르생은 묵묵부답이다.) 가식 떨지 말아요. 당신은 우리 대화를 다 들었잖아요. 

     가르생: (고개를 홱 쳐들면서) 맞는 말이오,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지. 귀를 막기는 했지만, 당신네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쿵쿵 울렸다오. 허접한 수다 말이오. 당신들 두 사람, 이제 나를 조용히 내버려두지 않겠소? 난 당신네한테 관심이 없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이네스: 나한테 관심 없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이 아이한테도 그렇지는 않을 걸. 당신 꿍꿍이를 알아요. 지금 당신은 그녀 관심을 얻으려고 고뇌하는 사람 흉내를 내고 있어요. 

     가르생: 날 좀 내버려두라고 했잖소. 저기, 신문사 편집국에서 누군가가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걸 들어야겠소. 그리고 당신이 ‘어린애’라고 부르는 저 사람한테 난 아무 소용이 없단 말이오. 

     에스텔: 흥, 고마운 말씀이군요. 

     가르생: 오, 당신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었어.

     에스텔: 당신은 천박한 사람이에요! (휴지. 그들이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가르생: 아, 그렇다고 칩시다! (휴지.) 입 좀 다물라고 부탁하지 않았소?

 

     에스텔: 저 여자 잘못이에요, 먼저 시작했으니까. 난 가만있는데, 다가와서 자기 거울을 쓰라고 했단 말이에요. 

     이네스: 흠, 그렇게 말을 돌리는군. 한데 넌 계속 추파를 던지면서 그의 눈길을 끌려고 했잖아.

     에스텔: 그러면 안 되나요?

     가르생: 당신네 둘은 정신이 나갔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제발, 입들 좀 다무시오! (휴지) 이제 다들 다시 조용히 앉아서 마룻바닥을 보며 다른 사람들 존재는 까맣게 잊도록 합시다. 

     (휴지. 가르생이 자리에 앉고 두 여인이 머뭇머뭇 자기 소파로 향한다. 이네스가 홱 몸을 돌린다.)

 

     이네스: 다른 사람들은 잊으라고!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군요! 난 당신이 거기 있는 걸 느껴요, 털구멍 하나까지. 당신 침묵이 내 귀에서 아우성쳐요. 당신은 입 꿰매고 혀 자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아요? 당신은 이런저런 생각을 멈출 수 있나요? 

난 당신이 하는 생각을 다 들어요, 틱, 톡, 틱, 톡, 시계 소리처럼 들린단 말이에요. 당신도 내 생각을 듣고 있다는 걸 알아요. 당신이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건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어디에나 있어요, 모든 소리가 나한테 오염돼 들어와요, 왜냐면 당신이 중간에 가로채곤 하니까. 

당신은 내 얼굴마저 훔쳐갔어요. 내 얼굴을 당신은 아는데, 난 모르잖아요! 또 그녀는 어떻구, 에스텔 말이에요, 당신은 그녀를 나한테서 빼앗았어요.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에스텔이 나한테 이렇게 대하겠어요? 

자, 이제 얼굴에서 두 손을 떼세요, 당신을 편히 놔두지 않겠어. 당신은 요가 수행자처럼 트랜스 상태에서 여기 앉아 있고, 나는 눈을 감고 있다 해도, 그녀가 자기 존재의 소리를 당신에게 어떻게 전하는지, 심지어 드레스 바스락거리는 소리마저 다 감지해요. 당신이 보지 않는데도 그녀가 미소를 어떻게 보내는지 다 느낀다구요! 그런 건 못 견뎌! 차라리 내 지옥을 내 손으로 선택하겠어, 차라리 당신 눈을 바라보며 얼굴 맞대고 싸우겠어요. 

 

     가르생: 좋으실 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했지, 저들은 우리를 쉬운 게임처럼 조종하고 있소. 만약 저들이 나를 남자들만 있는 방에 넣었다면… 남자들은 입을 다물 수 있어.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바랄 수는 없지요. (그가 에스텔에게 다가가서 그녀 턱을 건드린다.) 그래, 내가 마음에 드나, 어린 아가씨? (에스텔을 애무한다.) 나한테 추파를 던졌단 말이지?

     에스텔: 날 건드리지 말아요.

     가르생: 왜 안 되나? 우린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데… 내가 여자들한테 환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나? 개중 몇몇은 나를 좋아했지. 자, 형식 차리는 건 그만두자구, 우린 잃을 게 없잖아. 정중하다는 게 뭐야? 격식이란 또 뭐고? 우리끼리 있는데 말이야! 이제 곧 마지막 껍질도 벗고 우린 벌거숭이가 될 거야, 갓난애들처럼.

 

     에스텔: 오, 나를 가만둬요!

     가르생: 갓난애들처럼 말이야. 아, 내가 경고했지. 내가 당신들한테 바란 건 별것 아니야, 그저 평온함과 약간의 침묵뿐이었어. 난 귀를 막았어. 고메스가 사무실 한복판에 서서 평소처럼 열변을 늘어놓고, 편집국 동료들이 경청하고 있었지. 다들 재킷을 걸치지 않은 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군. 지상에서 사건들은 아주 빠르게 변한단 말이야. 당신들은 혀를 놀리지 않을 수는 없나? 이제 다 끝났군, 그가 열변을 마치네. 나에 관한 생각은 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어. 흠, 어떻게든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고… 우린 태어날 때처럼 벌거숭이가 되는 거야. 그게 더 좋아, 가만, 누구를 상대해야 하나. 

     이네스: 이미 알고 있잖아요. 더 이상 알 것도 없어요.

 

     가르생: 그게 아니요. 우리가 왜 저주받았는지 각자 깨끗하게 털어놓지 않는 한,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젊은 아가씨, 자네부터 시작하지, 그래. 무엇 때문이지? 그 이유를 우리한테 말해 봐. 솔직하게 얘기하고, 우리가 각자 내면의 허물을 드러낸다면… 우린 재앙에서 구제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자, 털어놔 봐! 무엇 때문이지?

     에스텔: 난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요. 저들도 말해 주지 않을 거예요.

     가르생: 그렇군. 저들은 나한테도 말해 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먼저 말하기가 부끄럽나, 에스텔? 좋아. 내가 시작하겠어. (침묵.) 난 그리 존중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야. 

     이네스: 그런 얘긴 안 해도 돼요. 당신이 탈영병이었다는 걸 우린 알아. 

 

     가르생: 그건 놔둬요. 그건 부차적인 얘기일 뿐이오. 실은, 아내한테 아주 못되게 굴었기 때문에 여기 오게 된 거요. 이게 전부야. 다섯 해 동안. 아내는 당연히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어. 아, 그녀가 있네. 그녀 얘기를 하는 순간이면 내 눈앞에 그녀가 나타나. 난 고메스한테 관심이 있는데, 눈앞에는 그녀가 서 있군. 고메스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다섯 해 동안... 

저기 있네! 그들이 내 소지품을 아내에게 돌려주었군. 아내가 내 코트를 무릎에 얹고 창가에 앉아 있네. 총탄 구멍이 열두 개 난 코트를. 구멍의 누런 테두리가 피인지 녹인지 분간이 안 될 거야. 허어! 저건 박물관에 들어갈 물건이지, 역사적인 코트라구. 그걸 입고 다녔어, 멋있었지!… 

여보, 이제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나? 드디어 눈물을 짜내는 거야? 아니라고? 잘 안 된다구? 밤이면 밤마다 난 돼지처럼 술에 절어 집에 돌아왔어, 와인과 여자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아내는 밤새 나를 기다리곤 하면서도, 눈물은 절대 흘리지 않았어. 물론, 잔소리도 한마디 없었어. 그저 두 눈으로만 말하는 거야, 크고 슬픈 눈으로. 난 불평할 게 하나 없어. 이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징징대지는 않을 거요. 흠, 거리에 눈이 내리는군. 아, 결국 눈물을 흘리는 거야? 저 여인은 운명적으로 수난자의 역할을 떠안은 사람이오. 

 

     이네스: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왜 그렇게 힘들게 했나요?

     가르생: 왜냐하면, 아주 쉬웠으니까. 말 한마디면 그녀는 움찔대며 안색이 달라졌지. 민감한 식물처럼! 그렇지만 싫은 소리는 결코 내뱉지 않아! 난 놀려먹기를 좋아해. 지켜보면서 기다리곤 했지만, 오, 이런, 눈물 한 방울도, 비난 한마디도 없는 거야. 난 그녀를 시궁창에서 끄집어냈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아, 그녀가 코트를 어루만지는군. 눈을 감고 손으로 총알구멍들을 느끼고 있어. 당신들은 뭘 찾는 거야? 뭘 기대하는 거지? 말했다시피, 난 아무 것도 불평하지 않아. 그녀가 나를 맹목적으로 흠모했다는 점이 중요해. 이게 무슨 뜻인지 당신들은 이해하겠나?

     이네스: 아니요. 나한테는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가르생: 그게 훨씬 더 좋아. 당신한테는 그게 더 좋아. 이런 말이 당신한테는 아주 모호하게 들리겠지. 흠, 당신들이 솔깃할 만한 얘기를 들려주겠어. 난 까무잡잡한 여자를 하나 집에 들였어. 뜨거운 밤들을 보냈지! 아내는 위층에서 잤는데, 다 들었을 거야. 그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한낮까지 침대에 있는 우리한테 모닝커피를 가져다주곤 했어.

     이네스: 당신은 짐승이야!

     가르생: 그래, 짐승이야, 그런데 아주 사랑받는 짐승이지. (그가 먼데를 바라본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고메스로군, 하지만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니네… 당신, 뭐라고 그랬지? 아, 짐승이라고. 그건 분명해.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여기 있겠나? 이제 당신 차례요.

 

     이네스: 난, 나는 저 세상 사람들 말로 ‘천벌 받을 암캐’였어요. 아니, 이미 천벌 받은 여자였어요. 그러니, 여기 오게 된 것이 놀랍지도 않아요.

     가르생: 그게 전부요?
     이네스: 아니, 플로렌스가 관련된 사건이 있었어요. 이건 시체들에 관한 사연이에요. 세 구의 시체. 먼저 그 사람, 다음에 그녀와 나. 저 아래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난 걱정할 게 전혀 없어. 단지 저 방만 남았지요. 난 가끔 그 방을 봐요. 안은 텅 비고 문들은 다 잠기고… 아, 그들이 막 봉인을 떼어냈네. 임대라고 문에 써 붙였네요, 이건 참... 웃기는 일이야.
     가르생: 세 사람, 세 죽음이라고 했소?
     이네스: 네, 셋.
     가르송: 한 남자와 두 여인?
     이네스: 네.
     가르생: 그렇군. (휴지.) 그 남자가 자살한 게요?
     이네스: 그 남자가? 그 사람한테는 그럴 배짱이 없었어. 그래도 그에겐 이유가 다 있었어요. 우리 때문에 고통을 충분히 겪었지... 사실, 그는 전차에 깔렸어요.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에요. 난 그 두 사람과 함께 살았어요, 그는 내 사촌오빠였고. 
 
     가르생: 플로렌스에겐 오점이 없었나요?
     이네스: 오점이 없었냐구요? (에스텔을 쳐다보면서) 난 후회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사연을 당신한테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아요. 
     가르생: 괜찮아요. 그럼, 그 남자한테 싫증이 났나?
     이네스: 아주 조금씩. 별의별 하찮은 것들이 내 신경을 거스르더군요. 예를 들면, 그 사람은 뭘 마실 때 요란한 소리를 내지 뭐에요, 꼴깍꼴깍… 그런 하찮은 것도 싫어지지 뭐에요. 실상, 그는 아주 가엾은 사람이었어요, 쉽게 상처받는 타입이었어요. 왜 웃는 거죠?
     가르생: 왜냐면 나는 상처를 전혀 받지 않으니까.
     이네스: 너무 확신하진 말아요. 난 그녀 영혼에 파고들었고, 그녀는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봤어요. 결국 그와 헤어지자 그녀는 내 손아귀에 들게 됐지요. 우리는 소도시 반대편에 원룸 아파트를 얻었어요.
     가르생: 그 다음엔?
     이네스: 그러고는 바로 전차 사고가 난 거에요. 난 허구한 날 그녀에게 상기시켰어요. “그래, 내 귀염둥이, 우리가 그를 죽인 거야.” (침묵.) 난 정말 잔인한 여자야. 
     가르생: 나도 그렇소.
     이네스: 아니, 당신은 잔인한 게 아니에요. 그건 뭔가 좀  다른 거예요.
     가르생: 뭐가 달라요? 
 
     이네스: 나중에 얘기하지요. 내가 잔인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한테 고통을 안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뜻이에요. 불타는 석탄처럼. 다른 사람들 가슴에서 불타는 석탄처럼. 혼자일 때 난 가물거려요. 반년 동안 난 그녀 가슴에서 재가 되도록 활활 타올랐지요. 어느 날 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그녀가 일어나서 가스 밸브를 열어 놓았어요. 그러고는 다시 내 곁에 누었어요. 그렇게 된 거예요.
     가르생: 아, 그래요!
     이네스: 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요?
     가르생: 아니, 아무 것도. 단지, 즐거운 사연은 못 되는군.
     이네스: 그렇지요.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가르생: 하기야, 무슨 상관이겠소. (에스텔에게) 네 차례야. 무슨 짓을 했는지 털어놓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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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장 폴 사르트르2019. 4. 10. 19:54

 

 장 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No exit

 

  (5장 계속)  

 

     에스텔: 그만, 제발 그만해요.

     이네스: 지옥에 있다구요! 저주받은 영혼들, 그게 우리란 말이에요! 우리 셋 다!

     에스텔: 입 다물고 조용히 해요. 그런 악담은 못 들어 주겠어요.

     이네스: 저주받은 영혼, 위선적인 성자, 그게 바로 당신이에요. 저 신사 양반, 고상한 반전주의자도 마찬가지지. 우리는 삶을 충분히 만끽했어, 안 그래요? 세상에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 이들이 있었는데, 우린 그걸 보며 그저 낄낄대기만 했지요. 그러니 이제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예요. 

 

 

     가르생: (손을 들어 올리면서) 그 망할 놈의 입 좀 그만 나불거리시오!

     이네스: (담담하면서도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오, 이런! (휴지) 잠깐만! 이제 이해가 되네. 왜 우리 셋을 여기에 함께 집어넣었는지 알겠어요!

     가르생: 더 입을 놀리기 전에 생각을 두 번 하는 게 좋을 게요.

 

     이네스: 잠깐,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알게 될 거예요. 아주 간단해! 이곳에는 신체적 고문 같은 게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옥에 있어요.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으니, 우리끼리만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거예요. 안 그런가요? 간단히 말해,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는 것인데, 그건 바로 공식적인 고문자란 말이죠. 

     가르생: (혼잣말로) 나도 그 점에 주목했어.

     이네스: 인적 자원을 줄인 게 분명해요. 혹은 악귀들을 줄였다고 해도 틀리진 않겠어요. 고객들이 직접 움직이는 셀프서비스 카페처럼 말이죠.

     에스텔: 무슨 뜻인지 난 도무지 모르겠군요.

     이네스: 내 말은 우리 각자가 다른 두 사람에게 고문자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뜻이에요.

     (휴지. 다들 그 말을 곱씹는다.) 

 

     가르생: (나직한 소리로) 아니, 난 당신들의 고문자가 절대 되지 않을 거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당신들한테 관심도 없소. 눈곱만치도. 그러니 해결책은 아주 간단해요. 우리 각자가 자기 구석에 머물러서 다른 이들에겐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거요. 당신은 여기에, 당신은 여기에, 그리고 난 저기에. 그리고 그냥 조용히 지내는 거요, 말 한마디 없이. 뭐가 어렵겠소? 우리 각자에겐 제 할 일이 있어요. 난 내 생각만 가지고도 만 년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에스텔: 그럼, 나도 입을 다물어야 하나요?

     가르생: 그렇소. 그러면 우린 구원을 찾을 수 있을 게요. 이네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절대 쳐들지 맙시다. 동의하시오?

     이네스: 동의해요.

     에스텔: (다소 주저하다가) 나도 그래요.

     가르생: 그럼, 안녕.

 

     (그가 자기 소파로 물러나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침묵. 이네스가 나직이 콧노래를 부른다.)

     (그러는 동안 에스텔은 볼에 파우더를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른다. 파우더를 두드리면서 차분한 표정으로 거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자기 핸드백을 뒤지다가 가르생에게 고개를 돌린다.) 

 

     에스텔: 실례지만, 혹시 거울 갖고 계시나요? (가르생이 반응하지 않는다.) 작은 손거울이라도 없어요? (가르생이 계속 침묵한다.) 나한테 말은 하지 않더라도 거울은 빌려줄 수 있잖아요!

     (가르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말이 없다.)

     이네스: (달래는 말투로) 걱정 말아요. 내 손가방에 거울이 있어요. (자기 핸드백을 뒤진다. 아쉬운 표정으로) 없어졌네! 입구에서 저 사람들이 빼낸 게 틀림없어. 

     에스텔: 어쩜 이렇게 지겨울 수가!

     (휴지. 에스텔이 눈을 감으면서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이네스가 다가가서 부축한다.)

 

     이네스: 왜 그래요?

     에스텔: (눈을 뜨고 미소 짓는다) 아주 야릇한 느낌이 들어요. (그녀가 제 몸을 톡톡 두드린다.) 당신은 이렇게 한 적이 없나요? 나 자신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이 돼요. 그러면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몸을 건드리는데, 사실 크게 도움 되지는 않아요.

     이네스: 당신은 운이 좋군요. 난 늘 나 자신을 의식해요, 마음속에서 말이죠. 뼈저리게 의식해요.

     에스텔: 아, 네, 마음속에서… 하지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은 죄다 상당히 모호하지 않나요? 그냥 졸리기만 할 뿐이에요. (휴지) 내 침실에는 큰 거울이 여섯 개 있어요. 저기 있네요. 난 거울들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거울들이야 나를 못 보지요. 거울마다 카펫이며 장의자며 창문이 투영되고 있는데… 하지만 내가 없는 거울은 얼마나 공허한가요! 난 사람들과 얘기할 때면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이 곁에 있는지 늘 확인하곤 했어요. 얘기하는 나 자신을 지켜보았지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볼 때면 더 조심하게 됐어요. (낙담한 투로) 오, 이런, 립스틱이! 입술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을 거야. 거울 없이는 잘 그릴 수가 없어. 안 돼. 

 

     이네스: 내가 당신의 거울이 돼 줄까요? 이쪽으로 오세요. 내 소파에 당신 자리가 있어요. 

     에스텔: (가르생을 가리키면서) 하지만…

     이네스: 그 사람은 잊읍시다. 

     에스텔: 하지만 우린 서로를 다치게 할 텐데.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이네스: 나를 잘 봐요. 내가 당신을 해칠 것 같나요?

     에스텔: 거야 누가 알겠어요.

     이네스: 어쩌면 당신이 나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쩌겠어?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당신의 그 예쁜 손으로 당하는 것도 괜찮을 거야. 여기 앉아요. 더 가까이, 더 바짝. 내 눈을 봐요, 뭐가 보이죠?

     에스텔: 오오, 당신 눈 속에 내가 있네요. 하지만 하도 작아서 잘 못 보겠어요.

     이네스: 하지만 난 그쪽을 볼 수 있어. 아주 샅샅이. 뭐든 물어 봐요. 세상 모든 거울처럼 난 솔직하게 비춰 줄 거야. 

 

     (에스텔이 도움 청하듯이 가르생 쪽으로 수줍게 몸을 돌린다.) 

 

     에스텔: 이보세요, 미스터 가르생! 우리 수다 때문에 힘들지 않아요?

     (가르생이 대꾸하지 않는다.)

     이네스: 저 사람 걱정은 말아요. 그냥 우리만 있다고 생각하고… 자, 물어봐요.

     에스텔: 내가 입술을 잘 발랐나요?

     이네스: 어디 보자. 아니, 좀 흉하게 됐어요.

     에스텔: 그럴 줄 알았어요. 다행히도 (그녀가 가르생을 곁눈질하면서) 나를 보는 사람이 없네. 다시 발라야지.

     이네스: 그게 좋겠어. 아니, 그렇게 말고. 입술 선을 놓치지 않아야 돼. 잠깐! 내가 손을 잡아줄게. 그래, 거기야. 아주 좋아요.

     에스텔: 내가 여기 들어올 때처럼 잘 그려졌어요?

     이네스: 훨씬 더 좋아요. 더 또렷하고 더 관능적이고 더 섬세해. 이렇게 그리니까 요 입이 아주 악마처럼 보이네.

     에스텔: 당신은 친절하군요! 정말 좋아요? 내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미치겠어요. 미스 세라노, 이젠 정말 잘 그려졌어요?

     이네스: 나를 그냥 이네스라고 부르지 않을래?

     에스텔: 입술이 잘 그려진 게 확실하죠?

     이네스: 넌 정말 사랑스러워, 에스텔.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에스텔: 근데, 당신 취향을 내가 어떻게 믿지요? 내 취향과 같은가요? 아아,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이네스: 내 취향도 너랑 같아, 왜냐면 넌 내 마음에 드니까. 나를 봐. 아니, 똑바로 봐. 이제 미소를 지어 봐. 나도 그리 추하지는 않아. 내가 네 거울보다 더 멋지지 않나? 

     에스텔: 오, 모르겠어요. 당신은 날 좀 겁나게 해요. 물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런 적이 없지요. 물론 내 모습을 난 잘 알았어요. 내가 길들인 어떤 것처럼… 한데 지금은 내가 미소를 지으면 미소가 당신 눈동자 속으로 가라앉을 테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알겠죠.

     이네스: 왜 나를 ‘길들이면’ 안 되는 거야? (둘이 마주본다. 에스텔이 좀 홀린 듯이 미소를 짓는다.) 이봐! 나를 그냥 이네스라고 불러 주면 좋겠어. 우린 좋은 친구가 돼야 해.

     에스텔: 난 여자들하고는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해요.

     이네스: 특히 우체국 사무원하고는 그렇단 말이지? 근데, 네 뺨 아래 지저분하게 벌긋벌긋한 점은 뭐야? 뾰루지야?

     에스텔: (흠칫 몸을 떨면서) 뾰루지라고요? 어머, 지저분해라! 어디 있어요?

     이네스: 여기, 여기 있잖아! 거울로 종달새 잡는 방법을 알지? 난 너의 lark mirror이고, 사랑스러운 넌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lark mirror - 반짝이는 물건에 호기심 많은 작은 새들을 유인하여 잡는 데 쓰는 작은 거울.) 뾰루지 같은 건 전혀 없거든. 근데, 왜 있는 것처럼 했냐구? 거울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혹은 내가 저 남자처럼 눈을 감고 널 안 본다면, 너의 사랑스러움을 뭐에 쓰겠어? 아아, 겁먹지 마, 난 너를 안 볼 수 없어. 눈길을 돌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 잘 해줄 거야, 아주 잘 할 거야. 단지 너도 나한테 잘 해야 돼.

     (휴지.)

     에스텔: 나한테 정말 마음이 끌렸어요?

     이네스: 정말 그래!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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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장사 없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과의 관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생각과 말

 

 

  4장  

 

이네스, 가르생, 에스텔, 안내인

 

     (에스텔이 두 손으로 여전히 얼굴 감싸 쥐고 있는 가르생을 바라본다.)

     에스텔: (가르생에게) 아니, 고개 들지 말아요! 당신이 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지 알아요, 얼굴이 없으니까 그러겠지. (가르생이 얼굴에서 두 손을 뗀다.) 어머, 이게 뭐야! (휴지. 놀라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군요.

     가르생: 난 고문 기술자가 아닙니다, 마담.

     에스텔: 당신을 고문자라고 여긴 적이 없어요. 난… 어떤 사람이 나를 놀리는 줄 알았지요. (안내인에게) 누가 또 오나요?

     안내인: 아니요, 마담. 더 이상 오지 않을 겁니다.

     에스텔: (안도하면서) 잘 됐네요! 그러면 이 신사분과 저 부인과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지내게 되나요? (웃음을 터뜨린다.)

     가르생: (무뚝뚝한 표정으로) 웃을 일이 전혀 없는데. 

     에스텔: (여전히 웃으면서) 여기 소파들은 아주 볼썽사납군요. 게다가 배치해둔 꼴이라니! 그 따분한 마리 숙모 집을 방문했던 새해가 떠오르는군요. 그 집엔 어떤 공포가 가득하고… 근데 소파는 각자 하나씩 쓰는 모양이죠? 저게 내 자린가요? (안내인에게) 하지만 내가 저기 앉을 거라고 기대하진 말아요. 난 하늘색 차림인데 소파는 진녹색이라니, 흥, 정말 잘 어울리겠네요. 

     이네스: 그럼, 내 소파에 앉을래요?

     에스텔: 그 적포도주 색깔의 소파 말이에요? 고맙지만, 그것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에요. 어쩌겠어요, 이 진녹색 소파에 내가 맞추는 수밖에. (휴지) 바꿀 수 있다면, 저 신사의 소파가 더 좋겠네요.

     (침묵)

     이네스: 들으셨나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송: (흠칫 떨면서) 아, 소파. 그렇군, 미안합니다. (일어선다.) 이걸 쓰시지요, 마담.

     에스텔: 고마워요. (외투를 벗어 소파에 던진다. 휴지.) 우리가 이왕 함께 있게 됐으니, 서로 인사 나누지요. 내 이름은 리갈이에요, 에스텔 리갈. 

     (가르생이 고개를 까딱이고 제 소개를 하려 하는데, 이네스가 끼어든다.)

     이네스: 난 이네스 세라노에요. 알게 돼서 반가워요.

     (가르생이 다시 고개를 까딱인다.)

     가르생: 조셉 가르생입니다. 

     안내인: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에스텔: 네, 그러세요. 필요하면 벨을 누르지요.

     (안내인이 고개 숙이고 퇴장한다.)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5장  

 

     이네스,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에스텔에게) 당신은 정말 예쁘군요. 제대로 환영하려면 꽃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에스텔: 꽃이요? 맞아, 난 꽃을 아주 좋아했지요. 한데, 여기서는 꽃이 금방 시들겠어요, 안 그런가요? 공기가 후텁지근하잖아요. 아, 그래요, 우리가 최대한 쾌활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당신도 분명...

     이네스: 그래요, 지난주에. 그럼, 당신은?

     에스텔: 아주 최근이에요, 바로 어제지요. 사실 세리모니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은 걸요. (에스텔이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동생 얼굴을 가린 망사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려요. 그 애는 눈물을 짜내려고 무진 애를 쓰네요. 자, 해 봐, 그래, 좀 더! 그러자 조금 나와요. 눈물 두 방울, 병아리 오줌 같은 두 방울이 검은 망사 뒤편에서 반짝여요. 오, 저런, 올가는 오늘 아침에 어떤 장면을 볼까! 그녀가 내 여동생 팔을 잡고 있는데, 울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그 애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눈물은 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니까요, 안 그래요? 올가는 나한테 가장 좋은 친구였어요.

     이네스: 당신은 아주 고통스러웠나요? 

     에스텔: 아뇨. 난 의식이 절반밖에 없었어요.

     이네스: 뭐였지요? 

     에스텔: 폐렴이에요. (앞에서 한 것처럼, 세세하게 묘사하듯이) 아, 이제 다 끝나고 사람들이 묘지를 떠나네요. 안녕! 잘들 가요! 꽤 많이 모였었지요. 남편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어요. 비탄이 하도 컸기 때문이에요, 가엾은 사람. (이네스에게) 근데, 당신은 어떻게? 

     이네스: 가스스토브가 문제였어요.

     에스텔: 그럼, 미스터 가르생, 당신은요?

     가르생: 가슴에 총탄을 열두 발 맞았다오. (에스텔이 움찔한다.) 미안해요! 죽은 이들한테 좋은 일행이 못 될까 걱정입니다. 썩 품위 있는 시체가 못 되니까요. 

     에스텔: 오! 제발, 그런 단어는 제발 입에 올리지 말아요. 너무 거칠고, 안 좋은 톤이에요. 어쨌든,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는 어쩌면 지금이 가장 활기 넘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런… 이런 상황에 적절한 명칭을 고른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재자’라 부르는 게 어떻겠어요? 그게 더 온당할 거예요. 당신은… 오래 전에 부재자가 됐나요?

     가르생: 한 달쯤 됐다오.

     에스텔: 어디서 오셨나요?

     가르생: 리오에요.

     에스텔: 나는 파리에서 왔어요. 저 아래에 누군가 남겨둔 사람이 있나요?

     가르생: 네, 아내가 있소. (에스텔이 앞서 쓰던 말투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가 막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군요. 매일 저기로 오지요. 하지만 그들이 들여보내지 않을 겁니다. 지금 그녀는 빗장 사이로라도 들여다보려고 애쓰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게요. 흠, 이제 떠나는군.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그게 더 낫지, 갈아입을 필요가 없으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살면서 울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오. 날이 아주 밝고 화창하군요. 텅 빈 거리를 검은 그림자처럼 비척이며 걸어가고 있어요. 커다란 두 눈엔 슬픔이 가득하고 순교자 같은 표정으로… 나를 참 안타깝게 하는구려!

 

    (침묵. 가르생이 중간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다.)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이보세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왜 그러오?

    에스텔: 내 소파에 앉으셨잖아요!

    가르생: 아, 미안해요. (일어난다.)

    에스텔: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나요? 

    가르생: 내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지요. (이네스가 웃음을 터뜨린다.) 뭐, 그렇게 웃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도 나처럼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이네스: 그럴 필요 없어요. 내 인생은 완벽하게 정리돼 있거든요. 저기, 아래 세상에서 모든 게 다 잘 마무리됐으니,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구요. 

    가르생: 정말이오? 그렇게 쉬운 일로 여기는구려! (손으로 이마를 훔친다.) 어휴, 여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아!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재킷을 벗으려고 한다.)

 

     에스텔: 아, 안 돼요! (좀 부드러운 말투로) 남자들이 셔츠 차림으로 있는 건 딱 질색이에요.

     가르생: (재킷을 다시 입으면서) 알겠소. (휴지) 난 신문사 사무실에서 밤을 새곤 했다오, 거긴 증기탕처럼 더워서 겉옷을 늘 벗어놓곤 했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앞의 말투로.) 그렇게 후텁지근할 수가 없어요. 숨이 턱턱 막히는 거요. 거긴 지금 밤이로군.

     에스텔: 그러네요. 올가가 옷을 벗고 있어요. 자정이 넘었나 보네. 저기, 지상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이네스: 그래요, 자정이 넘었어요. 내 방문을 꽁꽁 잠가 두었네. 방안이 칠흑처럼 어둡고, 텅 비어 있어요.

     가르생: 저 사람들은 의자 등받이에 코트를 걸고, 셔츠 소매도 팔꿈치 위로 걷었어. 땀 냄새가 풍기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네. (침묵.) 아아, 셔츠 차림의 남자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정말 좋았는데.

     에스텔: (무뚝뚝하게) 그렇다면 우리 취향은 서로 다르군요. (이네스한테 몸을 돌리면서) 당신은 재킷 벗은 남자를 좋아하나요?

     이네스: 재킷을 걸치든 아니든, 난 남자한테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에스텔: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훑어본다.) 근데, 우리 세 사람을 왜 여기 같이 있게 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상식에 어긋나잖아요. 

     이네스: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무슨 소리에요?

     에스텔: 보아하니, 앞으로 당신네 두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말도 안 돼요. 난 옛 친구나 친지들을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이네스: 그렇군, 얼굴 한가운데 구멍 뻥 뚫린, 멋진 친구를 기대했겠지요.

     에스텔: 맞아요, 그 사람도 있으리라고 기대했어요. 그는 탱고를 아주 멋지게 추었지요, 진짜 프로처럼! 근데,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우리를 함께 있게 한 거죠? 

     가르생: 이건, 아마도 우연일 게요. 저들은 사람들을 들어오는 순서대로 방에 넣으니까. (이네스에게) 근데, 당신은 왜 웃는 겁니까?

     이네스: ‘우연’이라는 말이 웃기잖아요. 그렇게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가요? 저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일은 없어요. 

 

     에스텔: (조심스레)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은 없나요?

     이네스: 그렇진 않아요. 그랬다면 내가 당신을 기억하겠지요.

     에스텔: 아니면, 우리한테 공통의 지인들이 있던가요? 듀부아 부부를 혹시 아시나요?

     이네스: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요. 

     에스텔: 하지만 누구나 그 부부가 베푸는 파티에 다닌걸요. 

     이네스: 그들 직업이 뭔데요?

     에스텔: 아아, 아무 일도 안 해요. 하지만 시골에 멋진 별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를 방문하지요. 

     이네스: 아니, 난 간 적이 없어요. 난 우체국 사무원이었어요. 

     에스텔: (슬며시 뒷걸음치면서) 아, 네, 그렇다면야. (휴지) 그럼, 가르생 씨는? 

     가르생: 난 평생을 리오에서 살았다오. 

     에스텔: 그렇다면 당신 말이 맞겠군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게 된 건 우연일 거예요.

     이네스: 우연일 뿐이라구요? 그러니까, 여기 가구도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놓인 것이고, 오른쪽 소파가 진녹색이고 왼쪽이 적갈색인 것도 그냥 우연이라… 이게 다 당신 보기에는 우연이라는 것이죠? 음, 이 소파들을 옮겨 놓아 봐요, 그러면 차이를 금방 알 거예요. 그리고 벽난로 선반에 있는 저 청동 조각상도 우연히 저기 놓인 것이라 생각하나요? 이 후텁지근한 열기는? 이건 어때요? (침묵.) 아니, 안 그래요, 이건 다 사전에 구상된 거라구요. 아주 세세한 데까지. 우연이란 전혀 없어요. 이 방은 다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된 것이에요. 

     에스텔: 말도 안 돼! 여기 있는 건 죄다 볼품없고, 다 모서리가 있어서 불편해. 난 뾰족한 모서리라면 늘 질색인걸요. 

     이네스: (어깨 추썩이면서) 그럼, 난 뭐 앙피르 양식으로 꾸민 방에서 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휴지.)

     에스텔: 그러니까 당신 생각에는 이게 전부 예정된 것이란 말이지요?

     이네스: 맞아요. 저들은 우리를 일부러 한데 집어넣었어요.

     에스텔: 당신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도 예정됐다는 뜻인가요? (휴지.)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요?

     이네스: 거야 나도 모르죠. 하지만 저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에스텔: 누군가가 나한테서 뭔가 기대한다는 것을 난 도저히 견디지 못했어요. 그럴 때면 즉각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지거든요. 

     이네스: 흠, 그렇게 해요!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저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잖아요. 

 

     에스텔: (발을 구르면서) 이건 정말 못 견디겠어. 그러니까, 당신들 두 사람 때문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녀가 가르생과 이네스를 쳐다본다.) 뭔가 불쾌한 일일 거야. 난 어떤 얼굴들은 한번 보기만 하면 다 알지요. 한데, 당신네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군요.

     가르생: (이네스한테 사납게)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함께 있게 된 거요? 당신은 계속 에둘러 말하는데,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털어놔 봐요. 

     이네스: (놀라면서)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나도 당신들만큼이나 모른다구요. 

     가르생: 흠, 그걸 알아야 하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네스: 우리가 각자 시원스레 털어놓기만 한다면…

     가르생: 뭘 털어놓는다구요?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네?

     이네스: 지금까지 당신이 행한 일은 뭔가요? 내 말은, 저들이 당신을 왜 여기로 보냈느냐, 이거지요.

 

     에스텔: (활기차게) 바로 그게 중요한데… 몰라요, 전혀 모르겠어! 사실,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는 참이에요! (이네스에게) 웃지 마세요. 생각 좀 해 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부재자가 되는지 말이에요. 수천, 수만 명이 여기로 오는데,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하급 작업자들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제 일도 처리할 줄 모르는 멍청한 직원들이에요. 한데 당신 얘기로는 착오 따위가 전혀 없었다는… 아, 그만 웃어요. (가르생에게) 당신이 무슨 말씀 좀 해 보세요. 만약 그들이 착오로 나를 여기 데려왔다고 한다면, 당신 경우에도 그들 실수가 있었을 거예요. (이네스한데) 당신도 마찬가지구요. 우리가 여기 있게 된 것이 착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네스: 당신이 할 수 있는 얘기는 그게 전부인가요?

     에스텔: 뭘 더 알고 싶은 거지요? 난 감출 거 하나 없어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어린 남동생을 떠맡게 됐어요. 우리는 지독하게 가난했는데, 우리 가족의 오랜 친구가 혼인을 제안했어요. 그이는 부유한데다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나도 동의했어요. 여기 있는 두 사람이 내 처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내 남동생은 아주 골골해서 늘 돌봐줘야 했지요. 남편은 아버지뻘 되는 나이였지만, 우린 여섯 해 동안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태 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을 만났지 뭐예요.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서로 알아봤어요. 그 사람은 함께 달아나기를 바랐지만, 내가 거부했어요. 그 뒤 난 폐렴에 걸렸어요. 이게 전부에요. 어떤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가 세 배나 더 많은 노인에게 내 청춘을 바쳤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요. (가르생에게) 당신은 이걸 죄악이라 보시나요?

     가르생: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휴지)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이 자기 원칙을 따르는 게 죄악이라고 생각하나요?

     에스텔: 물론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가르생: 잠깐만이요! 나는 평화를 주창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을 발행했다오. 전쟁이 터졌어요. 어떡해야 하나? 사람들 눈길이 죄다 나한테 쏠렸다오. ‘저 사람이 제 주장대로 나아갈까 아닐까?’ 흠, 나는 내 길을 과감하게 택해서 전투에 나가기를 거부했소, 그리고 총살당한 게요. 이게 무슨 죄란 말이오, 내가 뭘 잘못 한 게 있었나요?

     에스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잘못이요? 외려 그 반대에요. 당신은…

     이네스: (비꼬듯이 말을 이으면서) 영웅이었지. 그럼, 아내는요,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건 간단해. 내가 그녀를 구했다오, 시궁창에서…

     에스텔: (이네스에게) 봐요! 봐!

     이네스: 보고 있어요. (휴지) 우리, 생각 좀 해 봐요. 지금 이런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다 똑같은 흠을 지니고 있어요. 

     에스텔: (도전적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이네스: 맞아요, 우리 셋은 다 범죄자에요, 살인자이지요. 우리는 지옥에 있는 거야. 착오 따위는 없어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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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인 거야!"

"지옥이란 바로 다른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지옥인 거야!"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야.

 

얼핏 듣자면,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 살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서로한테 어쩌면 필요악인가요?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옥일 수 있지만, 또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그건 각자가 서로 하기 나름! 이게 중요하겠지요. 

 


 

 2장 

     가르생.

 

     가르생 혼자 있다. 청동 장식품에 다가가서 손으로 톡톡 건드린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난다. 문 쪽으로 다가가서 벨을 누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세 번 계속 눌러 보지만 소용없다. 그러자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역시 꿈쩍도 않는다. 그가 소리쳐 부른다.

 

     가르생: 안내인! 안내인!

 

     대답이 없다. 가르생이 문을 세게 두드리면서 안내인을 계속 부른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내인과 함께 이네스가 들어선다. 

 

 3장 

 

 가르생, 이네스, 안내인.

 

     안내인: 부르셨나요, 선생님?

     가르생: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이네스를 보고는 바꿔 말한다) 아니요. 

     안내인: (이네스를 보면서) 여기가 부인 방입니다. (이네스가 대꾸하지 않는다.) 혹시 물으실 게 있다면... (이네스가 계속 입을 다물자, 실망한 빛으로) 우리 손님들 대다수는 저한테 여러 질문을 하지요. 하지만 제가 강요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칫솔이며 초인종, 벽난로 위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 신사분이 이미 알고 계시니까 잘 대답해 주실 겁니다. 이 분과 저는 얘기를 좀 나누었거든요. 

     (안내인이 나간다. 침묵. 가르생은 이네스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네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르생 쪽으로 몸을 홱 돌린다.)

     이네스: 플로렌스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이 침묵한다.) 난 플로렌스에 관해 묻는 거예요. 그녀는 어디 있지요?

     가르생: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네스: 이건 다 당신이 궁리한 거지요? 떼어 놓고 고문하는 것 말이에요. 한데 내가 알기에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플로렌스는 귀찮은 멍청이였고, 난 그녀를 조금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구요.

     가르생: 미안하지만,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가요?

     이네스: 당신... 하는 일이 고문이잖아요. 

     가르생: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거 참,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내가 고문자라니! 그러니까 이 방에 들어와서 나를 보고는 이곳 직원이라고 생각했군.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요! 저 안내인이 멍청해서 그래, 우리를 서로 소개했어야지! 나를 고문자로 보다니! 난 조세프 가르생이라고 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지요. 우리 둘 다 이를테면 같은 배를 탄 셈이니까,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마담은...

    이네스: (무뚝뚝하게) 이네스 세라노라고 해요. 마담이 아니라 마드무아젤이에요. 

 

출구없는방무대 장면

 

    가르생: 좋아요, 어쨌든 시작은 됐어요. 자, 우리 사이에 얼음이 깨졌는데, 내가 아직도 고문자처럼 보이나요? 아, 그리고 고문자들은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요? 당신은 분명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이네스: 그들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가르생: 겁먹은 표정이요? 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로군요. 그들이 누구한테 겁을 먹나요? 자기네가 고문한 사람들한테?

     이네스: 그래, 맘껏 웃어요. 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아요. 나는 유리 같은 데 비친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봤어요.

     가르생: 유리에?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저들은 정말 못돼먹었군. 유리 같은 건 다 치웠으니 말이에요. (휴지) 어쨌든 분명히 말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경망스럽게 구는 건 아니에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압니다. 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요. 전혀.

     이네스: (어깨를 추썩이며) 그건 당신 문제구요. (휴지) 당신은 항상 여기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가끔 산책이라도 하나요? 

     가르생: 문은 잠겨 있습니다. 

     이네스: 거 참 고약하네요. 

     가르생: 내가 있어서 당신이 많이 불편할 겁니다. 사실 나도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해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건 혼자 있을 때 더 잘 되니까요.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잘 지낼 거라고 믿어요. 난 말이 많지 않고 많이 움직이지도 않아요. 평화로운 부류에 속하는 편이지요. 단지 하나, 감히 제안하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정중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를 다치지 않는 최상의 방법 아니겠어요?

     이네스: 난 예의를 잘 차리지 못해요.

     가르생: 그렇다면, 내가 두 몫으로 정중하게 처신해야겠군요.

     (침묵. 가르생이 소파에 앉는다. 이네스가 방안을 앞뒤로 서성인다.)

 

     이네스: (그를 바라보면서) 당신 입이... 

     가르생: (생각을 떨치면서) 뭐라구요?

     이네스: 입 좀 가만둘 수는 없나요? 입을 계속 씰룩거리고 있잖아요. 보기가 참 안 좋아요.

     가르생: 정말 미안하오. 난 그런 줄 몰랐어요. 

     이네스: 그래서 지적하는 거예요. (가르생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저 봐, 또 그러네. 당신은 예의 운운하면서 자기 얼굴 하나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는군요. 당신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나한테 옮기면 안 돼요.

     (가르생이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르생: 당신은 어때요? 두렵지 않은가요?

     이네스: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예전엔 두려워할 이유가 웬만큼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단 말이죠. 

     가르생: (맥없이) 더 이상 희망은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 “예전”입니다. 우리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마드무아젤.

     이네스: 그건 알아요. (휴지)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가르생: 모르겠소. 기다려야겠지요. 

     (침묵. 가르생이 다시 제 자리에 앉는다. 이네스가 또 앞뒤로 바장인다. 가르생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이네스를 흘낏 보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에스텔과 안내인이 들어선다.)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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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장-폴 사르트르 지음 

김성호 옮김

 

19 세기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주의의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이 개념을 널리 알린 이는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였다. 1944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연극 <출구 없는 방/ Huis Clos/ No Exit>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니까. 
이 작품에는 안내인, 가르생, 에스텔, 이네스 등 네 캐릭터만 등장하며, 무대는 벽난로 위에 커다란 청동 장식품이 놓이고 앙피르 풍 가구가 배치된 객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다른 사람들이 바로 지옥”이라는 식의 실존주의적 사고가 배어 있다.

이 희곡을 읽으면서,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두 사람과 함께 객실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르트르 희곡 출구 없는 방 No Exit

 

1장

 

     가르생, 안내인. 

     (앙피르 풍의 가구가 갖춰진 객실. 벽난로 위에 청동 흉상이 놓여 있다.)

 

     가르생: (안내인을 따라 방에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니까, 여긴가요?

     안내인: 예, 미스터 가르생. 

     가르생: 그러니까, 이건, 보이는 그대로군요. 

     안내인: 그렇습니다.

     가르생: 앙피르 풍의 가구 같은데… 아, 그래, 여기에 서서히 익숙해지겠지요?

     안내인: 사람마다 하기 나름이지요.

     가르생: 그러면 여기 방들은 다 이런 모습인가요? 

     안내인: 어찌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이를테면 중국인이나 인도 사람을 위한 방도 다 제공합니다. 그들한테 앙피르 양식의 안락의자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가르생: 그럼, 나한테는 어떤 양식이 맞겠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시오? 이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견딜 수 없는 가구들 사이에서, 거짓된 상황에서 살면서 그런 삶을 마음껏 즐겼지요. 루이 필립 양식의 식당처럼 거짓된 상황…, 그 양식을 알아요? 요는, 말하자면, 가짜 속에 또 가짜가 있다는 것이오. 

     안내인: 앙피르 풍으로 꾸민 객실도 전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가르생: 그래요? 아, 좋아요, 좋아. 그렇다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하지만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저 아래에서 우리한테 하는 얘기를 당신은 알고 있나요?

 

     안내인: 무슨 얘기 말인가요?

     가르생: 흠... (방안을 휘둘러보면서) 이곳에 관해 하는 말들 말이오.

     안내인: 사실, 그런 건 다 허튼소리에 불과해요.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여기 와 본 적이 없는데.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그들이 여기 오려면...

     가르생: 아, 맞아요. (둘이 웃는다.) (가르송이 정색하면서) 한데 고문대는 어디 있소?

     안내인: 뭐라구요?

     가르생: 흠, 고문대며 불에 달군 인두, 에스파냐 부츠 따위 기구들 말이오. 

     안내인: 아, 지금 농담하시는 거지요?

     가르생: (그를 주시하면서) 농담이냐구요? 아니요, 여기서 웃을 일이 뭐 있겠소. (침묵. 가르생이 앞뒤로 바장인다.) 여긴 거울이 없군요. 창문도 하나 없네. 깨질 물건은 하나도 없어. (문득 어조를 높여서) 한데, 내 칫솔은 왜 압수한 거요?

     안내인: 아, 좋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직 이른바 인간적 품위를 떨치지 못한 건가요? 이런 표현, 미안합니다.

     가르생: (화가 나서 안락의자 팔걸이를 내려치며) 빈정대지 마시오. 내 처지를 분명히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못 참아...

     안내인: 아, 알겠습니다!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습니다. 댁은 뭘 원하시나요? 고객들은 다 똑같은 질문들을 던져요.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정말 멍청한 질문들이지요. 다들 “고문실은 어디 있어요?” 하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좀 진정되면 칫솔을 요구하는데, 그래봤자 개인위생을 염려해서 그러는 건 전혀 아니에요. 한데 정말이지, 당신들은 생각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요? 대답해 보세요, 당신이 왜 이를 닦아야 하는 겁니까? 

 

     가르생: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래, 그럴 필요가 없군. (다시 사방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거울은 왜 들여다보고 싶어 하나? 하지만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 흉상으로 말하자면… 내가 저기서 눈을 떼지 못할 순간이 올 것 같아요. 눈을 떼지 못하겠지요? 

좋아요, 우리 툭 털어놓고 얘기해 봅시다. 난 내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오. 이게 어떤 느낌인지 말해 볼까요? 한 남자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데, 두 눈은 아직 물 위에 내놓고 있는 꼴이오. 그리고 무엇을 볼까요? 그 사람 이름이… 아, 바르베디앙, 그가 만든 청동 흉상을 보겠지요. (*Barbedienne, 1810-1892, 프랑스 금속세공인). 이건 악몽이오! 이게 저들의 의도 아닌가요? 

아, 아니야, 당신은 질문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겠지. 그래서 더 묻지 않을 게요. 하지만 나한테 함부로 대하지는 마시오, 나를 놀라게 하면서 즐길 생각일랑 접어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 (다시 앞뒤로 바장인다.) 자, 칫솔은 필요 없게 됐어. 침대도 그렇고. 여기서는 다들 잠도 안 자는 모양이구려? 

     안내인: 그렇습니다. 

 

출구는 없다
사르트르 희곡 <출구는 없다>

 

     가르생: 그럴 줄 알았소. 잠을 왜 자야 하지? 졸음이 당신 뒤편에서 조용히 다가들고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느끼지만, 침대로 갈 필요가 없지. 소파에 눕는데, 이런, 잠이 달아나고 마네. 두 눈을 부비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안내인: 당신은 정말 낭만적이군요!

     가르생: 그런 소리 마시오. 난 눈물 흘리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을 게요. 금방 말한 대로 상황을 직면할 거요. 공정하고 당당하게 마주할 것이오. 내가 짐작도 하기 전에 상황이 뒤통수치기를 바라지 않아요. 이걸 당신은 낭만적이라고 부르는군요. 여기선 휴식이 필요 없다는 뜻이오? 휴식이 필요 없다면 잠을 왜 자나? 안 그렇소? 잠깐만. 이봐요, 여기선 징벌을 어떻게 받지요? 어디서? 아, 알겠어, 휴식도 없이 내닫는 삶이로군.

     안내인: 휴식도 없다니요?

     가르생: (그를 흉내 내면서) 휴식도 없다니요?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시오. 내 그럴 줄 알았어! 당신 눈길이 왜 이다지도 뻔뻔스러운지 이제 알겠소. 근육 위축증에 걸렸군!

     안내인: 무슨 뜻이지요?

 

     가르생: 당신 눈꺼풀 말이오. 우리네 눈꺼풀은 위아래로 움직여요. 이걸 가리켜서 깜빡거림이라고 하지. 이건 찰칵 하고 내려가면서 휴식을 취하는 작고 검은 셔터 같은 것이라오. 모든 것이 검게 변하고 두 눈은 축축해지지요. 그러면 얼마나 휴식이 되고 상쾌해지는지 당신은 모를 게요. 한 시간마다 4천 번의 짧은 휴식이 있다오. 4천 번의 짧은 멈춤을 생각해 봐요! 뭐라구요? 내 눈꺼풀도 닫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어리석게 굴지 마시오. 눈꺼풀 없는 것이나 잠을 못 자는 것이나 매한가지야. 난 절대 다시 잠자지 않을 거요. 

하지만 어떻게 견디냐고? 이해하려고 해 봐요. 보다시피, 난 놀리기를 좋아해요, 이건 나의 제 2의 천성이고, 난 자기 자신을 놀리는 데 익숙하다오. 자신을 괴롭히는 데 익숙하다고 해도 되겠지. 난 멋지게 괴롭히지 못해. 그러나 휴식도 없이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저 아래에서 나한테는 밤이 있었다오. 난 잠을 잤어요. 늘 곤히 자곤 했어. 일종의 보상 같은 거지요. 그리고 행복한 꿈도 살짝 꾸었지. 거기엔 푸른 들판이 있었다오. 그냥 평범한 들판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거닐곤 했지… 여긴 지금 낮이오?

 

     안내인: 램프 켜져 있는 게 안 보입니까? 

     가르생: 아, 그래요, 알겠어. 그러니까 이게 당신네 낮이로군. 바깥은 어떻소?

     안내인: (놀라서) 바깥이라니요?

     가르생: 이런 젠장, 무슨 뜻인지 알잖소. 저 벽 너머 말이오!

     안내인: 거긴 통로가 있습니다. 

     가르생: 그러면 통로 끝에는?

     안내인: 객실들이 더 있고 통로도 더 있고 또 여러 계단이 있지요.

     가르생: 그 다음엔 뭐가 있나요?

     안내인: 그게 전붑니다. 

     가르생: 당신도 쉬는 날이 있을 텐데, 그때는 어디로 가시오?

     안내인: 숙부한테 갑니다. 3층에서 선임 안내원으로 일하지요. 

     가르생: 흠, 그렇군. 전등 스위치는 어디 있지요?

     안내인: 여기에 스위치 같은 건 없습니다.

     가르생: 뭐라구요? 그렇다면 불을 못 끈다는 뜻이오?

     안내인: 아, 관리실에서 전기를 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층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엔 전기가 넘치니까요.

     가르생: 거 참 좋군. 그러니까 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오?

     안내인: (빈정대듯이) ‘산다’는 표현을 쓰셨나요? 

     가르생: 말꼬리 잡지 마시오. 눈을 감지 않는다. 영원히. 눈앞엔 늘 대낮이야. 또 머릿속에도. (휴지.) 벽난로 위에 있는 저 청동상을 전등 위에 떨어뜨리면 불이 나가지 않을까? 

     안내인: 그건 아주 무겁습니다.

     (가르생이 청동상을 들어 올리려 한다.)

     가르생: 맞네. 정말 무겁군. (침묵.)

     안내인: 그럼, 더 하실 말씀 없다면, 물러가겠습니다.

     가르생: (흠칫 놀라면서) 뭐, 간다구요? 잘 가시오. (급사가 문에 이른다.) 잠깐. (급사가 몸을 돌린다.) 이게 벨 맞소? (급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할 때 벨을 누르면 당신이 나타나나요?

     안내인: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끔 말을 안 들어요. 배선에 문제가 좀 있지요.

     (가르생이 벨 쪽으로 다가가서 누른다. 벨이 울린다.)

     가르생: 잘 작동하는군!

     안내인: (놀라서) 정말 작동하네요. (역시 벨을 누른다.) 하지만 좋아하진 마세요, 변덕이 심하니까요. 이제 정말 가야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가르생: (손짓으로 그를 세우면서) 저기…

     안내인: 네?

     가르생: 아니, 아무 것도 아니요. (그가 벽난로 쪽으로 가서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든다.) 이건 또 뭐지요?

     안내인: 보시다시피, 책갈피를 자르는 칼입니다. 

     가르생: 여기 책이 있다는 말이오? 

     안내인: 아니요. 

     가르생: 그러면 이걸 뭐에 써먹나? (안내인이 어깨를 추썩인다.) 됐어, 가 봐요.

     (안내인이 퇴장한다.)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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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 없는 방> 소개와 분석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출구 없는 방>은 독일의 프랑스 점령을 상징하는 작품. 

그 자신이 2차 대전 동안 프랑스군 군인으로서 패배와 전쟁의 고통을 생생히 겪었다. 

사건은 지옥의 일부로 간주되는 방에서 벌어지는데, 이 방에 들어선 세 사람은 서로가 제 주변에 있는 다른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전쟁 동안 뒤섞여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 간의 관계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 희곡에서 사르트르는 자유, 타인에게 의존, 속임수, ‘잘못된 믿음’ 같은 이슈를 다룬다. 


사르트르 출구는 없다<출구는 없다> 공연 장면


죽음을 보는 방식이며 현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사르트르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이 희곡에 담긴 여러 관념이며 상징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각자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캐릭터들도 깊이 있게 살펴봐야겠다. 

사르트르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통제하게 하는 존재인 ‘존재 안의 존재(being-in-itself)’나 아니면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인 ‘존재 위한 존재(being-for-itself)’를 확고하게 믿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경구는 인간 의식이 ‘존재 위한 존재’나 ‘존재 안의 존재’에 집중됐다는 그의 믿음을 드러내는 주제였다. 

인간에겐 자신의 생각, 특유함, 가치, 어떤 특징을 선택할 힘이 있다. 이런 힘과 더불어 선택에 대한 책임도 따라붙는다. 이 책임이 두려워서 사람들은 한 발 물러선 채 자기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고 통제하게 하는 것. 이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방법. 그럼으로써 ‘존재 위한 존재’ 대신 ‘존재 안의 존재’가 생긴다. 


이 희곡에서 사르트르가 묘사한 캐릭터는 안내인과 이네스, 에스텔, 가르생. 가르생은 리오 출신의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먼저 방에 들어온다. 그는 전쟁 중에 탈영하려 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탈영이 평화주의자로서 신념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대화가 펼쳐지면서 가르생은 자기네 세 사람이 어쩌다 우연히 한데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로써 서로를 고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같이 있게 됐음을 깨닫는다. 또 이 곤경을 수습하는 최선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각자 따로 지내면서 다른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가르생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구의 현재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지구에서 사랑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못된 짓을 두고 자신을 달래려고 한다. 자신이 왜 지옥에 떨어졌는지 충분히 깨닫고 더 이상 아무 의문도 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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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객실에 들어온 이네스는 가장 파괴적인 캐릭터. 그녀는 다른 두 사람에게 적대감과 문제를 불러일으키려고 든다. 과거에 그녀는 우체국 사무원이었다. 자신이 사촌의 아내를 유혹하고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자는 동안 자기 사촌의 아내이자 자신의 애인이 스토브를 켜 두어 가스가 새 나오는 바람에 함께 죽었다. 남자들을 싫어하는 게 분명한 이네스는 가르생을 미워하여 툭하면 아옹다옹한다. 하지만 에스텔이 아주 매력적인 여성임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계속 치근댄다. 에스텔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면서도 실제로는 그녀를 두려워한다.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온 사람은 에스텔. 셋 중에서 가장 크게 겁에 질려 있다. 자신의 실제 존재를 스스로 상기하기 위해 거울을 보는데, 그 방에는 거울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가르생과 이네스에게 의존하기로 한다. 또한 자신은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으면서 폐렴으로 죽었다는 것만 인정한다. 그녀는 ‘죽은’이란 단어 대신 ‘부재중’이란 단어를 쓰자고 다른 두 사람에게 부탁한다. 

이네스가 계속 집적대지만 에스텔은 오로지 남자하고만 함께 할 수 있으며 가르생을 좋아한다고 밝힌다. 가르생은 한순간 에스텔에게 흥미를 보이다가 곧 이네스와 그녀의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에스텔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으며 사생아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

가장 베일에 싸인 캐릭터는 안내인. 그는 세 사람을 방으로 안내하면서 질문에는 거의 대답하지 않으며 수수께끼 같은 말만 짧게 남기곤 한다. 자기를 호출할 수 있는 벨을 가르생에게 알려주지만, 그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안내인은 악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가르생에게 탈출할 기회를 주지만, 그러면서도 가르생이 이네스의 비판을 겁내 떠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세 사람은 안내인이 자기들을 은근히 우롱하며 방의 가구 배치 같은 문제로 아주 성가시게 한다고 여긴다. 


사르트르는 각 등장인물의
존재와 본질의 차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각자는 지구에서 이미 죽었고 남은 영혼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 그들은 폐쇄되고 고립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스스로 볼 수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 행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거부하는 것. 실존주의자들은 그 어떤 공동체나 전통, 법과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을 연구하고 들여다보기를 택한다. <출구는 없다>에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출구도 거울도 없기 때문에 캐릭터들은 자기네가 실제로 거기 있고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처음에 이네스는 가르생의 표정을 두고 가르생과 갈등을 겪는다. 입매가 마음에 안 드니 그만 씰룩거리라고 요구한다. 그가 그녀의 지적을 받아들여 씰룩거림을 멈추려 애쓴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이 자기네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의견에 의존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가르생은 이네스가 그의 본질을 정의하도록 허용한 것. 


이 작품의 또 다른 흥밋거리는 사르트르가 지옥을 최종 장소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 마인드 상태가 지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자가 알게 한다. 독일군의 파리 점령 기간에 이 희곡을 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내인의 눈꺼풀 없는 응시로써 사르트르가 나치의 프랑스인 감시를 비유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르생은 안내인의 주시를 몹시 곤혹스럽게 여기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문의 눈길 받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 


에스텔은 가르생을 처음 볼 때 그를 지상의 연인과 결부시킨다. 이건 스토리 후반에 둘의 관계를 예고하는 것. 에스텔이 거울에 의존하여 실제로 거기 있다고 믿음을 통해 존재와 본질이 또 거론된다. 에스텔은 물질적인 것들에 의존해 자기 존재를 정의한다. 반면에 이네스는 자신의 존재나 본질을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게 놔두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처절하게 의식한다고 주장한다.” 에스텔은 이네스에게 거울이 돼 달라고 하지만, 그녀가 에스텔을 제대로 돕기란 불가능하다. 외모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르니까. 

에스텔과 가르생 둘 다 자기네 과거를 떠나보내고 이미 저지른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지옥을 만들어 내는데, 그건 끝없는 개인적 고문처럼 보인다. 둘은 여전히 과거에 있는 듯이 행동하며, 이네스와는 달리 지금 여기를 보려 들지 않는다. 이네스는 자신의 현재를 분명히 보며 과거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한다. 


이네스와 마찬가지로 가르생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극히 염려하며 통제력이 부족할까 겁낸다. 그는 이제 자신이 사라졌고 자신의 기억과 유산을 남들에게 남겨 두어 기쁘게 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을 정의할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 넘긴다. 그는 이제 ‘존재 안의 존재’가 되었다. 이건 안내인이 그를 위해 문을 열 때 떠나지 않기로 한 이유이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행한 선택을 두고 사람들이 그를 판단할 것이라 믿으며, 자신을 영원히 이 방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사르트르는 가르생과 에스텔, 이네스를 한데 모아둠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옥은 그냥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우리네 마음가짐일 수 있다. 각자가 서로 응시하는 파워가 대체로 각 개인의 개성을 앗아간다. 타인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고통을 야기할 때 신체적 고문은 필요가 없다. 각 캐릭터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잃고 무시한다. 


<출구 없는 방>은 삶의 여러 중요한 주제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접할 만하다. 

자기 행동에 책임,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기, 실존, 현재에 집중 등이 삶을 꾸리는 중요한 방법이다. 

여기 각 캐릭터는 많은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나약함이나 결점을 상징한다. 


* 공연 녹화물이 유튜브에 상당히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중에 하나를 여기 옮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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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글쓰기2019. 4. 1. 13:16

 

 구두점 관련 테스트 

 

과제 1. 아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라.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목한다. 

부호 바꾸면서 때로는 의미도 완전히 달라짐에 주목하라.

 

1) 더워, 태양이 머리 위에 있어. 

   더워: 태양이 머리 위에 있어. 

 

2) 혹독한 겨울 - 폭염의 여름. 

 

3) 그가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어? 그가 돌아왔어! 

 

4) 집에 오고, 먹고, 잔다. 

   집에 오고 – 먹고, 잔다. 

 

5) 기사는 인쇄될 수 있어. 

   기사는, 어쩌면, 인쇄됐을 거야

 

구두점 문장부호

 

과제 2. 아래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쉼표의 여러 기능에 주목하라. 쉼표에서 휴지가 불필요한 경우를 가리라. 작자가 둔 줄임표를 어떻게 설명할 텐가.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아직 10리가 남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먹장구름이, 한 점 바람도 없지만, 빠른 속도로, 우리한테 몰려왔다.」

 

 

과제 3. 아래 글에 필요하다 싶은 구두점을 넣어 보라. 

  

늦은 봄이다. 꽃 찾는 나비들은 멀리멀리 날라 다니고 벗 부르는 꾀꼬리들은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때다. 임꺽정이의 집 앞뒤 마당에 풀이 많이 나서 어느 날 꺽정이가 처남 황천왕동이와 아들 백손이에게 풀을 뽑으라고 말을 일렀다. 천왕동이가 매형의 말에 상을 찡그리면서도 마지못하여 생질을 데리고 풀을 뽑으러 나서는데 앞뒤 마당을 둘이 갈라 맡아 뽑기로 하다가 풀 적은 앞마당은 생질에게 빼앗기고 풀 많은 뒷마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좁지 않은 마당에 풀이 무더기로 나서 낱낱이 뽑지 않고 북북 쥐어뜯어도 한나절이 좋이 걸릴 모양이라 천왕동이가 얼마 뽑다가 성가신 생각이 나서 삽을 갖다가 쓱쓱 밀어나갔다. 이때 울 뒤에 섰는 느티나무에서 꾀꼬리 노래가 흘러나왔다 천왕동이가 꾀꼬리 노래를 듣느라고 삽을 짚고 서서 우두커니 느티나무를 바라보고 섰는데 꺽정이의 병신 아우가 뒤꼍으로 오다가 천왕동이의 섰는 모양을 보고 큰 얘깃거리나 얻은 듯이 부지런히 도로 나가서 앞마당에 나섰는 애기 어머니를 보고

누님, 백손이 아저씨가 느티나무를 이렇게 쳐다보구 있습디다

하고 고개를 쳐들어 보이니 애기 어머니는 혀를 차고

싱겁기두 짝이 없다

하고 병신 아우를 핀잔주었다. 병신이 열쩍어 하며 섰다가 조카 풀 뽑는 옆으로 간 뒤에 애기 어머니가 뒤꼍에 와서

황도령이 무얼 정신없이 봅시나?

하고 소리치며 천황동이에게로 가까이 왔다

(벽초 홍명희 대하소설 <임꺽정> 5권, 황천왕동이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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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 부호 정리 

  V. 이음표

1. 줄표(─): 이미 말한 내용을 다른 말로 부연하거나 보충. 

  

(1) 문장 중간에 앞의 내용에 부연하는 말이 끼어들 때. 

☞ 그 신동은 네 살에─보통 아이 같으면 천자문도 모를 나이에─벌써 시를 지었다. 

 

구두점

 

(2) 앞의 말을 정정 또는 변명하는 말이 이어질 때. 

☞ 어머님께 말했다가─아니, 말씀드렸다가─꾸중만 들었다.

☞ 이건 내 것이니까─아니,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이니까─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다. 

*참조: 붙임표(하이픈)와 구분하기 위해 길이를 150%로 늘리되, 양쪽으로 여백(자간 20%)을 둔다.

 

2. 붙임표(-) 

  

(1) 사전, 논문 등에서 합성어를 나타낼 적에, 또는 접사나 어미임을 나타낼 적에. 

☞ 겨울-나그네, 불-구경, 손-발, 휘-날리다, 슬기-롭다, -(으)ㄹ걸 

(2) 외래어와 고유어 또는 한자어가 결합되는 경우에. 

☞ 나일론-실 디-장조 빛-에너지 염화-칼륨 

  

3. 물결표(∼) 

  

(1) ‘내지’라는 뜻에. 

☞ 9월 15일∼9월 25일 

(2) 어떤 말의 앞이나 뒤에 들어갈 말 대신. 

☞ 새마을: ∼운동 ∼노래 | 가(家): 음악~, 작곡~

 

VI. 드러냄표

  

1. 드러냄표( ˙, ˚ ): ‘방점’(傍點) 또는 ‘곁점’(무언가를 강조한다는 뜻으로 “방점을 찍다”). 

‘ · ’이나 ‘ ˚ ’을 가로쓰기에는 글자 위에, 세로쓰기에는 글자 오른쪽에. 문장 내용에서 주의를 기울일 곳이나 중요한 부분을 특별히 드러내 보일 때. 

☞ 그래서 도대체 누가 전쟁터로 갔다는 말이냐.

 

2. 숨김표(××, ○○): 알면서도 고의로 드러내지 않음을 나타낸다. 

  

(1) 금기어나 공공연히 쓰기 어려운 비속어의 경우, 그 글자의 수효만큼 쓴다. 

☞ 배운 사람 입에서 어찌 ○○○란 말이 나올 수 있느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2) 비밀을 유지할 사항일 경우, 그 글자의 수효만큼 쓴다. 

☞ 육군 ○○부대 ○○○명이 작전에 참가했다. 

☞ 모임의 참석자는 김×× 씨, 정×× 씨 등 5명이었다. 

  

3. 빠짐표(□): 글자의 자리를 비워 둠을 나타낸다. 

  

(1) 옛 비문이나 서적 등에서 글자가 분명하지 않을 때 그 글자의 수만큼 쓴다. 

☞ 大師爲法主□□賴之大□薦(옛 비문) 

(2) 글자가 들어가야 할 자리를 나타낼 때. 

  

4. 줄임표(……)(…)

  

(1) 할 말을 줄였을 때. 

☞ “어디 나하고 한번…….” 하고 철수가 나섰다.

(2) 말이 없음을 나타낼 때 

☞ “빨리 말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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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점은 '독서의 악보' 

 

III. 따옴표

  

1. 큰따옴표(“ ”), 겹낫표(『 』): 대화, 인용, 특별 어구 따위를. 가로쓰기에는 큰따옴표, 세로쓰기에는 겹낫표를. 

  

(1) 글 가운데서 직접 대화를 표시할 때. 

☞ “전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책을 보았을까?” “그야 등잔불을 켜고 보았겠지.” 

 

(2) 남의 말을 인용할 경우.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다” 하였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학자가 있다.

  

*참조: 

본문 가운데 다른 문헌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 큰따옴표. ☞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다.

② 겹낫표는 단행본·장편소설·소설집·희곡집·정기간행물의 제목을 표시할 때. 

☞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 | 『한겨레』, 『더 선』(The Sun)

 

구두점 문장 부호

 

2. 작은따옴표(‘ ’ ) 

  

(1) 따온 말 가운데 다시 따온 말이 들어 있을 때. 

☞ “여러분! 침착해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합니다.” 

 

(2) 마음속으로 한 말을 적을 때. 

☞ ‘만약 내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붙임]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돋보일 때 드러냄표 대신 쓰기도 한다.

☞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IV. 묶음표

  

1. 소괄호( ( ) ) 

  

(1) 원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 커피(coffee)는 기호 식품이다. | 3·1운동(1919)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 ‘무정’(無情)은 춘원(6·25 때 납북)의 작품이다. | 니체(독일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2) 특히 기호 또는 기호적인 구실을 하는 문자, 단어, 구에. 

☞ (1) 주어 | (ㄱ) 명사 | (라) 소리에 관한 것 

 

(3) 빈자리임을 나타낼 적에. 

☞ 우리나라의 수도는 ( )이다. 

  

2. 중괄호({}): 여러 단위를 동등하게 묶어서 보일 때 사용.

☞ 견과류

 

3. 대괄호([ ]) 

  

(1) 묶음표 안의 말이 바깥 말과 음이 다를 때. 

☞ 나이[年歲], 낱말[單語], 手足[손발] 

 

(2) 묶음표 안에 또 묶음표가 있을 때. 

☞ 명령에서 불확실[단호(斷乎)하지 못함]은 복종에 있어서의 불확실[모호(模糊)함]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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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쉼표: 문장 중간에 쓰이는 여러 부호가 모두 쉼표의 일종. 

 

1. 반점( , ), 모점( 、): 가로쓰기에는 반점. 문장 안에서 짧은 휴지. 

  

(1) 같은 자격의 어구가 열거될 때. 

☞ 근면, 검소, 협동은 우리 겨레의 미덕이다.

다만, 조사로 연결될 적에는 쓰지 않는다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를 사군자라고 한다. 

 

구두점
(구두점을 잘 부리면 텍스트 의미가 더 풍부해진다.)

(2) 짝을 지어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 

☞ 닭과 지네, 개와 고양이는 상극이다. 

 

(3) 바로 다음 말을 꾸미지 않을 때.

☞ 슬픈 사연을 간직한, 경주 불국사의 무영탑.

 

(4) 대등하거나 종속적인 절이 이어질 때 절 사이에 (인과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해준다).

☞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 

☞ 흰 눈이 내리니,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5) 부르는 말이나 대답하는 말 뒤에. 

☞ 얘야, 이리 오너라. 예, 지금 가겠습니다. 

 

(6) 제시어 다음에(한 번 더 강조).

☞ 빵, 빵이 인생의 전부이더냐? | 용기, 이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은이의 자산이다. 

-

(7) 도치된 문장에. 

☞ 이리 오세요, 어머님. | 다시 보자, 한강수야.

 

(8) 가벼운 감탄을 나타내는 말 뒤에. 

☞ 아, 깜빡 잊었구나. 

 

(9) 문장 첫머리의 접속이나 연결을 나타내는 말 다음에. 

☞ 첫째, 몸이 튼튼해야 된다. | 아무튼, 나는 집에 돌아가겠다. 

다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접속어(그러나, 그러므로, 그리고, 그런데 등) 뒤에는 쓰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 

☞ 그러나 너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10) 문장 중간에 끼어든 구절 앞뒤에. 

☞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별로 탐탁하지 않소. | 철수는 미소를 띠고, 속으로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들을 맞았다. 

 

(11) 되풀이를 피하기 위하여 한 부분을 줄일 때(언어의 경제성). 

☞ 여름에는 바다에서, 겨울에는 산에서 휴가를 즐겼다. 

 

(12) 문맥상 끊어 읽어야 할 곳에 (문법이라기보다는 글쓴이가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의도를 나타내는 것). 

☞ 갑돌이가 울면서, 떠나는 갑순이를 배웅했다. 

☞ 갑돌이가, 울면서 떠나는 갑순이를 배웅했다. 

☞ 철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이다.

☞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해 본다면, 남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깨달을 것이다. 

 

(13) 숫자를 나열할 때. ☞ 1, 2, 3, 4 

 

(14) 수의 폭이나 개략의 수를 나타낼 때. 

☞ 5, 6세기 | 6, 7개 

** ‘60~70세’는 ‘6, 70세’ 혹은 ‘6~70세’라고 쓰지 않는다. 

 

(15) 수의 자릿점을 나타낼 때. 

☞ 14,314 | 958,069,349,234달러 | 남한 인구 45,604,630명

 

2. 가운뎃점( · ): 열거된 여러 단위가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임.

  

(1) 쉼표로 열거된 어구가 다시 여러 단위로 나뉠 때. 

☞ 철수·영이, 영수·순이가 서로 짝이 되어 윷놀이를 하였다.

☞ 공주·논산, 천안·아산·천원 등 각 지역구에서 2명씩 국회의원을 뽑는다.

☞ 시장에 가서 사과·배·복숭아, 고추·마늘·파, 조기·명태·고등어를 샀다.

 

(2)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날을 나타내는 숫자에. 

☞ 3·1운동 | 8·15광복 

 

(3) 같은 계열의 단어 사이에. 

☞ 경북 방언의 조사·연구 | 인도 철학의 전개·발전

☞ 동사·형용사를 합하여 용언이라고 한다. 

 

3. 쌍점( : )(그침표)

  

(1) 내포되는 종류를 들 적에. 

☞ 구두점: 마침표, 쉼표, 따옴표, 묶음표 등. 

 

(2) 소표제 뒤에 간단한 설명이 붙을 때. 

☞ 일시: 1984년 10월 15일 10시

☞ 마침표: 문장이 끝남을 나타내는 부호

 

(3) 저자명 다음에 저서명을 적을 때. 

☞ 주시경: 『국어 문법』, 서울: 박문서관, 1910년

 

(4) 시(時)와 분(分), 장(章)과 절(節) 따위를 구별할 때나, 둘 이상을 대비할 때. 

☞ 오전 10:20 (오전 10시 20분) | 요한 3:16 (요한복음 3장 16절) 

☞ 대비 65:60 (65 대 60) 

  

*참조: [한국어문 규정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쌍반점( ; ) 역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쌍반점을 “문장을 일단 끊었다가 이어서 설명을 더 계속할 경우에 쓴다. 주로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설명을 추가하여 덧붙이는 경우에 쓴다”고 규정. 

 

① 주로 본문 안에 옮긴이 주로 해당 단어에 대한 설명을 적을 때. ☞ 서역을 다녀온 현장은 장안(長安; 오늘날의 시안西安으로 당나라의 수도)으로 돌아갔다.

② 인용문헌을 표시할 때 여러 문헌이 열거되는 경우.

☞ [본문 삽입]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속함’을 우선, 차이를 받아들이는 ‘듣기’(hören)로서 파악한다(Heidegger, 1947: 16~17; 1951: 260 참조). 

  

4. 빗금( / ) 

  

(1) 대응, 대립되거나 대등한 것을 함께 보이는 단어와 구, 절 사이에. 

☞ 백이십오 원/125원 | 착한 사람/악한 사람 | 맞닥뜨리다/맞닥트리다 

(2) 분수를 나타낼 때에 ☞ 3/4분기 | 3/20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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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 부호 정리 (2) 

 


  
2. 물음표( ? ): 의심이나 물음 (상대방이 다시 생각하거나 말하게 만들려는 것)

(1) 직접 질문할 때. 

☞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오니? | 이름이 뭐지? 

 

(2) 반어나 수사 의문(修辭疑問)을 나타낼 때. 

☞ 제가 감히 거역할 리가 있습니까? | 이게 은혜에 대한 보답이냐?

 

(3) 특정한 어구 또는 그 내용에 대하여 의심이나 빈정거림, 비웃음 등을 표시할 때, 또는 적절한 말을 쓰기 어려운 경우 소괄호 안에. 

☞ 것 참 훌륭한(?) 태도야. | 우리 집 고양이가 가출(?)을 했어요. 

 

구두점 물음표

참조 

1) 한 문장에서 몇 개의 선택적 물음이 겹쳤을 때에는 맨 끝의 물음에만 쓰지만, 각각 독립된 물음인 경우에는 물음마다. 

☞ 너는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 너는 언제 왔니? 어디서 왔니? 무엇하러? 

2) 의문형 어미로 끝나는 문장이라도 의문 정도가 약할 때에는 물음표 대신 온점(또는 고리점)을 쓸 수도 있다. 

☞ 이 일을 도대체 어쩐단 말이냐. | 아무도 그 일에 찬성하지 않을 거야. 혹 미친 사람이면 모를까. 

 

3. 느낌표( ! ): 감탄이나 놀람, 부르짖음, 명령 등 강한 느낌

  

(1) 느낌을 힘차게 나타내기 위해 감탄사나 감탄형 종결 어미 다음에. 

☞ 앗! 아, 달이 밝구나! 

* 특정한 어구 또는 그 내용에 대하여 감탄이나 놀라움 표시할 때, 또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하고 싶은 경우에는 문장 중간 소괄호 안에. 

☞ 얼마나 배려 깊은(!) 마음씨인지. | 선머슴 같던 우리 집 딸아이가 드디어 엄마(!)가 되었어요. 

 

(2) 강한 명령문 또는 청유문에. 

☞ 지금 즉시 대답해! 

 

(3) 감정을 넣어 다른 사람을 부르거나 대답할 적에. 

☞ 춘향아! 예, 도련님! 

 

(4) 물음의 말로써 놀람이나 항의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 

☞ 이게 누구야! 내가 왜 나빠! 

 

참조

감탄형 어미로 끝나는 문장이라도 감탄 정도가 약할 때는 느낌표 대신 온점을 쓸 수도 있다. 

☞ 개구리가 나온 것을 보니, 봄이 오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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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점의 의미, 중요성 

 

이런 식의 비유가 꽤 적절한 듯싶다. 

연기에 익숙지 못한 배우가 대사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국어책 읽는 것 같다”고 말한다

소위 '발 연기'라고 하나? 

그런 연기를 보면, 어떤 배역을 맡든 무슨 말을 하든 거의 비슷하다. 대본을 소리 내어 들리게만 할 뿐이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분위기며 감정 같은 내면의 의미는 전달이 잘 안 되는 것이다. 

 

문장부호 구두점
(구두점을 얼마나 잘 알고 쓰나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얹자면… 
초보 연기자들이 주로 의존하는 수단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쓸데없이 목청만 키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으로 부족한 연기력을 보강하거나 '땜질'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나온다. 
게다가 혀짧은소리나 코맹맹이소리 따위 부실한 딕션을 가지고는 겉모습이 아무리 반반하다 해도 진정한 팬들을 사로잡기 쉽지 않으리라. 예를 들어 티브이에서 보는 개그맨이나 진행자들 경우에도 현상은 비슷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자세히 관찰해 보시라. 내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유난히 시끄러운 사람에겐 뭔가 큰 약점이 있다. 
일상에서도 쓸데없이 호들갑 떠는 사람을 여러 모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의미는 뭔가 서로 다름에서 발생하는 법. 노련한 배우는 연기할 때 손짓이며 표정, 말 속도, 목소리 크기, 눈빛 깊이 등 자신의 표현 수단을 죄다 동원해서 등장인물의 생각과 극 전체가 갖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보는 이들의 심금을 건드리게 된다. 

 

글말인 문자언어에서 구두점의 역할은… 바로 배우의 손짓, 몸짓, 눈짓 등과 같은 것

‘문장 각 부분 사이에 표시하여 논리적 관계를 명시하거나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표기법의 보조 수단으로 쓰는 부호’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정보뿐 아니라 글의 논리와 맥락, 글쓴이의 감정과 의도 등 글의 의미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함이다.  

러시아의 문호 체홉은 구두점을 ‘독서의 악보’라고 불렀다. 
이 악보를 잘 그릴수록… 텍스트 의미가 더 풍부해진다. 
이 악보를 잘 판독할수록… 글쓴이의 의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I. 마침표( . ): 문장을 마칠 때 쓰는 부호를 통칭. 온점. 

  

(1) 서술, 명령, 청유 등을 나타내는 문장 끝에

☞ 젊은이는 나라의 기둥이다.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 집으로 돌아가자. 

다만, 표제어나 표어에는 쓰지 않는다. (책 제목이나 포스터에 점이 없는 이유.)

☞ 압록강은 흐른다(표제어) | 꺼진 불도 다시 보자(표어) 

 

(2) 아라비아 숫자만으로 연월일을 표시할 때 사용. 

☞ 1919년 3월 1일 ⟶ 1919. 3. 1.

 

(3) 표시 문자 다음에. 

☞ 1. 마침표 ㄱ. 물음표 가. 인명 

 

(4) 준말을 나타내는 데. 

☞ 서. 1987. 3. 5.(서기) 

 

*참조 

 

① 인용문에는 온점을 넣지 않는다. (마침표와 따옴표를 중복 사용하면 가독성을 해치기 때문.)

☞ 그녀는 “그가 당신에 대해 말한 바가 없습니다”라는 말에 놀라지 않았다.

 

② 문장 마지막 부분의 괄호 안에 부가 설명이 들어간 경우, (부가 설명 역시 문장 일부기 때문에) 괄호 바깥에 찍는다.

☞ 우리와 관계 맺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물’이라 불린다(우리말에서는 ‘~것’이 더 적절한 번역어이다).

 

③ 직접 인용의 출처를 본문 안에 표시하는 경우 괄호 바깥에 찍는다.

 

☞ 작품의 고요함은 “운동의 친밀한 모임”이어서 “최고의 운동성”을 뜻한다 (Heidegger, 1954). (“운동의 친밀한 모임”과 “최고의 운동성”이 표시된 문헌에서 직접 인용되었음을 알려.) 단, 직접 인용으로 문장이 끝나거나 문단 전체를 별도로 인용문 처리했을 때는 괄호 앞쪽에 찍다.

 

☞ “시 짓기는 본래적인 거주하게 함이다.”(Heidegger, 1940) ☞ 만일 예술이 작품의 근원이라면, 그것은 말하자면 예술이 작품에서 본질적으로 공속하는 것, 즉 창작자들과 보존자들을 작품의 본질 내에서 유래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Heidegger,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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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웰 교수의 머리> 

 

100년 전 러시아 소설가의 상상력이 집약된 공상과학소설. 소개.

 

 

도웰 교수의 머리
벨랴예프 지음, 김성호 번역


러시아 소설가 벨랴예프가 1937년에 발표.

죽은 사람의 몸에서 머리를 떼어 소생시키고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한다.

이식하는 과정에서 신경과 신경, 혈관과 혈관을 잇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신빙성과 박진감을 더한다. 

해박한 의학 지식에 덧붙여 죽음에서 소생한 사람의 모험과 동료를 구하는 무용담 등이 재미를 배가시키며 직접 제시되지는 않지만 살인과 시신 거래 등의 엽기적인 행동을 삽입하여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도 제기한다.

1984년 러시아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역자 김성호는 mbc 아나운서, sbs 러시아 특파원 출신으로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대학 문헌학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이후에는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 nlp, 인문학, 심리학 분야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김성호 저 /a6(문고판) 377p /2011년 7월 /전자책

 

공상과학소설 도웰 교수의 머리 소개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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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덩의 악마들  (The Devils of Loudun)  올더스 헉슬리 저 (번역, 주석, 해설 – 김성호) 역사의 메아리  -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루덩의 악마들> 해설 1 1952년 <루덩의 악마들>이 출간되자 헉슬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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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메아리 (올더스 헉슬리 소개와 작품 해설 4. 끝)

1부. 지붕 위에 사는 카를손 1. 카를손과 만나다

자녀와 소통, 어떻게? (1)

1과. 조건 없는 수용이란? (2)

 

1과. 조건 없는 수용이란? (2)

lesson 1. 조건 없는 수용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을 시작하면서 기펜레이터 교수는 일반적인 원칙을 하나 제시한다. 이걸 준수하지 않으면 아이와 관계가 아무리 애써도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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