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적 질문이든 동의나 의견을 구하는 질문이든) 아이한테 뭔가를 물어볼 때는 집요하게 다그치는 기색이 목소리에 곁들이지 않게 한다. 엄마가 뭔가 트릭을 쓰거나 압박한다는 느낌을 아이가 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어린애가 당신 물음에 대답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대답하지 못한다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당신이 마저 대답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한테 말하기의 틀이나 기준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런 연습을 거쳐서 아이는 나중에 어구를 올바르게 구성하게 된다.
* 엄마가 주의할 점!
셀프컨트롤을 하면서 “말해 봐”, “따라 해요” 같이 요구하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조심한다. 빠른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 하루나 이틀, 혹은 한 달이 지나면, 아이가 당신 말을 따라 하게 될 것이다!
차분하게 소통하고 놀면서 아이를 (비록 형식적인 것이라 해도) 대화에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 즉, 엄마가 물어보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아이가 대답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 엄마가 직접 대답하는 식이라 해도, 이런 형식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제시한 놀이를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지금 빠져 있는 놀이에 동참하라.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다? 아주 좋은 기회야! 자동차에 토끼 인형을 태우거나 그걸 타고 빵과 우유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자고 제시하라. 아니면 자잘한 종잇조각들을 휴지통까지 실어 나르자고 한다.
아이가 냄비나 프라이팬 달그락거리기를 좋아한다면, 이것도 좋은 기회가 된다! 냄비에 큐빅을 집어넣고 함께 강아지 죽을 끓이라. 거기에 ‘설탕’과 ‘소금’도 집어넣고, 아이가 ‘맛을 보게’ 하라. 엄마의 이런 놀이에 어린애들은 흔히 아주 신나게 반응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잘못되거나 나쁜 사랑’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며, 그 남자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건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거나 지나쳐도 좋은'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진지한 측면에 관한 얘기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때론) 당신 삶을 뒤흔들 수도 있으니까!
관계 초기에는 이른바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실제로 상대가 나에게 (혹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 몇 가지 팁을 알아본다.
예를 들어, 남자의 이런 행동이나 분위기는 여자인 당신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안기지 못하며 좋은 기억을 남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1. 그가 당신이라는 개체를 존중하지 않고 무례하게 대한다.
이런 현상은 작은 일에서도 큰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그가 당신의 관심사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 즉, 당신과 상의도 없이 뭔가를 저지른다. 이런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만든다면, 이 문제를 당장 최우선으로 다뤄야 한다.
혹은,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이란 말도 있지만) 그가 자기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향한 컴플리멘트에 인색하다거나,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거기에 무심하고 그걸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이건 다 그에게 당신을 존중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이다.
그런 가운데 (대부분의 관계는 상대적이기에) 당신 쪽에서도 그 남자를 더 이상 존중할 여력이 없다면, 이 관계를 계속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그가 당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엔 당신의 외면뿐 아니라 당신의 고유한 내면세계도 포함된다. 남자가 당신에게...
"그렇게 입지 마, 별로야" (지나치게 노출이 심하거나 기괴한 옷차림이 아닌데도),
"늘 화장하는 게 더 낫다",
"그렇게 행동하지 말고, 이런 건 듣지도 마" 등등의 말을 자주 한다면,
그 남자는 당신 자체가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서 궁리한 기묘한 이미지를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건 그 반대의 경우도 해당하니,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관계의 징표 하나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잘난 점만이 아니라 못난 점까지도).
3. 그 남자에겐 친구며 일이 거의 늘 당신보다 더 중요하다.
만약, 당신 남자가 하고 싶어 하고 하려는 일의 리스트에 ‘당신과 함께 시간 보내기’ 항목이 가장 마지막에 있다면, 이건... 그 자체로 뜻하는 바가 크다. 다른 생각이나 말이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언제든 당신을 위해 시간을 낼 것이다.
4.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함부로 대한다.
남자가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데리고 일하는 사람에게, 혹은, 예를 들어, 식당 종업원이나 택배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라. (당신이 지금 사귀거나 같이 지내는) 남자가 그들에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것 같아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또한 뭔가 진지하게 생각할 계기가 된다.
그가 당신에게도 그런 투로 대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그걸 당신이 받아들이거나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남자의 그런 행동이나 태도가 별로 문제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당신도 비슷한 부류이기에 유유상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당신을 '상식과 양심과 인간미를 지닌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겨서 얘기 나누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관계를 발전시키고 가정을 키우며 목표를 추구하고, 그러다가 또 가끔은 발길을 멈추고 삶 전반에 대한 어떤 조감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대개는 그것을 알기 전에 은퇴하고 삶의 끝에 다가들면서 세월이 어디로 갔나 여기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뭔가를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유년기에 발달시킨 주된 성향에 붙들려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인격적 특성이지만, 그건 또 숱한 방법으로 우리를 제어하기도 한다.
진정한 성장을 이루려면,
자기 자신과 세상에서 자기 위치를 성찰하는 정직한 능력이 개발되어야 한다.
진정한 사색이 이뤄진 뒤, 이 깨달음을 우리 행동에 결합하면서 진정으로 성숙하게 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세계는 이를 아주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일자리 구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청구서 지불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진정한 자기발전을 위해 시간 내기가 어렵다. 물론 이 사회는 바로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각종 범죄와 우울증, 건강 문제, 이혼율 등이 과연 지금처럼 대두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진정 ‘성숙한’ 사회의 표시란 말인가?
단연코 아니다. 순리대로 보자면, 우리를 성숙한 개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저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러 규칙을 더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자기 안에서 발달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그저 나이만 먹고 늙어가는 게 아니라, 성숙하고 있다는 징후를 앞 포스트에 이어서 또 알아본다.
6 인내, 참을성
우리는 갈수록 더 주문하고 요구하는 (on-demand) 세상에 살고 있다.
기술 지능이 급성장하면서, 그 결과 사람들의 인내 수준은 떨어지는 듯하다.
우리는 욕구를 더욱더 빨리 충족하는 데 익숙해져서, 이젠 이걸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그걸 지금 원한다.
하지만 자동화가 아무리 빨라지고 서비스와 테크놀로지가 아무리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우리는 늘 기다리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급하더라도 긴 줄 뒤에 가서 서는 자신을 알아차린다면, 당신은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 당신은 아주 특별하게 성숙했고, 그 점을 스스로 알든 모르든, 그것 때문에 더 행복할 것이 분명하다.
7 경청 능력
(* 영어 단어 ‘listen’과 ‘silent’는 같은 철자들로 이뤄졌다).
진정으로 귀 기울이려면, 먼저 진정으로 침묵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존재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그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 마인드는 헤매다니지 않고, 당신은 그가 어떻게 생기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주의를 흩뜨리지 않는다. 또한 그가 얼른 얘기를 끝내서 당신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당신은 그 자리에서 그와 온전히 함께 있으면서 그가 하는 얘기에 정말로 귀 기울이고 거기에 담긴 감정과 실재를 다 받아들인다.
삼척동자이든 구순 노인이든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숙한 사람은 고요하고 조용한 주의 집중을 통해서만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8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따르기
인생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게 있으니, 바로 일관되지 않음이다. (혹은, 가변성이나 무상함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과학자와 철학자의 의견이 일치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건 우리가 나이 먹으면서 몇 번이고 배우는 교훈이다.
모든 것을 이전처럼 똑같게 유지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몇 해가 걸린다 해도, 인생은 모든 걸 뒤흔들며 당신을 겁주고 당신에게 변화를 강제할 것이다. 인생은 당신의 희망을 산산이 부수고 당신 욕망에 먼지가 쌓이게 할 것이다. 당신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로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하고 기쁘게 만들면서도 결국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끝까지 밀어붙이고 계획하고 싸우고 저항한다.
하지만 이런 점을 포착했다면, 당신은 인생의 어떤 단계에 있다 해도 다시금 축하받아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즉, 불확실성이 삶의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해서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일을 좁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에서 우리는 다음 항목으로 넘어간다.
9 기대하지 않기
이십대 청년들에게 나이 마흔에 이르러 어떤 미래를 계획하는지 묻는다면, 다들 확실한 생각을 두어 가지씩 끄집어낼 것이다. 그리고 나이 마흔이 되어 그들에게 물어보면, 자기네 삶이 이런 식으로 흘러올지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노라고 말할 것이다.
이건 많은 사람이 겪는 멍에가 결코 아니다.
이건 사실 인생이 주는 크나큰 선물인 것이다.
즉,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촉구이다.
우리가 방금 지적했듯이, 삶은 유기적인 과정이다. 그 흐름을 예측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측면을 성숙한 사람은 여러 해 동안 충분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실제로 그걸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채워 넣은 것이다. 이건 변화에 굴복하기의 다음 단계이며, 인생의 불확실한 본질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관점을 바꾸게 한다.
그 신호들이 성숙한 사람의 행동에 분명히 반영되니, 삶이 던지는 것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런 이들의 분위기는 특별한 성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이 ‘Que Sera Sera’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흐름을 따라가는 법을 안다.
10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이건 중요한 문제다.
아주 많은 젊은이가 이른바 ‘사랑’을 경험했다고 확신하는데,
그들이 겪은 것은 사실 생물학적 욕구와 심리적 욕구 충족의 강렬한 결합이며,
이 욕구는 대부분 본질상 무의식적이다.
불행히도 이는 제대로 알기만 하면 누릴 수도 있는 더 깊은 사랑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많은 사람이 평생 계속하는 패턴이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빠져들거나 욕정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용기와 가슴앓이가 필요하다.
그런 사랑이 일련의 관계에서 맺어지든 혹은 하나의 장기 로맨스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서 맺어지든 상관없이, 모든 관계의 궁극적인 끝은 개인 성장이며 역동적인 애정 관계보다 개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없다는 점을 성숙한 사람은 잘 알고 있다.
이런 관계를 통해 성숙한 사람은 수용을 배운다. 공감과 이해와 연민을 배운다.
성숙한 사람은
상대방한테서 자기가 동의하거나 용인한 것만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이건 아주 피상적인 사랑이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점에는 늘 배울 뭔가가 있음을 알기에 상대방의 개성을 존중하고 심지어 높이 평가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식으로 사랑이 깊어간다.
그건… 당신의 발밑을 흔들고 당신의 행복을 만들거나 부수는 힘을 지니는 통제 불능의 돌풍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성숙한 사람은 또 사랑이 일이요 작업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이건 또 책임이기도 하다.
이 작업과 책임을 존중하면서 성숙한 사람은 사랑과 기쁨, 황홀경의 수준을 알게 되는데, 더 얕은 사랑이 당장엔 아무리 유혹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런 수단으로는 이 수준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11 ‘자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남
성숙한 사람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완벽해질 일은 없을 것임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와 기술, 재능, 단점 등에 솔직하다.
성숙한 사람은 실수가 삶의 필수 요소임을 이해하며 실수를 겁내지 않는다.
또 자신이 틀렸다고 입증되는 걸 겁내지 않는다. (사실, 고도로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온당한 지적에 '지적질'이라 화내지 않고 외려 기뻐한다.)
이런 점을 배우기에 그는 더 행복할 뿐 아니라 과정에서 인생과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숙한 사람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하는 일을 즐길 가능성이 아주 높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일에 갇혀 있기가 쉽다.
(시도와 실패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음을 이해하기에) 몇 번이고 시도하고 실패도 해보려는 의지는 본인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게 해주고 궁극적으로는 인생 자체를 잘 이해하게 한다.
좀 역설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자기중요감'을 놓아줌으로써 성숙한 사람은 많은 중요한 일을 거의 확실하게 해낸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반응보다는 관찰을 더 많이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 가능한 설명을 죄다 찾은 다음에 거기에 반응한다. 어떤 반응이 늘 옳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결론 내리기 전에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보다 더 나을 수 있고 당신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해결책으로 당신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알아도 당신 에고가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는다.
미성숙한 사람은 어디서나 불거지고 어긋나는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매번 영웅이 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는 점을 알고 있다. 특별한 이슈를 다룰 때 불필요한 갈등에 연루되는 것보다 침묵이 더 좋은 역할을 할 것임을 당신은 깨닫는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가슴이 부서지기 쉽다는 점도 이해한다. 이런 측면을 잘 알면서도 사랑하게 될 때면 모험을 시도하고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원하며, 영원한 고통을 줄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 그런데 사랑은 나쁜 상처를 줄 수 있고, 그 상처는 영원히 새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법을 알고 있다. 왜냐면 그것이 당신의 사랑 수업의 일부이며 당신을 이전보다 더 강하게 만들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5 적응력이 뛰어나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필요에 따라 수용하고 조절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 무엇도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갈망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쉽게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성취하기 어렵게 여기는데 당신에겐 그렇지 않은 것이 또 많이 있다. 그래서 뭔가를 위해 기울이는 투쟁이나 노력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어디서나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당신은 뒷자리에 물러나 있고 다른 사람들이 각광을 받게 해야 할 순간이 더러더러 있다. 이건 정서적으로 성숙하여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례이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당신은 최악의 상황도 더 쉽게 헤쳐나간다. 왜냐면 당신에게 닥치는 상황에 불평하거나 불만을 표하기보다는 그걸 있는 그대로 수용하니까.
당신은 사물에 대한 편파적인 시각을 믿지 않는다. 특정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면서 거기에 반응하기를 원하며, 그래서 당신은 다른 의견에도 마음을 열어 놓는다. 당신에겐, 최상의 해결책을 찾을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아주 많다.
정서적인 성숙함은 - 자기감정을 조절하고 자기 삶의 기회며 극적 사건들에 대해 완전히 책임지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정서적 성숙함의 상당 부분은 분노와 좌절, 죄책감, 모욕감, 두려움, 질투와 시기, 실망, 슬픔, 불안 등 여러 감정을 적절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이 여러 감정을 당신이 체험한 뒤 빠르게 발산할 수 있음에서 정서적 성숙함이 나타난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은 이런 부정적 감정에 갇혀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뒤끝 작렬!)
정서적 성숙함은 삶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고, 삶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삶이 항상 편하거나 쉬울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건 아주 순진한 생각이다. 이는 당신이 삶을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진정으로!
만약 부정적 감정들이 시간이나 에너지를 쓸데없이 더 많이 차지하게 한다면, 이는 당신이 ‘지금’을 상당히 잃고 어쩌면 미래도 잃는다는 뜻이리라.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과는 관계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는데, 왜냐면 삶의 여러 문제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능력이 손상됐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과 결혼한다면, 당신은 그의 기분이나 행동을 대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자기 주변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향해 노력하기보다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주변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믿음은 자기중심주의나 나르시시즘의 강력한 지표이다. 자기중심주의와 ‘자기 중요성’은 대개 어린애들의 특성이다. 아이들은 높은 관심과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고, 스스로는 실질적으로 거의 기여하지 않으면서 인생이 자기네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이런 마인드나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 성장의 정상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특징이 ‘성장’에서 만성적으로 드러날 때, 이는 그 사람이 아직 성숙하고 책임 있는 성인이 아니며 내면의 자기중심적인 어린애 입장으로 세상에 반응한다는 표시이다. 그런 사람은 성숙해 보이고 어른스럽게 책임지는 부분도 많겠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애이다.
인간의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통제 욕구를 지닌다. 우리는 이 욕구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욕구는 우리가 여러 감정 발달 단계를 통해 자신을 추진하게 돕는다. 최소한의 컨트롤 느낌이 없다면, 우리는 절망적이고 좌절하며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는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성숙한 상태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만큼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따라서 그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종종 우리의 통제력 부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이다. 우리 인생에 친밀하고 중요한 사람들이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해결하면서 각자 조건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큰 틀에서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충돌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거나 숙고할 필요가 없다. 그 결과 대부분 경우 우리는 통제한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의 갈망이나 욕구를 다뤄야 한다. 이때 통제 문제가 나타난다.
정서적인 성숙함은 인생의 중요한 기술이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살면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른 사람들이나 상황, 형편 탓으로 돌린다. 자기의 분노나 슬픔, 우울증을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 여기지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물다. 자기감정을 책임지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자기 관점을 봐주기를 기대한다. 그런 사람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 든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정서적으로 의존적이다. 그는 자기감정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고 종종 다른 사람들을 제 나름으로는 노련하게 조종한다. 그런 사람은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대개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에 집착하는 면이 있다. 한때 사랑스러운 관계였던 것을 희생해서라도 모든 게 그들 식으로 되게 하려고 건강하지 않은 방법에 매달릴 것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다 변하게 마련이다. 변하게 마련인 것은 다 고통을 겪는다.” - 붓다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이다. 다른 건 다 날씨처럼 가변적이다. 삶과 사람들은 변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성인들은 이 사실을 머릿속에서 인정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는 항복하는 법을 배웠다. 내면의 조화를 깨지 않으면서 말이다.
양보하거나 물러서려면 감정적으로 독립적이고 감정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비록 다른 사람이 내 관점을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여길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 의견을 고수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한다.
우리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욕구와 갈망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살면서 불필요한 드라마를 피하는 법을 배운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 우리 욕망을 내려놓음은 우리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임을 알게 된다. 때로 관계에는 정리할 공간이 필요하다. (안전거리). 아쉽게도,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이 공간을 자신에게 위협으로 보는데, 왜냐면 그가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기식으로 얻지 못할 때, 종종 상황에 비논리적으로 반응한다. 그들은 통제해야 하는데, 이 통제 부족은 그들이 행동하는 동기가 된다. 그들은 화내고 울고 조종하고 혹은 집착 대상에게 폭력을 쓴다. 그러면서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이 행동이 관계에 얼마나 파괴적이며 자신의 목표 달성을 사실상 방해한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성장 과정의 일부이다. 더욱이 그 상황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될 때, 특히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네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대로 살며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를 떠날 권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나쁘게 말하거나 심지어 우리를 증오할 권리가 있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바꿀 필요 없고 보복할 필요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성숙한 사람은 통제력을 잃지 않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미덥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얻기 위해 인신공격 같은 수단을 종종 쓴다. 불량배와 남을 곤란하게 만드는 자들은 정서적인 나이가 어린애와 같고,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분노를 드러내고 기만하고 거짓을 말하고 조작이나 조종을 하려 들 것이다.
정서적 미성숙의 징표에 이런 것이 있다.
• 일이 잘 안 되면 늘 다른 사람들을 탓한다
정서적인 미성숙함을 식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하나는 ‘화살 돌리기’이다.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자기 삶의 문제에 책임을 잘 안 진다. 그건 항상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늘 다른 사람을 탓하는 자들을 설득하기란 어렵다. 그런 자는 다른 사람들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 하지 않거나 사물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거부한다. 그런 자는 자신이 옳으며 온 세상이 자기에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에게 향한 일에는 아주 민감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일에는 둔감하다.
그런 자가 만약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잘못을 저질렀다고 인식한다면 그자는 똑같이 보복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하는 거칠고 변덕스러운 행동 같은 것은 당신이 다 받아주기를 기대한다. 당신은 그가 하는 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자는 당신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한테 부당하게 대하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의 인식은 종종 크게 왜곡되고 부정확하다.
•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늘 피해자를 자처한다
그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만 그의 잘못된 선택은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피해자 역할을 즐긴다. 그는 자신의 나쁜 선택이 종종 나쁜 후과를 초래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피해자로서 그는 일어난 일 몇 가지를 빼먹거나 맥락에서 몇몇 단어를 취함으로써 실제를 종종 크게 왜곡한다.
이렇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와 함께할 파트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은 극적인 사건을 종종 추구하는데, 왜냐면 그래야 자신의 피해자 역할이 커지니까. 또 그가 계산한 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 보복하기 위함도 있다.
• 단기적인 관계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은 어떤 형태이든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아주 사소한 냉대나 마찰에도 친구를 종종 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에겐 타협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에게 항상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을 것이다. 혹은,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의 비합리적인 요구에 지쳐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거리를 둘 것이다. 우리가 알아본 것은 정서적인 미성숙함의 몇 가지 징표일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수는 있어도, 당신이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과 관계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 사람을 당신이 바로잡을 수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실 생각보다 더 깊고,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누군가와 동등하고 균형 잡힌 관계나 우정을 엮기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화자의 어휘력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말의 유창함이 떨어지면서 말하기가 주기적으로 지체될 때, 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군더더기 말이 동원된다는 것이 대다수 언어학자의 견해이다.
하지만 언어 문제가 없는 사람도 일종의 유행이나 겉멋으로 군더더기 말을 쓰는 경우도 더러 있다.
군더더기 말은 (혹은, filler words는)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대답을 궁리하는 말에서, 화자에게 개방성이 부족할 때,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를 때 생긴다.
군더더기 말은 또 ‘언어 공포 (logophobia)’ 때문에 말에 들어갈 수도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면서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간투사를 남발하게 된다. 물론 그러면서 생각할 시간을 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이 단어들이 오랫동안 말하기에 들러붙어 심한 경우 말을 더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의 특성을 드러내는 군더더기 말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해 사실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는 법이니까. 걸음걸이, 표정, 특정 상황에 대한 반응 따위도 사람 읽기에서 중요한 지표지만, 자신이 한사코 숨기려는 것을 주변 사람들한테 내보이는 것은 그의 대화뿐일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사용하는 군더더기 말은 그 사람의 자질과 장단점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주 흔하고 무해한 듯 보이는 군더더기 말 이면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이 말에서 그 사람의 성격 특징을 알아볼 수 있다.
"에, 음, 아"
천천히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 일관되게 논리적으로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교육이 부족한 사람 등이 이런 간투사를 군더더기 말로 자주 쓰는 편이다.
"자" (come on)
상대에게 뭔가를 강요하려 할 때 쓴다.
간투사 ‘자’를 자주 쓰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 하면서 상대에게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도록 부추긴다.
"그럼, 저기" (Well)
어떤 사람들은 강한 흥분 상태에서 이런 간투사를 자주 쓴다.
이 사람은 뭔가를 걱정하면서도 그걸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그" (Here)
대화가 지루해졌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말해.
"근데, 그런데/ 그나저나, 하여튼, ..." (By the way)
이건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애용하는 단어.
이 사람들은 새로운 모임이나 동아리에서 종종 어색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따라서 그런 당혹감을 “근데” 같은 단어로 감춘다. ‘근데/그런데’라고 말이 나올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근데”로 말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금방 어떻게 주의와 눈길을 돌리는지 눈여겨보라.
“간단히 말해서, 요컨대, 요약하자면" (in short)
이런 말은 (표현은) 성급함이나예민함, 공격성의 징표로 볼 수 있다.
성질 급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신랄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히포크라테스가 분류한 네 가지 기질 중의 하나로서, 행동이나 정서 등의 움직임이 세고 활발하며 진취력이 강하고 고집 있는 기질인) 담즙질의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또 수다스러우면서도 그 수다스러움을을 잘 수습할 줄 모르는 사람들한테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이를테면, 즉" (so to speak)
이런 표현 역시 지나치게 말이 많고 표현력 풍부한 사람들한테서 자주 나온다.
이런 군더더기 말이 휴지(pause) 역할을 하며 생각과 말이 일치되도록 한다.
"중요한 건" (The thing is, I mean)
제 할 일이나 임무를 잘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이들은 신뢰하기 어렵고 충동적일 수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기대를 많이 걸지 않는 게 좋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가깝고 선하고 만만한 사람들에게 적시에 전가하면서 책임과 처벌을 교묘하게 피한다.
"뭐랄까, 그러니까, 대체로" (generally)
자신 없거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사람들의 일상 어휘에서 나오는 또 다른 표현.
하지만 ”그런데, 그나저나“를 자주 쓰는 사람들과 달리,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확신 없음을 공격성으로 감추면서 사소한 일도 빌미 삼아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다.
"사실은, 실제로, 정말로" (actually, indeed, in fact)
자신만만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대화에서 자주 나온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네 경험과 의견만을 믿으며, 나머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대체로, ‘사실은’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자신을 유일하고 둘도 없는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친구를 잘 못 사귀고 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이런 유형에게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들 퍼포먼스의 관객일 뿐이다.
"그러므로, 따라서, 즉" (so, therefor)
이런 말은 진짜 보수주의자들이 자꾸 되풀이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새로운 것에는 다 반대하며, 자기네 의견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항상 대화 상대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다만, 단지, 오로지" (merely, only)
독자적인 견해를 지니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종종 들린다.
그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에 의존하며 어떤 책임도 지기를 겁낸다.
게다가 종종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고, 그럼으로써 결국 지인들 눈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아니, 아니요" (No)
어떤 사람들은 말할 때마다 거의 ‘아니’로 시작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일단 부정하고 들어가려는 심리가 강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일부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아니'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긍정을 부정하는’ 습관은 머나먼 옛날 화자가 자신의 진술이 부정 타는 것을 막으려던 풍습에서 비롯된다는 설도 있다. “아니, 좋아, 영화 보러 가자.”
21. (앞에 나온 것 같이) 의심스러운 생각은 대개 당신이 집에 혼자 있을 때 떠오른다. 혹은 파트너가 이미 잠들었을 때 찾아든다.
진정한 사랑은 흔들리는 추와 같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라.
이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고 오늘 느끼다가도 또 때론 같은 사람을 다신 보고 싶지 않다고 뇌까리기도 한다.
함께 산 경험이 더 오래 될수록 현실과 ‘가족’이라는 이름의 ‘새장’을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22. 남편과 (혹은, 아내와) 담판이나 절충이 때론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알고 당신은 놀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네 관계를 다른 사람들의 관계와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극히 조심할지니, 사람들은 대체로 인생 최고의 순간들만 SNS에 올린다.
당신 친구가 만약 안젤리나 졸리 같은 외모의 매혹적인 여자와 살게 됐다 해도, 그 친구의 일이 사진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다 매끈하고 순조롭다는 뜻은 아니다.
23. 갈등은 불가피하다.
24. 당신 보기엔, 당신이 파트너보다 항상 더 낫고 더 공정한 것 같다.
25. 두 사람이 주기적으로 서로 덤벼들고 모욕할 수 있다.
26. 가끔은 서로를 아프게 할 것이다.
27. 신뢰를 깰 방법은 참으로 많다. 그러니 거짓으로 맹세하지 말라.
28. 그럴 생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거를 관계에 끌어들일 것이다.
아픔, 어린 시절의 원망, 과거 관계에서 받은 고통, 친구나 애인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
그리고 이런 아픔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드시 투사할 것이다.
우리는 다 자기 내면세계의 거울일 뿐이다. 이 거울 속에는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덜하지 않다.
29. 결혼이 전부는 아니다. 그건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관계를 더 알차게 만들려면, 두 사람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30. 자녀들이 생긴 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두 사람의 필요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리라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감정에도 밀물과 썰물이 있을 것이다. 관계의 역동성이 늘 똑같지는 않다.
그리고 아이들이 당신네 일상을 바꿔놓고 말 것이다. 두 사람한테 좋은 쪽으로는 아니다.
31. 어린애들과 산다는 게 쉽지 않은 과제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조금만 인내하며 기다리라. 아이들이 자랄 거야. 그러면 더 나아질 것이다.
32. 때때로 당신은 당신의 기여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과 노여움, 분개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런 생각과 느낌을 영적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라.
33. 당신은 성숙하고 진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34. 때로는 당신이 자존심을 꺾고 먼저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할 때도 있을 것이다.
35. 휴가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한 가족으로 합쳐지는 순간, 당장 안정적이고 단단한 재정적 토대가 엔터테인먼트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36. 세월이 흐른다고 로맨스가 꼭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걸 유지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37. 당신은 언젠가 모욕받았다고 느낄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두 사람의 관계를 굳건히 할 수 있다.
38. 두 사람이 함께 늙어갈 것이다. 늙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겠지.
그런데 자신보다 상대방을 관찰하는 게 훨씬 더 쉽다. 아내에겐 조만간 주름이 생기고 피부도 축 처지겠지.
이게 슬픔과 실망의 원천일 수 있다. 한데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오랜 세월 함께해 온 것을 흐뭇하게 여긴다면 말이다.
이 38가지 항목을 읽은 뒤, 사람들이 왜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지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혼자가 더 편한 거 아니야? 그래, 더 편하고 더 안전하고 덜 위험하잖아.
그러나 아주 가깝고 내밀한 관계,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능성은 또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관계란 선물이요 특전이다. 하지만 이 특전을 누구나 다 누릴 줄 아는 건 아니다. 헤어지기로 작정하는 사람들 대다수의 주된 실수는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데 있다. 또 상대의 성장을 지지하고 관계에 정성 들이기를 원치 않는 데 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그걸 알아두면 제거하기도 더 쉽고, 그러면 사랑이 당신 삶에 꼭 찾아들 것이다. 짝이 없는 이들은 이 포스트를 정독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살면서 왜 사랑을 모르는가, 왜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나?
이에 대한 답을 심리학자들이 오랫동안 찾았다. 그리고 다음 같은 여섯 가지 (물론, 치명적이지 않은) 잘못이 있다면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 사랑을 위한 ‘자리를 준비하지 않았다.’
당신이 만약 동료들 일을 마냥 돕거나 직장 상사의 추가 근무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일요일이면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고, 주말이면 부모를 찾아뵙고 같이 식사하느라 바쁘다면… 그렇게 꽉 짜인 일정 속으로는 사랑이 끼어들래야 끼어들 자리가 없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잘 매겨서 당신 자신과 사랑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라.
안 그러면 사랑의 달콤하고 가슴 설레는 포옹을 절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어떤 경우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 당신은 자기 집의 포로가 됐다.
문에 자물쇠가 걸린 것도 아니고 당신이 나가는 걸 막는 사람도 없지만…
스스로 ‘방콕’을 택한다. 집과 직장만 오간다. 집이 더 편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곧 당신이 사람들과 접하고 사랑에 빠질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이다.
영혼이 정말 사랑을 갈망하나?
그렇다면 더 자주 바깥으로 나가고, 예를 들어, 피트니스 클럽이나 박물관, 영화관 등 사람 붐비는 장소를 찾아보라. 의사소통이 더 많을수록 당신 영혼이 사랑에 문을 연다. ‘새장’ 안에만 있다면 사랑이 올 수 없다. 잠재적 파트너한테 새장의 열쇠가 없지 않은가. 또, 고독을 좋아하는 당신한테 거부당할까 우려해 허락도 없이 당신 집으로 쳐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3. 당신은 아직도 과거의 관계에 묶여 있다.
과거의 관계에 대한 기억이 당신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고
아픔이나 절망, 심지어 달콤한 꿈을 안기는 동안
당신은 옛사랑의 대상에 감정적으로 매여 있고, 그래서 그 애착을 새로운 사랑이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 겪은 감정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법을 익히고, 더 이상 당신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을 놓아주라.
그러면 사랑이 당신 문을 두드릴 거야.
더 간단히 하려면, 함께 찍은 사진이나 받은 편지를 없애고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을 다 치우라. 작은 일이지만, 효과가 있다.
4. 부모의 의견이 당신 사랑의 바다에서 북극성인가?
늘 부모의 조언을 듣는 데 익숙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그들 의견을 묻나?
그런 면을 사랑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두루 드러내는 것은 사랑의 본질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짜 사랑은 외부인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에겐 리비도가 왕성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성적으로 발산하면 만족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Platonic love로도 충분하다. 리비도는 상황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성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섹스를 원치 않는 이유는 여러 요인에 좌우될 수 있다.
성적 의욕이나 충동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면, 건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원인은 심리적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모든 바탕에는 생리 기능이 있다. 많은 심리적 원인조차 호르몬의 영향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생리적 원인
- 성적 욕구는 사람의 성호르몬과 직접 관련이 있다. 남자들 경우 테스토스테론, 여자들 경우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둘 다 관련된다. 남자들 경우 테스토스테론 대부분은 생식기에서 생산되고 중추신경계에 의해 조절된다.
- 혈액에서 생성되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은 나이가 들면서 한 해에 1-2%씩 점차 감소한다. 이 과정이 60세까지는 사실상 감지되지 않는다. 이것이 섹스를 원치 않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에 속한다.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저절로 줄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체중이 20킬로그램 급격히 증가, 술을 장기간 과음, 생식기 손상, 방사선에 노출, 호르몬 약물 복용 등의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 여자들이 섹스에 적극적이지 않은 까닭은 대개 호르몬 장애 때문이다.
- 호르몬 배경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며, 생리 주기와 임신, 갱년기 등의 영향을 받는다. 리비도가 저하되는 생리적 원인을 산부인과 의사와 내분비학자 등이 규명해야 한다. 신체가 건강한데 리비도가 저하되는 여성의 경우, 그 원인으로 무엇보다도 경구 피임약 사용을 들 수 있겠다. 따라서 그런 부작용을 피하려면 피임약을 복용하기 전에 항상 의사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 생활 유지와 관련된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대개 섹스 의욕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 어떡하나?
불면이나 다이어트, 과로 등에 시달리지는 않는지 확인해 보라. 이것도 리비도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 질병이 있는 경우 대체로 나쁜 컨디션뿐 아니라 복용하는 약물 때문에도 욕구가 감퇴할 수 있다. 이건 호르몬 관련 약물만이 아니다. 이뇨제나 진정제, 신경과민 치료제, 당뇨와 고혈압 치료제 등도 해당된다. 따라서 처방된 약을 받으면 지시사항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부작용으로 리비도의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 출산 후 많은 여성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남편과 성관계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젖을 먹이는 엄마들 경우 (황체 자극 호르몬) 프롤락틴이 더 많이 생산되는데, 이는 재임신 가능성뿐 아니라 성적 충동 자체를 약화한다. 호르몬 배경의 변화는 그밖에도 산후 우울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 출산 트라우마 역시 성욕을 감퇴시킨다.
엄마들한테는 열상과 절개가 아주 흔하다. 그 가운데 많은 엄마가 트라우마의 반복을 겁내며, 이것이 리비도의 저하로 이어진다. 또 출산한 여성들 경우 한동안 윤활이 잘 안 되며, 이 때문에 섹스에서 즐거운 감각이 떨어진다.
심리적 원인
- 불만이나 실망의 감정.
어떤 사람들 경우엔 섹스가 머리에서 시작된 뒤에야 침대로 이어진다고도 한다. 이런 남녀들에게는 서로 칭찬과 긍정적 평가가 아주 중요하다. 그 반대의 경우, 자칫 마음 상하고 자신의 성적 매력에 의문을 품기 쉽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이런 면에서는 여자들이 특히 더 예민하다. 게다가 여자들은 썩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자신이 소홀하게 대접받는 듯싶으면 자존감을 다치기 쉽다. 따라서 표현에 더 조심하지 않으면, 사생활이 어긋날 수 있다.
'자기 평가'가 외적 요소들에 좌우된다면, '자기 가치'는 내면의 중심축에 의해 결정된다.
안락의자나 소파에서 편한 자세를 취하라.
다리를 쭉 뻗고 두 손을 자유롭게 둔 상태에서 잠깐이라도 충분히 이완한 뒤 자신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하라.
누군가가 내뱉은 뾰족한 말들을 떠올리지 말고 우울한 기억으로 돌아가지 말라.
깊게 호흡한 뒤 자문하라. “나는 누구인가? 난 어떤 사람이지?”
'난 내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순간들을 생각해 보라.
어쩌면 당신에겐 흥미로운 직업이 있어서 늘 만족감을 맛볼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 외모에 대해 들은 컴플리멘트를 기억할 수도 있고, 당신이 누군가를 돕거나 좋은 일을 해준 순간을 떠올려도 좋겠다.
그런 순간에 드는 감정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하라. 그러면 높은 자기가치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이제 다른 상황을 떠올리라. 이를테면, 당신이 뭔가 곤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치자.
그런 것을 기억할 때 당신은 아픔이나 자책 같은 것을 맛본다. 하지만 그러면서 낮은 자기가치를 느낀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될 것이다.
버지니아 사티어 여사가 도입한 '자기 가치'라는 표현이 우리한테는 좀 낯설다. 기왕에 쓰는 단어들 가운데서는 '자부심'에 가장 가깝겠다. 이에 비해 ‘자기 평가’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고 이해도 잘 된다. 물론, 개념과 뜻이 아주 다르다.
자기 가치(self-worth)... 이건 자신의 영적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것을 전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소로서, 타인들과 소통이나 우리의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이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개인적 중요성을 담은 그림이다. 자기가치감은 한 사람의 평생에 걸쳐 계속 형성되며 변형된다. 이건 우리의 성공과 실패에 좌우된다.
자기 가치가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의미와 중요성을 느끼는 것이라면, 자기 평가는 특정한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가능성/능력, 개인적 자질,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 등에 대한 평가이다.
자기 평가가 낮은 사람은 자기를 파트너가 알아보면 사랑이 깨질 것이라 두려워하고, 자기 평가가 높은 사람은 파트너의 개성이나 특성은 무시한 채 파트너를 제 나름의 이미지에 맞게 만들려고 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실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도록 애써야 한다. 각자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으며 그 당시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게 더 좋다.
당신이 누군가를 후회 없이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그 대가로 똑같은 것을 돌려받을 거야.
부메랑의 법칙 같은 것.
우리의 진정한 사랑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는 우리 자신이 품고 있는 두려움이다.
사랑은 인류와 동시에 지구상에 나타났잖아. 그런데도 사랑을 우리가 여태껏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로 본다는 게 참으로 기이하고 역설적이다. 그 숱한 세월 동안 우리는 정말 이 수수께끼 풀이에 더 다가서지 못한 건가?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니, 사랑은 누구한테나 경험으로 가장 가까운 것인 동시에 또 가장 모르겠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건 몸과 마음을 전부 사로잡는, 사랑의 본질과 연관되겠지.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 누구나 다 사랑을 꿈꾸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 항상.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그걸 열심히 좇아다녀. 강아지들이 공을 쫓다다니듯이.
어쨌든, 사람들이 사랑에 집착하고 사로잡혀 있다는 거 하나는 분명해. 그들은 사랑을 찾아 몇 해를 보내고 사랑에 헌신하고 사랑을 잃을까 겁을 내지. 사랑이란 감정이 논리나 상식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해도, 진정한 사랑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 몇 가지 있다.
1. "이 세상에는 바로 나를 위해 예정된 사람이 있어."
이건 막연한 짐작이나 가정이 아니고 동기를 부여하려는 ‘주문’도 아니야. 이건 거의 수학 공식과 다름없는 거야. 그러니 만약 당신이 오늘 혼자이고 짝을 찾는 데 지쳤다면, 저 문장을 여러 번 읽어 봐. 저 공식을 기억하고, 거기에 절대 의문을 품지 말라.
온 마음으로 사랑할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당신을 꼭 기다릴 거야. 그 사람은... 당신의 농담에 웃고 당신 미소를 흐뭇하게 보고 당신 육성을 달콤하게 들을 거야. 그 사람은... 당신이 그와 아침에 처음 얘기 나누는 사람이요 밤에 잠들기 전 그가 생각하는 마지막 사람이기를 바랄 거야.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사랑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여는 것. 숨지도 말고 실망할까 겁내지도 말라. 그러면 그 사람을 만날 기회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거야. 이 모든 걸 믿는 게 중요해…
2. 당신에겐 잠재적인 ‘영혼의 짝’이 몇몇 예정돼 있어
우리 각자에게 인생에서 찾아야 하는 반쪽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고 자연스럽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어쩌면, 다행히도) 늘 그런 건 아니야.
만약 자신의 유일한 사람을 찾아 좋은 관계를 맺었다면 축하받을 일. 그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들이라. 그러나 만약 당신의 ‘유일한’ 사람이 당신과 아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성급하게 낙심할 필요는 없어.
Soulmate, ‘영혼의 짝’이라는 용어를 우리는 좀 잘못 해석하는 것 같아. 대다수는 그게 하늘이 정해준 오직 한 사람이요 이상적인 배우자라고 믿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야!
당신의 반쪽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실제로 많이 있다. 두 사람의 영혼이 친밀한 것이 중요해. 그러니 처음 몇 번 사랑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 진짜 사랑을, 영혼의 짝을 꼭 만날 거야.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정말로 깊고 진실한 사랑을 경험했다 해도, 거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또 계속 찾아 봐. 마음을 닫지 말고 우울해하지 마. 우리 세상은 아름다우며, 매혹적인 사람들이 아주 많아!
만약 당신 사랑이 끝났다면, 그건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거야. 당신을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을 ‘영혼의 짝’을 찾아 나서는 시작 말이지. 인내심을 가져, 다 잘 될 거야.
3. 사랑과 육욕은 완전히 다른 거라구
이 둘을 혼동하기가 아주 쉽다는 게 문제야.
사람들이 아주 ‘성공적으로’ 뒤섞고 있어. 사실, 성적 매력은 낭만적인 사랑 없이도 있을 수 있고, 낭만적인 사랑은 육체적으로 가깝지 않아도 가능하잖아.
결국, 사랑이란 무엇보다도 시간이 흐르면서 행동과 행위로 발전하는 감정이야. 우리는 누군가를 보살피고 배려하고 뭔가 즐거운 일을 하기 시작하잖아. 달리 말해, 자신의 사랑을 내보이는 거지.
그렇게 하는 데 정말 필요한 조건은 상대에게 충실함과 신뢰. (남자로 치면, 의리). 한데, 육체적 가까움은 그런 게 없어도 가능하단 말이야.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에게 걷잡을 수 없는 육체적 매력이나 충동을 느낀다면, 이건 정말 흥미롭고 중요한 관계이긴 하지만 진짜 사랑은 아니라고 한 번쯤 생각해 줘.
육욕은 조급하고 금방 지나가는 반면에, 사랑은 몇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어. 심지어 관계가 끊긴 뒤에도 그래. 육욕은 육체적인 만족을 갈구하는 반면에, 사랑은 관계에 대한 배려, 관심, 애정, 정서적 지지 등을 뜻한다.
4. 사람들은 사랑을 제각각으로 드러내
우리는 다 서로 달라, 그래서 자기감정도 각자 나름대로 드러낸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야. 사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인데, 이것을 다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실행한단 말이야.
누군가에게는 배려가 사랑하는 사람을 염려하고 돌보는 거야. 예를 들어, 날씨 사나운 날 전화해서 따스하게 입으라고 당부하거나, 혹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까 우산 들고 마중 나가는 거야. 또 누군가에게는 배려가 키스와 포옹일 수도 있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상대의 얘기를 잘 들어주기 혹은 식사를 맛있게 준비하기, 혹은 깜짝 선물로 상대를 기쁘게 하기 같은 게 되겠지.
대체로 사람마다 배려의 버전과 형태는 다 다르다. 그건 우리가 성장한 환경과 교육에 달렸다. 또 이전 여러 관계에서 얻은 경험에도 좌우된다.
5.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미안해” 하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화나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주는가! 사실, 별 생각 없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만만한 과녁이 되곤 하잖아? 그런 면을 보자면, 사랑할 때는 상처 받기 쉬운 면과 솔직함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아.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하고.
만약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길들이는’ 것은 당신 책임이야. 무례하게 대하고 화나게 하고 상처 입히기는 아주 쉬워, 한데 ‘내가 흥분해서 그랬어’ 하고 인정하고 사과하기는 그리 쉽지 않아.
그렇기에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언행에 책임진다는 뜻이다. 뭔가 잘못을 저지렀고 이유도 없이 무례하게 굴었다면, (가능한 한 즉각) 사과해. 이게 어려워? 아니, 전혀 어렵지 않아, 자신의 ‘에고’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면 돼.
이것이 당신한테는 잠깐의 일이라면, 파트너에겐 그가 사랑받고 존중받는다는 증거가 되는 거야.
6.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특별한 냄새가 있어
자신의 반쪽을 찾을 때 후각을 믿어 봐.
사랑의 화학이라는 거 알아?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사람한테선 뭔가 비슷하고 친숙한 냄새가 난다는 거지.
어떤 사람의 향내가 천상의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게 그저 향수나 화장수/오드콜로뉴라 해도)... 이건 당신이 그 사람의 페르몬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첫 번째 징표야. 좋아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진다면, 유전적으로 두 사람이 어울린다는 증거이고. 관점의 교환도 마찬가지.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눈을 응시할 때, <뉴런 동기화/同期化/synchronization>이라 불리는 과정이 활성화된다는군. (뭔 소린지 좀 어렵지만) 두 사람이 같은 파장을 갖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모든 걸 빨아들일 만큼 깊이 눈길을 마주할 때, 뇌에서는 아주 강한 연결이 일어난다는 것. 사랑은 그렇게 작동한다지?
7. 습관과 중독이 되는 사랑
사랑의 화학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사랑은 마약”이라는 표현에 일리가 있어.
사랑은 뇌에서 즐거운 느낌을 일으키는데, 이 쾌감이 약물이 주는 것과 흡사하다는 거지. 이건 다 마약이나 알코올처럼 중독과 의존을 유발하는 도파민 탓이야. 그런데 우리가 초콜릿을 먹을 때도 똑같은 화학 과정이 뇌에서 일어난대.
사랑이 자신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하고 선택한 대상이 다른 로맨스의 주인공일 때조차 사람들이 사랑을 갈망한다는 게 놀랍지도 않아. 사실 이건 흔한 중독이야. 우리 뇌가 익숙한 행복 느낌을 자꾸 맛보려 드는 거지.
우리네 삶이 과연 만족이나 쾌락을 좇는 시시한 경주일까? 물론, 아니야. 만약 쾌락 욕망이 (예를 들어, 파트너를 배려하려는 갈망 같은) 다른 욕구보다 더 우세하지 않다면, 우리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 중독 관계나 짝사랑을 깨뜨려야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해.
만약 자신의 사랑 감정을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사물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나타나면서 당신은 파괴적인 것을 자기 삶에서 지울 수 있을 거야.
바로 앞에서 얘기 나눈 대로, 이 세상에는 당신을 사랑할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야. 그러니 뒤돌아보지 말고 과감히 나아가라.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8. 사랑은 영원해
사랑에서도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받기 마련이야.
이런 말은 이미 낡고 진부해 보여. (그래서 이제는 시나 축하 인사에도 안 쓸 거야.)
그러나 자꾸 반복한다 해서 이 어구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야.
당신이 누군가를 후회 없이 마음껏 사랑할 때 똑같은 것을 응답으로 얻게 돼. 부메랑 법칙 같은 거야.
그런데 우리의 진정한 사랑을 방해하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품는 두려움이야. 우리는 속고 배신당하고 버림받을까 겁을 내잖아. (안 그렇다고? 그럼, 당신은 용감하고 행복한 사람이지!) 용기 내서 두려움 떨치는 즉시 당신 앞에는 마법의 나라로 가는 문이 열리는데, 이 나라는 사랑이라 불린다.
두려워하지 마. 그냥 해 봐. 그러면 아주 금방 알게 되는 진실이 있으니... 당신이 세상에 건네는 사랑이 백 배로 돌아온다는 것!
영혼의 짝은 완벽한 관계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인생의 길흉화복을 함께 겪을 수 있는 사람이다.
영혼의 짝은 당신한테 그냥 어울리거나 걸맞은 사람이 아니다.
깊은 수준에서 당신이 연결된 사람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영혼의 짝’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거기에 몰두하다가 좋은 잠재적 파트너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그런 진짜 반쪽은 (the better half) 아예 없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영혼의 짝은 반드시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단지, 이는 첫눈에 심장 오그라드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진정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간 흐르면서 영혼의 짝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
두 가지 다른 견해 가운데 무엇이 옳은가?
소울메이트란 존재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아아, 아직은 그 누구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이 물음에 답하려면,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나 징표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해!
1. 말이 없어도 서로 뜻이 통할 수 있다.
무슨 심령술사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이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은 어색한 침묵을 뭔가로 채우려고 쉴 새 없이 재잘댈 필요를 못 느낀다. 왜냐면 이 사람과 있을 때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고 외려 놀라울 정도로 따스하고 편안하니까.
또 대화할 때 마치 서로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편하게 말을 맺을 수 있음을 아주 종종 깨닫는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실제로 그렇다.
두 사람의 영혼은 강한 끈으로 이어져 있다. 보통사람들한테는 그림의 떡.
2. 당신이 그냥 느낀다.
이 사람이 당신한테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마음속 깊이 느낀다.
내면의 목소리가 그렇게 속삭인다. 이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사람의 (특히, 여자의) 가장 큰 힘은 직관에 있는 만큼, 거기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3. 눈을 마주볼 때, 두 사람한테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두 사람은 아주 활발하고 매혹적인 화학 반응의 두 요소 같다.
둘이 만날 때 서로를 사로잡는 감정은 믿기 어려운 힘과 충만함으로 두드러진다.
당신은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물론 특별한 감정을 맛봤어. 그러나 지금 느끼는 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성적 에너지 역시 뜨겁게 달아오른다 해도 침대에서 아주 좋다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도 열정과 애정이 두 사람을 꽉 채운다.
4.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좋게 만든다.
서로에게서 가장 좋은 것을 일깨워 그것이 무르익도록 주제넘지 않고 긍정적으로 조금씩 자극한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당신이 인생에서 최고의 팀에 들어있다고 느낀다. 상대의 관심사를 간과하거나 무시한다는 느낌을 서로 주는 법이 없다.
당신도 당신의 반쪽도 개인적으로 발전하면서 상대의 발전을 응원하기 원한다. 진정한 영혼의 짝은 그냥 아주 친밀한 사람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 아주 소중한 파트너이다.
5. 당신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낀다.
파트너가 치명적으로 마음 상할 뭔가를 실수로 말하게 될까 겁내지 않는다.
당신의 행동을 파트너가 이상하게 보면서 이해하지 못할까 겁내지 않는다. 샤워하면서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해도 말이다.
당신은 그런 걸 전혀 겁내지 않는데, 왜냐면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아주 편하고 아늑해지니까.
당신은 어떤 주제로도 대화할 수 있다고 느낀다. 둘이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하다.
6. 양쪽에 단점과 결점이 있고, 그걸 서로 알면서도 여전히 함께한다.
그래, 당신에게 결점이 있어, 파트너에게도 그렇고. 그걸 당신이 잘 아는데…
그래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당신은 외모에서 행동까지 이상적인 누군가를 찾거나 늘 웃음 짓고 옳은 일만 하는 사람을 구하려고 애쓰는 게 전혀 아니니까. 그런 사람은 영혼의 짝이 아니야, 이건 결점만 없는 게 아니라 생명도 없는, 윤기 나는 인형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결점과 단점을 보고 알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서로를 받아들인다.
소울메이트는
당신에게 완벽한 관계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인생의 길흉화복을 함께 겪을 수 있는 사람이다.
7. 둘이 함께 있으면 좋고 편안하다.
파트너와 함께 있으면서 당신이 계속 스트레스를 겪어선 안 된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야 한다. 주변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모든 일이 제대로 된다.
함께 있는 동안 계속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면…
흠, 그 사람이 누구이든, 당신 영혼의 짝은 못 된다.
8. 둘 사이에 이견이 있곤 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에서는 뜻이 맞는다.
좋아,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면도한 뒤 세면대를 늘 지저분하게 놔두고 변기 시트를 위로 올린 상태로 두어서 당신을 열 받게 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또 당신이 식사 때 쩝쩝거리고 욕실을 몇 시간씩 차지하는 습관에 짜증이 날 수 있다.
그래, 그런 것에 짜증이 나고 심지어 화도 날 수 있어…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 관계에 금이 가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둘에게 정말 중요한 것에서 뜻이 맞지 않는가.
관계의 토대를 이루는 것에 동의한다.
파트너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당신도 소중히 여기고, 같은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9. 그 사람한테는 솔직하게 마음을 열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며 실제로 느끼는 것을 파트너에게 말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한다.
만약 운 좋게 영혼의 짝을 찾았다면, 당신은 원한다면 자기 생각을 죄다 파트너에게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어떤 얘기는 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파트너가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당신을 비난한다고 느낀다면…
그 파트너가 당신 영혼의 짝은 분명히 아니라는 뜻이다.
영혼의 짝은 당신의 어떤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당신이 하는 얘기를 비난과 편견 없이 듣는다.
10. 영혼의 짝을 만났다 해서 관계가 반드시 낭만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당신 영혼의 짝이 알고 보니 낭만적인 파트너가 아닐 수도 있다.
관계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항목이 다 성적인 측면과 무관하다는 점을 보면, 이 부분이 이해될 것이다.
당신은 둘 사이에 깊은 정신적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지만, 성적 측면에서 서로에게 끌리지 않음을 금방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11. 둘이 첫눈에 반하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당신은 영혼의 동반자가 반드시 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파티에서 막 만난 사람이거나 아니면 지하철이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층에 살며 벌써 몇 년째 알고 지내는 이웃일 수 있어, 혹은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
어떤 단어가 행복을 안기며 어떤 단어가 행운과 성공을 영원히 앗아가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날마다 엄청나게 많은 단어를 입에 올리는데,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독특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또 그 자체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담겨 있지만 적절하지 못한 순간에 입 밖에 내는 단어들은 (말은)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단어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나면, 당신은 위험을 피하고 행복과 행운을 끌어들일 수 있다.
단어에 실린 에너지
단어들이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강하게 영향 미치는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단어들을 계속 입에 올려 보라. 이를테면,
‘나빠’, ‘끔찍해’, ‘우울해’, ‘힘들어’, ‘피곤해’, ‘귀찮아’, ‘죽겠어’, ‘미워’, ‘싫어’, '신경질 나' 등등. (*나는 이 목록에 '빨리 빨리'도 넣고 싶다.)
그렇게 몇 시간만 지나도 이 단어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들이고 그런 생각이 마인드에서 굳어진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쯤 가서는, 평범한 단어들이 짧은 시간에 당신 내면 상태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지 않은 실험을 그렇게 해 보면, 우리의 기분이나 건강, 행운 등이 우리가 입에 올리는 말에 달렸다는 것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단어라 해도 잘못된 맥락에서 사용하거나 부적절한 순간에 입 밖에 내면 당신 삶에 부정적으로 반영되어 불상사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행복’이란 단어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데도 우리가 그걸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얻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부류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슬픔으로 인해 누리는 기쁨은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안길 리가 만무하다.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세운 행복도 역시 진정한 행복을 안길 리 만무하다.)
따라서 “그자가 성공하지 못해서 난 행복해” 따위 생각이나 어구만으로도 당신 삶이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
남자들의 지각과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 눈으로 보는 것이며, 여자들은 말을 더 잘 인식한다. 언어 능력이 남자들보다 더 뛰어나다.
남자들은 에너지 측면에서도 여자와 물론 다르다. 싸우고 쏘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욕구를 타고난 그들은 여자와 달리 단조롭고 오래 걸리고 천편일률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과 출세에 대한 태도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 성공을 자아실현의 기회로 여기는 남자들에겐 직업과 작업 기능, 임금 등이 중요하다. 이에 비해 여성들에게는 일터가 유쾌한 소통 장소가 되며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성은 본질상 더 보수적이며 유연하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 남성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는 안면을 트는 순간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남자란 본질상 먹잇감을 쫓는 사냥꾼임을 기억하면서, 교제 처음 기간에는 접근을 쉬이 허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점을 염두에 두라. 하지만 그런 ‘밀고 당기기’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된다면, 남자가 흥미를 잃고 다른 더 현실적인 먹잇감에 눈길 돌리기 쉽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를 얻기 위한 마음에서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하겠다고 나선다면 남자는 또 주춤 물러선다. 나중에 헤어지고 싶을 때, 여자가 눈물과 위협과 모욕으로 괴롭히지는 않을까 겁을 내는 것이다.
남자가 만약 자신감 있는 여자를 좋아하고 그녀 인생에 그를 위한 자리도 있기만 하다면, 그는 여자를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여자를 남자는 함께 있으면 자신을 진짜 남자로 느끼게 하며 자신에게 걸맞은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받아들인다.
교제 초기에 여자가 결혼이나 부모에게 인사 같은 암시를 준다면, 관계가 깨질 수 있다. 왜냐하면, 남자는 자신을 압박하고 구석으로 몰아넣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아프게 받아들이는 지적이나 다른 남자들과 비교는 하지 않아야 한다.
남자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 때 “조심하라고 내가 이미 말했잖아” 같이 상투적인 말을 던지지 말라. 그건 남자를 두 번 죽이는 셈. (*참조: 순한 사람조차 화나게 하는 말)
이를테면 직장에서 덜 떨어진 상사나 동료가 집요하게 들러붙는데 그것을 차단할 수 없다고 해서, 남편에게 절대 하소연하지 말라. 그런 문제는 당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얘기를 남편에게 하는 즉시 “당신이 먼저 꼬리친 거 아니야?” 하는 핀잔을 듣고 의심을 살 게 뻔하니까 그렇다. 자기 아내의 솔직함을 남자들 99%가 그렇게 받아들인다.
남자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특성을 늘 기억하고 조금만 주의한다면, (여자로서) 당신은 개인적인 삶을 잘 꾸릴 수 있다.
남자는 다 자기가 최고의 여자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확신한다. 가장 똑똑하고 예쁘고 멋지고 경제적이고 섹시한… 여자를 말이다. 사실 그럴 법도 하고 그럴 수도 있는데, 여기엔 한 가지 작은 단서가 붙는다. 바로... 그 여자가 다른 여자들보다야 더 나아야 하지만, 남자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 여자가 자신의 전문적 능력을 자랑하거나 볼링에서 남자를 연달아 다섯 번 이기거나 계산을 더 잘하거나 더 빨리 달리거나 자기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강조하는 일 등은 없는 게 낫다. 그 대신 남자의 성공과 승리를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말해 주라.
그렇지 않은 경우, 남자는 여자 때문에 자신의 빛이 가리고 여자에게 압도될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여자가 가정에서도 리더 기질을 발휘하며, 자신은 공처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예감할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좋아할 남자는 거의 없다.
실수 2. 모든 게 다 결정됐다고 여기기
허니문을 어디서 보내면 예물 반지는 어떤 것으로 하며 결혼식에 일가친지를 얼마나 초대할지 등을 당신은 마음속으로 얼마든 추산하고 상상할 수 있다. 단, 속으로만 그렇게 꿈꾸되 어떤 경우에든 입밖에 드러내서는 안 된다!
모든 게 다 결정됐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당신이야. 그런데 남자에겐 ‘비상 탈출구’가 있어야 한다. 그걸 남자가 반드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회로가 있다는 사실에 남자는 마음이 편해진다.
“여기에 아기 침대를 놓으면 딱 좋겠어” 혹은 “이 벽은 허물고 베란다를 넗히자” 같은 말을 피하라. 선반에 있는 당신 화장품 등속을 왼쪽으로 5센티 밀어서 남자의 면도기와 스킨로션을 놓게 할 용의가 있나?
남자들은 자기 개인 영역이 침범되는 걸 싫어해, 또 자기네 대신 누군가가 결정을 내리고 동의하게 하면 질색한다. 남자를 당신 부모가 장래 사위처럼 대하게 하지 말라. ‘나도 없이 나를 벌써 장가보낸 거야?’ 하는 생각이 들 때 남자는 짜증을 낸다.
실수 3. 과거를 떠올리고 들추기
남자들은 누군가와 비교되는 걸 싫어해. 당신이 이전에 만나던 사람이 지금 파트너보다 더 낫다는 느낌을 혹시 준다면, 더더욱 고통스럽다. 만약 사랑하는 남자가 “예전 애인과 나, 둘 중에 누가 더 당신을 즐겁게 하나?” 하고 호기심을 보인다면, 혀가 자유로이 움직이지 않게 하라. 그가 진실을 듣기 원한다고 생각하나? 아니, 그렇지 않아! 그는 자기가 최고의 애인이라는 칭송을 듣고 확인이 필요한 것이야. 같은 이유에서, 그의 ‘잠자리 테크닉’ 따위를 이전 남자들과 절대 비교하지 말라.
또 남자의 이전 여자들이 당신보다 못하다고 남자에게 주입하려 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을 돋보이려는 시도는 효과가 별로 없다. 어쩌면 그런 말을 듣는 남자는 자기를 당신이 실패자요 선택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본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실수 4. 허구한 날 “당신은 날 사랑해?” 하고 묻기
남자의 확인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분명해. 한데 남자는 1) 당신에게 (관계가 막히고 뻣뻣해지는) 경화(硬化) 증상이 있고 2) 자신의 마음을 당신이 의심하고 3) 당신에게 다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물음으로써 남자 마음에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 남자는 ‘내가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장고한 끝에 당신 마음에 아주 안 드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실수 5. 남자를 공공연히 내세우기
여자가 자랑하기 위해 남자를 주변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을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손대지 말 것’이란 표찰을 단 박물관 전시품처럼 보이는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남자란 본질상 사냥꾼이지 전리품이 아니다.
실수 6. (여자 혼자) 미리 계획하고 설계하기
“우린 오늘 여기로 가고 내일은 저기로 갈 거야, 모레는 친정에 들러서 우리 엄마가 만든 칼국수를 먹자.” 당신이 남자의 기호나 계획은 안중에도 없이 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남자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인형극을 모든 남자가 다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수 7. 퍼레이드를 지휘하기
남자의 나쁜 습관을 명령하는 식으로 고치려 들지 말라. 이미 다 큰 사람을 개조하려 드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 그래봤자, 힘은 엄청나게 들이면서도 얻는 건 짜증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남자와 관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제 좀 그만해요!" 하는 것보다 “그만두면 난 참 좋겠어요” 하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좋게 들린다. (*<말투의 중요성>)
실수 8.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기
“자기야, 지금 어디야?”, “5분 전에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나를 보고 싶지 않아?” - 남자는 어쩌면 당신을 보고 싶어 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말을 (특히 업무 회의에 참석해서) 소리 내어 말할 리는 거의 없다.
그런데 전화를 또 다섯 번이나 연거푸 해댄다면, 보고 싶은 마음도 쑥 들어갈 뿐만 아니라 속으로 증오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엔 짧은 전화선에 묶여 산책하는 개가 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고 말 것이다.
실수 9. 쇼핑하면서 에고이즘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어머, 정말 멋진 코트야! (티파니 반지야, 헤르메스 스카프야, 샤넬 핸드백이야!) 나한테 잘 어울리지 않아요? 얘하고 (이 물건과) 난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아!“
잘 어울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두 사람의 관계 중심에 여자인 당신과 ‘물건, 돈, 물건’이란 공식만 남게 된다.
“여보, 이게 당신한테 어울릴까?” 하는 말은 몇 번이나 했는지 자문해 보라.
실수 10. “우리”라는 말을 지나치게 자주 입에 올리기
이게 왜 실수냐고? ‘우리’라는 대명사는 엄마와 돌 되기 전 아기한테 이상적으로 어울린다. 탯줄은 이미 끊겼지만, 아기가 아직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불가분성이 남아 있다.
남자는 어린애와 달라서 자신의 독자성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당신이 “우리가 결정한 거야?”, “우리는 이렇게 여기잖아” 하는 식으로 ‘우리’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남자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여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성의 뇌 용량이 남자 것보다 10% 더 적다는 것은 오래 전에 알려진 사실. 그렇다 해서 여성의 지적 수준이 남자보다 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덩치(몸집)에 비례한 것일 뿐.
2
남성의 뇌 용량은 나이 들면서 여성의 뇌보다 더 빨리 줄어든다.
남자들 20%는 여성 뇌를, 여자들 10%는 남성 뇌를 갖고 있다고 학자들이 여긴다. 물론 개인차가 다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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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남자와 여자는 뇌의 다른 부위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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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길을 잃으면 움직이는 방향과 지나온 거리를 떠올리는데, 여자는 물체를 기준으로 삼는다. 운전대 앞에서도, 남자는 거리 감각으로 길을 기억하는데 여자는 각종 상점 간판과 쇼윈도 같이 구체적인 표지를 기억하고 확인하며, 이 분야에서는 남자를 압도한다. 남자는 추상적 개념에 따라 움직이면서, 자동차나 호텔까지 가기 위해 즉석에서 지름길을 찾아낼 수 있다.
남성은 넓은 공간과 거리에서 사냥하기에 (또 종족 간 싸움과 전쟁에) 적응돼 왔다. 대개 사냥감을 말없이 쫓아가야 했어, 때론 며칠씩이나. 그다음에 자기 동굴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야 했다 (방향 감각). 먼 옛날에는 구두(말) 교환이 아주 미미했다. 선사시대 인간은 평생 다른 인간을 150명도 못 만났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남자들이 그러는 동안 여성의 뇌는 아이들 양육이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 수행에 적응돼 왔다. 여기엔 구두 소통이 (그 이전에 신체언어가) 아주 필요했다. 이 때문에 생물학적 수준에서 남자는 경쟁에, 여자는 협력에 프로그래밍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들이 이미 자궁에서 태아로 지내는 처음 몇 주 동안에 형성되며, 이후 교육과 문화가 미치는 영향은 아주 약하다. 오늘날 간주하기를, 우리네 퍼스낼리티의 1/3은 유전형질로, 1/3은 태아 시기에 정해진다고. 나머지 1/3은 습득한 지식으로 결정되는데, 여기엔 문화적 환경, 교육 수준, 양육, 기타 상황 등이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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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남자는 간추려 포괄적인 생각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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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정보를 더 빨리 인식하고, 그래서 더 빨리 반응한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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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몇 가지 정보를 복합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데 비해, 남자는 뭔가를 ‘한꺼번에’ 하게 되면 짜증을 낸다. 여자들 경우 뇌의 좌우 반구 간에 연결이 더 밀접하다. 그래서 몇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기에 좋다.
여자들은 남자가 하는 말을 듣지만, (내용보다) 어떻게 말하는지를 더 많이 느끼면서, 남자의 목소리 음색, 호흡 리듬, 짐작되는 감정 등을 감지한다. 좌뇌는 여성들에게서, (감성 뇌라고 하는) 우뇌는 남성들에게 더 발달돼. 이는 통념과 어긋난다. 즉, 여자는 언어 행위와 소통에 더 얽혀 있으며, 반면에 남자는 행동과 경쟁에 더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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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정밀과학에 더 강한 반면에, 여자들은 인문과학 분야에서 더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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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1분마다 섹스를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하루에 두어 번 떠올린다. 마니아들과 기타 극단적 취향의 소유자들은 제외하고.
남자들은 유쾌한 결말에 더 관심 있는데 비해, 여자들은 유머의 섬세함과 기술하는 말에서 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결말에도 남자들보다 더 큰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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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조직하고 구성하는 기술이 더 발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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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청각이 남자보다 두 배 더 발달됐다. 바로 이 때문에 상냥한 말과 목소리 음색, 음악 등이 여성에게 중요하다. 남자가 미더운 톤으로 공감하는 빛을 담아 말한다고 스스로 느낄 때도, 여자는 남자가 소리치는 것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니 뭇 남성들이여, 여자와 얘기할 때는 더 가만가만 부드럽게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여자들은 아주 미묘한 억양도 포착하지만, 남자들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여자들 촉감이 더 발달됐다. 접촉을 느끼는 수용기들이 여성 피부에 남자보다 10배 이상 더 많이 분포돼. 게다가 옥시토신(자궁 수축 호르몬)과 프롤락틴(애착과 애정 호르몬, 황체 자극 호르몬)이 터치와 애무를 더 요구하게 만든다.
시각에서는 남성이 더 발달되고 더 관능적으로 변했다. 그렇기 때문에 옷차림, 화장, 장신구, 누드, 포르노 등에 관심이 많고 흥분하는 것.
하지만 여성들 경우에는 시각적 기억이 더 잘 발달됐다. (사람들 얼굴, 사물의 위치, 대상의 형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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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뇌의 좌우 반구를 다 이용하여 상대방 얘기를 듣는 반면에, 남자는 주로 좌뇌로 듣는다. (좌뇌는 언어와 논리를 담당하기에 비판적으로 듣는 것.)
남자들은 상대방의 말을 논리적으로 지각하고, 그래서 ‘언급한 대로 듣는다.’
한데 여자들은직관과 감성을 가동하기때문에 ‘무슨 말에든 어떤 암시가 어른거린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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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적으로 여자들이 더 사교적이며, 남자들은 지극히 경쟁적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툭하면 싸움질하는 것. 같은 이유에서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네와 오래 얘기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난다. 그럴 필요 없다. 말하기에서 남자들이 대체로 덜 발달됐기 때문일 뿐이니까.
남편이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아내의 말을 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럴 때마다 아내에겐 자기 얘기를 남편이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감정적이야, 하지만 덜 드러내, 이런 점을 부부생활에서 무시하면 안 돼. 여성에겐 시간이 더 중요해, 이를 좌뇌가 맡아, 남성에겐 공간이 더 중요하며, 여기서 우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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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공이 놓여 있을 때, 사내애들은 발로 차는데 여자애들은 집어서 가슴에 품는다. (남자와 여자의 타고난 미션이 그렇게 다르다.) 이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호르몬과 직접 연관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욕구와 성적 관심과 공격(적극성)의 호르몬. 이를 정복 (무력, 성욕) 호르몬이라 부를 수 있을 것. 최적 상태에서 테스토스테론은
•근육 힘을 키운다 (남자들 경우 근육의 40%, 여자들 경우 23%)
•반응 속도와 억제력 결핍을 결정한다. (교통 체증 때 ‘빵빵’대는 운전자들의 92%가 남자)
•공격과 경쟁, 지배 형태를 촉진한다. (지배하는 수컷이 종의 특질을 보존해)
•참을성과 끈기를 키운다.
•상처 회복, 탈모, 조심성, 신체 우측의 발달, 움직임과 방향의 정확성 등을 촉진한다.
그런데 (발정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기민함 발달, 손가락 움직임, 신체 좌측 발달을 촉진하며, 남자 신체의 지방 15%와 여성 신체의 지방 25%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여성의 지방은 아기의 보호와 수유에 필요한 것. 에스트로겐은 또 여성의 청력에도 영향을 미쳐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넓은 음역을 구별하고, 소리와 음악을 (6배 더 잘) 익히고 기억하며 노래를 더 잘 한다. 여자는 꽃 이름을 잘 기억하며, 청각 기억과 시각 기억이 잘 발달됐다. 여자는 강하고 보호할 수 있고 경험 많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컷에게 끌린다. 대체로 나이가 더 많은.
20
여자는 생각 없이 말하고, 남자는 생각 없이 행동한다.
개인 관계에서 불행한 여자는 일터에서도 문제가 있다.
일터에서 불행한 남자는 여자들과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
여자에겐 성적 관심을 알기 위해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고, 남자에겐 친밀함을 알기 위해 성적 관심이 필요하다.
<a Lecture of the physiologist, the Clinician, the European Association for psychotherapy, Serge Ginger> 발췌, 보충.
♂ - 남자에게... 대화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나 골칫거리가 있어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뜻한다. 저런 말을 남자들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만 꺼내며, 저런 말을 들으면 먼저 긴장하게 된다. ‘아, 저 말은 뭔가가 잘못 되어 문제가 생겼다는 뜻 아니야?’
♀ - 여자에게... 대화와 소통이란 무엇보다도 파트너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기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제시하는 대화에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걸 거부하면 서운하게 여긴다.
2. “당신,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 - 남자는 얘깃거리에 말없이 집중하면서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겉보기에) 경청하지 않는 대화 상대라는 인상을 제법 자주 풍길 수 있다. (*참조: 퍼블릭 스피킹(20) 경청 기법). 그러다 보니, 상대가 “당신은 지금 내 얘기를 잘 안 듣고 있네!” 하고 타박할 때, 남자는 놀랍거나 불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주의 깊게 들으려 하는데 말이다!
♀ - 여자가 경청할 때는 감정 가득 담긴 추임새를 연발하고 제스처를 활발하게 쓴다. 말뜻을 잘 알아듣기 위해 여자는 자신이 그 상황을 실감나게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행동을 남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때론 짜증내기도 한다. 자기네 집중에 방해가 되니까.
3. “자, 이걸 같이 합시다.”
♂ - 남자란 존재들은 대체로 전과(성과)를 공유하려 들지 않는 편이다. 다른 누구와 공동 작업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남자들은 그런 제안을 마뜩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런 말을 잘 내뱉지도 않는다.
♀ - 여자들 경우엔, 연구자들에 따르면, 옥시토신 호르몬 때문에 결합과 응집이라는 관념이 더 발달돼 있다. “이걸 우리가 함께 했어요”, “나를 도와주는 팀이 있어” 같은 것이 여자들에겐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뭔가를 함께 처리하는 계기나 동기는 그 무엇이든 여자에겐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주는 것이다.
4. “잠깐만 조용히 해봐.”
♂ - 남자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액면 그대로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그들에겐 침묵과 고요가 필요해, 스트레스를 처리하고 어떤 문제를 숙고하기 위해서.
♀ - 여자와 침묵이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고전적 의미에서, 여자들은 흔히 남자를 징벌하려 들 때 침묵을 이용한다. 나아가서는 남자를 조종하려는 의도로 자주 쓴다. 한데 남자들은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이 나를 화나게 할 때, 난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아...
그냥 입 꾹 다물고 말아!
그러고는 혼자 욕실로 가서 남편 칫솔로 변기를 닦지, 뭐.
5. “나중에 얘기하자.”
♂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눈길과 생각을 전환하는(돌리는) 능력에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많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의논합시다” 하는 말이 남자에겐 아주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생각이 다른 뭔가에 사로잡혀 있을 때면 아주 단순한 문제에도 응대하기가 정말로 힘드니까!
♀ - 여자들은 멀티태스킹에 남자들보다 더 강하다.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을(얘기를) 하다가도 다른 무엇에 쉽게 빠졌다가 다시 이전 일로(얘기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당장에 관심 갖는 문제를 나중에 의논하자고 남자가 제시할 때, 그들에겐 남자가 무성의하며 대화를 성급하게 끝내는 것이라 인식된다.
6. “괜찮은데.” “쓸 만하군.”
♂ -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감수성이 약하며, 이런 사실이 언어 모델에서도 드러난다. 여자의 드레스가 아주 호사하다거나 여자가 마련한 식탁에 정성이 흠뻑 담겼다 해도, 아름다운 드레스나 맛난 음식을 (여자들이 보고 느끼기에) 제대로 칭송하지 않는다 싶은 까닭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형용어들이 남자들 사전에 부족하기 때문인 것일 뿐이다.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내놓는 말이 “괜찮아”, “좋은걸”, “어울리는데” 하는 정도인 것이다.
♀ - 여자는 하루에 대략 2만 단어를 말한다. 남자보다 한 배 반쯤 더 많이. (물론 단어 이외에 각종 신체시그널까지 치자면 차이는 훨씬 더 커질 것). 여자들은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 또 자신의 느낌을 최대한 똑똑히 전하기 위해 갖가지 다양한 형용어를 구사한다. “대단해”, “놀라워”, “까무러치겠어”... 그러니 “괜찮군” 같이 수수한 표현에 그들 성이 찰 까닭이 있겠나. 서운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할 듯하다. 아니, 당연하다.
7. “이건 남자의 일이야.” “남자가 할 일이야.”
♂ - 남자가 저런 말을 꺼낸다면, 그 일이나 작업이 어떤 것인지 적절하게 묘사할 단어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십중팔구일 것. 혹은, 이런 상황 역시 일상에서 자주 벌어지는데, 그 일을 일일이 묘사하는 것이 괜히 젠체하는 듯해서(?) 말을 줄이는 경우도 제법 많다.
♀ - 저런 말을 듣는 여자들한테서 긍정적인 느낌이 일어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럼, 뭐야, 한동안은 (우리라는) 팀이 필요 없다는 뜻이잖아.’ 3)번 항목에서 알아봤듯이, 여자에겐 ‘함께’ 움직임이, 팀 활동이 아주 소중한 개념인데 말이다.
하나 더 곁들이자면, 일부다처제라는 신화도 여자가 어떤(부정적인) 느낌을 갖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남자 일’이란 것이 결국 새 파트너를 찾는 것 아니겠어? ^-^
☞ 남자들은 자신이 잘못 내린 결정에 상처를 아주 잘 받는 편이다. 게다가 자신이 옳지 않고 여자가 옳은 것으로 드러날 때, 이건 정말이지 남자들에게 가장 힘겨운 상황이 될 수 있다.
남녀 간에는 자신이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즉, 여자는 뭔가 실수했다 해도 상당히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손 한 번 내저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다 그렇지, 뭐, 내가 뭐든 다 내다볼 수는 없잖아.” 여자는 오랫동안 심하게 자책하지 않을 것.
한데 남자들은 달라, <남자로서의 권위, 능력, 미더움> 같은 요소들이 상하고 실추된 게 아닌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꾸짖고 원망하며 화도 나고 의기소침해진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 여자가 질책이나 잔소리를 해댄다?
이건 바로 남자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하나 다를 바 없다.
이런 사례를 보자.
우린 아파트를 사기로 결정했어요. 아주 괜찮은 물건을 찾았지요. 가격도 맞았어요. 난 구입하자고 주장하는데 남편이 “좀 더 기다립시다” 하고 말했어요. 그 아파트가 팔렸어요. 그 뒤 우리한테 적당한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거의 1년 동안 비좁은 곳에서 살아야 했고, 게다가 다시 찾은 물건은 처음 것보다 더 비싸게 줘야 했어요.
음, 남편이 실수했군.
상황이 어떠했건, 결과로 보자면 판단에 문제가 있었네.
그래서 당신은 그 일을 두고 남편을 타박할 건가요?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지혜롭고 다정한 부인들이여, 남편을 일찌감치 파멸시킬 작정이 아니라면, 이런 말은 부디 (제발) 잊어버리시라.
“내가 뭐라고 했어? 여자 말 들어 손해날 일 없다고 했잖아요!”
남자가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바가지를 긁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일이 뭔가 잘못 됐다는 점을 두고 남자는 자신에게 이미 충분히 화가 나 있는데. 남자를 가중 처벌하지 말라, 불에 기름 붓지 마시라.
그보다는 남자가 필요한 방향으로 더 힘차게 움직이게끔 유도하는 것이 더 좋아.
결론 9)
자기 남자를 늘 믿고, 믿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줘야 돼.
특히 일이 잘못 돼 남자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더더욱.
직장에서 해고됐어,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야, 더 나은 것을 찾으면 돼.
여자는 남자가 어떤 문제든 해결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남자에게 심어 줘야 하고, 여자의 그런 행동이 남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인 것.
추상적인 대화를 남자는 결국 자신에게 적용하려 들면서 '흠,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들은 꿈꾸기를 아주 좋아해서, 크고 예쁜 집과 많은 돈과 값비싼 크루즈와 머나먼 여행, 화려한 휴가를 상상한다. 여자는 그냥 꿈을 꾸는 것이지만, 남자는 그런 상황을 불편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그런 꿈을 남자에게 거는 기대로 해석하는데, 정작 실제로 그렇게 해주기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
결론 4) 남자가 공연히 자괴감을 느끼고 짜증내지 않게 하려면, 그런 꿈을 늘어놓으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면 좋아. “당신은 나한테 최고야. 그냥 이렇게 꿈 꿔 볼 수는 있지 않겠어요? 무슨 과제도 목적도 없이 그냥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즐기는 거지요. 이건 괜찮겠지?” 남자가 고개 끄덕이고, 두 사람이 함께 달콤한 꿈을 꾸는 것.
☞ 남자에게는 확실함이 중요해.
(*그런데 <(6) 여자들의 애매모호 - 확실성 부재>>에서 봤듯이 모호함이 또 여성 논리의 한 축이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확실성이 더 클수록 더 좋아. 남자는 여자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확실히 알기를 원한다.
장황하고 감정적으로 마냥 늘어놓는 얘기에 남자는 짜증을 낸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설명해 주겠어?” 하는 말은 “나한테 확실한 지침을 줘”로 해석하면 된다.
여자는 자기 기분이며 상대와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데 익숙한 반면에, 남자는 행위에 신경 쓴다.
'그럼,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이런 면에서 남자들은 단순하다. 남자들은 '예스'와 '노'가 무엇인지 알며, 확실한 지침을 필요로 한다. 암시며 감정, 불명료한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여자들은 종종 암시를 담아서 남자와 대화하지만, 그건 남자를 상대로 유효한 소통 방법이 못 된다.
첫째, 남자는 여자가 뭘 얻기 원하는지 생각도 못해.
“저기, 내 친구 영희는 한 달 뒤 결혼한대” 하고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말할 때, 남자는 그걸 그냥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인다. 여성은 어떤 암시를 담은 것. ‘우린 언제 결혼하지?
둘째, 남자가 어떤 암시를 (아주 종종 그렇듯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여자는 삐친다. 친구 결혼 얘기를 꺼내면서 내비친 암시에 남자의 청혼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삐친다.
결론 5) 여성들이여, 원하는 바를 남자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요. 넌지시 에둘러 말하는 건 소용없어! 여자의 말에서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뚜렷한 지침을 듣지 못할 때, 남자는 짜증을 낸다. 여자가 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자가 뭘 얘기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남자에겐 중요해.
이때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한 공식이 도움 돼. “잠깐 앉아요, 간단히 얘기할게.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잘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요. 난 당신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이거면 충분해, 그 뒤 남자는 당신 말을 경청하게 된다.
☞ 남자는 자신의 물음에 여자의 분명한 대답을 기대한다.
남자가 어려움과 문제를 얘기할 때, 여자 쪽에서 “그래요, 당신 상태를 잘 이해해요” 하는 반응이 남자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다. (*여자들에겐 이것으로도 충분해!)
남자에겐 어려운 상황을 풀어나갈,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자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끔, 이렇게 물어야 돼.
“내 의견이 궁금해요?”
그리고 비언어적 소통 수단을 살펴야 한다.
남자가 조언을 청할 때, 조언할 수 있고 그럴 필요가 있다.
단지, 감정적으로 압박하지 말고. 즉, (여성인) 당신이 생각하고, 남자가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
결론 6) 여자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봐요, 당신은 모든 것을 나보다 더 넓게 궁리하잖아요. 이 문제는 그렇게 해 볼만 한 것 같아. 하지만 당신이 직접 생각하세요, 더 잘 판단하니까.” 이건 본질적으로 남자에게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당신이 물론 가장 현명하니까 누가 거기에 어깃장을 놓겠어' 하고 말한 셈이다.
☞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식으로 여자의 사랑이 표현되기를 바라는데, 이때 사랑의 언어가 남녀 간에 서로 다르다. 젊은 여성에게 사랑의 언어는 키스, 남자에겐 섹스.
여성에게 사랑의 언어는 남자를 염려하고 돌봐주는 것인데, 남자에게 사랑의 언어는 다르다.
여자가 식사 챙겨 주고 만족스러운 미소 지으며 다닐 때 남편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니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면, 예쁘게 단장하고 미소 지으며 맞이하고 포옹하고 입맞춤하고 “얼른 식사해요! 시장하지?” 하고 말하라. ("남자의 심장에 이르는 길은 위(밥주머니)를 지난다." - 러시아 속담)
한 여성의 경우.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어요.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알아?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지?
그는 “우리가 섹스 할 때, 또 당신이 밥상 챙겨줄 때, 난 사랑을 느껴” 하고 대답하더군요.
나는 남편 식사 챙기고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 꾸리고 시댁과 남편 친구들 잘 대할 때, 그것이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임을 알아줄 것이라 여겼는데 말이죠."
여자들의 사랑 표현은 사랑하는 이를 아이처럼 대하는 것, 특히 어떤 긴장된 상황을 누그러뜨리고 싶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가장 좋은 태도를 드러내고자 하여, 케이크 조각 담긴 스푼을 남자 입으로 들이밀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 우리 강아지, 이것 좀 먹어 봐요!”
이럴 때 거기에 선뜻 응하는 남자는 많지 않다. 쑥스러워하는 듯도 싶고, 귀찮게 여기는 듯도 싶다. 남성성(만)이 훨씬 더 큰 남자의 경우, 어린애한테 하듯이 스푼을 들이대는 손가락을 깨물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난 어린애가 아니야!'
결론 1) 남자는 자기를 어린애한테 대하듯이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아무리 상냥하게 대한다 해도,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그런 태도와 자세가 여자에겐 본능적인 것이며, 기꺼운 마음에서 내보이는 것인데! *이것이 남녀의 차이.)
☞ 여자한테는 자기 얘기를 남자가 지며리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남자한테는 자기 말을 여자가 경청해 주는 것이 중요해. 한데 거기서 더 나아가, 실제에서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남자는 자기가 무슨 얘기를 했다 하면, 그게 즉각 실행되는 것을 중시한다.
‘즉각’ 실행한다는 것이 여자한테 때론 아주 힘들다는 점을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는 한 가지 일을 그만두고 금방 다른 일로 넘어가기 어려워.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특성을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해, 왜냐면 남자들은 ‘즉각’ 해낼 줄 아니까.
또 부탁한 것을 여자가 금방 해내지 못할 때, 남자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결론2) 여자인 당신이 즉각 할 수 없다면, 함구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라, 언제 할 수 있을지도 말하시라. 남자들한테는 모든 면에서 확실함이 필요해.
☞ 남자는 일을 좋아하고, 여성적인 감성성을 좋아하지 않아.
업무 얘기를 하려 들 때, 남자에겐 여자들의 느낌과 감정이 불필요하다.
남자는 일에 관해 애기하고 싶은데, 여자는 감정을 집어넣고 자신의 태도며 생각이며 느낌을 말하기 시작해. 그러면 남자는 짜증을 낸다. “난 당신과 일을 말하려 하는데, 당신은 기껏 자기감정만 늘어놓는군. 당신하곤 진지하게 얘기를 못 나누겠어.”
결론3) 이런 오해가 덜 생기게 하려면, 남자가 “난 지금 당신과 일에 관해 말하는 거야” 하고 분명히 말하게끔 청하라. 그런 식으로 둘 사이에 암호 같은 것을 만들어 두면, 남자 기분이 쓸데없이 상할 일이 거의 없을 것. 또 여자인 당신에게도 편리하다.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여자들 화법으로 얘기를 풀어갔다 해서 당신 잘못이라고 타박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일상에서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 편향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어떤 연구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평균 하루에 3만 5천 가지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고도 한다. (정말 그렇게나 많이?) 이때 인지 편향적인 사고 방법은 피하는 게 좋겠다.
인지 편향이란 - 판단의 표준이나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사고 패턴.다른 사람과 상황을 종종 비논리적으로 추론하고, 개개인이 각자의 지각과 인식에서 ‘주관적인 현실’을 만들 수 있다.
현대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인지 편향 사례를 앞에 이어서 살펴보자. (10~20가지가 있고, 그 전부가 음미해 볼 만한 것들인데, 하나씩 알아본다. 한꺼번에 많이 다루니까, 소화하기 힘든 듯싶다.)
Bandwagon Effect, 편승 효과는 뭔가를 (많은) 주변 사람들이 믿거나 하기 때문에, 당신도 그것을 믿거나 (따라) 하는 것. 우리말로는 <편승 효과>라고 하나? 남들이 하니까, 좋다고 하니까, 그런가? 하면서 얼결에 덩달아 하는 행위. 요약하자면,
1) 소비자로서 남들에게 질세라 상품을 구입하는 현상
2) 시류를 잘 반영한 듯한 사고방식을 내세우는 구호 등의 효과.
곡예단이나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행렬을 이끄는 악대차가 쿵쿵 요란하게 음악을 울리고 떠들면서 사람들 눈길과 관심을 끌려고 애쓴다.별 생각 없는 어린애들이 그 뒤를 쫓아다니며 재미있어 한다.
악대차에는 무슨 흥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우리네 일상에서, 어떤 인물이, 무슨 상품이, 어떤 영화가, 어떤 음식점이, 어떤 책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그냥 무비판적으로 따라 나서고 합류하는 경향은 없지 않은가? (우리 한국에서 소위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들을 사서 보고 나면, 허무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 데도 이런 현상이 작동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 중 하나라고 친다 해도,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정도가 심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 한국인들을 가리켜 예전에 어떤 미국인 하나가 '들쥐 떼'와 비슷하다고 했던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은 피해야겠다.
"입맛과 취향을 두고는 다투지 않는다"고 한다. 각자 저마다 입맛이, 관점이, 기호가, 안목이 다 다르다. 또 달라야 한다. 다른 가운데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무골호인, 줏대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쉽다.
달리 말해, 독자적인 사고방식과 접근법이 절실하다는 뜻.
우리는 일상에서 자칫 인지 편향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다들 그러고 산다. <편승 효과>라는 인지 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사안을 두고 자신의 동기를 숙고해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 의견을 지나치게 믿고 따르지 않으면서,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여 이것저것 가늠해 본다. 그 정도 수고는 들여야 하지 않을까? 무작정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