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rc="https://cdn.subscribers.com/assets/subscribers.js"> 'Mind Stalking'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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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Stalking'에 해당되는 글 124건

  1. 2019.11.10 16-3.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2. 2019.11.04 16-1.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3. 2019.10.18 14-2. 세계를 실재라 여기는 환상
  4. 2019.10.11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과학 실험 3가지
  5. 2019.10.10 13-1. 자유의지란 환상이야
  6. 2019.10.04 11. 시간의 환상
  7. 2019.09.28 08-2.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만들어 (2)
  8. 2019.09.26 07-4. 실재를 지각하는 추론 수준
  9. 2019.09.24 07-3. 단어와 명칭 수준에서
  10. 2019.09.19 05. 우리네 주관적 실재(세계)의 구조
  11. 2019.09.15 03. 지각의 물리적 현상
  12. 2019.09.15 02. 정보 지각 채널
  13. 2019.09.14 01. 세상의 지각 - 안팎의 세계 2
  14. 2019.07.25 질책과 비난 섞지 않고 자기감정 드러내기 51
  15. 2019.07.25 자신과 타인을 판단과 평가 없이 대하기 49
  16. 2019.07.25 10단계.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47
  17. 2019.07.25 창의적인 마인드 활용 방법 46
  18. 2019.07.25 내면의 목표와 무위(無爲) 기법 44
  19. 2019.07.25 물리적 형태들 세계에서는 행복과 불행이 같은 것 43
  20. 2019.07.24 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42
  21. 2019.07.24 사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승복은... 40
  22. 2019.07.24 참나를 찾아서 받아들이기 39
  23. 2019.07.24 8단계. 승복이라는 의미 37
  24. 2019.07.24 고통의 몸체에 먹이 주지 않기 35
  25. 2019.07.24 고통의 몸체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방법 34
  26. 2019.07.24 7단계. 고통의 몸체 다스리기 32
  27. 2019.07.24 내 생각과 관점을 바꾸기 Reframing 31
  28. 2019.07.23 6단계. 부정적 감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27
  29. 2019.07.23 고요에 귀 기울이기 25
  30. 2019.07.23 5단계. 내면의 목격자가 되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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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4부. 나는 누구인가? > ... )

  16.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3)  

 

(계속)

우리가 우리 몸이 아니고 우리 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런 몇 가지 실험에서 보고 알 수 있다. 

 

첫 번째 실험은 한 사람에게 세 번째 손이 있다는 환상이나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피험자를 탁자 앞에 앉혔다. 이때 그의 두 손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오른손 곁에 그 손과 빛깔이며 형태, 크기가 아주 흡사한 모형 손을 놓았다. 그다음에 실험자가 이 사람 손의 한 부위와 모형 손의 같은 부위를 동시에 브러시로 건드렸다.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사람에게 세 번째 손이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실험

(연구자들은 이 환상을 아주 실제처럼 만들었다. 

실험에 참여한 남자와 여자들 모두 그들의 모형 손에 브러시가 아니라 칼을 가져다 대자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걸 지켜보면서 피험자에게서는 자기 오른손을 점점 더 잘못 인식하게 됐다.

결국엔 두 개의 손 가운데 어떤 것이 자기 것인지 더이상 분간하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자기한테 오른손이 두 개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즉, 자기한테 손이 3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이런 느낌은 뇌가 보는 정보를 느끼는 정보와 어떻게든 일치시키기 위해 뇌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실험은 인체 크기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느낌의 유발과 관련된다.

이를 위해 피험자 머리에 3차원 가상현실 헬멧을 씌워서, 마네킹 맞은편에 둔 카메라가 잡은 것을 피험자가 3차원 형태로 보게 했다. 카메라는 고개 숙여 자기 몸을 볼 때 보이는 마네킹 몸체를 보여주게끔 설치했다. 처음엔 피험자 몸 크기의 마네킹을 취하고 다음엔 더 작은 것, 그다음엔 더 큰 마네킹을 이용했다.

 

여러 크기의 마네킹을 이용하여 사람의 환상을 실험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이 실험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 

피험자의 눈으로 본 상황은 아래 제시했다) 

 

이때 실험자가 피험자와 마네킹의 발에서 같은 부위를 두 개의 막대기로 동시에 건드렸다.

피험자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몸을 보는 듯한 상태에서 카메라가 보여준 것을 관찰했다.

카메라에 나타난 장면은 이것이었다.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중요해

(시각적 트릭과 촉각적 트릭의 결합이 이 실험 성공에 아주 중요해.

 

그 결과 그의 몸이 다른 몸이 된 듯한 느낌이 생겼다.

피험자는 마네킹을 자기 몸처럼 느꼈다.

이 효과는, 위의 그림에서 보인 대로, 실험자가 인체와 마네킹의 같은 부위를 막대기로 건드림으로써 커졌다. 

 

마네킹의 크기가 피험자의 몸 크기와 같을 때, 그 사람에겐 자기가 새로운 몸으로, 마네킹의 몸으로, 옮겨 간 듯한 느낌이 생겼다. 즉, 그는 점차 자신을 이 마네킹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것은 몸이 대체된 환상이 커졌을 때 마네킹에 칼을 찌름으로써 확인됐다. 즉, 피험자가 이제 마네킹을 자기 몸이라 여기기 때문에, 그는 마네킹에 칼이 닿을 때 몸을 떨었다

 

마네킹에 칼자국을 내다

 

인체의 크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마네킹을 이용했을 때, 피험자는 자신을 실제 몸보다 더 크거나 작게 느꼈다.

엄밀히 말해, 어떤 크기의 마네킹을 실험에 이용했느냐에 따라 피험자에겐 실내와 사물들이 평소보다 더 크거나 작게 보였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겪은 것처럼 자기 몸이 커지거나 작아진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여러 크기의 마네킹 4개를 실험에 이용했다.

(실험에 마네킹 4개를 이용했다.) 

 

사람이 자기 몸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 (유체 이탈을 경험한 듯한) 실험도 진행됐다. (자세한 것은 따로 소개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는 것이 뇌의 작업 결과임을 다시금 증명한다.

뇌는 우리가 자기 몸 안에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보다시피, 뇌는 우리가 다른 몸 안에 있다는 느낌뿐 아니라 아예 몸에서 벗어난다는 환상을 만들 수도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몸 안에서 자신을 느낌은 (자아감은) 그런 환상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실재라는 환상에 관한 장에서, 당신 뇌를 다른 몸이 느끼는 것에 연결한 결과 당신이 그 다른 몸으로 옮겨 갔다는 느낌이 생긴 사례를 우리가 살펴봤다. 이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 사례 또한 우리가 몸에 애착하는 것이 뇌가 만든 습관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이 물질적인 몸체로 느끼는 것은 뇌가 만드는 동일시이다. 
그리고… 이 동일시가 환상이나 착각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이 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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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는 누구인가?  > ...)

 

  16. 우리는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나? (1)  

 

 

이제 우리가 자신을 흔히 ‘누구’ 혹은 ‘무엇’으로 여기는지 살펴본다. 

차례로 보자. 

 

나는 누구인가?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기

 

1

 

당신 이름이 ‘철수’라고 한다면, “난 철수야” 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처음에 다른 이름을, 예를 들어 영호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당신은 철수가 아닐 것이다. 이름이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부를 때 쓰는 단어일 뿐이다.

당신을 영호라 부른다 해서 당신의 자기인식이나 자아감이 과연 바뀔까?

아니다.

혹시 당신을 ‘항아리’라 부른다 해도 당신의 자아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있던 그대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음미해 보면, 당신 이름이 곧 당신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당신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에게 말하는 것임을 느낀다. 누군가가 당신을 향하면서 실수로 다른 이름으로 당신을 불렀다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겠지’ 하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하면서 우리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의식에서는 자아감이 떠오르고, 그래서 우린 자신을 종종 이 단어와 혼동한다.

자신을 다른 무엇과 혼동하는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 부른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자기 이름과 동일시된 것이다. 

 

2

 

본연의 자신을 잃는 다음 방법은 살면서 자신을 어떤 역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은 자신을 엄마라고 부른다. “난 엄마야” 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수행하는 엄마 역할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출산 전까지는 엄마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자아감이 출산을 전후하여 달라진 게 하나 없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하건대, 자아감은 우리가 ‘나’라는 단어를 말할 때 드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그 사람이 부모의 역할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다. 그저 출산 후 엄마라는 새 역할이 생겼을 뿐인데, 그녀가 자신을 그 역할과 동일시한 것이다. 

 

전형적인 (사회적) 역할로는 우리네 각자의 직업을 꼽을 수 있다.

만약 의사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난 의사요” 하고 대답할 수 있다. 여기서도 엄마의 역할 경우와 같은 도식이 작용한다. 즉, 그는 그저 의사 역할을 해왔을 뿐이며, 어린 시절엔 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나 유년기에나 그의 자아감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직업에 크게 회의를 느끼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지거나 ‘나에겐 의사 노릇이 어울리지 않나 봐’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자기 직업과의 동일시가 잘못된 것임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패배자야” 혹은 “나는 쿨해” 같은 형태의 동일시도 있다.

자신이 패배자라는 느낌은 사람이 해 온 역할의 하나이다.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할 때, 그 역할과 합쳐지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면서 그것이 그의 거짓된 자아감일 뿐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난 패배자야” 혹은 “난 쿨해”, 둘 다 역할이다. 이건 다 실제 자아감에 해당하지 않는다. 

 

역할의 예를 더 들어보자.

“나는 사업가야”, “난 2급 정비사야”, “난 사장이야”, “난 아들이야”, “난 노숙자야”, “난 제주도민이야” 등이 다 역할의 일종이다. 

한데, 이런 생각이나 진술 역시 본연의 자신을 어떤 역할과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 동일시에서 사람을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예를 들어, ‘쿨한’ 사람에게

“넌 전혀 쿨하지 않으며, 그렇게 말하는 건 네 약점을 숨기기 위한 마스크일 뿐이야”

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전혀 동의하지 않고 그 이미지를 끝까지 지키려 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동일시에서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그가 쿨하다면, 다른 이들이 그를 멋지게 보고 존중한다. 근데,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럼 그는 누구인가? 시시껄렁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누가 존중하겠어?

 

3

 

다음에, 사람들은 의식의 어떤 발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야”,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이야” 등이 그렇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게 마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말한다. 이건 바로 내가 말하는 것이요, 이 생각은 내 생각인 것 같다. 머릿속 목소리와 강한 동일시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종종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걸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즉, 대화하면서 자각 상태를 켜거나 감득력을 가동하기만 하면…

당신이 말하는 생각과 단어들이 있고 또 그걸 다 알아차리는 당신이 있음을 당신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간단한 실험 하나. 

“난 초밥을 좋아해” 하고 속으로 말하거나 중얼거려 보라.

어떤가, 당신한테 생각이 나타나서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이때 생각이 있고, 또 그 생각을 보고 듣는 당신이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초밥을 정말 좋아하며 친구나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이걸 바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유의하라. 

무슨 차이가 있냐고? 

전자의 경우 당신은 자기 생각과 동일시되지 않았고, 후자에서는 동일시됐다. 

 

감정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우리가 화난 상태에 있을 때, 이건 우리가 화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분노의 감정과 합쳐져서 자기 자신을 분노처럼 드러낸다.

그러나 화를 내는 동안 자각 상태를 켜거나 감득력을 가동하기만 하면, 당신이 곧 분노는 (분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을 (분노를) 당신은 당신의 여러 발현 가운데 하나로서 관찰하기만 할 뿐이다. 

 

실제로, 자각 상태를 가동할 때, 당신의 동일시가 그 자각 상태로 옮겨가고, 그래서 생각이나 감정과의 동일시에서 멀어진다.

‘자각 상태를 켠다/가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각이란

당신이 ‘지금 여기’ 있으면서 지금 당신과 당신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 감각 등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각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그냥 망각 (혹은, 무자각) 상태에 있는 듯한 경우가 많다. 감정에 압도될 때 이런 일이 특히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이가 귀한 그릇을 떨어뜨려 깨졌을 때, 당신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아이한테 소리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퍼뜩 깨닫고 정신이 들어서, 당신이 지금 화를 내고 아이한테 소리치고 있으며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이것이 당신을 금방 식게 한다. 

당신 자신의 분노와 (동일시가 아니라!) 분리된 것이다. 

 

4

 

그다음에 자주 나타나는 동일시하기는 자신을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 영혼이야”, “난 우주정신이야”, “난 사람이야”, “난 호모사피엔스야” 등이 그것이다. 

영혼을 보거나 느낀 사람이 있나?

영혼은 무엇인가?

다들 나름대로 해석한다. 어떻든 영혼은 추상적인 이미지다. 혹자가 “나는 영혼이야” 하고 말할 때, 그건 필경 누군가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하고 그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 ‘영혼 soul’이란 개념은 그리스도교에서 우리한테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육신과 영혼으로 나누어 이 개념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다. 지구상에 기독교가 없었다면, 영혼이란 개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결국, 영혼이 무엇인지 알든 모르든 당신의 자아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알고 보니, 혹자가 자기는 영혼이라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을 자기가 이 용어에 집어넣은 어떤 추상적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주정신이나 호모사피엔스하고 동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람이야” 하고 말할 때의 동일시를 규명하기가 좀 어렵다.

우리가 사람인 건 당연해 보여. 왜냐면 당신과 나를 포함해 우리는 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것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자.

‘사람’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회가 우리한테 가르친 추상적 이미지가 아닐까?

그러면, 사회는 ‘사람’이란 단어로 무엇을 의미하나?

대략 다음과 같이 보이고 옷을 입고 어떤 언어로 서로 얘기하는 생물을 사람이라 부른다.

유년기부터 우리는 “그는 사람이야” 하는 말을 들었다. 똑똑한 어른들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나. 생각도 않고 믿어 버렸다. 게다가 알고 보니, 우리 몸이 사람의 몸과 비슷하고 우리가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나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여러 징조를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남자와 여자, 벌거벗은 모습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자아감으로 되돌아가자.

이 느낌에 인간과 관련된 뭔가가 과연 있나?

이 자아감은 ‘사람’이라는 추상적 이미지가 아니야. 이건 구체적이고 생생한 느낌이다. 내 몸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사람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자아감으로서의 ‘나’가 있고, 내가 보고 느끼는 내 몸이 있으니까. 

 

‘사람’이 추상적이며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임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옛날 옛적에 ‘사람’이란 단어를 궁리해 내고, 앞의 그림처럼 보이는 남자와 여자를 전부 이 단어로 불렀다. 

한데 이 단어를 통용시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던가. ‘여자’라 불리는 별개의 종이 있고, ‘남자’라 불리는 별개의 종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것이 진실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왜냐면 여성과 남성의 유기체와 심리 구조는 상당히 다르니까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묶어서 ‘사람’이라 불렀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랬다면 ‘사람’이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종으로서 남자가 있고 또 별개로 여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나는 사람이야” 대신에 “나는 남자야, 여자야” 하고 말할 수 있었겠지. 

 

이건 다 ‘사람’이란 개념이 인위적인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추상적 이미지이며,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일 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우리 각자를 가리키는 데 ‘사람’이란 단어를 쓸 것이다. 편의상 그렇다. 우리 언어에서 이 단어가 확고하게 뿌리 내렸으니까. 

 

(이제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라는 동일시를 분석해 보자.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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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미혹 > ... )

  14-2. 세계를 실재라 여기는 환상  

 

좀 더 연습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착상이나 계획이 있나?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나?

그 착상이나 계획이 당신에겐 존재하지만,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없다. 

당신한테 치통이 있나? (이가 아프다고 상상하자).

대답은 마찬가지야. 치통이 있긴 하지만, 당신한테만 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환상통’이란 용어를 쓴다. 통증의 생리적 원인은 없는데 사람이 통증을 느끼는 것. 그런 통증을 의사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치를 통한 검사와 분석만 믿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느낌을 인정하지만, 진단에 보충 정보로만 인정한다. 

 

우주가 존재하나?

이건 트릭이 있는 질문이다. 

첫째, 우주란 당신이 어떤 의미를 집어넣는 단어이다.

1) 누군가는 우주를 삼라만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 누군가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돼 계속 팽창하는 무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3) 혹자에게 우주는 신이 이레 동안 창조한 피조물이고, 

4) 다른 혹자에게 우주는 그저 시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이렇게 ‘우주’는 당신 마인드에서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존재한다. 당신이 나한테 우주가 신의 피조물이라고 오랜 시간 설득하고 증명할 수 있지만, 나에게 우주에 대한 다른 관념이 있다면 당신은 자기 이미지를 나에게 강요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주된 오류로 다시 돌아왔다. 즉,

1)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이 절대적 의미에서 참이라고 믿음과

2)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

우리네 인간이 범하는 주된 잘못이다. 

 

이제 보충 질문을 하나 다뤄본다. 

당신이 안 보는 물건이나 대상이 있나?

예를 들어, 시내를 걸으면서 저 앞에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이 보인다.

등 뒤에는 무엇이 있나? 

 

시내 거리를 걷는 사람의 뒷모습

이런 경우 사람은 흔히 기억을 얼른 작동하여 자기 뒤에 있는 것을 떠올린다.
우리는 등 뒤에 있는 물체의 그림을 마인드에서 생생하게 그리는데, 이것이
단지 마인드에 있는 그림이요 내면세계의 이미지일 뿐임을 잊는다.
이 내면 이미지들을 우리는 별생각 없이 실재와 (현실과) 혼동한다

 

세상 그림을 기억의 정보로 자동 보충하는 것은 사실 우리 마인드의 놀라운 능력이다. 이 경우, 세상을 우리가 사는 거대한 공간으로 여기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도시에 살며 어떤 거리가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 우리는 주변 세계를 눈앞에 보는 것보다 더 큰 뭔가로 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자기 방에 앉아 있다. 이 방은 당신 아파트 안에 있고, 아파트는 어떤 거리나 구역에 있고, 이 거리는 도시에 있고, 이 도시는 나라 안에 있고, 이 모든 것이 지구상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존재하나?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 실재가 (현실이) 아니라, 우리 마인드의 이미지로만, 당신의 주관적 세계로만 존재한다. 

 

당신이 뒤를 돌아보지 않을 때 “등 뒤에 뭔가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로서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뭔가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있다’ 없다‘ ’존재하다‘라는 단어를 현명하게 쓸 줄 알기에, 저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자. 

 

우리는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를 우리 마인드가 만드는 외부 이미지로 보는 데 익숙해졌다.

예를 들어 자기 손을 본다면, 그건 당신이 보는 특정 물체의 형태로 당신 의식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 손에는 나름의 형태와 색깔이 있다. 이것은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손의 외부 이미지이다. 

만약 손을 등 뒤로 감추면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외부세계의 특정 물체의 외부 이미지로서 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는 것뿐인데, 기억에서 복원한 손 이미지는 이미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마인드가 만든 내부 이미지일 것이다. 당신이 익숙하게 보던 손 자체는 사라질 것이다. 

 

사실, 이건 ‘사람 없는 숲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있을까’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

우린 이 물음을 앞에서 이미 살펴보고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뭔가를 누군가가 관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없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있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이 모든 환상은 이미 여러 철학자와 공상과학소설 작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묘사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호평을 받은 영화 <매트릭스>가 바로 그렇다. 주인공 네오는 자기가 살고 있으며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익숙한 세계가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시뮬레이션임을 알게 된다. 현대의 많은 영성 대가들이 깨달음의 아주 좋은 비유로 영화 <매트릭스>를 권한다. 

이 비유는 훌륭한데, 정확하진 않다.

주인공이 그의 세계가 환상임을 발견하고서 그와 비슷한 다른 세계로 들어서지 않고 ‘무’에 있게 됐다면, 깨달음의 더 정확한 은유였을 것이다.

 

깨달음의 대가들이 이에 관해 그렇게 말들 한다.

우리 세계는 단지 환상이고 꿈일 뿐이다. 이건 다 꿈과 비슷하다고 말들 한다.

꿈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잠을 깰 때, 이것이 단지 관념이었을 뿐임을 발견한다. 우린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잠을 깨고 나서는 꿈에서 일어난 것이 전부 진짜였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꿈속에 있는 동안에는 그게 현실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깨달음 얻은 이들은 깨달음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깨어난 뒤, 그들은 보통 사람이 진짜라고 여기는 것이 전부 환상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걸 마야라고 부른다.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힘이요 환상의 산물인 마야(maya)는 우리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이다. 이건 비현실적임을 우리가 알아봤다. 우리 의식과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를 위해 현실의 모델을 만드는 마인드의 작업이 전부 마야이다. 마야는 진짜 실재를 우리한테 숨긴다. 오로지 깨어난 이들과 마야의 최면에서 빠져나온 이들만이 진짜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걸 알 수 없어, 왜냐하면 마야의 경계를 넘어선 상태를 아무리 상상해도, 이건 또 다른 내면 이미지일 뿐일 테니까, 즉 마야의 연속일 테니까.

 

우리 주변 익숙한 세계의 환상적 속성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은유는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힌두교 전통에서 지상에 나타난 신의 화신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캡슐에 집어넣는데, 이 캡슐이 그의 인식을 ‘아바타’라 불리는 어떤 생명체의 인식과 연결한다. 이 ‘아바타’ 생명체는 행성에 서식하는 나비(na’vi)라는 생명체들을 인공적으로 키운 몸체이다. 

주인공이 아바타에 연결되면, 그는 이 아바타라는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그가 아바타 속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인간의 의식이 이 생명체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아바타 몸체 안에 있는 동안 주인공은 그것이 모조품에 불과하며 자신은 그것에 센서가 연결돼 지금 캡슐에 누워 있는 인간임을 점차 잊는다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32) 미(美)는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아름다움은 당신 현존의 고요 속에서 생겨나   - 금방 당신이 설명한 것을 난 자연에 둘러싸여 혼자 있을 때 가끔 순간적으로나마 경험한다. = 바로 그거야. (일본 선의 영향을 받은 서구에서) 선

mirchimin.tistory.com

 

고대 힌두교 전통에서는 인간이 다 하나님이라고, 인간의 몸체를 통해 이 세상에서 놀기로 작정한 하나님이라고 여겼다. 이 놀이를 전통 힌두교에서는 <릴라>라고 부른다.

우리 몸은… 유일한 의식(consciousness)인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는 데 거치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에게, 유일한 의식에게, 아바타 같은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서 한 토막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은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기를 거의 그만두고, 자기가 들어앉은 몸체인 나비라는 존재로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도 우리의 몸이요 아바타에 들어앉은 뒤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잊었다.
우리가 바로 유일한 의식이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이 인체는 주변 세계에 대해 아주 강하고 진짜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이 아바타 몸이 없는 게 어떤 것인지를 우린 잊어 왔다. 

깨달음이란…
‘나는 실제로, 정말로, 진짜로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건 자신의 ‘아바타’와 잠시 떨어져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 세상에 환상적 속성이 강함에 대한 마지막 은유는… 3D 안경, 터치의 환상을 만드는 특수 장갑과 슈트, 컴퓨터가 만든 가상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다른 수단 등 특수 기기의 도움으로 현대 컴퓨터 기술이 만든 가상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이 세상에서, 그 안에서 오랫동안 놀면서 우리가 그저 놀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그리고 놀이에 완전히 빠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게이머라는 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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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하는, 

  과학 실험 세 가지  

 

20세기에 시행된 신경생물학 실험 몇 가지가

우리의 ‘나, 에고, 자아’와 관련돼 가장 미덥고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진실을 깨뜨린다. 

 

1. 자유의지란 없다

 

어떤 행동을 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훨씬 전에 뇌는 그 행동을 준비한다.
facet.pw

 

자유의지 혹은 내적 자유가 과연 존재하나?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의 의식이 물리적 과정에 자발적으로 개입해 그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 과연 있을까?

이 물음에 철학은 상이한 대답을 몇몇 내놓지만, 과학은 매우 명확한 관점을 견지한다.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베트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의 모든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생겨난다.
의식은 이미 준비된 결과를 처리하는 것이다.
의식은
 그 결과와 상관없는 과정을 비추는 등불일 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순전히 환상이고 착각이다. 

 

그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그런 견해를 확인했다. 사람들 뇌의 여러 부위를 전극으로 자극했다. 자극에 대해 뇌가 반응하고 자극을 뇌가 인식하는 데 0.5초의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것이 무조건반사의 작동을 말해 주니, 우리는 위험과 통증을 인식하기 전에 뜨거운 난로에서 손을 뗀다. 

 

하지만, 리베트의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이 작동 메커니즘은 무조건적 반사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느낌을 언제나 좀 늦게 인식한다.

뇌가 먼저 보고, 그다음에야 그 본 것을 우리가 인식하고, 뇌가 생각하면 얼마 지나서야 우리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0.5초 뒤진 과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리베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3년 실험을 하나 더 했는데,

이것은 뇌의 활동과 우리의 갈망, 둘 중에 무엇이 더 우선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본능은 ‘우리한테 의지가 있어서, 이 의지가 뇌에게 어떻게 움직이라고 지시하는 거야’ 하고 속삭인다. 

 

리베트는 사람들이 정보에 입각하여 신중하고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동안 뇌 활동을 측정해 봤다. 피험자들은 바늘이 돌아가는 눈금판을 보면서 어떤 순간에든 버튼을 눌러 과정을 정지시켜야 했다. 그다음에 그들은 키를 누르고 싶은 욕구를 처음 인지한 시간을 말해야 했다. 

 

초시계

 

실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버튼을 누르기로 한 결정을 보내는 뇌의 전기 신호가 사람이 결정하기 350 밀리초 전에,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500 밀리초 전에 나타난 것이다. (*millisecond, 1/1000 초. msec)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훨씬 전에 뇌는 그 행동을 준비한다. 

 

바깥에서 관찰하는 실험자는 아직 뭔가를 선택하지 않은 피험자가 무엇을 선택할지 (당사자에 앞서서) 예측할 수 있다. 최근에 시행된 비슷한 실험들에서는, 사람의 의지적 결정을 그 사람이 그 결정을 내리기 6초 전에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일정한 궤적을 따라 구르는 당구공을 생각해 보라. 공의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을 자동으로 읽는 고수는 몇 초 뒤에 공이 어디에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리베트의 실험 이후, 신경과학에서는 우리가 그런 공의 처지가 됐다. 

사람의 자유의지는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과정의 결과이며,
따라서 자유의지란 허상이고 착각이다. 

 

2. 우리의 <나, 자아, 에고>는 하나가 아니다 

 

의식적인 '자아' 곁에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다
betteryears.com

 

신경과학에는 뇌의 어떤 부위의 기능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연구하는 부위를 제거하거나 안락사시킨 뒤, 그 사람의 정신과 지적 능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는 것이다. 

 

우리 뇌는 좌우 두 개의 반구로 구성되며, 이 둘을 뇌량이 연결한다.

신경섬유 다발인 뇌량의 중요성이 과학에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신경과학자 로저 스페리가 1960년 간질 환자의 뇌량 섬유를 절단했다. 그러자 간질 증세가 도지지 않았으며, 그 어떤 부작용도 처음에는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 그 사람의 행동과 인지 능력에서 큰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뇌의 좌우 반구가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에 적은 글자를 그의 코 오른쪽에서 보여주면 그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좌반구가 이 정보를 처리하니까 그렇다. 

 

그러나 글자가 왼쪽에서 나타나자 피험자는 그걸 읽지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그릴 수는 있었다. 이때 환자는 아무것도 못 봤노라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뭔가를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묘사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뇌량이 절단된 (callosotomy) 환자들을 관찰하는 동안 훨씬 더 놀라운 결과가 발견됐다.

 

예를 들면, 좌우 반구 각각이 때때로 다른 쪽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체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 환자의 한 손은 넥타이를 매려 하는데 다른 손은 그걸 풀려고 하더라.

하지만 우세한 위치를 점한 것은 좌반구였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는 언어중추가 바로 좌반구에 있으며, 우리의 의식과 의지에는 언어적 본질이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우리의 의식적인 ‘나’ 곁에
자기만의 욕망을 지니지만 의지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웃이 살고 있다. 

 

뇌량이 절단된 사람에게 ‘모래’와 ‘시계’라는 두 단어를 보여주자, 그는 모래시계를 그렸다.

그의 좌뇌가 우측에서 들어오는 신호 즉 ‘모래’라는 단어를 처리했다.

‘모래’라는 단어만 보았을 터인데 어떻게 모래시계를 그렸느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터무니없이 설명했다. 

우리 행동의 진짜 이유는 종종 우리한테서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행동한 뒤 우리가 세운 정당성을 이유라고 부른다.
그런 식으로,
원인이 결과보다 먼저 있는 게 아니라, 원인을 이루는 것이 결과가 되고 있다. 

 

3. 다른 사람들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날이 온다
vladtime.ru

 

우리는 다 우리의 의식이 (마인드가) 사적인 영역이어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다고 은근히 확신하고 있다.

나의 생각과 감정, 인식이 내 의식 안에 있는 만큼, 그건 다 가장 보호받는 재산이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경과학자 Yang Deng이 1999년 한 실험을 통해 뇌의 작업이 기본적으로 컴퓨터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뇌의 암호를 알면 뇌에 만드는 정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는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고양이를 탁자에 고정시키고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에 특수 전극들을 삽입했다. 고양이한테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자, 동시에 전극들이 뉴런의 활동을 기록했다.

이 정보를 컴퓨터로 전송하여, 컴퓨터에서 전기 자극을 실제 이미지로 바꾸었다.

고양이가 본 것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다. 

 

이미지 변환 메커니즘의 특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전극들은 고양이 앞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아니다. 양 덩은 뇌가 하는 것을 기술력으로 복제할 수 있었으니, 전기 자극을 시각 이미지로 변환한 것이다. 

실험은 시각 채널에만 적용됐지만, 뇌의 작동 원리를 드러내면서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보가 뇌에서 퍼져 나가는 방식을 알고 그걸 읽을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인간 뇌의 상태를 완전히 읽을 수 있는 컴퓨터를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런 컴퓨터가 언제 만들어질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기억, 특성, 전반적인 인격 등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접할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 점이다.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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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 3부. 마인드의 환상 > ... )

  13. 자유의지라는 환상 (1)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이건 주변 세계와 자기 삶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한 인간으로서 나는 이집트에 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원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원하면 손을 올렸다가 내릴 수 있다.

입을 놀려 뭔가를 말하거나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내가 원하거나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다.

내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일을 하러 가든지 않든지 결정하는 사람은 나다.

나는 세상에 영향을 미쳐서 내 계획과 목적이 실현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행동의 주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이고 자기 삶의 어떤 측면을 웬만큼 통제한다는 내적 느낌을 자유의지라 부른다.

한데, 자유의지는 환상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자유의지 같은 건 전혀 없으며, 우리는 다 완전히 프로그램된 존재라는 것이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이 명제에 내적으로 저항이나 거부가 생기나? 

 

사실, 자유의지가 환상임을 아는 것은 해로울 수 있다.

그런 지식에 당신 마인드는 저항한다. 당신 마인드는 당신의 생존을 염려하는데, 당신이 자유의지의 느낌을 지니는 게 마인드한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명제를 사람들은 종종 잘못 이해한다.

그들은… 만약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한낱 오토마톤에 불과하다면, 뭔가를 바꾸고 뭔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왜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 삶에 어떻게든 영향 미치기를 그만두고 상황에 눌려서 소극적이며 우울한 사람이 된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입증을 접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그냥 지금 가지고 있는 소신을 유지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이 환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걸 깨닫는다고 해서 당신이 자기 삶에 영향 미치려는 행위가 방해받는 일은 결코 없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때, 당신은 자기 삶을 이전처럼 꾸리면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 인생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보다 더 큰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최고의 힘이 당신을 인도한다는 느낌이 생길 수 있고, 다행히도, 최고의 힘이 당신을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곳으로 이끌 것이다. 당신의 갈망이 모두 실현된다. 하지만 그 갈망은 다 억지로 꾸며낸 게 아니라 진실한 것이야. 

 

다시 말하건대, 당신이 자유의지는 환상이라는 명제에 단연코 반대하여 이 명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해도, 그건 당신 심리가 아주 건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무시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자유의지에 관한 이번 장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지식을 접할 준비가 돼 있다면, 환영한다

 

자유의지 탐구  

 

간단한 실험 하나. 이것만으로도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당신 선택에 따라 어떤 행동이든 해 보라고 청한다. 어떤 것이든 좋다. 무엇이든 당신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당신이 선택한 어떤 행동을) 했나? 

그러면 이 물음에 대답해 보라. 

“당신은 왜 하필 그 행동을 했나?” 

만약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에”라고 말한다면, 왜 다른 행동이 아니라 하필 그 행동을 하기로 한 것인지 말해 달라. 예를 들어, 혀를 쏙 빼물기로 마음먹었다면, 왜 하필 그렇게 한 것인가? 왜 오른손 검지를 흔들지는 않나? 

한데, 당신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해도, 이 또한 당신의 결정이다. 

 

하지만, 아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코로 어깻죽지를 건드리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난 장담할 수 있다. 그건 생리적으로 그냥 안 되는 것이며, 당신은 그렇게 해 본 적이 전혀 없다. 오케이.

알고 보니, 당신이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여기는 행동이 그다지 자유로운 게 아니더라.

당신의 자유로운(?) 행동 선택은 당신의 생리적 능력이나 다른 능력에 의해 제한된다. 

 

좋아, 당신은 이렇게 말할 거야.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 범주 안에서만 그런 것일 뿐이지.

맞는 말씀. 근데 서둘러 단언하자면, 그 범주는 당신 신체의 생리적인 한계에 의해서만 제한된 게 아니다.

그건 당신의 목록에 있는 행동 범주에 의해서도 제한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귀를 움직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할 줄 안다. 원하면 누구나 귀 움직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여태껏 귀를 움직여 본 적이 없다면, 이번에도 그건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른바 ‘가랑이 찢기’를 한 번도 안 해 봤다면, 그렇게 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됐어. 계속하자.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이제 당신에겐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를 추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달리 말해, 자기 생각을 쫓아가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같은 실험을 다시 해 보자. 어떤 행동이든 하되, 이번에는 당신의 생각을 추적해 보자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마인드에서 어떻게 결정하나? 

 

두 가지 버전이 가능하다.

첫째, 당신은 무엇을 할지 별생각도 없이 자동으로 행동했다. 이 경우, 행동을 취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마인드이며, 마인드는 당신이 언젠가 익힌 행동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를 무작위로 실행한 것임을 알아둬야 한다. 우리는 행동의 자동성이란 주제를 이미 앞에서 살펴봤다.

평범한 일상사에서 자기 관찰 실습을 당신이 충실하게 수행했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자동으로 행동하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두 번째 버전에서는 어떤 행동을 할지 당신이 의식적으로 숙고했다. 어쩌면, 당신은 이 행동을 할까, 저 행동을 할까, 아니면 자신과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할까, 마인드에서 견주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동안, 당신 마인드에서는 가능한 여러 행동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안 그런가?

대체로 당신은 뭔가를 실행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선택하기 전에, 최선의 버전을 택할 요량으로 여러 행동 버전을 마인드에서 빙빙 돌리지 않는가? 이 경우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머릿속에서 여러 버전을 떠올리고 개중 하나를 택한다.

혹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한 뒤, 그 선택한 행동을 실행한다.

그리하여, 선택이 마인드 수준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여러 버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좋아. 맞는 얘기다. 

 

선택의 자유란 환상일 뿐이야. 왼쪽, 오른쪽, 도살장

 

이제 다음 질문.

당신이 머릿속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당신에게 가능한 버전들이 몽땅 머릿속에서 맴돈 것은 결코 아니었다.

분명 몇 가지 버전만 살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몇몇 버전을 가능한 것으로 살펴본 건가? 

모든 가능한 버전 가운데서 누가 혹은 무엇이 왜 하필 그 몇 가지를 선택한 것인가? 

수많은 것 가운데서 그 몇몇 버전을 당신이 과연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일까?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한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행동 버전은 무궁무진하다. 필경 수천 가지는 될 것이다. 어떤 몇 가지를 택하기 위해 그 모든 걸 다 머릿속에 동시에 담을 수는 없다.

사실은 몇몇 버전이 당신 마인드에 의해 (혹은, 뇌나 잠재의식에 의해) 선택돼 당신에게 제시됐으며 (즉, 당신 내부화면에 나타났으며), 마인드가 보여준 것 중에서 뭔가를 선택할 기회가 당신에게 부여된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아, 그렇다고 쳐. 하지만 내 뇌가 검토하라고 제공한 몇몇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사람은 바로 나잖아.”

진실의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은 다른 것들은 다 놔누고 왜 하필 그 버전을 택한 건가? 예를 들어, 당신 마인드가 버전을 몇 가지 제시했다고 치자. 오른손을 들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눈 깜빡이기. 이런 게 당신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마인드가 다른 몇 가지를 또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왼발을 당기기, 혹은 그냥 일어서기. 

 

어떤 경우에든 버전은 몇몇으로 제한돼 당신 앞에 있고 당신이 고른다. 예를 들어, 눈 깜빡이기를 골랐다. 눈 깜빡이기를 어떻게 선택한 것인가? 

그게 당신의 선택이라면, 어떻게 그걸 선택하게 됐는지 말해 달라. 

만약 마인드에서 여러 버전을 훑어보다가 눈 깜빡임을 선택했다고 말한다면,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지 말해 보라. 

선택하기 위해 여러 버전을 훑어본다면, 가장 적합한 버전을 찾을 것이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어디서 나왔나? 

예를 들어, 가장 터무니없는 행동이나 가장 예상치 못한, 혹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행동을 택할 수 있었다.

이 기준을 당신은 의식적으로 선택했나?

혹은 이 기준을 당신 마인드가 당신의 어떤 기대에 근거하여 또 당신에게 부여했나?

그런데 기대 또한 당신이 선택했을 리는 거의 없다.

선택에 관한 당신 기대는 세상을 마인드로 인식하는 습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선택할 때 당신에겐 기준이 전혀 없어서 아무렇게나 했다고 치자. 그때 선택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마인드가 한 것이다. 그런 경우 당신은 마인드에게 선택을 위임한 것이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아무리 파고들어 봤자, 당신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는 것은 전부 ‘당신 선택에 어떤 작용을 가하는’ 마인드의 작업이다

당신이 선택을 어떻게 하는지, 당신이 선택하기는 하는 것인지,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 문제를 스스로 탐구해 보는 게 좋다.

당신의 경우 선택 과정이 어떻게 펼쳐지나?

선택 과정에서 당신이 행동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보라. 

또,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실습으로 낮에 자신을 관찰하면서,
어떤 선택과 어떤 행동이 당신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을 두루 기록해 보라.
그리고 그것이 정말 당신의 선택이고 당신의 행동이었는지 추적해 보라. 

 

당신이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나는 증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흥미가 있어서 탐구하려 한다면 스스로 하는 게 더 좋으며, 그때 그건 당신의 결론이 될 것이다. 당신한테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는지 스스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며 당신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겠지. 그러면 그건 당신의 탐구에 근거하여 당신이 내린 결론이니까, 아주 좋을 것이다. 

 

이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이 자유행동으로 무엇을 택하든 간에, 그 선택에는 어떤 조건이 붙었다. 내가 부여한 과제들이 조건이 됐다. 그 과제를 내가 주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과제가 생겼고, 그것을 수행했다. 내가 당신 행동을 주도한 셈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실험하기로 했을 때 그게 어떻게 자유로운 선택인가?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단일한 원인의 환상’이라는 주제의 연장이다.

이 각도에서 자유의지 문제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당신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거나 사회관계망에서 통신한다. 이때 당신의 몸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게 한다. 즉, 허기가 생긴다. 그런데 인터넷 활동에 깊이 빠져 있다면, 허기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자신의 의사를 계속 주장하고, 허기가 커진다. 비로소 당신은 허기를 느껴서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기를 하려고 SNS 친구와 대화를 멈출 수 있을지 본다. 대화와 요기의 우선순위를 마음속으로 가늠하고,

1) 요기는 몇 분 뒤에 해도 되겠다고 결정하거나, 혹은 거꾸로

2) 잠깐 대화를 끊고 요기해야겠다고 친구에게 말한다. 혹은

3) 친구와 대화하면서 동시에 배를 살짝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버전이 세 가지 있다. 당신에겐 분명 어떤 선택 기준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마인드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가늠하여 더 중요하다 싶은 쪽을 택한다. 예를 들어, 충분히 생각한 뒤 (가늠한 뒤) 제대로 식사하러 가기로 했다. 이것이 책상 앞에서 하는 대화나 음식보다 더 중요해 보였어.

이게 당신의 선택인가? 이 결정과 행동이 당신의 것인가? 

 

어디 한번 살펴보자.

1) 몸이 당신에게 허기를 채워야 한다고 상기시키지 않았다면, 당신은 먹으러 갈지 말지 결정하려고 생각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즉, 허기진 느낌 때문에 요기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생겼다. 

2)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먹기, 계속 소통하기, 컴퓨터 앞에서 요기하기 등을) 당신이 아니라 당신 마인드가 내놓았다. 이 버전들이 그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당신에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배고파서 약을 마시는 선택은 없을 것이다그런 해결책들로 만족할 수 없다면, 더 적합한 버전들을 마인드에서 찾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당신의 경험을 근거로 한 다른 버전들을 마인드가 당신에게 건넬 것이다. 

 

여러 버전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기준을 당신은 역시 택하지 않는다.

이건 종종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흔히 그 기준은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이득이다. 모든 버전의 저울질 과정은 당신 마인드에서 자동으로 일어난다. 당신은 이것을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는다. 만약 선택 과정이 길어지면 물론 의식적으로 가늠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자, 제대로 식사하러 가기로 결정된다. 이것을 당신이 결정한 듯이 보일 텐데, 이 결정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것을 다 살펴보면, 결정은 자동으로 이뤄졌으며 당신 마인드의 작업 결과임이 드러난다. 스스로 확인해 보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하는, 이른바 의식적인 결정이라는 예를 들어보자. 이를테면, 더운 여름날 당신이 거리를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딱히 어디로 가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저녁을 기분 좋게 보내기만 하면 좋다. 

그렇게 걷다가 한 여자애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가오는 것을 본다.

당신 마인드에서 이런 이미지들이 자동으로 흘러간다. 

- 저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일까. 

- 지금 정말 덥군. 

- 입에 들러붙는 맛을 즐기면서 더위를 식히고 싶은 욕구가 생기네. 

- ‘나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든다. 

- 아이스크림 먹을 의향이 나타난다. 

-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는 곳을 마인드에서 생각한다. 

- (거리, 가격, 그늘 등) 가장 유리한 기준으로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내 거기로 간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난다. 이 여러 행위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당신은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확인해 보라. 내 말이 틀렸나? 

( 벤자민 리베트의 실험... <계속>)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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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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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인드의 환상  

 


  11. 시간의 환상  

 

사람의 주관적 실재 (현실) 형성에 언어와 단어들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앞에서 다뤘다. 

필요하면, 단어들에 관한 장현실 지각 수준에 관한 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거기서는,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의 경험 구조를 형성하는 키워드들이 있음을 알아봤다. 

 

the illusion of time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시간, 미래, 과거, 현재’ 같이 시간과 관련된 단어이다.

이 단어들에서 시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나온다. 단어에 관한 장에서 그런 단어들을 쓰지 않는 부족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사실상 현재에서만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이며 주변 세계와 아주 잘 공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산물이란 말인가?
우리는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세계관의 정확성 여부는 생각도 않는다. 

 

시간의 몇몇 환상을 살펴보자. 

과거란 무엇인가? 

먼저, 모든 단어에는 우리가 거기에 집어넣는 어떤 뜻과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당신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뜻을 부여하나?

이 단어와 관련하여 당신 내면세계에서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나? 

 

대체로 ‘과거’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러 환경에 있던 유년기의 자신을 본다. 자기 인생의 여러 시기에 일어나서 기억되는 일들을 본다.

또 ‘과거’라는 단어를 접할 때 손을 흔들며 “이건 지나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마인드에서는 (내부 화면에서는) 자신의 등 뒤에서 구불구불 뒤쪽으로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기도 한다. 

당신 경우엔 어떤가?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반응으로 당신의 정보 채널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건 다 내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일 것이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 

 

당신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과거를 지금 나한테 보여줄 수 있나? 

과거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걸 나한테 보여주시라. 

어떤 것을 보여주든, 그건 다 바로 목전의 현실에 있는 무엇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인드의 내부 화면에서 당신이 지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가 분명 있다고 사람들은 강하게 느낀다. 고고학적 발견이나 고문서, 아니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기억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엊저녁에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난 기억해. 아침에 샤워하고 이를 닦은 것도 기억나. 이건 다 있었던 일이야, 비록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열한 것은 전부 당신의 기억이나 회상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데, 기억이나 회상은 당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 있는 이미지이다. 
즉, 과거에 관한 그 이미지들은 전부 당신 의식에서 사실상 바로 지금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서 나오는 게 전혀 아니다.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도 있겠다.

“현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속이야, 내가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예를 들어, 1분 전에 내가 탁자에 컵을 놓았기에 컵이 지금 거기 있는 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1분 전에 (과거에) 컵을 놓았을 때, 실제로는 그 행위가 현재에 일어난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지금 그것을 과거처럼 회상하는 것일 뿐.

어제나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당신은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것이다. 기억에서 나오는 정보는 전부 지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하는 과거란 전부 바로 지금 떠오르는 회상이고 기억이다.

당신에게 기억이 없다면, 당신의 주관적 세계에 당신의 과거가 있을까? 

 

이제 ‘미래’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래는 과거에 비하면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이 기대하는 무엇이나 볼 것이라 예상하는 뭔가가 어떻게 일어날지 상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어떤 행동에 영감을 주는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할 때 종종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저녁 식사 후 어디로 산책할까 생각하는 것일 수 있고, 혹은 올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자기 마인드에서, 자신의 내부 정보 채널에서, 사건의 예견되는 발전이나 미래에 기대하는 것을 상상하며 어떤 장면을 그릴 것이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 그걸 당신은 지금, 현재에서, 한다. 

 

학수고대하던 미래가 도래하는 순간, 그 미래에 있는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상상하던 대로 여름에 정말 바다에 간다 해도, 거기서도 당신은 역시 현재에 있으리라는 점이다.

결국, 미래란…

우리 마인드에서 지금은 없지만 곧 나타날 수 있는 뭔가에 대한 상상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지금, 현재에, 나타날 것이다. 

 

미래는 환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어떻게?

예를 들어, 미래를 지금 즉시 보여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은 또 현재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는 당면한 현실에 있지 않으며, 우리 상상에 속한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인드에 있는 여느 추상적인 이미지처럼 환상이며,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편리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 당시)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기억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현재에서 우리한테 일어날 일을 (지금의) 현재에서 상상한다. 
과거와 미래는 기억과 상상의 작업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상상의 장난임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들이 있었고 미래가 어떤 형태로든 도래하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살면서 항상 본다.

이것을… 시간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하나? 

 

살바도르 달리&#44; 시간의 지속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영속>, 1931.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는 객관적 실재라는 게 있다. 그리고 우리 마인드는 거기서 정보를 얻어 우리를 위해 세상 모델을 만든다. 즉, 우리의 주관적인 현실을 (실재를, 세계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정들의 모델이며, 이 과정은 변화와 관련된다.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변화와 관련된 객관적 과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관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시간이란 개념을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심리적 시간이다.

이건 당연히 물리적 시간을 제법 잘 묘사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미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로켓을 지구에서 발사한다면, 이 로켓에서 흐르는 시간은 지구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로켓의 시계에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의 시계로는 1백 년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보면 손자들이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한테 경악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마인드가 우리에게 시간의 모델만 만들어 낼 뿐이지 물리적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없고,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들에서 물리적 시간의 변화가 하도 작은 까닭에 우리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뿐이다.

'우리한테 이건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으며, 시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흐르는 것 같아.'

이게 우리의 주관적인 시간 감각이다. 

 

만약 과거와 미래가 우리 마인드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할 수 있나?

오직 한 가지만 가능하니,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바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다.

외부세계도 내면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변화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냥 관찰하라. 항상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이제 직접 관찰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실재, 실체)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1분 동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생각이며 느낌 등 내면세계의 일도 덩달아 관찰할 수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의 뭔가를 회상한다 해도, 그것 역시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일련의 생각과 이미지로서 바로 지금 발견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의식에 있는 이미지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 이미지들에 당신이 얼마나 자주 빠져드는지 추적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나.

그것을 당신은 지금 회상하고, 이 회상이 지금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얼마나 자주 미래로 들어서는지 관찰해 보라. 더 정확히 말해, 당신 마인드에서 기대와 계획을 얼마나 자주 품고 세우는가? 

있을 수 있는 뭔가에 대해 얼마나 자주 불안해하는가. 이 불안은 당신이 바로 지금 자기 마인드에서 그리는 미래의 무서운 이미지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건 단지 내 마인드의 이미지일 뿐이야’ 하고 자신을 달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주의와 눈길과 관심을 지금 실제로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로, 지금 순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목전의 현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영적 대가들이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여기’만 있다. 나머지는 죄다 마인드의 한갓된 장난이며,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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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 

  08-2.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2) 

 

지금까지 다룬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하자. 

당신이 바로 지금 주변에서 관찰하는 목전의 현실은 (실재는) 세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마인드가 작업한 결과이다. 

마인드는 여러 대상과 물체를 우리 의식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낸다. 

 

마인드가 실재의 (현실의) 모델을 만들다

 

목전의 현실 수준에서 세상의 모델을 동물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이 훨씬 앞섰다. 인간에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언어가 있다. 앞에서 알아봤듯이, 언어는 단어들이며 단어 결합 형태로 세계를 반영하는 도구이다. 언어 덕분에 세상의 모델을 만드는 두 번째 수준이 나타났으니, 바로 추상적 실재(현실)이다.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전부 마인드가 추상화 수준에서 만들어 낸 세상 모델이다

 

멀리 가지 말고,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다. 이 나라에 대통령이 있음을 안다. 우리가 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에 살고 있음을 당신은 안다. (이걸 모른다면, 당신은 이 과정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어린애이거나, 혹은 당신이 사는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리라.) 

당신이 사는 도시나 마을에 어떤 길들이 있나? 

그 길들이 서로 어떻게 배치돼 있나? 

당신 나라의 통화는 무엇인가? 

당신 은행 계좌에 지금 돈이 얼마나 있나? 

당신의 성별은 무엇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당신 부모의 이름은 무엇인가? 

소리란 무엇인가? 

색깔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사물은 무엇으로 이뤄지나? 

세상에는 어떤 종교들이 있나? 이에 관해 당신 생각은? 

당신이 알고 있는 동물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좋아, 이런 것이 전부 당신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임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예가 될 것이다. 이건 다 당신이 마인드에서 세상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건 다 당신이 사는 세상의 모델일 뿐이다. 이런 걸 다 당신이 함께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쳤다. 이것이 당신네 문화유산이다. 

 

같은 질문들을 문명과 동떨어진 아프리카 툼바윰바 섬 원주민에게 물어보라. 그의 답변에 당신은 놀랄 것이다. 그를 무지하다고 여기나? 그의 관점에서는 당신이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니, 굳이 툼바윰바 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라. 당신의 대답을 종이에 적으라. 다음에 같은 질문을 이웃에게 해 보라. 그의 대답을 당신 것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이웃이 생각하는 '사랑'은 당신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의 세상 모델은 당신 것과 다르다. 

 

이제 보충 질문 하나. 서로 생각이나 관점이 다른, 당신과 이웃 중에 누가 옳은가? 만약 당신이 옳고 이웃은 뭔가를 잘 모른다고 말한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내가 전하려는 주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이런 물음들을 제시한다. 여기에 답할 때, 당신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부 세상 모델일 뿐이지 세상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질문은 이렇다. 

 

급진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누가 옳은 건가?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나? 

종합부동산세를 올려야 하나? 

신은 (하나님은) 있을까? 

국가의 질서를 잡기 위해 무기를 사용해도 되는가? 

마약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사안이라고 치자. 한데 그 개혁을 도덕성에 의혹이 많은 사람이 꼭 맡아야 하는 걸까? 

 

도발적인 질문들을 일부러 던졌다. 저 몇 가지 물음에 대답이 여러 가지 나올 수 있다. 저 질문들은, “지금 몇 시야?” 하는 물음과 달리, 사회 분열과 갈등과 전쟁을 일으킨다. 저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세상이 자기가 상상하는 것과 같다는 믿음이 사람들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 모델은 세상 자체가 아님을 모를 때 아픔과 고통이 아주 많이 생긴다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전부 현실의 모델일 뿐임을 알아야만 그 모델에서 좀 떨어지고, 이 모델이 당신 의식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관찰의 실천이요, 존재와 의식성의 실행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영적 가르침이 말하는 수행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좀 더 뒤에서 이야기하자. 그 이전에 우리는 당신의 본성에 빛을 밝힐 몇 가지 주안점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특정한 사람의 세상 모델은 무엇에 좌우되나? 이 물음에 답하다 보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의견과 입장에 더 충실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당신의 신경을 다치지 않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더 동정적이며 관대한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세상 모델은 무엇에 좌우되나?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있다. 

 

1) 먼저, 어린애는 세상을 전혀 모른 채 세상에 나온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린애가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다 주변 환경에서 끌어낸 것이다. 유년기 아이의 환경은 주로 부모와 또 아이가 성장하는 문화이다. 이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부모가 신앙인이라면, 아이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한 그런 관점을, 즉, 종교적 관점을 받아들이리라. 나중에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서, 아이는 종교에 관해 여러 입장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신을 믿고 누군가는 믿지 않더라. 만약 아이에게 비판적인 마인드가 (혹은, 문제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종교 성향을 숙고하고 이 문제에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람들이다. 부모는 아이한테 행동하는 법과 옳고 그름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부모의 행동 모델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아이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과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가르친다. 

이것이 아이의 잠재의식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향후 아이의 세상 그림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세상 모델이 부분적으로 부모에 의해 우리한테 주입된다

 

2) 아이가 태어난 뒤 학교에 다니면, 거기서 과학을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많이 배운다. 사람들과 접하면서 아이는 그들의 행동 양식과 언어, 자기가 속한 사회의 방침 등을 이어받는다. 이런 측면도 쉽게 이해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게 흉이 아니다. 일본인들에게 이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주로 불교와 힌두교가, 중동에서는 이슬람이, 유럽과 미국에는 기독교가 널리 퍼져 있다.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종교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떤 종교가 진짜인지를 두고 다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더 나쁜 것은, 자기네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죽이는 짓이다. 

알고 보니, 세상 모델의 일부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문화에 좌우되더라. 또, 같은 가정과 같은 문화에서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다른 세상 모델을 갖고 있다. 

 

3) 어떤 사람이 세상의 모델을 만드는 데 또 무엇이 영향을 미치나? 다음 요소는 사람의 타고난 특성이다. 누군가는 분석적 사고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들에게 세상은 커다란 예측 가능하고 분석되는 기계이다. 그들은 존재의 영적 분야에 무심할 수 있고, 따라서 성직자들을 부정하며 사기꾼이라 부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미묘한 영적 감각에 상당히 민감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특성을 키울 것이며, 따라서 세상을 물질보다는 정신의 발현으로 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이들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사람이 된다. 또 다른 3의 그룹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에 재능을 지닌다. 그들에게 세상은 물질적이거나 영적인 것보다 사람들 사회이다. 

 

4) 끝으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의 경험이다. 바로 개인 경험이 그 사람의 마인드가 현실의 모델을 세우는 기반이 된다. 바나나를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이 그 맛을 알 수 있을까? 피리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이 피리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끔 그 소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태양이 붉게 이글거리고 눈부시게 환하다고 말할 때, 그는 무엇을 상상할까? 

이 정도 예를 들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경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올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산악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등반가가 경험한 것을 겪어 봐야 그가 하는 말을 진정 알아들을 것이다. 산악인의 세상 모델은 산을 모르는 사람의 세상 모델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다 저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저만의 독특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세상 모델과 주관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성장하고 나중에 범죄 집단에 들어선 사람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세상을 더 옳게 볼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을 텐데, 왜냐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것이니까.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성장한 사람의 세상 그림은 가난하게 자란 사람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타고난 특성과 우리의 환경은 어떤 사람이 특정한 경험을 겪는 공간을 만든다. 그 사람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마인드에서 나름의 세상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의 이 세상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볼 것이다. 

그러니, 당신 보기에 어떤 사람이 이상하게 행동한다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세상을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당신은 세상을 그와 달리 보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른 인생 경험이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그가 보기에는 당신이 그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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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마인드의 작업 >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 ... ) 

  추론의 수준  

 

단어들이 나타난 덕분에, 거기에 담긴 의미를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문장이나 문구가 그렇게 생겨났다. 

예를 들어, “엄마가 창틀을 닦았어” 같은 문구는 서로 연결된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엄마’, ‘창틀’, ‘닦다’란 단어 각각에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가 각 개인에게 적절한 이미지 형태로 제시된다

게다가 전체 문구도 당신 마인드에서 어떤 (정적이거나 동적인) 장면으로 역시 반영될 것이다. 

 

문구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실재(현실, 세계)를 지각하는 다음 단계인 추론 수준으로 이동한다. 

이 수준에서 우리는 단어들로 이뤄진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든다. 문구의 각 단어는 나름의 독특한 뜻을 지닌다. 이 단어들이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만들어진 문구는 각 단어의 의미를 결합하는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보면 당신 의식에서 창밖에 내리는 비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특정 단어들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사람마다 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창밖에 비가 내린다”는 문구를 접할 때 당신 마인드에서 무엇이 생기는지 주의를 기울이라. 그리고 이 사진과 비교해 보라. 

 

비가 내리는 거리를 자동차 창문 너머로 내다보다

 

당신 마인드에는 아마 다른 그림이 나타났을 텐데... 왜냐하면, 어떤 문구를 접할 때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 이미지와 의미는 그 사람이 그 문구의 단어들에 집어넣는 의미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생기니까 그렇다. 

 

여러 문구 덕분에 우리는 마인드에서 아주 복잡한 의미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당신 마인드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문구와 전체 텍스트의 의미가 한꺼번에 형성될 것이다. 즉, 당신 눈은 지금 이 철자들을 보고 있고, 이때 당신 마인드의 내부화면에서는 이 텍스트의 의미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 주목하라. 

 

이런 텍스트가 있다고 치자. 

Bueno, no es una maravilla de casa, pero se puede vivir bien. Tiene dos habitaciones y una sala espaciosa que usamos como un dormitorio más. Qué vamos a hacer? Somos cuatro personas en mi familia. Tiene también una cocina bastante grande, lo que está muy bien. Y por último un cuarto de baño y un balcón. Como ven ustedes, es una casa normal y corriente. 

놀랐나? 이건 에스파냐어이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들이 생겼나? 에스파냐어를 모른다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저 문구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띠지 않으니까. (<07-2 구체적인 대상들을 지각하는 수준>에서 소개한 동영상과 같은 이치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관한 여러 댓글 가운데 “오랜만에 진짜 악마를 봤다”는 댓글에 수많은 사람이 찬성을 눌렀다. 

이 문장을 접하면서 당신 마인드에서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고 당신의 세계 그림이 바뀌지 않았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바뀌지 않았나? 이 문장을 신뢰도 높은 인쇄매체나 방송매체를 통해 읽거나 듣는다면, 이 정보를 (더 확실하게) 믿을 것이다. 

 

추론 수준에서 우리는 당면한 실재(현실, 세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며, 실재를 이제 자기 마인드에서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 텍스트를 (몰입하여) 읽는 동안 당신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하고 신체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당신 마인드에 생성된 그림과 이미지에 빠져 있다. 게다가 마인드에 있는 이 그림들을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이웃집 여자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일 우리 아파트 동의 보일러를 다 수리할 예정이래요. 오늘 503호에서 물이 새서 아래층 몇 가구가 피해를 봤어요. 관리인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배관을 긴급히 손봐야 한다고 했지요.” 

이것이 당신에게 닥친 당신의 실재(현실)이다. 이제 당신의 실재는 자기 마인드에서 방금 상상한 것이다. 그 뒤 30분 동안 당신은 이모저모 생각할 것이다. ‘내일 배관을 손보는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하는데, 직장에서 어떻게 일찍 나오지?’ 

 

이건 다 당신 마인드에서 일어난다. 그런 걸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자신만의 실재를 (현실을), 단어들로 이뤄진 실재를 만든다. 이 실재는 당신 마인드에서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바로 코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코앞에 이 텍스트가 흰 종이에 검은 철자들로 있고, 엉덩이 아래 의자를 느끼고, 동시에 창밖 거리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 텍스트에 내가 담은 의미가 아니라 이 단어들로써 내가 가리키는 것에 주의를 돌린다면, 당신은 목전의 구체적인 실재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런 얘기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왜냐하면,
우리는 마인드의 형상들 수준에서, 추론의 수준에서 사는 데 하도 익숙해지다 보니, 구체적으로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인드가 우리한테 말하는 것을 실재라 (현실이라)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믿었나? 확인해 봤나? 우리는 권위 있는 사람이나 정보 소스의 말을 (처음엔 부모, 다음엔 교사나 서적 등을) 믿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사실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이상, 이것은 당신 마인드에 있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이미지들로 지금 우리의 (주관적) 세계가 이뤄져 있다. 바로 그런 세계에서, 마인드의 이미지들 세계에서,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살고 있다. 

 

자, 단어들과 의미들의 세계가 우리한테는 (우리처럼)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인드 작업의 중요성과 지식을 통한 세상 인식의 이점을 축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 우리의 감각기관이 바로 지금 지각하는 목전의 실재와 (현실과) 우리 마인드가 만들어 낸 추상적 실재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걸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이,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론이 나오기에 그렇다. 

이제 마인드가 만든 추상적 실재(현실)에서 사는 이점에 눈길을 돌려보자. 

 

우리가 눈앞의 당면한 현실에서만 계속 산다면 (어린애들은 그렇게 한다), 우리의 세계가 크게 제한될 것이다. 당신의 세계가 당신이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만 들어있다고 상상해 보라. 상당히 따분하다. 눈앞의 현실이라는 범주에 국한되어 우리 세계가 아주 작아질 것이다. 

언어가 나타날 때, 우리의 주관적 세계는 세상에 대한 지식의 성장과 함께 아주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우리 세계는 우리가 그것에 대한 지식만큼 점차 커질 것이다. 여러 국가와 행성, 우주, 원자, 분자, 경제, 정치, 그 외에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 안에 나타난다. 이제 당신의 세계는 온 우주이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주다. 

 

단어들과 언어를 활용할 때 또 다른 이점은, 그것들이 추상적이긴 해도 객관적 실재를 (현실을) 웬만큼은 반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대중매체를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아직 당신에게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수 있다. (한데, 비행기에 대해서도 똑똑한 사람들한테 들었기 때문에 이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엔 읽기만 하던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단어들 덕분에, 우리는 언젠가 다른 사람이 획득한 정보를 간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지식을 그가 언어로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건 그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류 존재 내내 수많은 사람이 거둔 성취와 달성을 언어 형태로 간직하면서, 우리는 1천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세상과 아주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1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는 역사 지식 덕분에 안다. 이 지식을 우리는 그것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이용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어쩌면 우리 모두 프리메이슨에게 세뇌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그렇게, 우리에겐 실재를 (현실을) 지각하는 여러 수준의 형태로 주관적 세계의 모델이 나타났다. 전체적인 개관을 한 번 더 제시한다. 

주관적 세계의 일반 모델. 추론 수준, 단어와 명칭 수준, 구체적 대상 수준, 감각 정보의 수준, 추상적 실재, 당면한 실재

유의할 점 – 언어를 쓰는 성인의 경우 이 수준이 전부 동시에 존재하며, 더 높은 수준은 더 낮은 수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 예를 들어, 추론 수준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서 단어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또, 물질과 마찬가지로, 마인드로 하여금 구체적인 대상을 만들게 하는 감각 정보가 있어야만 의식에 구체적인 대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실재를 지각하는 더 높은 수준들은 사람이 점차 발달하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갓난애한테 추론 수준이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갓난애는 학습과 마인드 발달의 단계를 많이 거쳐야 한다. 

1. 처음에 갓난애한테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인상 등의 흐름으로 감각 정보만 나타난다. 
2. 다음에 객관적 세계에 머무는 경험을 쌓으면서, 아이의 마인드가 이 모든 감각적 어수선함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들을 식별하기 시작한다. 
3. 그 이후 부모한테서 이런저런 단어를 들으면서 아이는 그 단어들을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특정 대상들과 연결하는 법을 배운다. 단어와 명칭의 수준이 그렇게 나타난다. 
4. 단어들을 문구에 배열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아이는 자기 마인드에서 이미지와 의미의 형태로 가상현실을 만든다. 이것이 추론의 수준이다. 

 

현시점에서 당신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서 이 수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든 떼어낼 수 있다. 아, 물론, 객관적 실재의 수준은 제외하고 그렇다. 즉, 이 텍스트를 당신 마인드에 나타나는, 의미 정보의 집합으로 지금 당장 인식한다. 그러면서 이건 다 그저 단어들일 뿐이며, 당신이 읽은 각 단어 속에는 거기에 당신이 집어넣는 형상과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 모든 이미지가 마인드에서, 내면세계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이미지들을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실제로 지금 당신 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 종이쪽과 이 철자들, 당신이 바로 지금 듣는 이 소리, 당신 손의 느낌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즐기기만 할 수 있다. 이 여러 느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느낌들이 그냥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어려울 테지만… 당신 의식에 있는 이 구체적인 대상들 이면에서, 시각 채널의 색깔 있는 점들과 청각 채널의 갖가지 소리와 운동감각 채널의 감촉 등의 형태로 감각 정보의 흐름을 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나는 누구인가 > 2부 마인드의 작업 > 7장 실재를 지각하는 여러 수준... 끝)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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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마인드의 작업. 객관적 실재의 지각 수준 <계속>) 

 

  단어와 명칭의 수준  

 

 

이것은 추상적 실재의 첫 번째 수준이다. 

이 수준 이전에는 당면한 실재 수준들이 있었다. (감각 정보의 수준, 구체적인 대상의 수준).

목전에 당면한 실재는 바로 지금 순간에 지각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본다면, 바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그 무엇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것을 우린 바로 앞장에서 이미 살펴봤다. 

 

앞에 소개한 도표를 참고 삼아 다시 제시한다. 

주관적 실재, 객관적 실재, 추상적, 당면한 실재, 추론 수준, 단어와 명칭 수준, 구체적 대상 수준, 감각 정보 수준, 객관적 실재의 수준

추상적 실재는... 단어와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추상적 실재는 세상 그 자체보다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더 가깝다. 

 

마인드가 모든 감각 정보에서 마인드에 친근한 대상을 자동으로 구별한다는 점을 우린 바로 앞장에서 살펴봤다. 그런 대상을 마인드가 구별하는 까닭은 바깥 환경에서 그것을 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어린애들이 세상을 그렇게 지각한다

 

하지만 어린애들은 외부세계뿐 아니라 어른들 사회에서도 살고 자란다. 그리고 성인들은 사물과 대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른다. 이건 ‘사과’이고 저건 ‘촛불’이고 또 저건 ‘나무’야. 언어의 이용자로서 부모는 늘 자기 아이와 얘기 나눈다. 어린애에게 장난감을 보여주고 그것을 ‘공’이나 ‘인형’, ‘바람개비’라고 부른다. 부모는 자신을 가리키면서 ‘엄마’나 ‘아빠’라고 부른다.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이름도 들려준다.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고 이름 들려주는 일을 부모는 아주 자주 한다. 몇 가지 색깔을 띤 둥근 물체를 여러 번 보여주면서 ‘공’, ‘공’, ‘공’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린애한테 이것은 아직은 공허한 소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알아봤듯이, 어린애의 뇌는 대상이 바깥 환경에서 자주 나타나면 그 대상을 청각 정보 속에서 저절로 구별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부모가 말하는 단어가 늘 반복되기 때문에 어린애 마인드에서 별개의 대상으로 식별돼 서서히 자리 잡는다. 

그런 식으로, 둥글고 여러 색깔의 물체를 보면서 동시에 ‘공’이라는 같은 단어를 자꾸 듣는 환경이 어린애 의식에서 늘 반복된다. 어린애의 뇌가 이 두 가지 대상을 연관시키기 시작한다. 이제 어른이 ‘공’이란 단어를 말하면, 어린애 마인드에서 공의 이미지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성인들에게는 물체나 대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 이름을 백 번 반복할 필요가 없다. 한두 번으로 어떤 대상이 어떻게 불리는지 성인은 기억한다. 즉, 세상의 물체와 단어와 연관시키는 작동 원리가 성인기에도 작동한다. 언어 학습이 멈추지 않는다. 

 

단어들은 인간 세계에서 특별한 대상이다. 어린애는 처음에 단어들을 듣기만 한다. 그러다가 말문이 트이면 그 단어들을 입 밖에 내게 된다. 다음에는 책 읽기를 배우는데, 이때 아이는 자기가 이전에 말하던 단어들이 또 어떻게 보이는지 알게 된다. 결국, 아이가 글을 배우면서 단어를 적기 시작한다. 즉, 단어들이 어떻게 소리 나고 어떻게 보이는지를 안다. 단어들이 청각과 시각 채널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들이 무엇에 왜 필요한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건 단어들에 녹아 있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건 또 사람의 마인드에서 단어들이 어떤 이미지나 형상들과 연결됨에 따라 일어난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여러 시기에 여러 종류의 인형을 보여주면서 매번 같은 ‘인형’이란 단어로 부른다면, 어린애 마인드에는 ‘인형’이란 단어와 그 모든 물건의 관념 연합이 생긴다. 이때 이 모든 인형이 서로 좀 비슷하다면, 마인드는 그것들 간의 공통 특징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인형’이란 단어를 아이가 본 인형을 전부 일반화하는 추상적 이미지와 자동으로 연결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더 다양한 물건을 ‘인형’이란 단어로 부를수록, 이 단어의 의미가 아이에겐 더 다양해질 것이다. 

 

여러 종류의 인형

다양한 대상들이 더 많이 같은 단어로 불릴수록... 이 단어는 더 추상적이 되고, 이 단어의 의미는 이 세상 특정한 대상들의 관념에서 더 멀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탁자’라는 단어에는 어떤 사람이 보아 온 모든 형태의 탁자 이미지가 들어있다. 하지만 이 단어와 연결된 모든 이미지를 스캔하려면 마인드에는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따라서 마인드는 더 경제적으로 작동한다. 즉, ‘탁자’라는 단어가 들릴 때 마인드는 어떤 한 가지 이미지를 내놓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에게 ‘차량’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당신 마인드에는 이런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 

 

세단 승용차

혹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초기 자동차

 

모든 것은 그 단어를 듣는 사람의 개인 경험에 달렸다. 

한번 시험해 보라. 

이를테면 ‘집’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당신 마인드에는 무엇이 나타나나? 

마인드에 어떤 집 그림이 생겼을 것이다. 

당신에겐 어떤 그림인가? 

이 단어를 들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같은 그림이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나? 

알고 보니, 단어란 사람 기억에 있는 이미지들을 가리키는 표시기 같은 것이다. 한데 어떤 단어와 연관된 이미지들의 총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이 단어를 말할 때 자동으로 생기는 이미지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 우리는 그 단어와 연관된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언급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에서 되살려내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부분에 주의를 집중할 가치가 있다. 당신의 당면한 실재에서 당신 앞에 지금 여기 있는 특정한 탁자와 일반적으로 ‘탁자’라는 단어 간의 차이는 크다. 

 

나무 탁자 위에 노트북과 안경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특정한 대상은 아직 탁자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 속에서 우리 마인드가 인식한 어떤 대상일 뿐이다. 한데 ‘탁자’라고 불리는 것은 (단어는) 추상적 대상이며, 이 대상은 어떤 사람 내면의 형상과 소리, 느낌의 형태로 암호화된 개인 경험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 추상적 대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는 이 구체적인 대상을 ‘탁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대상의 형태와 우리 기억에 저장된 단어 이미지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것도 탁자라고 부를 텐가?   

 

동그란 나무 탁자

 

이런 탁자를 당신은 못 봤을 것이다. 지금 보라. 그러면 다음에 이런 대상이 당신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 그것이 탁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야. 그리고 당신의 ‘탁자’라는 단어의 의미는 지금 막 또 하나의 방식으로 확장됐다. 

정리하자면, (말의 최소 단위인) 단어란 개별적인 추상적 실재이다. 
단어란 우리가 경험한 내용을 가리키기 위한 표식이나 꼬리표와 같은 특별한 대상이다. 
다시 말하건대, <구체적인 탁자>와 <‘탁자’라는 단어>를 혼동하면 안 된다. 
탁자처럼 보일 수 있는 특정한 대상은 지금 당신 앞에 있고 아주 잘 감지되는 크기와 형태, 색상을 지니고 있다. ‘탁자’라는 단어는 특별한 청각적이거나 시각적인 대상이며, 이 대상은 당신이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탁자를 지각한 경험에 의거한다.

 

* 객관적 실재의 지각 가운데 <추론의 수준>이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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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인간의 주관적 실재(세계)의 구조  

 

지금까지,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일단 외적 실재와 내적 실재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외적 실재는 마치 사람 바깥에 있는 것 같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당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텍스트는 당신이 볼 뿐 아니라 당신이 보여주면 누구라도 볼 수 있다. 

내적 실재란… 당신만이 지각하는 것이다. 여기엔 생각이나 감각, 감정 등이 들어간다. 

 

이런 분류는 상당히 조건적이다. 또 이 분류는 사람의 주관적 실재(세계)를 대략 보여주는 모델일 뿐이다.

이번 장에서는 더 정확한 모델을 알아보자.

그러면 주관적 실재의 어떤 측면을 가리킬 때 더 정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 실재, 사람이 세상을 보는 구조

 

객관적 실재(세계)를 우리가 오감을 통해 지각한다는 것도 알아봤다.

이런 채널들이 사람에게 있는 까닭은 그에 상응하는 지각 기관이 인체에 있기 때문이다. 눈, 귀, 혀, 피부, 코.

이 각각의 지각 기관에서 나오는 신호를 뇌가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특정 유형의 정보로 해석하며, 이것은 다른 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질적으로 다르다. 

 

촉각과 후각, 미각은 편의상 정보 지각의 운동감각 채널이라 불리는 한 채널로 묶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를테면 미각이 냄새나 신체 감각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운동감각 채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체 감각, 즉, 촉각(터치)이다. 따라서 운동감각 채널을 종종 신체 감각과 같은 것으로 본다.

운동감각 채널의 느낌에는 이런 것이 있다.

- 피부에 와 닿는 느낌  

- 뭔가에 손을 댈 때의 느낌 

- 대기 온도의 느낌 

- 모든 형태의 고통과 즐거움 

- 분노, 기쁨, 슬픔 같은 정서의 느낌 

- 사랑과 불쾌함 등의 감정 

- 평온과 온화함 등 섬세한 신체 감촉  

- 냄새  

- 맛 

 

눈으로 보는 것은 정보 지각의 시각 채널이라고도 불린다.

또 듣는 것은 종종 정보 지각의 청각 채널로 불린다. 

 

정보 지각의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각 정보 채널은 지각 기관기억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자료를 받는다.

일단 우리는

지각 기관에서 바로 들어오는 자료를 외부 정보 채널,

기억에서 나오는 자료를 내부 정보 채널이라 부르기로 하자.

따라서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각각에 외부 채널과 내부 채널이라는 하위 채널이 두 개씩 있다. 

 

만약 정보가 내부 채널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정보가 ‘의식의 내부 화면’에 나타난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억과 상상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는 화면 같은 것이다. 내면의 소리와 느낌도 이 화면에 투사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즉, 내부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가 나타나는, 의식의 조건부 공간을 우리는 의식의 내부 화면이라 부를 것이다. 

 

내부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이나 물체를 우리는 내부 형상(이미지)이라 부르겠다. 예를 들어, 빵을 상상할 때 머릿속에 그린 이 빵 형상은 내부 형상이다. 내부 형상에 시각적인 것만 들어가지는 않는다. 청각적 내부 형상과 운동 감각적 내부 형상도 있다. 예를 들어, 장미 향기를 떠올리거나 돌아가신 아버지 목소리를 떠올려 보라. 이것도 내부 형상(이미지)이다. 

 

의식의 내부 화면과 비슷하게, 외부 채널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의식의 외부 화면에 위치할 것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은 외부 정보 채널로 들어오는 정보가 나타나는 공간이다. 따라서 외부 화면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을 외부 형상(이미지)이라 부를 것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과 내부 화면이 함께 의식의 (공통) 화면 혹은 의식을 구성한다. 

 

새로운 용어를 제법 많이 소개했는데, 이 단어들의 개념을 알 수 있도록 예를 들겠다. 그러면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분명해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 단어들을 이용하여 사람의 주관적 실재와 관련된 정보를 서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정보 채널부터 시작하자.

여기에는 우리가 지금 순간에 경험하여 인식하는 것이 다 들어간다.

이 정보는 우리의 감각기관들에서 나온다. 

 

외부 시각 채널은 지금 당장 우리 눈이 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이 외부 시각 채널에 있는 이미지다. 이것이 외부 이미지인 까닭은 당신의 감각기관인 눈에서 곧장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이미지인 까닭은, 우리가 알아본 대로, 우리 마인드가 세상 모델을 만들 때 마인드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우리의 외부 시각 채널은 검은 화면을 전달할 것이다. 물론 주의 깊게 보면, 눈꺼풀이 닫혀 있을 때 검은 화면만이 아니라 색깔 있는 얼룩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당신도 그럴 것이라 본다. 

 

외부 청각 채널은 거리에서 들리는 각종 음향이나 숨소리 등 지금 순간 귀가 듣는 소리를 전달한다. 익숙한 음향이나 목소리 등이 다 외부 청각 이미지이다. 익숙한 말소리, 새들 노랫소리, 자동차 소리 같은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상상하거나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금 듣고 있는 것이라면, 이건 다 외부 청각 채널이 될 것이다. 지금 순간에 당신은 귀로 무엇을 듣고 있나? 

 

외부 운동감각 채널은 지금 당신 몸에서 나오는 모든 감촉과 감각이다. 당신 엉덩이 느낌이 지금 어떤가? 머리 부위에는 어떤 느낌이 있나? 지금 따뜻한가, 추운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끼나, 즉, 당신의 지금 감정 상태는 어떠한가? 이 감정이 몸에 어떻게 반영되나. 지금 대기 중에 어떤 냄새가 있나? 공기 중에 지금 어떤 냄새가 있음을 안다면, 이 냄새는 외부 운동감각 형상(이미지)일 것이다. 통증 역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통증도 외부 운동감각 형상이다. 따스함, 추위, 기쁨, 분노 등이, 거기서 지금 순간에 뭔가를 느낀다면, 전부 당신 의식에 있는 외부 운동감각 이미지일 수 있다. 

 

외부 시각 채널과 외부 청각 채널, 외부 운동감각 채널에서 나오는 정보의 총체가 외부 정보 채널이다.

다음과 같은 연습을 통해 더 확실히 이해하자.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지금 무엇을 듣고 있나?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나? 

지금 보고 듣는 것을 동시에 인식해 보라.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동시에 최대한 인식해 보라. 

이것이 다 외부 정보 채널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다 목전의 실제(실체, 현실)이다. 

 

의식의 외부 화면으로 돌아가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사람이나 자동차, 나무 등 어떤 이미지들이 스크린에 나타나고 움직이는 것을 본다. 혹시 영화 줄거리에 푹 빠져든다 해도 그것이 다 영화관에 걸린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언제든 상기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보는 모든 것 역시 어떤 영화라고 상상해 보라. 이 영화도 어떤 3차원 화면에서 벌어진다. 이 가상 화면이 바로 의식의 외부 시각 화면이다. 이것이 시각적 화면인 까닭은 우리가 당장은 시각 채널만 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식으로, 지금 듣는 소리가 어떤 조용한 공간에서 울린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소리가 있게 하는 고요의 공간이다. 이것은 외부 청각 화면이 될 것이다. 

또 마찬가지로, 외부 운동감각 채널에서 나오는 당신의 감각과 감촉 역시 감촉할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은 외부 운동감각 화면이 될 것이다. 

 

시각, 청각, 운동감각의 이 세 가지 의식 화면이 함께 의식의 외부 화면을 이룬다.

이것은 가상 화면으로서 외부 정보 채널에서 나오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의식의 내부 외부 화면

 

내부 정보 채널로 넘어가자.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한다면, 당신 눈앞에 그 음식 모습이 떠오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떠올리기가 더 쉬운데, 이 경우 외부 시각 채널이 닫히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리라. 

선인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라.

 

그런 것을 기억할 때, 그림이나 필름 같은 형태의 시각적 이미지가 당신 의식의 내부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을 당신 눈이 지금 당장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본다.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그림 같은 형태로 보는 것이 바로 내부 시각 정보 채널이다. 당신이 상상하거나 마음속에서 그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 이 화면에 나타난다. 

 

닭장으로 몰아넣으려 하자 놀라서 도망 다니는 닭을 상상해 보라. 내부 시각(영상) 화면에 나타나는 물체를 우리는 내부 시각(영상) 이미지라고 부를 것이다. 지금 경우에 이건 음식물, 선인장, 닭, 닭장 등이다. 그것을 떠올리거나 마음속에 그릴 때 당신은 그것을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머니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개가 어떻게 짖는지, 새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혹은 이웃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가 당신에게 어떻게 대꾸할지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이미지들이 의식의 내부 청각 화면에 나타나고, 이것이 내부 청각 이미지이다. 이 범주에 자신과 나누는 내면의 대화나 독백도 넣을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의 내면 대화에 내적인 장면들이 수반된다면, 내부 시각 채널이 섞이는 것이다. 

생각은 대개 내부 시각과 청각 이미지들이 한데 모이고 교체되는 식으로 일어난다.
이런저런 결과를 얻기 위해 당신은 이 이미지들을 조종한다.
이것이 바로
사고 과정이다. 

 

이 텍스트를 읽을 때, 내부 시각 채널에서 당신은 이 단어들을 종이 위의 텍스트로 본다.

이 텍스트의 의미를 당신이 이해하기 때문에, 이 텍스트에서 당신이 본 의미를 묘사하는 내부 이미지들이 당신 내부의 시각 청각 채널에 나타난다. 이것은 또 우리 의식에 내부 정보 채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내부 운동감각 채널에는 이를테면 연기 냄새나 레몬 맛이 어떤지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던 순간을 기억할 때 느낌이 이 채널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 채널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장면을 떠올리라. 

햇살이 몸을 데워서 당신이 따스하게 된다. 평온한 느낌이 당신을 감싼다. 당신이 먹고 있는 파인애플의 맛과 냄새가 다 좋다는 느낌을 만든다. 

지금 느낀 것이 전부 내부 운동감각 채널의 이미지이다. 물론 당신은 뭔가를 상상했을 것이다. 이건 이미 내부 시각적 채널의, 또 아마도 청각적 채널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어떻게 잠자는지에 주목했다면, 모든 정보 채널의 이미지들이 당신의 내부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어떤 필름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한데 그건 나름의 시나리오대로 전개된다. 당신은 이 상연을 관찰할 뿐이다. 당신은 점차 이 사건들에 몰입하면서 자신을 잊고 꿈에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꿈 자체가 우리에게 아주 생생해 보인다. 거기에는 시각, 청각, 운동감각의 채널이 다 있다. 현실과 꿈의 차이를 보지 못할 만큼 모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이 이미지가 전부 당신의 내부 이미지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꿈꾸는 순간 당신의 감각기관들은 그런 것을 전혀 인식하지 않으니까. 

 

잠시 정리해 보자. 

3가지 내부 하위 채널이 (시각, 청각, 운동감각) 전부 합쳐져서 정보의 내부 채널을 나타낸다. 이 채널의 정보는 전부 의식의 내부 화면에 있다. 이 화면은 정보의 내부 채널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조건부 공간이다.

 

정보 채널

하위 정보 채널

설 명

사 례

시각 채널

외부 시각 채널

 

지금 당장 내 눈이 보는 것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물체나 과정

 

시각 채널

내부 시각 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장면이나 영상으로 내가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장면,

그림처럼 생생한 생각

청각 채널

외부 청각 채널

 

지금 당장 내 귀가 듣는 것

 

 

지금 내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나 음향

 

청각 채널

내부 청각 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음향이나 말소리로 내가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

 

내적 대화나 독백,

혼자 속으로 하는 판단, 기억하는 목소리,

상상하는 대화나 음향

 

운동감각 채널

외부운동감각채널

지금 내가 느끼고 감지하는 것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신체 감각, 통증, 감정, 맛이나 냄새

 

운동감각 채널

내부운동감각채널

 

의식의 내부 화면에서 느낌이나 감정으로 내가 기억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

 

신체 감각이나 냄새, , 피부 접촉 등에 관한 기억

 

정보 채널, 의식의 화면

 

어린애들이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면, 아이들은 자기네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상상의 세계를 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연필이 있을 때, 그건 그냥 연필이 아니다. 로켓이나 주사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을 우주비행사나 의사로 느낀다. 베개나 쿠션들이 아이에겐 성채가 된다. 탁자는 집이 되고. 아이는 장난감들과 이야기 나눈다. 

 

이때 아이에겐 외부와 내부 두 채널에서 정보가 동시에 들어온다고 할 수 있다.

상상은 내부 채널의 기능이다.

외부 채널의 정보가 내부 채널의 정보와 섞여서 기묘하게 뒤섞일 때, 사람 의식에서 현실이 동화처럼 된다. 그때 평범한 물건들이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바뀐다.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성인들 경우에도 외부세계와 내부 채널들의 정보가 뒤섞이는 경우가 있는데, 단지 추상적 실재(세계, 현실)에서만 그렇다. 성인의 내부 채널은 그가 만드는 세상 모델과 내면 대화에서 나오는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한다. 성인도 순수한 외부 실재는 역시 못 본다. 이 외부 실재를 그는 자신의 세계관 필터와 자신의 세상 모델을 통해 걸러낸다

그때 ‘흑인은 다 폭력 집단’이라고 믿는 백인의 의식에서는 단지 그 믿음 하나 때문에 흑인이 폭력배가 되고 만다. 그때 점토 조각은 조각가의 의식에서 그냥 한 점의 찰흙이 아니라 여인의 형상이 된다. (*피그말리온). 그때 빈집은 사업가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상점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사람의 주관적 세계 모델을 열거했는데, 이건 다 모델일 뿐이기에, 이것을 어떤 사람의 진정한 의식 장치로 볼 필요는 없다. 이 모델은 여느 모델과 마찬가지로 의식 과정의 일부 측면만 반영한다. 이 모델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에 있는 어떤 사건의 어떤 측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모델의 본질이다. 즉, 실재의 어떤 측면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 

 

지금까지 의식의 구조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한 새로운 용어들은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이 용어들은 사람의 주관적 세계의 여러 특정 측면을 가리킨다. 이 측면들을 빨리 언급하기 위해 몇몇 용어를 소개했다. 이 용어와 단어들의 기능은 <말에 관한 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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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지각의 물리적 현상  

 

지각하는 과정이 어떤지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과 생물학의 과학적 자료를 몇 가지 살펴본다.

 

먼저 시각 채널

시각은 정보가 가장 많은 정보 채널이다. 

이걸 통해 외부세계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얻는다. 

시각은 주변 환경에서 빛을 지각하는 것임을 우리는 물리학을 통해 안다. 지구에서 빛의 가장 큰 원천은 태양. 빛은 본질상 특정한 주파수를 지니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이다. 넓은 뜻으로는, 가시광선(可視光線)뿐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도 포함된다.

 

이 파동을 우리는 주관적으로 특정한 색깔로 지각한다. 예를 들어, 400-480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빛을 빨간색으로, 620-680 테라헤르츠 주파수의 빛을 파란색으로 지각한다. 이런 빛의 주파수를 우리가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는, 뒤에서 논의할 것이다. 사실 전자기파 복사(輻射)의 전체 주파수 범위를 취한다면, 우리가 색깔로 인식하는 것은 아주 짧은 주파수 범위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파수 범위를 우리는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티브이가 받는 전파가 물리적으로 공간에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못 본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의 광선에는 다양한 주파수의 전자기파가 다 포함돼 있다. 사실, 이 빛의 광선에는 거의 모든 주파수의 파동이 다 들어있다. 이 빛 광선을 백색광이라 부른다. (*백색광 - 태양빛처럼 각 파장의 빛이 적당한 비율로 혼합된 빛.) 백색광에 모든 주파수의 파동이 다 있음을 보려면, 이 빛을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된다. 

 

백색광이 프리즘을 거쳐 여러 색깔로 분화되다

 

백색이 모든 색상의 무지개로 분리됐다. 프리즘이 여러 주파수의 파동을 여러 방향으로 나눈 것처럼 됐다. 

 

이제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어떻게 여러 색상을 지니게 되는지 살펴본다. 

백색광이 물체에 와 닿으면 물체 표면이 여러 주파수의 파동을 거의 다 흡수하고는 일정한 좁은 주파수 범위의 파동을 되쏜다. 예를 들어, 백색광이 붉은색 물체의 표면에 닿으면 물체는 붉은색 주파수와 다른 주파수들의 파동을 죄다 흡수한 뒤 붉은색 주파수의 파동을 표면에서 되비치는 것이다. 

여기서 ‘빨간색 주파수’라고 말한다 해서 파동이 실제로 빨간색을 지닌다는 뜻이 아님에 유념하라. 이 파동의 주파수가 400-480 테라헤르츠 범위에 있다는 뜻일 뿐이다. 광파 자체에는 그 어떤 색깔도 없다. (*光波 -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진동하며 진행하는 전자기 파동 중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빛) 

 

따라서 빨간색 주파수의 광파는 물체에서 여러 방면으로 반사된다. 물체에서 반사된 이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여러 물체가 우리에게 여러 색깔로 보이는 까닭은... 그 물체들의 표면이 거기 닿는 백색광을 서로 다르게 반사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적색 범위 파동을 주로 반사하고 어떤 것들은 녹색 범위 파동을 반사한다. 또 어떤 것들은 거의 모든 파동을 흡수하는데, 이때 물체는 우리한테 검은색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주파수의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안구 망막에는 빛 수용체인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있다. 또 원추세포에는 3가지 유형이 있어서, 어떤 것은 청색-보라 영역의 빛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어떤 것들은 황록색 영역을, 또 어떤 것들은 적색 영역을 가장 잘 받아들인다. 즉, 서로 다른 원추세포들이 일정한 주파수 범위의 광파에 반응한다. 

(*간상세포 – 척추동물의 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 막대 모양으로 명암을 느낀다. 

*원추세포 – 척추동물의 망막에 있는 시세포의 하나. 비교적 밝은 곳에서 물체를 보는 일과 색의 구별을 담당한다.)

 

물체 표면이 빛을 반사하고 이것이 우리 눈에 들어오고 눈이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다음에 망막의 원추세포들이 신경 임펄스를 만든다.

이 임펄스가 안구 망막에서 신경 섬유를 (뉴런을) 따라 뇌로 간다. 인간 뇌에는 눈에서 오는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 뇌의 시각 영역이 있다. 뇌 자체는 거대한 뉴런 다발이다. 이것은 신경세포체와 하나의 축색돌기와 수천 개의 가지돌기로 이뤄지는 세포들이다. 

 

신경세포체, 가지돌기, 축색돌기

 

가지돌기들은 뉴런(신경세포)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은 것으로서 다른 뉴런의 축색돌기에서 나오는 흥분 신호를 받아들인다. 축색돌기는 뉴런에서 나온 긴 돌기로서, 그 뉴런에서 다른 뉴런들로 흥분 신호를 전달한다. 그런데 축색돌기는 말단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그 뉴런에서 몇 개의 뉴런으로 동시에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뇌의 뉴런은 전부 축색돌기와 가지돌기들을 거쳐 서로 연결된다. 수천 개의 가지돌기를 거쳐서 한 뉴런에 수천 개의 뉴런이 연결되고, 자체 축색돌기를 거쳐 자체 신호를 그 뉴런에 전달한다. 이후 이 뉴런은 모든 신호를 하나로 모아서, 이것을 자체 축색돌기를 거쳐 다른 연결된 뉴런들에게 전달한다. 그 결과 수십억 개의 뇌세포를 연결하는 일종의 뉴런 망이 나온다. 

 

뉴런 망

 

뉴런 이외에 뇌에는 또 중추 신경계 조직을 떠받치는 세포인 신경 교세포들이 있다. 이것은 뉴런의 물질대사를 수행하며, 뉴런의 시그널 전달을 촉진한다. 이것들 외에 다른 것이 뇌에는 사실상 전혀 없다. 

그렇게, 눈에서 나온 신호가 뒤통수 쪽에 있는 뇌의 시각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 신호가 다음에 시각 영역에서 분리되어 대뇌피질도 포함하는 뇌의 다른 영역들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신호들이 가시적인 이미지로 변환된다. 이것을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다.

뇌에는 그 어떤 그림이나 장면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거기 있는 것은 전부 한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전달되고 이동하는 신경 임펄스뿐이다. 

뇌는 서로 다른 원추세포들이 서로 다른 주파수의 광파에 반응한다는 이유 하나로 서로 다른 범위의 광파들을 구별한다. 다음에 이 원추세포들에서 보통의 전기 신호가 나온다. 뇌의 시각 영역은 신호가 어떤 원추세포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색상을 구별한다. 신호 자체에는 그 어떤 색상도 없다. 

 

시각이 작동하는 도식은 대략 이런 식이다. 

주파수가 다른 전자기파로서의 빛이 물체들에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온다. 물체들 표면이 파동의 일부를 흡수하고 일부를 반사한다. (이건 표면 특성에 좌우된다.) 반사된 파동이 우리 눈에 들어오고, 여기서 망막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도움으로 신경 임펄스로 바뀐다. 이 신경 임펄스들이 뉴런 망을 따라 뇌로 간다, 더 엄밀히 말해 뇌의 시각 영역으로 간다. 신호가 시각 영역에서 뇌의 다른 영역들로 퍼진다. 뇌에는 뉴런 망과 보완하는 신경 교세포들, 뉴런 신호들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없다. 

 

이제 다른 지각 채널들의 작동 방식을 간략히 보자. 

감각 기관들의 이 작업 도식은 사실상 시각 채널의 도식과 다르지 않다. 

 

소리는 본질상 공기의 진동이다. (*음파 - 발음체의 진동으로 공기 등에 생기는 소리의 파동. 소릿결.) 즉, 물체는 진동함으로써 주변에 공기 진동을 만든다. 이 진동이 공기를 따라 여러 방향으로 퍼지고, 결국 우리 귀에 들어온다. 공기가 없다면, 물체는 진동을 전달하지 못하며 소리도 없을 것이다. 

음파는 광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파수를 지닌다. 소리의 진동 주파수가 낮을수록, 소리가 더 낮은 것처럼 우리는 주관적으로 여긴다. 이건 베이스에 관련된다. 음파의 주파수가 더 높을수록, 우리에겐 주관적으로 소리가 더 높고 날카롭게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소리의 높이는 음파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음파는 공기를 따라 전달되는, 서로 다른 주파수의 파동일 뿐이다. 이 파동 자체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다음에 물체에서 나온 음파가 우리 귀에 들어온다. 귀에 고막이 있어서 귀로 들어오는 공기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막은 귀에 들어온 음파와 같은 주파수에서 떤다. 

다음에 귀에서 진동의 복잡한 변환 체계의 도움으로 음파가 신경 임펄스로 바뀌고, 이 임펄스가 청신경을 따라 뇌로, 청각 정보 처리를 맡는 영역들로, 들어간다. 

 

공기 진동이 우리 귀에 들어와 고막을 움직이다.

 

그런 식으로 소리도 빛처럼 뇌가 처리하는 신경 임펄스로 바뀐다.

눈에서 나오는 신경 임펄스는 귀에서 나오는 신경 임펄스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 신호들의 차이와 신경 임펄스들이 어떤 종류의 신호를 지니는지는 전부 뇌에서 결정한다. 이 작업을 뇌는 신호가 어떤 신경 경로를 따라 왔는지에 따라 결정한다. 

신경 임펄스가 (즉, 신호가) 빛의 지각을 맡는 뉴런에서 나왔다면, 뇌는 이 신호를 시각적인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신호가 소리 지각을 담당하는 뉴런에서 나왔다면 뇌는 이 신호를 청각 (소리) 신호로 해석할 것이다. 

 

촉각과 후각, 미각에 관해서는 간략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피부에는 특별한 수용체들이 있어서, 이것이 접촉과 공기 온도에 반응한다. 그 다음 도식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수용체들에서 나온 신경 신호가 뇌로 들어간다. 

코에도 수용체들이 있어서, 이것이 특정한 분자들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장미꽃이 분자들을 분비한다. 이 분자들이 코에 들어오고, 후각 수용체들이 특정한 분자들에 반응한다. 다음에 후각 수용체들이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 

맛에 관해 보자면, 혀에는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물질의 분자들에 적절히 반응하는 수용체들이 있다. 앞의 여러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수용체들에서 뇌로 신경 시그널들이 간다. 

외부세계에는 장면이나 소리, 맛, 감각 같은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하기 바란다.
외부세계에 있는 것은 전부 여러 종류의 파동과 분자 물질들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전부 우리 뇌의 작업 결과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 

그렇다면 뇌의 시각 영역에서 나오는 신호들이... 어째서 우리가 그것들을 지각하는 것과 똑같이 지각되는 것인가? 달리 말해, 3차원 형태의 이미지로 지각되는 것인가? 

또 뇌의 소리 담당 영역에서 나오는 신호들은... 왜 바로 소리처럼 지각되는 건가? 

광파에도 음파에도 색깔과 소리 같은 속성이 없는데 말이다. 

(계속.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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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정보 지각 채널  

 

알아본 것처럼, 사람의 감각 경험은 잠정적으로 두 세계로 나눌 수 있다. 

바깥 세계와 내면세계. 

 

이제 이 세계에서 어떤 종류의 정보가 우리한테 들어오는지 알아보자. 

 

정보 지각 채널, 듣기, 냄새, 피부, 보기, 혀로 맛 느끼기

 

바깥 세계부터 본다. 우리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을 통해 바깥 세계를 인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즉,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피부를 통해 감지한다. 이건 다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정보 형태이다. 달리 말해, 시각을 통해 접하는 것은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될 수 없다. 맛으로 느끼는 것은 냄새로 감지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바깥 세계에서 얻는 여러 정보 유형을 정보 지각 채널이라 부른다. 

 

우리한테 왜 하필 오감이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을까? 어떤 이들은 육감도 있다고 여겨서, 그걸 직관이나 초감각이라 부른다. 하지만 초감각이 인지하는 것이 어떤 미지의 원천에서 나오는 정보라 해도, 이 정보 역시 결국은 다섯 채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즉, 초감각이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기는 하겠다. 어쩌면 거기에는 보통사람의 기본적인 오감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어떤 정보 채널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 

 

앞의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보통사람에겐 정보 채널이 왜 하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다섯 개인가? 대답은 질문처럼 명확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체에 자연이 눈과 귀, 피부, 코, 혀 같은 지각 기관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피부와 코, 혀에는 특수한 수용체가 있어서, 그것이 필요한 정보를 실제로 얻는다. 

 

박쥐가 이용하는 반향 정위 (음파 탐지, echolocation) 같은 감각 기관을 자연은 우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철새들이 비행 목적지를 정확히 결정하기 위해 이용하는, 지구 전자기장의 감지는 또 어떤가?

 

박쥐의 반향 정위, echolocation

 

박쥐는 음파 탐지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지각하는 것일까? 반향 정위는 소리에 따라 공간에서 방향 잡는 것으로서, 초음파를 계속 발사하고 반사되는 신호에 따라 장애물이나 먹이까지의 거리를 결정한다. 박쥐의 이런 정보 채널이 청각이나 촉각과 비슷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건 우리의 다섯 지각 기관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상 새로운 정보 유형일 수도 있을까? 

새들이 지구의 전자기장을 지각하는 것은 또 어떤가? 이것도 인간에겐 알려지지 않은 아주 새로운 정보 형태임이 틀림없다. 

 

그런 식으로 동물들에겐 별난 지각 채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도 오감이라는, 다양한 지각 정보 형태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 아닌가? 만약 자연이 우리에게 후각을 주지 않았다면, 세상에 냄새라는 게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냄새 같은 정보는 자연에 없다고 확신했으리라. 그리고 냄새 수용체가 있는 어떤 외계인이 우리한테 냄새가 무엇인지 설명해도, 그걸 거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내면세계로 넘어가서, 거기엔 어떤 정보 채널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러려면 뭔가를 기억하거나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구름이 발치에 걸린 태백산 정상, 혹은 연인의 다정한 손길, 혹은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의 냄새와 맛 같은 것을 상상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보나? 내면세계에도 시각과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다섯 가지 정보 채널이 다 있다. 바깥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은 내면세계에서도 결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외부든 내부든 세상에서 얻는 모든 감각 경험을 우리는 전부 이미 여러 번 얘기한 다섯 가지 채널을 통해 지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6번째 채널도 있긴 하다. 그건 균형 감각이다. 이것을 학자들은 별개의 정보 채널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것은 촉각의 특별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5감에 비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이야기에서는 편의상 채널들을 이렇게 부르겠다. 즉, 보는 것은 시각 채널. 듣는 것은 청각 채널. 촉각과 후각과 미각을 한데 묶어서 운동감각 채널이라 부를 것이다. 

이 세 채널을 운동감각 채널로 묶은 것은 오로지 편리하다는 이유밖에 없다. 운동감각 채널은 느끼거나 감지할 수 있는 정보 형태를 나타낸다. 

 

바깥 세계, 시각, 청각, 운동감각 채널, 의식, 내면세계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은…
세상에 색깔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눈이 있기 때문
이라는 사실에 다시 주목하기 바란다.
우리가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귀가 있기 때문이지, 세상에 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한테 눈과 귀가 없고 그 대신 음파 탐지 기능이나 지구 전자기장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상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까? 

우리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지각하는 것과 같은 세계일까, 아니면 단지 우리 감각 기관들의 작업 결과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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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세상의 지각  

 

  1장. 내면세계와 바깥세계 

 

우리는 다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아침마다 잠 깨어 꿈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들어선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지인들을 만나고 사물과 사건들을 접한다. 

이런 상황에 하도 익숙하다 보니, <세계를 지각하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정말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것인가? 

세상이 실제로는 어떤 것인가? 

우리 안에 있는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의 주변 세계를 지각하고 인식하나? 

 

세상을 지각하는 채널 5가지
청각, 시각, 미각, 촉각, 후각

 

우리는 과학적인 탐구나 이론화에 빠지지 않고, 사물을 눈에 들어오는 대로 그냥 볼 것이다. 먼저, 우리 각자는 자기 주변에 어떤 사물이나 사람, 외부 사건들이 있음을 안다. 즉, 당신 앞에 있는 컴퓨터가 당신 바깥에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당신이 사는 곳과 창밖의 나무와 태양, 풀 등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걸 다 우리는 바깥 세계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도 인식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을 우린 바깥 세계라 부를 것이다. 즉, 창밖 나무는 당신뿐 아니라 이웃집 철수한테도 보인다. 당신은 이 나무가 어떤지 철수와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나무의 이름과 높이, 우거진 이파리들, 줄기가 얼마나 굵은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이웃사람 철수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당신과 철수가 보는 것은 대체로 같은 것이다. 두 사람이 보는 것에 대한 각자의 평가에서만 이견이 나올 수 있다. 이 나무가 당신에겐 키가 높아 보이는데 철수에겐 낮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깥 세계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갈까? 당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각할 수 있는 것이 다 들어간다. 당신 방 안에 있는 물건뿐 아니라 당신 몸도 마찬가지이다. 당신 몸을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이 바깥 세계를 다룬다. 여기서는 실험하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이 실험을 반복하고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바깥 세계의 사물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이 실험한다면, 각자가 서로 같은 결과를 보게 된다. 

 

하지만 실제적인 것이 바깥 세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른바 내면세계는 것도 있다. 바깥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이라 한다면, 내면세계는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다. 즉, 열 사람이 있다면, 내면세계도 열 가지가 된다. 이 세계는 어떤 사람의 정신 안에 있는 것 같기에 '내면적'이다. 어떤 사람의 정신 내면에 있어서 본인은 지각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지각할 수 없는 것이 전부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신체 감각, 감정과 느낌, (머릿속 목소리뿐 아니라, 뭔가를 떠올리고 상상할 때 생기는 장면들 포함하여) 생각 같은 것이 다 내면세계에 들어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에서 뭔가를 느끼거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느끼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 간 소통에 웬만큼 문제가 된다.  

당신의 몸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의사에게 잘 설명하고 싶다! 하지만 한번 묘사해 보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단어들이 썩 마땅치 않다. 연인에 대해 느끼는 것을 친구에게 얘기하고 싶어! 그 느낌이 어떤지 당신에겐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당신의 감정을 친구는 정확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야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단어를 통해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 석양을 보면서 당신이 느낀 신비함을 말로 어떻게 전해야 하나? 발리 섬에서 맛본 열대 과일 맛을 그걸 먹어 본 적이 없는 친구한테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내면세계를 다루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인문학, 예술, 종교이다. 바로, 심리학, 문학, 교회, 음악, 영화 등이 그것이다. 작곡가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 상태를 멜로디로 전달하려 한다. 종교는 신과의 합일 느낌을 이야기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규명하려 든다. 

 

사람이 바깥 세계와 내면세계에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전부 합해져 그 사람의 감각 경험을 구성한다. 우리네 감각 경험이란 사실 특정 순간에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이다. 즉,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전부이다. 

 

(*감각 경험 -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시각ㆍ청각ㆍ후각ㆍ미각ㆍ촉각 따위의 감각 기관을 통한 경험.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개념을 구조화한다. objective experience)

 

모든 감각 경험이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로 나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서 서로 간에 오해와 몰이해가 생긴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남편에게 묻는 흔한 장면이 그렇다. 

그녀가 ‘사랑’이란 단어를 말할 때 어떤 나름의 뜻을 지닌다. 이를테면, 그녀에게 남편의 사랑이란 여자를 보호하고, 여자 얘기를 잘 들어주고, 비싼 물건도 흔쾌히 사주는 것 등을 뜻한다. 

 

하지만 그녀 남편에게 ‘사랑’이란 전혀 다른 개념일 수 있다. 이를테면, 아내에 대한 사랑이 좋은 잠자리, 제 때에 월급 가져다주기, 여가를 함께 보내기 등일 수 있다. 그리고 아내가 "날 사랑해?" 하고 물을 때 그는 "그래, 사랑해" 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을 다 하고 있으니까. 섹스, 월급, 여가. 한데 남편의 이 사랑을 아내는 자신의 개념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즉, 보호하고 얘기 들어주고 값비싼 물건 사주기 등. 

 

이때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으며, 이건 곧 드러날 것이다. 남편이 새 모피 외투 사주기를 거부할 때, 아내는 볼이 부어서 남편의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었다고 쏘아붙일 것이다. 그러면 남편도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왜냐면 사랑이란 말에 새 모피외투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이런 경우 누구 잘못인가? 아마도 서로를 탓하겠지. 아내는 자기를 남편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남편은 아내가 까탈 부리며 바가지 긁는다고 말할 것이다. 이건 다 두 사람의 ‘사랑’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이 경우 ‘사랑’이란 부부가 서로 직접 나눌 수 없는 각자 내면세계의 형상이다. 그러나 그 형상을 두 사람이 적어도 말로써 전달하려 들 수는 있다. 하지만 각자에게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설명하지도 않고, 그러면 관계가 그저 냉랭해지기만 한다.  

 

내면세계의 다양성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고독해진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없어. 물론, 우리 내면세계가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우리 생각을 남들이 다 들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관계도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가끔은 홀로 떨어져 자신의 사념을 벗하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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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

  깨달음 수련장으로서의 인간관계  

 

질책과 비난 섞지 않고 

자기감정 표현하는 법 익히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에고이즘을 묵인한다는 뜻은 아님을 기억해 두세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에게 복종하며 자신을 희생한다는 뜻이 아님을 잊지 마세요. 

 

질책과 비난 없이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우리에겐 자신을 옹호하며, 아닌 것에는 “노”라고 말할 권리가 있어요

단지… <에고>가 그렇게 하지만 않으면 돼요.

 

만약 “노”라고 말한다면… 자신의 <참된 나>가 그렇게 말하게 해야 돼요. 깨어 있는 의식 상태를 잃지 말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에 빠지지 않아야 해요

자신이 행하고 말하는 것 속에 전적으로 존재해야 돼요. 즉,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열 받아서’ 마구 늘어놓지 않게 되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며, 감지하는 것만 정확하게 표현하게 될 거예요. 

 

상대에 대한 자신의 태도며 자기감정, 자신의 바람, 상대에게 동의 여부 등을 표현할 수 있고 해야 돼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참기 어려운 것을 참으며 용인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이미 여러 번 얘기 나눴지요? 

 

상황이 실제로 어떠한지를 분명히 의식하세요. 

어떤 관계들이 내 방향이나 조건에 맞지 않는다면… 현실이 무엇이며 형세가 어떤지를 살펴보세요. 

단, <거짓된 나>의 왜곡된 프리즘을 통해 볼 게 아니라 <내면의 목격자>의 눈으로 보아야 해요. 그때 우리는 그 사안과 관련해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에 대한 질책이나 비난을 섞지 않고 자기감정 드러내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이건 우리의 감정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또 자기감정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탓하기 시작한다는 뜻은 아니야. 나에게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 해도,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기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실습 51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불만이 있다면, 그걸 혼자 조용히 알도록 하세요. 

현재 순간에 들어서서 자신의 <참된 나>와 연결한 뒤, 이 불만을 <내면의 목격자> 눈으로 바라보세요. 

이 불만과 연결된 감정이 무엇인지를 의식합니다. 

혹시… ‘이 감정은 내 <고통의 몸체>에서 파생된 것은 아닌가, 이 가까운 사람의 행동은 그저 ‘방아쇠’가 됐을 뿐이고.’ 

 

하여튼 이 감정들을 깨어 있는 의식 상태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분류해 보세요. 

‘내가 느끼는 것은 구체적으로 뭐지? 모욕감이야? 노여움? 과소평가되고 무시당했다는?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이 감정들을 인식하고 이해했을 때, 이 감정을 두고 가까운 사람과 얘기할 기회를 찾으십시오. 물론, 적절한 시점을 찾고 그 사람이 내 말을 제대로 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겠지요.

 

확인해야 할 게 또(!) 있습니다. 

‘지금 난 차분한 상태에 있고, 내 <고통의 몸체>가 이 순간 꿈틀거리지는 않나?’ 

주의와 눈길 일부를 내면에 유지하면서 거기에 (내 안에) 고요와 평정이 간직돼 있는지 살펴보세요.

 

이렇게 준비가 다 됐을 때, 자신의 감정이며 심적 체험을 그 가까운 사람한테 차분하게 말하면 됩니다. 단, 단어 하나하나에, 심지어 억양에도, 질책이나 비난의 기미가 전혀 없게끔 말해야겠지요

 

부정이 담긴 말을 해야 할 때는 ‘나’라는 대명사로 어구를 시작하세요. 

“넌/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 (X)

“나는 당신의 그런 행동에서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 (O)

 

지금 당신은 자기감정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이런 공식은 상대의 공격을 예방합니다. 즉, 상대방 <고통의 몸체>가 활성화되면서 대응하여 공격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은 관계를 차분하게 거론하고 평화롭게 서로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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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예방 표현법과 말씨

갈등을 예방하는 말씨와 표현법 - <나-서술 I-statement> 형태의 활용 이른바 <나-서술> 방법은 주변 사람을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화나게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자신의 의도나 생각, 상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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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은 서로 의존하고 집착하는 상태에서 살고 있으며,

이 상태가 인간관계이고 사랑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사랑이 의존이나 집착으로 대체될 때,

그건 증오라는 정반대의 얼굴을 띠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의존이나 집착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증오로 바뀌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깨어 있는 의식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우리 각자의 <참된 나>가 만나서 어울린다면…

그들 사이에는, 그 무엇으로도 그림자를 드릴 수 없는 사랑만이 있을 거예요. 

‘나는 언제 자신의 <참된 나>로써 소통하며, 언제 에고나 고통의 몸체로 소통하는지?’ 알아보세요. 

 

두 개의 <에고>가 서로를 어떻게 공격하며, 아픔과 고통과 (둔감한) 무자각 상태를 서로에게 어떻게 투영하는지를 내면의 목격자 눈으로 바라보세요. 에고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는 대신, 우리가 상대에게 깨어 있는 의식을 보낸다면…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이 다 사라질 거예요.

 

내면에서 느끼는 사랑을 다른 이에게 보내세요. 

사랑과 고요와 평온의 공간을 어디에 있든지 만들어 내세요. 

그러면 진정한 사랑과 진정 깨달은 관계를 우리가 보게 될 거예요. 

 

집착이나 증오 따위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사랑을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어요. 

이런 사랑을 먼저 내면에서 만든 뒤, 다음에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모든 대인관계에 그 사랑을 옮겨가야 하겠어요. 

  

인류에게는 다음 진화 단계로 한 걸음 내딛을 시기가 도래했어요. 

즉, 영적 동면에서 깨어나 늘 자각된 상태가 되어야 할 시기 말이죠. 

이 놀랍고 돌이킬 수 없는 과정에 우리도 적잖이 기여할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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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

  깨달음 수련장으로서의 인간관계  

 

자신과 타인을 판단과 평가 없이 대하는 법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반응, 

즉, 고통의 몸체가 내보이는 반응을 그만둘 때, 

불쾌감에 불쾌함으로 응대하기를 멈출 때, 

상대의 고통의 몸체가 퍼붓는 공격에 맞대응하지 않을 때… 

우리에겐 상대방 얘기를 진정으로 듣고 이해할 기회가 생길 거예요.

 

고통의 몸체들끼리는 소통이 불가

 

고통의 몸체 둘이 맞부딪칠 때는 소통 당사자들 그 누구도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할 겨를이 없어요. 각자 자기 고통의 몸체 때문에 눈멀고 귀먹게 돼요. 

이런 상황에선 각자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게 아니라 자기 고통의 몸체를 상대한다는 게 맞을 거예요. 고통의 몸체가 차단막이 되어 서로를 가로막습니다.

 

만약 자신의 반응이며 감정을 의식적으로 살핀다면, 고통의 몸체는 녹아 없어집니다. 

그때 마침내 우리는 고통의 몸체를 거치지 않고 진정 마음과 마음으로, 영혼과 영혼으로 소통할 기회를 얻어요. 그러려면…

1)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2) 경청하는 법을 익히고 

3) 상대방을 질책하거나 상대방 비난에 맞대응하지 않으면서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대방 행동에 눈을 감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게 한다면, 그건 무자각 상태에 있다는 뜻이겠지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 행동을 진정한 관점에서 보고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알고 이해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특히, ‘이 사람은 나빠’,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지?’ 등등 감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렇게 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요. 돌아가는 게 다 눈에 들어오고 상대방 행동이 훤히 보이는데, 그 행동이 나한테 해를 끼치는데도, 어찌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우리한테 아픔이나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은 상대방의 <진정한 나>가 아니라 상대방의 <거짓된 나>와 에고임을, 특히 상대방 고통의 몸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면, 그건 그 사람을 그의 고통의 몸체며 <에고>며 <거짓된 나>와 동일시한다는 뜻이겠지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에고며 <거짓 나>며 고통의 몸체와 동일시하기를 멈춰야 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의 고통의 몸체가 우리를 공격한다 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멈추기가 더 쉬울 거예요. 우리는 진실한 장면만 보게 되겠지요. 상대방 고통의 몸체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눈 감지는 않아도. 

 

현재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면서, 깨어 있는 의식을 늘 간직하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의 고통의 몸체가 퍼붓는 공격에 거리를 둘 수 있을 거예요. 

또 부정적인 감정에 굴하지도 않게 될 것이며, 이건 판단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에요. 

결국, 판단이라는 것도 대응공격과 다를 바 없는 것이잖아요? 하다못해 속으로만 그렇게 한다 해도 말이죠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고 명확히 알면서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감정에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태연자약도 여기서 나오겠지요. 

 

  실습 49  

 

어느 하루 날 잡아서 이런 점을 세밀하게 관찰해 보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생각이 나한테 들지는 않나?’ 

심지어 자신을 판단하는 생각까지도 추적하세요. 

 

그런 생각들은 저절로 몰래 기어들거나 불쑥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인간 사회에서는 서로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습관이 아주 널리 퍼져 있어서, 이게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 이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거야.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한다 해서 나쁠 게 뭐 있겠어? 다들 그렇게 하는데’ 하고 여기기 쉬워요.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표준도 규범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의식해야 합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우리는 누구한테나 <참된 나>가 있다는 점을 잊어요. 

판단과 평가를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거짓된 나>와 같게 보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가 고통의 몸체 같은 것이요 우리가 바로 <에고>라고 인정하는 셈이에요. 

하지만 고통의 몸체와 <거짓된 나>의 발현은 사람의 참된 본질과 하등의 관련도 없어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에 의식적으로 대하기 시작하세요. 

항상 경계심을 품고 매 순간에 충실히 현존하면서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들을 일일이 추적하세요. 

전혀 해롭지 않은 판단도, 그런 기미까지도 주의하여 살펴보세요. 

하루 종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생각을 죄다 적어 둔다면 더 좋을 거예요.

 

저녁에 그 목록을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자주 낙인을 찍었나, 그들에게 라벨을 붙였던가, 사소한 것들을 두고도 평가했구나’ 하고 놀라게 될지도 몰라요. 

 

그 목록을 다 읽고 나서 눈을 감으세요. 

현재 순간에 머물면서 내면의 몸체와 연결한 뒤, 내 안에 있는 판단 에너지를 알아내세요. 

거기에 자신의 주의를 집중하고 의식의 빛을 비추세요. 

이 에너지를 녹여 없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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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단계

  깨달음 수련장으로서의 인간관계  

 

에고 모드의 의식이 마지막 붕괴 단계에 접어들면서 
남녀 관계는 인류가 지금 처한 위기 상태를 고대로 보여준다.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 마인드와 동일시됨에 따라 
인간관계 대부분이 <존재>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원천으로 바뀌면서 각종 문제와 갈등에 지배되고 있다.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들과도 행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끌리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필요로 해요.

이건 다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진정 행복한 인간관계가 왜 그리도 드문가요? 

대다수 사람들한테 행복과 기쁨과 사랑의 순간들은 어째서 그렇게 드물며, 그런 순간들조차 또 왜 아주 쉽게 아픔이나 분노, 짜증, 서운함, 불쾌함으로 바뀌는 건가요? 

 

왜냐하면, 자신의 <참된 나>에 머물러서 다른 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기 때문이에요.

모든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거짓된 나>들의 접촉이고 어울림입니다.

이건 둘이나 그 이상의 <에고>가 만나는 거예요. 에고들이 접하는 곳에서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에요

 

에크하르트 톨레는 인간관계가 오늘날처럼 아픔과 갈등으로 가득한 적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건 인류가 처한 크나큰 위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위기는 기존의 정치와 경제, 사회 구조를 생성한 에고 모드의 의식이 결국엔 붕괴되고 만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계속 존재하려면 인간의 의식이 바뀌어야 해요.

인류가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은…

영적 동면 상태에서 벗어나 깨어 있는 의식 상태를 높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만약 지금 여기에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하고 있어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하기를 꿈꾸면서 맺는 관계들이 어찌하여 끝에 가서는 큰 아픔을 안기는 것인가요?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추구하면서 거짓된(잘못된) 동기를 지침으로 삼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인간관계가 없으면 헛헛하거나 비참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요. 그래서 자기네 삶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그 부족한 온전함을 채우고 행복을 안겨 주리라 기대해요

 

바로 여기에 오류가… 그 뒤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뿌리가 있어요. 

진정한 행복은 바로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잖아요? 

그걸 다른 이들한테서 기대할 필요가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만약 지금 여기에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하고 있어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서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서 벗어나게 돼요.

혹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죠.

‘음, 나한테 지금 어떤 문제가 있어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백마 탄 왕자만 만나기를 기다려야지…’ 

 

하지만, 이것도 착각이에요.

시간은 문제를 절대 해결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외려 새로운 문제를 자꾸 양산하기만 합니다. 

시간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고 현재 순간과 결합되어야만 (그래서 현재에 충실해야만), 파트너가 있든 없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독자적인 상태에 들어설 때, 진정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비로소 생길 겁니다.

왜냐하면, 독자적일 때…

즉, 곁에 누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행복함을 느낄 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모든 갈등과 불화와 아픔이며, 애정이 증오로 변하는 모든 경우는 파트너들이 서로에게 집착하고 중독됐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한데, 만약 내 행복의 원천이 다른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기가 어렵지요! 자기도 모르게 매달리고 집착하게 돼요. 그러면… 어떡하든 상대를 붙잡으려 애쓸 터이며, 쩍하면 질투하고 의심하고 비난하고, 내 기대에 부응하라고 상대에게 요구하겠지요. 그러면… 상대는 저항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잖아요? 서로 아끼고 서로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서로에게 아픔과 고통만 키우는 악순환에 빠지는 거예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내 행복의 원천을 다른 사람한테서 볼 게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것! 

 

그러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거예요. 그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그냥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순수하고 사심 없고 진정 성스러운 사랑으로 말이죠! 그때 우리는 상대가 곁에 있어 주어 고맙다고 할 것이며, 혹여 그 상대가 우리 인생에서 사라진다 해도, 행복의 원천은 우리한테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게 될 거예요. 

 

행복의 원천이… 우리 내면에 있는 한, 그걸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한테서 빼앗을 수 없다. 

 

  실습 47  

 

눈을 감고 <지금> 순간으로 들어서서,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고, <참된 나>에 뿌리를 내리세요. 

당신은 내면 공간에서 에너지를 느낍니다. 

이건 생생한 삶의 에너지에요. 

 

이건 <존재>가 만들어 냈으며 일정한 형태가 없고 시간을 초월한 삶이에요. 

이것이 그저 삶의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의 에너지라고 상상하세요. 

이제 당신 내면은 사랑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졌어요. 

 

이 에너지는 <존재>라는 영원무궁한 원천에서 나와요. 이 원천은 마르는 법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가득 채우는 사랑도 결코 메마르지 않을 거예요. 

만약 이것이 그냥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의 에너지임을 절실히 깨닫는다면, 사랑의 에너지가 원천에서 한층 더 강하게 나올 거예요.

 

이건 그야말로 순수하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그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 신성한 사랑이에요. 당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이 사랑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한테서 멀어질 수 없어요. 그 원천이 당신 안에 있는 걸요! 

 

사랑의 원천에 깊숙이 뿌리 뻗어 거기서 단단히 뿌리 내린다고 상상하세요. 

이 원천이 늘 당신과 함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세요. 

이 원천이 당신에게 사랑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해요. 

당신은 이제 사랑을 어딘가 바깥에서 찾을 필요가 없어요. 

언제든 내면의 원천에 눈길 돌리기만 하면, 사랑이 충만한 상태를 누릴 수 있어요.

  

당신 자신이 곧 사랑의 원천임을 늘 분명하게 의식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덜 기대하고 덜 집착하게 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들과 더 건강하고 더 조화롭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한 관계를 맺을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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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창의적인 마인드 활용 방법 익히기 

 

마인드가 과거로 미래로 잡아끌면서 우리를 착각과 망상에 빠뜨린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여러 번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인드도 구체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유용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마인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즉, 마인드를 우리 <내면의 고요>와 결합하고 <참된 나>와 동일시할 때! 

 

알다시피, <참된 나>와 하나가 되면서 동시에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두 과정은 양립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생각이 (일절) 없는 상태와 사유 과정 양쪽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어요. (소위 말하는 ‘멍 때리기’가 그래서 필요해요.) 

어떤 과제를 해결할 때, 이런 사고 형태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왜냐구요?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생각하는 것을 내면의 지혜와 <존재>의 이성으로써 검증하고 수정하게 되니까요. 

 

우리네 마인드는 아주 쉽게 속아 넘어가고, 논리는 우리를 실패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존재>의 이성은 우리를 속이는 법이 없어. 
하지만 만약 어떤 논리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내면의 지혜만으로는 충분치 못할 수 있다. 이때는 우리네 평범한 마인드와 <존재>의 이성이 공조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실습 46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생각하세요. 

혹은, 어떤 의문점에 대해 찾고 싶은 답이라도 좋아요, 그걸 생각하세요.  

이 과제나 의문점을 마음속에서 요약하세요. 

 

다음에 주의를 자기 내면으로 돌리고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세요

이제 우리는 평정 상태로 들어서면서, 갖가지 잡념이 사라질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의식의 작동이 멈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1~2분 그렇게 몰입하면 충분해요. 

다음에 평소의 사고하는 방식으로 돌아오세요. 

이제 생각이 더 밝고 선명하고 창의적이 된다는 점을 알아차릴 거예요

 

과제에 대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억해 두세요. 적어 두면 더 좋습니다. 

다음에 다시 <참된 나>와 결합한 상태에서 내면 깊숙이 몇 분 동안 침잠했다가, 다시 보통 생각으로 돌아오세요. 이때 여러 생각이 이리저리 헤매는 게 아니라 과제를 숙고하는 데 집중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일반적인 생각 모드에서 내면의 평정으로 몇 번 오가다 보면, 사유 과정에 새로운 특성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이 상태에서 우리는 마인드로만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 전체로 생각하게 됩니다. 마인드와 내면의 지혜와 몸과 에너지가 다 사유 과정에 포함되어 작동하지요

이렇게 사유한 결과는 보통 생각 모드 때보다 훨씬 더 유용할 겁니다. 

 

이렇게 작업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죄다 적어 두세요. 

그 가운데 해결책을 몇 가지 적으세요. 

거기서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나중에 고를 수 있을 거예요.  

 

일반적인 생각 모드에서 내면의 평정으로 오가는 새로운 사유 과정

 

현재 순간을 믿고 받아들이고 내면의 지혜를 따름으로써, 우리는 <에고>가 극적인 사건들을 더 이상 일으키지 않는 생활 방식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리네 <에고>인데…

이 에고는 일상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보기를 꺼려하고, 과거의 모든 문제며 미래에 겁내는 것을 죄다 이 일상 상황에 붙들어 맵니다. 그 결과, 현실적인 것이든 상상의 것이든 두려움이나 재앙이나 불행 따위가 들어섬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가로막습니다

 

반면에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와 결합하면…

극적인 사건들이란 없으며 실제 삶만 있음을 알게 돼요. 실제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이며, 있는 그대로를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바꾸고 싶은 것은 바꾸라고 요구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에고>는 우리 삶의 여건을 부정적인 것 아니면 긍정적인 것으로 나누고 바꿉니다. 

한데, 생활 여건이란 사실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에요. 

그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일 뿐인데요. 

동의하기 어렵다구요? 현재 순간에 들어선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예요. 

어디 그뿐이겠어요. 현재 순간에 들어서면, 좋고 나쁘다고 하는 것을 전부 자신의 지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재앙과 불행 뒤에서도 빛을 볼 수 있어요. 

어떤 재앙들을 겪으면서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요.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을 비롯해 바깥세상의 것은 다 환상적이며 덧없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 안에만 있다. 
이 내면의 행복 상태에 의거하여 산다면, 그 어떤 재앙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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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내면의 목표 찾아내기, 무위 기법 익히기

 

목표를 향해 무턱대고 돌진해 봤자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외부 상황에 자기 마인드가 보이는 반응에만 의존해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그 무엇에도 이르지 못하거나, 혹은 단기적인 만족만 얻을 뿐인데, 이 만족 뒤에는 똑같은 불행이 또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행동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움직여야지요.

하지만 이건 마인드가 아니라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 <참된 나>가 지시하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참된 나>만이 진정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거짓된 나>는 거짓 목표만 잡는다. 

 

진정한 목표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내적인 목표란…

우리로 하여금 내면에서 <존재>의 빛을 발견하여 그 빛이 자신을 통과하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열고 자기 내면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도움 되는 것이 전부… 진정한 내적 목표입니다.

 

내적인 목표들을 세우고 분발할 때, <존재>가 우리를 돕기 시작해요. 하지만 그런 목표들이 애초부터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억지로 세울 필요는 없어요. 그 내적인 목표들을 따라가는 즉시… 우리 앞에 길이 환히 열립니다. 사람이며 책이며 지식, 의문에 대한 답, 내적 지혜로 접근, 또한 필요한 물질적 이점까지… 필요한 것이 다 저절로 들어옵니다

 

내적인 목표들을 좇는다 하여, 외부 생활을 중단하는 건 아니에요. 예전처럼 외적인 목표들을 세울 수 있고, 물질적인 것들을 즐기며 관능적 만족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이젠 우리의 행불행이 그런 것에 좌우되지는 않습니다.

내면에 있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임을 우린 확실히 알고 있잖아요?

그밖에 나머지는 다 한낱 게임일 뿐이에요. 게임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요. 그게 정상이에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기는 쪽에 베팅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패할까 봐 그리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설령 외적인 목표 달성에서 크게 낭패를 봤다 해도, 그걸 기회로 내면에서 <참된 나>와 <존재>의 빛을 발견함으로써 내적 목표 달성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에크하르트 톨레는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외적인 패배가 내적인 승리로 바뀌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즉, (예를 들어, 부를 얻거나 출세하는 등) 외적으로 뭔가 성공한 사람이, 성공하고서도 영적 측면에서는 가난뱅이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설파한 것이죠. 

“사람이 세상을 다 얻고도 제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마가 8:36).

 

우리는 바깥세상을 완전히 떠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 목표들을 세우지 않을 수 없어요. 이때 최상의 선택은…

“이걸 원해, 저걸 갖고 싶어. 아니, 저것도 하고 싶어” 하고 속삭이는 <에고>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고 꼭 필요한 목표들만 추구하는 겁니다

영양가 없는 목표들은 세우고 추구해 봤자 계속 안달하면서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것 외에는 남는 게 없을 거예요.

 

그런 삶을 피하려면, 무위라는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무위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무위(無爲)란… 제 생각이나 힘을 섞어서 무리하게 목표를 잡지 않고 인생이 건네는 과제들을 삶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해결하는 상태입니다. 

 

무위(無爲)란… 인생이 건네는 과제들을 삶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해결하는 상태

 

삶은 우리에게 순간순간 최선의 방법들을 속삭이고 성공의 문으로 이끌면서 행복의 기회를 건넨다.
그러나 이 기회는 <지금> 순간에 있는 사람만이 보고 활용할 수 있다.

 

삶이 제시하는 이 행복한 기회들을 따르는 것이 바로 무위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나>의 목표를 좇는다면, 헛되이 바쁘기만 해서 성공의 문이 열려 있는 것도 보기 힘들어요. 이 문들이 때론 아주 가까이에 있어요. 늘 현재에 있어요. 과거에 갇혀 있거나 미래에 지나치게 눈길 돌리고 있다면, 당연히 이 문들을 못 보고 행복해질 기회를 놓치겠지요.

 

사냥꾼처럼 <지금> 순간에 머물면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행복의 기회를 추적해야겠어요. 그러면 부주의하거나 산만해지지 않고, 그 덕분에 늘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곳에 있게 될 겁니다. 

 

  실습 44  

 

미리 어떤 목표를 잡지 않고 계획도 없이 그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움직이며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행하기만 한 적이 있었나요?  누구나 살면서 그 비슷한 것을 한 번이라도 겪어 봤을 거예요. 그런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달리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한 발 앞서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않고 그저 매 순간만 따르면서 뭔가를 자연스럽게 저절로, 혹은 직관적으로 행한 경우 말이에요. 

예를 들어,

1) 아주 복잡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끼어들기 같은 걸 아예 단념하고 다른 차량들 흐름이나 신호등에 맞추어 자동차를 몬 적이 있지 않겠어요? 혹은,

2) 여럿이 함께 운동하거나 춤을 출 때도 (전체적인 틀은 있겠으나) 순간순간을 계획하면서 움직이지는 않잖아요? 아니면,

3) 잘 안 풀리던 문제의 해결책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산책하거나 누구와 대화하는 중에 퍼뜩 떠오른 적이 있었을 거예요.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이 어땠나요? 그 느낌이 중요해요. 

 

“어, 꽉 막힌 도로에서 용써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니까 외려 마음이 편해지던 걸.”

“팀원들 속에서 그때그때 그들 움직임에 맞추니까 더 신나던 걸.”

“영감이 번쩍 찾아드는 순간, 날아갈 것 같았지, 뭐.”  

 

그런 느낌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든 게 잘 풀렸을 겁니다. 

비록 사전에 아무런 계획도 잡지 않고 각 단계에서 어찌어찌 하겠다 구상도 안 했는데 말이에요!

별 생각 없이, 이른바 순리에 따른 것이에요. 

 

이게 바로 무위 상태인 것이니…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하긴 하는데, 그게 마치 자연발생적으로 수행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굳이 염려하지 않아도,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지는 느낌이 들어요. <존재>와 하나가 될 때, <존재>는 그렇게 작용합니다 

 

이제 눈을 감을까요. 

그런 순간들에 느낌이 어땠는지 떠올리면서 그 상태로 다시 들어서는 겁니다. 

생각은 필요 없어요, 죄다 내려놓고, 현재 순간에 머물면서 그때의 느낌을 (혹은, 감각적 체험을) 좇아가세요. 

그리고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면서,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상상하세요. 

이 순간의 바람이나 갈망은 <참된 나>가 가리키는 진짜일 거예요. 그걸 따르면 되겠어요. 

 

만약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직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그것이 올바른 목표와 갈망, 나아갈 방향을 속삭이게 하세요. 

 

이 순간 물음에 대한 해답이며 중요한 과제의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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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형태들의 세계에서는 행복과 불행이 같은 것이야

 

이런 점을 한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왜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나요? 

왜 늘 뭔가를 원하고 그걸 얻으려 애쓰나요? 

그 이유는 딱 하나…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 아니겠어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를 이루면 고대하던 행복이 마침내 오리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온힘을 다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요. 이때 어떤 일이 생기나요? 

현재 순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미래를 위해 분발하면서 ‘그때가 되면 아주 좋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만 살기 쉽습니다. 그 결과… 현재에서 행복할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지금 있다’는 기쁨과 평온과 만족스러움을…
현재 순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거기에 다 들어 있는 것을...
누리는 기회를 스스로 내팽개치는 셈이다.

 

그러나 목표가 이뤄졌다고 쳐요. 예를 들어, 원하던 대로 부자가 됐어, 혹은 몇 년 동안 꿈꾸던 집으로 이사했어, 혹은 내 짝을 만났어… 그때는 정말 행복하지요. 드디어 꿈이 이뤄졌어, 다 좋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 행복감이 평생 지속될 것 같나요? 일이 년, 십 년, 이십 년 지나서도 역시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물론, 아니에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형태들의 세계인 바깥세상에서는 모든 게 끊임없이 달라지니까

 

만약 우리네 행복이 형태들의 세계인 바깥세상이나 외부 환경이나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다면…
그런 행복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우리한테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 사라지거나 바뀔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외적인 것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나'를 찾기 - 분리, 동일시

 

'나'를 찾기 - 분리, 동일시

 "내 구두가 나는 아니야!" - 멋진 자동차를 한 대 뽑았어요. 신나지요. 괜히 '폼'도 잡고 싶고... 그런데 어느 날 옆구리에 흠집이 난 걸 발견했어요. 속상해요, 안 해요? 화가 나요, 안 나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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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톨레가 한 여배우를 예로 듭니다.

그녀는 젊어서 아주 예뻤고, 그래서 기쁘고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노년기에 아름다움이 사라지면서 기쁨과 행복감도 사라졌고, 그러자 자신이 아주 불행하다고 여기다가 결국 은둔자가 되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자기 외모와 동일시하지 않고 내면의 영원한 삶과 동일시했다면…

자신의 노화를 차분하고 평온하게 지켜볼 뿐 아니라 내면의 진정한 영적 아름다움을 발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 내면의 아름다움은 바깥 껍질을 통해 한층 더 빛났을 것이며, 그 결과 외적 형태의 (육체의) 노화 과정이 더 늦춰질 수 있었겠지요. 

 

한마디로, 에고가 열심히 쫓아다니는 행복은 지속적일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이 행복에 뒤이어 그 반대되는 것이 늘 따라붙게끔 설계돼 있어요. 즉, 만약 오늘 뭔가를 얻어서 행복하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없어질 테고 그러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상승 뒤에는 늘 하강이 뒤따르고, 그러다가 또 상승하고 또…

세상살이가 실제 그렇지 않나요? 여기에는 영구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행복이 오면 그 뒤에는 늘 그와 전혀 다른 것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행복을 추구할 때…

즉, 외적인 뭔가로 이뤄지거나 얻는 행복을 추구할 때…

사실은 환상을 좇고 있는 겁니다.

그런 행복은 어차피 사라지며 정반대의 것으로 바뀔 텐데, 그걸 얻기 위해 힘과 에너지를 많이 허비하고 있는 겁니다

 

행복과 불행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에크하르트 톨레는 행복과 불행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행복이 불행이 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게 됐다시피) 시간이 환상이기 때문에 행복과 불행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행복과 불행이 같은 것이라고? 저런, 무섭고 끔찍해라!” 이런 느낌이 드나요? 

하지만 더 알고 나면, 여기에 나쁘거나 무섭거나 끔찍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며 Up과 Down이 있어요. 꽃이 피면 지고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인생도 그래요. 이게 자연스럽고 정상이에요. 이런 자연적인 과정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 대목에서 노파심이 좀 드는군요. 혹시…

‘흠, 그렇다면, 어차피 사라질 것이며, 어차피 안정된 진짜 행복을 주지도 못하는 외적인 뭔가를 얻고 이루려고 온힘을 쏟을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나요? 

 

지금 우리 얘기가 세상사에 무관심이나 반감, 무노동, 무위도식 혹은 나아가 부정적인 태도를 부추기자는 건 물론 아닙니다. 진짜 행복의 원천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원천은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존재>요 우리의 <참된 나>입니다. 

이건 그 무엇에도 전혀 좌우되지 않는 행복의 원천이에요. 마르지 않는 행복 샘이에요. 

현재 순간과 연결되고 내면의 <존재>에 들어서면, 우리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평온하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어요. 우리가 알다시피, 이건 바깥세상을 피해 움츠러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요. 내면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는 바깥세상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고 행동하는 힘과 가능성을 가외로 얻게 됩니다

 

바깥세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외부 환경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 것…
이건 불필요한 목표에 힘을 허비하지 않고, 정말 필요한 것만 얻으면서,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취하면서,
걱정근심 없이 차분하고 행복하게 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실습 43  

 

이 실습을 통해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모든 물리적 형태와의 동일시에서 더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누워서 눈 감고 자신의 <내면의 몸체>로 가라앉으십시오. 

 

그 에너지를 느끼세요. 

이 내면의 <에너지 몸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자신의 <참된 나>와 연결합니다. 

이 <나>를 에너지처럼 느끼세요. 

즉, 형체가 없고 나이도 이름도 사회적 역할도 없는 무엇인가로 느껴 보십시오

 

물리적 형태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기 실습

 

자기 몸을 <내면의 목격자> 눈으로 인식하세요. 

이 몸이 녹는다고 상상하세요. 

몸이 한층 더 가볍고 투명해져요. 형태를 잃고 공간과 하나 되어 완전히 무게를 잃습니다. 

 

이때 당신의 <나>는 간직됩니다. 즉, 당신은 그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이 공간이 되고 공허가 되지만… <진정한 나>로서는 사라지지 않으며, 내면에 깊이 뿌리 내린 상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공간에서 녹아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환희와 흔쾌함을 느낄 거예요. 

 

호흡에 집중하면서 다시 몸을 느끼세요. 

내면에 뿌리 내린 상태를 계속 유지하세요. 

이제 눈을 뜨고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세요. 

지금 보는 모든 것에는 이름도 정의도 없다고 상상하세요.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하고 그에 관해 판단도 하지 않아요. 

당신과 세상 사이에 마인드가 걸어놓은 라벨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늘 갱신되어 항상 새로운 <존재>를 형태들의 세상 뒤편에서 보세요. 

형태들 세계 바깥에서 이 <존재>를 인식하는 상태에 원하는 만큼 머무르십시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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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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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6) 고통의 몸체 녹여 없애기

명상, 호흡 관찰

'나'를 찾기 - 분리, 동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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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사는 길  

 

  형태의 수준에서는, 형태들의 탄생과 소멸, 창조와 파괴, 성장과 하락이 있다. 
이건 어디에나 다 반영되니… 
별이나 행성, 천체, 나무와 꽃 등의 생명 주기에, 
국가와 정치체제, 문명 등의 흥망성쇠에, 
개개인 삶에서 획득과 상실이라는 필연적 순환에 다 반영된다. 

부처는 우리의 행복조차도 고뇌나 고통인 dukkha라고 설파했다. 
행복에는 그 반대되는 것이 필히 따른다. 
우리네 행복과 불행이 사실상 하나라는 의미이다

 

<에고>가 세우는 거짓 목표들을 거부하라

 

“나한텐 목표를 달성하려는 끈기와 의지가 부족해.” 

“앞으로 나아갈 동기가 충분치 않아.”

“난 좀 게으른데다가 과단성도 부족한가 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자책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십시오. 

 

‘내 안에 있는 누가 이렇게 거세게 움직이기를 바라는 거야?’

‘누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원하는 거지?’

‘누가 나를 영원히 멈추지 않는 질주로 내모는 것이야?’

 

그렇게 자문해 보면… 대부분 경우 이런 대답이 나올 거예요. 

“이건 <참된 나>가 아니라 <에고>가 그렇게 하는 거야!” 

 

(자기도취, 이기심, 우월감, 지배욕 따위에 사로잡힌) 에고는 늘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건 놀랍지도 않은 것이… 에고는 현재 순간에 머문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그 결과, 차분하고 만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요. 에고는 늘 볼이 부어 있고, 그래서 늘 자신에게 없는 뭔가를 얻고 싶어 합니다.  

 

에고는 늘 우리한테 속삭이고 다그쳐요. 

“해야 돼, 해야 돼! 이걸 해, 저것도 해! 여기로 와, 저기로 가, 어떻게 좀 해 봐! 빨리, 더 빨리!!” 

우리를 게으름뱅이라 부르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탓하며 욕하는 것은… 바로 <에고>입니다.  

 

 

그러면 에고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고요하고 평안한 상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평온한 상태에서는 자신이 노출될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멈추어서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다가 무심코 자기(에고)를 보게 될까 두려워서… 에고는 어떤 목표들을 향해 돌진하라고 재촉하면서 우리를 끝없이 불안하고 공연히 분주한 상태에 잡아둡니다.

 

이런 입장이 혹자에겐 너무 앞서 나간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죠. 

“아니, 그렇다면… 우리의 갈망이나 목표가 다 <거짓된 나>와 에고가 강요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원하지 말고 그 무엇으로도 돌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한마디로…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하면 거기서 삶이 멈추지 않을까? 우리 인류가 몽유병자 집단 같은 것이 되어서 활동할 생각은 없이 꼼짝도 않고 명상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 말아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지구상의 삶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끔’ 설계돼 있으니까요. 살려면 활동도 하고 세속적인 재화에 관심도 가져야지요. 물질이란 다 썩기 마련인 만큼, 우리가 보살피지 않으면 아주 빨리 쓸모없게 되잖아요? 게다가 세상살이 여건이 녹녹치 않아서, 우리에겐 먹을거리가 필요하고 악천후도 막아야 해요. 또한 우리는 최대한 편안하고 쾌적하게 살기를 원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은 물론이고 생활 여건을 위해서는, 또한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관심 기울이고 활동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지상에서 그냥 벌어지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지식 얻고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서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서점에 가야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컴퓨터를 켜야 하잖아요? 

 

이런 이유에서 사람이 (인류가) 완전히 행동하지 않는 상태에는 이를 수 없을 거예요. 게다가 행동하려는 충동이 에고나 <거짓된 나>가 아니라 <참된 나>와 <존재>에서 나올 수 있고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존재>가 우리를 인도할 때… 그때 우리 행동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때는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대로 정확히 해내면서도 힘은 훨씬 덜 소모합니다.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쓸데없이 허겁지겁 움직이게 하지 않아요. 

<존재>는 우리를 무의미한 목표와 행동으로 내몰지 않아요. 

이런 짓은 에고만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가만 보면, 자신의 <거짓된 나>에 의해 움직이는 까닭에 헛되이 부산떨고 무의미하게 행동하면서 삶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가요!  

 

만약 <참된 나>가 항상 우리 행동을 주도한다면… 실패나 패배나 좌절 같은 것은 모를 겁니다. 정말 필요한 것을 늘 얻으면서, 언제나 행복하고 평온하고 만족하는 가운데 자신이며 세상과 조화롭게 살 겁니다. 

 

‘하아, 거 참 동화 같은 얘기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힘겨운 생활이며 파란만장한 삶에 지나치게 익숙해지고 거기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상에서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실제로 누릴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실습 42  

 

‘이것만 달성하면 난 행복해질 거야’ 기대하면서 그 동안 세웠던 목표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 그 기대가 적중했나요? 아니면, 웬만큼 채워졌나요? 

- 결국에 정말로 행복하게 느꼈다면… 그것은 씁쓸함이나 실망 같은 것이 전혀 섞이지 않고 진정 순수한 행복이었나요? 그 행복이 오래 가던가요? 

- 예전 언젠가 이러이런 목표들을 달성한 것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끼나요? 

-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였는데, 그에 비해 얻은 것이 훨씬 적은 것 같지는 않았나요? 

 

 

자신의 사례에서 분석하기 어렵다면… 다른 이들의 경험을 참조해 보세요. 

 

어렵게 이룬 행복조차 영원하거나 불변일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행복을 열심히 좇아가 잡았는데 기대한 결과를 전혀 얻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점에도 주목하세요. 

 

이번에는 그동안 살면서 있었던 이런 순간들을 떠올려 보세요. 

즉, 그 무엇도 딱히 열망하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금 있고 존재하면서 행복 추구가 아니라 실존을 즐겼던 순간들을 기억해 보세요. 

 

이를테면, 휴가 중에 누린 짧은 순간순간이 그런 것 아닐까요? 

어쩌면 그건 원하던 목표를 이루면서 맛본 것보다는 더 차분하고 조용한 행복의 상태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바로 그런 것이 더 참된 진짜 행복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지금 여기 있음’에서 나오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우리가 누릴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는 욕망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둬야겠습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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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고와 고통의 몸체

(3) 깨달음이란?

깨달음 추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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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수용하고 승복하는 연습  

 

물러서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은… 

치유에 필요한 올바른 진단

 

에크하르트 톨레는 물러서고 승복하는 상태를 무관심과 혼동해선 안 된다고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뭔가를 괴로워하기에 진저리나거나 뭔가에 맞서다가 지칠 때 우리는 “난 두 손 들었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이젠 지겨워졌어‘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사물의 자연적인 과정에 승복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무관심은 (혹은, 냉담은) 은밀한 저항과 똑같은 것이다. 

 

무관심이나 냉담은 은밀한 저항이다.

 

무관심 역시 저항의 한 형태인데, 단지 위장된 것일 뿐이에요.

<지금> 순간에 있으면서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승복한다는 것은…

일어나는 것에 무관심해진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외려 정반대에요. 즉, 무관심이란 현재 순간에서 벗어남이요 현재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음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에 무심할 수 없어요.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면…

고통은 더 이상 없게 됩니다. 고통은 불만과 불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고통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자각의 특별한 상태는 그렇게 무관심이나 고통과 양립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특별한 자각 상태란 무엇인가?

바로 승복하는 상태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우리가 진정 승복할 때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온과 선명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해요. 마치 우리 의식이 내면의 빛으로 갑자기 밝아진 것처럼 말이죠. 

이건 <존재>의 에너지가 우리한테 밀려와서, 그 덕분에 우리가 눈을 뜨고 더 높은 수준에서 진동하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바로 이 때문에 깨달음이 승복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에요.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승복하지 않고서는 깨달음이 불가능하다. 

 

승복이란 완전히 내적인 상태이자 의식의 상태라는 점에 다시금 주목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승복하면서도 외적 수준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여러 목표를 달성하고 자기 이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꽃이 피면 지는 것처럼 사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는 승복할 필요가 있지만, 나쁜 뭔가에 승복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누군가가 하라고 요구한다 해서, 따를 의무는 없어요. 우리한테는 “아니요”라고 말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해도, 불필요한 해석과 판단과 부정적 감정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승복하는 데 어떤 내면 자세가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더 쉽게 이해되게끔 이런 비유를 들어 볼까요.

이를테면, 울창한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칩시다. 이럴 때 흔히 보이기 쉬운 반응은…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에 저항을 하지요.

그래서 당황하여 이쪽저쪽으로 오가다가 결국 한층 더 낯설고 외진 곳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더 버둥댈수록, 올바른 길을 택할 가능성은 더 줄어듭니다.

 

그러나 만약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고 “음, 내가 길을 잃었군. 이게 사실이야. 이건 현실이야”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면…

기정사실이며 실제 현실을 대하는 만큼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겠지요. 

이제는 현실 부정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만큼, 그 다음에는 만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될 겁니다

패닉 상태에 빠져 허둥대는 대신 자신을 추스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진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발견하거나, 혹은 태양이나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삼거나, 혹은 자신의 직관이 가리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겠지요. 

 

한마디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제대로 진단할 때 비로소 올바른 치료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나에게 어떤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동안에는…

치료할 까닭이 없으니, 당연히 치료하지도 않아요. 병은 더 깊어지는데 말이죠.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승복(承服)의 의미입니다. 

 

승복한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잘 이해하고 인정하고 따른다는 것은)

“됐어, 이놈의 병 때문에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지. 난 치료받지 않고 그냥 살래”

하는 뜻이 아니에요. 

그걸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 난 병들었어. 이게 사실이야. 앞으로는 이런 사실을 참작해서 행동할 거야.’ 

 

운명에 순종함을 승복하는 자세와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할 수 없지, 이렇게 된 바에야 여기서 살래” 하고 말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은 승복이 아니라, 운명에 맥없이 복종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싸움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진창에 빠졌다 해서, “이제 여기서 평생 살 거야.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하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이 경우에 진짜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그래, 난 진창에 빠졌어. 이게 현실이야” 하고 인정한 뒤, 그 현실을 기점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서는 것이겠지요.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만물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합류하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승복하고 물러선다 해서 세상이 달라지고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과 상황을 바꿀 수 있게끔 바로 우리 자신이 내면에서 변모한다는 것이다. 

 

  실습 40  

 

살면서 어떤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한 적이 있었나요? 

그런 상황을 어떤 것이든 떠올려 보십시오.

 

예를 들어, 금전 문제나 주거 문제라든지, 아니면 복잡한 대인 관계에서 탈출이나 무질서한 생활 다잡기 등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불만 품는 상황이 다 해당되겠어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느껴지고 나타나나.

 

현재 순간에 들어가서 자신의 <참된 나>와 연결하고 <내면의 목격자> 상태로 들어선 뒤, 현 상황에 불만과 저항이 있다면(!) 그게 어떻게 느껴지고 나타나는지 추적해 보세요. 

 

예를 들어, 

‘뭔가에 화가 나는데, 왜 참아야 하지?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 같아.’ 

‘그 일이 잘 안 풀려서 맥 빠지네.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있어.’

‘음, 뭔가 삐딱한 이 상황에 좀 더 공격적으로 맞서서 바로잡아야겠어.’ 등등.  

 

하지만 그런 생각이나 감정은 다 마인드와 그것이 만든 <거짓된 나>의 술책임을 깨달아야겠지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지금 여기에 있자. 이 순간에 존재하자. 있는 것만 보자.” 

 

더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은 상황에 손전등을 비추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이건 당신의 깨어 있는 의식의 광선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이 불빛 아래 드러나는 게 진짜 있는 것이야. 이게 실제이고 현실이야. 나는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받아들인다.”

 

불만에 차고 저항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현재 순간이라는 토대 위에서 마음속으로 그려 보십시오. 

‘불쾌함이나 저항, 부정적인 감정을 없앤다면, 이 상황에서 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까?’ 

 

점검한 뒤 어떤 가능성이 나타난다면, 그렇게 움직이면 됩니다.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 결과에 집착하지도 말고, 한 번에 한 가지 행동에만 집중하면서 한 단계씩 나아가세요. 

그리고 이 전체 과정에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계속 머무르세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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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수용하고 승복하는 연습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에고는 아주 종종 우리를 여러 망상으로 이끕니다.

때로는 거의 전 인류가 이런 식의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자는 강하고, 물러서고 승복하는 이는 약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되지요

그런 식의 대중적 망상은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아직도 자각하지 못하고 영적 동면 상태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떻게 저항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먼저 ‘내가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저항하는지’…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참된 나>를 받아들임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부터 인식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 가면에 붙들려 있고, 자신에 대해 자기나 누군가 타인이 생각하는 것에 집착합니다

 

이건 분명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에고>가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에고가 가로막고 나설 거예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도 이렇게 쉽지 않은 마당에, 삶을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받아들이려 할 때 에고가 가만있겠어요? 그리 즐겁지 못한 상황과 감정들까지 포함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려 할 때는 또 어떻겠어요? 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만약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아직은 힘들다면,

자신을 받아들이는 실습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실습 39  

 

종이에 원을 하나 그리고, 한가운데에 ‘나’ 글자를 큼직하게 적으십시오. 

이건 <존재>의 일부로서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일부인 나

 

당신이 살면서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을 ‘나’ 글자 주변에 나열하세요. 

1) 직업, 직위, 사회적 역할 등을 적어 보세요.

2) 다음에는 (엄마, 남편, 딸 등) 가정에서 역할을 적으세요. 

3) 또한 자신을 구별하는 데 익숙한 다른 정의를 기입하세요. 예를 들면, 우표 수집가, 아마추어 등반가, 사회운동가, 어떤 종교나 영적 운동의 신봉자 등. 

 

당신이 보기에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정의를 원 중심에 더 가까이 두고, 자신과 덜 동일시한다 싶은 것을 원 가장자리에 더 가까이 두십시오. 

 

그런 다음에 <지금> 순간으로 들어서서 자신의 <참된 나>와 연결하세요. 

다음엔 원 가장자리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자신에 관한 정의를 읽으면서, 각각에 “이건 <나>가 아니야” 하고 덧붙이세요.

 

각 항목을 그렇게 넘어갈 때마다, 내면의 저항이 어디서는 더 크고 어디서는 더 작게 생길 겁니다. 어떤 항목에서 저항이 특히 강하다면… 바로 그 역할이나 기능을 <에고>가 특히 단단히 쥐고 있다는 뜻임을 알아두십시오. 

 

모든 역할이나 기능에서 자신을 금방 분리하기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가정에서의 역할과 분리되기가 특히 힘들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겠습니다. 

 

자신과 그 역할을 분리한다는 것이…
남편이나 아내, 엄마나 아버지, 아들이나 딸의 역할 수행을 그만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꾼다는 뜻일 뿐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역할이라 해도…

그건 어차피 역할에 불과한 것임을 기억해 두십시오.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한시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진정한 본질은 영원하고 불변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어떤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 옷이 되지는 않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네 진정한 본질이 여러 역할과 기능에 적합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을 한다 해서 그 역할이 곧 <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나야. 나는 자신의 <참된 나>를 받아들인다. 나는 바로 나야. 나는 <존재>의 일부야. 나인 것이 바로 나야.”

 

그렇게 분리하는 실습을 매일 수행하다 보면,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이전보다 더 잘 수행하게 됐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생기는 까닭은…

어떤 역할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자유를 주며, 사물의 자연스러운 추이에 따라서, 즉, 삶과 세상과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면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덕분이에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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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호흡 관찰

'나'를 찾기 - 분리, 동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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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수용하고 승복하는 연습  

 

인생을 오래 살았다면,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을 안다.
  인생에서 고통과 슬픔을 없애고 싶다면, 그런 경우에 승복할 필요가 있다.
  있는 것을 수용하는 즉시 마인드와 동일시에서 벗어나며 <존재>와 다시 연결된다.
저항은 마인드가 하는 짓이다. 승복은 순전히 내적인 현상이다. 

 

승복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 자신을 맡긴다는 뜻

 

양보, 용인, 승복... 무엇에?

 

우리네 마인드는 현재 순간에 저항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거기엔 이유가 있어요. 마인드가 현재 순간을 겁내기 때문이에요. 삶이 매 순간 새롭게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라는 순간은 늘 새로운데, 이 새로운 것을 우리네 평범한 마인드는 두려워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유지하려고 애써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을 마인드와 동일시한다면,

우리도 역시 새로운 순간을 겁내고 거기에 저항하고, 그래서 현재 순간에서 떨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 순간에서 떨려난다는 것은…

삶에서 내몰린다는 뜻 아니겠어요?

게다가 현재 순간에서 떨려난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고통에 몰아넣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항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에 맞설 때, 우리에겐 불만과 고통이 반드시 따라붙는다.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으로 에크하르트 톨레가 제시하는 것이…

<현재 순간 받아들이기>입니다. 이걸 배우기 위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그 개념을 더 깊이 알아볼 시간이 됐습니다.  

 

그건… 현재 순간에 우리가 접하는 것이 전부 실제이며 그것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인정은 이성에서 더 많이 나올 겁니다. 

현재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또한 거기에 푹 잠겨 그 안에 머물면서 그것을 저항 없이 따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에크하르트 톨레는 수용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 개념을 더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 승복이란 단어를 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이 대목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승복을 우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절대 굴하지 마, 단념하지 마!” 하고 말하는데, 이건 아주 적절하고 올바른 촉구입니다. 또, 자신의 훼손된 권리를 법적 근거에서 옹호하는 사람한테 “자네 입장을 포기하지 마, 양보하지 마!” 하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단어라도) 다른 맥락에서 쓸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존중하는 사람이나 연장자에게 길을 기꺼이 양보합니다. 

돛을 달고 항해하거나 서핑을 한다면, 바람이나 파도의 힘에 굴할 수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길을 갈 때, 우리를 이끄는 권리를 강한 리더에게 맡기면서 스스로 길을 택할 권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강렬한 느낌이나 열정을 좇음으로써 외려 자유롭고 편안하며 삶의 흐름에 어렵잖게 올라탄다고 느낄 수 있어요. 

 

이렇게 보니까, 양보나 승복이라는 개념이 자기 권리를 내던지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등 뭔가 나쁜 쪽과 연관된 것만은 아니로군요. 사실, 세상 거의 대부분의 것은 상대적이지 않겠어요? 

승복한다는 것이 마뜩치 않은 것을 따르거나 나쁜 뭔가를 꾹 참는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그렇게 할 필요는 정말 없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나쁜 것에 승복한다는 게 아니라…

현재 순간에 승복하며, 지금 여기 있는 것과 진짜 현실과 <존재>에 승복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괴로워하고 불만이나 불안을 느낀다면… 이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 내가 지금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고 있구나!’ 바로 이것입니다. 

이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있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지금 여기 있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예요. 

 

만약 삶에서 뭔가가 마음에 안 든다면, 우리는 바꿀 수 있어요.

참기만 하면서 계속 고통 받아선 안 돼요.

그러나 뭔가를 바꿀 수 있으려면…

먼저,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에크하르트 톨레저항하지 않는 것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저항하기를 멈추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원천인 <존재>에서 우리한테 힘이 들어올 테니까요. 게다가 저항이며 저항에 수반되는 부정적 감정에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지금>이라는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임이요 거기에 거스르지 않음을 뜻한다.
만약 삶을 우리가 거기에 섞여 따라가는 흐름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현재 순간에 머무는 것은 찰나적인 느낌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 될 것이다.

 

 실습 37  

 

혼자 떨어져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으십시오. 

주의를 내면으로 기울이고 <지금> 순간과 연결하세요.

 

망망대해의 일부분인 파도라고 자신을 상상하자.

 

자신을 파도라고 상상하십시오. 

우리는 다 망망대해의 일부분입니다. 

우리 각자는 그 드넓은 바다가 지닌 힘의 일부요, 바다에 깃든 평온함의 일부입니다. 

그 힘과 평온함이 이제 파도가 된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면서, 우리는 해면을 따라 천천히 부드럽게 굴러갑니다.

 

우리는 다 파도에 실려 떠다니는 나무토막이 아니라 자체의 힘을 갖고 있는 파도에요. 

그러나 파도의 힘이 바다의 힘을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파도는 바다와 한 몸입니다. 

파도는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몸에서 긴장이 사라지는 걸 느껴 보십시오. 

바다와 결합되어 바다의 힘으로 움직이는 파도의 자유로움과 힘을 느껴 보세요.

또한, 자신을 자연의 깊은 힘으로 움직이는 강한 흐름이요 해류라고 느껴 볼 수도 있어요. 

이제… 우리의 삶도 역시 흐름이며 우리 각자는 그 흐름의 일부라고 상상하세요. 

이 삶의 흐름과 하나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바다 위를 거니는 파도처럼 힘과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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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고통의 몸체> 변환하기  

 

부정적 성향으로 <고통의 몸체> 키우지 않는 방법

 

고통의 몸체는 생명체처럼 늘 자양분이나 먹이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자양분은 그것을 구성하는 에너지와 비슷한 에너지에요. 

바로 아픔과 고통의 에너지입니다. 

 

고통의 몸체는 아픔과 고통의 에너지를 먹고 큰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몸체는 우리로 하여금 불만이나 모욕감, 적의, 짜증, 초조함, 우울함, 나쁜 기분 등을 갖도록 자꾸 자극하고 도발합니다. 자기가 크기 위해 필요하니까요

 

만약 달라는 대로 먹이를 준다면…

고통의 몸체는 거대해져서 우리 삶에 아픔과 고통을 더 많이 초래하겠지요.

아픔에서는 아픔만 나오지 않겠어요? 거기서 기쁨이나 행복, 성공이 나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고통의 몸체가 원하는 자양분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하지만 잠시도 방심하지 말고 그러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늘 현재 순간에 머물면서 <에고>가 아니라 <참된 나>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그 어떤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부정적 감정들이 날뛰게 놔두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떤 상황에서 고통의 몸체가 도발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추적해야겠지요. 

 

우리 삶에서 발생하는 상황들뿐 아니라 밖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 역시 우리한테 도발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매스컴이나 서적, 영화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많은 이들의 <고통의 몸체>에 먹이를 주는 경우가 아주 잦습니다

황색 언론과 티브이는 있는 그대로의 뉴스를 전하는 게 아니라 때때로 뉴스라는 형태로 부정적인 감정들만 전하는데, 그것이 바로 고통의 몸체한테 자양분이 됩니다

(*이런 점을 알게 모르게 느끼고 감지하는 이들이 뉴스 시청을 자연스레 거부하게 됩니다.) 

 

그런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자신이 고통의 몸체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자양분을 자꾸 공급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 의식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살피고 의식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개인적인 고통의 몸체뿐 아니라 집단적인 고통의 몸체도 우리에게 아주 종종 영향을 끼친다고 말해요.

고통은 모든 인류의 집단 심리에 들어 있어요.

수많은 전쟁과 노예제, 탄압, 갖가지 폭력 등의 유산이고 잔재입니다.

 

인류의 힘겨운 역사 때문에 지상의 갓난애들은 다 이미 고통의 몸체를 웬만큼 갖고 태어납니다.

인간의 고통은 유전적으로 대물림됩니다.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모든 인종에게는 나름의 집단적인 고통의 몸체가 있습니다.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나름의 아픔덩어리가가 있습니다.

 

집단적인 고통의 몸체는 종종 매스컴이나 인터넷, 대중문화, 대중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작용해요.

진정한 예술은 언제나 빛과 진실을 가져다줘요.

그러나 집단적 고통의 몸체에 먹이를 대주기만 하는 대리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한테 들어오는 정보를 다 정신 바짝 차리고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집단적 고통의 몸체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어요. 그것이 우리한테 끼치는 영향을 의식하기 시작한다면 말이죠. 

 

당신의 아픔덩어리가 외부 정보나 자극으로 인해 잠을 깬다 해도 자신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그저 늘 조심하세요. 그러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각 상태에서 그런 선동적인 작용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자신의 주의를 기울여 변화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실습 35  

 

어떤 종류의 외부 영향이 당신의 아픔덩어리를 잠 깨우는지 추적해 보십시오. 

 

어떤 뉴스나 영화, 글 등을 대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맛보게 되나요? 

무엇이 당신을 초조함이나 울적함, 좌절 상태에 빠뜨리나요? 

어쩌면, 인터넷 소통, 혹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 혹은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 것 같으면서도 기분을 망가뜨리고 상태를 나쁘게 만드는 듯한 뭔가가 있나요?

 

당신의 아픔덩어리를 잠깨우는 외부 영향

 

당신 고통의 몸체를 활성화하는 사건들이며 정보를 다 작성하세요. 

개중에 무엇을 지금 당장 거부할 수 있는지 정하고, 그렇게 하세요. 

 

만약 뭔가를 거부할 수 없다면 (예를 들어, 뭔가를 듣거나 읽어야 하는데, 그것이 당신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을 현재 순간에 완전히 머물면서 <내면의 목격자>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세요

 

동정심과 연민 때문이라 여기면서 다른 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함께 끌려들어가는 상황을 특히 잘 살펴보세요.

당신의 연민이 그들에게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두세요.

외려, 그 사람의 고통에 자신의 고통을 보탬으로써 고통을 배가하는 것이 되기가 쉽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금> 순간에서 인식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흐려지지 않은 객관적 장면을 본다면,

그게 더 큰 이로움을 안기는 거예요.

그런 경우, <존재>의 빛과 힘이 담긴 눈길과 주의를 광선처럼 거기에 돌림으로써 다른 이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어요.

이게 진정한 동정심이요 연민입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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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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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고통의 몸체> 변환하기  

 

고통의 몸체가 부정성으로써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

 

만약 앞의 실습을 수행하면서 어떤 저항이 들었다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우리가 이미 얘기했다시피, 고통의 몸체는 노출되는 것을 겁내기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를 무자각 상태로 몰아가며, 심지어 우리한테 어떤 고통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게 만들려 할 겁니다. 

 

고통의 몸체에 지배돼 살던 나

 

어떤 고통이 우리한테 실제로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걸 몇 해 동안 끌어안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 진짜 충격일 수도 있어요. 그런 자각 자체가 종종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해요. 

그래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왜냐하면, 고통의 몸체가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게 내 안에 있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치유도 가능하니까요.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아, 내가 예전에는 이 고통의 몸체가 지시하는 대로 살고 행동했구나’

하면서 자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정말 몰랐으니까요. 

 

<고통의 몸체>에 지배돼 저지른 행동을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어요. 

예전에 행한 것은 전부 그것의 행위요 결정이요 반응이었습니다. 

그것의 횡포에 저항할 힘이 우리한테 부족했을 뿐이에요. 

 

그러므로 자신을 꾸짖어선 안 됩니다.

자책과 자기비판에 빠지지 말아요.

죄책감을 안고 살면 안 돼요.

예전엔 우리가 본연의 삶 속에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고통의 몸체가 우리를 지배한 것이라는 점만 깨달으면 됩니다. 즉,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의 몸체가 선택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책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 상황에서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진정 존재하는 사람이 됐어요.

자기 자신 안에 있고 현재 순간에 존재해요. 

이제 우리는 일어나는 것을 전부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 맞추어 의식하는 자각 상태에 있어요. 곧, 이젠 우리의 <참된 나>가 우리 삶에서 결정하고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렇게 하기 위한 힘이 이젠 우리한테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우리가 삶에 존재하지 않고 힘이 없음을 이용하여 고통의 몸체가 선택하고 결정했다면,

이젠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한테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을 주는 것이 바로 현재 순간이에요. 

현재 순간에 있을 때, <존재> 자체와 그 힘에 접근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 힘으로써 고통의 몸체를 이겨내고 과거의 고통들에 사로잡힌 현실이 아니라 자신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어요. 

 

당신 삶에 있던 극적인 사건이며 불쾌한 일이며 문제는 전부 고통의 몸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건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을 비슷한 불행으로 잇달아 끌어들일 수 있다. 

 

전형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요. 

아버지가 엄마에게 못되게 굴고 술독에 빠져 살면서 딸을 갖가지로 학대하며 폭력까지 휘두른 가정에서 한 소녀가 살았다면…

성인이 됐을 때 이 여성의 아픔덩어리는 아버지와 비슷한 파트너를 선택할 개연성이 아주 높아요.

만약 그녀가 이 아픔덩어리의 에너지를 자각의 빛으로 바꾸면서 그것과 분리되지 않는다면, 유년기에 시작된 일련의 고통이 이후에도 계속될 겁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낯선 (괴물 같은) 에너지에 예속되고 지배받았기 때문에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이제 우리는 그런 것이 반복되지 않게 할 힘을 갖추었어요. 

 

고통의 몸체가 언제 또 부정적인 감정을 들쑤셔서 우리를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끌어들이는지 알아차리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런 일이 생기겠다 싶으면 즉각 행동과 생각을 멈추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됐어, 그만. 여기에 끌려드는 건 내 의지가 아니야. 난 다른 건 선택할래.” 

 

그렇게 자각된 자세를 통해 우리는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아주 빨리 바꿀 수 있습니다. 

 

  실습 34  

 

살면서 어떤 불쾌한 일이 생겼거나 뭔가 실패한 상황을 몇 가지 떠올리세요. 

그런 상황을 우선 서너 가지라도 들어 보세요. 종이에 간단히 적어도 좋아요. 

그리고 그 각각의 상황에 앞서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이 발생하기 전 자신의 상태를 기억하는 거예요. 

기분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에 휩싸여 있었는지 등을. 

 

아, 그래. 안 좋은 상황에 빠지기 전에 나에겐 부정적인 감정들이 상당히 컸구나

알게 됐을 거예요. 이를테면, 두려움이나 초조, 긴장, 짜증, 적대감, 뭔가에 대한 저항 같은 것이었어요. 

그 결과,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원치 않는 사건들에 뜻하지 않게 빠져들었어요. 

바로 이 파도에 떠밀려 불상사나 실패나 문제에 부닥치게 된 것이었지요

 

 

일련의 불상사가 생기기 전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잘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대답해 보세요. 

 

- 그때 나는 무엇을 하거나 하려 하는지 정말 잘 알고 있었나?

- 그때 난 자제할 수 있었나?

- 어떤 걷잡을 수 없는 힘이 나를 마구 내몬다는 느낌은 없었나?

-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하고 나중에 자신에게 말하진 않았나? 

 

만약,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에 휩쓸려서 바람직하지 못한 뭔가에 끌렸다면…

그건 고통의 몸체에 조종당했다는 표시입니다.

그것 때문에 자각을 잃고,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행동을 한 것이에요.

 

어쩌면, 당시에는 우리한테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달리 행동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사실, 선태의 여지가 없었던 건 맞아요. 왜냐면 그 상황에서는 우리의 <참된 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고통의 몸체가 대신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 고통은 새로운 고통을 낳기만 할 뿐이지, 다른 것은 전혀 낳을 수 없어요. 

 

그 상황을 다 이제 <참된 나>와 <내면의 증인> 입장에서 차례로 다시 살펴보세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세요. 

판단과 감정의 프리즘을 거치지 말고 선입견 없는 관찰자의 시각으로 보세요.  

 

그 각각의 상황에서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 행동 버전을 몇 가지 찾으세요. 

자신의 <참된 나>가 이끌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실제로 더 좋게 선택할 길이 몇 가지 있었음을 알게 됐을 거예요. 

단지 <거짓된 나>의 눈으로 보는 동안엔 그 길들이 보이지 않았을 뿐, <참된 나>의 눈으로 보면 반드시 보게 될 겁니다. 

 

만약 지금 삶에서 긍정적인 선택을 못 보는 상황이 있다면, 그것도 <내면의 증인> 관점에서 살펴보세요.

그리고 <고통의 몸체> 때문에 비생산적이며 해로운 결정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세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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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고>가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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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고통의 몸체> 변환하기  

 

우리가 겪는 감정적인 아픔은
과거의 아픔과 합쳐져서 우리 마인드와 몸에 기식하게 된다.

이 퇴적된 아픔이 우리 몸과 마인드를 점령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장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아픔덩어리, 혹은 고통의 몸체이다. 

 

과거의 아픔이 몸에 만든 부정적 에너지장 감지

 

깨달음 상태에 있지 못하는 동안에는… 

즉, 마인드나 에고나 <거짓된 나>가 아니라 <존재>며 <참된 나>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동안에는…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든 스스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어요. 때로는 아무 이유나 근거도 없이 마인드가 그냥 고통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아주 평온하고 쾌적한 상황에 있을 수 있는데…

하지만 갑자기 어떤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요. 우리 생각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거나 과거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기 시작해요. 전자도 후자도 현실이나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으니…

걱정거리가 전혀 안 돼요! 

그런데도 우리는 전전긍긍하고, 그러면서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아픔과 고통의 에너지까지 만들어내고, 그 에너지가 우리 몸에 자리를 잡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우리네 몸에 나름의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해, 몸은 합리적이에요.

그러나 또 뭔가를 아주 쉽게 믿기도 해요. 그래서 실제 상황을 생각하는 상황과 구분하지 못해요.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마치 실제인 양 반응합니다.

 

심지어 따뜻한 침대에 편하고 안전하게 누워 있으면서도

‘흠, 뭔가가 나를 위협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한다면…

몸은 실제로 위협당하는 것처럼 반응해요.

그래서 심장 박동 수가 늘어나고 호흡이 불규칙하게 바뀌며 근육이 긴장해요.

그렇게 해서 몸은 에너지를 추가로 더 만드는데…

하지만 이 에너지는 그 어디로도 나갈 데가 없어요. 위협이 실제 벌어진 게 아니라 가상이고 허구니까!

출구를 찾지 못한 이 에너지는 독성을 띠고 신체에 축적되어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방해하게 돼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 불안한 생각을 만들어 내고 긴장을 키워요. 

 

안 좋은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해도 고통과 아픔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있어요. 

독성 에너지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우리 마인드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경우에만 생성됩니다.

그러나 <존재>에게는 이 세상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혀 없잖아요?

우리의 <참된 나>와 <내면의 목격자>한테 그런 게 없듯이 말이죠.

오로지 있는 것이 있을 뿐이며, “좋네, 나쁘네” 하는 판단은 우리네 마인드가 일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에고>의 삶이 아니라 <참된 나>의 삶을 산다면,

모든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심지어 마인드가 나쁘다고 여기는 것에서도 그렇습니다. 

사실, 세상에 머무는 동안 최고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이든 다 필요하며 유용하고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목표들 중 하나가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 의식하는) 자각 상태의 제고라 하겠습니다. 

 

이걸 깨달을 때…
인생에서 아픔과 고통을 더 이상 자초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아픔이 퇴적된 감정의 아픔덩어리, 고통의 몸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나 아픔, 고통 따위는… 쉽게 사라지고 증발될 수 없는 에너지임을 기억해 둬야겠어요. 이 에너지는 몸 안에 쌓여서 완전한 에너지 구성체를 만드는데, 이걸 에크하르트 톨레<고통의 몸체> 혹은 아픔덩어리라 부릅니다.  

 

고통의 몸체란…
부정적으로 충전된 에너지장으로서, 우리 심신을 점령할 수 있다.

 

고통의 몸체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휴면 상태와 활동 상태. 

그것이 늘 활동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고통스럽게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범죄자나 자살자가 나와요. 필사적인 영웅이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사도 이 부류에 든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 거지, 노숙자처럼 인생 밑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고통의 몸체에 늘 시달리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요.

 

잠자지 않는 고통의 몸체가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행복이나 삶의 만족, 진정한 자기실현 등에 대한 희망을 늘 모조리 앗아갑니다. 그러나 줄곧 깨어서 활동 상태에 있는 <고통의 몸체>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한테서 그건 잠자고 있다가 눈을 뜨고 또 졸기도 해요

고통의 몸체가 눈뜰 때…

아주 다정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쾌하고 못된 사람으로 바뀌거나, 혹은 낙천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우울하고 비관적인 불평분자로, 혹은 조용하던 사람이 시끄럽고 히스테릭한 사람으로 바뀔 수 있어요. 

 

고통의 몸체가 깨어났다는 징후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잘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바깥에서 명료하게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고통의 몸체가 잠깨는 순간을 추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사자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으나 그 순간에 그 사람은 본연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으로 변합니다. 헐크처럼 말이죠. 

 

알아차리고 의식하고 추적하고 관찰하기…
오직 이 방법으로만 <고통의 몸체>를 다루어서 그것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도 바로 이 고통의 몸체가 심하게 횡포 부릴 때 나타나는 징후인데, 이걸 막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에요. 고통의 몸체는 자신이 발견되거나 노출되기를 아주 꺼리니까요. 그건 그림자처럼 빛을 겁내요. 그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몰래 숨어 있거나 위장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용기를 내서 그걸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각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고통의 몸체를 깨우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것이 언제 돌출할지 알아내기가 더 쉽지 않겠어요? 결국, 그것이 제 스스로 그냥 잠을 깨는 게 아니라 어떤 ‘방아쇠’가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 아픔을 야기한 뭔가가 떠오르게 하는 상황이 전부 이 ‘방아쇠’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 

1) 부모가 생활비 같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투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얘기나 암시가 나오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통을 겪을 수 있어요. 혹은, 

2) 어려서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버림받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친구가 약속 시간에 겨우 5분 늦은 걸 두고도 그 사람의 아픔덩어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어요.

 

누구한테나 있는 이 고통의 몸체가 무엇에 반응하여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차린다면, 그것을 감지하여 다스리기가 더 쉬워질 겁니다. 

 

  실습 32  

 

당신의 아픔덩어리가 어떤 상황에서 잠을 깨는지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거나 그 비슷한 기미라도 나타나게 된다면…

고통의 몸체가 잠을 깬다는 신호이자 반증입니다. 

 

갑자기 불만이나 짜증이 생기거나 화가 나거나 반감이나 혐오가 들거나 울적함을 맛본 적이 있나요?

자기도 모르게 기분 나빠진 적이 있나요? 

 

그런 것이 때로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생기기도 해요.

또 때로는 어떤 외부 원인 때문에 그런 상태에 빠지는 듯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한 경우. 혹은 무슨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난 경우

 

그런데… 그 외부 원인이란

우리 내면의 ‘방아쇠’를 당기는 계기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둬야겠습니다.

실제로, 같은 입장에서 같은 말을 듣거나 같은 실패를 겪었어도 기분 상하거나 화내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일 때문에 당겨질 ‘방아쇠’가 그에게 없다면… 안 그렇겠어요? 

외부 상황이 우리 상처를 건드립니다. 

과거에 우리한테 아픔이나 마음고생, 고통 겪게 한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외부 상황이 당신한테 과거의 무엇을 떠올리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 내려고 애쓰세요. 

그렇게 하느라고 마음속에서 과거로 이동하여 거기 한참 머무르거나 갇힐 필요는 없어요. 

이야말로 과거 경험을 도움 삼아 현재에서 뭔가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경우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회상이 유용해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요.

즉,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을 야기한 과거 상황을 <내면의 목격자> 눈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 순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자신의 판단과 감정적 반응으로 흐려지지 않은 장면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겁니다. 

 

‘내 안에서 어떤 감정들이 가장 자주 일어나며 어떤 방아쇠로 촉발되는지’ 끊임없이 추적할 때, 우리는 <고통의 몸체>를 더 경계하고 조심하게 됩니다. 

이건 자신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경각심을 가지면, 고통의 몸체가 당신을 지배하는 힘이 금방 몇 배 더 약해질 거예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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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을 바꾸는 방법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하는 좋은 방법이 더 있습니다. 

감정이 생각과 판단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요? 

 

우리는 살면서 ‘아, 뭔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어’ 하고 먼저 판단을 해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만 그 생각에 해당되는 감정이 뒤따릅니다.

불만이나 모욕감, 좌절, 분노 같은 것 말이에요. 

우리는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나?’ 할 정도로 생각 자체는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그 감정에 해당하는 생각을 했다는 뜻이에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생각을 바꾸는 방법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판단하는) 것일까요? 

에크하르트 톨레가 한 저서에서 셰익스피어의 경구를 인용합니다. 

“세상에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단지 생각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십중팔구

“오늘 날씨가 사납네, 끔찍해!”

하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결과, 기분 잡치고 움츠러들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날씨가 정말 그렇게 끔찍한 걸까요? 

만약,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짓된 나>의 눈이 아니라 <참된 나>의 눈으로 창밖 날씨를 보았다면, 우리는 이 하루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이며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에서 시작했겠지요. 

 

그래서, 예를 들면, 옷을 더 따뜻하고 든든하게 차려입고 우산 쓰고 빗속을 거닐며 자신과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았겠어요? 아니면, 외출하는 대신 집에서 방안 온도를 좀 높이고 창문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 따스함과 아늑함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면 이날이 끔찍할 리가 없어요. 오히려 “오늘은 참 멋진 하루였어!” 하고 말할 수 있었을 거예요.

 

에크하르트 톨레

우리가 뭔가를 두고 “나빠! 싫어!” 하고 말할 때 우리 내면이 전부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감정적인 위축이 우리를 자기 삶의 힘에서 떼어내고 차단합니다

 

주변 모든 것을 ‘좋거나 나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게 될 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할 때…

우리는 위축되는 게 아니라 당당해지고, 우주 에너지가 거침없이 자유롭게 우리를 거쳐 흐르면서 거대한 힘을 우리한테 안깁니다.  

 

한마디로, 우리네 생각과 판단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점이 최소한 몇 가지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에고>한테는 늘 불만의 관점을 택하는 습성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현재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쩍하면

“아아, 일이 잘 안 풀려. 사는 게 참 고되고 힘들어. 끔찍해, 악몽이야!”

하고 푸념하거나 한탄하는 이들이 많아요.

이건 그들의 에고가, <거짓된 나>가 내는 목소리입니다.

<에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 하나 없어. 죄다 나쁘다’는 생각에 빠지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아주 하찮은 걸 두고도 계기만 있다면 습관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며 끝없이 볼 부은 사람들이 줄어들면 좋겠어요. <에고>의 그런 거짓된 판단과 잘못된 자세를 그때마다 바로바로 적발해 내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어요.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최악이야’ 하고 불평할 때,

어떤 일이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즉시 그건 <거짓된 나>의 목소리라는 점을 떠올리세요.

자신에게 상기시키세요. 

“이건 내가 불평하는 게 아니야. 에고가 불만을 품는 거지. 나에겐 불만이 없어!”

 

그런 다음에 판단과 해석을 멈추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쓰세요. 

즉, ‘이건 나쁘거나 좋은 게 아니야. 그냥 현실이야’ 하고 여기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이로움을 반드시 얻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아주 나빠 보이는 것에도 그 반대되는 밝은 측면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안타깝게도 우리네 <에고>는 이 밝은 면을 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정말 온통 다 나빠”에 묶여 있으니까요. 

하지만 <참된 나>는 객관적이고 건전하고 현실적인 눈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한테 복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뭔가를 꼭 찾아낼 겁니다. 

 

  실습 31  

 

불만스러운 느낌을 비롯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경우에 가장 자주 느끼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불평불만의 밑바닥에 어떤 생각과 판단이 놓여 있는지 간단히 적으세요. 

 

예를 들어,

– 날씨가 고약하네.

– 집안 허드렛일에 지쳤어.

– 그자가 나한테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나.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 걱정이야.

 

이제 <내면의 증인> 상태로 들어서서 이 상황을 직시해 보세요. 

즉,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자는 얘기에요.

 

이 여러 상황이 객관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적으세요. 예를 들어, 

–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군.

– 집안일이 정말 많아.

– 그자가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어.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요만큼밖에 없어.

 

(그렇게 달리 보고 나니까) 이 상황들이 더 이상 ‘나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렸나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황이 됐네요.  

 

내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달리 말해 내 감정을 집어넣지 않은 상태에서,

이 여러 상황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드러내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각 상황을 어떤 결론이나 결정, 변화, 행동을 취하기 위한 원인이나 동기로 간주해 보세요.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적어 보세요. 예를 들어, 

 

– 비가 내리네. 우산을 갖고 나가야지.

– 집안일이 정말 많아. 먼저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해도 될 일을 정해야 되겠군.

– 그자가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어. 그런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줘야겠다.

– 이 물건들을 사야 하는데 돈이 요만큼밖에 없어. 예산을 잘 짜서 당장 급하지 않은 건 놔두고 필요한 것만 사야겠어.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고민할 일이 없어진다는 점을 알게 될 거예요. 

자신이 불행하다거나 불만스럽게 느끼지 않게 돼요.

짜증이나 화를 낼 필요도 없지요. 

 

뭔가 속이 뻥 뚫린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 (하지 않아도 될, 방향을 잘못 잡은) 자신의 판단으로 더 이상 고민거리를 자초하지 않으며, <에고>의 판단과 해석으로 왜곡된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대하여 살고 행동하니까 그렇습니다. 

<에고>며 마인드며 감정들과 분리되는 법을 익힐 때, 우리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쓸데없이 자꾸 만들어 내지 않게 될 거예요. 

 

고통이며 고민거리를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안긴다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고통은...

주변 모든 것을 우리네 마인드가 해석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마인드의 판단과 그 판단에서 빚어지는 감정 때문에 생겨나요. 

고통과 고민거리는 우리네 <에고>가 모든 것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습성에서 생겨나요

 

실제와 <존재>한테는 좋고 나쁜 게 없어요. 오로지 있는 것만 있을 뿐이에요

만약 <내면의 증인> 상태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오로지 있는 것만 볼 뿐이지 그 이상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있는 것에 즐거워하며 만족을 느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증인>의 눈이… 바로 이 세상을 보는 <존재>의 눈이니까. 

<존재>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경험을 즐깁니다. 

 

판단과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과 실제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기

 

이 때문에 <지금> 순간에 머무름으로써 (이건 또, 증인 상태에 있다는 뜻인데) 우리는 늘 기본적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을 비롯해 마인드가 ‘나쁘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가 증인으로서 확인하고 나설 때…

그 ‘나쁜 것’은 우리와 무관해집니다

 

“이건 그냥 있는 이거야” 하고 말할 때,

우리는 이 현실을 (실제를) 자각하고 (즉,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체험에 초점을 맞추어 의식하고),

그럼으로써 이 현실에 초연해져서 <내면의 증인/목격자> 눈으로 바깥에서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지켜보지만, 이 현실에 있는 그 무엇도 우리 상태를 이미 바꾸지 못하며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고통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부정적인 뭔가를 보면서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즉, 언제 어디서 그 무엇에든 행복하게 느끼며, 우리 주변과 우리 삶에서 부정적인 생각이며 감정이 줄어든다는 것! 

이런 법칙이 효력을 발휘합니다. 

“먼저 행복하다고 느끼라… 그러면 당신 인생에서 행복한 일들이 시작될 거야.” 

  

이 법칙은 작동해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몰라요. 

그들은 자기네 인생에서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그 이전에는 행복하다고 느끼려 하지 않아요. 그런 좋은 일이 오려면 당연히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 거예요. 

또 어쩌다 좋은 일이 찾아오면, 그들은 거기에 집착하면서 그걸 잃을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이건 악순환이에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행복한 상태가 외부 조건에 좌우되지 않을 때라야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돼요

 

사실, 행복이란… 우리 안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존재하는 순간순간 우리는 행복을 재현할 수 있어요. 

마인드가 기승부리게 놔두지 말고 <내면의 증인> 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확실히 깨달아 받아들이면…

그러면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사라져서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 무엇도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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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부정적인 감정과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1) 부정적 성향은 죄다 심리적 시간의 퇴적과 현재의 부정에서 야기된다. 

2) 불안이나 걱정, 긴장, 압박감, 고심 등 모든 형태의 두려움은… 
미래가 너무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3) 죄책감이나 후회, 분노, 불만, 슬픔, 낙담, 괴로움, 갖가지 불용(不容) 등은… 
과거가 지나치게 많고 현재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왜 <지금> 순간에 들어서지 못하나

 

앞의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는 <지금> 순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현재 순간에 늘 몰입하여 침잠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전혀 없어요. 뭔가를 익히는 단계에서 이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당연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현재 순간에 몰입하지 못해서 두세 번 시도해도 안 되는 이들이 많아요.

그들은 내면에서 어떤 저항이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즉, <내면의 몸체>에 가라앉은 다음 그 상태를 통해서 <지금> 순간에 몰입하려 들면, 뭔가가 들여보내지 않거나 심지어 내쫓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지요. 현재 순간에 대한 이 저항에 메스꺼움이나 현기증 같이 불쾌한 신체 증상이 수반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겼다 해도 <지금> 순간에 뿌리내리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한층 더 공들이는 계기로 삼아야겠지요.

중도에 어떤 장애물이 생겼다 해도 우린 극복할 수 있어요. 그럴 깜냥이 충분합니다.

 

그럼, 그런 저항이 왜 생기는지 살펴보지요. 

당신이 느끼는 저항은 당신 안에 있는 특정 에너지가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부정적인 감정의 에너지인데, 그런 감정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라는 함정에 빠져 살 때, 그런 감정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이 ‘심리적 시간’을 멈추고 <지금> 순간으로 옮겨가 살기로 마음먹을 때…

이 감정이 내면에서 저항하는 것이지요.

아, 그렇다고 당황하거나 화내기보다는 기쁘게 여기세요.

그런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 만큼, 거기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뜻이니까요. 

 

만약 <지금> 순간에 침잠하려는데 내면의 뭔가가 저항한다고 느꼈다면…
우울해하는 대신 기뻐하라.
이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날 계기이다.  

 

먼저, 이런 감정이 나타나는 원인을 기억해 볼까요. 

우리가 알게 됐다시피, 감정이란 전부…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어떤 생각이나 판단, 평가, 해석 등을 두고 우리네 몸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한데, 생각이나 판단, 평가, 해석 등은 우리가 <지금> 순간에서 떨어져 나갈 때 생겨요.

 

이 때문에, 감정은 우리가 현재 순간 밖에서 ‘심리적 시간’에 빠질 때만 생길 수 있어요

이 감정이 우리를 현재 순간 바깥에 잡아두기 원하여 거기로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현재 순간에 대한 저항을 때론 불쾌한 신체 증상 형태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말이죠.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오로지 현재 순간을 부정할 때만 생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오로지 현재 순간을 부정할 때만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안이나 걱정, 긴장, 두려움 따위는 현재보다 미래를 더 많이 그리며 살 때 나타납니다.

또, 죄책감이나 불만, 회한, 분개, 침울, 비통, 불용서 같은 감정은 현재보다 과거에 더 매달려 살 때 나타납니다

 

“아니, 부정적인인 감정이 전혀 없이 과연 살 수 있단 말이야?!” 

그런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아요.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 태도 등이 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뿐임을 이해한다면

그런 삶이 불가능한 건 전혀 아닙니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미 알다시피, 바로 이 감정들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를 버리지 못하게 하잖아요? 

우리는 정말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 시간을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끊기만 하면 됩니다

첫째, 현재 순간으로 이동하면서 시간을 내던지기. 

둘째, 부정적 감정 자체를 떨치면서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내던지기.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려 한다면, 그것이 우리한테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겠지요. 

한데, 이 사실을 <에고>는 부정할 겁니다. 에고는

‘너한테 부정적인 감정 같은 건 전혀 없어’

하고 속삭일 거예요. 이것 역시 과거와 미래에서 현재 순간으로 옮겨오려는 우리네 열망에 에고가 저항하는 수법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거짓된 나>의 이런 어깃장을 이겨내고 실제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더 과감해지세요, 사실을 겁내지 말아요! 

거짓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만, 진실은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곧 그걸 떨쳐낸다는 뜻 아니겠어요?

자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것과 동일시되기 쉽습니다. 그걸 인식하면, 즉시 거기서 분리되고 그것이 되기를 멈춥니다

 

  실습 27  

 

혼자 조용한 곳에서 이렇게 자문하세요. 

‘지금 이 순간, 난 마음 편하고 즐겁고 만족스럽게 느끼나?’  

 

만약, 진심으로 “네”라고 답할 수 없다면, ‘아,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있구나’ 여겨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자신을 탓하지는 말아요.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니까요.

다만, 현재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마인드의 농간에 빠져 있다는 뜻일 뿐이에요

 

또 자문해 보세요. 

‘난 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나? 내 안에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있나?’ 

 

이 물음에 대답을 생각하면서, 예리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관찰자가 되어 여러 감정을 그냥 살피기만 하세요. 당신을 썩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아주 사소한 징후라 해도, 여러 감정 상태와 안에서 꿈틀대는 에너지에 주목하세요

‘이게 뭐지? 짜증이야? 초조? 피로감? 불안? 권태? 혹은 뭔가에 대한 불만인가?’ 

 

그런 부정적 요소들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하세요. 부정하지 말아요.

자신에게 말하세요. 

‘그래, 나한테 이런 게 있어. 난 기분이 나빠 (짜증나, 불만이야, 등등)’

이 여러 감정을 <내면의 증인/목격자> 눈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그 감정들을 떨치게 될 겁니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냥 내려놓는다고 상상하세요. 

아니면, 어쩌다 손에 쥔 뜨거운 숯덩이를 화들짝 내던지듯이 내버린다고 상상하세요.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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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내면의 목격자> 찾아내기  

 

 

<드러나지 않는 세계>와 연결 통로

 - 고요에 귀 기울이기

 

<내면의 목격자> 덕분에

우리는 바깥세계에서 살고 활동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며 <존재>와 늘 연결 상태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바로 내면의 목격자가 그 들머리를 열어 줍니다. 혹은, 이 채널들이 내면의 목격자를 지나간다고 말해도 되겠어요

 

고요에 귀 기울이면...

 

이 채널들을 여는 좋은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고요에 귀 기울이기

2) 빈 공간 응시하기. 

 

에크하르트 톨레우리네 바깥세상에서 신(하나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은 고요나 적막이라고 간주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우리네 현실에서 바로 고요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고요에 주의를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 소음이나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이 고요를 포착하면 됩니다. 어떤 소음에든 고요한 휴지나 갭이나 동안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런 점을 알아차린다면, 우리 내면의 고요도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의 목격자’가 이 고요를 관찰하고 주변 세계에서 확인하도록 해야겠어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한순간에 <드러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서 그 일부가 되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과 지혜와 고도의 진리와 지혜에 다가들 수 있을 겁니다

 

내면의 목격자 혹은 증인이란…

모든 것을 절대 진리의 빛에서 보는 천안(天眼)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문제나 물음에 대한 답을 모두 <내면의 목격자>한테서 얻을 수 있어요. 복잡한 상황에 처해서 예전엔 아무리 궁리해도 찾아내지 못하던 해결책을 분명히 얻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진정한 갈망과 욕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어요. 

이건 놀라운 일도 아닌 것이… <내면의 증인>은 결국 <존재>의 일부니까요

 

이건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세계와 우리를 이어주는 중개자요 연결고리이다. 
이 드러나지 않은 세계는 빛과 사랑과 에너지와 진리와 지혜와 힘의 세계이다. 

 

만약 어떤 물음에 답을 찾거나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굳이 머리 감싸고 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 참, 뭐 이런 조언이 다 있나?’

이상하게 보일지도 몰라요. 마인드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말이에요. 

 

그러나 마인드가 우리를 즐겨 우롱한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알지 않았습니까? 

마인드의 들끓는 활동의 환상 이면에는 허튼 것이 숨어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마인드보다 <내면의 목격자>를 믿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 목격자가 입을 열게 하려고 무슨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외려 정반대로… 내면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이 고요는 우리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이르는 길이거든요. 

 

  실습 25  

 

 

생각이며 말이며 단어들 사이에 있는 고요한 순간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았습니다.

이제는 외부의 여러 소리에서, 심지어 소음에서도, 내적 고요의 순간들을 포착해 봅시다. 

 

먼저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갖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소리가 요란하든 크지 않든 혹은 아주 나직하든 상관없어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 다음, 일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소리는 없다고 상상하세요. 

소리는 전부 진동입니다.  즉, 소리와 고요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며, 이건 모든 소리에는 휴지가, 고요의 순간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 고요한 순간이 귀에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존재하는 건 분명합니다.

 

소리에서 이 고요의 순간을 찾겠다는 목표를 잡고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렇게 상상하면 좋을 거예요. 

소리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이 소리를 거치면서 소리 뒤편에 있는 것을 듣는다고 말이지요.  

 

고요한 순간을 물리적으로는 듣지 못할 수 있지만 (들을 수도 있고), 분명히 느끼기는 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우리는 늘 현재 순간에 침잠해서 그 안에 깊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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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내면의 목격자> 찾아내기  

 

자신을 관찰하다 보면 삶에 현재 순간이 저절로 더 많이 들어온다.
마인드를 관찰할 때, 마인드에 더 이상 갇히지 않는다.
또 관찰 대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뭔가를 느끼게 되는데,
그건… 마인드의 이면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존재, 말없는 감시인이다.  

 

자신에게 침잠하는 동시에 세상에 열린 상태가 되는 방법 

 

내면에 가라앉고 내적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것은…

<지금> 순간에 들어앉아 자신의 깊고 <참된 나>와 접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또 진정한 자신이 되어 진정한 삶을 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깥세계를 등진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자신의 <참된 나>와 접속함을…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기, 폐쇄성, 현실에서 차단됨 따위와 혼동하면 안 되겠어요이건 전혀 다르고 상반된 개념들이에요. 확실히 구별해야 합니다. 

 

또 아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느낌 수준에서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 

자신과 자신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의식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참된 나>와 접함으로써 깨어 있는 상태에 있는지, 아니면 그저 방어막이나 갑옷 속으로 들어가 바깥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인지’를 언제나 잘 파악해야 합니다. 

 

<참된 나>와 접한 상태는 그렇게 둔감한 자기방어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두려움 속에 사는 자들만이 바깥세상과 스스로 차단됩니다. 

하지만 <참된 나>와 접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거짓된 나>와 무너지기 쉬운 외적 형태를 더 이상 우리 자신이라 여기지 않으니까요.

<내면의 나>와 <참된 나>는 무너질 일이 없어요. 그 무슨 형태라는 게 아예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내면의 나>는 그 무엇도 겁내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내면의 나>를 진짜 자기 자신이라 여긴다면, 우리도 역시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더욱이 <내면의 나>를 접하는 자체로 이미 가장 강력한 보호가 보장됩니다. 그러니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갑옷으로 잔뜩 무장할 필요가 있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갑옷을 걸친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참된 나>와 접한 상태는…

완전하게 개방되고 투명하면서도 난공불락의 상태인 겁니다. 

 

<내면의 나>와 연결될 때, 우린 겁낼 필요가 없고 세상을 피해 숨을 이유도 없다. 
우리는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과 대놓고 편하고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어떻게 이를 수 있나? 

내면에 침잠하면서 동시에 바깥세상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교류하며 접촉하고 소통하고 활동하고 목표 세워 달성하고 세상 바꾸는 상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 

 

내면의 목격자,관찰자, 증인

 

이를 위해서는, 바깥세계에서 행동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행동을 내면에서 지켜보는 목격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인격 분열’ 같은 게 아니냐구요?

천만의 말씀, 그 반대로 우리네 세속적인 화신과 영적인 화신이 서로 긴밀히 협력하며 보충하여 완전한 상태입니다. 

 

이건 우리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지 명확하게 의식하는, 깨어 있는 상태에요. 그리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영적 동면에 빠져 자기가 뭘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한데, 영적 동면에 빠져 있는 사람들 경우, 그들의 내면 목격자가 깊은 잠에 취해 있고 <내면의 나>가 눈뜨지 않으며, 그 대신 <거짓된 나>가 살아서 제 행위의 의미도 모르고 결과에 책임지려 하지도 않으면서 마구잡이로 행동해요.  

 

<내면의 나>를 발견한 뒤, 그걸 자기 내면의 관찰자요 목격자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행동과 삶을 스스로 컨트롤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외부의 사건이며 사건들 흐름에 떠밀려 정처 없이 떠다니며 의지가지없는 나무토막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실습 22  

 

조용한 곳에서 혼자 눈 감고 긴장을 푸세요.

자기 <내면의 몸체>와 연결하고 내면에 뿌리내린 상태로 들어서세요. 

형태가 없고 시간을 초월하며 무한히 깊은 <내면의 나>와 접촉되는 것을 느끼세요. 

그 느낌에 주의를 집중하세요. 

 

이런 이미지가 혹시 도움 될지 모르겠어요.

즉, 우리네 육안을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 머물면서 바깥의 것을 살펴보는 잠망경이라고 그려보는 것 말이지요.

단, 시각적 형상에 집착하지는 마세요.

지금 우리 내면의 목격자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바깥세계로부터 보호받으며 평온하게 있으면서도 외부 공간에 다 접할 수 있는데, 이 목격자가 감지하는 것을 느껴 보세요. 

 

육안을 뜨지 말고, 그 목격자의 눈으로 주변 상황을 본다고 상상하세요. 

눈 감은 채 그렇게 한 다음에, 눈뜨고 이 주변 상황을 내면의 목격자는 어떻게 볼지 상상할 수 있어요. 

<내면의 나>에 계속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눈으로만 세상을 지각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낄 거예요. 

내면의 목격자는 우리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아주 예리하게 포착해요. 

그 덕분에, 움직이거나 몸을 돌리지 않고서도 공간에 세심하게 귀만 기울이면, 우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될 거예요. 심지어 벽 뒤나 거리에서 벌어지는 것도… 

 

바깥세계를 내면에서 섬세하게 지각하는 상태가 될 때…

이건 자기 안에서 <내면의 목격자>를 찾아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알림)  Voice Training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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