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소개하는 항목들 중에 일부는 당연하고 진부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것을, 그런 것조차(!)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다는 점은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군들 거칠고 무례한 사람 되기를 원할까? 하지만 대화의 대상이며 주제에 빠지거나, 자기 말을 자기가 듣고 싶은 갈망이 커질 때, 우리는 종종 예의며 매너라는 법칙을 살짝 까먹는다. 또, 자신의 관점에 하도 몰입하다 보면, 상대가 하는 말을 듣는 것도 종종 잊어. 그렇기 때문에...
대화 중에는 다음 같은 법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1. 듣기와 말하기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건 효과적인 듣기의 가장 중요한 법칙, 그러나 아주 종종 깨진다. 사람들은 대화에서 자기 관점 밝히기를 아주 좋아해서, 다른 사람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코멘트 하려 든다. 그런 ‘끼어들기’는 상대방 신경을 건드리고 대화 흐름을 망가뜨리며 지체하게 만들어.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은 제 얘기를 마저 하기 위해 생각의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코멘트에 응답하려고 본래 흐름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끼어드는 대신 상대방이 이야기를 마치도록 기다려야 돼. 그 다음에 당신 관점을 꺼낼 차례가 온다. 사람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끼어들기가 있기는 하다. 바로, 박수.
2. 화자의 핵심적인 견해에 귀 기울이자.
구체적인 사실들은 그것이 주된 테마에 관련될 때만 중요하다. 구체적인 사실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낸다면,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화자가 제시하는 사실들을 화자의 논거와 연결하면서, 그가 말로써 행한 입증을 평가한다. 자문하라, “화자는 어디로 가는가?” 혹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만약 당신 짐작이 옳다면, 그건, 당신의 이해력이 좋아졌고 집중력도 커졌다는 뜻. 만약 틀렸다면, 자신의 오류를 반면교사로 삼는다.
3. 자신의 감정적 측면을 건드리는 말에 지혜롭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말은 당신의 뇌를 끌어들이거나 어딘가로 멀어지게 만드는 단어들. 우리는 다 어떤 특정한 말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고유한 ‘걸림돌’을 찾아내고, 그것이 어째서 유독 당신에게 크게 작용하는지, 분석하는 게 중요해.
4. 주의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들을 극복하자.
당신에게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집중력을 키워야 해. 전화벨이나 지나치는 사람들, 사무실 소음 같은 외적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화자의 개인적 특성 같은 것도 당신에게 불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전달 방식이 아니라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단어들과 생각과 느낌에, 당신 동료가 의도하는 것들에만 집중하라. 연습하다 보면, 집중력을 키울 수 있을 것.
5. 화내지 않도록 애쓰라.
감정이란 것은 다 경청 과정에 장애가 되지만, 짜증이나 초조함 따위가 내용 파악에 특히 치명적이다. 노련한 청자는 가능한 한 자신의 감정을 다 접어둠으로써, 납득하고 수용하는 것에만 완전히 열려 있게끔 자신을 만든다. 그런 청자는 주관적 평가를 피하면서 화자를 이해하려고 전력을 기울인다.
6. 자신의 기억을 맹신하지 않는다.
기록하되, 간결하게. 적을 때 청각 수용 능력이 떨어지니까. 우리는 멀티플레이어가 아니야.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란 어렵다. 골자만 메모. 기억 되살릴 수 있는 것만 필요하다. 나중에 그 메모를 보면서 들은 내용을 다 살릴 수 있을 것. 적은 것을 이해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록을 다시 읽으라.
7. 추론을 삼가라.
"지레 짐작 매꾸러기!"라는 옛말은 백 번 옳다. 내용의 의미를 존중해야 할 것이야, 그걸 당신에게 전달하는 화자의 서툰 솜씨가 아니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 화자가 단어와 어구를 어떤 맥락에서 동원하는지 잠시 생각하라. 그의 의도와 거기에 담긴 의미를 평가하기 전에.
8. 사람이 아니라 메시지에 반응하자.
상대방 말을 해석하면서, 그에 대한 시각적 인상에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모나 개인적 자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한테서도 좋은 생각이며 논거가 나올 수 있다.
9. ‘피드백’을 활용하자.
들은 것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꾸준히 살펴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지 않도록 하고, 당신이 앞서 한 말에 누군가가 코멘트 하거나 답변하고 싶어 하는지 계속 살피라.
10. 이완.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당신이 상대방 말을 자르고 자기 말을 하고 싶어 안달한다는 인상을 주지 말라. 주의를 기울이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으라. 한마디로, 성숙하고 노련한 청자로서 행동하자.
11. 누군가의 관점을 마음속이든 소리 내서든 곧장 비판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당신 관점과 다르더라도! 자제하라,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화자를 정말 이해하기 위해 듣도록 애쓰라. 인내심을 모으라. 상대 자기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게끔 시간을 넉넉히 주라.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나중에는 썩 나쁘지 않은 생각임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상대에게 자기 시각을 서술할 기회를 절반이라도 준다면, 거기서 당신은 자신에게 유용한 뭔가를 건질 수도 있을 것.
12. 주의 깊게 들으라.
상대방 앞에서 반듯하게 앉으라. 팔짱 끼거나 다리 꼬지 말라. 상체를 가볍게 상대 쪽으로 기울이라. 선하고 평온한 눈빛으로 간간이 eye contact가 필요하다. 필요할 때 동의하는 고갯짓과 내용에 걸맞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남용은 금물. 간간이 “아!” “그래서요?” “계속하세요” “그래요” 같은 추임새나 간투사를 내놓으라.
13. 질문을 던지라.
상대가 감정과 생각을 시원하게 드러낼 수 있게끔 솔직한 질문을 던지라. 적절한 질문을 던질 때, 상대방은 당신이 관심 있게 경청하고 있다고 느끼며, 그러면 대화가 더 알차게 진행된다.
흠, 지름길이 너무 멀리 있나? 그런 면이 없지 않고, 여기엔 역설적인 측면도 좀 있는 게 사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주장의 본질에 별다른 흠이나 오류는 없다.
상대방의 얘기를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듣고 싶은가요?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런 주장도 있으니, 곧, "갖가지 형태의 말하기를 잘 하려면? 먼저, 듣기를 잘 하면 된다!" 그러면 대화도 소통도 스피치도 다 좋아진다.
이것을 잘 하는 학생은 성적도 올라가게 마련, 이것을 잘 하는 부모한테 좋은 자녀 있기 마련, 이것을 잘하는 비즈니스맨은 성과를 올리기 마련, 이것을 잘 하는 상담자는 신뢰를 얻기 마련, 이것을 잘 하는 연인은 애정을 굳히기 마련, 이것을 잘 하는 상사는 좋은 부하를 얻기 마련... 더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한마디로, 세상이 좋아진다.
한데, 우리네 대다수는 이런 점을,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성급한 성과를 바라기 때문에, 아니면 정말 중요한 길을, 필요한 방법을 몰라서? 여기 제시하는 생각, 사실 소통과 스피치의 연구와 실행 때 많이 하는 것. 목소리를 제대로 조율하고 키운 다음에 우리 모두가 들어서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효과적인 청자가 되려면?
1.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일에 자신을 조율하기. 즉, 일정 시간 자신의 문제 같은 것을 잊기, 그래야 상대방 느낌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2. 상대방 언급에 반응할 때, 당신의 공감과 느낌 같은 것을 담아야 해.
3. 휴지(pause)를 유지하기. 당신 답변 뒤에 상대방은 잠시 생각하느라 침묵해야 돼. 그건 오로지 그의 시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확인이며 부연 따위로 끼어들어선 안 되겠지?
4. 공감 가는 듣기에서는, 상대방 감정을 되돌려주기만 하면 돼. 그런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상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5. 상대가 흥분하는 경우, 대화를 짤막한 어구며 간투사들로 유지하는 게 가장 좋아.
들으면서 해야 할 것
1. 상대방에 맞서는, 자신의 편견이며 열등감 따위는 날려버려~
2. 대답과 결론을 서둘지 말아요.
3. 사실과 견해로 국한해야겠지?
4. 당신 말이 명료하고 정확한 것인지, 살피라.
5. 상대방 얘기를 평가함에서 편견을 품지 않는다. 경청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귀를 기울인다. 잡생각에 (자기 생각에) 휘둘리지 말라.
6. 대화에 임하면서, "내 입장은 이미 확고해!" 하고 단정 짓지 말아야. 즉, 선입견을 최소화.
7. 대화나 토론 주제에 대한 자신의 흥미와 관심의 강도를 조율하라.
8. 상대방의 주된 생각을 일부라도 나누고, 그걸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애쓴다.
9. 들은 정보를 (마음속에서) 자신의 것과 얼른 맞춰 본 뒤, 즉시 대화의 주된 내용으로 돌아온다.
10. 자기 의견을 적극 내놓지 않으면서 그냥 주의 깊은 청자로만 남아 있는다 해도, 대화와 토론, 논쟁에서 수동적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11. 대화 중에, 두세 번 잠시 말이 끊기는 틈에 (휴지에), 들은 것을 마음속에서 일반화하기.
그런 경청 기술 익히기의 전제 조건으로 이런 과제를 수행해 보세요. 즉, 이틀 동안 함구하는 거예요. 이틀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지내는 겁니다.
(이 느긋함과 침묵 속에 힘이 있다.)
- 아니, 어떻게 이틀씩이나 말을 안 하고 지내나? 갑자기 입을 다물라니?! 별 시답잖은 짓을 다 하라고 시키는군.
- 난 말 잘 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침묵하라고 하네. 이게 뭐야?
흠,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한데, 이건 시답잖은 짓이 아니라 아주 진지한 작업입니다. 제 얘기가 ‘새 까먹은 소리’가 아니라는 근거를 대겠습니다. 이틀 동안 말하지 않고 지내기는 물론 힘들어요. 그것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러나 그렇게 해 보면…
심하게 수줍음 타는 사람은 이틀 동안 침묵한 뒤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흠,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흉하게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태연하게 살고 있네. 근데 내가 왜 소심하게 굴어야 하지? 이런저런 경우에 그들보다 내가 말을 더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와 반대로, 끊임없이 주절대지 않으면 뭔가 불안한 것만 같아서‘언어 스팸’을 쏟아내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쓸데없이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자제하는 능력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모임에서 무의미한 다변으로 눈길 끄는 짓을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만두게 되겠지요.
아무 때나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토를 달고 반응을 보임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불편과 짜증을 안기는 사람들을 누구나 기억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그럴 기회가 없을 때는 옆 사람들에게 의미 없이 말을 걸고, 그래서 그들이 화자의 얘기를 경청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 사람과 유쾌한 소통을 기대하기란 꽤나 힘들어요. 그런 사람들은 10초라도 함구하기를 어려워해요. 또, 그걸 지적하면 섭섭하게 여기고...
만에 하나 당신이 그런 타입에 해당된다면, 닷새 동안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묵언 수행을 두 달 간격으로 반복하는 게 더 좋아요. 두 번째는 나흘 침묵, 세 번째는 사흘, 네 번째는 이틀, 다섯 번째는 하루 동안 침묵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묵언 과제를 수행하면서,
* 누가 어떻게 말하는지,
* 주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가 무엇에 좌우되는지,
* 사람들에게 어떤 언어 매너가 있는지,
* 어떤 사람은 대화 상대들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 또 다른 사람은 입을 열기만 하면 듣는 이들에게 왜 은근한 짜증이나 모욕감, 따분함, 피로 따위를 안기게 되는지…
이런 면들을 분석하는 겁니다.
어때요, 제 말에 일리가 있나요? 그렇다면 묵언을 위해 적당한 날을 잡으세요. 당신이 (이런 표현을 서운하게 여기지 않기 바랍니다) '수다꾼'이라고 생각되면 이틀이 아니라 나흘 동안 침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구, 지인, 직장 동료들에게 의사가 이틀 동안 말하기를 금했다고 알리세요. 그리고 침묵하십시오. 급하게 말해야 할 경우에 대비해, 메모지와 볼펜을 휴대하세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침묵하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 속으로 말한다.
이건 우리 소통과 스피치 훈련에서 중요한 단계입니다.
처음엔 혼자 속으로 말하고, 필요한 단어들을 고르고, 그런 뒤에야 선택한 단어들을 입에 올리기.
내 뜻이 잘 전달됐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과제를 수행한 뒤에야 다음 과제로 넘어가십시오. 건너뛸 필요가 없습니다. 체계적으로 접근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니까요.
이번 과제를 수행한 뒤 당신은 자기감정을 더 잘 다스릴 수 있고, 당신 말은 더 신중하고 더 깔끔해질 겁니다.
툭하면 싸우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도 잦은 싸움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아내가 지혜로운 수도사를 찾아가 부탁했습니다.
“부부싸움하지 않는 방법을 좀 알려 주셔요.”
부인의 간절한 청을 듣고 수도사가 물을 한 병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병에 든 것은 우리 수도원 우물에서 길어 올린 특별한 물로서, 효능이 신통하답니다. 집에 두었다가 남편이 싸우려고 덤빌 때면 이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으세요. 뱉어도 안 되고 삼켜도 안 됩니다. 그냥 머금고만 계세요. 남편 말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어야 합니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그렇게 하세요. 큰 효능이 있을 겁니다.”
부인이 그대로 했습니다. 남편이 무슨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물을 입에 머금었어요. 그리고 남편 말이 끝날 때까지 물 머금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계속 그렇게 했더니, 집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남편의 거친 말도 조금 나오다가 그치고 말게 됐습니다. 부인은 신비로운 물에 감탄했습니다.
어느 날 다시 수도사를 찾아갔습니다.
"수도사님! 이건 정말 성스러운 물이군요. 이 물을 입에 머금은 뒤 부부싸움이 사라졌습니다."
수도사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부인에게 드린 물은 신비로운 게 아닙니다. 그냥 보통 물이지요. 부인이 물을 입에 머금으면서 지킨 침묵이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한 것일 뿐이죠.”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주의 기울이고 있음을 간간이 표시하기도 한다. 개인 소통에서는 상대 얘기를 알아듣겠다는 표시를 가벼운 고개 끄덕임이나 눈빛으로 드러낼 수 있다. (*비언어적 소통 수단 활용). 또 상대방 말에 동의하는 추임새를 넣을 수도 있다. "그래, 맞아." "아, 그거야." "아아, 알겠어."
(협상, 트레이닝, 강연 등) 대중 비즈니스 소통에서는 상대에 주의 기울임을 시선으로 표현하고, 질문과 대답은…이 규정된 시간이나 상대가 질문하라고 청할 때 나온다.
적극적 듣기
개인 소통에서 활용되는 <적극적 듣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반복하기, 감성적 듣기, 해석하기.
1) 반복하기 – 상대방 얘기에 주의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 상대가 한 말이나 표현을 확인이나 묻는 억양으로 반복하는 것. 예를 들어, 직장 상사와 대화.
– 당신은 계약서를 화요일에 받게 될 겁니다.
– 화요일에요? (묻는 억양)
– 네, 화요일. 그때까지 서류를 다 준비해야 하오.
– 서류 전부라구요? (확인하는 억양으로).
2) 감성적 듣기 – 상대방 언급을 그냥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환희, 놀람, 빈정댐, 경멸 등) 감정을 집어넣는 것. 예, 직장 동료와 대화
– 서류를 전부 화요일까지 준비하라는군.
– 화요일까지?! (의문과 놀람) 힘들겠는걸.
3) 해석하여 다시 말하기 – 적극적 듣기에서도 고도의 기법. 상대의 언급이나 언급 일부가 끝나면, 들은 것을 더 간결하게 상대한테 다시 얘기하기.
– 달리 말하자면, ...이라고 여기시는 건가요.
– 당신 의견으로는...
– 그러니까, 당신은 ...이라 가정하는군요.
<간결하게 다시 말하기>를 통해 상대방 생각을 (어쩌면) 상대보다 더 잘 요약하고, 그 불충분한 대목을 (필요하다면) 섞어서 자기 생각을 제시할 수 있다.
– 당신 말씀을 다 정리하자면, … 뜻인가요.
– 당신 뜻을 제가 잘 이해했다면, … 말씀이군요.
– 그러니까, 당신의 주된 생각은 ...이(겠)군요.
<해석하여 다시 말하기>를 이용하여… 상대방이 생각을 정리하고 복잡한 상황의 해결책을 찾거나 상황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도울 수 있다. (심리학자, 전문 컨설턴트들이 하는 것). 즉,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그걸 이용하여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때 경청 기법은 관리 기법으로 전환.
자녀와의 소통에서도 바로 이 <적극적 듣기> 기법을 부모가 이용하면, 관계가 훨씬 더 좋아진다!
상대방 말을 경청할 줄 아는 것이 잘 말하는 능력보다 더 귀중할 때가 많다. 귀담아듣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많이 알 수 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내놓을 뿐이다.
상대방 얘기를 잘 경청하지 못하는군요. 어쩌면, 지식과 경험을 키우기 위해 대화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이점을 과소평가하는지도 모르지요.
25-30점.
경청 능력이 중간 정도. 당신에게 대화는 주된 정보 원천이 아니고, 소통의 토대도 못 되나요? 당신한테서 많은 것을 듣고 알 수 있겠지만, 당신만 진실을 설파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비판과 질책을 듣는 것도 유익하답니다. 경청하는 방법과 자세를 지금보다 더 많이 키워야 하겠어요.
35-45점.
당신은 보기 드문 자질의 소유자. 즉, 경청할 줄 알며,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말할 줄도 아는군요. 당신과 대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만족이에요. 당신의 대화 상대들은 늘 당신한테서 유익한 뭔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이들 입장에 설 줄 알아요. 이건 소중히 간직해야 할 특징.
(경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중요성을 모르거나 간과한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듣기 능력을 갈고닦는 데 시간을 가장 덜 들이기도 한다. 이건 경청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간과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비결은… 잘 말하는 솜씨가 아니라 잘 들을 줄 아는 데 있어! -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의 이 일침은 의미심장합니다. 조금 아는 이들이 생각하기엔 '잘 말하는 게' 중요한 것 같지만, 정말 고수라면 그건 이미 넘어서서 '잘 들을 줄, 들어줄 줄 아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
경청 능력의 중요성은 (영어식 표현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청나다. 경청하는 자세와 솜씨는 바로 그 사람의 심성과 예의와 교양 수준의 바로미터. 듣는 자세 하나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경청 능력 강화 방법>은 차후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당신의 경청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시험을 거친다.
11. 상대방 얘기의 본질을 간파하고 나면, 난 이제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기 시작하지.
12. 아주 늘어지고 불필요하게 세세한 설명은 듣기가 정말 힘들다.
13. 중요한 정보와 긴요한 세부 사항을 기억하려고 애써.
14. 예의상 들어주는 (듣는 척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
15. 상대의 느낌과 기분을 이해하려면, 상대방 입장에 서 봐야 해.
16. 상반되는 관점을 듣고 난 뒤, 내 관점을 꼭 언급한다.
17. 대화하면서 상대방에게 ‘아니요, 아니’라는 말보다 (이해했음을 표하면서) ‘네, 맞아’라는 말을 더 자주 써.
18. 대체로 나는 대답을 피하려 들지 않고 질문에 바로 답해요.
19. 사람들이 나하고 기꺼이 대화를 나눌 거야.
20. 상대방 얘기를 들은 뒤에는, 내 의견을 꼭 말할 거야.
21. 낯선 사람하고는, 설령 그가 아주 원하더라도, 대화를 피하는 게 더 좋아.
22. 대화하면서, 얘기하는 사람의 눈을 보는 데 시간을 많이 들여.
23. 동일한 문제를 두고 나와 상대방에게 상이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
24. 대부분 시간에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내 문제와 관심사를 생각해.
25. 상대가 얘기를 다 마치기 훨씬 전에 대개 해결책이 머릿속에 떠올라.
26. 같은 단어의 뜻을 나와 상대방이 달리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하고 있어.
27. 상대방 말에서 (부적절한 어휘, 발음 실수, 상스러운 말) 같은 오류를 바로잡아 주곤 하지.
28. 존경하지 않거나, 어리석고 무능력하며 애송이라 여기는 사람의 말은 경청하지 않을 거야.
29. 대체로, 사람들과, 심지어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소통하면서 만족을 얻어.
30. 대체로, 말하기보다는 더 많이 듣는 편이야.
점수 합산과 평가
2, 3, 4, 9, 10, 13, 15, 17, 18, 19, 22, 23, 26, 29, 30번 질문에 ‘네’라 답한 경우 1점.
1, 5, 6, 7, 8, 11, 12, 14, 16, 20, 21, 24, 25, 27, 28번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 경우 1점.
점수를 합산하셨나요? 몇 점이 나왔는지요?
당신의 경청 능력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 25-30점:
당신은 이상적인 청자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존중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이 힘든 기법을 어떻게 일일이 다 깨닫고 실행하시는지요? 뭔가를 분명히 이룰 겁니다. (이미 이뤘을지도 모르죠.^^) 단지 하나, 자신의 경청 능력을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평가하였기를 기대합니다.
• 20-24점:
당신은 좋은 청자입니다. 하지만 몇몇 오류를 간과하고 있어요. 이 기법을 더 충분히 습득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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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9점:
당신은 분명 자신이 좋은 청자라고 여길 텐데, 더 명확히 하자면, 보통 수준의 청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오류를 적잖이 범하고 있어서, 바로 이 때문에 상대방을 자극하기도 하고, 경청 기법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게 되는군요.
• 10-14점:
당신을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들 축에 넣을 수밖에 없겠군요. ㅠ.ㅠ 웬만큼은 제대로 하는 덕분에 아주 고독하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잘못 하는 게 훨씬 더 많아서, 대화 상대들이 뒷걸음질 치겠어요.
• 9점 이하:
당신은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을 줄 모르는군요. 자신의 오류를 정성 들여 분석해 보기를 권합니다. 경청할 줄 모르면… 인생의 아주 큰 만족을 놓치게 되고, 출세하기도 힘들고, 밥도 혼자 먹고 잠도 혼자 자게 될 수 있어요.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교사들이 학생들 심금을 잘 울릴 때 쓰는, 가장 섬세하고 가장 날카로운 도구. 말로써 하는 교육은 가장 어렵고 힘든 교수법.
학교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인간적 접촉(터치)의 세계.
말이란 가슴에 와 닿는 가장 섬세한 건드림.
말은 다정하고 향긋한 꽃일 수도, 믿음을 친절로 바꾸며 흐르는 물일 수도, 또 날카로운 칼이요 달아오른 쇠붙이, 오물덩어리일 수도 있다.
말이란… 침묵만 흐를 때조차 가장 뜻밖의 행위로 바뀐다.
예리하고 직설적이고 정직한 말이 정작 필요한 곳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침묵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건 가장 가증스러운 행위, 곧 배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비밀을 간직해야 할 말이 밀고가 되는 경우.
지혜롭고 선한 말은 기쁨을 안기며, 투미하고 악의적이며 생각 없이 서툰 말은 문제를 야기한다.
말로써 죽이거나 살리고, 상처 입히거나 치료하고, 혼란과 무망을 흩뿌리거나 생기 불어넣으며 고무하고, 의혹을 내몰거나 비탄에 잠기게 하고, 미소 짓게 하거나 눈물 자아내게 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낳거나 불신을 일으키고, 학습에 영감을 주거나 영혼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악의적이며 서툴고 냉담하고 투미하기만 한 말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고 실망케 하고 뒤통수를 치고 뒤흔들 수 있다. 크레틴 병자처럼 허약하고 꼴불견인 말이 있다. 시든 꽃대처럼 맥이 없고 핏기 없는 말이 있다.
환하고 시들지 않는 말이 있으니,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항성들 같다. (교육자로서) 당신의 말이 길잡이별이 되게 애쓰라. 당신에게 불꽃이 없다면, 다른 이들 가슴에 결코 불을 지필 수 없다. 우리네 말에는 다 관용과 공정, 아름다움이 깃들어야 한다.
= 남자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에요. 술잔을 앞에 두고 별의별 얘기를 다 꺼내면서, 그들은 자신을 친구들과 비교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실패나 결핍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남자는 뭔가 여유가 없다 해도, 그런 점을 남자 친구한테든 여자 친구한테든 말하지 못해요. 안 해요. 그냥 안 해요. 그게 남자의 본질입니다. 호랑이가 배고파도 풀을 뜯지 않듯이!
6 “난 질투가 나.”
= 남자들은 자기감정을 구구절절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에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지나치게 상냥하게 대할 때, 신경이 곤두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가볍게 시시덕거리는 것을 볼 때, 남자는 겉으로는 질투한다는 빛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듯해도, 속에서는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 오릅니다.
못 믿겠다고요? 그럼, 직접 확인해 보세요!
7 “네 언니가 (여동생이,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드는 걸.”
= 이건 아주 단순한 거예요. 만약 당신 보기에 당신의 여자 친구나 자매가 슈퍼모델 같은 몸매에다 미모까지 갖췄다면, 당신 남자가 그걸 알아보지 못할 턱이 없겠지요. '그녀가 마음에 들어, 그녀가 자꾸 생각나' 하고 혼자 뇌까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아요.
당신 사랑이 남자 눈을 멀게 하여 그가 다른 여인들에게 전혀 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일걸요?!
8 “우리도 당신들을 (여성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요.”
= 여성들이여, 남자가 근사한 레스토랑에 초대했다는 사실 하나로 성급하게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태어날 아이들 이름을 짓는 상상은 하지 말아요. 가벼운 플러팅(flirting)과 미소, 조크 같은 것은 그저 여자가 남자 마음에 든다는 표시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당신을 그가 영원한 파트너로 여긴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9 “우리도 찬사를 좋아한다오.”
= 어떤 연유에서건, 컴플리멘트는 남자가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대세인 듯하긴 해요. 하지만 남자들도 귀에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지요. 남자들에게도 컴플리멘트와 애정 고백, 따스한 눈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하며 간단한 것들로 인해 둘의 관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
남자들 역시 외출하기 전에 반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낸 보람이 있음을 체감하고 싶어 합니다!
=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감동이 철철 넘치는 장면에 이를 때, 여자들은 눈물 흘리기가 일쑤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사실 남자도 똑같아요. 단지,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 남자는 목구멍 막힌 목소리로 “뭐, 이런 쓸데없는 걸 보나” 하고 툴툴거리면서(?) 얼굴이나 몸을 돌리고 축축한 눈자위를 슬쩍 훔치는 것일 뿐이랍니다.
13 "우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헤어지지 못해."
= 남자는 한 번 마음이 끌렸다면, 그 대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커요. 한강에 배 지나가듯이 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만약 좋아하던 여성과 헤어진다 해도, 금방 까맣게 잊지 못해요. 그 상대를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기 쉬워요. 아마, 그럴 거예요.
사람 행동이라는 것이 어떤 법칙에 따를 때 여러 상황에서 웬만큼 확실하게 예견되니까 말이다.
한데 여자들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면 남자들에게 늘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게임 법칙을 그때그때 자신한테 편하게 바꾼다.
여자는 남자와 이미 합의하거나 정해 놓았다 싶은 관례적인 법칙들을 아주 쉽게 뒤집는다.
이런 경우 남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가공적 신비주의> 수법을 동시에 발휘함으로써 이점을 더 얻는다.
예기치 않고 이해되지 않는 여자 행동에 어리둥절한 남자는,
‘여자들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야’ 가벼운 탄식을 내뱉고 만다.
사실 실제로는 '여자가 제 뜻을 관철하기 위해 심리 조종이라는 트릭을 쓰는구나' 알면서도 그렇다.
심지어 뭔가 약속한 경우에도 여자는 말을 쉽게 바꾼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
"전혀 다른 얘기였어",
"그런 게 아니었어"
하고 주장하면서.
남녀 간의 모든 룰을 <여성 논리>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이른바 이런 식의 <여성 대법전>이 생생히 증명한다.
1. 법(룰)은 언제나 여자가 정한다. 2. 모든 룰을 여자는 사전 예고 없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3. 여자가 만든 이 '법률 대전'을 그 어떤 남자도 알 수 없고 알려 해서도 안 된다.
4. 이 법칙들을 남자가 아는 듯 보이는 경우, 여자는 일부나 전부를 즉각 바꿔야 한다. 5. 여자들은 언제나 옳다. 6. 혹여 여자가 옳지 않다 해도, 그건 남자가 잘못 말하거나 행동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가 오해하게 만든 것을 즉각 사과해야 한다.
7. 여자는 자기 의견을 어떤 순간에도 바꿀 수 있다. 8. 남자는 여자의 특별한 서면 동의 없이는 자기 의견을 바꾸지 못한다. 9. 여자에겐 어떤 순간이든 심리적 균형 상태에서 벗어날 (변덕 부릴) 권리가 있다.
10. 남자는 여자가 바라는 경우 외에는 언제나 감정이나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11. 여자는 자신이 준비됐다고 해야 준비된 것이다. 12. 남자는 언제든 준비 태세에 있어야 한다. 13. 이런 법칙에 남자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반듯이 행정적, 물적 책임은 물론이고 체벌까지 감수해야 한다.
남자로서 최상의 해결책은 —
여자가 내보인 갑작스럽고 변덕스런 행동에 화내거나 이의 달지 않고 전적으로 동의하되, 자기 식으로 행동하는 것.
그리하여 남자는...
1) 무의미한 충돌을 피하고
2) 필요하다 싶은 대로 행동한다.
(즉, 여성 논리로 여성 논리에 맞서기 – 비논리적이고, 알쏭달쏭하게, 예측하기 어렵게 행동하기).
남녀 간 유무형의 법칙을 여자가 제멋대로 바꿀 때,
남자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기왕의 합의나 논리, 체면(예의), 상식 등에 호소하는 것인데, 이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남자 논리는 여자 논리와 부닥치면 백전백패이기 때문이다.
여자 마음은 왜 저렇게 오묘한지, 여자는 왜 저렇게 일관성 없고 비논리적으로 혹은 부당하게 행동하는지…
자꾸 생각하고 따져 보려 해선 안 된다.
그 문제를 더 적극 규명하려 들수록, 남자는
논의의 실마리를 놓치고 여러 가지 여성 논리 수법에 현혹되어 결국 갈팡질팡하게 될 테니까.
비생산적인 언쟁에 나서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행동할 의지가 충분한 남자에겐 한 가지 보너스가 따른다.
즉, 여자한테 사나이답게 보인다는 것!
공처가가 된 남자는 집안일에서 (부딪치지 않으니까) 편할지 모르나 여자 눈에는 성적 매력을 잃는다. 사람은 좋을지 몰라도, "오호통재라, 독수리가 아니잖아!"
(여성의 이중적 욕구 - 여성 논리에 내포된 모순)
이 모순은 여성 논리에서 드러나며 남자들과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여자들에겐 본능적 욕구에서 대개 인식되지 않는 모순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여자는
‘진짜 마초/터프가이’를, 과감하고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며 여자의 관능을 자극하는 수컷을 갈망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자를 물질로 보장하고 여러 욕구를 채워주며 앞날을 책임질 줄 알면서도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 돌리지 않는
남자를 원한다는 것!
바로 이런 이중적 욕구 때문에, 여자는 '독수리'를 침대에서 품기를 꿈꾸지만 그 ‘독수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면 즉각 ‘날개를 꺾으려’ 든다. 다른 둥지로 못 날아가게!
이런 작업을 여자가 잘 끝내고 나면...
왕년의 ‘독수리’는 털 빠진 수탉이 되어 성적인 측면에서 여자를 더 이상 사로잡지 못하며, 이제 여자는 침대에서 다른 ‘독수리’를 꿈꾸기 시작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수수께끼 같은 존재여야 해." "여자에겐 남자들이 보기에 불가사의한 면이 있어야 돼."
여성 논리에 따르면…
남자들 눈길을 끌고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 여자는 바로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자는 신비로워야 한다’는 틀을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매혹적인 숙녀들이 반복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실제로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생각도 않고 말이다.
한데 실제에서는 이 매력적인 숙녀들이 이른바 ‘신비로움을 발산하려’ 하다가 거의 이런 우스갯소리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레스토랑에서 술 취해 앉아 있던 까마귀가 갑자기 수프 접시에 고개를 처박으면서 하는 말.
“아아, 오늘 난 얼마나 신비롭게 보이는가?!”
‘신비롭게 보이려는’ 본능적 욕구는 사실 남자들 눈길을 끌려는 욕구에 다름 아니다.
여자에게 눈길을 돌려야 남자한테 성적 관심도 생기고 <지배 전도> 현상도 나오지 않겠는가.
즉, 신비롭게 보이기란 눈길 끄는 수법이며,
그런 전략을 쓰는 여성은 자신의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에 남자가 흥미를 느끼는지, 그 수수께끼를 남자가 풀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가 알고 싶어서 무척 애태운다.
여성들의 이른바 ‘신비한 분위기’ 이면에는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것이 전혀 숨어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진한 사내들 경우, ‘묘한 분위기’라는 미끼에 낚여서 그 수수께끼를 풀다가 진이 다 빠질 수 있다.
왜 진이 다 빠지냐고?
검은 고양이를 컴컴한 방안에서 붙잡을 수는 없잖아. 그 녀석이 없다면야 더더욱 그렇고!
대부분 경우, 남자들이 실제로 ‘해독하는’ 불가사의는, 갖가지 로맨틱한 측면과 장면들을 제외한다면, 신비한 분위기로 눈길 사로잡는 여성을 어떻게 침대로 데려가느냐, 하는 단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가공적인 신비주의 전략을 쓰는 여자들에게 대응하는 최선의 전략 중 하나는 (특히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남자들 경우에!) 그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무시하는 것이다. 무시당했다고 여긴 여성이 스스로 행동에 나서면서, ‘미스터리’가 저절로 풀릴 것이다. 즉, 남자가 먼저 건몸달아 할 일이 없다는 뜻.
이제 <Freudian slips>의 (혹은 말실수나 실언이라고 알려진) 국내외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본다. 황당하다는 느낌도 들고 웃음을 참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탐구심 강한 이들한테는 여러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분주해질 게 분명하다.
* 미국 43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주니어의 경우에는 이른바 실언이 하도 많고 널리 알려져서 생략. Bushism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니까.
* 2014년 바티칸 강론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에서 카소(caso, 샘플)이라는 단어 대신 이탈리아어 욕설인 카초(cazzo, 음경, 얼뜨기)가 무심결에 흘러 나왔다. 교황은 금방 정정했지만 실언 동영상이 이미 수십 개 사이트와 블로그 등에서 널리 퍼지고 말았다.
====> 이 경우는 문자 그대로 발음의 실수 정도가 아닐까 싶다.
* 미국 상원의원 테드 케네디가 티브이 증언에서 “국가 이익이란 최고(best) 인재들을 장려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하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한데 best 대신 그는 breast를 불쑥 내뱉었다. 게다가 손바닥을 컵처럼 모아 쥐고서. 역시 재빨리 고쳐 말했지만 그의 평판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
====> 사회가 용납하지 않아 억눌린 욕구와 충동 가운데는 성욕이, 성적인 것이 가장 크다고 한다. 상원의원 이미지가 구겨질 만하다.
* (조지 부시 정권에서 국무장관 직을 수행하던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가 한 만찬석상에서 어떤 질문을 받고 답변했다.“여러 번 말씀 드렸다시피, 이미 제 남편한테...” 일순간 짧은 휴지를 취한 뒤 “부시 대통령한테 보고했고…”
====> 이것도 테드 게네디 경우처럼 전형적인 ‘프로이트의 실언’이다. 당시 라이스가 미혼이라는 상황이 구구한 해석을 낳는 데 한몫을 했다. “라이스가 보스한테 품고 있던 은밀한 감정이 불거진 것 아니야?” 하지만 늘 그렇듯이, 반대 견해도 있다. “뭐, 그렇게까지 확대할 필요 있나?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 아직 둘 다 확실치 않다. 지금까지 이 포스팅 시리즈를 숙독한 당신께서는 어떻게 해석하시겠는가? ^^
*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명박 씨가 2004년 5월 장충체육관 '청년 학생 연합기도회'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를 낭독하면서)
====> (나중에 성토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그쪽에서 ‘말실수’라고 둘러댔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이건 말실수가 아니다. 억눌리고 억제하던 무의식의 발로가 아니다.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의 뻔뻔한 발언일 뿐. 왜 편협하고 뻔뻔하다 하냐고? 왜냐하면, 모든 시민을 다 아울러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비슷한 맥락에서, 전두환 씨의 “29만 원 운운”도 말실수가 아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뻔뻔한, 새빨간...
* 사면에 바다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이 바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의 과오입니다. (경인 아라뱃길 개통 기념사, 이명박)
====> 이건 4편 <실언의 유형> 가운데, 글쎄, ‘어휘 선택 실수’에 해당하나? 아니면, 또 다른 원인인 무지에 해당할까? 하지만 대한민국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우리 골목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도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이것 역시 전형적인 ‘프로이트의 실언’이 아닌가 싶다. 즉, 무의식의 발로! 그는 혹시 ‘4면에 바다를 갖고 있는 나라’를 제 모국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 15년 동안의 대통령 직을 사퇴합니다. 아,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박근혜)
====> 명명백백한 ‘프로이트의 실언’이라 하겠다. ‘난 공주였어, 내 아버지가 이 나라 대통령이었어, 저기 북쪽에서도 대를 이어 승계하는데 여기서도 그래야 마땅한 거 아니야? 이 나라 왕권(?)은 나한테 있고, 대통령은 나야’ 하는 생각을 자주 품은 것은 아니었을까? 프로이트라면 분명히 그렇게 해석했을 듯싶다.
*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2012년 힐링 캠프에서, 박근혜)
* 전화위기의 계기로 삼아서... (2012년 경기도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박근혜)
====> 전자는 단순히 음절이나 형태소가 바뀐 ‘프로이트의 실언’으로 볼 수 있고, 후자는 무지에서 비롯된 ‘프로이트의 실언’에 속하겠다. “이산화까스 운운” 역시 무지에서 튀어나온 ‘프로이트의 실언’.
---> 프로이트라면 이런 해석을 내놓지 않았을까? 마음속으로는 ‘회장님이 이미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속내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중에 기자들이 몰려들자 당황한 나머지 의식의 컨트롤이 느슨해지면서, 그 틈으로 무의식이 치고 올라와 자기 정보를 불쑥 들이민 것 아니겠어?
* “당 대표를 맡겨 주신 것에 대해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해방 이후 이 땅을 건국하고 산업화하고, 문민정부를 세운 이 당이 이렇게 몰락한건 우리들의 자만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당을 쇄신하고 혁신해서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을 약속한다.” “감사한다. 잘 하겠다.” (신문 기사에서, 자유한국당 신임 당 대표 수락 연설, 홍준표)
---> 존경하는 홍준표 선생께서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됐다’는 기사에서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이란 대목을 보고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기사가 잘못 작성/인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왜?
왜냐하면, 대놓고 결론부터 말해서,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라는 대목이 나한테는 ‘절대 달라지지 않는 모습으로...’로 100% 읽히고 해석됐으니 말이다. “거, 자네한테 혹시 난독증이 있는 거 아니야?!” 존경하는 홍 선생께서는 특유의 비아냥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반박하거나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만에 하나 그렇게 한다면, 그건 온당한 반박이 ‘전혀(!)’ 아니다. 못 된다. 왜?
왜냐하면... 간단하다. 국어사전만 들추면 된다.
전혀 (全-) - 부정어와 함께 쓰여, ‘절대로’, ‘완전히’의 뜻을 나타내는 말. 국어사전에서 소개하는 예문. 다행스럽게도 오키나와 부근에서 태풍이 소멸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는 피해가 전혀 없었다. 계곡 위에서 찰방찰방하는 소리가 났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친삼촌이면서 질녀의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즉, 한국어를 쓰고 한국인들과 소통하고 한국 땅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혀’ 다음에는 반드시 부정어가 나온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다. 거기에 익숙하다. 자연스레 그렇게 해석한다. 저절로 그렇게 납득한다. '전혀'라는 단어를, 말을 들으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그게 않겠구나/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품게 된다.
사실, 이런 예문이며 설명이며 보태는 자체가 ‘전혀’ 구차스럽다. 유치원 코흘리개도 다 아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모래시계>의 총명하고 총기 넘치는 명 검사께서 삼척동자도 아는 것을 어찌 모르실 수 있을까나. 그런 전제 하에서, 이건 “전화위기의 계기로...” 같이 ‘무지에서 비롯된 실언’의 유형이 전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혹시... 본인이나 주변에서나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직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문득 그런 의문마저 든다. 하기야 그런 기사를 (그대로) 내보내는 이른바 기자나 이른바 언론사도 있는 판국이니... (*이건 “너무 좋아” 같이 아주 잘못된 표현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근대화 과정을 바로 “너무 좋아”라는 왜곡된, 그런데도 너도 나도 쓰는, 표현에서 낱낱이 대조하고 점검해 볼 수 있다. 다음 기회에.)
말이 참으로 길어졌다. 만약, 홍준표 선생께서 정말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라고 말했다면, 이건 전형적인 ‘프로이트의 실언’이라 해석할 소지가 다분하다. 즉, 무의식의 발로. 즉, ‘절대 달라지지 않겠다, 달라질 일이 뭐 있느냐...’ 같은 생각이 내면에 잔뜩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확 달라진’이나 ‘완전히 달라진’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전혀’라는 단어를 쓴 것이 아닌가...
말실수는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다. 단, 정말 창의적이고 진정 총명한 프로이트의 업적을 잘 알아서, 자기만의 편협하고 허황되거나 욕심 많은 속내가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특히 공인들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을 바로 하는 것이겠지.
어떤 단계에서 뇌가 한순간 잘못 작동하면서 그 사람의 컨트롤도 아이처럼 약해지기에 떠오르는 것을 그냥 입에 올리게 된다.
가끔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은밀한 생각까지 튀어나온다. 더 동요하고 억제하고 뭔가를 감추려 들수록… ‘어쩌다 내뱉는 말’의 개연성이 더 커진다. 속내가 더 빨리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실언을 무의식적인 욕구와 충동과 갈망의 표출로 간주했다. 이는 일상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사람을 괴롭히며 압박하는 내적 갈망과 생각이 삐져나온 것. 실언은 실착 행위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서
1) 생각한 단어와 전혀 다른 단어를 말하거나
2) 의미가 아주 분명한 단어들을 왜곡하기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
실언의 유형
심리언어학에서는 말실수를 이런 유형으로 분류한다.
처음 말 재료에 자기 생각을 집어넣기 (예, ‘너’ 대신에 ‘너와 나’) 문장 일부 전치, 단어들 순서 바꾸기 (‘독서를 위한 책’ - ‘책을 위한 독서’) 단어에서 음절이나 형태소 자리 바꾸기 (‘바쁜 꿀벌은’ - ‘바쁜 벌꿀은’) 한 단어와 전체 단어들의 중요한 부분 빼먹기 어휘 선택 실수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 사용) 조음과 발음의 잘못 말장난 (또는, 신소리. *프로이트는 ‘위트’ 같은 것도 slips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특정 범주에 넣기 곤란한 형태의 말실수도 많다. 그런 것들 대부분은 몇몇 그룹에 다 해당되겠다. 언어학과 심리학에서는 다른 형태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네 정신에서 단어들이 바뀌는 데 두 가지 요소가 일정한 역할을 하는 듯싶다.
1) 눈길 끌기
2) 심리 문제와 연관된 내적 요소.
단순하게 깜빡하는 것 이외에 또 감정이나 욕구의 억제 때문에 생기는 망각도 있다.
프로이트는 사회나 주변에서 용납하지 않는 생각과 소신이 무의식에서 억제돼 있다가 실언으로만 나온다고 보았다.
의식의 언어화 - 흰곰 실험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심지어 억눌린 생각이 실언을 통해 나올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견해는 이후 몇몇 연구 결과로 확인됐다.
전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것과 연관된 실언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쁜 여성 실험자 곁에 있는 남자들이 역시 그 여성의 매력과 관련된 실언을 더 많이 했다. (모틀리 & 비어스, 1979)
고전적인 실험에서 하버드 심리학자 Daniel Wegner가 피험자들에게 생각나는 것을 전부 5분 동안 말하게 했다. (의식 흐름의 언어화verbalization of the stream of consciousness).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을 죄다 말했는데, 단, 조건이 하나 있었으니, "흰곰을 생각하지는 마세요~" 하고 실험자가 당부한 것. 피험자들은 흰곰을 떠올릴 때마다 벨을 울려야 했다.
그리고 실험 와중에 발견된 사실…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은 이들이 흰곰을 평균 1분에 한 번씩 떠올리더라. 이 결론에 의거하여 웨그너는 역설적 과정 이론을 만들었다. 어떤 특정한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왜 힘들 수 있는지.
알고 보니…
우리네 의식의 일부가 어떤 생각을 억누르는 동안, 다른 일부가 정말 그것이 억제되고 있는지, 생각하지는 않는지,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가 떼어내려는 생각이 우리 마인드를 차지한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현상인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멀리하고, 부정적 어법을 삼가라는 것!)
거의 늘 뭔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더 힘쓸수록 그것이 더 자주 뇌리에서 어른거린다. 그리고 그 '더 자주 어른거리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말로 표현하는 (드러내는, 내보이는) 경향이 사람들한테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실언'에 대한 현대적 해석과 접근
현대 과학은 실언을 뇌의 '순간적인 실수, 고장, 정지, 결함 등'이라 부르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말하기에서, 의미며 어휘며 음운 체계 등의 연속성이 일시적으로 파괴된 것. 그렇다 하여 실언한 사람에게 정신 분석 치료가 필요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는 것. 예를 들어, 만약 새로 사귀는 연인 앞에서 실수로 이전 연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면, 이전 관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피로하다는 뜻일 수 있다. 어떤 무의식적 과정이 은밀하게 작동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두고 현대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실언과 관련된 감정이나 느낌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러면 세상 질서를 더 널리 이해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신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실언과 무의식이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주장을 현대 심리학자들이 전부 수긍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말실수란 별의별 원인으로 생길 수 있다는 것.
부주의, 방심, 정신 산란, 지식 부족 (무지) 상투적인, 틀에 박힌 말을 쓰다가 삐끗거리기
흥분이나 동요 같이 지나치게 달아오른 감정 상태의 후과 청자 쪽의 문제 (잘못 들었으면서도, 외려 상대의 말실수로 치부하기)
청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을 비틀기 (이건 특히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수법. 예, 1930년 미국 대선 주자 한 사람은 normalcy (normality, 정상 상태)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프로이트의 주장도 맞고, 현대 일부 심리학자들 얘기도 맞다. 실언에도 참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아닌가 싶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터지는, 이른바 공인이며 유명인들의 '막말 파동' 가운데는 그냥 사과하고 어물쩡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왜? 왜냐하면, 그런 실언과 '막말'에서 드러난 그들의 의식과 생각, 가치관 등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예를 들어,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정치 무대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을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던 유명 연예인이라면 활동을 접어야 할 만큼) 편협한, 비뚤어진, 이기적인, 배타적인... 관점인 경우에 그러하다.
다음 5편에서 우리가 접하는 사례 가운데 그런 실언과 막말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관찰하면서 많은 것을 알아냈다.최면과 감정 토로, 의식 흐름의 언어화, 자유로운 연상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의 마인드를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그리고 사람의 행동 동기가 논리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론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유를 절대 신봉한 19-20세기 과학의 개념과 상충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사람 정신에 이런 요소들이 있다고 보았다. (성격 구조)
자아 (ego) - 현실과 접하면서 1차 본능적 사고를 이성적으로 필터링 초자아 (superego) - 양심과 도덕, 이데아를 좇으면서,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묶인 영역 원초적 자아 (id) - 원초아, 원본능. 쾌락에 눈먼, 1차 본능적 사고 과정을 담당하는, 통제하기 힘든 놈
그리고정신의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의식 수준 - 생각, 인지 잠재의식(전의식) 수준 - 기억, 저장된 지식, 의혹 무의식 수준 - 공포, 이기심, 공격성,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성적 욕구, 비합리적 갈망, 부도덕한 충동, 부끄러운 경험,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사회에서 어른거리는 도덕적 모습과 자신의 깊고 은밀한 감정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자신의 ‘나’로써 (자아로써) 찾으려 든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간주한 것처럼,
모든 개인의 목표는 – 자신의 인식되지 않는 본능을 길들여서 이성에 종속시킬 줄 아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야 사람 사는 사회가 유지될 테니까.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이란?
이성으로 충분히 탐지되지 않는 정신 영역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사회에서 지배적인 시각 때문에 수용될 수 없고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여러 욕구와 충동이 이 영역을 채운다.
지금은 개념이 좀 더 다양해져서, 의식되지 않는 (무의식적인) 모티브의 형태를 몇 가지로 나눈다.
간략히 보자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 경험의 후과 승화의 결과물 믿음의 작용 어떤 그룹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것 (집단 무의식).
이 욕구와 충동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은 채 무의식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사람의 행위를 상당히 자극하고 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어떤 행위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말. “내가 왜 이럴까? 장밋빛 스카프만 보면...”
정신분석학에서는 의식적인 것보다 무의식적인 것이 훨씬 더 크고 깊고 세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를 용인하다 보면 예측 못할 언행이 돌출하고 노이로제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런 경우, 프로이트는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연상을 이용해 치료했다. 즉, 환자가 병상에 누워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것을 죄다 털어놓는 것.
자유 연상 게임
심리학자들이나 수사관들이 범죄자나 다루기 힘든 미성년자들을 상대하면서 <자유 연상>이라 불리는 게임을 종종 한다. 상대가 일련의 연상을 끄집어내도록 하는 것. 사람은 다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그들 잠재의식에 있는 연상은 폭이 상당히 좁다. 속이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즉, 상대에게 사진에 있는 대상을 보여주면서, 그것과 가장 먼저 의미가 닿는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말하게 한다. 계속 제시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언뜻 떠오르는 것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결국 은밀한 것이 드러나게 된다. 잠재의식이 비밀을 토로하고 마는 것.
이런 수법에서 상대가 말하는 것이 전부 ‘프로이트의 실언’에 해당되는 것일 터. 뭔가 아픈, 많이 아픈 사람도 그것을 결국엔 끄집어내기 마련 아니던가?
2. “아니”, “노”, “아니야” 같은 말은 상대방의 귀싸대기를 갈기는 것과 진배없어요.
이 어구를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시 실제 소통 심리 법칙 가운데 하나.
“그게 왜, 어때서? 뭐가 문젠데?!” 하고 반문하게 되나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다 자기 생각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걸 소리 내어 드러낼 때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견해 같은 것을 말하면서 그것이 제대로 평가 받기를 기대하지요. 상대방이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네 말을 듣다가 탁자를 탁 치며 “오, 거 참 멋진 생각이야!” 등등의 반응 보이기를 마음속 깊이 기대합니다. (안 그런가요?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한데 우리네 기대와 달리 실제로 우리가 종종 듣는 대꾸는… “아니, 안 그래…”, “아니야, 그게 아니라…” 같은 말이에요! 즉, 용인과 수긍 대신 부정과 반박을 접하고, 그에 대응해 우리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정적이든, 어깃장 놓는 심정에서든) 부정적인 반응을 띠게 되며, 그 결과 상대방을 동조자가 아니라 경쟁자나 적수로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할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이런 점을 명심합시다.
“아니”라는 단어로 대답을 시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금방 한 말을 마치 마음에 안 드는 글에 가위표 박박 치고 꼬깃꼬깃 구겨서 휴지통에 내던지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점!
그런 걸 그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럴 때 진정한 대화 상대는 이미 사라지고 맙니다. 자리를 박차지 않는다 해도 마음은 이미 식어서 멀리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게 분명해요.
그런데…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는) “아니요”에도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양면성이 있기는 해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유익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해롭습니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요청을 거부하거나 누군가의 끈덕진 들러붙음을 잘라야 할 경우, 우리는 단호하게 “아니야!”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런 경우에 내뱉는 “아니요”는 우리와 한편이에요.
그러나 상대방에게 뭔가를 얻기 원하며 그에게 반감 같은 것을 야기하지 않고 싶다면, “아니요”라는 단어는 잊는 게 좋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답을 ‘아니’로 시작하는 것은 “무슨 헛소리야?”하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어요. 여기서 “아니요”라는 말은 논쟁 촉발 인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논쟁이란 건강한 토론보다는 종종 거친 입씨름으로 이어지며, 따라서 논쟁을 일삼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점도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잘 듣다 보면 이 단순한 소통 심리 법칙이 깨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대화하면서 사람들은 “아니”라는 단어로 말문을 트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니, 알겠는데…”
“아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 그게 아니라…” 등등.
사람에게는 반발과 반박하는 마음이, 맞서려는 기운이 강하게 도사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심리가 어찌나 강한지, 심지어 동의와 긍정을 표하면서도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에 그런 게 깔려서?) “노”라는 단어로 입을 뗄 정도에요!
“아니, 그렇게 돼야지…”
“아니, 자네 말이 정말 맞아.”
“아니, 난 당신 말에 동의해요.”
(대화와 토론 등에서 들리는, 이런 표현은 부지기수. 심지어 절대적인 동의를 표할 때조차 “아니, 그래!” 하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조금만 관심 갖고 귀 기울여 보면, 어떤 사람들 경우에는 이런 말과 표현이 아예 입에 배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어요!
아니, 정말 놀라운 것이,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언급이나 말에 모욕적인 귀싸대기를 안기며 반응하고는 금방 그 관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덧붙이는 거예요. 나이브하게도. (*근데 지금 여기서 "아니"는 지금 우리가 다루는 '아니'와 성격이 다릅니다. 국어사전의 뜻풀이 1번이 아니라 2번에 해당되지요?)
협상에서 “No”라는 단어와 관련된 유명한 아포리즘이 하나 있습니다.
외교관이 만약 "Yes"라고 말한다면 그건 실제로는 "may be"란 뜻이고,
"may be"라 말한다면 그건 실제로는 "No"라는 뜻이며,
"No"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에게 외교관 자질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파생된 버전이 하나 있어요.
여성이 ‘노’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쩌면’이란 뜻이고, ‘어쩌면’이라 말한다면 그건 ‘예스’라는 뜻이며, 만약 ‘예스’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녀가 숙녀가 아니라는?)
하지만 실언에 관해 더 얘기 나누기 전에, 그보다 상위 개념인 이른바 <실착(失錯) 행위>를 좀 알아보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여러 실수 행위를 다루면서 그리스어 ‘파라프랙시스 (para-praxis)’와 독일어 ‘펠라이슈퉁 (Fehlleistung, 기능 장애)’이라는 용어를 썼다.
파라프랙시스는 ‘속에 있는 생각과 의도를 (속내를, 의중을)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는, 말실수나 행위’를 뜻한다. 한국어로는 ‘실착 행위, 실착증’으로 옮긴다.
유형
프로이트는, (겉으로는 하찮고 무의미해 보이는) 실언을 비롯한 실착 행위에 묻어서 무의식적인 욕구와 갈망 따위가 밖으로 드러나며, 이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실착 행위를 네 종류로 나누었다.
1) 잘못 말하기, 잘못 쓰기, 잘못 읽기 (단어나 상징, 이미지를 잘못 인지하기), 헛듣기 (몬데그린 mondegreen - 한 단어나 구절을 잘못 듣거나 잘못 해석하여 새로운 뜻을 부여하게 되는 것. 시나 노래를 들으면서 흔히 발생한다.)
2) 깜빡하기 (자기 이름이나 낯선 단어들, 자신의 의도 등을 얼른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에서 사라짐)
3) 물건들을 잃어버리거나 엉뚱한 곳에 두기/감추기 (아이를 태우고 가야 할 자동차의 키를 자기도 모르게 냉장고에 넣어 두는 행위)
4) 혼란스러워서 헷갈리는 행위.
이런 행위를많은 사람들이 그저 엉뚱하거나 황당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중요한 심리 현상 표출로 해석했다. 즉,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적 갈등이나 억눌린 갈망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꿈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실착 행위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비밀로 향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실착 행위가 다 쉽게 이해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기서도 신체언어 시그널 해석과 마찬가지로, 맥락이 아주 중요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실착 행위라 해도, 환자의 언행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상담 시간을 놓치거나 진료비 지불을 잊는 실수 같은 것). 환자의 실착 행위를 통해 분석자와 환자 본인은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것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저 앞의 4가지 분류에서, 첫 번째 그룹과 나머지 3가지 그룹에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전자에서는 당사자의 어떤 의향이 드러나는데, 후자에는 그런 점이 없다는 것.
실착 행위의 범주
이쯤에서, ‘파라프랙시스’의 특징이랄까, 얼굴을 정리해 본다.
1) 실착 행위는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한테나 일어나는 정상적인 현상’ 안에 있어야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미친증이 아니라는 것.
2) 실착 행위는 한순간 나타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듯한) (마인드의) 파괴, 일탈, 장애, 고장... 같은 성격을 띤다.
3) 실착 행위를 보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그 동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우연히, 어쩌다가 돌출한 것이라 여기고 만다. (실제로, 파라프랙시스의 대부분이 그런 쪽의 것이기도 하다.)
실착 행위는 멀쩡한 정신에서, 멀쩡한 상태에서, 멀쩡한 사람한테서 나타난다.
이런 현상에 흥미를 느낀 프로이트가 연구를 시작하면서 자문했다.
“나로 하여금 바로 그런 식으로 잘못 말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그는 하려던 말과 극히 상반된 것을 말하는 실수의 경우가 가장 흥미롭다고 기록했다.
“실착 행위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도가 간섭하고 충돌하면서 생긴다. 개중 하나를 파괴된 것이요, 다른 하나를 파괴하는 것이라 부를 수 있다.”
특히 실언(slips of tongue)의 경우,
그 이면에는 직접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곤란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뭔가가 억눌려 있다고 보았다.
어디에?
무의식에.
한데, 무의식은 의식보다 아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
의식이 감정의 침입을 받는 등 어떤 이유로 조금 느슨해진다 싶은 순간,
주저 없이 작동하면서 제 안에 쌓여 있는 정보를 주인에게 들이미는 것. (이런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실언이나 말실수라고 표현한다.)
여러 선진국의 보통사람들은 단어를 1천 개 말할 때마다 말실수를 두어 번씩 한다. 달리 말하자면, 누구나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하루 평균 7-20 회쯤 실언한다. 그 대부분은… 단어 깜빡하기, 단어 헷갈리기, 혀 잘못 놀리기 같이 소소한 실수이다. 감정이나 심리가 극히 긴장되거나 억눌려 있다면 실언할 가능성이 급증한다. - 미국의 저널 <Psychology today>
남녀노소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말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엉뚱한 말이 불거져 나오는 것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웃고 지나치기 일쑤다. 누구한테나 벌어지는 일이니까. 당사자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거나 당장에 수습하느라 부산을 떨지만...
이런 경험
내 경우에도 잊히지 않는 경험이 하나 있다.
예전에, SBS에서 뉴스앵커로 일할 때 생긴 해프닝. 후배 아나운서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여느 때처럼 편하게 (익숙하게, 별 생각 없이, 늘 입에 붙어 있는 말이니까) 클로징 멘트를 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상으로 엠비씨 저녁 뉴스를... "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서 "에스비에스 저녁 뉴스를 마칩니다..." 하고 정정했다.
낯이 뜨거워졌다. 일순간이나마 방심한 게 아니냐 싶어 자신을 탓했다. 많이.
스튜디오에서 나와 동료들 눈치를 슬쩍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들 할까?
하지만 가까운 후배 기자 두엇만 씨익 웃음 지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 이후에도.
하지만 나는 며칠 동안 짬 날 때마다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그 순간에 도대체 왜 그런 말이 내 입에서 나왔을까? 전혀 생각도 않던 단어가 말이야. 예전에 거기서 일할 때 하던 멘트가 부지불식간에 흘러나왔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또 왜 그런 거지? 하기야 고 순간에 뭔가 딴 생각을 했던 건 분명해. 하지만 그 ’딴 생각‘이 그쪽 회사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 흥미로우면서도 묵직한 숙고는 <Freudian slips>라는 표현을 접하고 나서 조금 가벼워졌다.
slip이라는 단어가 정말 적절한 듯싶었다. 미끄러지다, 헛디디다, 비틀거리다, 몰래 나오다, 깜빡 빠뜨리다/놓치다, (말이) 무심코 나오다... 그런데 (나온 게 무엇인지는 알았다 치고) 그게 어디서 나오며, 왜 나오는 것인가?
'프로이트 실언'의 유래
정신분석학이라는, ‘인간 이해’에 큰 디딤돌을 놓은 프로이트에게 한 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가 한번은 서사시 <아에네이드>의 한 대목을 그에게 낭송하는데, 한 단어를 무심결에 (자기도 모르게, 의식하지 못한 채) 건너뛰더라...
관찰력 뛰어난 프로이트가 이 현상에 즉각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알아냈다.
빠뜨린 단어는 환자가 부정적으로 여기는 어떤 것과 관련이 있더라.
아, 그렇다면, 그 단어를 뇌가 잠재의식에서 (혹은, 무의식에서) 가로막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몇 해에 걸쳐 더 많은 관찰과 연구 끝에
1901년 펴낸 <일상의 정신 병리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에서
실언을 비롯해 실착 행위며 기계적 행위에 관해 흥미로운 묘사와 설명을 담았다.
'Freudian slips'란 영어식 표현을 우리말로는 흔히 ‘프로이트의 실언’이라고 옮기는데, 잘 모르는 사람은 오해할 소지가 있다. 마치, ‘프로이트가 한 실언’인 양.
본디 뜻은 ‘프로이트가 가리키는 실언’, ‘프로이트가 의미하는 실언’ 같은 것인데, 그렇게 늘어지는 표현은 말하고 쓰기에 불편하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실언’ 이외에 달리 마뜩한 표현이 없어 보인다. 그 뜻만 정확히 안다면, 문제 될 건 없다.
정의
이미 1백 년 넘게 전 세계에서 하나의 정착된 용어로 두루 쓰이는 저 표현의 뜻은 간단하다.
혀가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본래 하려던 말과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실수.
그리고 좀 더 확대하자면, 은밀하게 품고 있는 속내를 자기도 모르게 툭 끄집어내는 말실수, 그래서 무심결에 밖으로 삐져나온 내면 심리...
여자와 그 후손을 필요한 자원으로 보장해야 하는 남자들을 지배하게끔 디자인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적 사고방식의 결정적인 측면을 이런 데서 접하게 됩니다. 즉, 옷장에 별의별 옷이 가득한데도 “입을 만한 게 하나 없어!” 하고 내뱉는 말. 이는 여성의 본능적 필요와 요구를 드러내는 푸념입니다.
자신을 물질적으로 보장하고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음에도… 만약 남편과 헤어지는 경우 (물적) 자원으로 보장해줄 다른 남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음을 자기도 모르게 암암리에 내보이는 것.
최대한 많은 남자를 거느리고 다스리려는 본능적 요구를 여자들이 의식 수준에서는 대체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많은 여자들은 교육 받은 덕분에 그런 셈속을 ‘부도덕’하거나 ‘추잡한’ 것이라 여기지요.
여자는 오로지 ‘다른 여자들보다 나쁘지 않게’ 보이려 애쓰는 것일 뿐이며, 남편만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주장할 거예요. 그래서 이런 아포리즘도 나왔습니다.
여자는 많은 것을 한 남자한테 바라는 반면에, 남자는 한 가지를 많은 여자한테서 바란다.
최신 유행하는 옷을 차려 입고 남자들의 흥미로운 눈길과 다른 여자들의 부러운 눈길을 끄는 여자는 아주 짜릿한 맛을 느낍니다. 이 달콤하게 도취되는 느낌은 본능적 행동을 장려하며 여성 신체에 마약처럼 작용하는 특정 호르몬이나 물질을 분출하게 합니다.
여자는 자신의 매력에 남자가 푹 빠졌으며 그에게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특별한 흥분 상태를 맛봅니다. 이런 흥분 또한 여자에게 내재된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
남자가 성적 몰입을 분명히 드러낸다고 느낄 때 (여성) 신체에서 벌어지는 호르몬 분비 또한 특수한 본능적 행동의 원인이 된다. 이를 '비교 행동학'에서는 <지배 전도 inversion of domination>라 부릅니다.
지배 전도는 짝짓기 시기에 접어든 동물들한테서 흔히 발생해요. 흔히 짝짓기 얼마 전에 수컷이 (그동안의 지배적 위치에서) 종속적 위치로 이동하여 자신이 아주 다정하며 순종적임을 암컷에게 여러모로 내보입니다.
이런 행위의 목적은 암컷을 놀래지 않고 암컷의 저항과 공격을 피하여 결합할 기회를 갖기 위한 겁니다. 수컷이 나중에 새끼들을 돌보지 않는 동물 종에서는… 지배 전도가 짝짓기 시기에만 관찰되고, 수컷이 새끼들을 돌보는 종에서는… 지배 전도가 짝짓기 이후에도 새끼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계속됩니다.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지배 전도 행위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남자가 무릎 꿇기, 온순하게 보이기, 창밖에서 세레나데 부르기, 하늘에서 별을 따다 주겠다고 약속하기, 선택한 여성에게 흩날리는 갖가지 친절 따위…
여자보다 성격이 덜 단호하고 자신감 부족한 남자들 경우엔 관계 맺는 기간 내내 <지배 전도> 현상이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이 <지배 전도>라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들끓는 호르몬 때문에 남자가 한 약속을, ‘별 따다 주겠다’는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지요.
그리고 짝짓기를 몇 번 하고 난 뒤 별은커녕 별 부스러기도 못 보고 ‘백마 탄 왕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극도로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속았음에 분개한 여자가 투쟁에 나섭니다.
아직도 어른거리는 백마 탄 왕자며 하늘의 별, 그렇게나 다정하던 <지배 전도> 현상을 어떡하든 안 놓치려 듭니다.
여기서 여성의 사고방식이, 여성적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이 여성적 사고방식을 적시에 적절히 쓰기만 하면 남자를 컨트롤하는 싸움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가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여성 사고방식을 적시에 적절히 적용할 줄 아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본능적인 것이든 다른 여성들 경험에서 차용한 것이든 여성 논리의 특정한 수법을 쓰면서, 여자들은 대개 지엽적이고 전술적인 승리를 거둬요.
하지만 남자한테서 어떤 양보를, 때론 상당히 큰 것을 얻어냄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는 결국 패하게 됩니다. 여자의 ‘변덕’에 염증이 생긴 남자가 조만간 자신에게 더 걸맞은 여자 친구를 찾아 나설 테니까.
"여성은 옷을 벗게 되리라는 것을 알 때 더 정성 들여 차려입는다." - 아포리즘 ^-^
공정을 기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여자들이 모두 여성적 사고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모든 여자가 남자 덕으로 제 인생을 꾸리려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충동보다 이성에 더 많이 의존하며 지적 수준 높은 여자들의 사고방식은
순전히 여성적인 논리보다는 외려 남성 논리에 더 가깝습니다.
여성 해방이 그나마 결실을 맺은 것이에요.
‘사업적인’ 여성들의 행동은 남자들 행동과 더 비슷하며, 일부 남성들, 특히 비전통적인 성적 취향을 지닌 남자들 행동은 외려 전형적인 여성 행동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하지요. 그런 남자들의 논리는 부분적으로 여성 사고방식과 비슷할 수 있겠습니다.
여성 사고방식의 많은 기법을 남자들이, 특히 정치인들이,
여성적 사고방식에 대항할 줄 모르는 논적들을 물리치는 데 적극 활용합니다.
그러니 여성적 사고방식은 여성에게만, 남자 논리는 남자한테만 고유한 것이라 여긴다면 그건 잘못이겠지요.
남성적 논리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논전의 무기로 다듬을 수 있고, 여성적 사고방식을 '법칙 없는 싸움'에서 활용해야 할 겁니다.
여성적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그 주된 수법을 알면, 남녀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남자들로서는 여자 쪽의 조종을 더 잘 피할 수 있을 테고, 여자들로서는 널리 퍼진 많은 오류를, 그래서 결국 남자가 다른 데서 ‘행복을 찾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23-2)
"아, 물론이지. 그러니까...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지저분하고 다른 사람은 말쑥하다고 상상해 보게. 둘 중에 누가 목욕탕에 갈까?"
"거야 당연히 지저분한 사람이지. 씻어야 할 테니까, 목욕탕에 가야 하지 않겠나."
"허허, 그게 바로 논리일세. 그럼, 이젠 좀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보게. 지저분한 사람은 잘 씻지 않으니까 지저분한 것이고, 말쑥한 사람은 목욕탕에 자주 다니니까 말쑥한 거야. 그렇다면, 둘 중에 누가 목욕탕에 가겠나?"
"그렇다면 말쑥한 사람이지!"
"허허, 그게 바로 변증법일세."
"아, 그렇군. 그럼, 철학은 뭔가?"
"음, 같은 질문을 다시 하겠네. 여기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지저분하고 다른 사람은 말쑥해. 둘 중에 누가 목욕탕에 갈까?"
"빌어먹을, 그걸 누가 알겠어!"
"허허, 그게 바로 철학이란 것이야."
이 일화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버전이 대체로 남성의 사고방식이며 논리와 흡사해요. 반면에여자 사고방식으로는 “흥, 그걸 누가 알겠어!” 하고는 어떤 명확한 근거 없이 자기한테 더 편한 쪽을 택하지요.
남자들은 미흡하나마 나름대로 논리 사슬을 만들어 자기네 생각과 말에 근거를 부여하려고 애써요. 그러면서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사실을 과감하게 동원하거나 다소 빈약한 주장이라도 들이밀어요. 남자들에게는 객관적 접근보다는 남성적인 이성으로 수용할 수 있는 논리 사슬이 더 중요합니다.
여자들은 대체로 논리보다 감정에 훨씬 더 크게 의거하면서 자기한테 필요하고 유리한 결론을 (나름대로! 자기 식으로!) 미리 다 내립니다. 논리적 구성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요. ‘반드시 일일이 따져 보고 조목조목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에게 여자는 자신의 결정이나 결론을 관철하기 위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무작위로 마구 끄집어낼 거예요.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남성적 논리에도 흠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사실을 속이고 말뜻을 비트는 등 트릭을 쓴다고 해서 남자의 논리가 늘 객관성을 띠며 행위에 올바른 근거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에요. 남자의 논리가 여자의 사고방식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거나 ‘더 맞다’고 단언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요는 어느 한 쪽의 사고방식이 더 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보다는 다른 젠더의 반응과 생각 흐름, 행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결국에는 불쾌함과 상호 비난, 충돌이 발생하기 쉽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죠.
"난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두고, 남자는 그게 잘못된 경우에도 정당화하려 애쓰는 반면에 여자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밀어붙입니다.이런 경우 그 선택이나 결정이 옳을 개연성은 남자와 여자의 경우 둘 다 똑같아요. 논리적으로 답을 찾는 것이 효율 면에서는 본능적으로 내놓은 답변과 비슷하니까 말입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라서, 경우에 따라 남자의 논리가 더 적절한 때도 있고 여자의 본능이 더 옳은 때도 있습니다.
남성들의 논리와 여성들의 사고방식이 부딪치면 남성 논리가 지게 마련입니다.
남성의 논리라는 것이 사실을 비틀거나 하면서도 결국엔 ‘법칙을 따르는’ 것인데 반해, 여성적 사고방식은… 법칙이란 것을 아예 인식하지 않으며, 설령 인식한다 해도 그 법칙을 자기 기분과 대화 흐름에 따라 예측하기 어렵게 마음대로 바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할 때, 늘 지고 싶지 않은 남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여자들처럼 ‘법칙 없이 싸우는’ 기법을 연구하고, 필요하면 상대에게 상대의 주된 무기로 응대하는 겁니다. (*한데, 이렇게까지 하려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 (23-1)
실제로 여자와 언쟁하고 논쟁하기를 웬만한 남자들은 힘들어해요. 그러고는 분풀이라도 하듯이 저희끼리 여자의 사고방식을 흉보면서 우스갯소리를 지어내기도 합니다.
여성의 사고방식이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카멜레온의 보호색 못지않게 생활 전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별로 생각도 않고 말이죠.
여성들은 비교적 근래에 들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었어요. 유사 이전부터 선사 시대를 거쳐 중세에도 여성들은 남자에게 상당히 의존했잖아요?
남녀 간 사고방식의 차이는, 젠더 차이에서 자연스레 비롯된 결과입니다.
남성들이 사회에서 제 위치를 차지하고 필요한 물적 자원을 얻기 위한 싸움에 남성 논리를 동원한다면, 여성들은 남자를 다루고 남자가 얻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거둬들이기 위해 여성 논리를 키워 왔다고 하겠습니다.
남자들을 대하는 여성의 사고방식, 또 남자와 관계에서 여자들이 본능적이거나 의식적으로 설치한 덫에 관해 앞으로 20여 차례에 걸쳐 알아보겠습니다. 어때요, 흥미로운 테마 아닌가요?
여자들의 논리나 사고방식에 대한 우스갯소리는 남자들이 만들어낸 것이겠지요. 예를 들면,
“여자들은 머리채는 긴데 생각은 짧아.”
"닭이 새가 아니듯이 노파는 사람이 아니야."
한데, 여자들의 말과 행동 대부분이 근시안적인 남자에겐 논리도 없고 일관성도 없으며 심지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목표를 확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을, 특히 남자들이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어요.
마야꼽스끼라는 시인은 "별들이 반짝인다면, 그건 누군가에겐 필요하다는 뜻이야" 하고 읊었습니다. 그래요, 자연에 무의미한 것은 전혀 없어요. 카멜레온의 보호색이나 장미의 가시가 외적을 막기 위함인 것처럼,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은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따르고 있어요.
남자가 생존하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남성적인 사고방식을 키워 온 것처럼, 여자도 똑같은 이유로 여성적인 사고방식을 (논리를) 키워 온 겁니다.
단지 남자와 여자의 목표가 조금은 다르며 자신의 웰빙을 위해 싸우고 상황에 적응하는 방식이 제법 다르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죠.
인류 역사로 볼 때 여성 해방이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에요.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여자들이 평등권을 얻고 남자들 못지않게 기회를 보장 받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권력과 (돈을 포함해) 자원이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상당히 편중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 2백 년 어간을 예외로 한다면, 인류 사회에서는 선사시대 사회나 영장류 무리에서 그렇듯이 수컷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수컷들의 주된 과제는 파워와 자원을 차지하고 계급 사다리에서 이왕이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어요. 수컷은 무리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수록 가장 좋은 먹을거리뿐 아니라 더 매력적인 암컷들을 얻으면서 더 많은 자원을 소유했지요.
(영장류) 암컷들은 수컷들에게 종속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이왕이면 더 높은 랭킹의 수컷을 ‘얻어’ 최대한 오래 곁에 두려고 본능적으로 몸부림쳤어요. 랭킹 높은 수컷은 자손에게 우수한 유전 인자를 대물림할 뿐 아니라 암컷과 그 새끼들을 최상의 자원으로 보장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서열 높은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암컷들과 처절하게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암컷으로서는 다른 수컷들의 눈길을 끌어야만 했습니다. 만에 하나 1순위로 찍어 둔 후원자가 걸려들지 않는 경우 랭킹이 좀 낮더라도 암컷과 새끼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보장할 능력의 다른 수컷들을 찾기 위해서도 그래야 했습니다.
원숭이 무리와 아주 흡사한 상황을 현대 사회의 일부 계층에서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수컷들의 자원 보장이 신통치 못한) 시골의 미녀들이 부유한 졸부들을 만나기 위해 대도시로 가지요. 이들은 부유한 남편이나 애인을 찾고 자원을 최대한 빼내기 위해 갖은 책략을 다 씁니다. 때론 '보험 삼아' 수컷을 동시에 둘 이상 유혹하기도 하구요.
지금까지 한 얘기를 달리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남자의 사고방식이 주변 세계를 적절히 평가하고 이 평가에 기초하여 올바른 해결책을 얻도록 설계돼 있다면, 여자의 사고방식은 남자를 은근히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남자는 구체적인 사실과 정보가 있으면 일을 더 잘 해요. 이에 반해 여자는 확실해 보이는 사실을 쉽게 무시하고 자기한테 맞지 않는 정보는 아무 미련 없이 쳐내 버립니다. 여성은 거의 매 순간 남자의 기분과 감정 상태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 본능 덕분에 남자의 기분과 감정 상태를 남자 모르게 통제하고 조종합니다.
많은 남자들이 이런 상황을 겪어 봤을 거예요. 즉, 여자가 어떤 이유로 처음엔 남자를 잔뜩 열 받게 하다가, 더 이상 넘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 갑자기 아주 온순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 말이에요. 그러면 남자는 1분 전에 있었던 일도 까맣게 잊을 만큼 마음이 다 풀어지고, 나아가서는 왠지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되지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여성 사고방식의 (논리의) 강점은 무너지는 법이 절대 없다는 것이에요. 여성적 사고방식을 제대로 구사하고 활용한다면 어떤 언쟁에서도 이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요. (물론 거친 폭력 사태에 이르지 않는다면 말이죠.) 논쟁이나 기자회견, 선거 연설 등에 여성 논리의 요소나 기법이 많이 이용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봅니다.
예를 들어, 국정 혼란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본질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딴 소리를 하는 정치인과 고위 행정 관료들이 그래요. "왜 청년 실업자가 급증하고 도시의 자영업자들이 다 죽어가는가?" 하는 질문에 노회한 정치인은 여성적 논리 수법을 동원하여 "그래도 경상수지는 흑자이고, 외환 보유고는 4천 억 달러를 넘겨 사상 최대"라 하면서 말을 쉽게 돌리지요.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모호한 언급이나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요?" 따위는 다 여성적 사고방식과 (논리와)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일과 시간의 절반 이상을 말하기 때문에 목소리 기구를 혹사하기 십상이며, 이것이 지속되다 보면 목소리 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수업 때는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하게 되지 않습니까?
열정적인 교사의 경우 강의 중에 목소리 강도가 저절로 높아지겠지만, 목소리를 격렬하게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떠들썩한 교실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하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조사에 따르면, 교실 소음은 평균 55-72 데시벨이며,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목소리 강도를 65-74 데시벨까지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목소리 기구를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목소리 피로와 연관됩니다.
숨을 내쉰 뒤, 이른바 '폐에 남아 있는 공기'로 인사 나누거나 말을 이어갈 때 호흡기관뿐 아니라 발성기관도 타격을 받아요. 날숨이 짧은 교사의 경우 호흡을 더 자주 해야 하는데, 습도가 맞지 않고 정화되지 않은 공기를 들이쉬게 되면서 후두 점막이 건조해지고 자극을 받습니다. 이것이 만성 카타르로 이어집니다.
직업병의 항진을 막으려면 목소리 위생을 실천하고 학교에서 일정한 작업 조건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해요. 일과 시간 끝난 뒤 교사는 지속적인 대화를 두세 시간 피하는 게 좋아요. 꼭 필요한 경우, 더 짧고 간결한 어구로 더 나직하게 말해야겠어요.
수업 스케줄 잡을 때 감안할 점
1. 목소리 기구는 3-4 시간 강의하면 피로해지는데, 이 피로를 풀려면 목소리가 1 시간 동안 충분히 쉬어야 해요. (경력 10년 이하 교사들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교직에 더 오래 종사한 교사의 목소리 기구는 더 빨리 피로해져요. 그래서 강의 2-3시간이 지나면 이미 피로를 느끼게 되며, 피로 회복에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2. 상기도와 신경계의 건강 상태, 음식물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목소리 기구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물에 아주 예민해요. 지나치게 차갑거나 뜨겁거나 매운 음식, 알코올 음료, 흡연 등은 구강과 인두의 점막 실핏줄을 자극하여 벌겋게 달아오르게 만듭니다. 목구멍이 마르지 않게 하려면 소다와 요오드 혼합 용액으로 가글을 권장.
이런 측면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1) 단조롭게 말하면 목소리 기구의 근육이 더 쉽게 피로해집니다. 왜냐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 일부 근육만 작동하니까요. 억양을 살려서 표현력 풍부하게 말할수록, 더 건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2) 분필 가루는 목구멍과 후두에 해롭습니다.
3) 추운 날 목소리를 많이 쓴 뒤 곧장 실외로 나다니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몸을 많이 움직일 때 호흡이 잦고 더 깊어지며 찬 공기가 기도로 더 많이 들어가니까. 성대주름과 후두와 기관(숨통)은 찬 공기를 싫어한답니다!
수업이나 대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러 작업에는 전문 지식뿐 아니라 보편적인 교양과 폭넓은 상식이 필요합니다.
뛰어난 교수 능력의 중요한 지표는… 교사의 말, 말 기술, 언어 행위, 또 자연이 선사한 내추럴 보이스를 충분히 활용하는 능력.
목소리는 독특한 음향 현상이자 복잡한 해부-생리적 작용의 산물 아니겠어요? 목소리의 중요한 의미는 사람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구를 적극 활용하는 직업인들에겐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목소리를 주요 수단으로 일하는 교사들은 자기 음성기관의 특징과 관리 방법, 목소리 장애 예방법 등을 알아둬야 합니다.
목소리 개관
명랑할 때 목소리는 낭랑하고 즐겁게, 걱정이나 말썽이 있을 때 위축되고 투미하게 울린다. 다정한, 화난, 상냥한, 비웃는,알랑거리는, 을러대는... 목소리. 우리 목소리가 표현하고 전달하지 못할 감정과 기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소리의 방아쇠는 (임펄스에 의해) 떨리는 성대주름입니다. 후두에 줄처럼 늘어져서 앞쪽은 방패연골(후골)에 붙고 뒤쪽은 피열연골 두 개의 목소리 가지에 붙어 있습니다. 침묵할 때는 성대주름이 떨어져서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성문을 이뤄요. 말하고 노래할 때는 서로 들러붙어서 날숨에 의해 떨면서 소리를 내지요? (*소리 어택)
1초 동안 진동수가 더 많을수록 소리가 더 높고, 적을수록 소리가 더 낮습니다.
성대주름은 1초에 80-1만 번 이상 진동할 수 있어요.
전체가 떨 수도 있고 부분적인 진동도 가능해요.
중추신경계에서 나오는 신경 임펄스의 작용으로 성대주름의 두께와 길이, 긴장도가 바뀝니다. 또한 여러 부위가 수축하면서 다양한 높이의 소리를 내지요. 기타 줄의 여러 부분을(지판을) 눌러서 여러 울림을 내듯이 말이에요. 성대주름 길이가 목소리 높이에 반영됩니다. 여성들 경우 평균 18-20밀리, 남성들은 20-22밀리미터. 그래서 여성 목소리가 늘 남자보다 더 높은 것.
높이 외에 힘도 목소리의 특징
사람은 겨우 들리는 소리도 내고 우렁찬 소리도 낼 수 있어요. 오페라 가수들 목소리에 특별한 힘이 있다, 벽이 떨릴 정도로 노래한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에요. 이건 수사적 표현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에요. 오페라 역사에는 어떤 가수가 웅장한 베이스로 샹들리에를 흔들어 크리스털 장식물을 깼다는 기록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힘찬 목소리를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에요.
하지만 이름난 가수들도 보통사람들도 목소리 힘은 성대주름의 진폭과 긴장도, 날숨의 강력함 등으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 날숨은 폐활량과 호흡근육 힘에 좌우되구요.
목소리 음색에 (인두, 비인두, 구강, 비강, 부비강 같은) 상부 공명강과(기관, 기관지, 폐 같은) 하부 공명강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마다 이 기관들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목소리가 저마다 독특한 것이에요. 성문.
목소리는 생후 2-3일 만에 벌써 독특한 음색을 띤다고 해요. 그래서 엄마가 울음소리만 듣고도 많은 아기들 가운데서 자기 아기 소리를 구별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해가 가면서 아이의 목소리는 바뀝니다. 성장하면서 목소리 생산에 관여하는 기관들이 형성되니까요.
변성기에 목소리가 특히 큰 변화를 겪어요.
사내애들만 변성기를 겪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여자애들한테도 있어요.
단지 더 조용하며 목소리 ‘깨짐’이 사내애들만큼 눈에 띄지 않는 것일 뿐. 그 이유는 여자애들 경우 후두가 1/3 정도 커지는데 비해 사내애들 경우엔 거의 두 배나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성대주름도 늘어나지요.
변성기 때 목소리 생산 기구는 조율 안 된 악기와 비슷해서 말할 때 (특히 노래할 때) 사내애들 목소리는 높은 음에서 갑자기 갈라져서 이른바 '닭소리를 내기도' 하고, 굵직한 저음으로 변하면서 거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에 놀라고 감추려 들 필요는 없어요. 이런 변화는 다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변성기는 대개 1년 반에서 2년 걸려요. 이 시기에 음성기관을 최대한 조심스레 다뤄야 합니다. 오랜 시간 큰 소리로 노래하지 않기, 더군다나 습도 높은 공간이나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서. 소리 지르지 말고 성대주름을 혹사하지 않아야 해요. 흡연은 성대주름에 특히 나쁜 영향을 미쳐요. 한데 13-15세에 미성년자들이 담배에 유혹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변성기가 지나면 목소리는 개별성을 띠게 되어 대략 25-3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발성 관여 기관들에 위축성 변화가 시작되어 목소리가 점차 약해지고 음색이 변합니다.
*목소리 힘 – 우렁찬, 침울한. 교사는 목에 힘을 주면 안 돼, 듣는 이들이 피곤해져요. 만약 나직하게 말한다면 높이를 다양하게 해야 돼요.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 큰 목소리는 짜증을, 들릴락 말락 내는 소리는 졸음을 유발합니다. 최적의 목소리 크기를 찾아야 해요.
*톤의 영역 (성역) - 목소리의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까지 간격.
*비행성 - ‘잘 들리는 목소리’. 이 특질을 특히 더 잘 키울 필요가 있어요. 목소리를 멀리 보내며 크기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유연성 – 내용이며 청자들에게 맞추어 목소리를 쉽게 변조하는 능력.
*이동성 – 높이에서 목소리의 변화.
목소리의 특성 몇 가지
목소리 설비 작업에는 목소리 힘과 성역 키우기, 기동성과 비행성, 유포니(음색) 다듬기 등이 포함됩니다. 목소리 울림의 질은 호흡기관과 목소리기구의 공동 작업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일정 단계에서는 호흡 훈련이 동시에 목소리 설비 실습이기도 해요. 목소리 향상 실습은 주로 목소리 힘과 성역 키우기.
목소리 설비에서 실습은 대개 이런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 소리 방향성의 분명한 결함 제거
(코맹맹이소리, 깊은 목구멍소리 혹은 희미한 뒤통수소리, 열리고 평평한 울림 등)
- 목소리의 힘과 성역 키우기. 속삭임으로, 울림의 힘을 바꾸면서
(조용히-보통-크게, 크게-중간-조용히), 높이 바꾸면서 (낮게-중간-높게, 역으로), 속도 바꾸면서 (느리게-적당히-빠르게, 거꾸로).
- 목소리의 힘과 성역 키우기, 종합 실습으로
(예, 나직하게-낮게-느리게, 다음에는 보통-중간-적절한 속도로, 다음에는 크게-높게-빠르게, 또 다른 결합으로).
목소리는 성대주름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소리가 생기는 후두에서 생산됩니다. 만약 날숨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한다면 성대주름이 제대로 접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면 잠긴 목소리가 나옵니다. 성대주름에 결절과 굳은살이 생기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최악은 출혈.
이런 질환들은 목소리를 주요 도구로 쓰는 직업에 특징적이에요. 교사, 관광가이드, 대중가요 가수 (날숨이 잘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
이미 주지하다시피 택시업계와 카풀업계의 상생 방안이 진통 끝에 나왔다 싶어 많은 이들이 안도했지만, 또 금방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습니까? 내막을 좀 들여다보니까…
요는 갈등의 당사자인 양측이 먼저 자기 진영의 의견을 고루 수렴하여 협상에 임했어야 하는데, 택시업계 쪽도 카풀업계 쪽도 그런 면에서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카풀업계 쪽에서는 심지어 '협상에 참여한 아무개 쪽에 대표성이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더군요. (*양측의 준비 소홀에는 중재자/Mediator 역할을 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책임이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는, 일부의 만족과 스스로 대견하게 여김과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타협안의 입법과 시행 문제를 놓고 또 다른 갈등과 충돌이 불거질 우려마저 예견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택시와 카풀 업계의 갈등 해소 과정이며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눈길과 여론 같은 것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클릭 한 번만 해도 꽤 알 수 있는 만큼, 우리는 그것보다 <갈등 해결을 위한 실무 협상 전략>을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여기엔 크게
1) 효율적인 소통 기법과
2) 합리적인 행동 방법이 들어갑니다.
둘 다 작은 주제가 아님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대여섯 차례에 걸쳐서 차근차근 힘들지 않게 접하고 익히다 보면, 머지않아 하다못해 가정과 직장에서 "우리도 다 뛰어난 협상가, 중재자, Negotiator가 될 수 있어요!"
이를 위해 먼저 간단한 테스트를 몇 가지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테스트 1. "당신은 실무 협상을 진행할 줄 아나요?"
방법: 다음 16개 질문에 각각 ‘네’나 ‘아니요’로 대답하고 점수를 내서 분석을 보세요. 당신이 만약 노련한 대화법을 안다면, 주변 사람들과 소통은 물론이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목표를 더 어렵지 않게 달성하게 됩니다. 아래 테스트는 당신에 그런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외교관 같은 솜씨를 조금이라도 지니기 위해 당장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파악하게끔 고안됐습니다. 1. 당신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놀라는 경우가 있나?
2. 상대방 말이 지나치게 느린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당신은 이미 감을 잡았다 여기고, 상대방이 시작한 말을 낚아채 당신이 마무리하는 습관이 있나? 3. 당신은 자신에게 맡긴 일을 잘 끝내는 데 필요한 것을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고 자주 불평하나?
4. 당신이 공유하는 견해나 당신이 속한 팀을 누군가가 비판할 때, 거기에 반박하나? (혹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치솟나?) 5. 앞으로 6개월 안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예견할 수 있나?
6. 낯선 사람들이 있는 회합에 들어가게 되면, 논의하는 문제에 대해 당신 의견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하나?
7. 어떤 협상에서든 늘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기 마련이라고 여기나?
8. 당신은 고집 세고 완고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인가? 9. 협상에 들어서면 당신이 결국 얻기 원하는 것보다 늘 두 배는 더 요구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여기나?
10. 예를 들어 지인들과 포커를 치는데 자꾸 질 때, 나쁜 심기를 감추기 어려운가?
11. 회의에서 당신 의견에 반대를 표명한 사람에게 사사건건 반박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나?
12. 활동 형태가 자주 바뀌면 불쾌한가?
13. 몇 년 전에 목표로 잡았던 직책을 맡고 그런 봉급을 받게 됐나?
14.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약점을 이용해도 된다고 여기나?
15. 당신은 자신이 옳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논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나?
자연의 법칙을 모르면 자연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법칙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를 해안으로 내던지는 파도 같은 자연력을 웬만큼 조절할 수 있겠지요. 법칙을 무시한다면 삼각파도에 휩쓸려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을 테고….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약 소통 심리를 실제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면 대화를 컨트롤하게 되며, 무시한다면 대화에 전적으로 묶여서 상황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소통의 실제 심리에는 수많은 법칙들이 있어서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우며 그 누구도 다 알 수 없을 정도에요. 소통 심리의 많은 법칙이 앞으로도 또 발견되고 누군가가 정리해낼 거예요. 그리고 그 숱한 법칙들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을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몇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소통 심리의 법칙 몇 가지
1. “우리가 말하기 편한 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듣는 이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야 한다.”
만약-
-당신 말에 내용이 풍부하고
-말이 분명하며 정연하다면,
-만약 당신 목소리가 잘 조율돼 있고
-(조음과 발음인) diction이 정확하고
-억양이 감칠맛 나며 감정이 적절히 들어 있고
-제스처가 절제돼 있다면,
-만약 자신감의 징표를 내보이고 조절한다면…
이는 곧 당신의 public speaking이 그렇지 못한 스피치보다 훨씬 더 영향력 크다는 뜻입니다.
일대 일 대화에서는 상대방에게 (NLP의 개념과 용어를 빌자면) matching을 하세요.
그러면 상대에게 미치는 당신 영향력이 더 묵직해질 겁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과 아주 흡사하다면, 외양과 생각과 말투가 그러하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는 점을 알아둡시다. 달리 말해 당신을 자기 자신처럼 믿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세요! (*'염두하자' 식의 표현은 잘못된 겁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든) 이질감을 품게 만든다면,
그는 당신을 동조자가 아니라 적수로 보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해요.
크게 믿음이 안 가고,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썩 들지 않는 라이벌로 보기 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소통에서는 상대방 말에 (말투며, 제스처며, 내용에) 당신 말을 비슷하게 매칭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가 큰 목소리로 빠르고 격하게 말한다면, 당신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지요.
그가 차분하게 말하면 당신도 차분하게, 그가 유머를 좋아한다면 당신도 농담을, 그가 철학적 담소를 즐긴다면 당신도 그렇게 시도해 보는 겁니다. (이런 것이 만에 하나 잘 안 된다 해도 겁먹을 일은 전혀 없어요. 그냥 긴장 풀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취하면 됩니다.)
주의:matching을 한다 해서 머카크원숭이처럼 상대방을 액면 그대로 흉내 내는 건 금물!
예를 들어 교사들 경우에 활동의 주요 수단이자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도구는 목소리 아니겠어요? (강연자며 각 분야의 트레이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울림 좋고 쉽사리 지치지 않는 목소리를 원할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거의 매일 오랜 시간 목소리를 쓰면서도 (어떤 경우엔 혹사하면서도) 목소리를 잘 간수하는 방법이 딱히 없어요. 목소리와 관련된 신체기관에서 질환이나 장애를 예방하는 방법도 그리 간단치는 않아요.
그러다가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예를 들어 성대주름 주위에 결절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으면 흔히 약물을 쓰거나 심지어 수술까지 하게 되지요. 그리하여 통증이나 장애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목소리가 쉬거나 잘 나오지 않는 등) 목소리 관련 질환이 시작 단계에 있을 때, 음성장애나 언어장애를 치료하는 이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조언하기 마련입니다.
"말을 적게 하세요" 혹은
"심리치료사와 상담하세요" 심지어
"교사라는 직업을 바꾸시죠."
가르시아가 후두경으로 후두를 관찰하는 장면
그런데 목소리와 관련해 여러 이상이나 장애, 질환 등은 오로지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러시아의 심리학자이자 목소리 연구자, 보컬 트레이너인 바그루노프의 주장입니다.
그 원인이란… 목소리의 진짜 본질을 잘 모르고 기계적인 발성 이론을 따르는 것!
더 자세히 밝히자면, 19세기 중반 마누엘 가르시아 주니어가 제시한, 이른바 <목소리 형성의 근탄력 이론>을 따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발성 이론에서는 심호흡을 중시하는데, 이런 확신이 대다수 사람들 인식에 뿌리 내리면서 각종 목소리 질환이 나타난다고 하는군요.
바그루노프의 주장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근탄력 이론>을 담은 책자가 많은 부수 발행됐고, 그 저자가 베이스 가수이자 보컬 코치에다 후두경을 발명한 이탈리아 아카데미 원사이며, 그의 부친 마누엘 가르시아 시니어와 두 누이동생 폴랭 비아르도와 마리아 말리브란 역시 세계적인 오페라가수였던 만큼, 그런 요소들이 한데 작용하여 거대한 효과를 일으켰다.
그래서 지금도 (이비인후과의, 음성병과 의사, 언어치료사, 성악 교육자 등) 많은 전문가들이 목소리 작업에서 호흡 지주 (breath support), 호흡 타입, 성대 위치 등을 주요 개념으로 꼽고 있는 실정이다.
가르시아 주니어가 처음엔 심호흡을 피했으며, 이런 관점을 저서 <노래 학교>의 초판에서 기술했다는 점을 아는 이들은 적다. 이 초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9년 뒤인 1856년 런던에서 재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서 계속 발간되고 있다. 재판 출간 이후 가르시아 주니어는 45년을 더 살다가 101세에 죽었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심호흡이라는 주 명제를 수정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록 자기 유파에 충실한 많은 가수들이 심호흡 때문에 고통 받고 죽어가는 것을 알았고 보았음에도 말이다.
심호흡이 목소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1930년대 러시아 생리학자 라보트노프가 증명했다. 또 1950년대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 라울 위쏭은 가르시아의 추정대로 성대주름이 날숨에 의해 현처럼 떨리는 게 아니라 중추신경에서 나오는 신경임펄스의 작용으로 붙었다 떨어지며 나가는 공기를 뒤흔든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바로 <신경크로낙시 이론>이다.
그런데 가르시아 주니어가 주창한 <발성의 근탄력 이론>과 그에 입각한 목소리 훈련이 얼마나 널리 퍼지고 강력한지, 실험에 근거하여 그 이론이 잘못됐음을 지적해도 잘 먹혀들지 않았고 지금도 그런 편이다.“
바그루노프는 1994년 <목소리 울림의 생성에 관한 신경-기관지 가설>을 내놓았고, 그것을 근간으로 한 목소리 조율 방법에 따라 꾸준히 성악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목소리는 (동물세계에서 다 그렇듯이) (성대주름이 아니라!) '기관-기관지 시스템'에서 생깁니다.
소리의 원천은 기관지와 기관의 박막에 의해 흔들리는 공기, 진동하며 밖으로 나오는 공기 기둥.
박막은 중추신경계로 (심리 상태로) 조절되는 자율신경계의 임펄스에 의해 떨리구요. 이때 성대주름은 진동수를 조절할 뿐이라네요. 결국, 자연은 그런 식으로 우리한테 오르간과 비슷한 독특한 악기를 선사한 겁니다.
바그루노프는, 유년기에 생겨서 목소리를 급격히 악화시키는, 목소리 크기의 물리적인 모델을 <심리적인 억양 모델>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짧은 발성 과정에서 목소리 요소가 다 향상된다고 하네요. 이때 편안하고 일상적인, 짧은 호흡을 취함으로써 발성과 관련된 근육들의 쓸데없는 긴장을 막는 것이 또 중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태어날 때 자연에게서 부여받았지만 대략 서너 살 이후부터 잃기 시작한 내추럴 보이스를 점차 복원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교사나 강사 누구든 수업 부담에 상관없이 목소리를 작업 상태로 유지할 뿐 아니라, 목소리 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추럴 보이스의 복원, 특히 singing voice 훈련에 대한 바그루노프의 가설과 실습 방법은 따로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